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설연휴 직후에 상태가 나빠지셔서 지난 주말에 급히 병원으로 모셨다.

다행히 빠르게 안정을 취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퇴원은 힘들 것 같다.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 마음도 심란해졌다.

어쨌든 독서는 계속되고 리뷰는 쓰여진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설연휴 동안 마무리 되었어야 할

<삼국지> 리뷰는 조금 뒤로 미뤄야겠다.

바빠진 개인사정과 다른 책 리뷰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틈틈이 읽을 계획이니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벌써 2월이다.

계절은 점점 바뀌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어떻게 바뀌어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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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전환 -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기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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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시기에 '인문학'이 다시 유행으로 자리 잡아가는 현상은 참 보기 좋은 현상이다. 사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까닭에 앞으로도 그닥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지식과 교양을 갈고 닦는 일은 '물질적인 풍요'와는 별개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 소양'으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배에 탄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것'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엄청나게 많은 금화와 값비싼 보석, 그리고 진귀한 물건들을 자랑했더란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은 겉모습이 초라해서 자랑할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지혜를 얻었다는 말한마디만 하더란다. 사람들은 그것은 값진 것이 아니니 자랑할 것이 못 된다고 타박을 주었는데, 때마침 해적이 배에 올라타 목숨이 아깝거든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진 것'을 다 빼았기고 빈털털이가 되었는데, 오직 한 사람 '지혜'를 가진 이만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온전한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것이 요즘 '인문학 열풍'의 궁극적인 이유가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인문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단순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기에는 심오하고 깊은 학문이다. 물론, 단순지식을 쌓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도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지만 '아는 힘'을 얻은 뒤에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갓난아기가 '뒤집기'에 성공한 뒤에 '배밀기'를 하고, 그 뒤엔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하고, 무엇이든 잡고 '일어서기'를 하다 수없이 엉덩방아와 머리쿵을 한 뒤에 최초로 '두 발로 서기'에 성공하고 나면 뒤뚱뒤뚱 '걷고', 걷는 것이 수월해지면 '뛰기'를 하며, 일단 뛰기 시작하면 '방안'을 누비는 것으로 모자라 '집안'을 뛰어다니고, 집밖에 나서기가 무섭게 '온동네'를 주름잡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아는 힘'을 경험하고나서는 멈출 수 없고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아는 맛'을 스스로 구별해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면, 드디어 '인문학' 좀 다룰 줄 아는 지식인이 된다. 그러면 '인문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좀 더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나는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단 말이다. 이런 물음에 '정답'이 있을 턱은 없다. 그저 누군가의 '견해'만 있을 뿐이고, 어떤이의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그 수많은 견해와 해석 가운데 '이거다!'라는 모범답안은 누구도 정할 수 없단 말이다. 그러니 인문학 좀 공부한 이들은 겸허하게 '다른이의 생각'을 경청할 따름이다.

 

  이 책,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의 매력이 느껴지는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명의 글쓴이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저마다의 생각이 담긴 책'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먹구구식으로 마구잡이 쓰여진 책은 결코 아니다. 이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는  세 책의 제목이 [멈춤]-[전환]-[전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과거를 돌아보거나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서 반드시 '멈춤'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을 돌아봄'과 동시에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정하는 '전환' 단계를 거쳐, 무겁게 멈춘 발걸음을 다시 움직여 보다 활기차게, 그리고 확고한 결심으로 '전진'하여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단계 가운데 [전환]에 대한 주제를 선정해 '인문학적 소양'을 펼쳐내었다.

 

  물론, 제작의도가 그렇다는 것 뿐, 이 책을 '전환기'를 맞이한 이들만이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인문학'은 다양한 견해를 저마다의 생각으로 읽어나가며 교양을 쌓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답'으로 인지하고 달달 외울 생각은 말고, 다른이의 명석한 견해를 '나의 소양'을 끌어올리는 지렛대로 삼으면 참 좋다.

 

  그런 의미에서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매우 적절한 '생각의 지렛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글의 양이 너무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적으면 지렛대로 삼기에 너무 무르고, 너무 많으면 지렛대를 잡고 힘을 주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주제'를 날마다 접하게 해주니 폭넓은 교양을 쌓을 기회를 제공해서 '관심분야'를 접하면 흥미진진해질 것이고, '비관심분야'를 접하면 생각의 지평을 넓힐 기회가 되니 어떻게 보아도 장점투성이다. 마지막으로 피곤할 수밖에 없는 '퇴근길'을 인문학으로 물들이게 해주는 기획의도가 너무나도 기발하다. 아직 '인문학의 맛'을 모르는 이가 들으면 '꼰대들의 청천벽력 같은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하루의 피곤을 싹 잊게 만들어주는 '퇴근길 토론회'를 경험한 이들에겐 희소식일 것이다.

 

  이게 뭔소린 고하니, 수다를 떨더라도 교양이 넘치고 품격 높은 주제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 수다참석자들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품격수다를 듣는이들도 덩달아서 수준 높아지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퇴근길에서 펼쳐지는 '대중교통 포럼', 퇴근길에 술 한 잔 걸치면서 벌이는 '호프바 심포지엄', 그리고 뚜벅뚜벅 걸으며 펼쳐지는 '교양수다의 향연' 따위를 이 책을 읽은 이들과 서로 나눌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멋진 '퇴근길'이냔 말이다. 딴에는 '홀로' 읽으면서 내 안에 깃든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일명 '나 자신과의 대담'이랄 수 있겠다. 요즘처럼 '인문학 열풍'이 부는 시절에 딱 어울리는 풍경 아니겠는가.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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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2041 - 10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리카이푸.천치우판 지음, 이현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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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AI(이하 '인공지능')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그 결과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칼,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요리사는 맛난 음식을 만드는 '도구'로 쓰고, 살인자는 잔혹하게 사람을 해치는 '도구'로 쓴다는 말이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우리가 지금 '인공지능'으로 맞이할 미래가 밝을지, 어두울지 점치는 것은 우스운 일인 셈이다. 결국 '인공지능'도 인류에겐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도구를 유용하고 바로 쓸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이제껏 수많은 책들이 '인공지능'을 다뤘지만, 이 책처럼 <SF소설>과 <과학저널>을 한꺼번에 다루는 책은 이 책이 유일할 것이다. 그만큼 신선했고, 다소 복잡한 '과학적 설명'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풀어낸 <SF소설>로 이해할 수 있으니 그닥 어렵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딱딱하기만 했던 '인공지능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었다. 그래서 단언컨대, 이 책은 '수작(秀作)'이다.

 

  하지만 뛰어난 작품을 읽고 난 뒤에 느껴야만 하는 '여운'은 매우 길었다. 하나같이 '인공지능'이 펼쳐낼 미래사회가 황홀할 정도로 편리했지만, 그에 반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선보여 주면서 '생각해보라'고 질문을 던져주었단 말이다. 예를 들어, '딥러닝'에 대해서는 보험사의 예를 보여주면서 '당신의 개인정보'를 넘겨주는 대신에 '보험료'를 파격적으로 깎아주겠다고 제안한다. 경제적인 부담을 덜고 싶은 이들은 보험사에 '개인정보'를 공개해주는 대가로 보험료를 50%만 부담하는 옵션을 선택할 것이다. 이렇게 모인 '개개인의 정보'를 인공지능의 딥러닝 방식으로 처리해서 개개인에게 딱 알맞은 '건강정보'를 미리 알려주며 가입자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런 '딥러닝'을 바탕으로 제공되는 '개인맞춤 알림 서비스'는 대단히 유용할 것이다. 가게에서 과자를 사고 '카드결제'를 하고 나면 보험사에서는 곧바로 [그 과자에는 복숭아/땅콩 알러지가 있는 분께는 위험할 수 있으니 섭취할 때 주의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실제로 '땅콩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뭣 모르고 구입한 과자를 잘못 섭취하다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는 '위치추적 정보'까지 제공한 가입자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위험요소'를 사전에 알려주며 만에 하나 가입자가 사고를 당하거나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여성가입자에겐 [전방 80m 오른편에 '성범죄자'가 주거하고 있으니 우회하길 바랍니다]와 같은 메시지로 가입자의 안전에 최선을 다해 대단히 만족스런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맞춤 서비스'가 마냥 좋기만 할까? 보험사가 개개인에게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가지고 '딥러닝'한 인공지능이 알려주도록 서비스하는 것은 가입자를 위해서 하는 일이 절대 아니다. 보험사로서는 가입자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건강을 지키는 것이 회사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대한 정보를 이용해 가입자가 '보험금'을 타지 않도록 철저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제공이 자칫 '빅브라더의 감시'처럼 느껴지게 될지도 모른다. 물건 하나만 사도 가입자의 '안전'을 위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제공해서 기분이 상하게 된다거나 너무나도 속상한 일이 있어서 술 한 잔 걸치고 맘껏 취하고 싶은데 알림메시지로 건강을 지키라는 시시콜콜한 알림으로 짜증을 유발할 것이다. 심지어 좋아하는 이성친구가 생겼는데 '보험사의 알림서비스'가 교제를 방해하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임의적으로 '정보차단'을 시켜서 상대방과 만나는 것조차 방해(?)를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말이다.

 

  얼핏 보아서는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인공지능'이 펼쳐낼 미래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 이런 '인공지능의 능력'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하지만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공지능'은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 유용한 도구가 '어떻게' 하면 바람직하게 쓰이고, '어찌' 하면 불행을 초래하게 되는지 유심히 지켜본 뒤에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단 말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1차 농업혁명', '2차 산업혁명', '3차 인터넷혁명' 등 여러 혁명을 거쳤고, 각각의 혁명 뒤에 있었던 '긍정'과 '부정'에 대한 평가도 내렸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사냥을 하며 힘든 떠돌이생활을 청산하고 한 자리에 머물러 사는 '정착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농업으로 생산된 양이 늘어날수록 '잉여생산물'을 착복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되었고, 주류에서 밀려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농사'만 짓다가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 가난을 겪게 된다. 더구나 태풍과 가뭄 등 자연재해까지 겪게 되면 굶어죽는 이들이 수없이 많았다. 산업혁명은 어땠는가. 산업의 발달로 인해 더할나위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세상이 되었지만, 한편에선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이촌향도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이 인권유린을 당하면서도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보내는 슬픔을 자아냈고 말았다. 인터넷혁명으로는 누구나 '정보의 바다(인터넷)'를 향해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얻었지만, 정작 '정보의 가치'를 선점하는 특정세력들만 부를 독차지하는 불평등을 초래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거,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은 '최고의 부자'가 되었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이용자'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4차 인공지능혁명'은 어떤 식으로 펼쳐질 것인가? 역시나 '인공지능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 핵심관건이 될 것이다. 선점 당하고 난 나머지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인공지능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니라 '빅데이터'인 까닭이다. 어마어마한 정보를 누가 먼저 '선점'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어마어마어마한 정보량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 더 중요한 셈이다. 그래서 '인공지능혁명' 이후에는 '후발주자'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을 다루는 거의 모든 사업이 그렇다. 그렇다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단연 '빈부격차'가 어마무시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부익부빈익빈'보다 훨씬 더 큰 격차일 것이다.

 

  더구나 '인공지능 기술'은 하나같이 '개인정보'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사생활'은 공개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노출된 개인정보는 나쁜 의도를 품고 있는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미래 사회에는 '정보공개'가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나할 것 없이 '공개'된 상황에서 굳이 '비밀'로 잠그는 행동이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다. 특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인기 있는 사람'의 경우엔 정보공개가 독이 될 것은 뻔하다. 또한, 약소국들의 지도자의 공개된 정보는 강대국의 좋은 먹잇감(?)이 될 가능성도 높다. 또한, 공개된 정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을 누구로 뽑을 것인가도 깊은 고민이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누구 손에 맡겨야 안전하고 공정할 것이냔 말이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도덕심'이다. 공명정대하고 진실되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인공지능 기술의 능력'까지 맡겨놔야 할 것인데 '언제나' 믿음직한 사람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운 좋게 찾았다고 한들 '다음 주자'도 믿음직할 것이라는 근거는 희박할 지경이다. 그러다보니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된다해도 전적으로 일상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니 귀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고 말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법이고, 인공지능도 언젠가는 만들어지게 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구'를 유용하고 바람직하게 쓸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부의 독점을 거머쥘 경우를 대비해 '부의 분배'를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고, '인공지능 기술'로 감시사회가 될 것을 우려해 '정보공개의 한계'를 적절히 세워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면서도 편리한 혜택은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색은 모두가 '인공지능'을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으로 우려를 할 때, 이 책은 '유토피아'를 꿈꿨다는 것이다. 그런 장밋빛 미래가 그려진 <SF소설>이 10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담아야 할 내용은 모두 담았다. 그리고 각각의 소설이 끝나면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설명이 뒤따랐다. 그 설명이 마냥 따분하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야기'로 그 기술을 녹여낸 덕분이다. 그러니 이야기는 재미나게 읽고 과학지식은 쉽게 풀어낸 설명으로 이해도를 높여 '인공지능'이 펼쳐낼 미래를 아름답게 상상할 수 있는 책이다. 앞으로 약 20년 뒤의 세상을 펼쳐냈으니 그리 멀지도 않았다. 그리고 잊지말길 바란다. '도구'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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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의 법칙 - 당신을 시작하게 만드는 빠른 결정의 힘
멜 로빈스 지음, 정미화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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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밝은 지 꽤 되었다. 해마다 '새해 소망'을 담아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저마다 바람을 말하고, 마음을 다잡곤 하지만, '작심삼일'마냥 오래지 않아 허무하게 흐트러지는 내 자신의 일상을 해마다 되풀이하곤 할 것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되풀이 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수많은 코칭전문가가 '자기계발'에 성공적인 경험을 한 선배들이 한결 같이 말하는 것은 '습관 바꾸기'다. 이른바, '성공습관'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고, 그 습관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한다. 그래도 '성공습관'을 형성하지 못해 올해도 여러 종류의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이것 저것 다 봤는데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이 책을 권해본다. 성공습관을 기르는데 걸리는 시간이 '딱 5초'면 충분하다는 자기계발서다. 속는 셈 치고 읽어본다고 해도 너무 괜찮지 않은가? 딱, 5초 손해봤을 뿐이니 말이다. 이 책의 핵심은 딱 두 가지다. 바로 '5초'와 '용기'라는 단어만 기억한다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장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을 것 같아 글쓴이는 친절하게 여러 명의 '실제 경험담'을 수록해 놓았다.

 

  조금만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어떤 일을 하겠다고 '결심'이 섰다면 망설이지 말고 곧바로 실행하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비법이다. 이를 테면, 평소에 늦잠을 자서 일상이 바쁘고 하루가 엉망이 된다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곧바로 실행하라는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조언이고, 비법이랄 것도 없지만, 문제는 이런 '기상 미션'이 날마다 계속 반복되는 일상이고, 꾸준히 지속되어야만 하는 일이기에 발생한다. 한두 번은 성공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들쑥날쑥하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누구나 경험해봄직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엔 '딱 5초만' 세어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5초, 4초, 3초, 2초, 그리고 1초를 셈과 동시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조그마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자기 스스로 결심한 일이니 두말 않고 실행에 옮기겠다는 '습관'을 길러보자는 것이다. 많은 지혜가 필요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것이다. 물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몸이 움직이는데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방법이란 걸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일과를 시작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면, 다른 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실천하고, '성공습관'을 기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까지 볼때,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 책은 '하루 일과'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성공비결의 핵심이라고 말하지만, 이 책, <5초의 법칙>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기상 미션을 그저 하나의 예로 제시했을 뿐이다. 그 까닭은 바로 '활성화에너지'가 가장 많이 필요한 활동이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일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는 <몰입>의 글쓴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했듯이, 움직이는 차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보다 멈춰진 차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한 것처럼, 이 활동을 하던 사람이 저 활동으로 바꾸는 에너지보다 잠을 자던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쓰는 에너지가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잠에서 깨어나는 에너지가 하루 반나절 동안 쓰는 에너지와 맞먹는다고 할 정도다. 따라서 멜 로빈스는 그렇게나 많이 소비되는 '활성화에너지'를 단박에 실행에 옮길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결심이라도 못 이룰 것이 없다고 역설한 것이라 비슷한 듯 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암튼, 글쓴이는 어떤 결심을 달성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성공에 다다르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한데 전체적으로는 '큰 용기'에 버금갈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실행하는 '작은 용기'만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멈춰선 바위를 움직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바위는 조그만 힘만으로도 '계속' 움직일 수 있으며, '작은 요령'만 부려도 방향전환까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성공습관'이라는 것도 처음 시작이 매우 어렵고 '활성화에너지'도 많이 소요되는 중차대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처음 시작하는 그 어려운 일을 '5초 세기'로 극복해보자는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5초를 센 다음엔 파블로프의 개마냥 침을 질질 흘리면서 '시작'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저질러 본 뒤에 자기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꾸준히' 지속해보는 것이다. 중간중간에 '경제적 어려움'과 같은 새로운 어려움을 맞닥뜨릴 수 있고, 사고나 질병으로 의도치 않게 멈춰서는 일도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또다시 '5초 세기'를 통해서 새로 시작하면 그뿐이다. 가장 어려운 '시작'을 가뿐하고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습관을 기른다면 세상 그 어떤 일이라도 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쉬운 방법이라 믿기 힘들다면, 이 책에 수록된 '성공담'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다른 사람들도 해낸 일이라면 당신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망설이지 말고..5, 4, 3, 2, 그리고 1.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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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1 : 주홍글씨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
배민기 그림, 김세라 글, 손영운 기획, 너대니얼 호손 원작 / 채우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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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울대선정 인문고전 60권>을 일찌감치 눈여겨 보고 있던 참에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서울대선정 문학고전 43권>이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눈독만 들여놓고 있다가 새해 들어서 드뎌 읽기 시작했다. 도합 100권이 훌쩍 넘지만 올해를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해보련다.

 

  일찍이 '7차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교과과목 간 '통합'이 주요관심을 쏟을 때쯤, '논술'이라는 것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비록 수능시험에는 출제되지 않지만, '정시'와 '수시' 모집에서 논술이 입시결과를 좌지우지했었기에 '독서'가 학생과 학부모 들 사이에서 크게 관심을 모았었다. 허나 막상 책을 읽으려니,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어서 모두가 오리무중이던 때에, 서울대에서 마침맞게 '서울대선정 필독서 목록'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발표한 뒤에 '논란'이 크게 일었다. 왜냐면 그 '목록'에 이름을 올린 도서들이 하나같이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들이 읽기에 너무나 부담이 되는 '어려운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읽기에도 난감하고 막막하고, '두껍기' 그지 없는 책들을 학부모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사모으기 붐이 벌어졌지만, 변변한 '주석서'나 '해설집'도 없이 그 어려운 책을 읽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한 가닥 한다는 '논술선생님'들조차 난색을 표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고전>을 두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알맞은 수준으로 '낮추어'서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일이 만만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사자인 학생들은 '모범답안'을 달달 외우는 것에 길들여져 있던 탓에 용감하게(?) '자유로운 해석'을 시도해볼 생각도 없을 정도로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대에서는 부랴부랴 '필독서'도 아니고, '정시, 수시'에도 출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놓고, 도서목록은 그저 '입학하고 난 뒤'에 틈틈이 읽으라는 발표했을 뿐이고, 서울대학생이 '문제 푸는 기계'로 전락하지 않도록 권장한 도서목록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이 화재가 되면서 '서울대생'도 대학생으로서 상식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서둘러 발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암튼, 지적교양을 쌓기 위해서는 '이 정도' 책은 읽고 나름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을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투로 '도서목록'이 발표되었으니 알아서들 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자 발빠른 '출판시장'에서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서울대선정...>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물론, 적절한 '주석'과 '해석'을 달고서 말이다. 자, 문제는 지금부터다. 과연 이 책들에 실린 '주석'과 '해석'이 모범답안이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석학'들이 풀어놓은 해답이니 충분한 자격을 갖춘 믿을만한 정답이 아닐 턱이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 '정답'만을 달달 외우라고 주석과 해석을 달아놓은 것일까? 아니, 좀더 심층적으로 물음을 바꾸어서 '<고전>에 정답이 있는걸까?'라고 물으면 어떨까? 자신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고전>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수많은 '해석'만 있을 뿐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해석이 있기에 그것을 '정답'이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그 해석도 시대가 바뀌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새로운 해석'이 기존의 해석을 뒤엎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 '새로운 해석'조차 '또 다른 해석'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고뇌하고 사색하는 일만이 유일한 정답인 셈이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 <고전>을 처음 접할 땐 '길라잡이'가 필요한 법이다. 아무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위대한 존재라 하더라도 처음 시작은 '모방'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베끼고 따라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만의 가치관'을 갖춰나간 뒤에야 비로소 '독특한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을 위한 '주석서'와 '해설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본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더구나 '어려운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화형식'으로 출간되어 읽기에 부담은 줄이고, 이해는 머리에 쏙쏙 되는 훌륭한 '길라잡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단순암기'에서 그치고 만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렇기에 '독서토론'이란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길라잡이로 대충 감을 잡았으니 '자기만의 안목'을 발휘해서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 그렇게 경험을 쌓고 난 뒤에는 '원작'을 다시 읽어야만 제대로 된 독서가 될 것이다. 왜냐면 '가치관'이란 물길처럼 한 번 흘러간 자국을 따라 계속 흘러가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이를 '수로화'라고 표현하는데, 만화책만 즐겨 읽다보면 이런 경향을 쉽게 띠게 된다. 만화책에는 '인물의 표정'이 획일화 되어 있고, '배경묘사'에도 이미 만화가의 경향이 반영되었기에 '독자의 상상력'을 크게 위축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만화책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가치관 형성'이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만화책>만 너무 즐겨 읽다보면 '수로화의 문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수 있으니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반대의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다. 청소년들이 '원작'을 읽다보면 '시대배경'도 '공간배경'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경험'이나 '이해'가 부족하기에 생기는 문제점이다. 이럴 때엔 '상상과 경험의 씨앗'이 필요한데, <만화책>이 그 씨앗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책>을 고를 때에는 '만화가의 뛰어난 실력'을 고려해야만 한다. 뛰어난 만화가는 '확실하고 탁월한 고증'을 바탕으로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려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 <서울대선정 문학고전>이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듯 싶어 권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첫 번째 책이 <주홍글자>다. 이 책을 벌써 몇 번에 걸쳐 리뷰를 올리고 있는데, 마침맞게 이 책이 첫 번째 책이라 개인적으론 반갑기 그지 없으면서 '또 다른 리뷰'를 써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고전의 장점은 읽을 때마나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기에 간략히 써내려가보려 한다. 먼저 책 제목은 <주홍글씨>인데, 근래에는 '글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가 많다. 왜냐면 '글씨'는 모양을 나타내고, '글자'는 문자, 그 자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글자'와 '글씨'는 서로 '비슷한 말'인 관계로 무엇으로 쓰든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론 어릴 적부터 불러서 익숙한 '주홍글씨'가 편하긴 하다.

 

  암튼, 이 책의 주제는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적인 해석이 중론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지었다는 '원죄'를 중하게 다루기 때문에, 청교도들이 이주해서 세운 초기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책을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주제로 다루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속 주인공들도 하나같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인 헤스터 프린은 '간통'이라는 죄를 짓고, '죄값'을 치르기 위해 가슴에 A라는 글자를 화려하게 수놓고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깊이 반성을 한다. 아서 딤스데일도 차마 '스스로' 죄인이라 밝히지는 못했지만 가슴에 A라는 글자를 '직접' 새겨놓고 저지른 죄에 대한 죄의식을 털어버리기 위해 깊은 고뇌에 빠져버린다. 한편, 칠링워스라는 헤스터의 남편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식'도 없이 오로지 '복수심'만을 불태우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진정한 구원을 받은 이는 헤스터 뿐이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수치스러워하기보다 '당연히 받아야 할 죄값'으로 여겨, 그 죄값을 다할 때까지 반성과 선행을 꾸준히 행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죄값의 끝' 따위는 없다는 것을 헤스터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그녀의 반성과 선행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헤스터는 '죄 없이 벌만 받은 듯' 살아가는 당시의 여성들의 삶에 당당히 맞서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여성들이 죄인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까닭도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탓이라며, 불우한 이웃을 도우면서도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이룬, 다시 말해, 남편 없이도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에 성공을 한 자신의 '존재감'을 널리 보여줌으로써 확고한 '여권신장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딤스데일은 '죄의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자기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는 것으로 스스로 벌을 받고 있지만, '구원'을 받지는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대중들 앞에서 '고백'하지만, 목사라는 '사회적 지위'에 가려져 죄의 고백이 오히려 '사회지도층의 겸양'으로 비춰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딤스데일은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스스로 '위선자'라는 죄의식까지 더해져서 더욱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낼 뿐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딤스데일은 헤스터가 부러울 따름이다. 일찌감치 '죄값'을 치룬 덕분에 치욕스런 삶을 살고 있지만 '죄의식'은 한층 가벼워져서 아낌없이 선행을 하며 '구원의 길'에 한발짝 더 나아간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죄악'을 밝힐 기회도 잃어버리고, 따라서 '구원'도 받지 못하는 괴로움에 영혼이 죽어감을 깨닫게 된다. 비록 육신은 멀쩡해서 의사도 치료할 것이 없을 지경이지만 말이다.

 

  '그 의사', 다름 아닌 칠링워스는 스스로 '죄의식'을 깨닫고 '구원의 길'을 가기는커녕 '복수심'만 불태우며 헤스터와 딤스데일의 '죄값'을 들춰내며 괴롭히는 '악마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다. 그로 인해 칠링워스의 외모는 나날이 추해질 뿐이다. 결국 복수의 대상이었던 딤스데일이 만천하에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밝히고 죽은 뒤에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다. 딤스데일은 죽음의 문턱에서 '죄의 고백'을 함으로써 영혼의 구원을 받게 되었지만, 칠링워스는 자기 스스로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죄의식'도 없고, '반성'도 하지 않아 '구원'도 받지 못하고 만다.

 

  한편, 헤스터의 딸, 펄은 '살아있는 주홍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펄은 헤스터의 가슴에 수놓인 A에 집착하는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하면서 헤스터를 당혹스럽게 만들곤 하지만, 그로 인해 헤스터는 '죄값'을 잊어버리는 해이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고, '죄의식'에 대한 반성 또한 철저히 하는 '구원의 지름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헤스터가 자신의 딸을 '구차한 생의 혹'으로 여겼다면 절대로 갈 수 없었던 길이다. 사랑스런 딸이 내뱉는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과 행동으로 헤스터는 한시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반성을 늦출 수 없었던 셈이다. 심지어 헤스터가 딤스데일과 '새 출발'을 약속하며 떼어낸 A 글자를 다시 주워와 엄마의 가슴에 다시 달게 만드는 장면은 '펄의 역할'이 주홍글자였음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적인 관념이 물씬 드러난 <주홍글자>가 '종교적인 주제'를 뛰어넘어 인류 모두의 '문제의식'을 다루는 고전으로 분류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건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주제가 우리 사회의 '윤리도덕의 문제'로 읽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그때마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침잠해버리고 만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잘못과 실수를 '바로 잡을 방법'을 제시하고, 오히려 그 방법을 통해 더 큰 꿈을 이루는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아니, 인간은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고, 시련을 극복한 사람만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설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나 죄를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 죄값을 당당히 치루고 '죄의식의 극복'으로 더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바로 이런 깨달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이 책, <주홍글자>가 고전이라 불리는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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