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3 - 대항해 시대의 콜럼버스와 엘리자베스 1세 벌거벗은 세계사 3
최호정 그림, 김우람 글, 박구병 외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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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은 유럽이 이끈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새로 개척한 '바닷길'이 열리자 인도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톡톡히 이득을 보던 '이슬람 문명의 쇠퇴'를 알리는 교두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메리카 대륙에서 강탈한 금은보화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스페인)는 일찌감치 해상무역을 선점한 해양강국으로 우뚝 선다.

 

  하지만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엄청난 물량의 금과 은이 너무 많이 유통되는 바람에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겪게 되었고, 구교와 신교의 종교갈등으로 이곳저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무적함대'를 이끌던 스페인은 점점 경제적으로 몰락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영국에서는 헨리8세가 영국 국교회를 공인하면서 '절대왕정'을 누렸고, 그녀의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 1세가 집권을 하면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등 빛나는 업적을 남기며 '대영제국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콜럼버스'와 '엘리자베스 1세'라는 위대한 인물을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3>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영웅이기만 한걸까?

 

  우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역사적 위인'으로 꼽고 '영웅'이라 칭송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 아닌가?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지만 에스파냐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신대륙 발견'을 발견하여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 엄청난 이득을 안겨준 자랑스런 인물임에 틀림없다. 엘리자베스 1세도 유럽의 변방이었고, '외딴 섬'에 불과한 작은 나라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로 위대한 대영제국을 만드는데 발판을 마련한 훌륭한 여왕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 빛나는 업적의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죄없이 죽음을 당해야 했고,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겨야 했으며, 죽을 때까지 채찍질을 당하며 온갖 노역과 수모를 당하는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다. 바로 '아메리카 원주민'도 아니고 '인디언'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믿음의 자유를 빼앗긴 '종교전쟁'으로 말이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인도'라고 철썩같이 믿었고, 그래서 지금의 '캐리비안 해' 주변의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분명 '인디언(인도사람)'도 아니고, 애써 유럽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부르려면 '아메리카 원주민'이라 불려야 마땅한데, 지금도 여전히 '인디언'이라 불리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이 '원주민들'을 제대로 대우해줄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그런 까닭에 자신(백인)들이 원하는 만큼의 황금을 얻지 못하면 서슴지 않고 학살도 자행하고, 노예로 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참한 짓으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살다 죽게 만든 악마, 그 자체였다. 그렇게 아메리카의 문명이었던 아즈텍과 마야, 잉카 문명이 차례차례 모조리 말살되고 말았다. 스페인은 바로 여기서 빼앗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유럽 최강의 함대(무적함대)를 앞세워 대서양을 누비며 '해상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극적으로 몰살시키며 새로운 해상강국으로 발돋움한 이가 '엘리자베스 1세'였으며, 그녀는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드는데 첫 삽을 뜬 훌륭한 여왕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대영제국의 여왕폐하께서도 빛나는 업적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희생양을 제물로 삼아야만 했다. 물론 그 '학살의 시작'은 그녀의 아버지인 헨리8세가 시작하였다. 아들을 낳는 왕비를 얻기 위해 수차례 이혼을 했고, 가톨릭 교황이 이혼은 불가하다고 통보하자, '국교'를 바꿔서 자기 스스로 '새로운 종교의 수장'이 되어 맘대로 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절대왕권을 누렸던 터였다. 그 '절대왕권'으로 인해 헨리8세는 '이교도 숙청'을 자행했고, 그의 첫째 딸인 '피의 메리 여왕'도 똑같이 따라했으며,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 1세도 마찬가지로 학살을 자행했다. 왜 영국의 퓨리턴들이 '믿음의 자유'를 얻기 위해 좁디좁은 메이플라워 호에 몸뚱아리 하나만 싣고 대서양을 횡단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당시 영국은 이교도를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이 멈춘 날이 없을 정도였단다. 왕이 영국 국교회로 강제로 바꾸자 '가톨릭신도'와 '청교도신도(퓨리턴)'가 화형을 당했고, 다시 가톨릭을 믿는 여왕이 들어서자 '국교회신도'와 '청교도신도'가 불살라졌으며, 또다시 국교회를 믿는 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가톨릭신도'와 '청교도신도'는 툭하면 화형을 당하고 말았다. 어디 이뿐인가. 딴 나라가 종교전쟁(구교와 신교의 싸움)을 벌이면 영국은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전쟁을 치룰 정도로 '전쟁을 참 좋아하는 왕'이었다. 과연 이들 왕들이 영웅이라 불려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을 때, 수많은 나라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늘날의 경제대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제국국가'였으며, 전세계를 '식민지'로 삼던 '약탈국가'였고, 그 식민지인들의 미개함을 문명화시켜주겠다는 아름다운 명분을 내세워 '학살'을 자행한 나라가였는데,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한 나라였으며, 세계 어디에도 식민지를 만들지 않았으며, 식민지를 만들지 않았으니 수탈과 약탈을 한 적도 없는데, 오직 자신들의 힘만으로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한류열풍'으로 붐을 일으키고 매료시켜버렸기에 엄청난 부러움을 샀기 때문이다. 그랬던 대한민국이 지금 쪼금 심각하게 삐걱거리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다니고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우면서 '위대한 위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전쟁광'에다가 '학살자'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덕을 베풀며 덕으로 흥하게 되면 덕으로 망할 수 없는 법이다. 덕으로 흥한 자를 망하게 만들면 '부도덕'하다 욕을 먹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우며 '한국사=수난사'라고 부끄러워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왜 우리는 알렉산드로스나 칭기스칸, 나폴레옹처럼 위대한 영웅이 나오질 않느냐고 한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한민국이 세계적 위상을 드높이며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게 되니, 어떻더냔 말이다. 모두가 부러워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 위대함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바로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을 드높일 주인공들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공영을 위해 당당히 앞장서는 빛나는 업적을 세울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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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한해는 148편의 리뷰로 마무리하였다.

목표가 150편이어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볼까도 싶었지만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그만 마무리하였다.

 

한편, 23년은 건강이 많이 나빠진 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이래저래 신경 쓸 일도 많았고

돈벌이를 하는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할 뻔 하는 등

몸도 아픈데 마음까지 아프게 하는 일도 참 많았다.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니 몸도 마음도 빠르게 추스리는 24년으로 삼고자 한다.

 

24년에는 '서평이벤트' 같이 '의무적'으로 리뷰를 써야 하는 일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그보다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리뷰하는 원년으로 삼고 싶다.

물론 '독서논술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관계로

어린이책을 비롯한 청소년책 리뷰가 상당할테지만

그래도 그 이상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야 출판사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부탁할 때 더 품격있는 리뷰를 써낼테니 말이다.

아직까진 정식으로 부탁한 출판사리뷰는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23년 후반기에 '출판사 통계'를 손수 내었던 것이다.

과거에 '주제별', '작가별' 리뷰를 써왔던 것에 비해서 좀더 체계적인 듯 싶어 흡족하다.

23년 '내가 가장 사랑한 출판사'는 [한빛비즈]였다.

상반기에 '한빛비즈 서포터즈'로 활동한 때문이었다.

아쉽지만 더는 서포터즈로 활약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동안 감사할 따름이다.

 

24년에는 어느 출판사 리뷰를 많이 하게 될까?

[인간사랑], [21세기북스], [김영사(주니어포함)], [랜던하우스코리아(주니어포함)] 등등을

조심스럽게 꼽아본다.

물론 '장르별 독서'도 더욱 집중해볼 참이다.

요즘 집중리뷰하고 있는 <SF장르>도 있고, 더 많은 <사회과학>과 <과학> 분야의 책도

섭렵해볼 작정이다.

계획은 언제나 계획일 뿐이다. 리뷰로 보여줄 뿐이다.

24년 푸른 용의 기운을 받아 더욱더 박차를 가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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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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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만해도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었다. 우주에 대한 신비감도 가장 팽배했던 시기였고, '우주전쟁(스타워즈 계획)'까지 갈 뻔했던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은 극에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이후 갑자기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급 화해모드로 선회하였고, 소련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등 갈등이 완화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우주개발'도 덩달아 침체기를 겪게 되었는데, SF소설에 대한 관심도 이때가 가장 추락했던 것 같다. 오히려 <해리포터>시리즈와 <나니아연대기> 같은 '판타지소설'이 대박을 치고 열풍이 불었으니까 말이다. 이후 마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치기 전까지 SF장르는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대로 'SF소설'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될까?

 

  사실 나도 그랬다. 사람들의 유행에 따라 10대 시절 '우주'를 사랑했다가 2, 30대에 '판타지'에 열광했고, 40대 초반엔 '마블 영화'에 미쳤다. 그리고 40대를 마감하는 지금에 와서야 다시 'SF 소설'을 손에 들게 되었다. 그 옛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허버트의 <듄>을 읽었고,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다시 읽었으며, 이제 겨우 미처 읽지 못했던 클라크의 'SF 소설'들을 읽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련다. 그것도 꽤나 흥미진진하다고 말이다. 이 책 <라마와의 랑데부>도 그렇다. 초반부엔 소행성 크기만한 정체불명의 '거대한 원기둥'이 태양계를 향해 오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인지라 지지부진하게 읽었지만 중반을 넘어, 드디어 등장을 한 '외계생명체(아님 인공지능로봇)'로 인해 숨가쁘게 읽어나갔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그 긴장감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클라크 소설의 특징인 듯한 '초반엔 지루한 설명'이 이어지다 '후반으로 넘어가면 절체절명의 극적인 묘사'가 정말 압권이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날 갑자기 태양을 향해 다가오는 '외계 천체'가 관측되었다. 행성연합위원회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혜성'이 아니라 지적인 외계인이 '설계'했음이 분명한 완벽한 기하학적 구조물이란 사실을 알고서 탐사대를 보낸다. 탐사대원들은 '인데버 호'를 타고 '라마(인도신화의 신 이름)'라고 이름붙인 거대한 원기둥에 착륙해서 '내부탐사'를 시작한다. 뚜껑(?)을 열고 라마의 내부로 들어간 탐사대원의 첫인상은 '끝없는 계단'뿐이었다. 걷고 또 걷는 것이 전부인 탐사였다. 하지만 탐사대가 서치라이트가 켜고 살펴본 라마의 내부는 광활한 '빈공간'이 전부였다. 생명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바이러스조차 검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부엔 '산소'가 가득했고, 우주복의 헬멧을 벗고도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과학적인 설명' 그리고 '또 설명'...혹시라도 이 부분이 지루한 독자라면 과감히 책장을 넘기길 권한다. 하지만 읽으두면 나중에 벌어질 기발한 사건의 연속들이 자연스레 이해가 될 것이다.

 

  이처럼 클라크의 소설들은 지루할 정도로 '과학설명'이 뒤따른다. 왜냐면 클라크가 '소설가' 이전에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소설에서는 어김없이 '과학적 해설'이 나열되곤 한다. 물론 20세기 과학자의 해설인 까닭에 21세기를 사는 일반독자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과학적 오류'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에서 용이 갑툭튀한다고 놀라는 독자가 없을 것처럼 'SF 소설'이지만 '공상과학'을 마주하는 느낌으로 시대에 뒤처진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작품배경에 녹아들며 읽어나가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전설적인 SF소설들이 오래된 관계로 이 책 또한 1970년대 '과학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소설속 시대배경은 그보다 훨씬 미래인 2175년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작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SF소설'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과학적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오류 덕분에 책을 읽는 재미는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실현하지 못한 '태양광에너지의 효율'이 극대화 된 연출이 이 책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라마'라는 새로운 천체의 등장을 적대시하는 세력으로 '수성인(메르시안)'을 창작해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태양계에는 지구를 대신할 '우주식민지'가 개척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황폐해진 지구를 벗어나 '달'에 정착했고, 수성과 화성, 그리고 가니메데, 타이탄, 트리톤까지 태양계 곳곳에 정착가능 지역을 확대했던 것이다. 그밖에도 더욱 척박한 소행성에도 지구인은 진출했지만, '행성연합'을 이끌 정도로 힘을 발휘하는 정착인들은 앞서 열거한 6곳과 지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라마'의 출현을 반기지 않은 세력이 바로 '수성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왜 '라마'를 적대시했을까? 그건 바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의 이점을 '라마'가 빼앗아 갈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태양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태양광'에서 얻는 에너지를 다른 정착지로 쏘아보내면서 얻는 이익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수성인'들의 거의 유일한 수출품목(?)이었는데, 새로 출현한 '라마'가 수성보다 더 안쪽 궤도에 '안착(!)'했을 경우, 라마를 직접 관리할 '행성연합'이 수성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수성인'들은 다른 행성연합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무도 몰래 '핵미사일'을 라마를 향해 쏴버린 것이다. 그 라마에는 아직도 '탐사대원'들이 수십 명이나 머물면서 탐사중인데도 말이다. 오늘날의 과학수준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긴 하다. '태양광'을 수출할 정도로 에너지를 축적하고, 그걸 다시 '에너지형태'로 내뿜어서 '원하는 곳'으로 송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획기적일 뿐만 아니라 '실현가능'하다면 우리는 한밤중에도 '태양광'을 이용해서 어둠을 밝히고 기후위기를 불러올 '지구온난화'를 말끔히 해결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조우할 수 있는 '라마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더 이상의 스포는 하지 않으려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우리는 아직 '외계생명체'에 대한 흔적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는 '광활한 우주공간'에 비례해서 믿어 의심친 않지만, 그들이 '지구인'과 조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얼마간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급격한 '기후변화'와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지구인의 미래가 2100년 이후에도 존속가능할 것인지조차 불확실해진 것도 부정적 인식에 한몫 단단히 했다. 20세기만해도 '과학문명의 고도발달'이 모두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21세기에도 끊이지 않는 국제적인 갈등과 멈추지 않는 전쟁소식이 추락하다 못해 암울한 경제현실과 맞물려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미래를 더는 낙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구인들조차 '고도문명'에 다다르기 전에 멸망하고 말 운명인데, 전 우주를 통틀어 '지적인 생명체'가 맞이할 미래가 저 머나먼 우주너머는커녕 '태양계 밖으로' 나갈 수나 있을까 싶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라마인'이라니...

 

  하지만 '진화적 관점'에서 봤을 때, '라마인의 생체적 특징'은 지켜볼만 했다. '입'이 없었던 것이다. 매끄럽고 탄탄한 금속성의 피부 밑에 '유기체'로 이루어진 '자체 전지'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에 존재하는 '전기뱀장어'나 '전기가오리' 같이 생체내에 전기발생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라마인들은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유기물과 무기물을 가리지 않고 '그들만의 바다'속으로 망가지고 불필요한 것들을 조각조각 잘라서 '재활용'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바닷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다시 생겨나는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만 전할 뿐이었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인류의 미래'도 라마인의 과학기술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찾고 얻어야 하는 '숙명'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하고 전쟁을 벌이는 야만적인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지구인'은 아무리 고도의 문명으로 발전시킨들 '폭력적인 성향'을 완전히 버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온순한 라마인의 문명을 배우지 못한다면 지구인은 '두 번째 지구'를 찾아내거나 만들지 못하면 결국 절멸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을 알아차렸다면 더이상의 '폭력'은 멈추고, 지구를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마땅할진대...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지구인들의 미래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제발 24년에는 모든 폭력이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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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2
아서 C. 클라크 지음, 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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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 해당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결말은 '지적인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며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9년 뒤에 해당하는 이야기인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시작은 목성 근처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불현듯 사라져버린 '디스커버리 호'의 마지막 승무원인 마지막 외침을 추적해나가는 일이었다. "세상에 별이 너무나 많아"라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이었을까? 지구에 남겨진 이들에겐 숙제같은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대체 'HAL 9000'은 왜 고장나지도 않은 안테나가 고장났다고 박박 우겼던 것일까? 인공지능 컴퓨터가 '거짓말'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문에 '동면'중이던 승무원은 살해당했고, 깨어있던 두 명의 승무원 중 한 명은 'HAL의 계략(?)' 때문에 죽고 말았고, 나머지 한 명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HAL 9000'의 전두엽에 해당하는 메모리칩을 모조리 빼버리고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망가진 디스커버리에서 마주친 '지적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는 또 다른 우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지구인들은 '버려진' 디스커버리 호와 랑데뷰하기 위해서 탐사대를 떠나보내게 된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목적지인 '목성의 대기권'으로 향하는데, 불청객이 등장하고 만다. 애초에 디스커버리 호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우주인은 우주강국인 '소련과 미국'에서 선발된 숙련된 이들이었는데, 이들이 목적지인 목성에 도달하기도 전에 '중국'의 첸 호가 비밀리에 만들어져서 먼저 출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경쟁 아닌 경쟁이 붙게 되고 누가 먼저 디스커버리 호와 랑데뷰를 할 지 궁금한 가운데 '첸 호의 궤도'가 요상하기만 하다. 분명 먼저 도착할 것이 뻔한데도 빙 돌아서 가는 듯한 이상한 항로를 잡은 것이다. 그나저나 '첸 호'는 되돌아갈 연료마저 소비하듯 추진력을 발휘하여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수상쩍다. 뭔가 꿍꿍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첸 호는 디스커버리 호에 도킹하기 전에 '연료보충'을 할 목적으로 목성의 위성인 에우로파로 향하고 있었다.

 

  왜 하필 에우로파 였을까? 그건 에우로파가 엄청난 '물'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대기'가 얇아서 얼어붙은 위성이었지만, 거대한 목성 덕분에 중심부에는 거대한 열을 가지고 있었고, 표면의 얇은 얼음만 뚫으면 얼마든지 '물'을 보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중국'이 인류 최초로 에우로파에 착륙하게 되었으니 최초로 '우주식민지'를 소유했다고 선포할 가능성도 짙었다. 물론 미국과 소련이 순순히 놔둘리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에우로파에 착륙한 첸 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 이런 광경을 어이 없게 바라보던 탐사대원들은 에우로파의 마지막 생존자라고 말하는 이의 '마지막 전언'을 듣게 되는데, 첸 호가 파괴된 까닭은 '에우로파의 괴생물체' 때문이라고 한다.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 이어 '태양계 안에도 괴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게 되는데...

 

  1편과 달리 2편에선 굉장히 빠른 몰입감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이후에 밝혀지는 '디스커버리 호의 비밀'과 'HAL 9000'의 이야기도 분명 '놀라움, 그 자체'일 것이다. 도대체 이런 소설이 1982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SF 장르의 붐은 '20세기 초'였다고 한다. 물론 21세기인 오늘에도 SF 장르는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시들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요즘엔 '외계인의 존재'나 'UFO의 진실' 따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조차 드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주의 신비'가 확 깨져버린 탓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SF계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지는 '마블영화'조차 <엔드 게임> 이후로 관심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아이언맨의 죽음' 때문이고, 이후에 나온 <후속작>들이 하나같이 폭망한 까닭일 것이다. 한마디로 '듣보잡 히어로의 등장'으로 재미가 없어졌다. 이미 <엔드 게임>을 벌일 정도로 스케일은 커졌는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영웅'이 나타나서 '어벤져스'보다 더 쎄다고 주장한다면, 관객들에게 씨알이나 먹히겠느냔 말이다. 이처럼 SF 장르는 '익숙해진'만큼 '낯선 인물, 낯선 스토리'에 올드팬들의 반발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고전 SF소설'이 더욱 대단한 것이다. 오래 되어 식상해질 법도 한데, 막상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독자들에게 '목성'까지 가는데만 2년이 넘게 걸리는 낡은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모험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낡은 스토리'가 재밌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기 힘든데도 속속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에 호들갑을 떨게 만들 정도로 재밌단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더군다나 스토리 전개는 느려터져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읽어도 뭔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과학적 설명'은 왜 그리도 길고 자세하게 늘어놓는 것인지... 그런데도 그런 몇 가지만 조금 참고 '소설의 도입부'를 넘어가면 '미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앞에 늘어놓은 지루한 설명은 뒷부분에 전개될 스펙타클한 스토리라인을 위한 '밑밥'이었던 것이다. 그 밑밥을 찔끔찔끔 먹다가 제대로 코가 꿰어서 낚일 운명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이제 겨우 2편일 뿐이다. 3편과 4편에서 벌어질 이야기도 빠르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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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異之我_또다른나 2024-01-02 21:17   좋아요 1 | URL
제 글에 좋아요 눌러주시는 고마운 분이시군요^-^=
새해 천복을 누리시고 하시는 일마다 대박나시길 바랍니다
24년에도 잘 부탁드려요ㅎㅎ
 
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빛비즈 교양툰 30
클레르 알레.벤자민 아담 지음, 정수민 옮김, 이정우 감수 / 한빛비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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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해서, 오늘날의 초일류부자들은 결코 '자수성가'를 한 부류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평등'을 바탕으로 부를 선점했으며, 그렇게 선점한 '부당한 부'를 상속이란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대로 물려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건 바로 '올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선 '돈(정치자금)'이 필요했는데, 그 돈을 '초일류 부자들'이 대부분 충당해준 덕분이었다. 그렇게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합법적'으로 올라선 정치인들은 또다시 필요한 '정치자금'을 얻고자 초일류부자들의 '상속세 감면'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십상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끝없이 반복될 수 있을까? 선거는 '평등선거'가 원칙이라 모두에게 '똑같이' 1표씩 주어지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초일류부자는 고작해야 1~3%이고, 나머지는 전부 '노동자들'인데, 어떻게 해서 부자들만 유리한 '감세정책'이 유지되는 것일까?

 

  그건 '주식회사의 경영권'을 손에 쥐는 방식과 비슷하다. 주주들이 갖고 있는 '한 주'당 '1표'씩 행사할 수 있다는 교묘한 방법 말이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백 주'를 가지고 있어봐야 부자들이 갖고 있는 '몇백만 주'를 넘어설 수 없고, 노동자들이 아무리 연대를 한다고 해도 회사의 경영권은 '51%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가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을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것'이 기본 상식이고 가장 평등한 방법이며, 심지어 '합법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이 주권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이 '대의정치(정당정치)'를 지향할 수밖에 없고, 이런 정당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기업에 구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정치인'은 '부자감세 정책'을 활용해 초일류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 끝없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토마 피케티가 쓴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핵심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 <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8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러한 '불평등의 근원'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보다 더 나은 체제를 찾지 못했기에 우리는 이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양극화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언젠가 더는 이런 '불평등'을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결국엔 '자본주의' 스스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토마 피케티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런 심각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피케티는 해결방법 중에서 '세금'에 가장 크게 집중했다. 기본적으로 '고재산'에 대한, '고소득'에 대한, '회사 이익'에 대한, 그리고 '공동 탄소세'에 대한 세금을 매겨 정부가 거둬들이고, 이를 다시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법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특히, 상속세와 누진세 등을 더욱 강화하여 '누리는 만큼' 더 많이 내는 방식이 '누리지 못한' 부류에게 골고루 혜택을 되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고른 혜택에는 '기본소득'과 같은 방법도 있으나,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연구 자금'에 투자하고, 가난한 이들도 마음껏 '교육'받을 수 있게 하는 평등권을 보장하는 방식도 소개하였다. 왜냐면 가난한 이들이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고 '교육의 기회'를 통해서 고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열린 사회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며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런 고소득 노동자들이 '정치참여'를 하게 될수록 더욱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부의 되물림이 유리한 사회를 만들려는 '초일류 부자들'의 꼼수는 아직 부자의 반열에 오르지 않은 이들까지도 '언젠가는' 부자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만들고, 그로 인해 어렵게 어렵게 부자가 되었을 때 '고액의 세금'으로 어렵사리 모은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 '낡은 정책들'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쪽으로 정치를 끌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엔 '도루묵' 신세를 면치 못하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더 빈자가 되는 '양극화 문제'는 결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 책이 대한민국 사회에선 '어떻게' 읽혀야만 할까?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 사회'를 철저히 분석하여 '불평등'의 원인을 부자들의 불성실한 납세 태도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납세의 의무'를 부자들에게 통렬하게 일갈하였다. 부자들이 쌓아놓은 부가 그들의 '정당한 노력'에 의한 것이 절대 아니었으며, 힘 없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부를 중간에서 갈취한 덕분에 부자가 되었으니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합법적인 방법(!)'인 세금납부로 내놓아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에 공헌을 하라고 비판한 셈이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의 초일류 부자들은 과연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쌓았는가? 혹시 '나라'를 팔아서 부를 축적하지는 않았던가? 혹시 '독재자'와 결탁해서 국민들을 겁박한 뒤에 수탈하지는 않았는가? 그도 아니면 '독재정권'에 알랑거리며 특정기업에게만 유리한 정책으로 부를 독점하거나, 부패한 정치판에 몰래 비자금을 넣어준 대가로 남몰래 부동산투자 따위를 하며 부를 선점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자식들에게 '고액의 사교육'을 하며 저들만의 '스카이캐슬'을 쌓아놓고 '고소득'직을 독차지하지는 않았던가? 그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쌓은 부를 '주가조작'과 같은 또다른 부정을 저지르며 내야할 세금을 내지 않고 산처럼 쌓아놓은 돈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느냔 말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불평등'을 해소해야만 할 것이다. 부자들도 떳떳하게 '세금'을 내고, 그러고도 남아도는 돈으로 정당하게 누리며 살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걷어들인 세금으로 정치권은 공정하고 공평하게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도록 '올바른 정치'를 이끌어가면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점들도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정작 어려운 문제는 '불평등한 사회'를 정당화 시키려는 불온한 세력이 뿌리 뽑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불평등한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고 의심스럽겠지만, 이미 그런 '거짓'이 상식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거짓'인줄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깜놀하게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거짓말은 바로 "게으른 자는 가난해진다"라는 말이다. 정말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해지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청년층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도 전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가난'하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해명한단 말인가? 분명 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가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데도 부를 쌓을 수 없는 사회에서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정말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저 말이 거짓이 아니려면 "부지런한 자는 부자가 된다"가 참말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상대적 박탈감'까지 받아가며 결코 만족할 만한 부를 쌓을 수 없는 '절망감'만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청년층이 '내집 마련'을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평등의 근원'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될 것이며, 그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문제는 정치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정치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언제나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해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유념해야 할 것은 언제나 '긍정하는 힘'이다. 비관적인 상황에서 낙담하고 암울해 할 수만은 없다. 어둠을 밝히는 것은 늘 '빛'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빛'이 밝게 빛나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는 바로 당신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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