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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평점 :
20세기만해도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었다. 우주에 대한 신비감도 가장 팽배했던 시기였고, '우주전쟁(스타워즈 계획)'까지 갈 뻔했던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은 극에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이후 갑자기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급 화해모드로 선회하였고, 소련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등 갈등이 완화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우주개발'도 덩달아 침체기를 겪게 되었는데, SF소설에 대한 관심도 이때가 가장 추락했던 것 같다. 오히려 <해리포터>시리즈와 <나니아연대기> 같은 '판타지소설'이 대박을 치고 열풍이 불었으니까 말이다. 이후 마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치기 전까지 SF장르는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대로 'SF소설'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될까?
사실 나도 그랬다. 사람들의 유행에 따라 10대 시절 '우주'를 사랑했다가 2, 30대에 '판타지'에 열광했고, 40대 초반엔 '마블 영화'에 미쳤다. 그리고 40대를 마감하는 지금에 와서야 다시 'SF 소설'을 손에 들게 되었다. 그 옛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허버트의 <듄>을 읽었고,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다시 읽었으며, 이제 겨우 미처 읽지 못했던 클라크의 'SF 소설'들을 읽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련다. 그것도 꽤나 흥미진진하다고 말이다. 이 책 <라마와의 랑데부>도 그렇다. 초반부엔 소행성 크기만한 정체불명의 '거대한 원기둥'이 태양계를 향해 오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인지라 지지부진하게 읽었지만 중반을 넘어, 드디어 등장을 한 '외계생명체(아님 인공지능로봇)'로 인해 숨가쁘게 읽어나갔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그 긴장감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클라크 소설의 특징인 듯한 '초반엔 지루한 설명'이 이어지다 '후반으로 넘어가면 절체절명의 극적인 묘사'가 정말 압권이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날 갑자기 태양을 향해 다가오는 '외계 천체'가 관측되었다. 행성연합위원회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혜성'이 아니라 지적인 외계인이 '설계'했음이 분명한 완벽한 기하학적 구조물이란 사실을 알고서 탐사대를 보낸다. 탐사대원들은 '인데버 호'를 타고 '라마(인도신화의 신 이름)'라고 이름붙인 거대한 원기둥에 착륙해서 '내부탐사'를 시작한다. 뚜껑(?)을 열고 라마의 내부로 들어간 탐사대원의 첫인상은 '끝없는 계단'뿐이었다. 걷고 또 걷는 것이 전부인 탐사였다. 하지만 탐사대가 서치라이트가 켜고 살펴본 라마의 내부는 광활한 '빈공간'이 전부였다. 생명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바이러스조차 검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부엔 '산소'가 가득했고, 우주복의 헬멧을 벗고도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과학적인 설명' 그리고 '또 설명'...혹시라도 이 부분이 지루한 독자라면 과감히 책장을 넘기길 권한다. 하지만 읽으두면 나중에 벌어질 기발한 사건의 연속들이 자연스레 이해가 될 것이다.
이처럼 클라크의 소설들은 지루할 정도로 '과학설명'이 뒤따른다. 왜냐면 클라크가 '소설가' 이전에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소설에서는 어김없이 '과학적 해설'이 나열되곤 한다. 물론 20세기 과학자의 해설인 까닭에 21세기를 사는 일반독자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과학적 오류'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에서 용이 갑툭튀한다고 놀라는 독자가 없을 것처럼 'SF 소설'이지만 '공상과학'을 마주하는 느낌으로 시대에 뒤처진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작품배경에 녹아들며 읽어나가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전설적인 SF소설들이 오래된 관계로 이 책 또한 1970년대 '과학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소설속 시대배경은 그보다 훨씬 미래인 2175년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작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SF소설'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과학적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오류 덕분에 책을 읽는 재미는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실현하지 못한 '태양광에너지의 효율'이 극대화 된 연출이 이 책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라마'라는 새로운 천체의 등장을 적대시하는 세력으로 '수성인(메르시안)'을 창작해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태양계에는 지구를 대신할 '우주식민지'가 개척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황폐해진 지구를 벗어나 '달'에 정착했고, 수성과 화성, 그리고 가니메데, 타이탄, 트리톤까지 태양계 곳곳에 정착가능 지역을 확대했던 것이다. 그밖에도 더욱 척박한 소행성에도 지구인은 진출했지만, '행성연합'을 이끌 정도로 힘을 발휘하는 정착인들은 앞서 열거한 6곳과 지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라마'의 출현을 반기지 않은 세력이 바로 '수성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왜 '라마'를 적대시했을까? 그건 바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의 이점을 '라마'가 빼앗아 갈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태양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태양광'에서 얻는 에너지를 다른 정착지로 쏘아보내면서 얻는 이익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수성인'들의 거의 유일한 수출품목(?)이었는데, 새로 출현한 '라마'가 수성보다 더 안쪽 궤도에 '안착(!)'했을 경우, 라마를 직접 관리할 '행성연합'이 수성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수성인'들은 다른 행성연합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무도 몰래 '핵미사일'을 라마를 향해 쏴버린 것이다. 그 라마에는 아직도 '탐사대원'들이 수십 명이나 머물면서 탐사중인데도 말이다. 오늘날의 과학수준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긴 하다. '태양광'을 수출할 정도로 에너지를 축적하고, 그걸 다시 '에너지형태'로 내뿜어서 '원하는 곳'으로 송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획기적일 뿐만 아니라 '실현가능'하다면 우리는 한밤중에도 '태양광'을 이용해서 어둠을 밝히고 기후위기를 불러올 '지구온난화'를 말끔히 해결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조우할 수 있는 '라마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더 이상의 스포는 하지 않으려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우리는 아직 '외계생명체'에 대한 흔적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는 '광활한 우주공간'에 비례해서 믿어 의심친 않지만, 그들이 '지구인'과 조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얼마간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급격한 '기후변화'와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지구인의 미래가 2100년 이후에도 존속가능할 것인지조차 불확실해진 것도 부정적 인식에 한몫 단단히 했다. 20세기만해도 '과학문명의 고도발달'이 모두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21세기에도 끊이지 않는 국제적인 갈등과 멈추지 않는 전쟁소식이 추락하다 못해 암울한 경제현실과 맞물려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미래를 더는 낙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구인들조차 '고도문명'에 다다르기 전에 멸망하고 말 운명인데, 전 우주를 통틀어 '지적인 생명체'가 맞이할 미래가 저 머나먼 우주너머는커녕 '태양계 밖으로' 나갈 수나 있을까 싶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라마인'이라니...
하지만 '진화적 관점'에서 봤을 때, '라마인의 생체적 특징'은 지켜볼만 했다. '입'이 없었던 것이다. 매끄럽고 탄탄한 금속성의 피부 밑에 '유기체'로 이루어진 '자체 전지'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에 존재하는 '전기뱀장어'나 '전기가오리' 같이 생체내에 전기발생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라마인들은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유기물과 무기물을 가리지 않고 '그들만의 바다'속으로 망가지고 불필요한 것들을 조각조각 잘라서 '재활용'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바닷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다시 생겨나는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만 전할 뿐이었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인류의 미래'도 라마인의 과학기술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찾고 얻어야 하는 '숙명'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하고 전쟁을 벌이는 야만적인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지구인'은 아무리 고도의 문명으로 발전시킨들 '폭력적인 성향'을 완전히 버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온순한 라마인의 문명을 배우지 못한다면 지구인은 '두 번째 지구'를 찾아내거나 만들지 못하면 결국 절멸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을 알아차렸다면 더이상의 '폭력'은 멈추고, 지구를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마땅할진대...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지구인들의 미래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제발 24년에는 모든 폭력이 멈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