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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 타인 지향적 삶과 이별하는 자기 돌봄의 인류학 수업 ㅣ 서가명강 시리즈 28
이현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은 '행복하다'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행하다면서 선진국 가운데 '자살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라는 낡아빠진 이념 사이의 갈등을 넘어 세대간, 젠더간 따위에도 '시기와 질투, 그리고 혐오'까지 온갖 나쁜 것들이 다 들어 있는 '판도라 상자' 같은 형국에 처하고 말았다. 제발 그 안에 담겨 있는 나쁜 것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상자를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추구했던 '멍청함'이 오픈해버리고 만 셈이다. 대한민국의 '판도라 상자'에도 희망이 남아 있기는 한걸까?
<서가명강> 시리즈 '인류학 편'인 이 책은 '한국인의 욕망'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본래 '인류학'은 역사적, 지역적으로 다양한 사회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다양한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에 관심을 둔 학문이기에 현재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탐구하기에도 딱 좋은 학문일 것이다. 그 가운데 '타인의 욕망'을 무작정 따라하는 '보편적인' 한국인들이 타인의 삶이 아닌 자기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펴낸 책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담긴 책이란 말이다.
우리 사회는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까놓고 말자하면, 심각할 정도로 '남'을 의식한다. 그냥 자신만의 개성으로 살아가도 충분한 것조차 '남들의 눈에 튀어 보이지 않는지'에 대해서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이 대부분이겠지만, 한국인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러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오죽하면 '엄친아/엄친딸'이라는 말이 나왔겠냔 말이다. 유독 '엄마 친구의 아들/딸'은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으며,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고, 젊은 나이에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차도 사고, 집도 사고, 해마다 해외여행을 하며,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를 밥 먹듯이 한다. 분명 어제도 말 했는데, 오늘 또 말하고, 내일도 엄마 친구의 아들, 딸은 그렇게나 잘났다고, '금쪽같은 내 새끼'를 기죽일 정도로 잘났다고 끔찍할 정도로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가 어쩜 그토록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삶을 자기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인지다. 공부를 잘해야 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성격이 좋다'는 평가는 다분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잣대인데도, 천편일률적으로 '엄마 말씀을 잘 따르는 자식'이 곧 '성격이 좋은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거기에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대기업 입사'한 뒤, '좋은 차' 사고, '좋은 집' 장만하고, '결혼'도 일찍하고, '아기(손주)'도 순풍순풍 낳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산다는 증거로 '해외'로 싸돌아다녀야만 훌륭한 삶, 다시 말해,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인지 '누가' 정했느냔 말이다. 어찌 하여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이처럼 '똑같은 삶'을 성공이라고 정해놓았는지 궁금하다. 하물며 위에 열거한 것 가운데 '하나'라도 빼먹으면 '실패한 삶'으로 낙인을 찍어버리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루저(낙오자)'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심지어 그런 자식을 둔 엄마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렇다면 '공부' 좀 못하고, '성격' 좀 나쁘고(?), '삼류대학' 나오고, '비정규직' 신세에, 좋은 집은커녕 월세 마련하기도 버겁고, 차 살 돈도 없어 '뚜벅이 신세'로 전락하면, 당근 '국내여행'도 변변히 가지 못할테니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실패자란 말인가? 설령 그런 삶을 실패라고 한다고 쳐도 '실패'로 낙담에 빠진 이에게 위로를 건내기는커녕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을까봐서 주눅이 든 삶을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러니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남이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거나 누리면 그뿐인 것이다. '차가 없는 삶'이라도 자기만족으로 살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으며, '집 없는 천사'처럼 자기 만족만을 추구하는 '소유욕'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자아실현을 통한 '나눔'과 '베품'으로 더 많고 더 큰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는 방식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누가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 '높은 담장'을 두르고 '내려다 보는 삶'을 살면 부러워서 미쳐버리는 못된 습성을 '성공'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해서 '그런 삶'을 살라고 부추기고 만다. 그래서 결국 '남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불행에 빠지고, '남의 삶'을 가지지 못해서 자기만족을 할 줄 모르는 멍충이가 되고 만다. 왜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하게 만드냔 말이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얼짱'이나 '몸짱'이라는 말을 칭찬으로 쓰곤 한다. 그것만으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얼짱'이나 '몸짱'이 되지 못하면 '자기관리'조차 하지 않은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하며, 못 생겼으면 '화장'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뚱뚱하면 '다이어트'나 '운동'이라도 죽어라해서 모두가 '얼짱'이 되어야 하고, '몸짱'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기에 이르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나마 요즘엔 '성형'이나 '화장'조차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다보니 조금쯤은 덜 강요하는 분위기가 되어 다행이지만, 그런 부족함을 더 채우기라도 하듯 '몸짱 열풍'이 불어재끼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먹방'도 함께 대유행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한편으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며 먹으면서 '몸매'는 식스팩에 개미허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저출생'의 문제로 위기에 빠지자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애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비난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홀로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와 '사생아'라고 낙인을 찍으며 '동반자살'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로 내모는 사회풍토가 여전한 것이 웃길 뿐이다. 대한민국이 '인구절벽'이라는 위기 탈출을 하는데 보탬이 된다며 칭찬(?)해도 괜찮은 상황 아니냔 말이다. 오히려 '미혼모'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클테니 '십시일반'을 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서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선이지 않느냔 말이다.
이런 사회문제들은 '타인의 시선'에 너무 목을 매다보니 벌어지는 촌극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타인지향적인 삶'을 뿌리 깊게 내린 결과,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어떻게 비춰지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정상적인 삶으로 못박아 버리고나니 가장 중요한 가치가 '경제력'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 사회는 그 어떤 가치보다 '경제'에 치중하고 말았고, '경제성장'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은 만병통치약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된 것이다. 그 탓에 '경제성장'으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가며 추진하지 못하고, 문제가 불거지면 그냥 덮어버리고 밀어붙이는 일이 자꾸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동안 미뤄왔던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며 좀처럼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는, 앞이 깜깜한 사태를 직면하고 만 셈이다.
물론 쉽게 해결될 수는 없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문제'만 보아도 양 진영으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듯 서로 양보와 배려, 대화와 타협조차 하려 들지 않는 것이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 "너희가 없어져야 대한민국이 잘 된다"는 막말과 욕설의 끝장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이런 대한민국이 갈등과 혐오를 봉합하고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나게 될 수 있을지 몹시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문제는 풀리기 마련이다. 풀리지 않는다면 '문제'라고 불릴 까닭도 없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사회문제의 거의 대부분은 너무나 빨리 경제성장을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쌓아두기만 한 탓이라면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사회문제가 심각해지면 해질수록 사회구성원들 스스로 반성과 성찰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진단은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시기와 질투, 그리고 혐오 문제'만큼은 결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건 우리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고 병들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병이 들었을 땐 '적절한 처방'이 꼭 필요하다. 처방만으로 부족하다면 '치료'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까진 치료단계가 아닌 '처방'만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거라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자기 행복을 위한 처방'을 꼭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기 욕망'을 키워나가고, 남들 기준의 성공적인 삶이 아닌 '자기 만족'을 성공기준으로 삼은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모두가 똑같은 개성, 똑같은 재능, 그리고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인데, 어찌 '똑같은 성공'을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기준'이라면 가능한 '기준'으로 바꿔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기준'도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야 마땅하다. 누구나 딱 한 번 사는 삶인데 '내 기준'대로 살아야 더욱 만족스런 삶이 되지 않겠느냔 말이다. 내 삶을 풍족하게 만족시키기 위해 '남의 삶'을 참고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남의 삶'을 아무런 비판도 없이 무작정 '따라하기'로 복붙해버리는 삶은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그러니 '타인의 욕망'을 욕망해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는 순간부터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