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4 : 화산섬의 호모 에렉투스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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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에 이어 이번에도 '호모 에렉투스'에 대한 내용이었다. 3권에 등장한 에렉투스는 추운지방에 살던 '북경원인'이다. 반면 4권에 등장하는 호모 에렉투스는 더운지방에 살던 '자바원인'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뇌용량은 북경원인이 1000cc이고, 자바원인은 900cc라고 한다. 반면에 신체적인 조건은 북경원인보다 자바원인의 키와 덩치가 더 컸다고 한다. 이런 차이점이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해석'이 필요하다. 명백이 드러난 두 가지 차이점을 두고서 '어떤 이유'로 둘 사이에 차이점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대면서 '과학적 가설'을 세우고, 그에 딱 맞는 증거들을 더 찾아내게 되면 '정설'로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정설이었다하더라도 연구를 거듭하게 되면 새로운 정설이 정립되는 법이다. 이렇게 학문은 끝없이 발전하게 된다. 그러니 공부는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추운지방에 '적응'한 북경원인은 체구는 작지만 눈 덮힌 산속에서도 체온을 덜 빼앗기도록 진화를 거듭했을 것이다. 더운지방에 적응한 자바원인은 찌는 듯한 더위에 열을 더 잘 발산할 수 있도록 체구를 키웠던 셈이다. 또한 이 둘은 주위 환경이 제공하는 '먹을거리'에도 차이가 있었기에 섭취하는 영양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테면,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기 힘든 얼음땅에서 생존한 '이누이트'들은 주식인 바다표범에서 우리몸이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그렇다면 북경원인과 자바원인도 주어진 자연환경에 훌륭히 적응하면서 제한된 먹거리를 통해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진화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인류의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인류는 '어떻게' 환경변화에 적응하게 될 것일까? 인류세라고도 불릴 정도로 엄청 빠른 변화를 보여주어 '기후위기'로 불릴 지경인 지구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가 살기 힘든 환경으로 바뀔 것이 분명해졌다. 이제는 '탄소중립'이나 '탄소제로' 같은 느슨한 대책으론 '기후위기'가 초래할 인류대멸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없다고 많은 과학자들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끔찍한 시나리오가 시작될 시기는 멀게는 2050년, 가깝게는 2035년을 점치고 있다. 불과 10여년 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증거들은 전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온난한 기후의 영향으로 북극의 빙하가 현저히 줄어들자 북극의 냉기를 가둬두던 '제트기류'가 느슨해졌고, 그로 인해 '북극한파'로 중위도지역까지 하강하는 바람에 북미대륙과 북유럽을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맹추위를 겪고 말았다. 이에 반해 남유럽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때아닌 홍수와 태풍으로 물난리를 겪고 있고, 해변가에 형성된 저지대 도시들이 엄청난 해일과 침수피해를 받아 재산피해가 극심하고, 인명피해까지 벌어지는 끔찍한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거기다 대규모 화산폭발과 지각변동으로 인한 지진피해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현상을 앞으로는 더욱 자주 겪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안전지대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이러한 극심한 환경변화에 얼마나 충실히 대비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하고 나서야 엄청난 자연재해의 위력을 실감하는 건 너무 무능할 뿐이다. 그렇다고 '위기대응'을 잘 한다고해서 극심한 환경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잘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응력'이다. 과연 현생인류는 인류의 먼 조상과 같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적어도 도시에 살고 있는 인류는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멸종 시나리오에서 많이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도시의 자연환경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콘크리트 건축물만 잔뜩 확장하는데 열중한다면, 그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도시, 근처에 도시사람들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숲과 자연환경 그대로인 생태계를 조성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도시 유지시스템이 망가진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품속에서' 근근히 버티며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물론 진화속의 '적응'이라는 것이 백만 년 단위의 긴 시일이 걸리는 일이고, 기후위기로 파괴되는 것이 도시뿐만 아니라 '자연환경, 그 자체'일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구의 모든 것을 바꿔놓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적응'해낼 인류가 남기를 희망할 뿐이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몇몇 부자와 권력자 들만 살아남는 최악의 시나리오 말고 말이다. 인류 진화는 건강한 신체와 밝고 맑은 정신의 소유자의 몫이어야만 할 것이다. 점점 이 책을 통해 발휘하는 상상력이 흥미로워진다. 아직 이야기의 흐름은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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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1 : 국내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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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엔 넉넉치 못한 형편이라 '무엇'을 소장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용돈이랄 것도 없던 시절이라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 매달 받던 차비를 아껴서 소설책을 사모으곤 했다. 그 첫 책이 바로 '김용의 <영웅문>'이었고, 대학시절 알바를 하면서 틈틈이 모았던 책이 바로 '이우혁의 <퇴마록>'이었다. 이 두 시리즈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책꽂이에 소중히 꽂혀 있다. 2만 권에 육박하는 책들 사이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말이다. 그 시절에는 닳도록 읽었던 터라 그 내용이 지금도 줄줄 외울 지경이지만, 이번에 출판사를 옮겨서 새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그 소식조차 벌써 10년이 흐른 지금이지만...암튼, 옛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읽으려 한다.

 

  <퇴마록> 국내편은 다른 편에 비해서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몰입도라고 할까? 세계관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 무엇이 살짝 빗겨나면서 마치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방문을 여는 듯한 느낌처럼 매우 어수선한 느낌의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박신부를 비롯한 '4명의 퇴마사'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캐릭터'가 무엇인지 소개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국내편이 두 권(애초에는 세 권)이나 배정되었는데도 한결(?) 같이 퇴마사들의 특징과 능력의 '소개'만하고 있는 느낌은 좀 너무 많다 싶을 정도다. 이후에 이어질 '세계편'이나 '혼세편', 그리고 '말세편'처럼 각각의 퇴마사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를 통해서 무럭무럭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국내편'도 진행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1권의 마지막에 소개된 <생명의 나무> 편은 국내편 가운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4명의 퇴마사들이 모두 등장해서 '흑마술'을 퇴치하고 사이비종교인 '브리트라(뱀)교(사악한 뱀을 숭상하며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악한 종교)'의 악행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아주 인상 깊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2권에서도 이어질텐데, 너무 짧게 이야기가 마치는 경향 때문에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어찌 보면 이런 아쉬움은 작가 이우혁이 '실험정신(?)'으로 국내편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세계편' 이후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편은 매번 '단편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어놓고서는 세계편부터는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하고서 매력적인 퇴마사들이 전세계의 악령들을 잠재우고 인간세상의 평온을 위해 죽을 위기를 숱하게 넘기는 화려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퇴마록>을 사랑하는 독자일수록 '국내편'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아직까지 '한류열풍'이 전세계를 강타할 것이라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80~90년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한국의 퇴마록'이 장엄하게 펼쳐지지 못했다고 투덜대는 것도 남우세스러울 따름일 것이다. 그 시절을 살아본 세대는 <국내편>만으로도 충분히 <퇴마록>의 매력에 흠뻑 젖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아직 '판타지 소설'이 유행하지도 않던 국내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온세상의 악령과 마신 들과 맞서 싸우며 인간세상을 어지럽히려는 사악한 세력에 맞서 당당히 싸우는 퇴마사들의 모험담,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매혹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살았던 이들이 조잡한(?) 귀신들의 등장만으로 '납량(한 여름의 더위를 피함)'하였으니 '국내편'에 등장하는 퇴마사들의 귀곡성에 얼마나 열광했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곧이어 펼쳐진 '세계편'부터 '말세편'까지 우리들에게 '납량의 품격'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세대들은 '납량특집'이라는 개념조차 없어진 것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공포소설의 차원'을 달라지게 만든 주인공이라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겨우 1권을 읽었을 뿐이다. 빠르게 '국내편'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퇴마록이 펼쳐진 '세계편'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연일 강추위로 영하의 날씨를 겪고 있지만 '서늘한 기운'이 충만한 <퇴마록>이란 '납량특집'속으로 빠져들 예정이다. 다음 편에선 우리나라의 신앙인 '무가', '도가', '불가'를 관통하는 '밀교'와 엑소시즘을 행하는 '가톨릭의 퇴마록'에 대해 나불거려볼 예정이다. 한때는 신비적인 '오컬트의 세계'에 푹 빠져지냈던 터라 아는 것은 많은 편인데...술술 풀어낼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힘 닿는데까지 열심히 써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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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3 : 달려라, 호모 에렉투스!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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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에서는 '호모 에렉투스'를 다루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우리말로 '곧선 사람'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직립 보행'을 아주 잘 했다는 말이다. 물론 최초의 직립 보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했지만, 아직 '호모(사람)속'이 아니라 '피테쿠스(원숭이)속'이기에 두 발로 걷긴 하지만 나무를 타는 동작이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진정한 '직립 보행'은 호모 에렉투스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렉투스의 척추뼈가 아주 반듯하게 곧선 형태를 띠고 있어서 나무를 타고 네 발로 기는 동작보다 '걷는 동작'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파렌시스(아프리카의~)'라는 명칭도 빼버렸다. 이는 초기 인류종들이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발굴된 것과 다르게 호모 에렉투스는 전세계 여기저기에서 발견된 덕분이다. 그 가운데 우리와도 가까운 중국 동북쪽 지역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흔적이 대거 발굴된 덕분에 '인류의 기원'이 한때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아니라 독자적 기원설이 주장되기도 했었다. 지금도 중국은 이런 '독자 기원설'을 고집하고 있지만, 현재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인류진화의 정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왜냐면 '독자적'으로 진화했다기에는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적 정보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퍼져나가다가 남쪽 바다를 건너 동남아시아와 호주까지, 그리고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까지 널리 퍼져나간 것으로 본다. 물론 그 시작은 단연 '호모 에렉투스'다. 아직까지 에렉투스가 바다를 건넌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사피엔스가 전세계에 분포한 것을 보았을 때, 에렉투스도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아직까지 그 '증거'가 발굴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암튼, 호모 에렉투스는 여러 모로 '적응의 천재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살던 150만 년전의 지구는 '세 번째 빙하기(6500만년전~1만년전)'가 막바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도 별로 없었고, 결정적으로 '스스로' 불을 피우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이 되었다. 허나 불이 꺼지면 다시 자연적으로 불이 발생할 때까지 생식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이들의 도구는 여전히 '석기'였으며, 아직 슴베찌르기 같은 고성능이 도구를 다룰 줄 몰랐기에 사냥을 나갈 때에도 '주먹도끼(뗀석기)'가 전부였다. 운좋게 '흑요석'이 많은 지역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는 좀더 정교하고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사냥은 무작정 쫓아가는 방법이 전부였다. 도망치던 사냥감이 제풀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뒤쫓다가 사냥감이 지치거나 방심한 순간에 떼거리로 덮쳐서 사냥하는 방식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 장면이 이 책에서는 너무도 생생하게 나타나 있어서 어린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의 결정적 특징은 바로 '언어소통'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뇌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약 두 배 정도 커졌고, 에렉투스의 폐와 후두부의 기능을 조사한 결과 매우 다양한 소리를 내기에 적합한 구조인 것이 밝혀졌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보다 정교한 발음을 구사할 수는 없을테지만, 그럼에도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언어생활'을 하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었던 것일까? 유발 하라리도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네안데르탈보다 훨씬 불리한 신체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로 '후두부의 위치'를 손꼽고 있다. 다시 말해, 사피엔스는 발음하기에 적합한 후두부 구조를 갖고 있었는데 반해, 네안데르탈은 목구멍과 후두부 사이의 공간이 넓어서 '정교한 발음구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하였다. 이렇게 '의사소통' 수단으로 언어가 제 기능을 하는 것의 차이로 인해서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언어구사의 유무'라든지, '언어생활의 정교함' 따위가 척박한 환경에서 적응하고, 더 많은 정보를 교환하면서 더욱더 많은 무리가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처럼 '학문의 즐거움'은 단편적인 증거자료를 가지고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데서 찾을 수 있다. 비단 '과학'이나 '역사'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문이 바로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삼아 발전시켜왔다. 이렇게 창조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놓은 지식은 '해석'이라는 정교한 작업을 거쳐서 '새롭고 또 다른 지식'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발전시켜온 학문의 근원이다. 그런데도 공부를 한답시고 '지식' 따위를 달달 외우기만 한다면 이런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생각을 넓힐 수 있는 '해석'을 맘대로 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단 말이다. 틀린 해석이라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옳은 해석이 될 때까지 '타당한 근거'를 찾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억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궤변을 늘어놓으란 얘기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학자)들을 설득시켜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여겨질 때까지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가 학문을 하는 이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외계인의 관점'에서 살펴본 인류의 진화이야기의 특장점이 크게 발휘되지 않은 것 같다. 뭐랄까?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낮다고 해야 할까? 아우린이라는 '세계관'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나 할까? 책의 줄거리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다음 편에서는 그런 매력이 발견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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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2 : 루시를 만나다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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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승이 <인간 탐구 보고서>에 이어 '아우린들의 이야기'를 또 하나 내놓았다. 이름하야 <인류 탐험 보고서>다. 인간이나 인류나 거기서 거기인 듯 싶지만, 저자의 변~에 귀기울여보면 '인간 탐구'는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책이고, '인류 탐험'은 어린이를 위한 생물인류학책이라고 소개하였다. 어찌 보면 <인간 탐구 보고서>는 과학분야에 집중한 책이고, <인류 탐험 보고서>는 과학분야에 '역사'라는 인문학분야까지 덧붙인 포괄적인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쨌든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전작'에서 다 보여주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모양이니 <인간 탐구 보고서>를 재밌게 즐기고 있는 독자라면 참고 삼아 읽어봐도 좋을 책임에 분명하다.

 

  '현생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다. 인류도 다른 생물종처럼 '다양한 인류종'을 갖고 있었으나 모두 멸종하였고, 현재는 유일한 인류종인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다른 친척(?)들을 모두 살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만 유추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시일이 걸렸다는 점이 의문스럽다. 또한 그 넓은 지역에서 살던 '호모 사피엔스'들이 동시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동족살해를 저질렀다는 것도 의문이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고학적인 연구'는 계속 진행중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하고 말이다. 왜냐면 인류종이 남긴 유적과 유물이 너무나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나마 발견된 것들도 너무나 단편적인 까닭에 돌멩이 하나로, 뼛조각 하나로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롭게 창조되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인류 탐험 보고서>의 말미에는 어린이독자들에게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곤 한다. 물론 어느 학문이나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지만 고고학이나 인류학이라는 분야가 좀더 그런 학문이긴 하다.

 

  2권에서는 아우린들이 시간탐험을 떠나 지구의 신생대 즈음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시기에 '최초의 인류라고 널리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랄로'는 남쪽의~라는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파렌시스'는 아프리카의~라는 뜻인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비롯해서 수많은 초기 인류종들이 대부분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남쪽 원숭이'라는 뜻이다. 아직 '호모(사람)'라는 이름을 달지 못한 까닭은 사람보다는 원숭이 유골과 더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흔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최초의 인류'로 알려진 까닭은 다름 아닌 '직립 보행'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초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걸었기에 그런 수식어가 붙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현생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인 걸까? 그건 아니다. 호모(사람)종도 아닌 피테쿠스(원숭이)종인데 그럴 리가 없다. 이런 오해를 하는 까닭은 '인류의 진화도'라면서 왼쪽에 원숭이를 그려놓고 점점 오른쪽으로 갈수록 현생인류를 닮아가는 '연속적인 도식'으로 진화의 계통을 설명했기에 종종 틀리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무리 진화를 한다고 해도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호모 하빌리스(도구를 잘 쓴 사람)', '호모 에렉투스(곧서서 잘 걸은 사람)', '호모 네안데르탈'도 아무리 오랜 시일이 지나도록 진화를 할지언정 결코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로 진화할 수 없다. 가능성이 1도 없으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이런 오해를 멈추기 위해서라도 '진화'에 대한 상식을 간단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포유류의 조상'이 물고기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증거는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와 물고기 알속의 배아 직후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밖에도 여러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며 포유류의 조상이 어류이고, 어류에서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순서로 진화의 계통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진화는 어류에서 양서류로 뿅~하고 '순식간'에 변하지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할 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적응과 도태'를 이해해야만 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은 지구라는 자연환경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모든 생물은 자연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모든 생물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 적절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환경은 변하곤 한다. 지구적인 재앙으로 인해 '생물서식지의 환경'이 서서히 또는 급격하게 바뀌곤 하는데, 그 때문에 수많은 생물종들이 '대멸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척박한 환경과 바뀐 환경에서도 곧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생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이때 '진화의 매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변화'한 것이 아니라 원래 살던 생물종 가운데 '돌연변이'를 일으켜 살짝 달라진 종들이 있는데, 그렇게 달라진 채로 '함께' 살아가던 하나의 종이 분화하여 두 개 이상의 종으로 살아가다 바뀐 환경에 '적응'한 종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한 종은 '도태'하여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멸종하지는 않고 소수가 살아남을 수도 있는데, 그런 소수가 또 다시 바뀐 환경으로 인해 살기에 적당해지면 다시 번성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응과 도태', 다시 말해 '진화의 핵심'이다. 그래서 바닷속에 살던 어류종 가운데 일부가 바다위로 솟구쳐오른 대륙에 갇혀서 '얕은 바다'에 머물다 물속과 물위를 오가며 살아가는 양서류라는 생물종으로 환경적응에 성공한 것이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육지에서 더 많이 서식할 수 있는 '파충류'로 진화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일부가 '공룡종'으로 번성을 이루다, 현재의 '조류'로 살아남게 되었고, 공룡이 멸종될 시기에 최초의 포유류가 등장하면서 대멸종시기의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새끼를 뱃속에 품으며 '생존'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포유류가 지금까지 번성하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영장류'로 불리는 유인원 계통이 다양한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현생인류'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진화'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지극히 정상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아무튼 이 책 <인류 탐험 보고서>는 현생 인류의 조상인 '쿠(1권에서 말썽을 부렸던 현생 인류의 조상)'를 찾아 떠난 아우린들의 엉망진창 왁자지껄 대모험이 펼쳐지게 된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앞선 시리즈인 <인간 탐구 보고서>와 같이 '외계인의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것을 알아보겠다는 점은 일맥상통한 점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살펴볼 수 없는 존재이니만큼 '거울'과 같은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 셈이다. 그런 도구마저 마땅히 없다면 '제3의 사람'이 등장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줘야 하는데, 이 책은 바로 '제3의 사람'으로 외계인을 선별했다는 점에서 특색있다 하겠다. 아직까지 외계인의 존재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그렇다'고 가정한 뒤에 펼쳐보이는 공상과학적 상상력은 지루함을 싹 날려버리고 재미만을 챙기는 장점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시리즈가 기대가 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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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다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독서논술지도 20년 경력이라면 믿어주실만도 하리라 믿고 말씀드리는 거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학부모와 학생 들은 '숫자'에 민감한 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되묻는다. 초등학생은 몇 권 정도 책을 읽으면 좋겠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난 자신있게 대답해준다. [초등 1000권 / 중등 500권 / 고등 500권]해서 모두 2000권의 책을 독파하면 서울대 갑니다요~ 라고 말이다.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근거는 다름 아니라 '배경지식'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탁 까놓고 말해서 '요리사'가 꿈인 학생이 <요리책> 2000권을 읽었다면, 요리박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게 '배경지식'을 빵빵하게 탑재하고서 본격적으로 '요리공부'를 시작하면, 세계적인 요리사는 못 되더라도 박학다식한 '요리' 컬럼리스트가 되어 전세계 맛집투어를 다니며 <요리책>을 직접 저술하며 먹고 사는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런가?

 

  단순 계산을 해서, 초등6년, 중고등 6년, 12년 동안 2000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다. 1년은 12달이니까 12 X 12=144달이다. 2000권을 144로 나누면 약 14권(13.88)이 나온다. 한 달에 14권 정도 읽으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다시 4주로 나누면 14 ÷ 4=3.5권으로 일주일에 3~4권 정도를 독파하는 독서습관을 기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초등시절에는 '그림책(약 32~36쪽 분량)'과 '동화책(약 150~200쪽 분량)'이니 일주일에 5권 이상 읽는 습관 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중고등시절이다. 워낙 학습분량이 넘쳐나는 시절이다보니 책읽는 시간이 절대 부족한 탓이다. 그럼에도 초등시절부터 꾸준히 독서를 해온 학생이라면 중고등시절에도 시험공부, 수행평가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독서를 해나갈 수 있다. 중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청소년책들이 대략 250~300쪽에 육박하고, 그 분량을 훌쩍 넘는 일명 '벽돌책'도 있긴 하지만, 역시나 '독서습관'이 충족된 학생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질문을 던지는 학부모나 학생 들이 대부분 초등 고학년(5~6학년)이거나 중학생이라서 '학창시절의 절반'을 넘겨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이 문제다. 그럴 때도 나는 어김없이 '2000권의 분량'을 제시한다. 아직 절반의 시기가 남았으니 '주당 7권'의 독서습관을 기르라고 말이다. 그렇게 1년의 시절을 넘기면 그 뒤부턴 순풍에 돛단듯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배경지식도 풍부해져서 '모르는 지식'이 없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곤 한다. 1년은 52주이니 일주일에 7권씩 1년을 꾸준히 읽으면 364권을 읽게 되고, 그렇게 5년만 더 읽으면 1820권을 읽으니 얼추 2000권이 되는 숫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다독'은 수많은 독서습관 가운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숫자'에 민감하고, '숫자'로 각인해야 이해가 빠른 분들에게 살짝 귀띔해주는 바다. 12년 동안 2000권의 책을 읽게 하라고 말이다. 그럼 서울대 정도는 가뿐하게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나 많은 '배경지식'을 쌓았는데도 서울대 정도도 못 들어간다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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