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3 : 달려라, 호모 에렉투스!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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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에서는 '호모 에렉투스'를 다루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우리말로 '곧선 사람'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직립 보행'을 아주 잘 했다는 말이다. 물론 최초의 직립 보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했지만, 아직 '호모(사람)속'이 아니라 '피테쿠스(원숭이)속'이기에 두 발로 걷긴 하지만 나무를 타는 동작이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진정한 '직립 보행'은 호모 에렉투스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렉투스의 척추뼈가 아주 반듯하게 곧선 형태를 띠고 있어서 나무를 타고 네 발로 기는 동작보다 '걷는 동작'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파렌시스(아프리카의~)'라는 명칭도 빼버렸다. 이는 초기 인류종들이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발굴된 것과 다르게 호모 에렉투스는 전세계 여기저기에서 발견된 덕분이다. 그 가운데 우리와도 가까운 중국 동북쪽 지역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흔적이 대거 발굴된 덕분에 '인류의 기원'이 한때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아니라 독자적 기원설이 주장되기도 했었다. 지금도 중국은 이런 '독자 기원설'을 고집하고 있지만, 현재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인류진화의 정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왜냐면 '독자적'으로 진화했다기에는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적 정보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퍼져나가다가 남쪽 바다를 건너 동남아시아와 호주까지, 그리고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까지 널리 퍼져나간 것으로 본다. 물론 그 시작은 단연 '호모 에렉투스'다. 아직까지 에렉투스가 바다를 건넌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사피엔스가 전세계에 분포한 것을 보았을 때, 에렉투스도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아직까지 그 '증거'가 발굴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암튼, 호모 에렉투스는 여러 모로 '적응의 천재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살던 150만 년전의 지구는 '세 번째 빙하기(6500만년전~1만년전)'가 막바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도 별로 없었고, 결정적으로 '스스로' 불을 피우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이 되었다. 허나 불이 꺼지면 다시 자연적으로 불이 발생할 때까지 생식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이들의 도구는 여전히 '석기'였으며, 아직 슴베찌르기 같은 고성능이 도구를 다룰 줄 몰랐기에 사냥을 나갈 때에도 '주먹도끼(뗀석기)'가 전부였다. 운좋게 '흑요석'이 많은 지역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는 좀더 정교하고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사냥은 무작정 쫓아가는 방법이 전부였다. 도망치던 사냥감이 제풀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뒤쫓다가 사냥감이 지치거나 방심한 순간에 떼거리로 덮쳐서 사냥하는 방식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 장면이 이 책에서는 너무도 생생하게 나타나 있어서 어린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의 결정적 특징은 바로 '언어소통'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뇌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약 두 배 정도 커졌고, 에렉투스의 폐와 후두부의 기능을 조사한 결과 매우 다양한 소리를 내기에 적합한 구조인 것이 밝혀졌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보다 정교한 발음을 구사할 수는 없을테지만, 그럼에도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언어생활'을 하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었던 것일까? 유발 하라리도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네안데르탈보다 훨씬 불리한 신체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로 '후두부의 위치'를 손꼽고 있다. 다시 말해, 사피엔스는 발음하기에 적합한 후두부 구조를 갖고 있었는데 반해, 네안데르탈은 목구멍과 후두부 사이의 공간이 넓어서 '정교한 발음구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하였다. 이렇게 '의사소통' 수단으로 언어가 제 기능을 하는 것의 차이로 인해서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언어구사의 유무'라든지, '언어생활의 정교함' 따위가 척박한 환경에서 적응하고, 더 많은 정보를 교환하면서 더욱더 많은 무리가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처럼 '학문의 즐거움'은 단편적인 증거자료를 가지고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데서 찾을 수 있다. 비단 '과학'이나 '역사'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문이 바로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삼아 발전시켜왔다. 이렇게 창조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놓은 지식은 '해석'이라는 정교한 작업을 거쳐서 '새롭고 또 다른 지식'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발전시켜온 학문의 근원이다. 그런데도 공부를 한답시고 '지식' 따위를 달달 외우기만 한다면 이런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생각을 넓힐 수 있는 '해석'을 맘대로 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단 말이다. 틀린 해석이라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옳은 해석이 될 때까지 '타당한 근거'를 찾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억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궤변을 늘어놓으란 얘기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학자)들을 설득시켜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여겨질 때까지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가 학문을 하는 이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외계인의 관점'에서 살펴본 인류의 진화이야기의 특장점이 크게 발휘되지 않은 것 같다. 뭐랄까?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낮다고 해야 할까? 아우린이라는 '세계관'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나 할까? 책의 줄거리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다음 편에서는 그런 매력이 발견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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