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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장 지글러 / 유영미 / 갈라파고스 (2016) [원제 : La Faim Dans le Monde Expliquee a Mon Fils (1999년)]
[My Review MMXXXII / 갈라파고스 6번째 리뷰] 이 책의 물음은 간단하다. 지구에 사는 인구가 120억이 넘는다고 해도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을 정도'로 넉넉하게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데, 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어린이들이 굶주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5초에 1명 꼴로 죽어가야만 한단 말인가? 글쓴이는 이런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한다. 첫째, '부자들의 욕심'이 너무 과한 탓이고, 둘째, '선진국들의 경제구조적 문제' 때문에 넉넉한 식량을 제대로 나눠주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말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가난한 나라들의 불안정한 정치구조적 문제'를 꼽았고, 마지막으로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그리고 '전쟁(내전 포함)'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고,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가 버젓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래서 '기아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것, 이게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일상에서 '가난'에 대해서 잘 배우지 않는다. 9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크게 선회한 뒤부터는 더욱 그러한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기아'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는 선생님도 없으며, 교육현장에 몸 담고 있는 선생님들조차 '기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한민국에서는 '광고'에서나마 아프리카 빈민국들의 실상을 보여주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후원을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구나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는데, "한국에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배불리 먹일 생각할 바에야 한국의 빈민들부터 먹여 살려라"라는 목소리가 드높은 실정이다. 불과 70여 년 전에 '외국의 원조'가 없으면 굶주리던 한국 국민들이 하는 소리라고 본다면, 정말 끔찍한 태세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겨낸 가난이고, 굶주림인데 말야. 너희들도 그런 고통에서 면하려면 '근면 성실'하게 일을 해서 정당하게 대가를 받을 생각을 해야지 '구걸'부터 할 요량이면 너희들은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악담(?)을 서슴지 않고 말하기도 한다.
딴에는 틀린 말도 아니지만 실상을 알면 감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아프리카나 아시아 곳곳의 나라들이 '빈국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자국민들을 '기아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까닭은 다름 아닌 '식민정책의 후유증' 때문에 경제성장의 발목이 붙잡혔고, '후진적인 정치관료의 부패'로 인해서 식량원조 받은 것조차 제대로 된 분배 되지 않으며, 심각한 경우에는 해묵은 '정치적 갈등', '경제 이권'을 두고 벌이는 내전으로 인해서 세계적인 구호활동조차 보호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는 '근면 성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다. 실제로 빈국들의 농부들은 정말 열심히 농사를 짓고 생산물을 풍족하게 수확하기도 하지만 '굶주림'을 개선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왜냐면 그들이 생산하는 것은 '자신들이 먹을 것'이 아닌 '외국에 수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들의 정부는 이렇게 수출하고 받은 돈으로 '자국민'들을 먹일 식량을 수입해 오는 방식을 쓰는데, 이게 꽤나 비효율적이기도 하며, 동시에 정부관료의 부패로 인해서 제대로 분배조차 되지 않아 근면 성실한 국민들을 굶주리게 만든다고 한다.
그나마 이렇게 굶주리는 나라는 양반 축에 든다. 내전이라도 벌어지는 나라는 농부들이 일상을 평안하게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터전에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의 전투라도 벌어지면 삽시간에 일가족 모두가 사살되기도 하고,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약탈이 벌어지며, 어느 한 쪽을 돕기라도 하면 반대측에서 끔찍한 보복을 저질러서 일상 생활조차 편하게 할 수 없을 지경에 빠지고 만다.
이런 모든 비극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농부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다. 빈국들의 농사법은 선진국에 비해 '생산량'이 극도로 떨어진다. 비싼 농기계를 쓰지 못할 뿐더러 소와 같은 동물의 힘을 이용하지도 못하고 온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한다. 그나마 '비료'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어서 오직 '비옥한 땅의 힘'에만 의지할 뿐이고, 그마저도 '날씨(적당한 강수량)'가 돕지 않아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한 해 농사는 망쳐버리고 만다. 그러면 또다시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려야만 한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의 식량원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굶주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낭만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선진국 정부가 이런 일련의 '기아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돕겠다고 나서면 '다국적 기업'은 자신들의 경제적 손해를 들어서 이런 정책들을 맹렬하게 반대하고 저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도 이런 반대여론에 부딪혀 '인도주의 정책'을 밀어붙이지 못하고 슬그머니 기업의 편을 들어 슬그머니 지원 정책을 내려놓고 만다. 그럼 UN 같은 곳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하지만, 정작 문제는 '재정적 어려움'을 내세워 이마저도 제대로 원조하지 못하고, 설령 식량원조를 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딱 맞는 지원 정책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색(?)내는 용도로 천편일률적인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정작 굶주리고 있는 이들에게 제대로 지원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를 테면, 북한의 기아 주민들을 위해 쌀 100만 톤을 지원한다고 해도 이를 정확하고 골고루 분배할 수 있는 인력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북한 주민'이 아닌 '북한 군부대'와 '군간부'가 중간에서 착복을 해도 나몰라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강력한 제재'를 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일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제재도 가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고 만다. 왜냐면 지원 받는 나라에서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거부하면 딱히 제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방법이 없단 말인가? 이래서 문제, 저래도 문제라면 도대체 '기아 문제'에 대한 해결법은 없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딱히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왜냐면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세계 사람들의 '공감'과 더불어서 '연대'가 꼭 필요하고, 그리고 이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전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기아 문제'에 대한 실태는커녕 그런 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 해결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가난'은 게으른 사람들의 필연이고, 이들을 돕는 일은 '게으름'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으름'을 조장하는 일이라면서,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철저한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서 죽어버려도 괜찮은 사람들로 치부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인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를 '구조적 문제'라고 하는데, 아무리 성실하게 일을 해도 부를 쌓을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가난한 이들이 늘어나는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오늘날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완전자유시장'을 추구하기보다는 '강력한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부의 재분배'가 실현되어야 하고, '복지정책'을 늘려서 먹고 사는 문제만이라도 해결해주어야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세금'을 늘리고(부의 재분배), '복지 정책'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부자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반발이 심해진다는 점이다. 이들의 불만은 '경제불황'을 불러왔고, 사회 전반에 경제 침체를 불러와서 모든 사람들이 살기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입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다시금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불거지게 만드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부자들도 만족하고, 빈자들도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방안이다. 왜냐면 부자들이 빈자들을 위해서 기꺼이 주머니를 열고서 자발적인 '부의 재분배'를 이루어야 하며, 동시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고 유지하기 위해서 적절한 '세금'을 납부하고, 넉넉한 '복지 정책'으로 온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하기나 할까? 그럼에도 글쓴이인 장 지글러는 '낭만적인 해결법'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우리가 '기아의 고통'을 제대로 알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면 적어도 '배가 고파서 죽는 어린이'가 발생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당신은 전세계적으로 5초에 1명 꼴로 어린이들이 굶어서 고통 받다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셈인가 라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답할 사람이 아직 많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지)'을 모으면 문제 해결은 오히려 쉬울 수 있다고 당부를 하기도 한다. 다분히 '측은지심'에 호소하는 소극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오히려 실현가능한 방법 같지 않은가? 몰랐다면 돕지 않겠지만 알고 나면 돕지 않을 수 없다면서 말이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