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까지 걷고 싶다면 스쿼트를 하라
고바야시 히로유키 지음, 홍성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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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까지 걷고 싶다면 스쿼트를 하라 : 평생 건강하게 걷기 위한 하루 5분 실천 프로그램>  고바야시 히로유키 / 홍성민 / 동양북스 (2025) [개정판: 초판 2018년]

[My Review MMXXXVIII / 동양북스 3번째 리뷰] 책 제목이 '스쿼트'라서 운동이나 자세 교정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라 짐작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물론 '스쿼트 운동법'이 있긴 하다. 올바른 자세를 가르쳐주는 꼴랑 3쪽 분량의 '그림'이 전부다. 나머지는 왜 스쿼트 운동이 필요한지 강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자율신경계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물론 이 모든 내용을 꿰뚫는 한 가지는 '스쿼트'가 맞다. 다시 말해, 올바른 자세로 스쿼트 운동을 꾸준히 하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단 말이다.

사실, 스쿼트 운동법은 간단하다. 제자리에서 쪼그려 앉았다가 다시 서는 동작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간단한 운동을 꾸준히 하면 놀라울 정도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는 운동은 20~30대 젊은 계층은 잘 느끼기 힘들다. 왜냐면 이들은 이미 건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젊어서부터 건강한 운동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40대 이후에도 평균 이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50대 이후의 노년층에 들어서도 잔병치레 하나 없는 '건강한 삶'을 죽을 때까지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40대 이후에 급격히 건강이 무너진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건강을 해치는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몸이 건강하지 못하니 '하고 싶은 운동'이 있어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가 더는 쾌유하지 못하는 '병든 몸'이 되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될 뿐이다. 그것도 지독한 고통을 겪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비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서도 손쉽게 쾌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두 말 않고 당장 시작할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을 알려 드려야 할 것이다. 바로 아침 저녁으로 '스쿼트 운동'을 하면 된단다. 단순하게 쪼그려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는 동작을 부담 없이 반복적으로 하기만 한다면 웬만한 질병을 다 물리칠 수 있는 '면역력'을 얻게 될 것이고, '혈액순환'을 좋게 만들어서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자율신경'을 균형 있게 만들어주어서 몸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까지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속는 셈'치고 스쿼트 운동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속이는 것이 아니란다. 실제로 '의사'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이 맡은 환자를 대상으로 '스쿼트 운동'을 권하니 아주 좋은 경과를 보여주는 사례가 꽤나 많았으며, 심지어 활력을 잃고 골골대던 자기 자신조차 '스쿼트 운동'을 시작하면서 일주일만에 의미 있는 신체변화를 경험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정도면 그냥 속아주는 것이 좋다. 돈 한 푼 들지 않고,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도 않고, 딱 세 뼘 정도의 공간만 있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니 아무런 부담 없이 해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쿼트 운동'은 특별히 어려운 자세도 아니다. 먼저 '고관절'을 풀어주는 간단한 동작으로 시작해서,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등'을 반듯하게 펴줘서 올바른 스쿼트 자세를 만들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허벅지'를 조지기 시작하면 된다. 무릎은 90도가 될 때까지 굽히고, 등은 최대한 곧게 펴준다. 그 자세를 유지하면서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20회씩 3세트 정도 아침 저녁으로 꾸준히 해주면 끝이다. 중요한 것은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다는 느낌이 팍팍 들게 하는 것이다. 이때 앉는 동작에 숨을 내쉬고, 일어서는 동작에 숨을 들이마신다. 동작이 자연스럽고 부담이 덜 되면 차츰차츰 '운동 횟수'를 늘려주면 좋다.

스쿼트 운동은 절대로 '고강도 운동'으로 해선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효과가 반감이 된단다. 오히려 '저강도 운동'을 하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다. 특히 50대 이상의 노년은 '고강도 운동'보다 꾸준히 매일매일 하는 것이 더 좋단다. 그 까닭은 젊었을 때에는 고강도 운동을 하더라도 금방 회복이 되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노년의 나이거나 질병으로 몸이 아픈 상태에서 갑자기 '고강도 운동'을 시작하면 오히려 운동 효과를 긍정적으로 보기도 전에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더구나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강도 운동을 피해야 한다고 한다. 너무 탬포가 빠르거나 숨을 헐떡일 정도의 숨가뿐 운동을 하게 되면 우리 몸속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부조화가 뚜렷해지면서 '운동 효과'를 원하는만큼 끌어올릴 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무리하게 하지 말고 처음 시작할 때는 '5회 정도' 가볍게 했다가 조금 수월해지면 조금씩 횟수를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꾸준히 하면 아주 좋은 효과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슬슬 50대가 넘어가니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결리고 아파 죽겠다. 특히 '허리통증'이 심했을 때에는 누워있는 자세조차 고통스러워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정도였다. 그렇게 반년 이상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밥을 먹을 때도 앉은 자세가 힘들어서 서서 밥을 먹을 정도였다. 그때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이 바로 '허벅지 근육'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늘 바지를 입으면 허벅지가 낑겼는데, 그 당시에는 허벅지가 날씬해져서 '슬림핏'이 살아날 정도였다. 하지만 멋스러워진 것과는 반비례로 내 건강은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당뇨 증세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지금이야 15킬로 이상 감량에 성공해서 당뇨약도 끊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할 정도였다. 그래서 '스쿼트 운동'에 관심이 높아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계단 오르기 운동'도 매일매일 꾸준히 해온 덕분에 체중 감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암튼, 저자는 '스쿼트 운동'으로 정말 많은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지금은 7층 이상의 계단을 올라도 전혀 숨이 차지 않는다고 한다. 스쿼트 운동을 하기 전에는 '건널목'을 건널 때조차 비틀비틀 거릴 정도로 허약한 상태였고, 1층의 계단만 올라도 심장이 쿵쾅쿵쾅 거릴 정도로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올해 65세로 '스포츠닥터' 활동을 해온 사람의 경험담이 수록되어 있어서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다. 나도 꾸준히 '스쿼트 운동'을 시작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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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지음, 이영미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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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 이영미 / 애니북스 (2015) [원제 : 言えないコトバ]

[My Review MMXXXVII / 애니북스 6번째 리뷰] 에세이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마스다 미리' 덕분에 줄기차게 읽게 생겼다. 애초에 그녀의 '만화(단행본)'를 읽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왕 읽기 시작한 것이니 끝장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수필리뷰] 시리즈도 새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어디 한 번 줄기차게 읽고 써보련다.

그렇다고 해서 '마스다 미리'의 수필책을 좋아해서 읽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쉽게도 내가 마스다 미리 책들에 내어준 '별점'은 별다섯부터 별둘까지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공감'할 수 있는 책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별셋'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별둘'이다. 왜냐면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일본인도) 하기 힘든 (일본)말'을 굳이 뒤쳐내어(번역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한 것인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굳이 소개해봐야 '한국 독자들'이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일본에서는 '백화점'을 '데빠토(デパート)'라고 부른다. 영어의 'department'를 줄여서 부르는 명칭인데, 마스다 미리는 옛날 사람(?)이라서 '백화점'이라 부르는 것이 익숙한데, 젊은 사람들은 '데빠토'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이 '백화점'이라고 한국식으로 발음할 리가 없다. 백화점(ひゃっかてん)의 일본식 발음은 '햣카뎅'으로 할 것이다. 정리하면 일본에서는 80년대에는 '햣카뎅'이라고 주로 발음하며 '백화점'을 일컬었는데, 90년대 이후부터는 '데빠토'라고 대다수가 발음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에 가까운(?) 글쓴이는 어릴 적에 '햣카뎅'이라고 발음하던 추억이 있어 최근(2012)에도 '햣카뎅'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하도 '데빠토'라고 하니 왠지 조금 서글퍼진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걸 '한국 독자들'이 얼마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까? 차라리 '광화문연가'라는 노래를 '이문세 목소리'으로 기억하는지, '이수영 목소리'로 떠올리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공감 가지 않겠는가? 한국 독자들에게는 '백화점'은 백화점일 뿐이고, '쇼핑 몰(mall)'이나 '아울렛', '마트'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말이다. 딱히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다. 햣카뎅이라고 부르든, 데빠토라고 부르든, 그게 그렇게 크게 신경 쓸 일일까? 의미만 전달된다면 별로 문제될 것도 없고, 마스다 미리, 본인만 크게 걸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물론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에는 십분 공감을 한다. 나도 '어감'을 많이 따지는 편이고, '낯설다'는 느낌이 들면 <사전>을 뒤져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적확한 단어/어휘'를 시간과 장소에 걸맞게 바르게 쓰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편이기에 마스다 미리의 고민(?)이 남 일처럼 멀게 느껴지지 않고, 마스다 미리가 느꼈을 기분 나쁨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다. 그거 대단히 피곤한 일이다. 그저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칠 경우엔 혼자서 피식 웃고 말거나 홀로 심각해지는 것으로 끝날 상황이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부터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딱 좋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일을 참 많이 겪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 혼자만 끙끙거릴지언정 그런 '고민'이나 '상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편이다. 그걸 말해봐야 십중팔구는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고민을 '글'이나 '만화'로 써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왜냐면 그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실린 내용 가운데 몇몇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사람을 면전에 두고서 '쓸모 있다/쓸모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삼가야할 '언어예절'이고, 그걸 아무런 의식도 없이 습관처럼 내뱉는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몰상식'한 사람으로 치부해도 괜찮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에피소드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일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뒤치지(번역하지)' 않고 본연의 일본말 그대로 옮겨 놓았다면, 일본어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책일 수 있을 것이다. 언어공부란 '문화습득'의 또 다른 방법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서'를 읽는 것으로 일본어의 시대변천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특색이 '뒤쳐지는(번역된) 과정'을 통하면서 대부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서 '우리말'로 풀어놓고 보니 도리어 어색한 점이 더 많이 눈에 띄고 말았다.

물론 한국 독자들에게도 '인가 작가'인 마스다 미리의 책이니 우선적으로 읽고 싶은 분들이 있어서 출간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마스다 미리 작가의 '섬세함'에 놀라고, '디테일'한 설명에 반해서 그녀의 책이라면 두말 하지 않고 읽는 열성팬들도 꽤나 많을 것이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내 평점은 '별둘'이다. 더 깎을 순 있어도 더 높여줄 순 없다. 그나마 별하나가 아니라 별둘인 까닭은 몇몇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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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8 - 완결
추공 지음, 이백 그림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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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8>  추공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2019)

[My Review MMXXXVI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8번째 리뷰]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에서 '절대자'는 무료함을 잊기 위해 여흥을 즐기려 한다. 그래서 창조해 낸 것이 바로 '지배자'와 '군주' 들이다. 그리고 그 여흥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둘 사이에 싸움을 붙였다. 절대자는 흥겨웠다. 지배자와 군주 들의 싸움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좋았고, 팽팽하면 팽팽할수록 흥겨웠기 때문이다. 허나 지배자도 군주 들도 어엿한 생명이 있는 존재들이기에 죽거나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살육전'에서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서로를 향한 '파괴 본능'만을 앞세워서 말이다. 그렇게 치열한 전쟁 속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전투 특성' 때문에 힘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숱하게 싸우고 또 싸우고 난 뒤에야 깨진 균형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균형은 점점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로 '죽음의 왕, 그림자 군주'의 힘 때문이었다.

애초에 7명의 지배자와 9명의 군주 들은 서로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싸움이 계속 되는데, 결국은 지배자와 군주 들도 '죽음'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절대자'가 창조한 존재인 까닭에 죽음을 경험하더라도 '완전 소멸'은 되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지배자와 군주 들을 따르는 종(부하)들의 경우엔 달랐다. 그 종들은 죽고 난 뒤에 '그림자 군주'를 따르는 '그림자 군단'에 합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애초에는 7명의 지배자들과 9명의 군주들이 나뉘어서 싸워도 서로 대등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림자 군주' 홀로 모든 지배자들과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지배자 군단들과도 맞서 싸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점점 패색이 짙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싸움에 질 때마다 '윤회의 잔'을 이용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패배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반복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절대자가 창조한 존재들의 경우에는 아무리 '시간'을 거스른다고해도 '과거의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지엄한 존재들의 경우에는 '윤회의 잔'을 뒤집기 이전의 기억까지 다 가지고 '똑같은 시간'만 되풀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수 차례로 거듭해서 싸우다가 '군주들'이 배신을 하고 말았다. 그림자 군주가 거느린 '그림자 군단'이 너무 커져서 힘의 균형이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자 군주를 제외한 나머지 군주들이 지배자와 맞서서 홀로 싸우고 있는 그림자 군주의 뒷통수를 쳐버린 것이다. 그렇게 지배자와 그림자 군주가 치열한 싸움 끝에 둘 다 기진맥진해진 상황에 '나머지 군주들'이 먼저 그림자 군주를 제거하고, 그림자 군주에 의해 제압 당한 '지배자들'도 모두 제거해버린 것이다. 이때 배신을 지휘한 우두머리가 바로 '파멸의 군주, 용제'다. 다른 군주들에 비해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그가 자신과 유일하게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여긴 '그림자 군주'를 제거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파멸의 군주에 의해서 제거된 '지배자들'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서 '광휘의 파편'을 지구 곳곳으로 보냈고, 그 파편 조각이 몸속에 스며든 인간들은 엄청난 에너지원인 '마나의 영향력'을 받아 '국가 권력급 헌터'로 거듭 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마나의 양'이 충분하지 않은 지구를 찾아온 '파멸의 군주(용제)'의 종(카미쉬)을 보내 '광휘의 파편 조각'마저 제거하려 했으나, 전세계 국가 권력급 헌터들이 모여서 카미쉬를 물리치는 위업을 펼친 것이다. 한편, 군주들에 의해 배신을 당한 '그림자 군주'는 자신이 '죽음의 신'인 탓에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허나 파멸의 군주에게 당한 데미지가 너무 컸기에 회복하기에 너무 오래 걸릴 것으로 짐작되자, 한 가지 묘책을 내놓게 된다. 바로 '설계자'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키우려 한 것이다. 마치 지배자들이 '광휘의 파편 조각'으로 국가 권력급 헌터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암튼, 그렇게해서 '설계자'에 의해 낙점을 받은 후계자가 바로 E급 헌터, 성진우였다.

E급 헌터는 '일반인'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마나의 힘'이 약한 헌터로 각성한 자다. 그래서 게이트를 통해서 나타나는 마수들과 싸울 힘을 갖고는 있지만, 마나의 힘이 없어 싸울 수 없는 일반인처럼 마수들에 의해 '일방적인 학살'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을 맡게 된 셈이다. 그렇게 약한 헌터가 바로 '성진우'였다. 그런데도 성진우는 '죽음'을 무릅쓰고 던전을 돌면서 마수 사냥에 나섰다. 왜냐면 초창기 헌터로 각성한 아버지는 던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서 '행방불명'이 되었고,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는 '익면증'에 걸려서 잠이 든 것처럼 쓰려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뿐인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구하기 위해서 '소년 가장'이 되어 버린 성진우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헌터의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필 E급 헌터로 각성하는 바람에 원하던 큰 돈은 벌지도 못하고, '헌터협회'에서 주최하는 던전 사냥에 참가하는 대가로 받은 지원금으로 값비싼 어머니의 치료비와 동생의 학비를 겨우겨우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원금을 다 써버린 성진우는 변변한 무기나 방어구도 구하지 못하고 겨우 마련한 칼 한 자루를 들고서 겨우겨우 던전을 돌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던전 참가를 통해서 얻게 된 별명이 '최약 병기'였다. 가뜩이나 약한 E급 헌터로 각성한데다 변변한 무기도 없이 E급이나 D급 게이트를 돌고 있었기에 붙은 별명이었다. 사실 던전 게이트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보다 '등급'이 낮은 마력을 뿜어내는 게이트라면 별탈이 없겠지만, '동급'이거나 '상위' 등급의 게이트에 들어가서 마수 사냥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잠깐의 방심만으로도 마수들의 공격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진우도 D급 게이트에 참가했다가 심각한 치명상을 받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등급과 동급인 E급 게이트에서도 가장 약한 마수인 '고블린'에게 치명상을 당할 정도로 약해 빠진 헌터였던 것이다. 그러니 헌터들에게 게이트 참가를 권할 때에 8명 이상의 헌터로 구성을 하는 것을 규정으로 정할 정도였다. 그래도 게이트는 끊임없이 나타났고, 헌터의 수는 늘 부족했기 때문에 '협회'에서도 헌터들이 생명을 잃어버릴 정도의 위험한 배정은 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진우 헌터가 참가하는 던전은 늘 '최약체 마수'만 등장한다는 공식(?)이 소문으로 나돌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만큼 '안전한(?) 레이드'라는 보장이었기에 성진우가 참가하는 게이트 사냥은 안심하고 참가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심하고 참여한 게이트에서 '이중 던전'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중 던전'은 바로 그림자 군주의 의뢰를 통해서 '설계자'가 꾸민 게이트였던 것이다. 이 게이트에서 성진우는 '죽을 위기'를 극복하고 '플레이어'로 다시 재각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된 성진우는 끝없는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계자'의 친절한(?) 안내를 착실하게 따르면서 성진우는 '그림자 군주'가 될 훈련을 착착 해냈던 것이다. 그렇게 레벨 100을 넘기고 진정한 '그림자 군주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될 때쯤, 제주도를 넘어 일본에서 '거인들의 왕(군주 가운데 한 명)'을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죽음의 군주'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주한 엄청난 힘을 가진 '군주들'과 마주하게 되고,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도 떠올리며 진정한 '그림자 군주'의 힘을 개방하게 된다. 그리고 '파멸의 군주, 용제'와의 한 판 승부를 펼치는데, 결국 최종 승리는 성진우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성진우가 승리하긴 했지만 '파멸의 군주'가 남긴 상처와 그에게 당한 희생자는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종지부를 찍게 되면 성진우가 '알고 있던 세상'은 한 켠이 무너진 채로 남게 될 것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성진우는 지배자들에게 '윤회의 잔'을 이용할 수 있게 부탁을 했고, 그 힘을 통해서 '시간'을 되돌릴 작정을 한다. 그렇게 되면 성진우는 이미 '세상을 구한 영웅'이었는데, 처음으로 게이트가 열리기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길 원했기에 아무도 성진우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예정대로 '파멸의 군주'는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에는 어떻게 '파멸의 군주'를 상대할 것이냐는 지배자의 물음에 성진우는 분명히 말한다. 자기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말이다. 지배자들의 도움도 필요 없다면서 말이다. 진정한 '그림자 군주'의 힘을 개방한 성진우로서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닐 테지만, 그럴 경우에는 아무도 성진우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배자들의 경고가 있는데도, 성진우는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 결정을 선택한다. 세상은 온전히 지킬 수 있겠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그런 선택을 말이다.

그렇게 성진우는 다시 한 번 '최후의 싸움'을 다시 치루고 승리를 거둔다. 다시 한 번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서 이야기는 <외전>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미 끝난 이야기에 이어지는 '뒷이야기'가 김이 빠질 법도 하다. 그런데 <나 혼자만 레벨업>은 그게 아니다. 다 끝난 듯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서 '그 뒷이야기'를 하면서 더 신 나고 재미난 이야기를 펼쳐보였기 때문이다. 보통 <외전>의 생명은 '디테일'에 있다. 굵직굵직한 주요 이야기의 빈틈을 완벽하게 메꾸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는 '외전'이 사실상 '본편'이라고 할 만큼 자세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 '세계관'으로 다시금 이야기를 펼쳐나가는데, 그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롭다. 마치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을 하고 난 뒤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서 끝나버린 이야기의 뒤를 이어나가면서 '어떻게' 행복한지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이 바로 그렇다. 성진우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세상에서 성진우는 다시 '중학생'이 되어서 곧이어 찾아올 '파멸의 군주'를 물리치고 또 한 번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되었으나,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상에 한가롭게 살아간다. 그 이야기가 몹시 흥미롭게 진행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리고 그 <외전>마저 끝마쳤을 때, '또 다른 이야기'로 다시 찾아왔으면 하는 아쉬움만 가득할 것이다. 정말 간만에 '여운' 가득한 판타지 소설을 만나고 즐겼다. 기회가 된다면 또 리뷰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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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 몸과 의학의 한국사
신동원 지음 / 역사비평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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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 몸과 의학의 한국사>  신동원 / 역사비평사 (2004)

[My Review MMXXXV / 역사비평사 2번째 리뷰] 우리 나라 의학은 그 기원이 꽤나 오래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학의 아류'라는 헛소문으로 인해 '한(韓)의학'이 크게 주목 받지 못했고, 그나마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향약집성방>과 같은 우리 의학서가 나오기는 했으나 오래도록 '중국의 의서'인 <황제내경> 같은 책들에 의존하는 바람에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조 때 허준에 의해 집필된 <동의보감>이 쓰여지고 나서는 '한의학'도 새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약재로 중국에서 들여온 비싼 약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약재를 도용하였고, 우리의 풍토와 기질에 맞는 처방법을 시행하면서 독자적인 체계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한말에 '서양의학'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한의학'이 다시 한 번 위축되었으며, 일제감정기를 거치면서 '근대의학'은 서양의학으로 완전히 굳혀지는 듯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학체계가 이대로 '서양의학'을 기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정녕 '한의학'은 건강보조식품 취급하듯이 뒷전으로 밀려나야 올바른 것인가? 이런 의문이 끝없이 되묻게 된다. 서양의학이라고해서 '근대 이전'부터 획기적인 시술 방법을 선보인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의학사를 뒤적거리면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잔인하고 끔찍하고 몰상식(?)한 방식으로 환자의 몸을 다뤘다는 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동양의 의학'은 꽤나 점잖은 편이다. 적어도 환자의 몸을 가르고 째면서 살풍경한 장면을 연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맥과 침, 뜸을 이용하여 환자의 기운을 먼저 보살핀 다음에 '병의 근원'을 치유해나가는 방식이 꽤나 고급져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과 의학기술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인식은 확연히 달라졌다. 이른바 '과학적인 관점'에서 서양의학의 압승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동양의학'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정도로 내쳐지고 말았다.

그렇다고해서 '서양의학'만을 현대의학의 바람직한 기저로 보는 지금의 의료계 실태가 진정 바람직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분명히 우리의 '한의학'도 바로 설 자리가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요즘도 수많은 환자들이 '양약'이 아닌 '한약'을 더 선호하는 편이고, 정형외과적인 시술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고 한의사의 시술(침, 뜸 등등)을 받고서 더 회복이 빨랐다는 예는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에서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서로 콜라보를 해서 서로의 취약점을 보완하며 '협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현실에서는 이게 녹록치 않다는 것만 재확인할 뿐이다. 흔히 말하는 '밥그릇 싸움'에 비견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이게 정말 그럴 정도로 싸울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의사들 말로는 '환자'를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정말 '환자'를 위한다면 양의학과 한의학을 가리지 않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치료를 하려고 서로의 학문 영역을 넘나드는 연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비의료진'의 짧은 소견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책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가 반가웠다. 비록 책의 내용은 '논문'조로 쓰여져서 읽기에 딱딱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의학의 역사를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비판 아닌 비난만 늘어놓은 책이 아니라 '한의학'도 애초에 사람을 살리려던 목적으로 연구되었다는 긍정적인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참 좋았다. 비록 우리의 의학수준이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서 무당을 빌어 굿판을 열거나 부적을 써서 붙이고 태워서 먹이고 허공에 날리며 귀신을 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는 '근대의학'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간절한 바람이었고, 최고의 주술적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랬던 우리가 구한말에 '서양의사'를 만나면서 새로운 의학을 접할 수 있었고, 일제가 '세균'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여주면서 병의 기원이 세균에서 비롯되었다며 '위생'을 깨우치던 조선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코로나19' 감염병으로부터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방법으로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기염을 토할 정도가 된 셈이다. 이렇게 발달한 대한민국의 현대의학이 오롯이 '서양의학'에 의한 것인지는 한 번 따져볼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더 오래 동안 습득하고 발달 시켜왔던 '한의학'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오히려 서양의학을 연구한 권위자들마저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한약'을 챙겨 먹는 일도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강을 챙기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에 한정되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요즘 사람들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환자들이 119구급차를 타고서 '대학(대형)병원 응급실'이 아닌 '동네 한의원'을 찾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기껏 발전시킨 '서양의학의 토대'를 완전히 뒤바꿔서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선생님들에게 '한의학'까지 배우라고 강제적인 학과 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거듭 밝힌다.

하지만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서로 만나서 서로 공통으로 다루거나 완전 다른 점을 서로 비교할 수는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불치병'이나 '난치병'의 경우에 획기적인 접근법으로 치유와 치료법을 머리를 맞대고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일 수는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들 처지에서는 정작 자신의 아픔을 다스려줄 사람이 '양의사'인지 '한의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하나 뿐인 생명을 두고서 '이런 실험', '저런 실험'을 하며 가지고 놀듯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 분야'만 심도 있게 파고 들어도 힘든 과정인데, 그렇게 힘들고 빠듯한 과정에 서로 연관성이 '1도' 없는 양의학과 한의학을 콜라보 하라니 참으로 한가한 소리나 한다는 불평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시간 정도만이라도 할애를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서 '의료진' 스스로 결정을 내리라고 권유하고 싶다. 우리 전통 의학의 역사를 마주한다는 열린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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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소녀 루오카 1 - 인어 리듬 매니큐어 마법 소녀 루오카 1
미야시타 에마 지음, 고우사기 그림, 고향옥 옮김 / 가람어린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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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소녀 루오카 1 : 인어 리듬 매니큐어>  미야시타 에마 / 고향옥 / 가람어린이 (2023)

[My Review MMXXXIV / 가람어린이 1번째 리뷰] '마법 소녀' 이야기 이전에는 '요술 공주' 시리즈가 있었다. <요술 공주 세리>, <요술 공주 밍키>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술 공주' 이야기를 쏟아낸 뒤에는 '마법 소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론 <카드캡터 체리>(원제에는 '사쿠라'라는 이름이다)를 가장 좋아했다.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 걸~"이라는 주제가도 흥얼거렸고 말이다. 특히나 "어둠의 힘을 지닌 열쇠여, 진정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라 너와의 계약에 따라, 나 체라가 명한다. 봉인해제!"라고 외우면 '크로우카드'에 봉인 되었던 마법의 힘이 풀려나며 평범한 소녀였던 체리도 어느새 마법 소녀로 변신하게 되었다. 예쁜 일러스터가 내 마음을 사로...쿨럭쿨럭

암튼, <마법 소녀 루오카> 시리즈에는 '두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욕심꾸러기 소녀 카오루와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마법 소녀 루오카다. 두 소녀의 이름이 서로 뒤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면 눈썰미가 대단한 셈이다. 애초에 '인간 세계'와 '마법 세계'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는 별개의 세계다. 하지만 두 세계가 아주 떨어진 것은 아니고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서로 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었고, 그 연결고리를 통해서 서로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고 받을 수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두 소녀가 그 통로를 이용할 수 있을 턱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카오루는 땅에 떨어진 '카드 한 장'을 얻게 되었는데, 그 카드를 손에 들고서 잠시 넘어질 뻔 했다가 '마법의 힘'이 담겨 있는 엘릭서를 구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하는 '마법 엘릭서'를 구매(?)했는데, 이 엘릭서라는 것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조차 그 엘릭서 안에 담긴 마법을 쓸 수 있는 엄청난 도구였다. 마침 카오루는 합창 대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게 되었는데, 문제는 카오루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엘릭서를 판매하는 거리에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어 리듬 매니큐어'라는 엘릭서를 구매해서 아주 유용하게 써먹게 된다. 그 엘릭서의 힘이 담긴 매니큐어를 손톱에 바르기만 하면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더라도 뛰어난 실력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핑크 색깔'에 담긴 엘릭서의 힘은 바로 '아주 즐겁게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카오루는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지 못해서 늘 어깨가 축 쳐져 있었는데, 바로 이 '인어 리듬 매니큐어'의 힘을 빌어서 아주 뛰어난 연주 솜씨를 뽐내고 난 뒤에는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즐겁게' 피아노 연주를 즐기다 보면 저절로 연주 실력이 늘고 즐거운 마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신기한 카드'를 얻게 된 카오루의 하루하루가 즐거운 한편으로, '신기한 카드'를 버렸던 원래의 주인이 이야기에 등장하게 된다. 바로 마법 세계의 소녀인 '루오카'다. 그녀의 마법 실력은 '같은 또래'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그도 그럴 것이 루오카의 어머니가 마법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이었기 때문에, 루오카는 집에 있는 '마법책'을 어릴 적부터 곧잘 훔쳐보고 따라 해보았기에 어쩔 수 없이 뛰어났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법 학교'에서 또래들이 배우는 마법따위는 선생님들에게 배우지 않고도 이미 알고 있었을 정도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즐겁기는커녕 재미가 하나도 없다. 그런 루오카의 소원은 바로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인데, 마법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 실력을 가진 엄마이기에 잠시도 루오카와 함께 있어줄 시간이 없어서 루오카는 늘 집안에서 혼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루오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엄마는 루오카가 불편을 느끼거나 하지 않도록 '신기한 카드'를 주고서, 루오카 또래가 가장 좋아하는 '엘릭서 가게'가 즐비한 곳에서 마음껏 쇼핑할 수 있도록 선물을 해준 것인데, 정작 루오카는 그 카드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은 숲속의 늪에 들어가서 그 '신가한 카드'를 버렸던 것인데, 그게 마침 카오루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과연 두 소녀에게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전형적인 일본의 '마법 소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지만, 전혀 지루한 느낌은 없다. 더구나 '판타지 동화'속에 마법 아이템이나 마법 주문 따위를 소개하며 다양한 굿즈(?) 판매까지 완비하고 있어서 일본스럽구나 싶을 정도지만, 구태의연한 상술과는 상관 없이 '이거다!'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법이다. 앞으로 펼쳐질 두 소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벌써부터 소녀 독자들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럼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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