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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 매니악 1
이우혁 지음 / 미컴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파이로 매니악 1> 이우혁 / 미컴 (1998)
[My Review MMLXII / 미컴 1번째 리뷰] '퇴마록 2부'에 해당하는 <뉴 퇴마록(가제)>이 출간되길 기다리면서 이우혁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17권짜리 소장판 <퇴마록>도 구했기에 '국내편'에 이어 '세계편'을 읽을 준비를 하고 있고, 말 많던 <치우천왕기>(엘릭시르)도 새로 읽고 있으며, 새롭게 탄생할 '이우혁의 세계관'이 가장 잘 드러난 <왜란종결자>를 읽을 준비를 하던 차에 아직까지 읽지도 못했던 이우혁의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책 <파이로 매니악(전3권)>을 비롯해서 <바이퍼케이션(전3권)>, <쾌자풍(전3권)>, <고타마(전2권)>라는 책이었다. <파이오 매니악>을 제외하고 나머지 책들은 2010~2012년 사이에 출간되었는데, 내가 이 당시에 '독서논술' 수업을 한창 하던 시기라서 [어린이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독파했을 때였다. 그래서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이 출간한 책인데도 그닥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 않은가.
그리고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던 까닭이 또 있다. 바로 말 많았던 <치우천왕기>(들녘) 9권 모두를 사놓고 목놓아 기다리던 독자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5년 뒤에 느작 없이 '출판사(엘릭시르)'를 바꿔서 새로 쓰고 완간을 내놓았다고 하니, 일종의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애초의 출판사에서 '종결'이라도 내놓고서 '수정판'을 내놓았더라면 그나마 '더 좋은 작품을 쓰려고 고심이 많았구나' 하는 이해라도 했었을텐데, 그간 일언반구 아무런 의사표시도 하지 않고 '연재'를 중단하더니, '완결'을 했다는 기쁜 소식도 무색하리만치 내용을 대폭 수정해서 '또 다른 책'을 썼다니...그럼 기존의 책(들녘)을 사모았던 독자들은 그냥 '바보'로 만드는 꼴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배신감에 이우혁의 '다른 작품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이미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유독 '엘릭시르' 출판사의 책들은 사 모으지 않았는데, 작년에 쭉 읽어보니, 나름 괜찮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정판'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해묵은 미운 감정이 쬐끔은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늦은감이 많지만 이우혁의 다른 작품들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은 바로 <파이로 매니악>이다. 1998년에 쓰였다는데, 미처 출간 소식을 접하지 못해서 읽지 못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 시절에는 서울 중심가에 있는 '큰 서적'이 아니면 '동네 서점'에서 오프라인으로 책을 구입해야 하던 시절이라 '서점 주인'이 책을 들여놓지 않으면 책을 접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한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들리는 소문으로나마 '퇴마록의 작가가 <스포츠신문>에 소설을 연재한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사실 '신문연재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었다. 왜냐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그 연재를 읽기 위해서라도 신문을 매일 사러 가는 수고를 해야 했는데, 그게 귀찮았고, 다른 하나는 신문을 일일이 사러 가기 귀찮았다면 '정기구독'이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 당시엔 신문구독을 할 정도로 금전적 여유가 없던 시절이기도 했고, 당시 '스포츠신문'이라면 조선일보(스포츠조선) 아니면 동아일보(일간스포츠)였을텐데, 조중동 같은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전차로 <파이로 매니악>은 나와 인연이 없는 소설책이었던 셈이다.
암튼, 이제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막상 읽으니 이 소설...정말 '매니악'하다. 대한민국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리스트로 만들어서 '사재폭탄'으로 처형을 한다는 기막힌 발상이 모티브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첩보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대한민국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다. 2025년인 지금도 경악스러울 내용인데, 만약 나와 '인연'이 닿아서 내가 이 소설도 '소장'하게 되었다면, 어쩌면 내 인생이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내 전공이 '화공(유기화학)'쪽이기도 하고, 전공을 그대로 잘 살렸다면 '고층빌딩 폭파철거'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화약놀이'를 좋아했던 터라 한창 때였던 20대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내 진로'도 그쪽으로 정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IMF를 맞아서 '취업'이 참 힘들 때였기 때문에 알바 같은 것을 하면서 '묻지마,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던 공시족이었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그즈음에 '발파 공법'과 관련된 자격증 시험도 준비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연이은 '불합격'으로 진로를 확 바꾸게 되었고,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이 '독서논술쌤'이었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읽던 '어린이책'에 깊은 감명을 얻고서 시작한 새 삶이었는데, 그때 만약 <파이로 매니악>같은 소설을 읽었다면 '발파 시공사'쪽을 전전하면서 '폭발물'을 다루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내용은 정말 그로테스크하다. '폭탄 전문가' 동훈과 '신문기자' 영이 우연찮게 만나서 의기투합을 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둘이 만나서 모의(?)를 하는 것이 다름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할 법한 암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작가가 한국사람이고, 등장인물과 배경도 모두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그런 무시무시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더란 말이다. 그런 끔찍한 내용을 써낸 작가도 대단한(?) 사람일 수 있지만, 그걸 읽고 있는 '독자(나를 비롯해서 말이다)'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칼이나 총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여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짐승'이기에 사람이라 부르지도 않고 '죄수'라고 지칭하며 죽기에 꼭 알맞은 폭탄을 터뜨려서 '천벌'을 받았다는 느낌이 물씬 나도록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 죄수들의 신상을 살짝 이야기하자면, 독재정치를 벌여 저항하는 국민들을 조직적으로 폭행하는 '정치깡패두목'을 폭사시켜 죽였고, 친일파의 식민통치를 옹호하고 일제가 가공한 '식민사학'을 정통하다 주장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수치스럽게 만든 '사학교수'를 불태워 죽였으며, 정치적 부정부패와 비리를 감싸고 '엘로우저널'을 퍼뜨리던 악질적인 '신문사사장'을 엉덩이부터 면상까지 수많은 쇠구슬로 꿰뚫어버려서 시신을 벌집처럼 만들어 버렸으며, 부실공사로 애먼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여중생들과 원조교제를 일삼던 '악덕업자'를 콘크리트 구조물을 폭파해서 그 아래 깔려 압사시켜 죽여버렸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벌 받아 마땅한 놈들만 골라(?) 죽이는 통쾌한 액션 같지만, 이 소설의 제목이 <파이로 매니악>이라는 것에서 덜컥 걸림돌이 꽉 막혀버리고 만다. 직역을 하면 '방화(파이로)+광의(매니악)'라고 해석이 되지만 조금만 풀이하면 '폭파 전문가'라고 해석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익스플로전(explosion)'이 아니라 '파이로(pyro)'라는 것은 우리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전문적인 방화'라고 해석할 수 있단다. 다시 말해, 수많은 인명살상을 위한 방화가 아니라 꼭 죽여야 할, 꼭 죽어 마땅한 '한 사람'만 골라서 죽일 수 있는 '특화된 폭발'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특화된 방화'가 가능한 인물이 바로 '동훈'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서 굴곡지고 어두운 단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신문기자 '영'과 만나게 되자 둘은 의기투합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명은 '자살'을 하러 한강 다리로 갔고, 다른 한 명은 '청부살해'를 당해 포대에 담겨 한강에 빠져버렸는데, 그렇게 '생을 마감'할 뻔(?)했던 두 사람이 운명적이 아닌 '공교롭게' 만나는 바람에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처리(?)하고서 대한민국 사회를 좀 먹고 악영향을 끼치는 '죄수 리스트'를 만들어서 천벌을 단행하자고 했던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나쁜 놈들이 돈과 권력을 쥔 '사회고위층'이라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서 유유자적하며 제멋대로 살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대한민국에서 아주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꼬락서니가 몹시 불쾌했기 때문이다. 내란과 외환죄를 저지르고도 '인권' 운운하면서 법꾸라지처럼 대한민국의 법을 우롱(!)하고 있는 '내란세력들'만 봐도 딱 그렇다. 여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면죄부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들이 얼마나 많으냔 말이다. 이런 놈들만 딱 골라서 '천벌'을 내릴 수 있다면 정말 속이 다 시원할 듯도 싶다.
그러나 사람이 '짐승'을 잡아 죽일 때도 그 처참한 광경에 눈과 귀를 막고, 역하고 비위 상하는 냄새가 한가득 뿜어져 나와서 구토를 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사람'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폭탄'으로 죽였는데, 그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는 살벌한 풍경을 보며 어찌 덩실덩실 춤을 추며 즐길 수 있겠느냔 말이다. 저 멀리서 터지는 미사일과 폭탄은 '불꽃놀이'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할 순 있겠으나,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한 조각의 살점으로 분해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핏방울로 산화한 그 자리는 '화염'이 치솟아 불바다가 되었음에도 고기 썩는 냄새가 진동하여 누구도 쉽사리 다가가 '구조활동'을 하기 힘들게 만들고, 운이 좋아 팔다리만 잃은 채 고통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지르는 신음소리와 비명소리로 가득한 셈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끔찍한 장면 묘사'를 아주 생생하게 하고 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런 '충격'을 목격하고 고통 받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다. 심한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는 설명과 죄수들에게 천벌을 내리고 난 뒤에 구역질을 하는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안 했으면 싶을 정도다. 그냥 통쾌하게 벌 받아 마땅한 놈들을 '처단'했다는 정도로 마무리하면 좋았으련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이렇게 '잔혹한 묘사'를 거르지 않고 다 표현한 소설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전민희의 소설 <룬의 아이들 : 데모닉>이었다. 여기서 '전투인형'이 등장하는데 전쟁의 참혹함에서 '인명살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인간을 대신해서 싸우는 '인형'들이 존재하는데, 그 인형들조차 죽는 모습이 너무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똑같은 외형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피부도 인간과 똑같고, 심지어 인형의 내부에는 '인간의 피'가 똑같이 흐르고 있다는 설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쟁의 참혹함은 사라지기는커녕 '전투인형들의 죽음'은 곧 '사람의 죽음'과 하등 다를 것이 전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끔찍한 일을 왜 하는걸까? 그 전투인형들과 함께 싸우는 인간들은 그 참혹한 장면을 직접 보고 겪으며 엄청난 공포를 느낄 정도인데 말이다. 여기서 작가의 한마디는 "그래야 전쟁의 끔찍함을 깨달아서 전쟁을 멈출 것 아니에요. 전쟁을 멈추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비참한 전투만이라도 덜 할 수 있다면, 이런 끔찍한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한 짓인지 잘 알 것 아니에요"였다. 끔찍하고 참혹한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줘야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전쟁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얘기에 머리를 한 대 쿵하고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파이로 매니악>의 작가 이우혁도 그런 의도가 다분했을 것으로 본다. 만약 죽어 마땅한 나쁜 놈들을 깔끔하게(?) 죽여버리는 통쾌한 장면만 강조하고 말았다면 이걸 따라하려는 '범죄모방' 심리가 강하게 작동했을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칼이나 총도 아니고 '폭탄'이 주요 소재인 소설이라서 더욱 조심스러웠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내가 이우혁 작가를 좋아하는 까닭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세상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수단'을 쓰지만 결코 '그 수단'이 온전히 정당성을 갖추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와 방법으로도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인죄'를 저지르면 아무리 정상참작을 한다고 해도 '사형판결'을 받게 된다. 대한민국 법 체계상 사형판결을 오래도록 집행하지 않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사형판결'을 없애지 않고 있다. 아무리 '부작용'이 심하다고는 해도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형제도'가 있다고해서 흉악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엄하게 죄를 물어서 엄한 벌을 준다'는 법의 존재만으로도 흉악범죄의 발생 비율이 낮아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런지는 중요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법이 존재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착한 사람'이 여전히 많은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아주 극소수이긴 하지만 진짜 '나쁜 놈'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을 흐린다는 속담처럼 정말 '나쁜 몇 놈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눈쌀을 지푸리게 만든다. 정말이지 그런 나쁜 놈들만 골라서 딱딱 '천벌'을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멋진 상상을 하면서 2권을 읽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