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가장 우연하고 경이로운 지적 탐구 서가명강 시리즈 37
천명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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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강 37] <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가장 우연하고 경이로운 지적 탐구>  천명선 / 21세기북스 (2024)

[My Review MMLIX / 21세기북스 39번째 리뷰] 2005년 8월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재난이 발생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집은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피난을 가야할 일이 생겼다.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세워 놓은 둑이 터져버려 도시 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기에 살기 위해서는 구조대의 손길을 받아들여 달랑 몸 하나만이라도 탈출을 해야 생존을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위험 상황 속에서도 42퍼센트에 해당하는 주민들이 대피를 하지 않았단다. 미처 난리를 피할 새도 없이 위험을 맞닥뜨려서 탈출하지 못한 주민들도 있었지만 구조대가 도착해서 피난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집에 남기'를 선택한 38퍼센트의 주민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피난을 거부한 까닭으로 '반려동물을 두고 가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단다. 왜냐면 구조나 대피시 '반려동물 동반 금지'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반려동물을 집에 홀로 남겨두고 자신만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 말에 공감한다면 당신은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공감하지 못한다면 동물은 인간과는 달리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한 기계'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첨예한 문제에 너무 이분법적인 구분이라 선택하기 힘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왜냐면 전세계 선진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한민국은 동물애호에 관해서 7단계 등급 가운데 딱 '중간'인 4단계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마땅하다고 여기면서도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맛난 육식을 값싸게 즐기기 위해서 '공장식'으로 길러낸 가축을 도살하는 것을 완전 금지하는데 찬성하지는 못하겠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 '동물에 대한 인식'에 완전히 자유로운 접근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편리한대로만 단편적으로 생각하는데 그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바람직한 것일까? 이 책에 따르면 '인간도 동물인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혹시 아직도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여기고서 모든 생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또는 인간이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생물들을 멸종에 이르게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생태계 파괴를 일삼고, 심지어 지구 환경까지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어서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 동물들이 살고 있는 서식지까지 파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인간'에게만 이롭고,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는 끔찍한 결과를 낳고 있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지금처럼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생물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생태계 파괴'를 지속시키면 우리 지구의 환경은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 자명하며, 그렇게 파괴된 환경 속에서 인간도 더는 살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런 걱정을 한다면 인간도 '동물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생물의 다양성' 속에 인간도 포함시키고, '생태계 보존'을 위해서 인간도 동참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재앙을 멀지 않은 미래에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호주에서 있었던 일 두 가지를 예로 들겠다. 하나는 호주에 정착한 백인들이 '사냥감'으로 데리고 온 '토끼 24마리'가 초래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영국인들은 '사냥'을 스포츠처럼 여기며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호주에서 사냥을 즐기기 위해서 '토끼 24마리'를 방사했는데,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토끼의 수가 급작스럽게 늘어나고 말았단다. 수가 늘어난 토끼들은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호주의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토끼 사냥을 대대적으로 허용하고, 덫을 놓고, 독약을 사용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늘어난 토끼를 막기 위해서 무려 3000킬로미터에 달하는 '토끼 방제 울타리'를 설치해야 했단다. 그래도 늘어나는 토끼의 수를 감당하지 못해서 토끼를 살처분하기 위한 '바이러스 살포'까지 했지만, 그때 뿐, 얼마 안 가서 토끼는 엄청난 수로 불어나서 호주의 자연 생태계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단다. 이는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줌과 동시에 망가진 자연 생태계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어디 그뿐인가. 늘어나는 토끼를 감당하지 못하자 결국 '살처분'이라는 끔찍한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그로 인한 '엄청난 죽음'을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들은 심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와 충격, 그리고 공포를 느끼고 한동안 제대로 된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증세에 시달리기도 했단다.

이래도 끔찍한 재앙에 대한 예로 부족했다면, 호주에서 벌어진 '최악의 산불'을 이야기하겠다. 2019년 6개월간 계속된 호주 산불은 '한반도 크기'의 임야를 송두리채 불태웠다. 주택과 건물 수천 채가 불탔고 33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산불로 인한 연기에 질식해서 사망한 사람만 수백 명이라고 한다. 여기에 56000마리의 가축이 미처 피하지 못해 불타 죽거나 강제 살처분 되었고, 12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단순히 숫자만 나열해서는 그 피해가 얼마나 되는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한반도 전체가 불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사람만 살아남은 셈이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재건'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재건 비용은 또 얼마가 될 것이며, 당장 몸을 뉘일 곳은 어디며, 비와 바람, 더위와 추위를 피할 공간은 어디 있으며,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생계 수단'은 무엇으로 마련할 것이냔 말이다. 호주 산불의 원인이 바로 '심각한 기후 위기' 때문이라는 보고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로 확실시 되고 있으며, 만약 지구적인 재앙이 당장 찾아온다고 해도 수많은 과학자들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 모든 재앙의 시발점이 '자연 생태계의 파괴'라고 한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우리가 동물을 보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만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지 않고, 인간을 소중히 여기듯 동물도 똑같이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주고 잘 대우해주어야 우리가 사는 지구가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수많은 동물들을 오로지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서 희생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하다. 왜냐면 인간의 생명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동물실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쓰는 '생활용품'서부터 끔찍한 질병으로부터 인류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신약 개발'이나 '백신 개발'에 인간을 대신해서 먼저 동물에게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동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동물실험'을 완전히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쉽사리 하지는 못한다. 물론 모든 동물실험이 인간에게 유용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들이밀어서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그렇다면 신약이나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 '인간 실험'을 하자는 얘기냐면서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AI 컴퓨터 발달로 인해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동물 실험을 대체하고는 있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은 계속 진행중이다

이처럼 어쩔 수 없는 '희생'을 치뤄야 한다면 적어도 '예우'는 갖춰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타도 만만치 않다. 왜냐면 모든 '동물 실험'이 인간을 대신해서 실험을 치르는 동물들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며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을 한낱 '기계'로 치부하며 실험과정에서 겪는 동물들의 끔찍한 고통을 즐기듯이(!) 실험을 진행하는 냉혈한 같은 인간들도 아주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소한 적은 고통을 겪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지 않고 그저 '망가진 기계'를 다루듯이 동물들의 생명을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학살(!)하며, 그렇게 고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냉정한 '결과'만 채취해서 자신들의 업적 쌓기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약과 백신으로 인류의 생명을 구원한다는 숭고하고 위대한 공헌을 한다는 공명심에 사로 잡혀서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런 동물 실험을 거쳐서 만들어진 '일상 생활용품'과 '신약, 백신'을 공급 받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쓰고 있다. 머리를 감을 때 눈에 들어간 샴푸거품으로 따가워하며 서둘러 씻어내지만, 그 샴푸를 제조할 때에는 '사람의 눈'에 들어가도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토끼의 눈'을 강제로 벌리고서 새로 만든 샴푸를 들이붓는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그 과정을 거쳐서 성능은 좋으면서 사람의 눈에는 해롭지 않은 '신제품'을 우리가 쓰고 있는 셈인데, 토끼는 그 실험을 통해서 '실명'을 하고, 그대로 '살처분' 당한다. 그 실험용 토끼는 그런 용도로 사육되었다가 '쓰임새'를 다하고 나면 그냥 죽임을 당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게 '동물 실험'의 한 예다.

이 밖에도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에게 가하는 끔직한 행태는 너무나도 버라이어티하다. 이대로 계속 진행되어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인류가 '육식'을 금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동물이 끔찍한 고통을 받는 것만큼이나 식물도 '살아있는 생물'이고, 동물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고 하니까 말이다. 더구나 인간은 많은 양의 '단백질 섭취'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육식을 하는 것만큼 '고단백 선취'가 가능한 것도 없다. 그러니 인간은 '육식 식생활'은 앞으로도 계속 될 수밖에 없다. '동물 실험'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희생'을 해야 한다면 인간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이 살 공간을 확보하고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개발을 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인간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 해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동물을 위한 일'로 귀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동물이 살 수 없는 지구라면 결국 인간도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동물에 대한 권리를 '별도의 특별한 권리'로 여기지 말고, 인간이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처럼 동물들도 그런 권리를 누리며 함께 '공존'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다. 동물애호가(?)들이 벌이는 '당신의 접시 위에서 벌어지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강도 높은 캠페인까지 동참하라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맛있게 즐긴 '육식'을 하면서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이 아닌 드넓은 초원에서 맘껏 풀을 뜯고 뛰놀던 소, 돼지, 닭을 '최소한의 고통'을 겪을 방법으로 도축을 한 뒤에 식탁에 오르게끔 노력하자는 얘기다. 오직 '사육'을 위해서 좁디 좁은 우리에 갇혀서 살을 찌우기 위해 강제로 사료를 먹이고, 근육 증강제, 항생제를 과다 투여하고 난 뒤에 고기를 얻기 위해 도축을 할 때 '전기몽둥이'로 죽을 때까지 때리는...그런 몰상식한 방식은 더는 쓰지 말자는 얘기다. 그런 방법이 아니어도 '맛있는 고기'를 얻는 방법이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먼저 '동물'에 대한 인식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먼 과거에 비해서는 분명히 우리네 인식도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개고기 식용도 금지하고 있고, 반려견 인구는 점점 더 많이 늘고...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맞이할 끔찍한 재앙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서둘러야 할 시기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지구 생태계 파괴를 멈추지 못한다면 지구는 그보다 더 끔찍한 재앙으로 인간에게 되돌려 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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