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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3
이우혁 지음 / 들녘 / 199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퇴마록 국내편 3 : 초치검의 비밀> 이우혁 / 들녘 (1994)
[My Review MMLX / 들녘 7번째 리뷰] 퇴마록 국내편의 완결은 바로 이 3권에 수록된 '초치검의 비밀'이었다. 국내 오컬트 장르 소설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크고 거대한 미스터리 속에 감춰진 비밀이 꺼내지면서 퇴마사들의 행보는 드디어 '국내'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쾌한 스토리로 전개되었기에 하는 말이다. 국내편 3권에 수록된 이야기는 '초치검의 비밀'을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밤은 그들만의 시간', '쌀', '그네'도 퇴마사들의 특색을 엿볼 수 있는 깔끔한 단편이며, 이런 단편 스토리를 빼놓지 않아야 '퇴마사들의 능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이번에 '개개정판(반타)'이 출간되면서 <퇴마록>을 다시 읽는 분들이 많을 텐데, '개정판(엘릭시르)'과의 내용 차이는 크지 않지만, '초판(들녘)'과의 차이는 꽤 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미 '개정판'을 내놓을 때 대대적인 수정을 한 탓이 크지만, '초판'의 서술이 좀 더 '자세하다 못해 장황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개개정판'은 이야기 서술의 군더더기를 깔끔하게 걷어낸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편'에서는 딱 거기까지다. 내용상의 차이점은 거의 발견할 수 없다. 간혹 '문장'만을 걷어낸 것이 아니라 '문단'까지 덜어낸 경우도 눈에 띄긴 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읽는데 큰 불편을 느낄 정도로 많이 '축약'한 것은 없다. 다만, '초판'의 서술이 좀 더 '날 것, 그대로'인 느낌이 강하고, '거친 표현'도 많았기에 더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에 비해서 '개개정판'은 좀 더 단정하게 순화하여 '강렬한 전달력'이 좀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일제강점기 일제의 만행을 밝히는 부분에서 좀 더 거칠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던 부분이 다소 차분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바뀐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주석 설명'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초판'의 주석에 비해서 '개개정판'의 주석은 분량부터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무튼, <초치검의 비밀>은 납량특집을 준비하던 신문기자가 '강화도'에서 발굴된 500구가 넘게 매장된 왜구의 시체를 취재를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엔 '시원한 여름맞이'를 위해서 등골이 오싹한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지만, 90년대만해도 극장가를 비롯해서 '안방극장'이라고 불리는 TV프로그램에서 '납량(오싹한) 특집'을 참 많이 했더랬다. 그래서 신문기자들이 이를 취재하기 위해서 강화도로 가는 도중에 엄청난 능력자들로 보이는 무리를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점점 고조된다. 현현파, 오의파, 그리고 청홍검을 든 여인이 등장하는 등등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강화도로 속속 모여들고 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는 도대체 누가 등장해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크게 살펴보면 '국내의 도인들'이 떼거리로 등장하고, '일본의 도인들'이 3명 등장하며, 거기에 우리의 퇴마사들이 참여한다고 보면 좋을 듯 싶다. 퇴마사들이 참여했다고 말하는 까닭은 강화도에 모인 수많은 도인들은 '목적'이 분명하지만, 퇴마사들은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결코 탐내지는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강화도에 모인 까닭은 다름 아니라 '초치검(일명 '고다이고 천황의 검')을 얻기 위해서다.
초치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책 <태평기>를 참고해야 한다. 그 책에 일본 남북조 시대를 마감했을 때, 남조의 천황이 북조의 천황에게 힘에서 밀려 패배하고 천황의 상징과도 같은 '삼종신기(야타의 거울, 구사나기의 검, 야사카니의 구슬목걸이)'를 품에 안고서 강에 뛰어들어 자결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런 까닭에 남조의 고다이고 천황 이후에 일본 황실에 전해지는 '삼종신기'는 가짜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는 '삼종신기'의 하나인 검을 천총운검(초치검)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퇴마록>에서는 이를 살짝 비틀어서 고다이고 천황이 죽고 '남조의 멸망'이 확실시 되었을 때, 부하 장수였던 미쓰마사에게 '초치검'을 맡기고 가짜 삼종신기를 들고서 자결했고, 미쓰마사는 '초치검'을 들고서 남조의 부활을 꿈꾸며 '한반도'로 향했고, 이곳 강화도에서 '초치검'과 함께 묻혔다는 설정을 하였다. 남조가 멸망할 당시가 1392년이고, 이 해에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었으니, 한창 왜구의 침략이 극심했을 때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이처럼 '초치검의 비밀'은 역사적 개연성이 매우 뚜렷한 작품이라 읽다보면, 점점 더 이야기 속에 빠져들면서 읽게 된다. 먼 과거에 일본 남조의 부활을 꿈꾸고 한반도를 찾아와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일까? 하고 말이다. 더구나 현재 시점에서 일본의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도인 3명이 찾아와서 '초치검'을 차지하려 든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단순히 검을 차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미처 완수하지 못한 '일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꿍꿍이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강화도에 잠들어 있는 500구의 왜구 시체를 깨워서 말이다. 도대체 왜구들이 강화도를 찾아온 까닭은 무엇이며, 500구의 해골이 가지런히 눕혀진 채 발굴된 것도 기이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단순히' 도적질을 하려고 찾아온 왜구들이 아니라 철저히 계획되어서 벌인 일이며,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해골들이 눕혀진 것을 보아서는 '집단 자살'이나 '의도된 할복'을 하고서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 벌인 계략이라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더구나 일본의 도인 가운데 '스기노방'이라 불리는 도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한국의 혈자리를 찾아 기맥을 끊겠다면서 풍수적으로 좋은 기운이 모이는 곳을 찾아 '쇠말뚝'을 박는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이었단다. 이런 짓을 저지른 위인들이 강화도를 찾아와서 '초치검'을 차지하려 드는 목적이 결코 순수할 리 만무하다.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며 한국의 도인과 일본의 도인이 마주하며 싸우려는데, 일본 도인들이 암기와 독을 쓰면서 한국의 도인 가운데 상당수가 목숨이 경각에 다다르는 위험천만한 일을 당하게 된다. 동시에 500구의 왜구를 해골의 모습으로 살아나게 만들어서 한국의 도인들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데, 드디어 퇴마사들이 나서며 500구의 왜구 시체들과 일본 도인 3명과 한 판 대결을 벌이게 된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퇴마사들을 돕기 위해 박수무당인 철기옹과 '주기(붉은깃발)선생'이라 불리는 박상준이 퇴마사들을 도와 일본측과 대결을 벌이게 되는데, 이게 참 볼만하다.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어서 단군의 상징인 '천부인'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애초에 일본 무사 미쓰마사가 무인 500명을 데리고 '고다이고 천황의 검(초치검)'을 들고 한반도를 찾아온 목적이 바로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단군왕검을 상징하는 '천부인'을 탈취해서 일본 남조의 부활을 꿈꿨던 것을 밝혀내게 된다. 아니 일본 황실을 되살리는데 '한국의 징표'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건 다름 아니라 일본 황실의 조상이 한반도에 넘어간 신라 장수라는 '역사적 진실'이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천황가가 '백제의 유민'이라는 사실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빼앗긴 삼종신기'를 되찾을 길이 막막한 터에 '단군의 천부인'을 탈취해서 일본에 가져가면 이미 망해버렸던 '남조의 부흥'을 이룩할 수 있을 거라는 목적에서 벌인 사건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단군의 천부인'이 일본 황실의 '삼종신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일까? 힘에서 밀려서 '진짜 삼종신기'를 갖고 있었음에도 '가짜 삼종신기'를 소유한 북조의 천황가에게 자리를 빼앗겼는데, '진짜 삼종신기'도 아닌 '단군의 천부인'을 내세우면 남조의 부활이 가능하겠느냔 말이다. 14세기만 해도 일본에선 자신들의 천황가가 '한반도 출신'이라는 사실을 그닥 숨길 까닭이 없던 분위기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에 신라와 백제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천황가의 주축'이었다면 삼국시대보다 앞선 '고조선의 유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통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일본의 삼종신기, 더구나 북조에선 '가짜 삼종신기'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정품 단군의 천부인'을 탈취할 수만 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으리란 설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냐면 '정품 단군의 천부인'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고, '일본의 삼종신기'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신민(臣民)들은 '명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강한 힘'에 복종하는 습성이 뿌리 깊게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장수가 천황가를 일구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일본의 무사 집단을 힘으로 굴복시킨 '신라 장수'가 일본의 오야붕으로 자리 잡고서 왕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인들이 '힘'이 아닌 '명분'을 중시했더라면 아무리 신라 장수가 일본을 정복한들 '왕'으로 받아들였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히 '힘'에 복종하는 습성이 뿌리 깊었기에 '강한 자' 앞에서 철저히 머리 숙이는 관행을 시행했을 것이다. 그러니 북조의 힘에 밀려서 남조가 멸망했는데, 남조에서 살아남은 무사 하나가 '일본의 삼종신기'보다 우월한 '단군의 삼종신기'를 가지고 왔다고해서 머리를 조아릴 까닭이 없다. 그나마 '단군의 천부인'을 알아보고(?) 미쓰마사의 휘하로 '총집결'을 하는 무사 집단들이 무수히 많다면 어찌어찌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힘의 논리'에 민감한 일본인들이 '명분' 따위에 머리를 숙이고 구름처럼 모여들 것을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이는 오늘날의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봐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직도 '군국주의 시절'의 제국주의 서열(?)을 중시하거나 '경제대국 2위'의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의 장,노년층은 여전히 '한류열풍'에 빠져든 일본의 젊은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는가 말이다. 현재의 일본 젊은이들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한국보다 나은 일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여전히 한국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애초에 '한국'에 뒤쳐진 일본의 현실을 받아들여서 '한국의 힘'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은 이런 일본의 행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서로 대등한,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일본을 대하고 있어서 '당혹스러움'은 오로지 한국인들의 몫이 되고 만다. 물론 단적인 예시를 들어서 풀이한 것이기에 100%의 모든 일본인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대체로 그런 습성이 있다고 알고 있으면, 일본인들을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초치검의 비밀'은 살짝 빗나간 결말을 맞게 된다. 애초에 일본인들이 '명분'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90년대라는 점에서 당시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며 경제성장이 하락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긴 했지만, 당시 일본의 경제력은 대한민국에 비해서 꽤나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시절이라 더욱더 실현가능성은 없었던 설정이었다. 그럼에도 '초치검의 비밀'을 읽고 나면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 우리 한국이 일본을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할 때에 일본을 '힘'으로나 '명분'으로나 모든 면에서 압도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허구에 불과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뿌듯하고 당당한 느낌으로 <퇴마록 세계편>을 읽어나가면 퇴마사들의 행보 하나하나가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게 된다. 이제 세계로 나아가는 퇴마사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커밍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