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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건축 너머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질문과 성찰 ㅣ 서가명강 시리즈 17
김광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서가명강 17]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건축 너머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질문과 성찰> 김광현 / 21세기북스 (2021)
[My Review MMLXX / 21세기북스 40번째 리뷰] 듣고 보니 그렇다. 우리는 정말 '건축'에 대해서 배워 본 적이 없다. '건물'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얼마짜리냐?'이고, 다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내 집이냐? 남의 집이냐?'를 떠올릴 뿐이다. 정말 이런 생각이 '건축'에 관한 전부일까? 서울대학교 김광현 교수는 말한다. '건축은 우리 모두의 미래다'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집값(아파트)'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서민들은 평생을 벌어도 '내집 장만'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집값 안정'은 절실하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게 이 책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의 내용일리 없지 않겠는가. 김광현 교수는 단적으로 말한다. '건축'을 말하면서 '부동산'을 떠올리지 말라고 말이다. 하긴 그런 것밖에 떠오르지 않은 까닭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부터 '건축'에 대해서 거의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외국 고등학생이 한국으로 '교환학생' 자격으로 유학을 왔더란다. 그 학생은 '유럽의 건축 양식'에 제법 관심이 많았는데, 동양의 건축에 대해서도 공부할 겸 한국에 왔노라고 자기 소개를 했더란다. 그때 많은 학생들이 그 외국인 학생을 많이 반겼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 학생도 자신이 알고 있는 '서양의 건축'에 대해서 알려주고, '동양의 건축', 그리고 '한국의 건축 양식'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해보겠다고 다짐을 했더란다. 근데 그런 다짐은 단 하루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한국의 학생들 가운데 단 한 명도 '한국의 건축'은커녕 '동양의 건축 양식'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과거 양반들이 살았던 '기와집'과 가난한 서민들이 살았던 '초가집'을 구분해줄 정도였으며, 경복궁과 민속촌에 있는 여러 한옥을 관람하면서도 '처마'와 '단청', '주춧돌' 따위의 유래와 이유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몹시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고 '한옥'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을 여쭤봤지만, 선생님도 자세한 내용은 거의 모르고 있었으며, 부랴부랴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러 진땀을 흘렸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가 2010년 즈음에 있었던 일이지만, 벌써 10년도 넘은 지금이라고 그닥 달라진 것은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외국의 경우에는 고등학생임에도 '건축 양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상당할 정도로 일찍부터 배운다는 사실이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에서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 대한 상식조차 제대로 배운 적이 거의 없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를 점령한 '아파트'를 왜 이렇게 많이 짓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저 '새집'이라고 지었으니 '돈'을 지불하고 살면 그뿐이지, 그 이상의 정보를 묻거나 궁금증을 가질 정도의 '호기심'도 갖고 있질 못한다. 그러니 우리가 '건축'이라 쓰고도 '부동산'으로 읽는 세태가 판을 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감도 잡지 못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말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김에, '좋은 학교'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자. '좋은 집'이라고 물으면 '비싼 집'이라고 답할 게 뻔하니까 말이다. 설마 '좋은 학교'라고 물었는데, 강남 8학군(?)을 거들먹거린다면 정말이지 실망이다. 적어도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학교라는 대답 정도는 나와야 정상일테니 말이다. 맞다. 학교란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곳이기에 좋게 만들려면 '잘 가르칠 수 있는 학교'여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학교의 조건'을 꼽는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 아이들 '성적'을 올려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선생님을 꼽을 것인가?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딴 생각과 딴 짓하지 않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한 학교일까? 기왕 우리가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니, 건축과 관련 있는 답을 내놓자. 첫째는 그 학교를 방문하지는 않을 거지만 멀리서 그 학교를 바라만 봐도 '공부'하고 싶게 만든다면 좋은 학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둘째는 역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 학교'에 반해서 학교 담장을 넘어서라도 안을 들여다 보려고 기웃기웃 거리게 만든다면 좋은 학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학교의 교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학교 내부의 모습'을 보고, 만지고, 각각의 교실에 들어가서 책상에 앉으니 저절로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학교가 아닐까 싶다.
이건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이 말한 '좋은 건축물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우리는 '좋은 학교'라는 질문에 건축에 대한 생각을 쏙 빼놓고서 그 학교 안에서 공부에 집중하고, 명문대에 입학할 정도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에만 매몰된 생각을 할 뿐이다. 왜냐면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학교들이 거의 대부분 '거의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애초에 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0년 동안의 대한민국을 살펴보면, 나라를 빼앗긴 치욕을 당했고, 어렵사리 해방이 되었지만 곧이어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고, 겨우 전쟁이 끝났지만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먹을 것'조차 남의 나라의 원조가 없었다면 굶어죽을 판이었는데, 팔자 좋게 '좋은집 타령'을 했겠는가. 더구나 '공공시설'에 들어가는 학교건물은 '디자인'과 '편리성' 따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적은 비용으로 효율을 높이는 방향'이면 그냥 오케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개발독재 시절'을 지나 '민주화시대'를 열었는데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지만 여전히 '건축'에 대해서는 걸음마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건축의 미래'도 그래야만 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건축'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해야 할 때다. 조금은 서둘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김광현 교수는 우리 모두가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건축은 결코 돈으로 처발처발해서 지은 집이 아니라, 앞서도 말했지만, 바라만 봐도 아름다워야 하며, 직접 살아봤을 때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급지고 럭셔리한 고층아파트'만 짓자는 얘기가 아니다. 제발 '부동산'이라는 생각을 좀 떨쳐내자.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집'을 발견할 때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부에 들어가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소리 지르는 집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그런 집을 우리 손으로 짓자는 말이다.
그런데 '건축'은 혼자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건축'은 시골 변두리에 집을 짓고 사는 것처럼 '제멋대로' 지어서도 곤란하다. 왜냐면 '내가 봤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남이 봤을 때도' 아름다운 집을 지어야 도시 전체가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건축가'가 될 정도로 건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거주할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릴 적부터 '건축'에 대한 교육을 시작해야 하는 필요성과 함께,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고 살고 싶어지게 만들어진 건축을,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룩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건축'은 필수인 세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 대해서 '가격'만 따지지 말고, 우리 동네에 딱 어울리는 멋지고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건축전문가'가 다 만들어놓고 정작 우리 맘에는 들지 않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건축에 대한 지식'이 곧 '상식'이 되어야 한다. 건축은 우리 세대 모두의 '관심'을 반영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비싼 집'만을, 아니 더 정확하게는 '싸게 샀는데, 값이 정말 많이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마음만으로 '건축'을 대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그런 집들만 수두룩 빽빽하게 된 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뻔한 마음 대신에 '우리 동네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도시, 쾌적한 도시,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건축'에 담을 수 있다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점점 '그런 건축'들로 점점 더 많이 채워지게 되리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서가명강'답게 서울대에서 <건축학개론>를 듣는 것처럼 재미없는 이야기만 가득 담겨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핵심포인트만 따로 읽어낸다면 꽤나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