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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5 -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 ㅣ 처음 세계사 시리즈 5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5년 6월
평점 :
세계사 공부를 하다보면 '중간이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도 '처음'과 '끝'은 기억이 생생하기 마련인데, '가운데'에는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 가물가물하고, 순서도 헷갈리기 십상인 것처럼 세계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어서 '모든 것'을 다 씹어먹을 듯한 열정으로 달려왔다하더라도 '중세'를 넘어 '근대'로 넘어가는 이즈음의 역사가 아리까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모두 10권의 시리즈 가운데 5권에 해당하는 부분이 그렇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지만 막상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떠듬떠듬 헷갈리고 마니 말이다. 더구나 요즘 세계사는 '서양(유럽)중심사'를 벗어나 '중동아시아사'와 '아메리카문명', 그리고 '이슬람문명'을 비롯해서 '인도사', '중국사', '한국사', '일본사'까지 아울러 소개하고 있기에 광범위한 세계사를 눈앞에 두고서도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지 감도 잡을 수 없게...아니 주눅이 들 정도로 방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방대한 역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쿠르트 50병을 마시는 방법'으로 표현해보려 한다. 요쿠르트 한 병은 누구나 부담없이 단번에 쭉 들이킬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병조차 뚜껑을 까서 마시기보다 밑을 이빨로 뜯어서 쪽쪽 빨아먹거나 꽁꽁 얼려서 반으로 잘라 먹는 '기이한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역사공부를 해서는 결코 인류역사 오천년을 총망라하여 정리할 도리가 없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요쿠르트 한 병'을 가볍게 쭉 들이키는 상상을 하길 바란다. 이렇게 '한 병 마시기'가 너무나 수월한 관계로 '다섯 병'을 한 팩으로 포장된 상태에서 빨대를 하나씩 꽂아 쪽쪽 빨아먹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도전(?)의식이 샘 솟았나보다. 다섯 병도 손쉽게 들이키는데 '50병'을 마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요쿠르트 50병을 커다란 대접에 부어서 한 번에 들이키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 한 병에 50밀리리터라고 해도 열 병이면 500밀리리터이고, 그렇게 다섯 배를 하면 2500밀리리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커다란 생수 1리터(1000밀리리터)를 2병 반을 원샷하는 셈이다. 이게 보통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역사공부가 그렇다. 단원 하나하나는 외울 것도 만만해보이고, 이해해야 할 것도 고만고만해보이지만 '역사책' 10권을 통째로 외우고 이해하려 들면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다면 요쿠르트 50병을 모두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서 '한 번에 한 병씩' 꾸준히 마시면 50병은 물론, 100병도 거뜬히 마실 수 있게 된다. 역사공부는 무릇 이렇게 하는 것이다.
<처음 세계사 5>에는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를 다루고 있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점차 퍼지게 되었는데, 한 가지 분야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다함께 성장발전한 것이 큰 특징 중 한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학문, 예술, 문화 등등' 다방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르네상스의 특징'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인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럽의 중세 1000년 동안 '신학 중심'으로 발전을 해오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눈 뜨게 한 것이 르네상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무너지고 고대의 그리스로마신화 때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종교개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가톨릭 교회'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들게 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종교개혁'은 루터의 반박문을 시작으로 스위스의 츠빙글리, 프랑스의 칼뱅, 그리고 영국의 국교회와 청교도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유럽은 '구교'와 '신교'가 대립 아닌 대립을 하게 되고, 같은 신앙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갈등으로 커지더니 급기야 '종교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이즈음 서유럽국가들은 '인도 항로'를 새로 개척하기에 열을 올린다. 지중해로부터 인도로 갈 수 있는 길목을 '이슬람세력'이 가로막고서 통행료(관세)를 거두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면 이러한 부대비용을 절약하고서 인도의 향신료로 얻을 커다란 이득을 새로 챙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부풀어올랐기 때문이다. 이 당시 과학사의 업적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증거가 유럽인들의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고 말이다. 그래서 용감한 모험가들은 지중해를 벗어나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와 대서양을 건너 지구 한바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 가운데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데 성공했고,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젤란은 실제로 세계 일주에 성공(마젤란은 필리핀 원주민에게 살해)하는 위업을 달성하며 '신항로 개척'에 큰 공을 세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메리카 문명'은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는데, 다행스럽게(?) 마야문명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멸망했지만, 아스텍과 잉카 문명은 유럽인이 가지고 온 '총, 균'에 의해 원주민 대학살이 벌어지고 만다. 이렇게 아메리카의 자원을 강탈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스페인)은 '서구제국주의의 첫 번째 만행'을 저지르며 성장발전하게 된다.
한편, 이슬람 문명은 중동과 아프리카 북부를 넘어 '중앙아시아'와 '인도'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는데, 각각 '오스만 제국',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이다. 앞서 '칭기즈 칸의 정복전쟁'으로 헝가리까지 뻗어갔던 '몽골제국'은 칭기즈 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여러 개의 '칸국'으로 나뉘게 되었고, 몽골군에게 크게 놀라 휘청거렸던 이슬람세력은 '오스만 제국'으로 다시 자리를 잡게 되고, 칸국으로 자리 잡았던 '몽골의 후예들'은 각각 중앙아시아를 발판삼아 '티무르 제국'으로, 인도로 뻗어나간 이들은 '무굴 제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티무르 제국은 한 세대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인도에 정착한 '무굴 제국'은 인도의 힌두교와 결합하면서 인도의 왕조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원나라를 세워 중국땅에 정착한 '몽골의 후예'는 한족의 저항에 밀려 '북원'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 '명나라'가 새워지게 된다. 그렇게 명태조 '주원장'은 강력한 통치력으로 자금성도 세우며 강력한 황권을 세우지만, 그가 죽자 '후계 문제'에 휩싸여 형제들이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왕권 다툼'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명나라의 기세는 날로 커지게 되고, 급기야 '정화 함대'가 아프리카까지 조공무역을 성사시키면서 전세계에 '화교'를 정착시키는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즈음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로 건국되었는데, 세종대에 이르러 나라기틀을 다잡더니 '과학기술, 문화예술'이 날로 성장하여 동아시아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여기에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큰 업적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선조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이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끝으로 일본은 혼란기를 맞이하는데, 이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전국의 다이묘들이 군웅할거를 시작하더니 점차 '힘이 쎈 영주(다이묘)'를 중심으로 새 판이 짜여지더니 급기야 서로 뺏고 빼앗는 전쟁이 일상처럼 벌어지게 된다. 때마침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조총'이 전해지면서 전쟁을 직업으로 삼는 '상비군'이 결성되는데, 이를 최초로 전쟁에 잘 활용하였던 이가 바로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통일의 위업을 앞에 두고서 '혼노지의 변(믿었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함)'을 마지막으로 수명을 다하게 되고, 노부나가의 복수에 앞장 섰던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일본의 전국통일은 달성이 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상비군'을 적절히 해체하지 못한 히데요시는 '대륙정벌'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는데, 그 첫 단추로 '정명가도(명나라를 치려하니 조선은 길을 내주어라)'를 핑계삼아 대대적인 조선침략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