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무지 무의식의 저널 Umbr(a)
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외 지음, 강수영 옮김 / 인간사랑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백하건데 나 역시 '철학적 사유'가 쉽지는 않다. 허나 철학도 읽다보면 그닥 어렵지 않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도 철학 따위가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철학자, 그들'이 쓰는 용어가 낯설기 때문이다. 일상용어와는 사뭇 다른 뜻을 지니고, 단어만 보아서는 그 뜻을 쉬이 짐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물론 '정신분석학'은 과학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과학적 연구를 거듭한 분야인 까닭에 정신분석적인 용어도 '철학용어'만큼 낯설고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을 포함한 [Umbr(a)](이하 '엄브라') 시리즈도 정신분석학의 대가들이 참여하였기에 꽤나 난해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독자들의 접근을 '방해'하고 있지만, 그속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고민하던 내용들이 촘촘히 담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리뷰도 그런 발견의 일부로 봐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때아닌 '검찰공화국'을 경험하고 있다. 바로 검사출신 대통령이 출현했기 때문인데 이런 '법조인 출신'이 정치를 하니 대한민국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일명 '눈 떠보니 후진국'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 셈이다. 분명 판검사 나으리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야 하고 어릴 적부터 수재소리를 듣던 '똑똑한 양반'임에 틀림없을 텐데, 어째 하는 일마다 '얼뜨기'처럼 엉망이고, 잘 하는 것이라곤 '저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재주 뿐이란 말이냐. 어느 방송인의 말마따나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에서 '검사출신'은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속내가 얼마나 시커먼지 이번 경험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뼈저리게 느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의 핵심은 제목에 있다. 책 내용의 '현란함'이 결국 '제목'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법의 무지'는 '법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뜻이고, 동시에 '법은 오직 '사건의 경위'만을 따질 뿐, '개인의 사정'에는 눈을 감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법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우리는 '법이 공정하다'고 느끼게 된다. 개개인의 사정에 무지하고 오직 사안에만 집중해서 법을 어겼으면 벌을 주고, 법을 어겼다고 보기 어려우면 무죄를 선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법적 판결'이 이상하다고 느끼곤 한다. 분명 사형을 받아 마땅한 범죄인이 지난한 법정다툼을 거쳐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아 뻔뻔스럽게도 고개를 쳐들고 부끄럼도 없이 당당한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반성의 기미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공공연하게 밝히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희화화한 <시카고>라는 뮤지컬을 관람하기도 하잖느냔 말이다. 반면에 우발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뿐인데 너무나도 과한 형벌을 받는 억울한 이들도 많고, 자신보다 남을 위하고 사리사욕을 버리고 나라사랑을 더 많이 했을 뿐인데 부정한 정치인의 '표적수사'의 희생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법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뜻밖에도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오히려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넘치도록 많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법의 판결'에 순순히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 법은 우리 모두가 합의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따라야만 하고, 만약 법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폐기하거나 고쳐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다'라면서 자신에게 언도된 부당한 판결에 당당히 맞서 독배를 마셨다. 이는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를 죽게 만든 법은 '악법'이 틀림없으니 마땅히 고쳐야 한다는 의미였고, 법을 악용해서 선량한 희생자를 만든 '장본인'들을 더욱더 부끄럽게 만드는 대철학자의 용기있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게 되면, 우리는 법 자체의 문제점보다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 문제가 더 많음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법의 무지'는 법에 관해서 무지한 사람들 앞에서 버젓이 법을 악용하는 세력이 진짜 나쁜 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문제는 우리가 의외로 법에 무관심하며 '법적절차'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기 늘 속고 당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법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법에 대해서 잘 아는 국민 앞에서는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지녔다한들 '법조인 관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좀처럼 해결하기 쉽지 않은 까닭은 '법률용어'가 너무 난해하다는데 있다. 또한 '법적절차'가 대부분 오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반짝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소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 대다수가 생업으로 먹고 살기 바쁜데 언제 일일이 '법조항과 절차'를 속속들이 따져가며 지켜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법조인들의 사기행각'과 '국민들을 우롱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날 뿐이다. 과정을 감추고 결과만 통보하는 일이 계속 반복하니 몇몇 식견있는 국민들의 반발이 먹혀 들어가겠느냔 말이다.

 

  그럼 효과적인 대안은 없는 걸까? 대다수의 국민들이 '법에 관해 무지'하고, 법조인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과정은 쉬쉬하고 결과만 통보하는 꼼수 앞에 선량한 국민들은 그저 '눈 뜨고 코 베는 일'을 그저 당하고만 있어야 하느냔 말이다. 더구나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 입장에서 시시콜콜히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럴 때 유일한 방법은 딱 하나다. 결과를 통보할 때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명백백한 시비를 가리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재차', '삼차', '사차'...온국민들이 이해할 때까지 '해명'하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그 결과에 만족하는 국민들이 과반이 넘을 때까지 국가는 의무적으로 해명해야 한다고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 그럼 적어도 '꼼수'는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비열한 '정적 죽이기'로 멀쩡한 법을 악용하는 일도 근절될 것이다.

 

  그럼에도 애매한 일은 여전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사례를 들고 있는 '안티고네의 비극'처럼 말이다. 국법을 따르자니 천륜을 어기게 되고, 인간답게 행동하려니 조국을 배신하게 되는 일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 책의 '정신분석적인 내용들'은 대부분 이렇게 애매모호한 사항에 대한 '가치관 논쟁'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 논쟁의 결은 죄다 '철학적 사유'로 도배했다. 그러니 일반독자들은 철학논쟁에서 살짝 비켜나서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예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시인의 사회
N.H 클라인바움 지음, 한은주 옮김 / 서교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논란이 되는 점부터 말해보련다. 닐이라는 학생이 자살을 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한창 꽃피울 고등학생 청년이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한밤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닐은 웰튼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학업성적도 우수했으며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여러 동아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범생으로 미국의 명문대인 하버드 의대에 입학할 것으로 점쳐질 정도 전도유망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웰튼고에 존 키팅이라는 국어선생이 새로 부임하면서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비밀조직에 가입한 것으로 밝혀졌고, 부모님 몰래 연극 오디션을 보고 연극무대의 초연을 펼친 뒤에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축하를 받으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지만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못했던 관계로 아버지의 꾸중을 들었던 그날밤에 자살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유명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이미 보았기에 때문이다. 그래서 사건 정황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닐의 죽음'은 강압적인 아버지의 교육관이 문제의 발단이었고, '지옥고(Hellton)'라고 불리는 '웰튼고'의 엄격한 교육시스템이 한 몫 단단히 한 사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끔찍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존 키팅'이라는 한 줄기 희망이 등장했던 것이다. 딱딱하기만 한 수업스타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음'을 추구하는 키팅의 교육관이 '성적지상주의'로 일관하는 웰튼고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비밀조직이 생겨나면서 일부 학생들이 키팅의 교육관을 몸소 실행에 옮기게 되었고, 그 조직원 가운데 리더였던 닐은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최대 걸림돌이었던 '아버지의 욕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만 생을 마감하였던 것이다.

 

  닐의 아버지가 갖고 있던 욕망이란 하나 뿐인 자식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끔 전폭적인 뒷바라지는 마다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그 뒷바라지가 닐에겐 '끔찍할 정도의 억압'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닐의 의견이나 생각 따위는 듣지도 않은채 아버지가 이미 정해놓은 '닐의 미래(성공)'를 강제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말이다. 닐은 이런 아버지의 강압에 늘 불만이었지만 '자식의 성공이 보장된 삶'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 앞에서 한마디 의견도 내놓지 못한채 그저 묵묵히 따르고만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직 어린 학생에 불과하니 어른들이 말하는 '성공비결'에 반박할 다른 의견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닐 자신도 훗날 의대를 졸업한 뒤에 '역대 연봉'을 받으며 부와 명예를 한껏 누리는 삶이 싫지 않았기에 그저 부모님의 뜻에 따랐을 뿐이다. 정작 닐 자신은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것이 '성공지름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쓸데없는 일'이라 말하는 부모님의 말씀과 명문고 임직원의 조언 때문에 뭐라 반박하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을 억누르며 공부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이런 차에 '키팅 선생님'이 웰튼고에 부임했다. 키팅도 웰튼고 졸업생이었으며 명문대인 옥스포드 수석장학생으로 명예로운 졸업한 뒤에 다시 모교에 부임했던 것이다. 그래서 웰튼고교의 교장선생도 키팅 선생님에 대해 기대가 컸다. 워낙 '전통'과 '명예', '규율', '최고'를 추구하는 학교였으니 그런 쪽으로 스팩이 빵빵한 키팅 선생님이 모교에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명문고의 위상을 더욱 드높이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팅의 생각은 달랐다. 오직 명문대 진학율만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전통'이라 내세우며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즐거움' 대신 지옥과 같은 '입시교육'만을 강요하는 웰튼의 교육방식과는 정반대의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키팅은 첫 수업에서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라는 라틴어 격언을 수업했다.

 

  '오늘을 즐겨라',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뜻을 가진 '카르페 디엠'에는 사실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다. 이어서 말하면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다시 말해,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뿐이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하고 오늘을 즐기라는 뜻이다. 이 두 문장을 줄이면 '바로 지금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모든 수업의 핵심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뜻과는 달리 학업만을 강요하던 학교와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맹목적인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영감'을 선사하기도 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래야 행복할 수 있고, 나중에 후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 닥친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 '어떤 삶'을 살든 후회할 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닐이 무사히(?) 하버드 의대를 마치고 '억대 연봉의 의사선생'이 되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남이 시키는대로'만 하다가 어른이 되었다면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 닐의 아버지가 바라던대로 의대에 진학했으나 더는 적성에도 맞지 않고 '학업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중도포기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뒤에 어른이 되었다면, 학창시절에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분노만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반면에 닐이 학업에 충실하면서도 '하고팠던' 연극무대에 마음껏 올랐더라면 무사히 의사선생이 된 뒤에도 그때를 추억하며 행복했을 것이고, 반대로 나락으로 떨어진 삶으로 전락했을지라도 행복했던 추억 때문에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한 삶(카르페 디엠)'은 중요한 것이다. 아직 미성숙한 학생의 '선택'일지라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닐을 죽음으로 내몰고 키팅선생을 사건의 주동자(?)로 떠넘겨 학교에서 쫓아내려는 교장과 닐의 아버지는 나쁘기만 할까? 닐이 불쌍하니 닐의 아빠는 나쁘고, 키팅 선생이 훌륭하니 교장의 낡은 신념은 폐기처분해야 마땅하냔 말이다. 우리는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명심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닐의 아빠도 웰튼고의 교장도 나쁘지 않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명문고-명문대-상류사회'라는 성공의 지름길을 설계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면 인간은 '욕망을 지향'하기 마련이고, '보장된 성공시스템'을 만들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적극적인 '관리'를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기회제공', '적극관리'를 전통이랍시고 모든 학생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밀어붙인 점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일망정 수많은 학생들을 '아이비리그'라는 명문대학에 비중있게 진학시킨 '검증된 방식'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리하면, 많은 독자들이 키팅선생님을 존경어린 시선으로 추종함에 따라 '웰튼고'와 같은 맹목적인 교육시스템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허나 인간은 욕망덩어리이고 '웰튼고'가 많은 이들에게 성공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면 '비난'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비판을 하고 시정을 요구한들 '키팅의 제자들'이 대성공을 거두어 사회의 지배구조를 싹 바꾸어놓지 않은 이상 욕망덩어리들을 배출하는 '웰튼고'와 같은 시스템은 꾸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어느 한 쪽이 무한하게 나쁘다는 비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적확한 비판의식을 키워 교육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웰튼의 장단점'과 '키팅의 장단점'이 서로 공정하게 경쟁하며 학생들의 본연에 맞게 각자의 꿈을 성장발전시켜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형성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우리의 교육시스템도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말았다. 허구헌 날 '대입제도'만 바꿔온 터라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걸고 한 판 도박을 걸게 만들었고, 이런 문제점을 바꿔보겠다고 '외국의 시스템'을 아무런 성찰없이 '우리의 현실'에 끼워맞추는 통에 정작 '우리 교육'은 설곳을 잃고 휘청거릴 뿐이었기 때문이다. 말로는 '백년대계'라면서 흔들리지 않는 교육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곧잘 말한다. 허나 대한민국 입시정책은 해마다 바뀌었다. 윤석열의 '킬링문항 삭제' 지침은 희대의 촌극이었고 말이다. 변별력을 무색하게 만들면 학생들의 실력검증은 무엇으로 하란 말인가? 만일 '킬러문항'이 정말 문제였다면, '대입시험'을 없애고 무시험제도로 입학허가를 한 뒤에 대학자체적으로 무한경쟁을 시키는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 또한 문제점이 많은 방식이지만 말이다.

 

  한편, 우리에겐 여전히 '키팅 선생님' 같은 분들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우리 학생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학생의 희망찬 미래를 '자신의 신념'으로 삼아 불철주야 교육에 매진하는, 그런 선생님들 말이다. 그리고 제발 그런 선생님들이 소신껏 교육을 펼칠 수 있도록 '갑질하는 학부모들'은 좀 꺼져줬으면 좋겠다. 선생을 존경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느냔 말이다. 몰지각한 학부모들 밑에서 커온 어린 학생들이 선생을 우습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그렇다. 제발 우리 선생님들이 '검은 리본'을 거둘 수 있도록 관심을 모았으면 싶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꼭 멋진 선생님이 되시길 간곡히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또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역시나 알라딘은 열심히 리뷰하면 보답을 받는군요.

이래서 알라딘알라딘 하는가 봅니다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9 : 고도를 기다리며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9
주진 글, 박강호 그림, 손영운 기획, 사무엘 베케트 원작 / 채우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현대극'의 시초로 꼽는 작품이며, '부조리극'으로도 유명하다. 어찌보면 미술의 '초현실주의'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난해한 느낌을 주는 것이 '현대의 부조리극'이라고 하지만 '무논리 속의 논리'를 느낄 수만 있다면 '현대극'만큼 재미를 주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무논리 속의 논리'라는 표현은 애초에 숨겨놓지 않은 물건을 찾아내는 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이미 널리 알려진 극의 내용이라 굳이 스포일 것도 없는 사실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극에서 '고도'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말이다. 이를 두고 돌아오지도 않을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는 인물들의 넋두리만 실컷 구경한다며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극의 예리함과 명철함에 반하게 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에는 이 책처럼 '만화형식'이 아니라 직접 연극을 관람하며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서 절절하게 느끼거나, 극본을 읽으며 무한한 상상력과 더불어 불현듯 깨우침을 얻는 방법이 훨씬 탁월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대강의 내용을 파악했다면 연극관람이나 극본읽기를 권하는 바다.

 

  암튼, 극의 줄거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인물이 '고도'라는 이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줄거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건 '고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강의 줄거리를 쭈욱 지켜보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유심히 듣다보면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도'가 무엇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단은 짜증이 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분명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사람일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허나 정작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다 극의 중반쯤 지나면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 정말 사람인가? 라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왜냐면 이 극에서는 애초부터 '시간의 흐름'이 없기 때문이다. 해가 떠있으니 '낮'인건 알겠는데 아침인지 점심인지 해질녘인지 분명치가 않다. 그저 하룻밤을 지새운 것 같은데도 극중 인물은 50여년 전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기다리던 이들이 죽어서 떠드는 것인지 살아서 나불거리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이 뒤죽박죽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횡설수설하다가도 딱 한가지 사실을 떠올리며 모두가 수긍하고 만다. 그건 바로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짐작했듯이 극중 인물들 가운데 제대로 되 인물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는 '블라디미르'인데, 다른 인물들의 엉뚱한 이야기에 그조차 말의 앞뒤가 꼬이고 말아 극의 내용은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런 엉터리 말 가운데 정곡을 찔리는 듯한 말들이 툭툭 튀어나오기에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에 수많은 찬사를 보내고 있고, 서울대에서도 100권의 선정도서로 손꼽은 것이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절대 '똑같은 감상'으로 읽어낼 수 없기에 독보적인 작품인 것이다. 만약 이 극본을 시험문제로 낸다면 '정답없는 답안'속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한 답안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명문대학일수록 <고도를 기다리며>를 독보적으로 해석해낸 유능한 학생을 탐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너무 뻔한 답안은 피하기를 권한다. 이미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식의 해석은 누군가가 먼저 써먹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누구'를, 혹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목적'한 바도 없이 순수하게 '기다림'의 순기능만을 얻기 위해서 마냥 기다리는 것일까? 이를 테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처럼 실제로는 너무너무 궁금해서 얼른 소식을 접했으면 좋아 죽겠다는 심정이지만, 행여나 '나쁜 소식'이라고 전해질까 두려워서, '소식 없음'을 희소식으로 여기며 묵묵히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시대적 배경은 '2차세계대전 종반'이고, 공간적 배경은 '폴란드'라고 널리 알려진 탓에 작품속의 '고도'는 독일에게 억압받고 있는 폴란드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련군(해방군)'이라는 해석도 있다. 허나 현대극의 특징은 '배경없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그런 해석이 '정답'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렇기에 관객이나 독자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적절한 배경을 설정한다면 각자 나름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단지 그 '고도'가 아직 오지 않고 있음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여긴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럼, <고도를 기다리며>는 달리 보이게 될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불명확해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고도'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불행하거나 절망에 빠져있지 않고,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한 기다림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더더 나아가 굳이 '고도'가 찾아오던 말던 아무런 상관없이 나 자신에게 만족하며 즐거울 수 있다면 가히 '해탈의 경지'에 다달았다고 주위의 부러움을 사게 될 것이다. 때론 '고도'가 정말로 찾아왔다는 상상을 해도 좋다. 마치 아기가 즐겁게 놀다가도 퇴근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만나듯이 말이다. 그 순수하고 해맑은 아기의 표정이 바로 '고도'가 참으로 돌아온 순간일 것이라는 상상이 즐겁다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로 보는 수의사의 세계 한빛비즈 커리어툰 1
수의사 기역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소개를 먼저 하는 게 순서겠지만, 글쓴이가 이 책을 쓰게 된 까닭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할 듯 싶다. 독자인 내가 보아도 십분 공감이 가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수의사'란다. 그런데 미래의 '수의사 지망생들에게 수의사 하지 말라'고 이 책을 쓴 목적을 밝히고 있다. 출판사가 책을 출간해놓고서는 '이 책 읽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말이라서 의아해했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까닭을 듣고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기 때문이다.

 

  까닭인 즉슨, 자신은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가 된 것은 맞는데, 어렵사리 공부를 마치고 '동물병원'을 개업해서 열심히 진찰하고 치료해서 아이를 건강하게 살려낸 뒤에 '진료비+치료비'를 청구하니, "너네는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하는 거 아니냐? 무슨 동물병원비가 이렇게 비싸냐? 사랑한다면 봉사하는 셈치고 '무료'로 해주던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 자선사업한다는 셈치고 '저렴한 비용'을 청구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늘어놓는 뻔뻔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란다. 그런 식이면 직장인들은 죄다 '무료봉사'를 해야 하고, 저같은 놈들은 죄다 '꽁'으로 먹겠다는 심보 아니겠느냔 말이다. 나라사랑해서 나라 지키는 군인도 '무료봉사'해야 하고, 도둑 잡는 걸 너무 좋아해서 경찰도 '무료봉사'해야 하고, 불끄는 걸 너~무 좋아해서 하는 일이니 소방관도 목숨 걸고 화재 진압한 뒤에 '무료봉사'해야 하느냔 말이다. 그리고 저같은 놈들은 버스운전, 비행기운전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꽁으로' 버스 타고 비행기 타도 괜찮다는 심보 아니냔 말이다. 이런 놈들은 두 눈으로 안드로메다를 구경할 때까지 싸다구를 때려야 정신을...쿨럭쿨럭

 

  암튼, 이 책은 '수의사에 관한 모든 것'을 귀엽고 재밌는 교양툰으로 제작해서 누구라도 쉽게 읽고 궁금증을 풀어 낼 수 있는 유익한 책이라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수의사가 꿈인 친구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고,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꼭 읽으면 좋을 책이고, '수의사'라는 직업에 관해서 몹시 궁금해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필독해야 하는 책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너무 쉽고 재밌기에 읽으면 바로 '수의사'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책의 찐 가치는 '직업의 세계'를 낱낱이 파헤친 책이 왜 필요한지, 그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그래야 이 책과 마찬가지로 더욱더 '다양한 직업'에 관한 교양툰이 나올 테니까 말이다.

 

  이쯤해서 '직업'이란 무엇인지 잠깐 짚고 넘어가겠다. 우리가 직업을 구해야 하는 까닭은 단연코 '돈'을 벌기 위해서다. 어엿한 성인이 되면 당근 '돈벌이'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하니 더 이상의 설명은 사양하겠다. 그렇다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해도 괜찮을까? 그건 아니다. 적어도 윤리적, 도덕적으로 부끄럽지 않을 일을 해야 하며, 당연히 '합법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합법적'이면서도 남을 돕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보람'찬 일을 한다면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돈도 벌고, 보람도 얻었다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여 '자아실현'도 실천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렇게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돈+보람+자아실현]의 삼박자가 어우려지면 더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 세 가지 가운데 한쪽으로 치중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엔 후회없는 인생을 설계하기 위한 최적의 직업을 선택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다시 '수의사'로 돌아와서 적용시켜보자. 수의사는 평균연봉 6천만 원 정도라고 하니 돈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또한,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병들어 고통받고 아픔 아이들을 최선의 노력으로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일을 하니 '수의사'로서 보람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사랑하고 애정을 쏟게 되었고, 그래서 '수의사'라는 목표를 세우고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어엿한 수의사로 사회에 나가 공헌을 하니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고 할 수 있으니 '자아실현'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명성을 더해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수의사가 되어 영애로운 삶을 사는 것만은 절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수의사가 되어 가장 힘든 점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너무나도 천박하다는데 있다. 사람새끼를 살리는 의사나 개새끼를 살리는 의사나 똑같이 '생명을 구하는 일'인데, 생명에 귀천이 있다고 여겨 '수의사'를 낮잡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너무나도 품위없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병든 강아지를 죽게 내버려두고 새 강아지를 사겠다는 '셈법'은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망가진 장난감이라도 그 앞에선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하나뿐인 생명의 소중함'을 앞에 두고서 어찌 감히 할 소리냔 말이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나불거리면 안 된다고 했거늘...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수의사를 앞에 두고서도 이런 몰지각한 말들을 나불대는 싸구려 주둥이를 나불나불...쿨럭쿨럭

 

  비단 수의사에게만 일어나는 천박함이 아니니 하는 말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존중받고 싶거든 남이 하는 일을 하찮게 보아선 안 된다. '손님은 왕'이 아니라 '그냥 손님'일 뿐이다. 예의 없는 손님이라면 사형이 답이다. 사형이 너무 심한 처사라면 '종신형(완전한 격리)'으로 감형해도 좋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무뢰한에겐 극형도 아까울 뿐이고, 재산몰수형을 언도해 평생 구걸하고 빌어먹게 만들어야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겠다. 어따대고 예의를 밥말아드시는지..증말

 

  어쨌든 간에 '수의사 A to Z'에 충실한 교양툰이며, 동물애호가들에겐 '교양계발서'가 되겠고, 수의사가 꿈인 어린 친구들에겐 모든 궁금증을 속속 풀어줄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