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9 : 고도를 기다리며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9
주진 글, 박강호 그림, 손영운 기획, 사무엘 베케트 원작 / 채우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현대극'의 시초로 꼽는 작품이며, '부조리극'으로도 유명하다. 어찌보면 미술의 '초현실주의'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난해한 느낌을 주는 것이 '현대의 부조리극'이라고 하지만 '무논리 속의 논리'를 느낄 수만 있다면 '현대극'만큼 재미를 주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무논리 속의 논리'라는 표현은 애초에 숨겨놓지 않은 물건을 찾아내는 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이미 널리 알려진 극의 내용이라 굳이 스포일 것도 없는 사실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극에서 '고도'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말이다. 이를 두고 돌아오지도 않을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는 인물들의 넋두리만 실컷 구경한다며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극의 예리함과 명철함에 반하게 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에는 이 책처럼 '만화형식'이 아니라 직접 연극을 관람하며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서 절절하게 느끼거나, 극본을 읽으며 무한한 상상력과 더불어 불현듯 깨우침을 얻는 방법이 훨씬 탁월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대강의 내용을 파악했다면 연극관람이나 극본읽기를 권하는 바다.

 

  암튼, 극의 줄거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인물이 '고도'라는 이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줄거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건 '고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강의 줄거리를 쭈욱 지켜보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유심히 듣다보면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도'가 무엇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단은 짜증이 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분명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사람일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허나 정작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다 극의 중반쯤 지나면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 정말 사람인가? 라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왜냐면 이 극에서는 애초부터 '시간의 흐름'이 없기 때문이다. 해가 떠있으니 '낮'인건 알겠는데 아침인지 점심인지 해질녘인지 분명치가 않다. 그저 하룻밤을 지새운 것 같은데도 극중 인물은 50여년 전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기다리던 이들이 죽어서 떠드는 것인지 살아서 나불거리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이 뒤죽박죽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횡설수설하다가도 딱 한가지 사실을 떠올리며 모두가 수긍하고 만다. 그건 바로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짐작했듯이 극중 인물들 가운데 제대로 되 인물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는 '블라디미르'인데, 다른 인물들의 엉뚱한 이야기에 그조차 말의 앞뒤가 꼬이고 말아 극의 내용은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런 엉터리 말 가운데 정곡을 찔리는 듯한 말들이 툭툭 튀어나오기에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에 수많은 찬사를 보내고 있고, 서울대에서도 100권의 선정도서로 손꼽은 것이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절대 '똑같은 감상'으로 읽어낼 수 없기에 독보적인 작품인 것이다. 만약 이 극본을 시험문제로 낸다면 '정답없는 답안'속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한 답안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명문대학일수록 <고도를 기다리며>를 독보적으로 해석해낸 유능한 학생을 탐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너무 뻔한 답안은 피하기를 권한다. 이미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식의 해석은 누군가가 먼저 써먹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누구'를, 혹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목적'한 바도 없이 순수하게 '기다림'의 순기능만을 얻기 위해서 마냥 기다리는 것일까? 이를 테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처럼 실제로는 너무너무 궁금해서 얼른 소식을 접했으면 좋아 죽겠다는 심정이지만, 행여나 '나쁜 소식'이라고 전해질까 두려워서, '소식 없음'을 희소식으로 여기며 묵묵히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시대적 배경은 '2차세계대전 종반'이고, 공간적 배경은 '폴란드'라고 널리 알려진 탓에 작품속의 '고도'는 독일에게 억압받고 있는 폴란드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련군(해방군)'이라는 해석도 있다. 허나 현대극의 특징은 '배경없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그런 해석이 '정답'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렇기에 관객이나 독자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적절한 배경을 설정한다면 각자 나름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단지 그 '고도'가 아직 오지 않고 있음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여긴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럼, <고도를 기다리며>는 달리 보이게 될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불명확해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고도'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불행하거나 절망에 빠져있지 않고,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한 기다림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더더 나아가 굳이 '고도'가 찾아오던 말던 아무런 상관없이 나 자신에게 만족하며 즐거울 수 있다면 가히 '해탈의 경지'에 다달았다고 주위의 부러움을 사게 될 것이다. 때론 '고도'가 정말로 찾아왔다는 상상을 해도 좋다. 마치 아기가 즐겁게 놀다가도 퇴근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만나듯이 말이다. 그 순수하고 해맑은 아기의 표정이 바로 '고도'가 참으로 돌아온 순간일 것이라는 상상이 즐겁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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