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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ㅣ 무의식의 저널 Umbr(a)
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외 지음, 강수영 옮김 / 인간사랑 / 2020년 7월
평점 :
고백하건데 나 역시 '철학적 사유'가 쉽지는 않다. 허나 철학도 읽다보면 그닥 어렵지 않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도 철학 따위가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철학자, 그들'이 쓰는 용어가 낯설기 때문이다. 일상용어와는 사뭇 다른 뜻을 지니고, 단어만 보아서는 그 뜻을 쉬이 짐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물론 '정신분석학'은 과학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과학적 연구를 거듭한 분야인 까닭에 정신분석적인 용어도 '철학용어'만큼 낯설고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을 포함한 [Umbr(a)](이하 '엄브라') 시리즈도 정신분석학의 대가들이 참여하였기에 꽤나 난해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독자들의 접근을 '방해'하고 있지만, 그속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고민하던 내용들이 촘촘히 담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리뷰도 그런 발견의 일부로 봐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때아닌 '검찰공화국'을 경험하고 있다. 바로 검사출신 대통령이 출현했기 때문인데 이런 '법조인 출신'이 정치를 하니 대한민국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일명 '눈 떠보니 후진국'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 셈이다. 분명 판검사 나으리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야 하고 어릴 적부터 수재소리를 듣던 '똑똑한 양반'임에 틀림없을 텐데, 어째 하는 일마다 '얼뜨기'처럼 엉망이고, 잘 하는 것이라곤 '저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재주 뿐이란 말이냐. 어느 방송인의 말마따나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에서 '검사출신'은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속내가 얼마나 시커먼지 이번 경험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뼈저리게 느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의 핵심은 제목에 있다. 책 내용의 '현란함'이 결국 '제목'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법의 무지'는 '법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뜻이고, 동시에 '법은 오직 '사건의 경위'만을 따질 뿐, '개인의 사정'에는 눈을 감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법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우리는 '법이 공정하다'고 느끼게 된다. 개개인의 사정에 무지하고 오직 사안에만 집중해서 법을 어겼으면 벌을 주고, 법을 어겼다고 보기 어려우면 무죄를 선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법적 판결'이 이상하다고 느끼곤 한다. 분명 사형을 받아 마땅한 범죄인이 지난한 법정다툼을 거쳐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아 뻔뻔스럽게도 고개를 쳐들고 부끄럼도 없이 당당한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반성의 기미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공공연하게 밝히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희화화한 <시카고>라는 뮤지컬을 관람하기도 하잖느냔 말이다. 반면에 우발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뿐인데 너무나도 과한 형벌을 받는 억울한 이들도 많고, 자신보다 남을 위하고 사리사욕을 버리고 나라사랑을 더 많이 했을 뿐인데 부정한 정치인의 '표적수사'의 희생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법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뜻밖에도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오히려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넘치도록 많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법의 판결'에 순순히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 법은 우리 모두가 합의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따라야만 하고, 만약 법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폐기하거나 고쳐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다'라면서 자신에게 언도된 부당한 판결에 당당히 맞서 독배를 마셨다. 이는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를 죽게 만든 법은 '악법'이 틀림없으니 마땅히 고쳐야 한다는 의미였고, 법을 악용해서 선량한 희생자를 만든 '장본인'들을 더욱더 부끄럽게 만드는 대철학자의 용기있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게 되면, 우리는 법 자체의 문제점보다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 문제가 더 많음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법의 무지'는 법에 관해서 무지한 사람들 앞에서 버젓이 법을 악용하는 세력이 진짜 나쁜 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문제는 우리가 의외로 법에 무관심하며 '법적절차'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기 늘 속고 당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법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법에 대해서 잘 아는 국민 앞에서는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지녔다한들 '법조인 관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좀처럼 해결하기 쉽지 않은 까닭은 '법률용어'가 너무 난해하다는데 있다. 또한 '법적절차'가 대부분 오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반짝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소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 대다수가 생업으로 먹고 살기 바쁜데 언제 일일이 '법조항과 절차'를 속속들이 따져가며 지켜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법조인들의 사기행각'과 '국민들을 우롱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날 뿐이다. 과정을 감추고 결과만 통보하는 일이 계속 반복하니 몇몇 식견있는 국민들의 반발이 먹혀 들어가겠느냔 말이다.
그럼 효과적인 대안은 없는 걸까? 대다수의 국민들이 '법에 관해 무지'하고, 법조인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과정은 쉬쉬하고 결과만 통보하는 꼼수 앞에 선량한 국민들은 그저 '눈 뜨고 코 베는 일'을 그저 당하고만 있어야 하느냔 말이다. 더구나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 입장에서 시시콜콜히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럴 때 유일한 방법은 딱 하나다. 결과를 통보할 때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명백백한 시비를 가리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재차', '삼차', '사차'...온국민들이 이해할 때까지 '해명'하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그 결과에 만족하는 국민들이 과반이 넘을 때까지 국가는 의무적으로 해명해야 한다고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 그럼 적어도 '꼼수'는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비열한 '정적 죽이기'로 멀쩡한 법을 악용하는 일도 근절될 것이다.
그럼에도 애매한 일은 여전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사례를 들고 있는 '안티고네의 비극'처럼 말이다. 국법을 따르자니 천륜을 어기게 되고, 인간답게 행동하려니 조국을 배신하게 되는 일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 책의 '정신분석적인 내용들'은 대부분 이렇게 애매모호한 사항에 대한 '가치관 논쟁'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 논쟁의 결은 죄다 '철학적 사유'로 도배했다. 그러니 일반독자들은 철학논쟁에서 살짝 비켜나서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예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