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중국, 초강대국이 될까? - 책가방문고 22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3
안토니 메이슨 지음, 전국사회교사모임 옮김, 백승도 감수 / 내인생의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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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3 : 중국, 초강대국이 될까?>  안토니 메이슨 / 전국사회교사모임 / 백승도 / 내인생의책 (2010)

[My Review MMCXXVIII / 내인생의책 10번째 리뷰] 우리 청소년들이 '사회교과'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폭을 넓힐 수 있는 백과사전식 배경지식을 넓히고자 기획한 [세더잘 시리즈]다.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을 따고서 참 많이 읽고 수업하는데 참고한 시리즈였다. 아쉽게도 100권을 채우지 못하고 시리즈는 마감되었지만, 애초에 기획한 '의도'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보탬이 되었으면 되었지 빼앗길 것은 없다는 생각 끝에 총정리를 하고자 한다. 딴에는 2025년인 '지금'에 와서 2010년의 '정보'로 가득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의문도 들 것이다. 다시 말해, 케케 묵은 지식 말고 '최신 정보'로 가득한 새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느냐는 반문도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옛 지식보다는 새 지식을 배우기 위해 '새책'을 선호하는 것이 좋은 것은 두 말 하면 입 아플 정도로 맞다. 그러나 옛날 책이라고 '쓸모 없는 지식'만 담겨 있다는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옛날 책이라도 책이 출간될 '시점'에는 늘 '최선 정보(지식)'를 담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간 만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정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틀린 정보를 습득해서 잘못 이해하는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서 '새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공공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대부분 폐기처분해야 옳을 것이다. 그럼 왜 폐기처분을 하지 않을까? 나름의 쓸모가 다 있기 때문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 쓸모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 중국은 서구 선진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급성장'을 하고 있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라면 중국도 미국과 맞대결 할 수 있을 정도로 '초강대국'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15년이 지난 25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위상은 추락했고, 중국의 패권굴기(崛起:우뚝 일어섬)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책의 질문인 '중국, 초강대국이 될까?'에 맞다고 답을 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세계질서를 선도하는 국가적 위상을 갖췄다기에는 중국이 너무나 편협하고 찌질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패악질이라고 비난 받을 짓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1세기 들어서 중국은 과연 어떤 나라였는가?

1980년대 이전까지 중국은 가난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사회주의 사상에 발목이 잡힌 '공산국가'라는 딱지를 벗어던지지 못했고, 산업시설은 후진적이었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낙후된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덩사오핑(등소평, 登小平)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도하면서 중국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고, 장쩌민(강택민, 江澤民)이 등장하면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의 시동을 걸었고, 90년대 이후부터 중국의 경제는 연 10%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며 쑥쑥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 홍콩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게 되었고, WTO(세계무역기구, World Trade Organization)에 가입한 이후에는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서서 전세계 각국에 'Made in China' 제품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을 정도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미국과의 무역전쟁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보여주고 있어서 중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것 때문에 크게 위축된 현재다. 그렇지만 이 책이 출간된 2010년 당시만 해도 유명 기업 제품 가운데 'Made in China'가 찍히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계속 성장하게 될 중국이 '초강대국' 대열에 손쉽게(?) 진입하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이다.

거기다 중국은 5000년 인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강국'이었기에 이런 예상에 청신호를 찬란히 켰던 것이다. 기원전 2000년 경의 '황하문명'으로 발원한 중국의 역사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 현대문명에 이르기까지 죽 이어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전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청나라 왕조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 100여 년간의 중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딛고 우뚝 일어선 중국이기에 더욱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폐쇄적인 공산주의 국가에 머물지 않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자유시장경제에 진입함과 동시에 엄청난 성장동력을 보여준 중국 경제의 위력에 전세계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0년대에 미국, 일본에 뒤이어 '경제대국 3위'에 입성한 저력을 보여줬으니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넓은 영토, 10억이 넘는 인구, 풍부한 지하자원, 거기에 '문화강국'인 중국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것인지 기대를 한 몸에 받음과 동시에, 공산주의 국가가 세계적 패권을 거머쥐었을 때 세계 각국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까지, 중국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던 것이다.

이 책도 바로 그런 궁금증에서 '중국의 초강대국 진입'에 귀추를 주목한 것이다. 그렇지만 25년 현재의 중국은 '초강대국' 진입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물론, 중국의 정치적·경제적 파워만 놓고 본다면 미국과 더불어서 '패권국가'로 우뚝 올라섰음을 의심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강국으로서의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했다는 데 있다. 엄청나게 치솟은 국가경쟁력에 비해 이를 따라잡지 못한 '중국인들의 추태'는 세계 각국에서 수없이 입증되었으며, 오죽하면 '중국관광객 사절'이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중국인들이 쓰는 돈'은 환영하지만, 교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한 중국인들'은 절대 환영받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대국(大國)답지 못하게 '열등감'에 쩔은 듯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서 '모든 것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입만 열면 떠들고 있다. 김치도 중국꺼, 한복도 중국꺼, 심지어 한글도 중국꺼라고 주장을 하면서 '한국이 이 모든 것을 중국으로부터 훔쳤다'는 억지주장을 아무 근거도 없이 나불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10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한목소리로 '맞다'고 우기는(?) 상황속에서 전세계인들은 한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비단 한국의 것만 '중국꺼'라고 우기는 것을 넘어서서 '전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들은 모두 '중국꺼'가 원조(?)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밀어붙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종이도 '중국 최초', 피라미드도 '중국 최초', 문자도 '중국 최강(그러니 '최초'가 당연!)', 언어도 '중국 최강(전세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니까!! 그러니 세계공용어로 영어가 아닌 중국어를 쓰는 것이 당연!!!)' 등등 뭐든 중국꺼가 최초, 최강이라고 갖다 붙이는 대결(?)이라도 붙은 것처럼 열을 올리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계인들을 상대로 중국인들은 다짜고짜 논쟁을 시작하며 목소리만 높일 뿐이니 피곤해진 전세계인들은 '중국인 사절'이라는 팻말을 세우고 대화단절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상식적이고 교양적인 중국인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민폐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있는 중국인들이 훨씬 더 많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책에서도 '문화강국'으로써의 중국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세계적으로 '중국문화'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버렸다. 1990년대까지 전세계에 큰 인상을 주었던 '홍콩영화(중국영화)'도 21세기 들어서는 더는 매력을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진정한 매력은 '남'이 추켜세울 때 발산되는 것이지 '나'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강조를 하게 되면 되려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매력적이어서 전세계가 인정해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이는 중국사회가 '폐쇄적인 탓'이 가장 클 것이다. 모든 정책은 중앙정부인 '공산당'이 알아서 밀어붙이고, 외국의 문화는 자국의 실리에 보탬이 되는 것만 '골라서(?)' 받아들이고, 건전한 비판마저 공산당이 '걸러서' 중국인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채 삐딱하게 발전한 탓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중국문화'가 아무리 멋져 보여도 '중국인들의 유치찬란한 자화자찬'으로 인해 매력이 감퇴될 뿐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문화가 제대로 성장할 턱이 없다.

이런 기형적(?)인 중국의 성장에 전세계인들은 우려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이 출간될 즈음인 201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의 높은 성장률'에 한껏 기대감을 품었지만, 중국은 성장한 만큼 인류공영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국가로 낙인이 찍히고 만 셈이다. 이런 중국이 세계 경제를 주름 잡는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는 것을 달가워할 세계인이 있을 턱이 없다. 당장 중국 경제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조차 '중국돈(차이나 머니)'만 환영할 뿐, 그에 걸맞는(?) '중국의 간섭'은 달가워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지고 있다. 일례로 중국의 시진핑(습근평, 習近平)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신 실크로드)' 구상에 협력하고 있는 나라들도 중국의 도움으로 경제성장을 꾀하려 하고 있지만, 원치 않는 중국의 간섭에 몸살을 앓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패권국가로 거듭나려는 중국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미중 무역전쟁'을 벌이며 'G2 국가' 대결 양상을 보여 줬다. 하지만 이 대결은 미국의 추락과 중국의 선방으로 인해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혼돈을 부추겼고, 급기야 중국을 상대로 압도적 파워를 보여주지 못한 트럼프 미정부는 도리어 '동맹국 압박'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패악질과 잇따른 헛발질로 인해 더욱더 추악한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다. 이제 초강대국으로 인정 받는 미국이 쓸쓸한 퇴장을 받기 일보 직전인데, 과연 미국은 퇴장을 극복하고 다시 '정상화'를 할 수 있을지, 중국은 그간 선방하긴 했지만, 그로 인한 중국의 약점 또한 여실히 드러난 만큼 이를 개선하고 재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 후속 조치가 궁금해진다.

이제 국제상황은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초강대국으로 불리던 미국의 위치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중국은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려다 좌초를 맞이한 형국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정치, 경제의 재편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새롭게 초강대국 자리에 우뚝 올라설 국가가 누구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현재까지 '초강대국 지위'는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도 옛날의 미국이 아니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말이다. 이런 혼란한 정국에서 새롭게 급부상할 나라는 과연 어느 나라일까? 그 나라가 대한민국이길 바란다. 물론 피지컬 파워에서 꽤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소프트 파워'에서 대한민국은 결코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전세계가 극찬하는 '한류열풍'은 괜한 것이 결코 아니었던 셈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까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를 내세운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이 초강대국이 되는 것에 반대할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아주 크게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십분 활용해서 세계적인 '선도국가'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강력한 역량과 영향력을 발휘하여 군림하지 않는 '패권국가'로 전세계를 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량을 2025년 현재 국제무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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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쟁 2.0 - AI 세계 전쟁의 실체와 대한민국의 전략 카드 AI 전쟁
하정우.한상기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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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쟁 2.0 : AI 세계 전쟁의 실체와 대한민국 전략 카드>  하정우, 한상기 / 한빛비즈 (2025)

[My Review MMCXXVII / 한빛비즈 173번째 리뷰] 요즘 관심사가 급등한 주제가 있다. 다름 아닌 '인공지능(AI)'이다. 책을 봐도, 너튜브를 봐도, 온통 '인공지능 이야기'가 쏟아지듯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입에서도 "학교에서 내준 과제 때문에 '인공지능' 관련 책으로 수업을 하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에 '인공지능의 개발속도'는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고, 너희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인공지능 비서'를 스마트폰처럼 전국민이 하나씩 가지게 될 거라고 예언을 하듯 말했는데, 얼추 비슷하게 때려 맞춘 듯 싶다. 그래서 AI 관련 책을 자주 읽게 되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우울한 기분이 들곤 한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AI는 어떤가? 참 편리한 '도구'처럼 느껴진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엄청나게 압축해서 '요점정리'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처리속도'다. 정말 순식간에 해버린다. 만약 '인간'이 그런 작업을 대신했다면 몇 달 며칠이 걸렸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AI는 그걸 불과 몇 분, 아니 '몇 초'만에 뚝딱 해버린다. 더구나 그 '정확도'는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다. 그러니 이런 'AI 기술'을 경쟁적으로 더 뛰어나게 개발에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결과, 곧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 인공 일반 지능)로 업그레이드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공지능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인간의 개입'이 필요했지만 '인공 일반 지능'이 탄생하는 순간부터는 더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없게 될 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능으로 스스로 판단하여 알아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얼마 남지도 않았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 잡아도 5년 이내에 AGI를 만들어낼 기술이 개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특이점(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게 되는 순간)'을 2040년 즈음으로 전망한 것에 비해서도 무려 10년 안팎으로 앞당긴 셈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여러 변수로 인해서 개발이 늦춰질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봤자 10~20년 사이에 인간보다 더 월등한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탄생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 AGI가 개발 완료되는 순간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걸까? 현재로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말하길, '인간의 노동'이 더는 필요치 않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를 두고 '다크 팩토리'로 부르고 있다. 말 그대로 '불 꺼진 공장'이란 얘긴데, 인공지능 로봇이 생산공장 라인에 깔리게 되면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것이고, 인간이 없는 공장이므로 환하게 불을 켜둘 필요도 없게 된 셈이다. 그것도 24시간 풀가동을 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의 노동을 '인공지능 로봇'이 대체하게 되면, 기업은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고, 그로 인한 다량의 상품 판매로 인해,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될 것 같지만, 노동에서 배제된 인간은 '임금(월급)'을 받지 못한 실업자로 전락하고 말테니, 상품을 살 여력이 없어서 경제는 폭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첨단기술력이 앞선 나라가 뒤쳐진 나라에게 수출을 해서 엄청난 수익을 얻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뒤쳐진 나라에서 '상품 경쟁력'에서 밀린 '자국 상품'이 팔리지 않을테니, 후진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위축될 것이며, 그로 인해 상품구매력도 현저히 낮아져서 심각한 무역불균형으로 인한 세계경제가 폭망하게 되는 시나리오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로봇세' 같은 것을 법률로 보장하고, 노동하지 않는 인간에게도 공평하게 '기본소득' 같은 명목으로 지급을 하게 되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풍족하게 주어질 리 만무하며, 딱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줄 것이 뻔하고, 삶의 질은 현저히 낮아져서 '우울, 자살' 등과 같은 일들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며, 이에 참지 못한 이들이 '시위, 폭동'을 대규모로 일으켜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말이지 지옥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 같지는 않은가? 이렇게 지옥이 된 근본적인 까닭은 바로 극소수의 최상류층과 대다수의 극빈곤층으로 나뉜 사회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원천기술인 'AGI 소유' 여부에 따라서 이처럼 사회갈등은 극명하게 나누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AGI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가진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 초인공지능)로 개발이 되면, 이젠 '인간의 지적 영역'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탄생하게 되기 때문에 인간은 더욱더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될 것으로 전망한단다. 이게 무슨 뜻일까? 초인공지능으로 발전한 존재가 등장하면 인간사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 해결을 위해 ASI에게 묻게 되면, ASI가 알아서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ASI가 해결까지 완료한 뒤에 인간에게 그냥 '통보'만 해주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필요가 없게 된다. 이건 달리 말하면, ASI가 해결해 버린 일을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ASI에게 '어떻게 해결한 것'인지 물어보면 된다. 하지만 이때 ASI가 대답한 내용이나 '해결과정'을 인간의 지능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저 ASI가 제공하는 편의만 누릴 뿐, 더는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남지 않게 된다.

자, 그럼 이런 세상이 되었다고 치자. 과연 인간은 뭘 하며 살아야 할까? 모든 일은 '초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은 그저 '놀기만 하면' 될 것이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고민도 없이 '초인공지능'이 대신 일을 하고, '초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편의를 누리며 신 나게 놀면 된다. 과연 이런 삶을 사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을까? 또한, 초인공지능 덕분에 '인간의 질병'을 모두 낫게 할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은 '영생'을 누리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뭐, 난치, 불치의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면, 인간의 몸을 '기계'로 대체하여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될 지도 모른다. 심지어 '인간의 기억'까지 새로운 저장매체에 '영구저장'을 할 수 있음으로써, 비록 육신은 썩어 문드러져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영구히 간직할 수 있게 되어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은 여기까지 워워~하기로 하자.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AI 기술 개발을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해결될 문제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에 빠진다. 대한민국은 이런 '선택'을 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선택'을 할까? AI 기술력 패권을 선점하게 되었을 때의 '이점'을 생각한다면, 결코 멈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AI 기술은 '멈출 수 없는 기차'에 올라탄 것처럼 개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먼저 선점할 것인가? 불과 2년 전 <AI 전쟁>이란 책을 펴냈을 때만 해도, '미국과 중국' 그 다음은 '대한민국'이 가장 유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는 6위권이라고도, 10권이라고도, 어떤 곳에서는 20위권 밖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뭐, 어느 한 가지 문제 때문에 이런 결과를 받게 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봐야 할 정도란다. 그 자세한 문제들은 이 책 <AI 전쟁 2.0>에 상세히 나와 있으니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다. 다행히 짧은 시간에 많이 뒤쳐지긴 했지만, 아주 늦은 것도 아니라는 진단도 함께 나오고 있어서 안심이 되긴 했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AI 기술 패권 경쟁에 뛰어든 각국의 치열한 상황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뒤쳐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뛰어난 지능을 가진 AGI를 '악용'하지 않고 선한 '쓰임새'로만 쓰면서, AGI가 보편화된 사회에 인간이 잘 적응하기까지 서서히 변화하는 안정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누가 어떤 의도인지는 몰라도 '기술 패권'을 선점하기 위해 '급발진'을 하는 순간, 이 모든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순순이 '후발주자'가 되는 것을 만족스러워 할 수도 없다. 후발주자가 되는 순간,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며, 다시는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점'을 해서 너무 앞선 기술을 갖추게 되면, 그 역시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저자들은 '인류도 언젠간 멸망하게 된다'는 말을 빼지 않았다.

결국 '멸망'이란 단어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도 AI 기술을 개발해야만 하는 걸까?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인류멸망의 시점이 30세기일지, 40세기일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그때가 되면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외계행성이나 거대한 우주선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일론 머스크는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려고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완전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난 '지구'를 떠나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도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래서 AI 관련 책을 보면 생각만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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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0 : 공감은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이고은 글, 김현민 그림 / 아울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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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0 : 공감은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  정재승 / 정재은, 이고은 / 아울북 (2022)

[My Review MMCXXVI / 아울북 35번째 리뷰] 어느덧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아우린이 쓴 '인간 탐구 보고서'도 종결을 고하게 되었다. 아우린 탐사대원들이 드디어 고향별로 귀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파견된 탐사대가 먼저 귀환해서 아우린들이 살기에 적합한 행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우린들이 지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아우린 종족들 모두를 만족시킬 행성을 발견한 것은 아닌 까닭에 다시 지구를 아우린들의 정착지로 정할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서는 아니지만 이번에 귀환하는 우주선에 '아우린 탐사대'가 모두 탑승할 수는 없었다. 아우린 탐사대 가운데 누가 지구에 남겨진 것인지는 책을 직접 읽으며 밝혀내길 바라며, 남겨진 탐사대원이 수행할 새로운 임무는 무엇인지 '시즌 2'에서 차차 알아가면 좋을 것이다.

시즌 1의 마지막인 10권의 주제는 '공감'이다. 인간은 유독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공감을 발휘하면 더욱 끈끈한 정을 나눌 수도 있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내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왜 그럴까? 뇌과학적 관점에서는 미스테리할 따름이다. 인류역사학에서는 이를 두고 '경험'에서 나오는 '생존의 유리함'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독불장군처럼 혼자만의 힘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려 한 인간들은 생존에서 불리했기 때문에 개체수를 늘리지 못했고, 여럿이 힘을 모아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한 인간들은 생존에 훨씬 유리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공유한 집단'은 공감 능력을 더욱 키우는 쪽으로 문화를 형성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이 뇌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공감 능력'이 전 인류의 공통적인 특징인 것은 분명할텐데, 지역사회마다 차이는 있는 모양이다. 도움을 주고 받는 성향은 공통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바로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이다. 이런 '개인주의'가 더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는 '공감 능력'이 때때로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물론 이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무시무시하게 번져 나갈 때 보여준 '개인주의'적 행동들은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약자를 도태 시켜버리려는 경향이 훨씬 더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노인이나 동양인이 길거리를 걷고 있으면 무자비한 테러를 감행해서 상처를 주는 일이 빈번해서 큰 이슈가 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한 일본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외면하는 일본인들을 지적하면서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사례도 있다.

그럼 이들에겐 '공감 능력'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기보다는 '지역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사례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앞서 해코지하거나 외면한 이들에게도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도와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이 '공감 능력'을 먼저 발휘하지 않고 폭력과 외면을 먼저 행한 까닭도 '자신의 이익'이 침해 받았다는, 침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지도 모른다. 왜냐면 사람에게는 '이기적 본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 본능'도 함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무엇이 먼저 발동할 것인지는 '케바케'가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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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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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한강 / 문학동네 (2011)

[My Review MMCXXV / 문학동네 25번째 리뷰] 한강 소설은 나에게 버겁다. 나는 '시어(詩語)'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한강의 장편소설은 마치 '시어'처럼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에 한강이 쓴 소설이 무척 아름답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시어'가 그렇듯,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그뜻까지 해독하는데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 마치 명작 그림을 눈앞에 두고도 '참 잘 그렸다'는 감상 이외에 더 많은 소회나 느낌을 내뱉지 못하고 말문이 턱 막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 한강 소설은 딱 그렇다. 그런데도 작년에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한국인으로서 자긍심도 있었고, 마침맞게 한강의 수상을 예상이나 한듯 수상자를 맞췄기에 '예스24'에서 1000원 상당의 상품권도 아주 잘 받아서 딱 그만큼 기뻐했더랬다. 그래서 한강의 책들을 줄줄이 구입했더랬다. <희랍어 시간>도 그렇게 뒤늦게 구입한 책이다.

그런데 막상 읽는데 너무 힘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면서 읽다보면 '전체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전체 줄거리를 주의 깊게 읽다보면 아름다움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겉핥는' 식으로밖에 읽지 못하는 나의 독서 수준이 참으로 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구나 중간 중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외국어'는 나의 감상을 더 방해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한국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딱한 수준인데, '외국어'로 전달되는 감상까지 곁들이는 일은 무척이나 힘겨웠다.

물론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절박한 사정에서 내가 느껴야 하는 감동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답답했던 것이다. 그것이 중반 이후에 빛을 잃어가는 남자가 등장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애달파지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전개하고 있음에 절박한 정황은 점점 절절한 사랑을 승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두 연인이 있는데, 여자는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손짓으로, 눈빛으로 대신하려 하지만, 남자는 빛을 잃어가서 연인의 손짓과 눈빛을 차마 볼 수 없게 된다는 슬픈 사랑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더 애끓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이 되어 '표현'되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두 사람의 '시간'은 촉박하기 그지 없는데, '사랑한다'는 아름다운 말과 찬란한 빛은 참으로 오랫동안 빚어져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감정을 서로 나누는데 성공은 하지만, 결국엔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이기에 안쓰러울 따름이다.

딱 여기까지의 감상만으로 <희랍어 시간>을 이해하고 뭉클한 감정을 오래오래 간직하기만 했다면, 이 책이 난해한 소설이 되진 않았을 텐데, 나는 여기에 하릴없는 '사족'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청각과 시각의 소실로 인해 '접점'을 찾을 수 없다면 남은 감각은 '후각'과, '촉각', 그리고 '미각'이 남았는데, 후각은 좀 그렇다고 하더라도 '촉각과 미각'으로 사랑을 나누는(?) 방법이 남아 있지 않느냔 별 쓰잘데 없는 딴죽을 걸어재꼈기 때문이다. 물론 가깝게 지내는 부부사이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사이인 까닭에 '사랑의 재확인(!)'을 하기 위한 '접촉(!!)의 편의성'이 쉽사리 성사되지 않을 거라는 '가설(?)'까지 세우고 있는 나 자신에게 참으로 대실망을 했더랬다. 이게 뭔 대환장의 파티란 말인가.

암튼, 아직은 '문학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기엔 내공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다. 먼 훗날 '내공'을 냠냠한 다음에 다시 <희랍어 시간>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내 천박한 문학적 소양에 다시 한 번 절망을 안겨준 소설로 기억할 순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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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 동화를 꿀꺽해버린 꿀잼 심리학
류혜인 지음 / 스몰빅인사이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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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 동화를 꿀꺽해버린 꿀잼 심리학>  류혜인 / 스몰빅인사이트 (2021)

[My Review MMCXXIV / 스몰빅인사이트 1번째 리뷰] 심리학은 과학일까?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이는 꽤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면 우리 나라에서 '심리학'이라고 하면 마음(心)을 이치(理)를 연구(學)한다고 쉽게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은 '철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과학적 관점'의 영역으로 본격화하였다. 그래서 프로이트를 '정신분석의 대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신(생각)'을 '분석(검증)'한다는 '정신분석학'은 분명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심리학'이라는 명칭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과 생각을 탐구하는 '정신분석학'을 별개로 여기고, 전혀 다른 학문이라고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은 정말 별개의 학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철학적인 성향이 강한 '심리학'이란 명칭이 과학적 데이터를 모아서 검증을 하는 방식으로 연구하는 '정신분석학'으로 더 명징하게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은 오늘날에는 같은 뿌리에서 이어진 같은 학문으로 보는 것이 더 맞다. 즉 '심리학'은 과학적 관점으로 좀 더 객관화하며 읽고, '정신분석학'은 철학적 관점으로 더욱 넓게 바라보면서 읽는 것이 조금 더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책 <심리학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를 읽어보니 '심리학'이 좀 더 명징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우리에게 낯익은 동화의 내용을 '기본' 바탕으로 깔고, 이를 '심리학적 관점'이라는 낯선 '이론'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쉽게 말하면, '동화의 재해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이 '심리학' 책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재해석'이 아닌 '과학자(심리학자)의 관점으로 바라본 동화'라고 표현해야 이해하기 쉽겠지만, 이런 제목이라면 누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겠는가? 어린이나 읽을 법한 '동화책'을 우수한 지능을 가진 '과학자의 눈높이'로 바라봤다는 것에 메리트를 느낄 독자는 정말 극소수일 것이다. 그래서 절충한 제목이 바로 <동화를 꿀꺽해버린 심리학>이다. 정말 읽고 싶어지는 제목이다.

책의 서문에서도 저자가 밝히고 있다. 많은 분들이 '심리학'에 관심을 갖지만, 정작 쉽게 풀어 쓴 '심리학책'은 많지 않다고 말이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수많은 '심리학 이론'이 꽤나 복잡한 연구과정으로 나열하고 있기에 쉽사리 이해가 되지도 않고, 툭하면 '누구의 연구결과'를 인용하고, 또 재인용하는 등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심리학 상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품고 있는 '마음의 깊이'에 호기심을 갖고서 <심리학책>에 접근하려고 하면 너무 어려운 내용을 접하고 화들짝 놀라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덮기 일쑤다. 거기다 참고해야 하는 '과학 이론'은 뭐 그리도 많은지..거기다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려는 심리학자들의 변명(?)도 웬만한 '대학논문'을 섭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접근조차 하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이트'와 '칼 융'의 정신분석학 이론만 이해하려해도 얼마나 방대하고 산만하냔 말이다. 그들은 자신조차 설명하기 힘든 부분을 만나면 '무의식의 세계'로 도망가버리고 만다. 그리고서는 '그것'이야말로 자기 학문의 연구성과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저 황망하기만 하다. 그나마 '재미있는', '하기 쉬운', '콘서트' 등등 이런 제목을 달고 나온 '심리학 도서'들은 읽기에는 편하다. 이런 책들이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 썼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고 접하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이를 계기로 더 깊은 '심리학', '정신분석학'의 세계에 도전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심리학 관점의 해설'보다는 '동화의 재해석'이 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에 빠진 것이다. 동화 <신데렐라>에서 "그래서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만, 그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가 더 쏠쏠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이 '부분'에 심리학적 풀이를 세세하게 써내는 정성을 쏟았지만, 그건 그거고! 동화를 그런 식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이 훨씬 더 인상 깊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덮고 난 지금도 '심리학자들의 연구 이론'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이론을 바탕으로 풀어낸 '동화의 뒷이야기'는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게 되었다. 물론 그 오래 전해지는 여운의 실체는 분명 '위대한 심리학'이 맞다. 그렇게 철저하고 적확한 '검증'을 했기에 더욱 합리적이고 인상적인 '뒷이야기'가 탄생한 배경인 것은 분명하지만, 역시나 '그건 그거고!'. 더 인상 깊은 것은 동화의 뒷이야기인 것이다.

이게 일반적인 독자들 반응일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결국 '실패'인 것인가? 그렇게 볼 순 없다. 만약 이 책에 이어진 '뒷이야기'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상상력'만의 결과였다면, 이렇게까지 깊고 오래가는 여운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심리학의 재미'는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심리학 공부가 결코 쉽진 않겠지만, 심리학에 익숙해지면 비교적 '단순한 동화'조차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격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정말 매력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최고의 '심리학 입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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