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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 교양인이 되기 위한 내 생애 첫 인문학 ㅣ 처음인데요 시리즈 (경제)
박홍순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3월
평점 :
인문학은 어렵다. 깊고 방대한 내용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인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개념어'에 두루 통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철학을 할 때는 '철학용어'를, 과학을 할 때는 '과학용어'를, 예술을 할 때는 '예술용어'를 대충이라도 알아야 책을 읽더라도 뭔 내용인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의사와 간호사 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사 가운데 안면이 있는 패션디자이너를 우연히 만나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디자이너는 혼자가 아니라 모델들과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함께 이동중이었다. 이렇게 모인 '의학계'와 '패션계'가 서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서로를 이해하며 대화를 진행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멀뚱멀뚱 어색한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바랄 것이다. 바로 인문학을 처음 만난 독자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비슷할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데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무엇 말이다.
한편, 인문학은 암기가 절대 아니다. 철학사를 줄줄 꿰지 않아도 얼마든지 인문학을 즐길 수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해야만 인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절대 아니다. 미술을 감상하기 위해서 '미술사'를 달달 외우는 것이 얼핏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그저 보이는대로 아는대로 즐기면 된다. 이처럼 인문학도 제멋대로 즐기면 된다. 왜냐면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맞다. 인문학을 즐기면 정말 행복해진다. 아는 것이 많아져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몰랐던 것을 이해하는 순간 짜릿한 행복을 맛보는 경험을 했다면 인문학을 즐길 준비는 이미 충만한 셈이다. 왜냐면 그 짜릿함은 모르고 살 수는 있어도 단 한 번만 맛보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언급된 '인문학적 지식들'을 그저 나열하고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의 찐맛을 느낄 수는 없다. 어쩌면 이 책에 언급된 지식들조차 '저자의 생각'일 뿐, 절대적인 지식의 원천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의 생각과 다르다며 반론을 던질 수도 있고, 심지어 저자의 생각이 틀렸다며 부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문학은 원래 그런 학문이다. 청출어람이라고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되기 위해서 때로는 스승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뿜어낼 수 있어야 진짜 인문학을 맛볼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매년 200여 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야 겨우 인문학의 문턱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문턱을 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짜릿함을 느꼈고 말이다. 그동안 읽은 책보다 앞으로 읽을 책이 더 많다는 즐거움을 이해한 독자라면 그 짜릿함을 이미 느꼈을 것이다. '인문학 예찬론'은 이쯤하고, 이 책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자면, 처음에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중간에는 '인문학의 효용성'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문학의 쓸모'를 이모저모 피력한 책이다.
인문학의 필요성은 앞서 설명한 것으로 대신하고, 인문학의 효용성이란 무엇이냐면 '인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죽음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감정은 무엇이며 사랑이란 또 무엇인가? 등등 인간으로서 궁금한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물론, 역사, 예술 등 문화적인 것들도 모두 인간이 만들고 사유한 것이기에 당연히 인문학에서 다룬다. 이쯤 되면 인문학은 다루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쓸모'란 무엇인가? 바로 일상조차 인문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깜냥이다. 한국인은 일중독자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휴식과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요즘 MZ세대는 그나마 잘 즐기는 편이라고 하지만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노동(알바)의 굴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암튼 일 할 줄만 알고 놀 줄 모르는 한국인에게 '여가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대단원을 내리는 이 책이 의미심장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궁극적인 주제이자 결말은 '행복으로의 귀결'일 것이다. 인문학의 필요성으로 화려한 시작을 하지만 결국은 "인문학적으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인문학은 행복을 고뇌하는 학문입니다. 고로 인문학은 행복입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뇌할 때에도 '행복한 결말(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인문학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마치 '인문학이라면 모든 문제를 행복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면서 말이다. 때로는 '비극적 결말'을 내놓고서도 뻔뻔스럽게 '우리의 현실은 저렇게까지 비극적이지는 않잖아. 정말 다행이야'라고 우기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인문학을 알아야만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변화의 속도마저 엄청나게 빨라서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제대로' 걸음을 내딛으며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은 꼭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이도 점점 많아지는 것이 팩트인 요즘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문학으로 가는 길'이 너무 길고 험난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는 까닭은 어중이떠중이들이 교양이랍시고, 방대한 지식을 나열하며 달달 외우는 방식으로 인문학을 강요하고 있는 탓에 시작도 하기 전에 두렵고 질려버리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고도 했다. 차근차근 인문학을 접하면 된다. 다행히 요즘에는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참 많다. 내 경험을 비추어도 '논술쌤'이었던 탓에 어린이청소년용 <인문학책>을 많이 접한 덕분이었고, <교양툰>처럼 만화형식으로 된 <인문서적>도 두루 접하며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결과는 매우 흡족했다. 그렇게 '신화'와 '역사'를 두루 습득한 다음에는 '과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과 '종교'까지 섭렵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전문학'을 독파하고 있다. <성경>에도 적혀 있듯이 '두드리면 반드시 열리는 법이다(마태복음 7장7절)' 아직도 인문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서 서두르길.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