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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
한덕현.이성우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9월
평점 :
그간 심리학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가장 먼저 착각하고 있었던 점은 심리학은 '과학'이었다는 점이었다.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점술'과 비슷하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차이점이었다. 알고 보니,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의 한 갈래였고, 대표적인 정신분석학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던 것이다. 이후에 융과 라캉에게 이어졌으니, 정리하면,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은 '심리학'이고, 그 가운데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행동을 내적인 개별욕구와 외적인 사회요구가 서로 조화를 근거로 분석한 심리학 연구의 한 갈래로 이해하면 틀림 없겠다. 물론, 오늘날에는 프로이트의 '성욕구'에 근거한 심리학 연구가 너무 원초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암튼, 이 책은 사회적 문제아로 정평이 난 록커 이성우와 정신분석학자 한덕현의 대화(일문일답 형식)를 통해서 코로나로 인해 우리 모두가 불편하고 답답한 이들의 공통의 고민거리를 의학적으로 풀어낸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쉽게 오해하고 있는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린다면, '정신병원'에 들락거린다고 모두 미친 사람이거나 심약한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병자'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록밴드 <노브레인>으로 유명한 이성우도 정신병자는 절대 아니다. 그가 아무리 무대 위에서 '미친XX'처럼 발광을 떨고, 거친 욕설로 넘쳐나는 가사를 입으로 뿜어낸다고 해도, 그건 예술가의 '예술행위'일 뿐, 평상시에는 우리와 똑같은..아니, 정상인보다 더 정상인처럼 평범하고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시민일 뿐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도 이성우의 고민이 '특별'하다거나 '이상'한 것은 하나도 없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40대 중년 남자가 가질 법한 고민을 '스포츠건강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자에게 내담하여 상담한 대목을 열거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부디 이 책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읽어주면 좋겠다. 하릴없는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서 이 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록커로 살더니 대중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스트레스도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지...라면서 책을 읽어 갔는데, 그의 고민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평범했고, 어느 정도 '나의 고민'과 상통하는 면도 없지 않았기에 깜짝 놀랐었다. 더구나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며 상담까지 나눌 정도면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단단히 오해했는데, 그래서 그 심각한 병을 '치료(!)'한 대단한 명의와 나눈 쌈빡한 대담집으로 착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저 그런 평범한 수다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에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대단한 '편견쟁이'였구나..라면서 자책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저러나 여러분들은 살면서 고민이 없었던가 묻고 싶어집니다. 마흔 살이 넘어 반백살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나는 인생이 답답하고 고민도 참 많기 때문입니다. 아직 결혼도 못했고, 사랑도 변변히 못했으며, 당연히 아이도 없고, 늙으신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편찮으시고, 돈벌이는 시원치 않은데, 몸은 벌써 삐걱거리며 직장생활이 버거워지고 있으며, 친구들과도 연락이 뜸해지면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무력감이 밀려오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답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 재미나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혼자 참으로 재미없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밀려올 때면, 어느 동굴속 깊이 들어가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듯한 막막함이 들곤 한답니다. 한마디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 때 '정신병원'을 찾아가 의사와 상담을 나누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어보니 록커 이성우씨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렇게 상담을 나누면서 어느 정도 고민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다시 삻의 활력을 되찾아서 기쁘다는 내용도 적혀 있는데...나의 경우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나는 '잡다한 지식'이 참으로 박학한 관계로 의사선생님이 하실 말씀을 '이미' 어느 정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닉네임이 '또 다른 나'인데,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페르소나(가면)'의 또 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닉네임을 쓰기까지가 또 한 편의 드라마인데, 이는 '내 블로그'에 이미 장문의 글로 소개하였기에, 간략하게만 쓰련다.
고민 많던 20대 후반에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논술쌤'으로 변신할 무렵이었는데, 때마침 '독서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 모임에서 쓰거나 채팅을 할 때 쓰려고 '아이디'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마침맞게 '나르키소스'에 얽힌 신화 가운데 수선화와 후리지아 꽃에 관한 전설을 알게 되었고, 나르키소스를 몰래 짝사랑하던 님프 후리지아가 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나르키소스를 따라 죽었다가 '후리지아'로 환생했다는 이야기가 아름답게 들려 '후리지아'란 아이디를 쓰다가 그 많던 고민을 '후~'하고 날려버리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리지아'만 남겨놓았고, 두음법칙을 활용하여 '이지아'로 쓰다가, 뭔가 의미를 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한자'로 써서 '異之我'로 썼고, 다른이들이 뜻을 모를까봐 '異之我...또 다른 나'라는 닉네임으로 완성하고,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가면, 아닌 가면 같은 닉네임으로 20년 넘게 살다보니, 난 어느새 '심리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심리학적인 내용'을 얼추 실천하며 살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신분석학자의 상담이 그렇게까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상당히 도움이 될테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아무 때고 연락해서 진지한 수다를 떨어도 마다하지 않을 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뱉고 나면, 그닥 '정신병원'이 필요치 않고 '수다쟁이 친구'가 절실하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상대가 '말(대화)'이 잘 통했으면 좋겠고, '이성'이면 더 좋겠고, '예뻤으면' 더 좋겠고, 평생 '내편'이 되어주면 더 좋겠으니, 얼릉 결혼이나 해버리면 좋겠는데, 다른 건 둘째치고, '말'이 통하는 여성이 내 주위에 없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현대인의 고민거리는 이렇듯 심각한 것은 없다. 심심풀이 땅콩을 주워먹고 술 한 잔을 기울이면서 떨 수 있을 정도의 '수다'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할만 하니 말이다. 이 책에서 고민을 말하는 록커 이성우도 딱 고만한 고민거리로 상담을 하고 있으며, 정신분석학자 한덕현도 고만한 고민을 해결할 '심리학이론'을 풀어서 설명해주면서 내담자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은 '록커와 의사쌤의 평범한 수다'가 전부다. 어려운 내용도 전혀 없다. 읽다가 '내 고민'과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었구나'라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이라는 것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구불만'이 적절히 해소되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이었구나..라면서 고민을 털어낼 용기가 불끈불끈 샘솟게 만들 것이다. <심리학책>은 원래 그런 용도로 읽기 마련이고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말 한마디를 할 용기가 없어서 끙끙 앓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세 가지 말은 꼭 하면서 살면 좋겠다. 그 세 가지 말은 바로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다.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는 용감한 말이 바로 '미안해'다. 그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별일도 아닌 것을 큰일로 만들고 뒷감당을 하지 못해 더 큰 봉변을 당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또, 누구나 어떤이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인 까닭에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한다. 사소하더라도 더욱 진지하게 말해야 하는 말이 '고맙다'다. 그 사소한 도움을 '당연시'하는 이들이 고마움도 모르고 '갑질'을 늘어놓기 마련이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얼마만큼의 큰 도움을 주어야 겨우 '고맙다'고 말할 것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맙다'고 말을 하는 순간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이래도 '고맙다'는 말을 아낄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해야할 말이 '사랑해'다. 흔히, '타이밍'이 중요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너무 재고 아끼다보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늘 타이밍을 놓치고서 후회하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야 '아무 때'고 사랑해라고 진심을 밝혀라. 설령 헤프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을지언정 때를 놓치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백 번 낫다. 지금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사랑해'라고 말해보라. 차마 그럴 용기가 없다면 '눈'으로라도 진심을 표현하길 바란다. 두 눈에 하트를 뿅뿅 심어놓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봐주지 않고 홀로 쓸쓸하고 외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분에게 <심리학책>인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그렇게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용기내어 한 마디 해주면 좋겠다. 언제고 답답할 때 연락하라면서 말이다. 수다 정도는 언제든 들어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