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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5 : 공명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평점 :
책의 제목이 <공명>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면서, 게임 <삼국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템'이다. 그럴만큼 제갈공명은 중요인물이다. 그를 일컫는 별칭조차 '와룡'이나 '복룡'이다. 흔히 왕을 상징하는 동물로 용을 꼽는데, 제갈량이 아직 취직(?)도 못한 시골 은자로 꼭꼭 숨어 있는 모양새를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인물이며, 실제로 소설속에서도 제갈량의 등장만으로 이야기는 급반전을 이루며 활기차게 된다. 다음 권에서 '적벽대전'을 다룰 참이니 제갈량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다.
우리가 애써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유능한 신하'를 모셔가기 위한 위촉오 삼국의 쟁탈전이 바야흐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관우의 오관참육장을 시작으로 손책의 죽음과 손권의 등장, 조조와 원소의 대결 '관도대전'이 펼쳐지고, 그 와중에 유비진영은 조조의 품을 떠난 뒤에 원소에 빌붙었다 '여남'에 터를 잡는가 싶더니, '형주의 유표'의 식객으로 전락했다가 '신야'에 정착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유능한 신하들'이 나름의 재능을 펼치다가 각국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하고, 이야기의 방향을 전환시키기도 하면서 종횡무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강동의 오나라를 살펴보자. 손견이 죽고 손책의 치세가 이어지며 오나라는 강력한 국가의 면모를 갖춰나가게 된다. 물자도 풍부하고 인물도 많으며 장강(양쯔강)으로 둘러쳐진 천혜의 요새 같은 지형속에서 오나라는 무럭무럭 성장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고인물' 느낌이 풍기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강의 상류엔 '형주의 유표'가 건실히 자리하고 있고, 장강의 북쪽은 조조와 원소가 활개를 치며 확고한 영역권을 행사하고 있기에 좀처럼 진출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 아직 국가의 기틀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기에 먼 훗날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훗날의 오나라마저 '고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사마씨(진나라)에게 멸망하고 만다. 암튼, 그런 손책이 손견에 이어 오나라의 번영을 위해 착실히 기틀을 쌓고 있었으나 사냥을 나섰다가 비명횡사할 뻔했고, 명의 화타가 겨우 살려놓았으나, '우길'이라는 신선같은 도인을 시기질투하다 끝내 급사하고 마니, 오나라는 '손권'이라는 어린 새주인을 맞이하게 된다.
나라를 다스리기에 아직 어린 군주를 보필할 유능한 신하가 꼭 필요했던 손권은 형님의 친구이기도 한 주유가 노숙을 천거하자 기꺼이 수락하고, 제갈근을 직접 발탁하는 등 든든한 버팀목이 될 인재를 받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름지기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일지라도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의 크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수많은 인재를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유용한 일을 도모하는지 감독하는 일이 '지도자의 첫번째 덕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권은 탁월한 군주였다.
한편, 조조는 스스로 영웅이라 뻐기며 온갖 잘난 체를 다하더니 '황제의 밀서사건'으로 된서리를 맞고서 '국구 동승'을 비롯해서 모반자를 색출하고 숙청하는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숙청대상 1호쯤으로 여길 '유비'는 자신의 감시망을 유유히 탈출하더니 원소에게 붙었다, 여남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유표에게 빌붙는 등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조조가 한판 승부를 펼쳐할 대상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하북의 원소세력'이었다. 황하의 북쪽땅을, 그것도 가장 비옥하고 인물 많은 알짜배기땅을 차지한 거대한 세력이 조조의 등뒤에 버티고 있는 한 조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란 위기 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소세력은 뭐든지 조조보다 10배는 많이 갖추고 있었다. 단순히 병력의 숫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말이다. 이를 테면, 조조가 겨우 1만명의 군사를 갖춰 원소를 공격할라치면 원소는 장병 10만에, 기병 10만, 식량 10년치, 군수물자 빵빵, 거기다 구름같이 많은 장수와 참모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조조 진영에선 굴하지 않고 원소와 결판을 내야 한다고 야심차게 주장하는 신하들이 많다. 하후돈, 허저, 서황, 장료 등 두려움을 모르는 무장뿐만 아니라 순욱, 순유, 정욱, 그리고 곽가 등 참모들까지도 하나같이 승산이 높다며 원정을 주장한다. 그만큼 조조 휘하에는 일당백의 유능한 신하들이 많고, 그 유능함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드러난 자신감이다. 거기다 조조의 용병술은 신묘하기 그지 없으니 군신간의 의기투합이 이리 출중하니 승리는 따논 당상이라는 듯 하다. 반면에 원소 진영에도 만만찮고 쟁쟁한 인물들이 구름같이 많았으나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지 못하고 내분에 휩싸이고 말아 그 큰 세력을 갖고서도 '관도대전'에서 패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것이 바로 원소의 '팔랑귀'를 들 수 있다. 이말에도 혹하고 저말에도 혹하는 바람에 유능한 신하가 모처럼 충성스런 마음으로 책략을 일러주어도 군주의 애정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는 '반대측 신하'가 정반대의 대책을 일러주면 삽시간에 마음이 해까닥 돌변하고 마는 것이 원소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것이다. 자고로 지혜가 부족한 군주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충언'과 '간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충언과 간언의 결정적 차이점은 무엇인가? 대개 충언은 대의(큰일)를 위해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자고 말하고, 간언은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자고 말하는 법이다. 원소의 처지에서 조조의 침략은 맞서 싸우기보다 든든히 버티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애초부터 큰 차이가 나는 전력인데 뭣하러 '조그만 이익'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나가 큰 희생을 치른단 말인가. 그저 천혜의 요충지를 방어막으로 삼고 상대의 기세가 줄어들 때까지 버티다 상대가 지쳤을 때 반격에 나서면 필승이었다. 그런데도 원소는 조조의 공격에 발끈해서 총공격을 나섰다가 어이없게 대패를 하고 말았다. 만약 원소가 저수의 충언을 받아들여 방어전을 펼쳤으면 조조는 거꾸로 치명타를 받고 오래도록 회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곽도(곽상도?)의 간언을 받아들여 섣불리 거대한 덩치를 가볍게 놀리다 거꾸로 치명타를 받고 마니 어리석기 그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유능한 신하'를 어찌 써먹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조조처럼 유능한 신하를 미리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유용하게 써먹을 줄 알아야 한다. 조조처럼 할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원소처럼 '팔랑귀'가 되어선 안 된다. 충언과 간언조차 구분할 줄 모른다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한편, 유표 진영은 한가롭기 그지 없다. 관도대전이 한창일 무렵에는 조조와 원소가 서로 편을 먹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조조는 원소와 손을 잡고 양쪽에서 공격 당할 걱정에 유표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하소연했고, 원소는 우리 함께 조조를 합심해서 죽여버리자고 유표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유표는 양측의 러브콜에 무반응으로 일축했다. 아니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기만 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면 유표에게는 야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황실의 종친으로 천수를 누리다 편하게 눈 감으면 그뿐이라는 사람에게 천하를 뒤흔들 결정이란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던 것일테다. 그렇게 아무 편도 들지 않다가 유비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레 조조와 척을 지게 되었다. 급기야 조조가 관대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이제 조조의 칼끝은 서서히 유표쪽으로 향하게 되고 말았다. 그 시작은 '신야'에 머물고 있는 유비였다.
유비는 조조에서 원소, 여남에서 형주까지 유랑을 하면서 조자룡이라는 유능한 무장을 얻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으나 인연이 미치지 못해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 정처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고나니 연이 맺어지게 된 것이다. 거기다 관우가 조조의 품에서 벗어나면서 주창이라는 부하와 관평이라는 양자를 얻게 되었으니 유비진영에 인재가 늘어나게 된 셈이다. 허나 든든한 무장을 얻긴 했으나 '지략가'가 마뜩찮았다. 허나 마침맞게 '서서'라는 군사를 맞이하여 조조의 선봉격이었던 조창과 이전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조조의 책사였던 정욱의 꾀에 빠져 서서는 유비의 품을 떠나 조조 진영쪽으로 향하게 된다. 그때 융중이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제갈량을 유비에게 소개해주고 가니, '삼고초려'가 펼쳐지며 이 책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유비는 서서라는 '책사의 맛'을 한 번 보고서 제갈량을 더욱더 갈구하게 된다. 그동안 관우와 장비의 용맹, 손건과 간옹의 헌신으로 근근히 버텨왔지만, 유비 진영은 한실의 종친이며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로 명성을 날리는 것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세력으로 전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의 꿈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인데 송곳 하나 꽂을 땅뙤기 하나 건사하지 못한 처지로 오래 살다보니 더욱 그랬다. 사마휘 선생에게 '와룡과 봉추' 이야기를 듣고 나선 유비의 늙은 몸을 더욱 부풀어 오르게 하는 꿈이 곧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진 탓이다.
그런데 정작 제갈량은 변변한 세력도 없는 유비에게 빌붙을 생각은 없었던 듯 싶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의 집에 얹혀 살아가다 숙부마저 폭삭 망하자 '가난'을 경험한 어린 제갈량은 자신의 실력을 마을껏 펼쳐볼 수 있는 든든한 터전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배다르지만 장성한 형님인 제갈근이 오나라의 중신으로 신임받고 있으니 자신도 그에 못지 않은 높은 직위를 탐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에 대해 이문열이 평전한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이 '삼고초려'를 마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유세객이 되어 조조와 원소, 유표 등을 오가며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라 평했다. 그런데도 시골에 머물렀던 까닭은 조조와 원소 진영에는 이미 '책사'가 넘치는 상황이라 경쟁이 치열해서 쉽사리 고위직에 오르기 힘들 것이라 보았고, 유표 쪽은 유기와 유종이란 두 아들의 후사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채씨 외척'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신입직원에게 큰일을 맡길 까닭이 없었기에 취직할 생각은 더욱 없었다고 평했다. 손권이 제갈근을 중용한 까닭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행운이었을 거라고 짐작을 하니, 제갈량은 유비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라 보았다. 훗날 방통 역시 유비 진영에 슬며시 발을 들여놓는 것을 보면, 당시 군웅들 간에 세력형성이 이미 완성단계에 접어들어 '취업전선'이 녹록치 않았기에 취직을 바라는 젊은이들의 등용문이 한창 어려울 때라는 사실이 단단히 한 몫 한 것이라 평했다.
그런데도 제갈량이 '삼고초려'와 같은 형식적인 면을 유비에게 강요(?)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또한 이문열은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권력'의 틈바구니에 낑겨들어 '핵심세력'으로 급상승하기 위해선 유비의 갈망이 필요했던 듯 싶다고 평했다. 확실히 제갈량은 노쇠한 유비 진영의 새내기에 속한다. 다들 40대 중반을 훌쩍 넘겼는데, 이제 갓 20대 후반인 제갈량이 '군사'라는 중책을 맡아버리면 병장들이 장악한 내무반에서 '소대장 길들이기'가 펼쳐지는 것처럼 자신을 견제하려는 알력이 발생할 것이라 짐작했던 탓이다. 말마따나 관우는 제갈량과 사사건건 부딪히고 만다. 한마디로 젊은 놈이 깝죽거리는 꼴을 보기 싫다는 것인데, 이런 제갈량과 관우의 갈등은 훗날 '형주에서 맞이한 최후'에서 잘 보여지듯이 권력의 핵심역할이었던 관우가 변방의 전선에서 비명횡사하고 만 사건으로 일단락이 되었다고 이문열은 평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분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이문열의 평론은 과한 면이 있다는 얘기다. 훗날 '천하삼분지계'를 펼치기 위해 깔아놓은 포석 정도로 '제갈량의 등장'을 평가해야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변변한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유비 진영이 제갈량을 만난 이후에 급성장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의 공로는 온전히 '제갈량'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과연 뛰어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만큼 중차대한 일인지 잘 보여주는 경우이기도 하다.
과연 요즘도 뛰어난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 '삼고초려'만큼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삼고초려'는 필요없는 것일까? 유능한 인재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법이라고 한다. 오늘날에 '천거'와 같은 등용방식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소위 '엘리트'라는 지배계층의 속성이 얼마나 얍삽하고 천박한지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의는 고사하고 개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국가도 팔아쳐먹으려 드는 그들의 뻔뻔함에 두손 두발 다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정하면서도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어떻게 갖춰야 할 것인가? 나는 유비의 '삼고초려'가 그 대안이라고 본다. 인재는 큰꿈을 키우고, 지도자는 인재를 모시기 위해 서로가 '진심'일 것, 사사로운 이익 뒷전으로 미루고 대의를 위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큰일을 도모하는데 '열심'일 것, 바로 이 '진심'과 '열심'이 이루어낸 결실이 바로 '삼고초려의 핵심'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존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이라 전세계의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국격'이 뿌리채 흔들리게 된 것도 우리 사회가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않고 관리감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애초에 평등과 투명이라는 잣대만 들이대어 '큰꿈'을 꾸었을 인재들을 '성적순'으로 난도질하고, '생기부'를 날조해 '고급수저들'만 골라 뽑아온 관행이 낳은 비극이라고 말이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우리는 갖추고 있느냔 말이다. 만약 그것이 엉망진창이었고 부족했다고 인정한다면 다시금 '삼고초려'를 더듬어 보아야 할 것이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지도자'와 비록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마뜩찮지만 세상을 바꿀만한 '패기'로 가득한 젊은 인재를 등용시킬 수 있는 '삼고초려(인재발탁) 시스템'이 필요할 때다. 그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는 증거는 무엇으로 증명할 것이냐고? '결과'로 보여주면 되지 않겠는가. 1년간 써보고 아니면 갈아치우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엔 '리스크(위험부담)'가 너무 크다는 지적엔 공감한다. 허나 애써 '정직원'으로 뽑아놓고 빈둥빈둥 놀고 쳐먹는 철밥통들보다는 리스크가 덜하다고 보는데...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