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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4 : 신도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평점 :
오랜만에 다시 <삼국지>를 손에 들었다. 잠시 잠깐 '딴짓'을 좀 했더랬는데, 생각보다 오래 시간이 걸렸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빠르게 읽어나가려 한다. 읽어야 할 '삼국지'가 이 책만이 아닌 까닭도 있다. 황석영의 책도 있고, '조조전'도 있으며, '반삼국지'라는 것도 이 참에 다시 읽으며 리뷰를 할까 한다. 늘상 이리 글로 약속을 하고도 내일모래글피 자꾸 미루기만 했지만, 빈약속은 하지 않는다. 언제고 반드시 써낼테니 기다려달라. 댓글 하나 없는 것이 기다리는 이는 없을 듯 싶지만 말이다. 한편, 얼마전에 '블로그'를 정리하면서 '독서기록'을 샅샅이 뒤적거렸는데, 생각보다 '실종'된 리뷰가 많았다. 대략 6~70편 정도가 사라진 듯 싶은데, '블로그'에 남긴 글조차 깜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더 '이곳저곳'에 기록을 남겨놔야 하겠다. 온라인도 결국 믿을 게 못된다.
어쨌든, <삼국지 완역판 4권>이다. 4권의 제목은 바로 '신하가 해야할 도리(臣道)'도 왕이 해야할 도리가 있는 것처럼 신하도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음을 이르는 말일게다. 4권의 주요 줄거리는 조조가 여포를 토벌하고 동승이 조조암살을 꾀하고 조조와 원소의 한판 대결인 '관도대전의 서막'이 펼쳐지는 와중에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했다가 유비가 살아있는 소식을 전해듣고 유비의 일가족을 데리고 유비의 품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장면은 '오관육참장'이라는 고사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마땅히 신하라면 주군에게 충성을 받치고 두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으로도 널리 전해지는 유명한 대목이다. 조조는 유능한 인재를 탐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럽다 할 사람으로 휘하에 구름같은 인재를 갖추고서도 '관우'를 탐하는 모습은 이 고사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관우는 조조가 베푸는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옛주인인 유비를 쫓아 고행길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땅히 '신하가 갖춰야 할 도리'가 바로 이것(!)이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5권의 시작이 바로 관우가 파죽지세로 다섯개의 관문을 뚫고 여섯명의 장수를 베며 유비를 찾아나가는 장면일테니 정말 볼만 할 것이다.
헌데 나는 이런 대목보다 헌제의 국구(왕비 '동대비'의 아버지)인 동승이 역적 조조를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대목이 더 눈에 띄었다. 조조는 일찍이 동탁과 그 수하들에게 모진 수모를 당하고 있는 헌제를 구출해내는 것에 성공한 충신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탁과 마찬가지로 헌제를 허수아비처럼 내세우고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하는 역적의 수괴임을 만천하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북의 원소를 비롯해서 형주의 유표, 강동의 손권, 서량의 마등, 그리고 헌제의 황숙인 유비 등의 세력이 조조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던 탓에 감히 황제를 능멸하는 일까지는 저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허나 조조는 승상이란 직위에 올라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신하라면 황제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반드시 죽였으며,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 '황명(황제의 명령)'을 내세워 토벌의 명분을 세우니 '조조군'에 저항을 하면 황명을 거역한 역적이 되고, '조조군'에 항복을 하면 이런저런 빌미를 내세워 숙청을 해버리니 조조의 만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으며, 끝끝내 황위를 찬탈할 것이 틀림없다는 슬픔예감을 수많은 영웅들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럴 때, 마침맞게 헌제가 국구 동승에게 '옥대(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하사하며, 그 속에 '밀명'을 담았으니 "역적 조조를 멸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여러 충신들이 황제의 밀명을 받들어 '조조를 토벌하겠다'고 호응하니, 토벌 가능성이 높은 군웅으로 서량의 마등과 황숙으로 불리는 유비 등이었다. 허나 유비는 여포 토벌이후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처지라 뾰족한 수가 없다가 마침 '전국옥새'를 내세워 황제라 참칭하던 원술을 벌하러 가겠다며 조조에게 3만 군사를 빌리니, 원술 토벌이후 서주, 소패, 하비에 자그마한 세력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유비가 세력을 이제 막 갖췄을 즈음에 '헌제의 밀서'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동승의 집에서 일하던 남자종 하나가 동승의 어린 애첩과 정분이 났다 들통이 난 뒤 모진 매를 맞은 뒤 앙심을 품고 도망을 쳐서 조조에게 밀고를 해버린 탓이었다. 때마침 '명의 길평'도 조조 암살을 시행하려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평소 조조가 두통이 심했기에 '두통약'이라 속이고 독약을 먹이려 했던 것이다. 허나 이미 밀고를 들은 뒤였기에 길평의 암살은 실패로 끝나고, 동승을 비롯해 허도에 머물고 있었던 여러 충신들이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것마저 발각이 되면서 조조의 분노를 피해갈 수 없었다. 끝내 충신들의 집안을 멸문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헌제의 아이를 임신중인 '동대비(동승의 딸)'마저 목졸라 죽이고 마니 조조의 악행은 갈데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이런 조조를 보면서 감히 '영웅'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한왕조가 무능하고 백성의 민심이 떠났으며 멸망의 기운이 깊어졌다하더라도 감히 '신하'된 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황건적의 난이 한창일 때 젊은 시절의 조조는 한 관상가에게 "난세의 능신, 치세의 간웅"이라는 점괘를 받았다고 한다. 평범한 이가 들었다면 한없이 기분 나빠했을 나쁜 점괘인데 조조는 '그것도 좋다'라면서 반겼다고 한다. 이게 과연 무슨 뜻인고 하니, 어리저운 세상이면 능숙해지고, 태평한 세상이면 간사해진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팔자가 '거꾸로' 트였으니 어지럽고 뒤숭숭한 세상을 만들어야 팔자가 편해지고, 태평하고 평안한 세상이면 팔자가 꼬여 간사스런 일을 해서라도 세상에 풍파를 만들 썩을 놈이란 뜻이다. 왜냐면 세상이 어지러워야 제 운수가 트이는 팔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인 승상에 올랐으니 세상이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조의 평판은 나쁘지 않다. 휘하에는 구름같이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저마다 재능을 뽐내고 조조의 눈에 들고 칭찬을 받기 위해 '무슨짓'이라도 하려고 득달처럼 매달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의 눈에 드는 것이 곧 '한 황실에 충성'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헌제의 목숨을 구하고 헌제를 모시고 있는 조조에게 '충성'하는 것이 곧 '한 황실'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라고 여겨진 탓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순욱'이다. 순욱은 뛰어난 지략으로 조조를 한평생 보필하는데 조조의 영민함을 받들어 충성을 다하면 한 황실의 안녕과 더불어 만백성이 평안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조조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에겐 '역적 프레임'을 걸고 발본색원하는데 앞장 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허나 훗날 조조에게 '빈잔'을 선물 받고 자결을 명받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조조가 본색을 드러내 헌제에게 선양을 받으려는 불충에 동참하지 않은 결과였다. 과연 충성스런 신하라면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야 하는가? 아님 독재자에게 충성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가?
헷갈리기 쉽지만, 정답은 뻔하다. 국가에 충성을 다해야 마땅하다. 독재가같은 인물이 나온다한들 '패싱'이 정답이다. 당장에 목숨이 아까워서 납작 엎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진정한 신하라면 국가에 충성을 하는 것이 정답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국가를 참칭하고 '자신'이 곧 '국가'라면서 국가가 아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못난이들이 간혹 생기곤 한다. 더욱 못난놈들은 그런 못난이를 추종하며, 그런 못난이를 앞세워 저들만의 이익을 챙기는 놈팽이들이다. 이런 못난이와 놈팽이들이 나라를 팔아먹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국민들의 자존심마저 헌신짝처럼 내다버리고 제놈들의 이득에만 열을 올리기 마련이다.
<삼국지>에서는 이런 못난이와 놈팽이들에게 '바른소리'를 목놓아 외치던 인물이 있다. 바로 '예형'이란 선비다. 예형은 끝끝내 '입바른 소리'를 하다 제 목숨줄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만 인물로 비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조와 조조의 똘마니들에게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은 충의로운 선비로 봐야 한다. 오늘날로 치면 독재자에게 가감없이 '바른소리'를 외친 인물이니 영웅 중에 영웅이고, 애국지사 중에 으뜸으로 쳐야 할 것이다. 충성스런 신하란 '국가'와 '만백성'을 위해 제 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옳은소리'를 목놓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독재자에게 알랑방귀나 껴대는 놈들보다 훨 낫지 않느냔 말이다.
이렇게 동승과 길평, 그리고 예형으로 이어지는 '조조에게 저항하는 이들'의 대목을 읽으면서 요즘의 어수선한 대한민국 정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조를 암살하려 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왕조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고, 온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진 '민주주의 시대'에는 누구 한 사람을 죽인다고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못난이 하나 죽이는 것보다 놈팽이들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더욱 중하다. 이승만이 키운 '친일매국 놈팽이들', 박정희가 키운 '군인출신 놈팽이들', 전두환과 노태우가 키운 '유신세력 끄나풀들', 김영삼이 키운 '반민주적인 경제거물들', 이명박과 박근혜가 키운 '몰염치한 뉴라이트세력들', 그리고 윤석열과 얍삽하고 저열하기 이를 데 없는 '자칭 엘리트집단들의 저질스런 패악질'을 지켜보면서 <삼국지>를 열독해야 할 이유를 또 하나 찾고 말았다.
비록 한나라는 조씨와 사마씨에 의해 차례차례 짓밟히고 말았지만, 대한민국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독재세력들이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려 놓으려 할지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저들의 세상인 것마냥 제멋대로 굴지만 시곗바늘은 째깍째깍 '앞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년 총선은 다가오고 대통령의 임기는 늘어나지 않는다. 꼴랑 1년 만에 참으로 대한민국을 망쳐놓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뿌리뽑아야 할 세력들이 누구인지 더욱 잘 알아볼 수 있게 된 '기회'로 삼을 때다. 대한민국은 결코 윤석열과 똘마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바닥에 임금 왕이라 써놓고 지가 왕인줄 착각하는 대통령은 정말 아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주권자인 국민의 '신하'에 불과하다. 감히 신하가 '국민의 주권'을 제것인냥 맘대로 쓰다간 큰코 다칠 것이다. 제발 '신하가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깨닫고, 지금 국민들이 외치는 '바른소리'를 귀담아 들을 것을 명한다. 니가 가야할 길은 거기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