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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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쓸 당시만 해도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정권'이 한창이었다. 김재규의 총부리가 박정희를 향하고 '서울의 봄'이 잠시 잠깐 찾아왔었지만, 민주주의는 곧바로 찾아오지 못하고 다시금 '군사정권'이 들어서 '유신독재의 그늘'은 더욱더 짙어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쓰여지고 난 뒤에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6월항쟁'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의심쩍은 구석이 없지 않다. 과연 이문열은 '민주화 투쟁'을 위해 이 책을 썼던 것일까?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이승만 독재 아래에 놓인 '자유당정권 시절'이다. 오직 힘과 권력을 가진자들만이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며, 권력에서 밀려나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던 암담한 시절이었는데, 그런 권력조차 정당하지 못한 부정한 방법으로 차지한 무리들이 떠세를 부리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참담한 시절이었을까. 그런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시골의 초등학교'를 주된 배경으로 '급장 엄석대와 전학생 한병태'의 대결이 중요 줄거리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런 이야기구조로 보았을 때, 한병태의 외로운 싸움을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투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태는 승리하지 못하고 끝내 석대에게 굴복하고 달콤한 굴종의 열매를 맛보는 것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른이 되어서도 '경제적 풍요'를 누리지 못하고 잔인한 패배감을 맛보는 결말을 보면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은 이들이 이 작품을 볼 때 '미완의 민주주의 혁명'의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탓에 이문열은 오래도록 '민주화 투쟁'에 긍정적인 시선을 지닌 작가로 오해도 했었는데, 2008년 촛불혁명 당시 "나는 보수주의자다"라는 양심고백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뜨악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 뒤에 다시 읽어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과연 '민주화 투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저 그런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다. 왜냐면 이 작품의 결말에서 한병태가 현실의 비참함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석대가 만든 세상'을 철저히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재자와 다를 바 없었던 엄석대가 만든 세상이 그토록 그리운 까닭은 비록 더러운 세상일지라도 석대에게 굴종을 바치기만 하면 '달콤한 열매'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이니, 민주적 방식의 정의로움이니 다 부질없고 그저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는 것만이 부러울 따름인 너덜너덜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하긴 누가 '경제적 풍요'를 마다할 것인가. 조금쯤 더러움과 타협을 하고 부당한 권력일지라도 넙죽 엎드리는 굴욕을 살짝 견디기만 하면 넓디 넓은 고층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으며, 고급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고, 어딜 가서든 갑질을 하며 융숭한 대접을 만끽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깟 양심이 뭐가 대수라고, 그깟 자존심이 뭣이 중하다고 애지중지 끼고 살아야만 한단 말인가. 조금만 비굴해도 넉넉하게 살 수 있고, 사알짝 굴욕을 당해도 '경제적 풍요'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용기가 샘솟게 될테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한병태가 석대에게 굴종한 뒤, 그가 누린 '달콤한 열매'는 다름 아닌 다른 학생들이 석대의 횡포가 무서워 갖다 바친 '상납과 뇌물'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토록 원하던 '달콤한 열매'의 진실도 과연 무엇이겠느냔 말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독재정권'에게 무참히 빼앗긴 서민들의 피와 땀이었을 것이다.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이 누리는 경제적 풍요라는 것이 사실은 열심히 살아가는 착하고 평범한 서민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을 가로채서 제 호주머니를 그득 채운 '사악한 욕심'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한병태는 바로 그런 부당한 방식으로 빼앗은 '경제적 풍요'를 그리워하고 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픈 현대사속에서 '일그러진 영웅'을 그리워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남들은 어찌 살든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심보가 바람직한 것이라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경제적 풍요'만큼은 절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부정한 짓을 통하더라도 '경제적 풍요'만 보장해준다면 적당히 타협하고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풍요가 '착하고 선량한 이들의 몫'을 빼앗은 결과였대도 그랬겠냐고 되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를 팔아먹어도 좋고, 자존심도 버리고 강자에게 굴종하며, 힘 없는 이들의 몫을 강탈하는 파티에 '초대장'을 받는다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참석하겠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결코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없다고 일깨워주니, 일순간 의아해 한다. 너희들은 '석대가 마련한 잔칫상의 진실'을 알고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것이 바로 한병태가 괴로워하는 까닭이다. 석대를 비롯한 '악인들의 세상'에 몸 담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면서 그들이 만들어준 '경제적 풍요'를 탐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병태는 석대가 만든 세상을 그리워한다. 석대는 일그러져 있을지언정 '영웅'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일그러진 영웅을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며 말이다.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그 영웅이 다시 돌아온다면 기꺼이 맨발로 환영할 거라면서, 지금의 비참하고 빈곤한 생활을 벗어나게만 해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나는 싫다. 내가 누리는 풍요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살아온 결과라고 믿고 싶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뿐인 목숨을 아끼지 않고 어려움을 함께한 이들이 많았기에 지금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다.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굴곡진만큼 21세기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이런 대한민국일진데, 나라를 망치게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나라조차 망신살이 뻗치게 만드는 세력이 아직도 떠세를 부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그런 죄 많은 장본인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이 남긴 찌끄래기도 못 먹어서 안달이 난 못난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영웅은 결코 '일그러진 모습'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못난 영웅을 쫓아낸 경험이 많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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