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 청불전쟁과 갑신정변 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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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일제식민통치'에 의한 강제적인 것으로 시작하였다. 허나 이는 '일본제국'을 위한 것이었을뿐, 우리를 위한 근대화는 아니었으니 말할 건덕지도 없다. 그런 탓에 본격적인 근대화의 시작은 '해방 이후'로 잡고 있으나, 그마저도 친일독재, 군사독재, 반민족적인 독재정권 들이 연이어 들어서는 바람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고, 21세기 초반에야 겨우 '근대화의 틀'이 잡혀나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뼈아픈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정 '조선의 근대화'는 허상일 뿐이었고,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던가? 이번 편에서 '갑신정변'에 대해 풀어놓았으니 살펴볼 일이다.

 

  우리 근현대사의 시작을 '흥선대원군의 집권'으로 보고 있는 시각이 참 새삼스러울 지경이다. 그 이전까지 '세도정치'로 지배계층이 뿌리까지 썪어 문드러져 있었으니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들이 뒤늦기는 했지만, 눈여겨볼 만한 탓이다. 그러나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고,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화, 개혁세력들이 타격을 입고, '동학혁명'으로 새나라를 꿈꿨으나, 뒤이어 벌어진 '청일전쟁'으로 우리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겠다는 모든 시도와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온국토와 백성들이 쑥대밭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결국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있었다면 그건, '민중봉기'로 싹튼 '민주국가에 대한 열망'이었고, '항일의거'로 보여준 '우리 민족의 불굴의 의지'였으며, 훗날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정신적 기틀'을 바로 세운 것이 전부였다. 뼈아픈 근현대사는 이렇듯 물적으로도, 인적으로도 '절대적인 자원부족' 상태에서 다시 세워 나아간 것이다.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기적을 이뤄냈고, 어떤이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끌어간 주역은 누구라고 보아야 할까?

 

  조선후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개화사상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겠다. 흔히 '북학파'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성리학적인 세계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생각을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사대부)들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이들이다. 꽤나 개방적인 사상을 갖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엄연한 '유학자'들일 뿐이었다. 유교라는 큰틀 안에서 '조그만 창'을 내어 세상밖을 살펴볼 뿐, 조선이라는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개혁가들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개혁가를 꼽자면, '갑신정변의 주역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홍영식 등의 개화사상가들이 주목한 '롤 모델'은 일본의 '명치유신(메이지유신)'이었다. 일본의 개화가 성공적으로 보였던 이들은 일본과 손잡고 '조선의 근대화'를 서두르려 하였고, 나아가 서구열강들의 침탈에 맞서 '동양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 일본을 파트너로 삼는데 거침이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내부의 불만'을 가라앉히고 일본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 '외향적 분출(침략전쟁)'을 일삼던 나라라는 것을 이들은 잊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후쿠자와 유키치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김옥균과 그 일당들'의 철저한 오판이었던 것일까? 암튼 '갑신정변'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조선의 민중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지도부의 교체(?)만으로 개혁이 성공하리라 철떡같이 믿고 있었으며, 조선의 개혁을 은근히 바라는 서구열강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돕기 위해 견마지로를 다할 것이라 믿었고, 가장 큰 오판은 일본이 '조선의 개혁'을 위해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혁성공 이후, 개혁세력들이 정치적 안정을 찾을 때까지 일본정부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퍼줄 것이라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무려 '청나라'를 상대로 말이다.

 

  그렇다. 고종임금이 다스리고 있던 그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이 너무나도 심했던 시절이었다. 가뜩이나 조선을 '청의 속국'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서구열강들의 의심스런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고종과 민씨일파들은 '임오군란'이라는 위기를 맞아 너무나도 쉽사리 '청나라 군사'를 끌어들이는 졸속적이고 졸렬한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조선은 청나라 군사에 의해 내정간섭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고,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조선정부를 향해 막대한 보상금과 피해재발을 막을 수 있는 선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다. 이렇게 고종과 민왕후는 '청의 간섭'으로도 모자라 '일본의 간섭'까지 받게 되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거기다 구세력(친청)과 신세력(친일)간의 마찰은 더욱 심화되어만 갔다. 애초에 임오군란의 원인이 이 둘의 갈등이었는데, '구세력의 불만'이 폭발한 뒤에 제대로 해소되지도 못하고 '청나라의 간섭'만 더욱 심해진 꼴이 되었으니 나라꼴이 엉망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신세력들은 나라꼴을 우습게 만든 세력이 볼짱사납게도 '재집권'을 하게 된 상황이 더욱 눈꼴 시린 것도 말할 것 없고 말이다. 이에 '갑신정변'이라는 새판을 짜기 위해 물밑작업을 시작했고, 결행의 시기까지 무리하게 앞당겼던 것이다. 그렇게 무리하게 결행한 결과가 고작 '삼일천하'였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이렇게 구세력도 별볼일 없었고, 신세력도 변변찮으니 나라꼴이 점점 우습게 된 것도 '당연지사'였으리라.

 

  이런 판국에 '갑신정변'의 진행과정부터 결과까지 '청과 일본의 대결' 양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양새는 더욱 빠지게 되고 말았다. 만약 '프랑스'라는 변수만 없었더라면, 갑신정변으로 인해 '청일전쟁'이 곧바로 시작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 '응우옌 정권'을 독차지 하려다 청의 간섭을 받자, 곧장 '청불전쟁'을 시작했더랬다. 그렇게 프랑스와 청이 대판 싸우자 조선에서 벌어진 사건에 '청과 일본' 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꺼렸던 탓이었기 때문이다. '갑신정변'이 일어날 당시, 청나라는 청불전쟁에서 발을 빼기 쉬운 상황이 아니었고, 일본은 청불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프랑스가 확실히 이길 거라는 보장도 없었기에 깊숙이 간섭하기 곤란했던 것이다. 그래서 '갑신정변'으로 청군 3명 사망, 일본군 2명 사망이라는 나름의 성적표(?)를 가지고 치열한 협상을 벌인 끝에 양국군 모두 조선에서 철군하기로 '텐진조약'을 맺은 것이다.

 

  이로써 조선은 '갑신정변'이후 개화세력(민씨척족) 제거와 동시에 외국군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이런 결과를 가장 반긴 이는 다름 아닌, '고종'이었다. 모처럼 '아버지 눈치'도 보지 않고, '아내의 간섭'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는데, 청군과 일본군이 모두 철수해버렸으니, 드디어 '고종의 친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종은 이 틈을 이용해 '청과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외교관계'를 바라마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청나라와 일본과 한판 붙어도 결코 쫄지 않는 '새로운 힘'과 손을 잡고 싶었던 것이다.

 

  이쯤해서 '고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만다. 고종은 조선백성의 주인이면서도 백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스스로 힘을 기르겠다는 '자주국방'이라는 기본조차 망각한 무능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봄을 맞이한 기간이 너무나도 짧아 무슨 노력을 기울였어도 달콤한 결과를 맛보기 힘들었겠으나, 겨우 맞이한 봄이 무색할 정도로 곧바로 겨울을 불러들이는 무능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 권에서 다룰 내용이겠지만,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혁세력(친일)들이 모두 사라진 때에 '구세력(친청)들'만으로 무슨 기회를 엿볼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더구나 전통적인 구세력들이 믿을구석이라고 해봤자, 결국 '또다시 청나라'에 굽신거리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뭔가 노력을 하긴 했었는데, 다름 아니라 '러시아 세력'을 끌여들인 것이다. 그간 러시아가 보여준 저력은 엄청난 영토확장과 더불어 '대영제국'과도 과감히 맞짱을 뜨는 힘, 청나라를 상대로 만주와 연해주를 뜯어내는 힘, 태평양을 넘어 미국까지 경계하게 만드는 저력, 그리고 일본을 상대로도 말 한마디로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가공함에 고종은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리라. 허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조선'이라는 머나먼 왕국은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아직 '시베리아철도'가 개통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라 러시아의 육군과 해군이 '조선'에 다다르기 위해선 얼어붙은 시베리아땅을 뚫어야 하고, 영국의 견제를 피해 대서양과 인도양을 끝에서 끝까지 종단과 횡단해야만 했기에 조선이 아무리 매력적인 제안을 하더라도 '당장'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허나 이러한 국제적인 상황이 급변하면서 조선에 '러시아'와 '영국'이 발을 들이게 된다. 그로 인해 '거문도 점령'이라는 달갑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니, 다음 권에서 펼쳐질 내용이다.

 

  정리하면, '갑신정변'으로 인해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첫째, 소수일망정 개혁세력을 깡끄리 잃어버리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자주적인 근대화'는 물 건너갔다. 둘째, 무리한 개혁이었을망정 구세력(친청 사대부)들에게 감동과 각성을 주는 계기로 작용했어야 하는데, 되려 '개혁의 필요성'마저 망각하게 만들어버리는 비호감만 전해주었을 뿐이다. 셋째, 일시적이나마 '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나, 그 절호의 기회를 맞아 '뭔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조차 없이 그저 '헤프닝'에 불과한 사건으로 일단락이 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나 아무런 영감도 불어넣어주지 못할 '정변'을 왜 했던 것일까? 아니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단 말인가? 단지 '불만표출'에 그칠 요량이면, 도끼를 매고서 상소를 올리는 유생들의 행위를 따르고 말 일이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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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 - 고전 20권 쉽게 읽기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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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백년을 살고 나서야 내 취향이 '인문사회과학'이었다는 걸 깨닫다니, 늦은 걸까? 이른 걸까? 어릴 적엔 '과학'에 흥미를 느껴 과학만 주야장천 파고 들어 과학도를 꿈꿨으나, 사알짝 기술직으로 비켜나가 공대를 졸업한 뒤엔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질을 하고 있다. 그렇게 논술쌤으로 살면서 슬며시 발을 들여놓게 된 '인문사회과학책'에 날이 갈수록 빠져들고 말았다. 물론 서른이 넘어서야 겨우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20년동안 읽으니 이제 겨우 깨달음의 문턱을 넘어선 것 같지만, '인문사회과학의 매력'의 끝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모든 학문의 길이 넓고 깊기 마련이지만, 특히나 '사회과학'이 그런 까닭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는 게 아니라 '같은 문제', '같은 현상'이라도 이렇게 보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렇게 보면 저게 맞는 것 같아, 딱히 '이것만'이 정답이라거나 '저것만'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케인즈의 경제학'이 20세기 대공황에는 옳은 해법이었으나 뒤이어 찾아온 '석유파동'에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다시 '케인즈의 해법'이 주목받고 있는 요즘을 보면 '사회과학은 이랬다 저랬다' 줏대없는 학문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회과학의 진짜 매력'이었다는 것을 느즈막한 나이에 깨닫게 되었단 말이다.

 

  어찌보면, 사회과학은 요란한 '진단'에 비해 뚜렷한 '결론'이 없어 헤매기 딱 좋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현상'이라 할 수 있는 것에 '문제의식'이라는 틀을 들이댄 뒤에 나름의 가설을 세운 뒤, 검증을 하며 '자기만의 이론'을 정립한 뒤에 '모범답안'이 나오면 '사회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게 된다. 이를 두고 수많은 학자들이 '그 이론'을 토대로 현실문제를 해소하는 실용적인 학문이 '사회과학'이기도 하다. 허나 많은 경우에는 이론상에서만 검증되고 실제로 적용된 뒤에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비판을 넘어 비난을 받기도 하는 것도 다름 아니라 '사회과학'이다. 이는 '과학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회현상이라는 것이 워낙 변수가 많아 제대로 검증을 하기에 '객관성'이 떨어진 탓이고, 또한, 시간이 흘러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예전엔 맞았던 이론이 지금은 틀리는 경우'도 많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정말 많다. 이렇게나 '불확실한 학문'이 있는가 싶지만, 이 또한 '사회과학만의 매력'이었던 것이다.

 

  왜냐? '사회과학책'은 그 자체로 '정답'일 수는 없지만, 심지어 '오답'일 확률도 높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도 막대하기 때문이다. 맥루한이 60여 년전에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얘기했을 때, 21세기 '스마트폰'은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상상도 못했을텐데, '스마트폰, 그 잡채'가 전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메시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뜻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우리 사회를 변혁시킨 것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맥루한이 말한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글러가 말한 '가난의 이유'도 되새김질 해보면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해 얼마나 많은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지 단박에 보여준다. 그러나 진단과 분석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했더라도 '해법'은 마땅히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맥루한이 '미디어 파워'을 예측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누구를 위해 써야할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지글러가 '가난의 이유'을 밝혀냈지만, 그 해법이나 대안을 적절히 제시하지는 못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은 무력한 학문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 '관심'을 끌어내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의 '백인우월주의'가 만연하자,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를 펴내서 '백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낱낱히 밝혀내어 서구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레비스트로스도 <슬픈 열대>를 펴내며 문명과 미개의 '종이 한 장 차이'를 사회구조적 관점으로 증명하며 서구사회의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을 직시하라고 조언했다. 물론, 정답은 없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반문과 비난도 사회과학분야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옳은 지적'이라는 사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사회과학의 진짜 힘'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과학자'는 정답 제시에 게으를 수밖에 없다. 모르는 걸 어떡하냔 말이다. 대신에 우리가 직면한 사회현상이나 문제에 앞에 당당히 '마주서기'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소크라테스도 말했다. 진정한 용기란 백만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장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무릅쓰고 당당히 적 앞에 '마주 설 수 있는 자'가 진정 용감한 자라고 말이다. 해법은 그 뒤에 나온다. 명량대첩은 '133 vs 13'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133 vs 1'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한 이순신이 버티고 또 버틴 뒤에야 비로소 기적과도 같은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자'는 만능공식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의 물꼬'를 열어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도 바로 '생각의 물꼬'다. 다시 말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항상 현실에 놓인 사회문제를 앞에 두고 당당히 '마주서기'할 때 잡애챌 수 있는 법이다. 때로 그 실마리가 '잘못'되었다고한들 실망할 까닭이 없다. 또다시 '마주서기'한 다음 '또 다른 실마리'를 찾고, 잡아채길 주져하지 않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 <친절한 사회과학>도 바로 그런 '마주서기'와 '실마리 찾기'를 도와주는 길라잡이다. 고전의 반열에 올라 감히 범접하기도 힘든 '벽돌책'들을 말랑말랑하고 한입에 먹기 좋게 잘라주어 독자들이 '사회과학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데 어려움이 없게 해주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칫 책내용이 어려운 탓에 '생각의 물꼬'를 찾지 못하고 헤맬 독자들을 위해 '천절한 가이드' 역할까지 해주고 있다. 물론, 그 '가이드'만이 올바른 정답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니 안심하길 바란다. 어디까지 '물꼬'를 내어줄 정도이니 독자의 취향에 따라 '생각의 방향'을 달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선 <친절한 인문학>과는 또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으니, 서로 비교하며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일 것이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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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2 : 돈키호테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
백원흠 그림, 김형주 글, 손영운 기획, 미겔 데 세르반테스 원작 / 채우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돈 키호테>에 대한 극찬은 대단하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1616년 4월 23일)'에 사망하였기에 '책의 날'로 지정해서 기리고 있고, 유명작가와 평론가 들에게 '거의 모든 현대 소설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돈 키호테>에 나오는 '소설기법'은 수없이 많이 차용되었으며, '돈 키호테형 인간'이라는 대명사가 나올 정도로 오래도록 회자되며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밋밋하기 그지 없다. 400여 년전에는 배꼽을 잡고 웃어재낄만한 장면이었을지 몰라도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거나 양떼를 군대로 착각하고 묘사하는 장면이 도통 웃기질 않는다. 거기다 늙고 비쩍 마른 말을 타고 세숫대야를 머리에 쓴 기사가 저지르는 엉뚱한 짓거리들이 무엇을 풍자하는 것인지 가물가물해진 요즘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고 느껴지질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상하는 재미'까지 반감시켜버리는 '만화형식'이라 더욱더 명성에 비해 벅찬 감동이 다가오질 않아 아쉽기 그지 없었다. 실제로 제자들도 침을 튀어가며 <돈 키호테>가며 명작이라 썰을 푸는 선생님을 안쓰럽게 바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돈 키호테>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 것일까?

 

  먼저 '돈 키호테형 인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듯 싶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자신의 책에서 '햄릿형 인간'과 '돈 키호테형 인간'으로 구분하여 소개하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주인공인 그는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게 복수를 할 수 있었음에도 망설이고마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대명사로,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의 주인공인 그는 흘러간 옛 기사소설에 흠뻑 빠져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는 '무모한 성격'의 대명사로 분석했었다. 여기에 덧붙여 햄릿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돈 키호테는 앞뒤 잴 것도 없이 거침없이 달려드는 '이상적인 인물'로 평가했다. 이런 식으로 분석을 하고나니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현실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선 고민하는 '햄릿'보다 거침없는 '돈 키호테'가 더 인기있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지혜롭게 살려면 '햄릿'과 '돈 키호테'를 적절히 섞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쪽은 '자신의 이상(꿈)'을 향해 돌진하는 인물이다. 때론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잘못된 길인줄 나중에 깨닫게 될 때도 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절대 흔들리지 않은 뚝심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양떼를 적군으로 오해하는 '비이성적인 행태, 그 잡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낡아빠진 '관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옳다'고 박박우기는 어리석은 짓은 말할 가치도 없다. 이런 미치광이 짓거리를 하는 돈 키호테를 보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약자'를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모습이다. 바로 이런 '인물'이 우리의 눈에 '광인(미치광이)'으로 보일지언정 '나쁜놈'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 모두는 '완벽한 인간'일 수 없다.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기준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인권 따위를 주어섬기는 인물이 '권력자와 가진자의 횡포'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여기면서, 평상시에 미치광이처럼 보이던 엉뚱한 인물이 '약자가 짓밟히는 상황'을 부당하고 불의하다여겨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이들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리는 모습에는 부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자유'라는 이름을 남발하며 '약자의 인권'을 짓밟는 권력자를 향해 주먹감자조차 아끼며 움추려들면 안 된다. 강철보다 더 단단할 것처럼 보이는 '부정한 권력'도 결국엔 달려들어보지 않고선 강철같이 단단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법이다.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이 원래는 '주권자'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 '주권자'가 권력이 잘못 쓰이고 있다고 판단해서 시위를 하고, 구호를 외치는데 '강제해산'과 '캡사이신' 운운 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행해졌다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쓰지 않던 방법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도 그런 '낡은 유물'을 다시 꺼내어 '부패한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 또다시 써먹겠다니...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햄릿'할 시간은 지나갔다. 지금은 '돈 키호테'할 시간인 것이다. 풍차 같은 용산대통령실과 양떼로 둔갑한 국민의힘에게 정신 차릴 수 있는 '깨몽펀치'를 날려야 할 때다. 이젠 꺼낼 '낡은 유물'도 없지 않은가? '유신시대'보다 더욱 시간을 되돌려 '일제시대'로 회기할 참인가 말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에게 '이상(꿈)'이 필요하다.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우뚝서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이 되기에도 바쁜 시간에 자꾸 발목을 잡는 '과거지향적인 놈들'을 깨부술 '돈 키호테'가 절실한 까닭이다.

 

  이 시리즈가 '서울대 선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면 작금의 '자칭 엘리트'라는 집단이 어찌 이리도 부정하고 부패하였는지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 엘리트들 가운데 어찌 그리도 '지들'밖에 모르는 덜된 인간들이 그리도 모여 있는 것인지 다시금 되새김해볼 시기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지성이라는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도 이리도 조용할 수 있느냔 말이다. 자신들의 선배들이 저지르는 부정부패의 짓거리를 보면서도 뭔가 깨닫는 것이 없단 말인가? 아니면 서울대쯤 들어가서 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란 말인가? 똑똑하다는 당신네들이 "이건 잘못되었다"라고 외쳐야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실현되는 것 아니냔 말이다. 약자들을 위해 제목소리도 낼 줄 모르는 위인들이 '기득권의 반열'에 올라 온갖 것을 누릴 생각만으로 가득하다면, '서울대'라고 자랑스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분명 서울대에도 똘끼(?) 충만한 '돈 키호테형 인간'이 득실득실할 거라 믿는다. 제발 그렇다면 어떤 '미치광이 짓'을 할까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지 말고, 이상을 실현하고 약자를 수호하는 정의의 '기사도 정신'을 되살려 대한민국이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장서길 바란다. 그정도는 되어야 '서울대생'이라 자랑질 뿜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서울대생은 그저 '기득권의 수호자' 지망생으로 남을 것인가. 선택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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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5 : 공명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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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이 <공명>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면서, 게임 <삼국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템'이다. 그럴만큼 제갈공명은 중요인물이다. 그를 일컫는 별칭조차 '와룡'이나 '복룡'이다. 흔히 왕을 상징하는 동물로 용을 꼽는데, 제갈량이 아직 취직(?)도 못한 시골 은자로 꼭꼭 숨어 있는 모양새를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인물이며, 실제로 소설속에서도 제갈량의 등장만으로 이야기는 급반전을 이루며 활기차게 된다. 다음 권에서 '적벽대전'을 다룰 참이니 제갈량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다.

 

  우리가 애써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유능한 신하'를 모셔가기 위한 위촉오 삼국의 쟁탈전이 바야흐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관우의 오관참육장을 시작으로 손책의 죽음과 손권의 등장, 조조와 원소의 대결 '관도대전'이 펼쳐지고, 그 와중에 유비진영은 조조의 품을 떠난 뒤에 원소에 빌붙었다 '여남'에 터를 잡는가 싶더니, '형주의 유표'의 식객으로 전락했다가 '신야'에 정착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유능한 신하들'이 나름의 재능을 펼치다가 각국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하고, 이야기의 방향을 전환시키기도 하면서 종횡무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강동의 오나라를 살펴보자. 손견이 죽고 손책의 치세가 이어지며 오나라는 강력한 국가의 면모를 갖춰나가게 된다. 물자도 풍부하고 인물도 많으며 장강(양쯔강)으로 둘러쳐진 천혜의 요새 같은 지형속에서 오나라는 무럭무럭 성장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고인물' 느낌이 풍기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강의 상류엔 '형주의 유표'가 건실히 자리하고 있고, 장강의 북쪽은 조조와 원소가 활개를 치며 확고한 영역권을 행사하고 있기에 좀처럼 진출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 아직 국가의 기틀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기에 먼 훗날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훗날의 오나라마저 '고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사마씨(진나라)에게 멸망하고 만다. 암튼, 그런 손책이 손견에 이어 오나라의 번영을 위해 착실히 기틀을 쌓고 있었으나 사냥을 나섰다가 비명횡사할 뻔했고, 명의 화타가 겨우 살려놓았으나, '우길'이라는 신선같은 도인을 시기질투하다 끝내 급사하고 마니, 오나라는 '손권'이라는 어린 새주인을 맞이하게 된다.

 

  나라를 다스리기에 아직 어린 군주를 보필할 유능한 신하가 꼭 필요했던 손권은 형님의 친구이기도 한 주유가 노숙을 천거하자 기꺼이 수락하고, 제갈근을 직접 발탁하는 등 든든한 버팀목이 될 인재를 받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름지기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일지라도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의 크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수많은 인재를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유용한 일을 도모하는지 감독하는 일이 '지도자의 첫번째 덕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권은 탁월한 군주였다.

 

  한편, 조조는 스스로 영웅이라 뻐기며 온갖 잘난 체를 다하더니 '황제의 밀서사건'으로 된서리를 맞고서 '국구 동승'을 비롯해서 모반자를 색출하고 숙청하는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숙청대상 1호쯤으로 여길 '유비'는 자신의 감시망을 유유히 탈출하더니 원소에게 붙었다, 여남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유표에게 빌붙는 등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조조가 한판 승부를 펼쳐할 대상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하북의 원소세력'이었다. 황하의 북쪽땅을, 그것도 가장 비옥하고 인물 많은 알짜배기땅을 차지한 거대한 세력이 조조의 등뒤에 버티고 있는 한 조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란 위기 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소세력은 뭐든지 조조보다 10배는 많이 갖추고 있었다. 단순히 병력의 숫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말이다. 이를 테면, 조조가 겨우 1만명의 군사를 갖춰 원소를 공격할라치면 원소는 장병 10만에, 기병 10만, 식량 10년치, 군수물자 빵빵, 거기다 구름같이 많은 장수와 참모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조조 진영에선 굴하지 않고 원소와 결판을 내야 한다고 야심차게 주장하는 신하들이 많다. 하후돈, 허저, 서황, 장료 등 두려움을 모르는 무장뿐만 아니라 순욱, 순유, 정욱, 그리고 곽가 등 참모들까지도 하나같이 승산이 높다며 원정을 주장한다. 그만큼 조조 휘하에는 일당백의 유능한 신하들이 많고, 그 유능함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드러난 자신감이다. 거기다 조조의 용병술은 신묘하기 그지 없으니 군신간의 의기투합이 이리 출중하니 승리는 따논 당상이라는 듯 하다. 반면에 원소 진영에도 만만찮고 쟁쟁한 인물들이 구름같이 많았으나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지 못하고 내분에 휩싸이고 말아 그 큰 세력을 갖고서도 '관도대전'에서 패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것이 바로 원소의 '팔랑귀'를 들 수 있다. 이말에도 혹하고 저말에도 혹하는 바람에 유능한 신하가 모처럼 충성스런 마음으로 책략을 일러주어도 군주의 애정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는 '반대측 신하'가 정반대의 대책을 일러주면 삽시간에 마음이 해까닥 돌변하고 마는 것이 원소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것이다. 자고로 지혜가 부족한 군주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충언'과 '간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충언과 간언의 결정적 차이점은 무엇인가? 대개 충언은 대의(큰일)를 위해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자고 말하고, 간언은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자고 말하는 법이다. 원소의 처지에서 조조의 침략은 맞서 싸우기보다 든든히 버티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애초부터 큰 차이가 나는 전력인데 뭣하러 '조그만 이익'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나가 큰 희생을 치른단 말인가. 그저 천혜의 요충지를 방어막으로 삼고 상대의 기세가 줄어들 때까지 버티다 상대가 지쳤을 때 반격에 나서면 필승이었다. 그런데도 원소는 조조의 공격에 발끈해서 총공격을 나섰다가 어이없게 대패를 하고 말았다. 만약 원소가 저수의 충언을 받아들여 방어전을 펼쳤으면 조조는 거꾸로 치명타를 받고 오래도록 회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곽도(곽상도?)의 간언을 받아들여 섣불리 거대한 덩치를 가볍게 놀리다 거꾸로 치명타를 받고 마니 어리석기 그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유능한 신하'를 어찌 써먹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조조처럼 유능한 신하를 미리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유용하게 써먹을 줄 알아야 한다. 조조처럼 할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원소처럼 '팔랑귀'가 되어선 안 된다. 충언과 간언조차 구분할 줄 모른다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한편, 유표 진영은 한가롭기 그지 없다. 관도대전이 한창일 무렵에는 조조와 원소가 서로 편을 먹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조조는 원소와 손을 잡고 양쪽에서 공격 당할 걱정에 유표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하소연했고, 원소는 우리 함께 조조를 합심해서 죽여버리자고 유표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유표는 양측의 러브콜에 무반응으로 일축했다. 아니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기만 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면 유표에게는 야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황실의 종친으로 천수를 누리다 편하게 눈 감으면 그뿐이라는 사람에게 천하를 뒤흔들 결정이란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던 것일테다. 그렇게 아무 편도 들지 않다가 유비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레 조조와 척을 지게 되었다. 급기야 조조가 관대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이제 조조의 칼끝은 서서히 유표쪽으로 향하게 되고 말았다. 그 시작은 '신야'에 머물고 있는 유비였다.

 

  유비는 조조에서 원소, 여남에서 형주까지 유랑을 하면서 조자룡이라는 유능한 무장을 얻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으나 인연이 미치지 못해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 정처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고나니 연이 맺어지게 된 것이다. 거기다 관우가 조조의 품에서 벗어나면서 주창이라는 부하와 관평이라는 양자를 얻게 되었으니 유비진영에 인재가 늘어나게 된 셈이다. 허나 든든한 무장을 얻긴 했으나 '지략가'가 마뜩찮았다. 허나 마침맞게 '서서'라는 군사를 맞이하여 조조의 선봉격이었던 조창과 이전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조조의 책사였던 정욱의 꾀에 빠져 서서는 유비의 품을 떠나 조조 진영쪽으로 향하게 된다. 그때 융중이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제갈량을 유비에게 소개해주고 가니, '삼고초려'가 펼쳐지며 이 책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유비는 서서라는 '책사의 맛'을 한 번 보고서 제갈량을 더욱더 갈구하게 된다. 그동안 관우와 장비의 용맹, 손건과 간옹의 헌신으로 근근히 버텨왔지만, 유비 진영은 한실의 종친이며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로 명성을 날리는 것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세력으로 전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의 꿈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인데 송곳 하나 꽂을 땅뙤기 하나 건사하지 못한 처지로 오래 살다보니 더욱 그랬다. 사마휘 선생에게 '와룡과 봉추' 이야기를 듣고 나선 유비의 늙은 몸을 더욱 부풀어 오르게 하는 꿈이 곧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진 탓이다.

 

  그런데 정작 제갈량은 변변한 세력도 없는 유비에게 빌붙을 생각은 없었던 듯 싶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의 집에 얹혀 살아가다 숙부마저 폭삭 망하자 '가난'을 경험한 어린 제갈량은 자신의 실력을 마을껏 펼쳐볼 수 있는 든든한 터전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배다르지만 장성한 형님인 제갈근이 오나라의 중신으로 신임받고 있으니 자신도 그에 못지 않은 높은 직위를 탐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에 대해 이문열이 평전한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이 '삼고초려'를 마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유세객이 되어 조조와 원소, 유표 등을 오가며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라 평했다. 그런데도 시골에 머물렀던 까닭은 조조와 원소 진영에는 이미 '책사'가 넘치는 상황이라 경쟁이 치열해서 쉽사리 고위직에 오르기 힘들 것이라 보았고, 유표 쪽은 유기와 유종이란 두 아들의 후사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채씨 외척'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신입직원에게 큰일을 맡길 까닭이 없었기에 취직할 생각은 더욱 없었다고 평했다. 손권이 제갈근을 중용한 까닭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행운이었을 거라고 짐작을 하니, 제갈량은 유비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라 보았다. 훗날 방통 역시 유비 진영에 슬며시 발을 들여놓는 것을 보면, 당시 군웅들 간에 세력형성이 이미 완성단계에 접어들어 '취업전선'이 녹록치 않았기에 취직을 바라는 젊은이들의 등용문이 한창 어려울 때라는 사실이 단단히 한 몫 한 것이라 평했다.

 

  그런데도 제갈량이 '삼고초려'와 같은 형식적인 면을 유비에게 강요(?)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또한 이문열은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권력'의 틈바구니에 낑겨들어 '핵심세력'으로 급상승하기 위해선 유비의 갈망이 필요했던 듯 싶다고 평했다. 확실히 제갈량은 노쇠한 유비 진영의 새내기에 속한다. 다들 40대 중반을 훌쩍 넘겼는데, 이제 갓 20대 후반인 제갈량이 '군사'라는 중책을 맡아버리면 병장들이 장악한 내무반에서 '소대장 길들이기'가 펼쳐지는 것처럼 자신을 견제하려는 알력이 발생할 것이라 짐작했던 탓이다. 말마따나 관우는 제갈량과 사사건건 부딪히고 만다. 한마디로 젊은 놈이 깝죽거리는 꼴을 보기 싫다는 것인데, 이런 제갈량과 관우의 갈등은 훗날 '형주에서 맞이한 최후'에서 잘 보여지듯이 권력의 핵심역할이었던 관우가 변방의 전선에서 비명횡사하고 만 사건으로 일단락이 되었다고 이문열은 평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분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이문열의 평론은 과한 면이 있다는 얘기다. 훗날 '천하삼분지계'를 펼치기 위해 깔아놓은 포석 정도로 '제갈량의 등장'을 평가해야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변변한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유비 진영이 제갈량을 만난 이후에 급성장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의 공로는 온전히 '제갈량'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과연 뛰어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만큼 중차대한 일인지 잘 보여주는 경우이기도 하다.

 

  과연 요즘도 뛰어난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 '삼고초려'만큼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삼고초려'는 필요없는 것일까? 유능한 인재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법이라고 한다. 오늘날에 '천거'와 같은 등용방식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소위 '엘리트'라는 지배계층의 속성이 얼마나 얍삽하고 천박한지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의는 고사하고 개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국가도 팔아쳐먹으려 드는 그들의 뻔뻔함에 두손 두발 다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정하면서도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어떻게 갖춰야 할 것인가? 나는 유비의 '삼고초려'가 그 대안이라고 본다. 인재는 큰꿈을 키우고, 지도자는 인재를 모시기 위해 서로가 '진심'일 것, 사사로운 이익 뒷전으로 미루고 대의를 위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큰일을 도모하는데 '열심'일 것, 바로 이 '진심'과 '열심'이 이루어낸 결실이 바로 '삼고초려의 핵심'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존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이라 전세계의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국격'이 뿌리채 흔들리게 된 것도 우리 사회가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않고 관리감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애초에 평등과 투명이라는 잣대만 들이대어 '큰꿈'을 꾸었을 인재들을 '성적순'으로 난도질하고, '생기부'를 날조해 '고급수저들'만 골라 뽑아온 관행이 낳은 비극이라고 말이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우리는 갖추고 있느냔 말이다. 만약 그것이 엉망진창이었고 부족했다고 인정한다면 다시금 '삼고초려'를 더듬어 보아야 할 것이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지도자'와 비록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마뜩찮지만 세상을 바꿀만한 '패기'로 가득한 젊은 인재를 등용시킬 수 있는 '삼고초려(인재발탁) 시스템'이 필요할 때다. 그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는 증거는 무엇으로 증명할 것이냐고? '결과'로 보여주면 되지 않겠는가. 1년간 써보고 아니면 갈아치우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엔 '리스크(위험부담)'가 너무 크다는 지적엔 공감한다. 허나 애써 '정직원'으로 뽑아놓고 빈둥빈둥 놀고 쳐먹는 철밥통들보다는 리스크가 덜하다고 보는데...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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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4 : 신도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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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다시 <삼국지>를 손에 들었다. 잠시 잠깐 '딴짓'을 좀 했더랬는데, 생각보다 오래 시간이 걸렸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빠르게 읽어나가려 한다. 읽어야 할 '삼국지'가 이 책만이 아닌 까닭도 있다. 황석영의 책도 있고, '조조전'도 있으며, '반삼국지'라는 것도 이 참에 다시 읽으며 리뷰를 할까 한다. 늘상 이리 글로 약속을 하고도 내일모래글피 자꾸 미루기만 했지만, 빈약속은 하지 않는다. 언제고 반드시 써낼테니 기다려달라. 댓글 하나 없는 것이 기다리는 이는 없을 듯 싶지만 말이다. 한편, 얼마전에 '블로그'를 정리하면서 '독서기록'을 샅샅이 뒤적거렸는데, 생각보다 '실종'된 리뷰가 많았다. 대략 6~70편 정도가 사라진 듯 싶은데, '블로그'에 남긴 글조차 깜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더 '이곳저곳'에 기록을 남겨놔야 하겠다. 온라인도 결국 믿을 게 못된다.

 

  어쨌든, <삼국지 완역판 4권>이다. 4권의 제목은 바로 '신하가 해야할 도리(臣道)'도 왕이 해야할 도리가 있는 것처럼 신하도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음을 이르는 말일게다. 4권의 주요 줄거리는 조조가 여포를 토벌하고 동승이 조조암살을 꾀하고 조조와 원소의 한판 대결인 '관도대전의 서막'이 펼쳐지는 와중에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했다가 유비가 살아있는 소식을 전해듣고 유비의 일가족을 데리고 유비의 품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장면은 '오관육참장'이라는 고사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마땅히 신하라면 주군에게 충성을 받치고 두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으로도 널리 전해지는 유명한 대목이다. 조조는 유능한 인재를 탐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럽다 할 사람으로 휘하에 구름같은 인재를 갖추고서도 '관우'를 탐하는 모습은 이 고사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관우는 조조가 베푸는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옛주인인 유비를 쫓아 고행길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땅히 '신하가 갖춰야 할 도리'가 바로 이것(!)이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5권의 시작이 바로 관우가 파죽지세로 다섯개의 관문을 뚫고 여섯명의 장수를 베며 유비를 찾아나가는 장면일테니 정말 볼만 할 것이다.

 

  헌데 나는 이런 대목보다 헌제의 국구(왕비 '동대비'의 아버지)인 동승이 역적 조조를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대목이 더 눈에 띄었다. 조조는 일찍이 동탁과 그 수하들에게 모진 수모를 당하고 있는 헌제를 구출해내는 것에 성공한 충신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탁과 마찬가지로 헌제를 허수아비처럼 내세우고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하는 역적의 수괴임을 만천하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북의 원소를 비롯해서 형주의 유표, 강동의 손권, 서량의 마등, 그리고 헌제의 황숙인 유비 등의 세력이 조조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던 탓에 감히 황제를 능멸하는 일까지는 저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허나 조조는 승상이란 직위에 올라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신하라면 황제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반드시 죽였으며,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 '황명(황제의 명령)'을 내세워 토벌의 명분을 세우니 '조조군'에 저항을 하면 황명을 거역한 역적이 되고, '조조군'에 항복을 하면 이런저런 빌미를 내세워 숙청을 해버리니 조조의 만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으며, 끝끝내 황위를 찬탈할 것이 틀림없다는 슬픔예감을 수많은 영웅들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럴 때, 마침맞게 헌제가 국구 동승에게 '옥대(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하사하며, 그 속에 '밀명'을 담았으니 "역적 조조를 멸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여러 충신들이 황제의 밀명을 받들어 '조조를 토벌하겠다'고 호응하니, 토벌 가능성이 높은 군웅으로 서량의 마등과 황숙으로 불리는 유비 등이었다. 허나 유비는 여포 토벌이후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처지라 뾰족한 수가 없다가 마침 '전국옥새'를 내세워 황제라 참칭하던 원술을 벌하러 가겠다며 조조에게 3만 군사를 빌리니, 원술 토벌이후 서주, 소패, 하비에 자그마한 세력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유비가 세력을 이제 막 갖췄을 즈음에 '헌제의 밀서'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동승의 집에서 일하던 남자종 하나가 동승의 어린 애첩과 정분이 났다 들통이 난 뒤 모진 매를 맞은 뒤 앙심을 품고 도망을 쳐서 조조에게 밀고를 해버린 탓이었다. 때마침 '명의 길평'도 조조 암살을 시행하려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평소 조조가 두통이 심했기에 '두통약'이라 속이고 독약을 먹이려 했던 것이다. 허나 이미 밀고를 들은 뒤였기에 길평의 암살은 실패로 끝나고, 동승을 비롯해 허도에 머물고 있었던 여러 충신들이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것마저 발각이 되면서 조조의 분노를 피해갈 수 없었다. 끝내 충신들의 집안을 멸문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헌제의 아이를 임신중인 '동대비(동승의 딸)'마저 목졸라 죽이고 마니 조조의 악행은 갈데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이런 조조를 보면서 감히 '영웅'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한왕조가 무능하고 백성의 민심이 떠났으며 멸망의 기운이 깊어졌다하더라도 감히 '신하'된 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황건적의 난이 한창일 때 젊은 시절의 조조는 한 관상가에게 "난세의 능신, 치세의 간웅"이라는 점괘를 받았다고 한다. 평범한 이가 들었다면 한없이 기분 나빠했을 나쁜 점괘인데 조조는 '그것도 좋다'라면서 반겼다고 한다. 이게 과연 무슨 뜻인고 하니, 어리저운 세상이면 능숙해지고, 태평한 세상이면 간사해진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팔자가 '거꾸로' 트였으니 어지럽고 뒤숭숭한 세상을 만들어야 팔자가 편해지고, 태평하고 평안한 세상이면 팔자가 꼬여 간사스런 일을 해서라도 세상에 풍파를 만들 썩을 놈이란 뜻이다. 왜냐면 세상이 어지러워야 제 운수가 트이는 팔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인 승상에 올랐으니 세상이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조의 평판은 나쁘지 않다. 휘하에는 구름같이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저마다 재능을 뽐내고 조조의 눈에 들고 칭찬을 받기 위해 '무슨짓'이라도 하려고 득달처럼 매달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의 눈에 드는 것이 곧 '한 황실에 충성'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헌제의 목숨을 구하고 헌제를 모시고 있는 조조에게 '충성'하는 것이 곧 '한 황실'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라고 여겨진 탓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순욱'이다. 순욱은 뛰어난 지략으로 조조를 한평생 보필하는데 조조의 영민함을 받들어 충성을 다하면 한 황실의 안녕과 더불어 만백성이 평안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조조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에겐 '역적 프레임'을 걸고 발본색원하는데 앞장 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허나 훗날 조조에게 '빈잔'을 선물 받고 자결을 명받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조조가 본색을 드러내 헌제에게 선양을 받으려는 불충에 동참하지 않은 결과였다. 과연 충성스런 신하라면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야 하는가? 아님 독재자에게 충성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가?

 

  헷갈리기 쉽지만, 정답은 뻔하다. 국가에 충성을 다해야 마땅하다. 독재가같은 인물이 나온다한들 '패싱'이 정답이다. 당장에 목숨이 아까워서 납작 엎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진정한 신하라면 국가에 충성을 하는 것이 정답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국가를 참칭하고 '자신'이 곧 '국가'라면서 국가가 아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못난이들이 간혹 생기곤 한다. 더욱 못난놈들은 그런 못난이를 추종하며, 그런 못난이를 앞세워 저들만의 이익을 챙기는 놈팽이들이다. 이런 못난이와 놈팽이들이 나라를 팔아먹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국민들의 자존심마저 헌신짝처럼 내다버리고 제놈들의 이득에만 열을 올리기 마련이다.

 

  <삼국지>에서는 이런 못난이와 놈팽이들에게 '바른소리'를 목놓아 외치던 인물이 있다. 바로 '예형'이란 선비다. 예형은 끝끝내 '입바른 소리'를 하다 제 목숨줄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만 인물로 비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조와 조조의 똘마니들에게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은 충의로운 선비로 봐야 한다. 오늘날로 치면 독재자에게 가감없이 '바른소리'를 외친 인물이니 영웅 중에 영웅이고, 애국지사 중에 으뜸으로 쳐야 할 것이다. 충성스런 신하란 '국가'와 '만백성'을 위해 제 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옳은소리'를 목놓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독재자에게 알랑방귀나 껴대는 놈들보다 훨 낫지 않느냔 말이다.

 

  이렇게 동승과 길평, 그리고 예형으로 이어지는 '조조에게 저항하는 이들'의 대목을 읽으면서 요즘의 어수선한 대한민국 정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조를 암살하려 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왕조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고, 온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진 '민주주의 시대'에는 누구 한 사람을 죽인다고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못난이 하나 죽이는 것보다 놈팽이들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더욱 중하다. 이승만이 키운 '친일매국 놈팽이들', 박정희가 키운 '군인출신 놈팽이들', 전두환과 노태우가 키운 '유신세력 끄나풀들', 김영삼이 키운 '반민주적인 경제거물들', 이명박과 박근혜가 키운 '몰염치한 뉴라이트세력들', 그리고 윤석열과 얍삽하고 저열하기 이를 데 없는 '자칭 엘리트집단들의 저질스런 패악질'을 지켜보면서 <삼국지>를 열독해야 할 이유를 또 하나 찾고 말았다.

 

  비록 한나라는 조씨와 사마씨에 의해 차례차례 짓밟히고 말았지만, 대한민국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독재세력들이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려 놓으려 할지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저들의 세상인 것마냥 제멋대로 굴지만 시곗바늘은 째깍째깍 '앞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년 총선은 다가오고 대통령의 임기는 늘어나지 않는다. 꼴랑 1년 만에 참으로 대한민국을 망쳐놓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뿌리뽑아야 할 세력들이 누구인지 더욱 잘 알아볼 수 있게 된 '기회'로 삼을 때다. 대한민국은 결코 윤석열과 똘마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바닥에 임금 왕이라 써놓고 지가 왕인줄 착각하는 대통령은 정말 아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주권자인 국민의 '신하'에 불과하다. 감히 신하가 '국민의 주권'을 제것인냥 맘대로 쓰다간 큰코 다칠 것이다. 제발 '신하가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깨닫고, 지금 국민들이 외치는 '바른소리'를 귀담아 들을 것을 명한다. 니가 가야할 길은 거기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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