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 - 고전 20권 쉽게 읽기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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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백년을 살고 나서야 내 취향이 '인문사회과학'이었다는 걸 깨닫다니, 늦은 걸까? 이른 걸까? 어릴 적엔 '과학'에 흥미를 느껴 과학만 주야장천 파고 들어 과학도를 꿈꿨으나, 사알짝 기술직으로 비켜나가 공대를 졸업한 뒤엔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질을 하고 있다. 그렇게 논술쌤으로 살면서 슬며시 발을 들여놓게 된 '인문사회과학책'에 날이 갈수록 빠져들고 말았다. 물론 서른이 넘어서야 겨우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20년동안 읽으니 이제 겨우 깨달음의 문턱을 넘어선 것 같지만, '인문사회과학의 매력'의 끝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모든 학문의 길이 넓고 깊기 마련이지만, 특히나 '사회과학'이 그런 까닭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는 게 아니라 '같은 문제', '같은 현상'이라도 이렇게 보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렇게 보면 저게 맞는 것 같아, 딱히 '이것만'이 정답이라거나 '저것만'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케인즈의 경제학'이 20세기 대공황에는 옳은 해법이었으나 뒤이어 찾아온 '석유파동'에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다시 '케인즈의 해법'이 주목받고 있는 요즘을 보면 '사회과학은 이랬다 저랬다' 줏대없는 학문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회과학의 진짜 매력'이었다는 것을 느즈막한 나이에 깨닫게 되었단 말이다.

 

  어찌보면, 사회과학은 요란한 '진단'에 비해 뚜렷한 '결론'이 없어 헤매기 딱 좋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현상'이라 할 수 있는 것에 '문제의식'이라는 틀을 들이댄 뒤에 나름의 가설을 세운 뒤, 검증을 하며 '자기만의 이론'을 정립한 뒤에 '모범답안'이 나오면 '사회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게 된다. 이를 두고 수많은 학자들이 '그 이론'을 토대로 현실문제를 해소하는 실용적인 학문이 '사회과학'이기도 하다. 허나 많은 경우에는 이론상에서만 검증되고 실제로 적용된 뒤에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비판을 넘어 비난을 받기도 하는 것도 다름 아니라 '사회과학'이다. 이는 '과학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회현상이라는 것이 워낙 변수가 많아 제대로 검증을 하기에 '객관성'이 떨어진 탓이고, 또한, 시간이 흘러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예전엔 맞았던 이론이 지금은 틀리는 경우'도 많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정말 많다. 이렇게나 '불확실한 학문'이 있는가 싶지만, 이 또한 '사회과학만의 매력'이었던 것이다.

 

  왜냐? '사회과학책'은 그 자체로 '정답'일 수는 없지만, 심지어 '오답'일 확률도 높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도 막대하기 때문이다. 맥루한이 60여 년전에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얘기했을 때, 21세기 '스마트폰'은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상상도 못했을텐데, '스마트폰, 그 잡채'가 전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메시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뜻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우리 사회를 변혁시킨 것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맥루한이 말한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글러가 말한 '가난의 이유'도 되새김질 해보면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해 얼마나 많은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지 단박에 보여준다. 그러나 진단과 분석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했더라도 '해법'은 마땅히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맥루한이 '미디어 파워'을 예측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누구를 위해 써야할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지글러가 '가난의 이유'을 밝혀냈지만, 그 해법이나 대안을 적절히 제시하지는 못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은 무력한 학문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 '관심'을 끌어내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의 '백인우월주의'가 만연하자,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를 펴내서 '백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낱낱히 밝혀내어 서구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레비스트로스도 <슬픈 열대>를 펴내며 문명과 미개의 '종이 한 장 차이'를 사회구조적 관점으로 증명하며 서구사회의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을 직시하라고 조언했다. 물론, 정답은 없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반문과 비난도 사회과학분야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옳은 지적'이라는 사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사회과학의 진짜 힘'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과학자'는 정답 제시에 게으를 수밖에 없다. 모르는 걸 어떡하냔 말이다. 대신에 우리가 직면한 사회현상이나 문제에 앞에 당당히 '마주서기'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소크라테스도 말했다. 진정한 용기란 백만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장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무릅쓰고 당당히 적 앞에 '마주 설 수 있는 자'가 진정 용감한 자라고 말이다. 해법은 그 뒤에 나온다. 명량대첩은 '133 vs 13'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133 vs 1'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한 이순신이 버티고 또 버틴 뒤에야 비로소 기적과도 같은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자'는 만능공식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의 물꼬'를 열어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도 바로 '생각의 물꼬'다. 다시 말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항상 현실에 놓인 사회문제를 앞에 두고 당당히 '마주서기'할 때 잡애챌 수 있는 법이다. 때로 그 실마리가 '잘못'되었다고한들 실망할 까닭이 없다. 또다시 '마주서기'한 다음 '또 다른 실마리'를 찾고, 잡아채길 주져하지 않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 <친절한 사회과학>도 바로 그런 '마주서기'와 '실마리 찾기'를 도와주는 길라잡이다. 고전의 반열에 올라 감히 범접하기도 힘든 '벽돌책'들을 말랑말랑하고 한입에 먹기 좋게 잘라주어 독자들이 '사회과학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데 어려움이 없게 해주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칫 책내용이 어려운 탓에 '생각의 물꼬'를 찾지 못하고 헤맬 독자들을 위해 '천절한 가이드' 역할까지 해주고 있다. 물론, 그 '가이드'만이 올바른 정답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니 안심하길 바란다. 어디까지 '물꼬'를 내어줄 정도이니 독자의 취향에 따라 '생각의 방향'을 달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선 <친절한 인문학>과는 또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으니, 서로 비교하며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일 것이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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