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2 : 돈키호테 ㅣ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
백원흠 그림, 김형주 글, 손영운 기획, 미겔 데 세르반테스 원작 / 채우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돈 키호테>에 대한 극찬은 대단하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1616년 4월 23일)'에 사망하였기에 '책의 날'로 지정해서 기리고 있고, 유명작가와 평론가 들에게 '거의 모든 현대 소설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돈 키호테>에 나오는 '소설기법'은 수없이 많이 차용되었으며, '돈 키호테형 인간'이라는 대명사가 나올 정도로 오래도록 회자되며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밋밋하기 그지 없다. 400여 년전에는 배꼽을 잡고 웃어재낄만한 장면이었을지 몰라도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거나 양떼를 군대로 착각하고 묘사하는 장면이 도통 웃기질 않는다. 거기다 늙고 비쩍 마른 말을 타고 세숫대야를 머리에 쓴 기사가 저지르는 엉뚱한 짓거리들이 무엇을 풍자하는 것인지 가물가물해진 요즘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고 느껴지질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상하는 재미'까지 반감시켜버리는 '만화형식'이라 더욱더 명성에 비해 벅찬 감동이 다가오질 않아 아쉽기 그지 없었다. 실제로 제자들도 침을 튀어가며 <돈 키호테>가며 명작이라 썰을 푸는 선생님을 안쓰럽게 바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돈 키호테>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 것일까?
먼저 '돈 키호테형 인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듯 싶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자신의 책에서 '햄릿형 인간'과 '돈 키호테형 인간'으로 구분하여 소개하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주인공인 그는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게 복수를 할 수 있었음에도 망설이고마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대명사로,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의 주인공인 그는 흘러간 옛 기사소설에 흠뻑 빠져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는 '무모한 성격'의 대명사로 분석했었다. 여기에 덧붙여 햄릿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돈 키호테는 앞뒤 잴 것도 없이 거침없이 달려드는 '이상적인 인물'로 평가했다. 이런 식으로 분석을 하고나니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현실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선 고민하는 '햄릿'보다 거침없는 '돈 키호테'가 더 인기있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지혜롭게 살려면 '햄릿'과 '돈 키호테'를 적절히 섞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쪽은 '자신의 이상(꿈)'을 향해 돌진하는 인물이다. 때론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잘못된 길인줄 나중에 깨닫게 될 때도 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절대 흔들리지 않은 뚝심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양떼를 적군으로 오해하는 '비이성적인 행태, 그 잡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낡아빠진 '관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옳다'고 박박우기는 어리석은 짓은 말할 가치도 없다. 이런 미치광이 짓거리를 하는 돈 키호테를 보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약자'를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모습이다. 바로 이런 '인물'이 우리의 눈에 '광인(미치광이)'으로 보일지언정 '나쁜놈'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 모두는 '완벽한 인간'일 수 없다.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기준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인권 따위를 주어섬기는 인물이 '권력자와 가진자의 횡포'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여기면서, 평상시에 미치광이처럼 보이던 엉뚱한 인물이 '약자가 짓밟히는 상황'을 부당하고 불의하다여겨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이들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리는 모습에는 부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자유'라는 이름을 남발하며 '약자의 인권'을 짓밟는 권력자를 향해 주먹감자조차 아끼며 움추려들면 안 된다. 강철보다 더 단단할 것처럼 보이는 '부정한 권력'도 결국엔 달려들어보지 않고선 강철같이 단단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법이다.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이 원래는 '주권자'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 '주권자'가 권력이 잘못 쓰이고 있다고 판단해서 시위를 하고, 구호를 외치는데 '강제해산'과 '캡사이신' 운운 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행해졌다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쓰지 않던 방법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도 그런 '낡은 유물'을 다시 꺼내어 '부패한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 또다시 써먹겠다니...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햄릿'할 시간은 지나갔다. 지금은 '돈 키호테'할 시간인 것이다. 풍차 같은 용산대통령실과 양떼로 둔갑한 국민의힘에게 정신 차릴 수 있는 '깨몽펀치'를 날려야 할 때다. 이젠 꺼낼 '낡은 유물'도 없지 않은가? '유신시대'보다 더욱 시간을 되돌려 '일제시대'로 회기할 참인가 말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에게 '이상(꿈)'이 필요하다.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우뚝서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이 되기에도 바쁜 시간에 자꾸 발목을 잡는 '과거지향적인 놈들'을 깨부술 '돈 키호테'가 절실한 까닭이다.
이 시리즈가 '서울대 선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면 작금의 '자칭 엘리트'라는 집단이 어찌 이리도 부정하고 부패하였는지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 엘리트들 가운데 어찌 그리도 '지들'밖에 모르는 덜된 인간들이 그리도 모여 있는 것인지 다시금 되새김해볼 시기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지성이라는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도 이리도 조용할 수 있느냔 말이다. 자신들의 선배들이 저지르는 부정부패의 짓거리를 보면서도 뭔가 깨닫는 것이 없단 말인가? 아니면 서울대쯤 들어가서 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란 말인가? 똑똑하다는 당신네들이 "이건 잘못되었다"라고 외쳐야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실현되는 것 아니냔 말이다. 약자들을 위해 제목소리도 낼 줄 모르는 위인들이 '기득권의 반열'에 올라 온갖 것을 누릴 생각만으로 가득하다면, '서울대'라고 자랑스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분명 서울대에도 똘끼(?) 충만한 '돈 키호테형 인간'이 득실득실할 거라 믿는다. 제발 그렇다면 어떤 '미치광이 짓'을 할까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지 말고, 이상을 실현하고 약자를 수호하는 정의의 '기사도 정신'을 되살려 대한민국이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장서길 바란다. 그정도는 되어야 '서울대생'이라 자랑질 뿜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서울대생은 그저 '기득권의 수호자' 지망생으로 남을 것인가. 선택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