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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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만해도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었다. 우주에 대한 신비감도 가장 팽배했던 시기였고, '우주전쟁(스타워즈 계획)'까지 갈 뻔했던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은 극에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이후 갑자기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급 화해모드로 선회하였고, 소련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등 갈등이 완화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우주개발'도 덩달아 침체기를 겪게 되었는데, SF소설에 대한 관심도 이때가 가장 추락했던 것 같다. 오히려 <해리포터>시리즈와 <나니아연대기> 같은 '판타지소설'이 대박을 치고 열풍이 불었으니까 말이다. 이후 마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치기 전까지 SF장르는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대로 'SF소설'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될까?

 

  사실 나도 그랬다. 사람들의 유행에 따라 10대 시절 '우주'를 사랑했다가 2, 30대에 '판타지'에 열광했고, 40대 초반엔 '마블 영화'에 미쳤다. 그리고 40대를 마감하는 지금에 와서야 다시 'SF 소설'을 손에 들게 되었다. 그 옛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허버트의 <듄>을 읽었고,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다시 읽었으며, 이제 겨우 미처 읽지 못했던 클라크의 'SF 소설'들을 읽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련다. 그것도 꽤나 흥미진진하다고 말이다. 이 책 <라마와의 랑데부>도 그렇다. 초반부엔 소행성 크기만한 정체불명의 '거대한 원기둥'이 태양계를 향해 오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인지라 지지부진하게 읽었지만 중반을 넘어, 드디어 등장을 한 '외계생명체(아님 인공지능로봇)'로 인해 숨가쁘게 읽어나갔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그 긴장감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클라크 소설의 특징인 듯한 '초반엔 지루한 설명'이 이어지다 '후반으로 넘어가면 절체절명의 극적인 묘사'가 정말 압권이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날 갑자기 태양을 향해 다가오는 '외계 천체'가 관측되었다. 행성연합위원회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혜성'이 아니라 지적인 외계인이 '설계'했음이 분명한 완벽한 기하학적 구조물이란 사실을 알고서 탐사대를 보낸다. 탐사대원들은 '인데버 호'를 타고 '라마(인도신화의 신 이름)'라고 이름붙인 거대한 원기둥에 착륙해서 '내부탐사'를 시작한다. 뚜껑(?)을 열고 라마의 내부로 들어간 탐사대원의 첫인상은 '끝없는 계단'뿐이었다. 걷고 또 걷는 것이 전부인 탐사였다. 하지만 탐사대가 서치라이트가 켜고 살펴본 라마의 내부는 광활한 '빈공간'이 전부였다. 생명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바이러스조차 검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부엔 '산소'가 가득했고, 우주복의 헬멧을 벗고도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과학적인 설명' 그리고 '또 설명'...혹시라도 이 부분이 지루한 독자라면 과감히 책장을 넘기길 권한다. 하지만 읽으두면 나중에 벌어질 기발한 사건의 연속들이 자연스레 이해가 될 것이다.

 

  이처럼 클라크의 소설들은 지루할 정도로 '과학설명'이 뒤따른다. 왜냐면 클라크가 '소설가' 이전에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소설에서는 어김없이 '과학적 해설'이 나열되곤 한다. 물론 20세기 과학자의 해설인 까닭에 21세기를 사는 일반독자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과학적 오류'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에서 용이 갑툭튀한다고 놀라는 독자가 없을 것처럼 'SF 소설'이지만 '공상과학'을 마주하는 느낌으로 시대에 뒤처진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작품배경에 녹아들며 읽어나가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전설적인 SF소설들이 오래된 관계로 이 책 또한 1970년대 '과학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소설속 시대배경은 그보다 훨씬 미래인 2175년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작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SF소설'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과학적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오류 덕분에 책을 읽는 재미는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실현하지 못한 '태양광에너지의 효율'이 극대화 된 연출이 이 책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라마'라는 새로운 천체의 등장을 적대시하는 세력으로 '수성인(메르시안)'을 창작해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태양계에는 지구를 대신할 '우주식민지'가 개척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황폐해진 지구를 벗어나 '달'에 정착했고, 수성과 화성, 그리고 가니메데, 타이탄, 트리톤까지 태양계 곳곳에 정착가능 지역을 확대했던 것이다. 그밖에도 더욱 척박한 소행성에도 지구인은 진출했지만, '행성연합'을 이끌 정도로 힘을 발휘하는 정착인들은 앞서 열거한 6곳과 지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라마'의 출현을 반기지 않은 세력이 바로 '수성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왜 '라마'를 적대시했을까? 그건 바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의 이점을 '라마'가 빼앗아 갈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태양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태양광'에서 얻는 에너지를 다른 정착지로 쏘아보내면서 얻는 이익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수성인'들의 거의 유일한 수출품목(?)이었는데, 새로 출현한 '라마'가 수성보다 더 안쪽 궤도에 '안착(!)'했을 경우, 라마를 직접 관리할 '행성연합'이 수성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수성인'들은 다른 행성연합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무도 몰래 '핵미사일'을 라마를 향해 쏴버린 것이다. 그 라마에는 아직도 '탐사대원'들이 수십 명이나 머물면서 탐사중인데도 말이다. 오늘날의 과학수준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긴 하다. '태양광'을 수출할 정도로 에너지를 축적하고, 그걸 다시 '에너지형태'로 내뿜어서 '원하는 곳'으로 송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획기적일 뿐만 아니라 '실현가능'하다면 우리는 한밤중에도 '태양광'을 이용해서 어둠을 밝히고 기후위기를 불러올 '지구온난화'를 말끔히 해결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조우할 수 있는 '라마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더 이상의 스포는 하지 않으려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우리는 아직 '외계생명체'에 대한 흔적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는 '광활한 우주공간'에 비례해서 믿어 의심친 않지만, 그들이 '지구인'과 조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얼마간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급격한 '기후변화'와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지구인의 미래가 2100년 이후에도 존속가능할 것인지조차 불확실해진 것도 부정적 인식에 한몫 단단히 했다. 20세기만해도 '과학문명의 고도발달'이 모두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21세기에도 끊이지 않는 국제적인 갈등과 멈추지 않는 전쟁소식이 추락하다 못해 암울한 경제현실과 맞물려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미래를 더는 낙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구인들조차 '고도문명'에 다다르기 전에 멸망하고 말 운명인데, 전 우주를 통틀어 '지적인 생명체'가 맞이할 미래가 저 머나먼 우주너머는커녕 '태양계 밖으로' 나갈 수나 있을까 싶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라마인'이라니...

 

  하지만 '진화적 관점'에서 봤을 때, '라마인의 생체적 특징'은 지켜볼만 했다. '입'이 없었던 것이다. 매끄럽고 탄탄한 금속성의 피부 밑에 '유기체'로 이루어진 '자체 전지'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에 존재하는 '전기뱀장어'나 '전기가오리' 같이 생체내에 전기발생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라마인들은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유기물과 무기물을 가리지 않고 '그들만의 바다'속으로 망가지고 불필요한 것들을 조각조각 잘라서 '재활용'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바닷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다시 생겨나는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만 전할 뿐이었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인류의 미래'도 라마인의 과학기술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찾고 얻어야 하는 '숙명'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하고 전쟁을 벌이는 야만적인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지구인'은 아무리 고도의 문명으로 발전시킨들 '폭력적인 성향'을 완전히 버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온순한 라마인의 문명을 배우지 못한다면 지구인은 '두 번째 지구'를 찾아내거나 만들지 못하면 결국 절멸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을 알아차렸다면 더이상의 '폭력'은 멈추고, 지구를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마땅할진대...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지구인들의 미래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제발 24년에는 모든 폭력이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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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2
아서 C. 클라크 지음, 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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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 해당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결말은 '지적인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며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9년 뒤에 해당하는 이야기인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시작은 목성 근처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불현듯 사라져버린 '디스커버리 호'의 마지막 승무원인 마지막 외침을 추적해나가는 일이었다. "세상에 별이 너무나 많아"라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이었을까? 지구에 남겨진 이들에겐 숙제같은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대체 'HAL 9000'은 왜 고장나지도 않은 안테나가 고장났다고 박박 우겼던 것일까? 인공지능 컴퓨터가 '거짓말'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문에 '동면'중이던 승무원은 살해당했고, 깨어있던 두 명의 승무원 중 한 명은 'HAL의 계략(?)' 때문에 죽고 말았고, 나머지 한 명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HAL 9000'의 전두엽에 해당하는 메모리칩을 모조리 빼버리고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망가진 디스커버리에서 마주친 '지적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는 또 다른 우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지구인들은 '버려진' 디스커버리 호와 랑데뷰하기 위해서 탐사대를 떠나보내게 된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목적지인 '목성의 대기권'으로 향하는데, 불청객이 등장하고 만다. 애초에 디스커버리 호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우주인은 우주강국인 '소련과 미국'에서 선발된 숙련된 이들이었는데, 이들이 목적지인 목성에 도달하기도 전에 '중국'의 첸 호가 비밀리에 만들어져서 먼저 출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경쟁 아닌 경쟁이 붙게 되고 누가 먼저 디스커버리 호와 랑데뷰를 할 지 궁금한 가운데 '첸 호의 궤도'가 요상하기만 하다. 분명 먼저 도착할 것이 뻔한데도 빙 돌아서 가는 듯한 이상한 항로를 잡은 것이다. 그나저나 '첸 호'는 되돌아갈 연료마저 소비하듯 추진력을 발휘하여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수상쩍다. 뭔가 꿍꿍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첸 호는 디스커버리 호에 도킹하기 전에 '연료보충'을 할 목적으로 목성의 위성인 에우로파로 향하고 있었다.

 

  왜 하필 에우로파 였을까? 그건 에우로파가 엄청난 '물'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대기'가 얇아서 얼어붙은 위성이었지만, 거대한 목성 덕분에 중심부에는 거대한 열을 가지고 있었고, 표면의 얇은 얼음만 뚫으면 얼마든지 '물'을 보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중국'이 인류 최초로 에우로파에 착륙하게 되었으니 최초로 '우주식민지'를 소유했다고 선포할 가능성도 짙었다. 물론 미국과 소련이 순순히 놔둘리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에우로파에 착륙한 첸 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 이런 광경을 어이 없게 바라보던 탐사대원들은 에우로파의 마지막 생존자라고 말하는 이의 '마지막 전언'을 듣게 되는데, 첸 호가 파괴된 까닭은 '에우로파의 괴생물체' 때문이라고 한다.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 이어 '태양계 안에도 괴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게 되는데...

 

  1편과 달리 2편에선 굉장히 빠른 몰입감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이후에 밝혀지는 '디스커버리 호의 비밀'과 'HAL 9000'의 이야기도 분명 '놀라움, 그 자체'일 것이다. 도대체 이런 소설이 1982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SF 장르의 붐은 '20세기 초'였다고 한다. 물론 21세기인 오늘에도 SF 장르는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시들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요즘엔 '외계인의 존재'나 'UFO의 진실' 따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조차 드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주의 신비'가 확 깨져버린 탓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SF계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지는 '마블영화'조차 <엔드 게임> 이후로 관심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아이언맨의 죽음' 때문이고, 이후에 나온 <후속작>들이 하나같이 폭망한 까닭일 것이다. 한마디로 '듣보잡 히어로의 등장'으로 재미가 없어졌다. 이미 <엔드 게임>을 벌일 정도로 스케일은 커졌는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영웅'이 나타나서 '어벤져스'보다 더 쎄다고 주장한다면, 관객들에게 씨알이나 먹히겠느냔 말이다. 이처럼 SF 장르는 '익숙해진'만큼 '낯선 인물, 낯선 스토리'에 올드팬들의 반발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고전 SF소설'이 더욱 대단한 것이다. 오래 되어 식상해질 법도 한데, 막상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독자들에게 '목성'까지 가는데만 2년이 넘게 걸리는 낡은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모험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낡은 스토리'가 재밌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기 힘든데도 속속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에 호들갑을 떨게 만들 정도로 재밌단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더군다나 스토리 전개는 느려터져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읽어도 뭔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과학적 설명'은 왜 그리도 길고 자세하게 늘어놓는 것인지... 그런데도 그런 몇 가지만 조금 참고 '소설의 도입부'를 넘어가면 '미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앞에 늘어놓은 지루한 설명은 뒷부분에 전개될 스펙타클한 스토리라인을 위한 '밑밥'이었던 것이다. 그 밑밥을 찔끔찔끔 먹다가 제대로 코가 꿰어서 낚일 운명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이제 겨우 2편일 뿐이다. 3편과 4편에서 벌어질 이야기도 빠르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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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異之我_또다른나 2024-01-02 21:17   좋아요 1 | URL
제 글에 좋아요 눌러주시는 고마운 분이시군요^-^=
새해 천복을 누리시고 하시는 일마다 대박나시길 바랍니다
24년에도 잘 부탁드려요ㅎㅎ
 
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빛비즈 교양툰 30
클레르 알레.벤자민 아담 지음, 정수민 옮김, 이정우 감수 / 한빛비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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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해서, 오늘날의 초일류부자들은 결코 '자수성가'를 한 부류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평등'을 바탕으로 부를 선점했으며, 그렇게 선점한 '부당한 부'를 상속이란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대로 물려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건 바로 '올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선 '돈(정치자금)'이 필요했는데, 그 돈을 '초일류 부자들'이 대부분 충당해준 덕분이었다. 그렇게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합법적'으로 올라선 정치인들은 또다시 필요한 '정치자금'을 얻고자 초일류부자들의 '상속세 감면'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십상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끝없이 반복될 수 있을까? 선거는 '평등선거'가 원칙이라 모두에게 '똑같이' 1표씩 주어지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초일류부자는 고작해야 1~3%이고, 나머지는 전부 '노동자들'인데, 어떻게 해서 부자들만 유리한 '감세정책'이 유지되는 것일까?

 

  그건 '주식회사의 경영권'을 손에 쥐는 방식과 비슷하다. 주주들이 갖고 있는 '한 주'당 '1표'씩 행사할 수 있다는 교묘한 방법 말이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백 주'를 가지고 있어봐야 부자들이 갖고 있는 '몇백만 주'를 넘어설 수 없고, 노동자들이 아무리 연대를 한다고 해도 회사의 경영권은 '51%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가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을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것'이 기본 상식이고 가장 평등한 방법이며, 심지어 '합법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이 주권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이 '대의정치(정당정치)'를 지향할 수밖에 없고, 이런 정당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기업에 구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정치인'은 '부자감세 정책'을 활용해 초일류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 끝없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토마 피케티가 쓴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핵심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 <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8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러한 '불평등의 근원'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보다 더 나은 체제를 찾지 못했기에 우리는 이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양극화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언젠가 더는 이런 '불평등'을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결국엔 '자본주의' 스스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토마 피케티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런 심각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피케티는 해결방법 중에서 '세금'에 가장 크게 집중했다. 기본적으로 '고재산'에 대한, '고소득'에 대한, '회사 이익'에 대한, 그리고 '공동 탄소세'에 대한 세금을 매겨 정부가 거둬들이고, 이를 다시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법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특히, 상속세와 누진세 등을 더욱 강화하여 '누리는 만큼' 더 많이 내는 방식이 '누리지 못한' 부류에게 골고루 혜택을 되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고른 혜택에는 '기본소득'과 같은 방법도 있으나,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연구 자금'에 투자하고, 가난한 이들도 마음껏 '교육'받을 수 있게 하는 평등권을 보장하는 방식도 소개하였다. 왜냐면 가난한 이들이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고 '교육의 기회'를 통해서 고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열린 사회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며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런 고소득 노동자들이 '정치참여'를 하게 될수록 더욱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부의 되물림이 유리한 사회를 만들려는 '초일류 부자들'의 꼼수는 아직 부자의 반열에 오르지 않은 이들까지도 '언젠가는' 부자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만들고, 그로 인해 어렵게 어렵게 부자가 되었을 때 '고액의 세금'으로 어렵사리 모은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 '낡은 정책들'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쪽으로 정치를 끌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엔 '도루묵' 신세를 면치 못하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더 빈자가 되는 '양극화 문제'는 결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 책이 대한민국 사회에선 '어떻게' 읽혀야만 할까?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 사회'를 철저히 분석하여 '불평등'의 원인을 부자들의 불성실한 납세 태도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납세의 의무'를 부자들에게 통렬하게 일갈하였다. 부자들이 쌓아놓은 부가 그들의 '정당한 노력'에 의한 것이 절대 아니었으며, 힘 없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부를 중간에서 갈취한 덕분에 부자가 되었으니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합법적인 방법(!)'인 세금납부로 내놓아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에 공헌을 하라고 비판한 셈이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의 초일류 부자들은 과연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쌓았는가? 혹시 '나라'를 팔아서 부를 축적하지는 않았던가? 혹시 '독재자'와 결탁해서 국민들을 겁박한 뒤에 수탈하지는 않았는가? 그도 아니면 '독재정권'에 알랑거리며 특정기업에게만 유리한 정책으로 부를 독점하거나, 부패한 정치판에 몰래 비자금을 넣어준 대가로 남몰래 부동산투자 따위를 하며 부를 선점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자식들에게 '고액의 사교육'을 하며 저들만의 '스카이캐슬'을 쌓아놓고 '고소득'직을 독차지하지는 않았던가? 그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쌓은 부를 '주가조작'과 같은 또다른 부정을 저지르며 내야할 세금을 내지 않고 산처럼 쌓아놓은 돈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느냔 말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불평등'을 해소해야만 할 것이다. 부자들도 떳떳하게 '세금'을 내고, 그러고도 남아도는 돈으로 정당하게 누리며 살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걷어들인 세금으로 정치권은 공정하고 공평하게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도록 '올바른 정치'를 이끌어가면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점들도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정작 어려운 문제는 '불평등한 사회'를 정당화 시키려는 불온한 세력이 뿌리 뽑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불평등한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고 의심스럽겠지만, 이미 그런 '거짓'이 상식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거짓'인줄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깜놀하게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거짓말은 바로 "게으른 자는 가난해진다"라는 말이다. 정말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해지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청년층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도 전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가난'하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해명한단 말인가? 분명 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가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데도 부를 쌓을 수 없는 사회에서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정말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저 말이 거짓이 아니려면 "부지런한 자는 부자가 된다"가 참말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상대적 박탈감'까지 받아가며 결코 만족할 만한 부를 쌓을 수 없는 '절망감'만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청년층이 '내집 마련'을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평등의 근원'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될 것이며, 그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문제는 정치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정치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언제나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해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유념해야 할 것은 언제나 '긍정하는 힘'이다. 비관적인 상황에서 낙담하고 암울해 할 수만은 없다. 어둠을 밝히는 것은 늘 '빛'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빛'이 밝게 빛나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는 바로 당신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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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반을 일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 <사이렌: 불의 섬> 출연진 제작진 인생 토크
이은경.채진아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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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사이렌 : 불의 섬>은 24명의 여성들이 출연해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나는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은 관계로 전편을 다 보지는 못하고 몇몇 짤만 보았을 뿐이다. 그동안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남성들이 다수 출연한 작품에서 여성들은 '보조적인 역할'에 만족해야만 했는데, 오직 여성들만 출연을 했기 때문에 '피지컬 역할'까지 모두 도맡아서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직업군별로 6개 팀'으로 나누어 경쟁을 벌였다고 하는데, 여자 경찰관팀, 여자 소방관팀, 여자 경호원팀, 여자 군인팀, 여자 스턴트팀, 그리고 여자 운동선수팀이 참가했다고 한다. 외딴섬에서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며 팀들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서바이벌로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박진감 넘치는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사이렌>에 참여한 출연진과 제작진 중 '여자 스태프'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짜깁기해서 만들어내었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을 본 독자라면 더한 감동과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뜻깊은 독서가 되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나로서는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삶'을 엿보는 관점에서 책의 내용을 서술하면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위 말하는 '금녀의 직업' 말이다. 한마디로 '여성'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대표적인 직업군들이 바로 위에 열거한 것들이다. 솔직히 오늘날에는 '경찰계'에도 여성인력이 꼭 필요하다. 남녀평등시대에도 '남녀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까닭에 '여성의 손길'뿐 아니라 '여성의 힘과 지혜'를 비롯해서 모든 면에서 '여성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단 경찰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이 다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차이'를 넘어 '차별'을 선호하는 것마냥 자연스럽게 '남녀차별'을 하곤 한다. 그리고선 거친 마초스타일의 문제를 슬쩍 떠넘기고서는 "너흰 '이런'거 해결 못하잖아. 그래서 '차별'은 당연한거야. 그러니까 '경찰(또는 모든 직업)' 따윈 집어치우고 시집가서 애낳고 살림이나 해. 좋은말로 할때 말야"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당차게 도전해서 '성공'이라도 해내면 마지 못해 "이번엔 운이 좋았네"라면서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한마디로 '인간'이 덜 되었다는 증거다.

 

  세상의 모든 직업에서 '남자따로 여자따로'로 구별한 순 없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남자끼리 여자끼리' 한데 묶어놓고 따로 구분 짓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므로 현대사회는 '남녀평등'이 기본적인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쉬운 것은 '의식수준'이 이런 평범한 진리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리천장',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차별'이 당연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의식은 도를 넘는 '젠더갈등'을 불러일으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남과 녀, 서로를 향한 '혐오'만을 남기면서 말이다. 왜 서로가 가질 수밖에 없는 '차이'를 혐오하고, 서로가 가질 수밖에 없는 '단점'을 까발리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기도 하다. 상대를 비난하면 할수록 '자신의 결점'만 극대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단 말인가? 남성들은 여성을 싸잡아 비하하다가 결국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마저 욕할 지경이다. 여성들도 남자를 비난하다가 끝내는 '자기 아버지'마저 부정한 악마로 만들고 만다. 자기 부모를 더럽히고 욕하면 자기 자신조차 욕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젠더혐오'란 말인가.

 

  이제는 '여성'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편견을 버려야 할 때다. 물론 여성이기에 '사회적 보호'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말이다. 이를 테면, 산모에게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것 등은 우리 사회가 보편사회로서 반드시 배려해야 할 사안이지, '저출생 문제'를 여자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개의 문제이자, '상식'인 것이다. 아직도 이것이 구분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영원히 '사회격리'를 시켜도 무방하다 여긴다. 다시 말해, 아기를 품고 낳을 수 있는 여자만이 가진 '차이'를 놓고서, 왜 여자만 '사회적 약자'로 보호를 해야 하느냐는 둥, 왜 여자는 국가의무인 '병역의무'를 지지 않느냐는 둥, 왜 여자가 결혼한 뒤에도 살림에 전념하지 않고 직장에 욕심을 부리냐는 둥, 많이 봐줘서 결혼하는 것까지는 봐줄 수 있는데, 임신을 했으면, 출산에 전념하고, 출산을 했으면, 육아에 전념하고, 육아에 전념했으면 대학교 보낼 때까지 교육을 마쳐야 '엄마'로서의 도리를 다한 것 아니냐는 둥, 이런 부담을 지기 싫으니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책임지지 않는 여자들이 문제고, 여자만 사회생활을 포기하면 우리 나라 남자들이 직장 걱정할 필요도 없고, 돈도 더 많이 벌어서 여자들이 원하는 거 다 해주지 않겠냐는 둥, 그러니까 여자들이 문제고, '저출생 문제'도 결국은 여자들이 무책임하기 때문에 벌어진 사회문제라면서 헛소리를 빽빽 내지르기 바쁜 '멍청한 남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정말로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이따위 편견을 버려야만 한다. 사회문제는 '남녀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 문제의 해결방법은 '남녀차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대사회의 사회문제는 거의 대부분 '경제문제'에서 출발하고, 거의 모든 경제문제는 '중산층의 몰락'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기본적인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도 않고, '젠더이슈'만 부풀려서 서로 남탓만 하는 혐오만 양산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문제는 남녀를 가릴 것이 없이 모두 힘을 모아야만 겨우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으는데 집중하기는커녕 '서로의 탓'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딴 편견은 애저녁에 갖다 버려야 한다.

 

  이제는 '여자' 경찰', '여자' 군인 등과 같은 불필요한 명칭은 없애야 한다.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나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또 그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면 '차별'을 부르는 명칭은 스스로 갖다 버리란 말이다. 물론 '차이'는 존재하고 바뀔 수 없다. 그러나 그 차이도 '상식'을 넘어서면 불필요할 뿐이다. 범죄자를 제압하는데 '여자 경찰'은 무능하니 '남자 경찰'만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건 '올바른 상식'이 아니다. 분명 '여자 경찰'보다 '남자 경찰'이 힘이 세고 현장대응능력이 뛰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남자 경찰이 여자 경찰보다 우수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뛰어난 경찰'과 '무능한 경찰'은 '실력차이'에서 오는 것이지 '남녀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상식'일 수밖에 없단 말이다. 이를 모든 직업군으로 확대해서 살펴보면 얼른 이해가 될 것이다. '올바른 상식'이 무엇이고, 올바르지 못한 상식을 떠벌리는 종자들이 거의 대부분 '비이성적인 인격자'이거나 '전근대적인 낡은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 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하루의 반을 일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여자'라는 편견에 빠진 비상식적인 사고를 소유한 몰상식한 이들의 '말 한마디'로 기분을 잡치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화재가 나서 불이 자기가 있는 곳으로 덮치는 찰나에 자기를 구해주러 온 소방관이 '여자'라는 이유로 "재수없다. 빨리 가서 '남자' 소방관을 불러오라"고 말할 셈인가? 이제는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이 우승컵을 거머쥐고 승리하면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는 당신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편견은 하루 빨리 없애야 마땅하다. 당신의 엄마, 아내, 그리고 딸을 응원하듯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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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4 -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역사의 만남 벌거벗은 세계사 4
최호정 그림, 이현희 글, 김헌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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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로마 신화>는 방대한 내용만큼이나 수많은 신과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얽혀있는 이야기도 아주 복잡하게 엮여있기 때문에 단숨에 읽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만화형식'으로도 재밌게 나와있는만큼 더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어렵게 읽을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읽어야 할 분량이 녹록치 않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대강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요약과 축약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세 가지 열쇠말(키워드)로 소개하자면, [티타노마키아(티탄족과 벌인 전쟁)], [기간토마키아(기간테스와 벌인 전쟁)], 그리고 [트로이아 전쟁(그리스연합 vs 트로이아연맹)]이다.

 

  '티타노마키마'는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이었다. 태초의 신 가운데 하나인 '가이아(대지)'가 낳은 자식 중에 '우라노스(하늘)'를 남편으로 삼아 또 다른 신들을 낳았는데, 그 신들이 바로 '티탄족(타이탄) 12신'이다. 그리고 또 신들을 낳았는데 이번엔 생김새가 너무나도 기괴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우라노스가 강제로 가이아의 품속(땅속, 타르타노스)으로 감금하고 말았다. 가이아는 그래도 우라노스, 당신의 자식이니 인정해달라고 호소하지만, 그 못생긴 키클롭스(외눈박이) 삼형제, 헤카톤게이르(얼굴 반백 개, 손 백 개인) 삼형제 등을 절대 꺼내지 못하게 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가이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용기 있는 '티탄'에게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아마다스'라는 금속으로 만든 낫을 선사한다. 그 낫을 든 이가 바로 '크로노스(시간)'다. 크로노스는 아버지가 잠든 틈을 타 거시기를 거세해버리고 그것을 바다로 던져 버리고 만다. 그 거시기가 바다로 날아가면서 뚝뚝 흘린 피가 어머니(대지의 신, 가이아)에게 튀고 난 뒤에 생겨난 거대한 신이 바로 '기간테스(자이언트의 어원)'이고, 바다로 풍덩 빠져서 생겨난 신이 '아프로디테(미의 여신)'다.

 

  암튼,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새로운 신들의 왕이 된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와 '똑같은 운명'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자기가 가진 권력을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빼앗길 거라는 운명 말이다. 크로노스가 어쩌다 이런 운명을 맞게 되었냐하면, 바로 가이아가 원하는 요구를 우라노스와 마찬가지로 크로노스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타르타노스'에 갇힌 또 다른 자식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라노스와 마찬가지로 크로노스도 그 흉칙하고 힘만 쎈 괴물들이 자신이 다스리는 세상에 나다니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로노스도 그의 자식들에게 권좌를 빼앗길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를 거저 내줄 멍청이는 없었기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게 바로 '티타노마키아'다. 바로 '티탄족 12신'과 훗날 '올림포스 신'이 되는 제우스와 남매 신들, 그밖에 티탄족을 배신한 메티스, 프로메테우스, 니케 등등의 티탄족과 타르타노스에 감금되었던 힘쎈돌이 삼형제들이 합세하면서 끝내 제우스 쪽이 승리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렇게 '티타노마키아'에서 승리를 거둔 신들은 세상을 마음껏 다스리게 되었고, 그중 제우스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신 중의 최고신'에 등극하면서 올림포스산을 자신의 거처로 삼고 나머지 신들도 함께 올라 '권력'을 분배하게 되니, 이가 바로 '올림포스 12신'이다. 제우스는 왜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와는 달리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게 되었을까? 그건 바로 제우스도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권좌를 빼앗길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고, 그의 아버지도 그랬으니, 제우스도 끝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그 운명을 조금이나마 늦출 방법을 모색하다 '권력분배'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운명'만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던 '기간테스'가 태어나자 무섭게 무럭무럭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라다 기간테스의 키가 대지에서부터 올림포스 산꼭대기까지 자라자, 드디어 때가 되었고 기간테스는 올림포스 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제우스도 신탁을 듣게 된다. 기간테스가 공격해오면 '불멸의 존재'들은 결코 이길 수 없지만 '필멸의 도움'을 얻으면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열심히 '필멸의 존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필멸의 존재란 바로 '인간'을 말하고, 거대한 기간테스와 맞서기 위해선 평범한 인간은 싸울 수 없을 테니, '인간 영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여신은 말할 것도 없이, 요정들과 여자들과 끊임없이 불륜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녀들(?)이 낳은 자식들이 모두 한가닥 하는 꽃미남, 꽃미녀로 자라나는데, 그 가운데 으뜸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헤라의 영광)'이다. 비록 헤라가 낳은 아들이 아닌데도 그녀의 영광을 빛낸다고 이름지어진 까닭은 '필멸의 존재(영웅)'을 '불사의 존재(헤라의 젖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함)'로 만들어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여자가 낳은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남편이 이뻐 보일리 없다. 그래서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열두 가지 고난'을 겪게 한다. 헤라클레스는 이 고난들을 모두 성공하고 이름을 더욱 빛내고 만다.

 

  어쨌든, '기간토마키아'는 벌어졌고 예언대로 제우스를 비롯한 '불멸의 존재들'은 기간테스들에게 초주검이 되고 만다. 올림포스 신들이 모두 죽게 될 즈음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며 상황은 역전이 된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기간테스와 맞서 싸울 헤라클레스에게 자신들의 무기와 갑옷을 빌려주며 기간테스와 당당히 맞설 수 있게 해주는데, 헤라클레스도 기대에 부족함 없이 기간테스를 번쩍 들어올려 허공으로 내던지고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을 명중시켜 기간테스를 말라죽게 만들었다. 이로써 '기간토마키아'도 제우스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정리하면, '티타노마키아'는 신들끼리 벌인 전쟁이었고 '기간토마키아'는 신과 인간이 힘을 모아서 승리를 거둔 전쟁이었다. 이는 '신화'가 허무맹랑한 상상의 산물이 아닌 인류의 지혜가 담긴 보고라는 증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속 이야기(티타노마키아)'가 '역사속 이야기(기간토마키아)'로 끌려들어오고 있는 것을 보는 셈이다. 이제 신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신과 인간이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신화는 자연스럽게 역사의 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이젠 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공인 전쟁인 '트로이아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스연합과 트로이아연맹이 싸움을 벌이는데, 양쪽의 편을 드는 신들도 참전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연의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전쟁의 주연은 '양쪽의 인간 영웅들'이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렇게 '신화'는 허무맹랑한 상상의 결과가 아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역사'이며,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트로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역사적 사실로 증명이 되기도 하였다. 그저 신화로만 알려졌던 내용을 '진실'로 믿은 결과였다. 이는 우리의 '단군신화'도 역사기록만이 아니라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과 유적으로 어딘가 묻혀 있을 거란 믿음이 그저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닐 거라는 희망을 선사하는 바다. 비록 현재는 우리가 발굴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닌 북한과 중국에 '고조선의 유적과 유물'이 잠자고 있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 어린이들이 <그리스로마 신화>를 공부해야 하는 까닭은 '서양문화의 원류'이고 '서양문화'를 이해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지만, 신화가 곧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크기가 훨씬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세상을 크게 바라볼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상상력'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까지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로 신화를 이용한 이유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과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한 방법이다. 왜냐면 아직도 '과학'이 해결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조차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과학원리'를 깨닫기 위해서 상상력을 마구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한다. 오늘의 어린이들이 펼칠 상상력은 고대인들이 펼쳐낸 상상력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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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후 2024-01-18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즐겨보는 프로고 좋은 책이군요.^^
한번 구입해야 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異之我_또다른나 2024-01-20 22:06   좋아요 0 | URL
어린이들에게 훌륭한 책은 어른에게도 좋은 책인 법이죠^^
방송 내용에 충실한 책이기도 하지만,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졌기 때문에 자녀가 있는 학부모가 ‘함께‘ 읽기에도 좋고, 다 읽은 뒤에는 방송처럼 ‘퀴즈‘도 풀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매우 유익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