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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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IV / 열린책들 19번째 리뷰]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가 2004년이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옛날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무려 1985년에 선보였다는 것이다. 무려 40년 전에 나왔던 작품이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 읽어도 굉장히 놀라운 경험을 한다. 소설이 이렇게나 재밌다는 것이 첫 경험이고, 한 번 손에 들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다음이다. 이토록 '흡인력'이 높은 책은 정말 많이 없다. 더구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살인자'다. 그에겐 아주 독특한 재능이 하나 있는데 '세상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이 특출난 능력을 이용해서 '향수 제조'에 능숙해지고, '최상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아니 그 정도라면 '사람축'에 낄 수라도 있겠으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악마, 그 자체'다. 무려 스물다섯 명의 어린 소녀만 골라서 죽였다. 이런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이 소설은 재밌다.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그래서 의아한 것이다. 이게 왜 재밌냐면서 말이다.

사실,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은 18세기 프랑스다. 파리를 시작으로 '향수의 도시'라 불리는 그라스까지 곳곳을 누빈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아름다운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만 해도 아주 지독하고 구역질 나는 역겨운 냄새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수도 시설도 없었고, 화장실도 변변치 않아서 집집마다 항아리에 똥오줌을 누고 나면 창밖으로 내던지기 일쑤였다. 이런 지경이니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거리는 똥오줌이 넘쳐나는 강으로 변신하고, 쥐와 벌레가 들끓는 도시로 유명했다. 이런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기본적으로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손발을 씻거나 목욕 문화가 발달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은 '그리스도교'의 영향 아래 있었고, 목욕은 '이교도의 문화'였다. 그래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목욕이란 걸 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더러운 도시'가 바로 프랑스 파리다. 이렇게 파리는 도시도, 사람도 온통 더러운 악취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인구밀도'는 유럽에서 으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더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발달한 것이 '향수'이고 말이다. 더러운 냄새가 나면 그 냄새를 향수로 덮어버리고, 그 향기가 날라갈 때마다 향수를 뿌리고 또 뿌리고 우웩~

이런 프랑스 파리에서도 가장 더러운 세느강 항구에 위치한 어물전에서 어느 생선가게의 아낙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다. 그루누이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살인죄를 저지른 여인에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아'가 된다. 엄마는 살인죄로 복역하다 사형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아기로 태어나지만, 그나마 주변 사람들이 궁휼히 여기는 바람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며, 자비심 많은 판사의 배려로 버려진 아기를 적은 돈을 받고 길러주는 '보모'의 손에서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사랑받으며 자라지는 못한다. 갓난아기인데도 보모에게조차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존재'라고 거부 당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바로 '냄새'가 나지 않는 아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사람이라면 저마다 독특한 '채취'를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이 아기는 갓 태어났는데도 그런 냄새를 가지지 못했다. 보통의 아기라면 당연히 나야만 할 그 냄새가 없는 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눈도 채 뜨지 못한 그루누이는 코만 벌름거리며 주위의 모든 냄새를 빨아들이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그 모습이 마치 '눈도 뜨지 못한 괴물'처럼 느껴져서 그루누이는 보모에게서조차 버림을 받고 만다.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이사람 저사람에게 '떠넘겨지듯' 돌림을 당하는 바람에 그루누이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고 만다. 그렇게 일을 할만한 나이가 되자 돈벌이에 나서게 되는데, 하필 일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인 '무두장이의 도제'가 된다. 무두장이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드는 일을 하는데, '양잿물'을 이용하는 등 아주 위험한 일이기에 종종 죽어나가는 도제가 있을 정도로 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루누이는 군말없이 해낸다. 성실해서가 아니다. 그는 태생부터 '악마'이기에 그 험한 일도 이겨낸 것이다. 스스로 그 악마적인 재능을 능히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참고 이겨낼 뿐이다. 실제로 그루누이는 '무두장이'만이 걸리는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기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도 기적같이 살아났다. 아주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천대를 받으면서 그루누이는 자신의 재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며 버티고 또 버틴다. 온세상의 냄새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 말이다.

그러다 때가 왔다. 그루누이의 코는 이제 냄새를 잘 맡는 것을 뛰어넘어 '냄새의 성분'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으로까지 발현된 것이다. 그러면서 '욕망'이 생겼다. '냄새를 붙잡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바로 '향수 제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두장이의 도제'에서 '향수제조자의 도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회를 포착한다. 세느강 다리 위에서 향수제조를 오랫동안 해오던 '지제프 발디니'라는 향수제조사를 만난 것이다. 그루누이는 그의 도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루누이는 발디니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향기를 가두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어려운 일은 더 많은 냄새를 가둘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발디니의 '침수법'만으로는 냄새를 가둘 수 있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냄새를 거두어들일 '또 다른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그라스'라는 향수 도시를 알아낸다. 그루누이는 미련없이 발디니 곁을 떠난다. 발디니를 파멸로 이끌면서 말이다. 사실 그루누이를 악마로 지칭한 까닭은 그의 주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사고사를 하기 때문이다. 엄마도 죽고, 보모도 죽고, 판사도 죽고, 그루누이를 어릴 적에 심하게 매질하던 이도 죽고, 무두장이도 죽고, 그리고 발디디도 죽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도 다 죽고 만다. 물론 그루누이가 '살인'을 저질러서 죽은 것은 아니다. 모두 '사고사'다. 그루누이가 직접 살해한 이들은 모두 '한창 꽃처럼 예쁜 소녀들'뿐이었다.

그렇게나 예쁜 소녀들을 죽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루누이가 유일하게 '사랑'을 느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스런 소녀에게서만 나는 향기'를 사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를 모아서 최상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살인을 한 것이다. 그저 '향기'만 뽑아내기(?) 위해서라면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맞다. 그래서 그루누이도 처음엔 죽이지 않고 '살아있는 소녀'에게서 그 아름다운 향기를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봤다. 그러나 실패였다. 왜냐면 '향기'를 아주 뜨거운 돼지기름에서 얻은 '유지'를 골고루 바른 아마포를 맨살 위에 붙여두고 반나절 이상 가만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더구나 뜨거운 천을 온몸에 감싸고서 반나절을 꼼짝하지 않고 버틸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그나마 많은 돈을 주고서 '모델'처럼 꼼짝말고 있으라고도 해봤지만 뜨거운 천을 두루고 가만히 참기는 했지만, 끔찍한 고통을 견디면서 오만상을 찡그리고 몸부림을 치게 되면 '아름다웠던 향기'조차 고통에 의해 역한 냄새로 변하고 말아버려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루누이는 '가장 아름다운 그 찰나의 순간'에 몽둥이로 뒤통수를 쳐서 단숨에 생명을 앗아버리는 방법을 고안한다. 그때 소녀들의 표정은 한없이 청순하고 꽃같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체를 아마포로 둘둘 감아서 '향기'를 뽑아낸다. 그렇게 만든 향수는 진정 '최상의 향수'인 것이다. 그렇게 무려 스물다섯 병이나 만든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마지막에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포집하는 과정에서 '살인 증거'를 남기고 그루누이는 살인혐의로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사형대에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벌어지는 '광란의 도가니'는 이 소설의 백미이자 압권이다. 그루누이가 만든 '최상의 향수'를 맡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취해서 그루누이 발 아래 엎드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성을 잃고 본능에만 충실한 몸짓으로 가장 환희에 빠질 수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만다. 이게 그루누이가 만든 '최상의 향수'가 지닌 힘이다. 만약 이 향수를 뿌리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들어가면 프랑스 황제도 그루누이의 발등에 키스를 하며 충성을 받칠 것이며, 교황성하에게 보내는 편지에 향수를 한 방울 떨어뜨려서 보내면, 바로 황홀한 기분에 빠져서 '편지의 내용'대로 모든 일을 다 수락하게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향수를 그루누이의 몸에 뿌리고서 다니면 모든 사람들은 그 향기에 취해서 그루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받치려 들 것이다. 그야말로 그루누이는 '냄새의 신'이 되어 온세상 위에 군림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최고의 순간에 그루누이는 두려움을 느낀다. 자기가 만든 '최상의 향수'가 지닌 그 놀라운 위력을 가질 수 있음에도 '그 향기'를 맡은 그루누이 자신은 그 향기에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몸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것처럼 그루누이는 '최상의 향수'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고귀한 신분에서부터 미천한 신분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 향기'에 취해서 황홀해하는 표정을 짓기 바쁜데, 왜 '냄새의 신'인 자신은 그 향기를 맡을 수조차 없다는 말인가? 왜 자신도 그 향기에 취해서 황홀한 느낌을 즐길 수 없단 말인가? 그루누이는 최고의 정점에서 '고독'을 느낀다.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지독한 고독감을 맛보며 씁쓸해 한다. 그렇게 그루누이는 '사형수'에서 무죄를 이끌어내고, 심지어 마지막으로 죽인 소녀의 아버지에게 '양아들'이 되어 달라는 간청을 받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누리고서는 홀연히 떠나버리고 만다. 그렇게 홀로 떠나고서 다시 되돌아온 파리 인근에서 한 무리의 거렁뱅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루누이는 그들 앞에서 '최상의 향수'를 자신의 몸에 뿌린다. 향기에 취해버린 그들은 미치광이처럼 그루누이에게 달려들었고, 그루누이의 몸을 물어뜯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루누이는 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만다.

과연 그루누이는 만족했을까? 태어날 때부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에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일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루누이는 그들이 느끼는 '포만감'을 함께 느끼며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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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의 연애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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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III / 이봄 6번째 리뷰] '수짱 시리즈'에도 차례가 있는 모양이다. 1편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2편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3편은 <아무래도 싫은 사람>, 그리고 이 책이 4편이다. 5편은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란다. 뒤늦게 '순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뭐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리뷰하려 한다. 무려 10여 년이나 지난 책이니 말이다. 딱히 '내용'이 연결되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암튼, 이 책에서 '수짱의 나이'는 37세다. 아직 '독신'이고, '연애 경험'도 없는 듯 싶다. 하지만 맘에 드는 남자는 찾은 듯 싶다. 서점 가게의 주인인 '스치다 씨'다. 나이는 네 살 연하이고 말이다. 지난 번에 수짱은 '카페'에서 점장까지 맡았는데 이번에는 '보육원 조리사'가 되었다. 그렇게 직장을 옮긴 사연도 있을 듯 싶은데, 그것과는 별개로 예전 직장인 '카페'의 옆 가게가 바로 스치다 씨가 일을 하는 '서점 가게'였다. 이 둘 사이에 뭔가 썸이 있다. 한편, 수짱은 또 고민에 빠졌다. 37세 독신 여성의 미래에 대해서 말이다. 지난 번에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고 고민했던 것처럼 이번엔 '맘에 드는 남성'이 생겼는데도 '사로 잡지 못하는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이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고 있다. 참, 고민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생물학적 나이'와 '현대 여성의 자아실현' 따위는 지난 번에 많이 이야기했으니 생략하도록 한다. 현대 여성의 결혼적령기라는 주제로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선 '임신, 출산, 육아'라는 3종 고민이 현대 여성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류의 번성을 위해서 여성을 '아기를 낳는 공장'으로 언급하는 것을 현대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성의 자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시험관 아기'라는 말이 나온 지도 꽤 지났지만, 그건 그저 난자와 정자의 '수정단계'만 가능할 뿐, 수정된 난자가 여성의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면 절대로 '건강한 아기'로 자라나지 못한다. 물론, 어느 정도 자라면 '인큐베이터'라는 인공기기에서 아기의 성장을 도울 수 있지만, '엄마의 뱃속'에 있는 것만큼 안전하고 건강하게 아기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과학기술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만 알아두면 좋다.

그렇다. 인간이 자손을 낳고 건강하게 기르기 위해서는 '여성'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을 해도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런데 왜 여성은 '3종 고민'을 달고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특권'을 가지고 있는데도 왜 여성은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체 남성들이 '여성들'을 떠받들고 살아가야 '정상'인 것 아닌가? 남자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여성들의 희생과 헌신'이 절실할테니 말이다. 왜 여성들은 그런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도리어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고민을 홀로 떠안고 살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앞서 현대 여성들의 '가임기간'이 1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라고 밝혔다. 그런데 현대 여성들은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하기 위해서 '교육과 취업 활동'을 마치고 나면 빠르면 20대 후반, 늦으면 30대 초반이라는 것도 얘기했다. 그러니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독립적인 주체'로 당당히 살아가기 위해서 결혼을 뒤로 미루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수짱의 나이가 37살이 되었다. 당장 결혼을 하더라도 '임신가능성'이 꽤나 낮은 '노산'에 해당한다. 더구나 '초산'인 경우라면 더욱더 낮아지고, 심지어 임신한 '산모의 생명'과 '태아의 건강'까지 고려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임신'에 성공할 수 있는 나이까지 몇 년 남지 않은 셈이다. 길게 잡아 45세라고 해도 수짱의 경우라면 7~8년 남짓 남은 셈이다. 고민이 되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수짱은 '연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가고, 웬지 끌리고 있는 '스치다 씨'에겐 이미 사귀고 있는 여성까지 있는 상황이다. 그런 남자인데도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잘 어울리는 한쌍인 셈이다. '스치다 씨'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귀고 있는 여성이 있는데도 '모리모토 씨(수짱의 본명)'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편하고 즐겁다. 그래서 연인과의 데이트조차 서둘러 마치고 수짱에게 전화를 걸어 술 한 잔을 나누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스치다 씨'도 수짱에게 끌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둘의 관계는 좀처럼 진척이 없다. 단순히 '연애 경험'이 없어서일까? 그보다는 수짱에게서 '현대 여성의 고민'을 드러내기 위해서 '작가의 설정'이 개입한 것 같다. 아직 5편을 읽지 않았지만, 수짱은 결국 독신 여성으로 남을 것 같다. 그게 애초의 '설정'이니까 말이다.

이런 설정은 '현대 여성의 고민'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해봄직한 고민'이다. 고민하길 권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고민에 빠진 현대 직장여성이 참 많을 것이기에 해봄직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재능도 많고 능력도 뛰어나서 일찌감치 '경제적 독립'을 하고, 연애도 능동적으로, 결혼도 화끈하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척척해내는 '슈퍼걸'이라면 이런 고민 따윈 하지도 않을 것이다. 슈퍼걸만의 고민(?)도 있겠지만 딱히 궁금하지는 않고, 평범한 직장여성의 고민이 더욱 공감이 갈 것이기에 '수짱 시리즈'는 인기를 끌었던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다면 이런 고민에 대한 '결론'은 뭐가 좋을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위해서 '3종 고민'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우뚝 서면 괜찮은 결론인 걸까? 아니면 적절하게 '3종 고민'을 해결하면서 연애도 적당히, 결혼도 무사히, '배우자'와 알콩달콩 치고박고 우당탕탕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결론인 걸까? 어느 쪽이든 '바람직한 결론'따위는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각자의 삶이 모두모두 존중받으면 그뿐이지, 딱히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니, 꼭 그렇게 살아가라는 '인생의 가이드 라인'을 정해주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평생 독신으로 홀로 살아가게 된다면 그 또한 '소중한 삶'이고, 애 셋을 낳아 허리가 꼬부라질 때까지 '희생과 헌신'을 하며 살아가는 것도 역시 '존중받아 마땅한 삶'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여성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에 응원해주는 것이 정답 아니겠는가?

하지만 정작 문제는 현대 여성들이 이렇게 소중한 자기 삶에 '평가'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제발 '내 삶'에 대한 점수 좀 매겨 달라는, 자신의 삶은 '몇 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기왕이면 '좋은 점수'를, 이렇게 '희생하고 헌신했으니' 제발 높은 점수를 얻게 평가해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마스다 미리'는 역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100점 만점이라고 후한 점수를 받아도 '여성들의 고민'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이걸 전문용어로 '자가당착'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여성들이 이런 '해결할 수 없는 고민'에 빠져들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우리 모두 깊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는 말고, 그렇게 힘든 고민을 하고 있으니 고민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도와줄 거라는 위로만 전달하면 좋을 듯 싶다. 본인의 문제는 결국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진리만 확인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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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 핵심 가치 서가명강 시리즈 10
이효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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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II / 21세기북스 34번째 리뷰] 2025년이 우리에게 '헌법이 주는 가치'를 다시금 새기게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헌법'은 전세계 어디에도 내놓아도 자랑스런 '좋은' 헌법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이 '좋은' 헌법을 유린하려는 세력이 겁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며 '나쁜' 헌법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에 우리 헌법이 여전히 '바로 서기'를 해야하는 중차대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늘 (2025년 3월 8일)은 검찰은 '내란우두머리 윤석열 씨'를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면서 '석방'을 용인하고 말았다. 물론 '무죄 석방'은 아니다. 위헌적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구속수사'를 하기 위해 그간 '공수처'와 '검찰'이 법원영장을 들고서 서로 수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저들의 손발이 꼬이는 통'에 그만 중대한 절차상의 하자를 만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변호인 측은 이런 빈틈을 파고 들었고, 결국 '구속수사'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고 말았다. 허나 검찰이 '항고'를 하면 바로 석방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검찰이 관례를 깨고 '항고 포기'를 하면서 내란우두머리를 석방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고 만 셈이다. 이건 검찰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대한민국 법률이 정한대로 '공정수사'를 진행하면 그뿐일텐데, '무죄석방'도 아닌 졸속 절차진행으로 인한 실수(!)로 인해서 '석방'의 빌미를 제공했고, 최종심사를 위해서 '상급법원'에 항고를 하면 '구속수사'를 이어갈 수도 있었는데, 이를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만 셈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검사출신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대한민국 검찰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지 않은가? 이제 대한민국 검찰은 '국민'이 아닌 '개인'을 지키는 사적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만 남은 셈인데, 온통 '윤석열 지키기'에 올인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니 '뻔한 결말'이 뒤집어질까 우려스럽기 그지 없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헌법'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인데, 잘 읽히지가 않는다.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닌데도 그렇다.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주는 그 사이를 메우는 무언가가 꽉 막힌듯 비어있는듯 애매하게 '어색하기' 때문인 듯 싶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두 개의 낱말이 있는데, 바로 '건국헌법'과 '자유민주주의'다. 이런 낱말을 주로 쓰는 '집단'이 있긴 하다. 바로 대한민국 '우익집단'이다. 흔히 말하는 '뉴라이트세력'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들이 주로 이런 낱말들을 즐겨 쓴다. 이 낱말들은 각각 '제정헌법'과 '민주주의'를 쓰고 있다. 좌익집단들만 쓰는 용어가 아닌 대한민국 보편적인 집단이 대세적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제헌절(7월 17일)'을 국경일로 삼고 있는데, 그 '제헌'이 바로 '제정헌법'의 준말이다. 그런데도 우익집단들은 굳이 '건국헌법'이라고 지칭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라는 것이 기존의 상식인데, '건국헌법'이라고 지칭하는 세력들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것은 1948년에 실질적으로 만들어졌으니, '건국된 시점'을 명시하는 것이 더 보편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딴에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까닭이 그 시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극도로 대립하고 있던 시절이었고, 대한민국이 채택한 경제질서가 '자본주의'에 기초한 경제질서를 따르고는 있지만 '완전한 자유시장경제질서의 전형'이 아니라는 점을 대단히 우려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헌법 제2장에서 자유권 이외에 '사회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근로자에게도 이익을 분배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공공복리의 향상'까지 아우르는 규정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도 애매모호한 것이 '노동자의 경영참여권'은 인정하지 않고서 '노동자의 이익균점권'만 인정하였다는 점이 혼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하자원과 자연력을 국유로, 중요한 운수, 통신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삼는 조항도 첨가하여서 '완전자유시장 경제체제'를 구축하는데 실패(?)했다고 아쉬워한다.

아니 이게 왜 아쉬워해야 할 대목인가?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틀에서 무한경쟁을 하게 되면 부익부빈익빈 현상만 심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부를 쌓을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말지 않는가 말이다. 이에 국가가 '사회권'을 발동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가의 부'를 골고루 나누어주어 '기회의 공평'을 기하는 것이 더 좋은 국가를 만드는 기틀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대한민국이 건국할 당시에 국가가 워낙 가난해서 '국민 모두에게 나누어줄 부'조차 터무니없이 초라하였는데도, 이러한 '사회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것이 한편으론 '웃기는 일'이긴 하다. 허나 대한민국은 그러한 '사회권'을 보장하고 있었기에 현재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한 뒤에 아주 훌륭한 헌법을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중 하나가 되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러한 '제정헌법'의 의의를 무색하게 만들면서 '건국헌법'이라 지칭하면서 아쉬워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건 바로 '민주주의'라는 표현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자유민주주의'라고 부각하는 점에서 그 본심을 엿볼 수 있다.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북한식 공산주의에 반하는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표방하기 위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따로 쓰기도 하지만, 우익집단이 쓰는 '자유민주주의'는 그야말로 '반공주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 한술 더 뜬 이들은 '멸공주의'라는 의미로 '자유민주주의'를 목놓아 부르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바로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숱하게 높였고, 역대 '보수정권'에서는 이런 반공정신에 투철한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꿔야 한다고도 목놓아 외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너무 자주 나오다 못해 거의 '도배'를 할 지경이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에도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실어놓고 있다고 한다. 꼴랑 2번 말이다. 물론 '반공주의'라는 뜻으로 쓰지도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냥 '민주주의'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건국절'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이를 굳이 '자유민주주의'로 고쳐 쓰긴 바란다. 이 책의 저자 이효원(헌법학자)이 '우익집단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 황교안 총리가 저자를 '대테러 인권보호관'으로 임명하고 중용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주 관련이 없는 인사는 아닐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나저러나 이 책이 '대한민국 헌법'을 다루고 있고, 저자도 '헌법학자'로 명망이 높은 인사이기에 '헌법 공부'를 하기에 부족한 책은 결코 아닐 것이다. 또한 '헌법'을 연구함에 있어 한쪽으로 편향된 시선일 망정, 그런 연구가 모이고 모여서 '우리 헌법'이 바로 설 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오히려 '다양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특정 세력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만' 작동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저자도 이 책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좋은' 헌법이라고 수차례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치국가'를 내세우고 있으며,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따르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있고, 헌법에서 명백하게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고 오롯히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무런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 헌법'인데, 이를 부정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저자도 인정하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2025년에 대한민국 헌법이 '도마'위에 올라와 뭇매를 맞고 있다.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자칭 '보수진영'이라고,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하겠다는 이들이 스스로 '위헌적인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대한민국 헌법은 그간 여러 차례 '수정' 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87년 '6월항쟁 이후'에 고쳐졌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 당시'와는 달라진 점이 많다.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게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도 꽤나 많다. 그렇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국민 합의'를 통해서 고쳐나가면 그뿐이다. 그런데도 어찌 '저들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해서 헌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헌법재판소를 폭파시킨다고 하며, 나아가 '헌법재판관'을 살해하겠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이들이 '헌법'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국민 모두가 '헌법'을 일독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거기에 덧붙여 이 책처럼 '헌법 해석'을 곁들인 책도 아울러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나도 다른 '헌법학자의 책'을 더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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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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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I / 열린책들 18번째 리뷰] 어릴 적에 읽었던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은 이상한 동화였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말이다. '호기심' 때문에 죽다니...'호기심'이 뭐가 나쁘냔 말이다. 그래서 난 그런 이야기가 별로 재미 없는 것인줄 알았는데, 웬걸 '푸른 수염'과 연관된 제목의 소설들이 정말 많았다. 그 가운데 몇 권을 소개할까 한다. 먼저 아멜리 노통의 <푸른 수염>이다. 글쓴이의 이름의 마지막 'b의 발음'은 묵음처리하려고 한다. 프랑스어는 잘 모르지만, 짐작컨대 원어 발음조차 'Nothomb(노텀)'으로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다. 이게 국립국어원의 외국어발음 규칙에 따랐기 때문인 것 같은데, '조나단'을 조너선으로 발음하는 것도 별로다. 외국어에도 '표준어'와 '사투리'가 분명 있어서 지역마다 발음이 다를텐데, 왜 굳이 '표준(?)발음'을 고집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똑같은 이름이어도 'Henry'를 영미권에선 '헨리'로, 프랑스어권에선 '앙리'로 발음하지 않느냔 말이다. 'Angel'은 또 어떤가? 엔젤이라고 부르는 것이 '표준'이라고 우기겠지만, 에인절, 앙겔, 앙헬, 앵게르...수도 없이 많다. 그러니 더욱 '표준'을 삼아야 옳다고 주장하겠지만, 수없이 많은 발음 가운데 굳이 '미국식'을 고집하는 까닭은 또 무어란 말인가? 더구나 이 책의 작가는 벨기에 사람이지 않은가? 잡설이 길었다. 암튼 '표기'는 따르겠으나 나는 '노통'이 편하단 말이다. 그뿐이다.

어쨌든 '푸른 수염'에 관한 두 가지 버전을 알고 계실 것이다. 하나는 여섯 아내를 끔찍하게 도살한 미치광이 살인자이고, 다른 하나는 여섯 아내를 잃어버리고 비통함에 빠져버린 불운한 귀족남이다. 전혀 상반된 이미지이지만 이걸 알고서 노통의 <푸른 수염>을 읽고 있으면 더욱 생생해진다. 과연 노통이 그린 '푸른 수염'의 이미지는 어느 쪽인지 궁금증이 폭발하면서 이 책의 재미는 더욱 증폭되니까 말이다. 결말을 상상하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통의 책이 늘 그렇다. 등장인물 간의 '설전'을 방불케 하는 대화가 일품인 소설이기도 하다. 그동안 노통의 소설은 꽤나 즐겼다. <살인자의 건강법>을 시작으로 <적의 화장법>, <오후 네시>, <공격>, <로베르 인명사전>, <머큐리> 등등 꽤나 많이 출간되어 있기에 즐겨 읽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열린책들'과 '문학세계사' 출판사에서 양분하여 출간을 했던 터라 살짝 일관성을 잃어버린 감도 없지 않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을 잠식시켜버릴 정도로 '노통의 책들'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매번 책들의 결말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소설의 첫 부분은 대단히 '의외성'으로 시작되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지만, 다 읽고 나면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날 정도로 흡사한 결말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푸른 수염>은 좀 달랐다. 왜냐면 나름 '원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원작'과 무엇이 같고, 어떤 점에 다른지 서로 비교하면서 읽어나가는 재미가 새로 추가되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돈 많은 에스파냐 귀족이 호화로운 저택에 은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저택 일부를 세를 내놓는 광고를 낸다. <욕실 딸린 40제곱미터 크기의 방. 주방 기구 완비된 넓은 주방 자유롭게 사용 가> 월세는 겨우 500 유로다. 파리의 시세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월세다. 욕실도 없고 25제곱미터 크기의 지저분한 방마저 '월세 1000 유로'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비싼 가격인데도 없어서 못 구할 판이다. 더구나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는 규칙도 까다롭다. '영혼의 반쪽'을 구한단다. 다시 말해 '젊은 여성'만 세입자 후보가 될 수 있고, 심지어 예뻐야 한다. 아니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나 파격적인 조건인데도 망설여지는 이유가 있다. 이미 이전에 세입자로 들어간 8명의 여성이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들은 기꺼이 입후보자가 되기 위해 줄을 선다. 이유가 뭐든 여성들은 '경쟁률'이 높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줄부터 서는 버릇(?)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은 '지독한 편견'일까? 하지만 사실인 걸. 암튼,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젊고 냉소적인 벨기에 여자 사튀르닌이 당첨(?) 되었다.

그런데 집주인인 귀족 양반의 매력이 장난 아니다. 돈만 많은 음탕한 늙은 남자일 것으로 여겼는데, 은근 매력이 철철 넘친다. 자신의 집밖에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귀족답게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세련되고, 걸친 옷은 하나같이 명품 뺨칠 정도로 값비싸고 우아하며, 먹고 마시는 것들은 한결같이 값비싼 것투성이다. 심지어 요리 솜씨도 기깔났고 미식가로도 손색이 없어서 음식 하나하나가 예술적인 맛을 지닌 상태였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세입자 여성'에게도 아낌없이 베풀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방을 빌리는 것으로도 황송할 따름인데, 식사까지 고급스럽게 마련해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딱 한가지 흠이 있다면 '귀족적인 대화'가 너무 고풍(?)스럽다. 입만 열면 '여성의 매력에 찬사'를 늘어놓는 것도 처음에만 귀가 호강을 하지, 계속 듣고 있다보면 역겨울 지경이다.

그런데도 세입자는 완강히 저항한다. 사튀르닌은 결코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다. 보통의 여자라면 '돈 많은 남자' 앞에서 당당하기 힘들다. 날마다 명품 선물을 하고, 고급 음식을 대접 받고, 입만 열면 "난 당신 때문에 사랑에 빠졌소"라는 능글능글한 말을 던지는 남자를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런 돈 많은 귀족남의 추파를 용케 버티고 침실로 들어가면 '푹신한 침대'가 안락한 잠에 빠져들게 만드니 날이 가면 갈수록 세입자 여성은 집주인에게 젖어들듯이 사랑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튀르닌은 용케 버틴다. 집주인과 사랑에 빠진(?) 이전 여성 세입자 8명이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사투르닌은 결코 '아홉 번째 당사자'가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한 방에 경계심을 높이던 사튀르닌도 허물어지고 만다. 바로 집주인이 선물한 '황금빛 드레스'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 드레스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드러운 '안감'으로 마무리를 해서 사튀르닌의 몸을 착 감싸주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나 아름답고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집주인이 직접 바느질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주 뛰어난 재봉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튀르닌은 그 옷을 입은 뒤에 집주인과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도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게 둘은 사랑의 감정을 아주 '독특한 대화'에 녹여가며 밀담을 나누었다. 독특한 대화라고 지칭한 까닭은 '제3자'가 둘의 대화를 들었다면 사랑의 대화가 아닌 '신랄한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아멜리 노통이기에 그 대화는 아주 즐겁게 만든다. 바로 '독자'를 말이다.

자, 여기서 원작동화와 비교를 해보면, 이 집주인인 '돈 많은 에스파냐 귀족'이 등장하고 '8명의 여성'이 행방불명 된 것만 빼고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소재로 등장하는 '작은 방'에 해당하는 '암실'을 제외하고 말이다. 새로 세입자가 된 사튀르닌도 저택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닐 수 있지만 딱 한군데 '집주인의 암실'만은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는다. 문이 잠겨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사튀르닌은 '짐작'을 한다. 뭐 '추리'라고 하는게 더 적절하겠지만, 그리 어려운 추론도 아니기에 '짐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그 집작을 노골적으로 묻기까지 한다. 그 '암실'에 행방불명된 8명의 여성이 죽은 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집주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방에 '시체' 따위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럼 여성들을 죽인 뒤에 어쨌냐고 물으니, 집주인은 자신은 결코 그 여성들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지만 사튀르닌도 안다. 집주인은 결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8명의 여성은 어디로, 어떻게, 왜 사라진 것일까?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튀르닌은 짓꿎은 질문도 던진다. 자신이 '아홉 번째 실종자'가 되길 바라느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집주인은 머뭇거리지만 '자신이 바라는 건' 그게 아니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집주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분명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동시에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사튀르닌이 이토록 사랑에 빠진 것이 그 증거니까 말이다. 이야기는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지만 '독자'들은 점점 재미에 빠져들고 만다. 과연 이 책의 제목이 <푸른 수염>인 까닭은 무엇이고, 이 책의 결말은 '푸른 수염' 이야기의 어느 버전으로 끝 맺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게 아니면 완전 색다른 결말을 내놓았을까? 노통의 습관(?)대로라면 색다른 결말 쪽이 분명하긴 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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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푸른수염의 일곱아내 - 우리가 꼭 읽어야할 명작소설 우리가 꼭 읽어야할 명작소설 14
아나톨 프랑스 / 그림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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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 / 그림책 1번째 리뷰] 이 책을 쓴 지은이부터 먼저 소개해야 겠다. 1921년 <펭귄의 섬>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나톨 프랑스다. 이렇게 글쓴이의 '권위'부터 소개하는 까닭은 이 글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나도 '푸른 수염'이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은 처음 들은 바니까 말이다. 더구나 아나톨 프랑스는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며 국가주의와 인종주의에 저항한 인사이기도 하다. 이런 아나톨 프랑스가 '살인광 푸른 수염'을 변호하기 위해서 글을 남겼단다. 내용을 살펴 보자.

제1장에서는 전래민담 <푸른 수염>에 관한 '비교신화학'적 가설을 설명한 내용인데, 특기할 만한 내용은 없다. 단지 전설로 내려오는 내용들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면서, 만약 그러한 내용들이 모두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역사를 '태양 신화'에 빗대어 추증하는 이들의 썰에 따르면 '나폴레옹'이란 자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비유하며 비꼬고 있다. 이처럼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설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오직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야기 한 것만을 가지고서 '가설'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로 서두를 꺼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한 결론은 다름 아닌 '푸른 수염'에 대해서 악의적인 비난을 퍼부은 샤를 페로의 저의가 무엇인지 파헤쳐 보겠다는 비장함을 엿볼 수 있었다. 어찌 하여 샤를 페로는 '푸른 수염'에 대해 세상에 둘도 없는 악한으로 그려낸 것인지 의심부터 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에 아나톨 프랑스는 1650년 경, 베르나르 드 몬테규라는 이름의 부유한 귀족이 '꽁삐엔뉴'와 '삐에르퐁' 중간에 있는 영지에서 살고 있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내민다. 이곳에서 몬테규라는 귀족은 그 시절의 시골 영주답게 하인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주일에는 마을 처녀들과 춤을 추며 검소한 생활을 즐겼다고 전한다. '고딕 시기'에 지어진 그의 성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고딕형식의 성들은 대개 '창문'이 작다. 두꺼운 기둥이 성의 무게를 지지하는 건축양식이기에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창문이 세로로 길고 폭이 좁은 형태다. 그나마 벽면에만 '자연창'을 내었을 뿐, 내부의 방으로 들어가면 '창문'도 없이 어두컴컴하고 오직 '촛불'에 의지해서 어둠을 밝히는 구조였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복도 끝 한켠에 그 유명한 '작은 방'이라 불리는 방이 있었을 거란다. 샤를 페로는 유독 이 방에 집착했고 말이다. 이 방에 '가엾은 공주들'이 시체가 되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느냐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의 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시콜콜 알고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마저 '기록'이 없다면 아무런 상상을 하더라도 거리킴조차 없을 것이다. 그 상상이 좋은 상상인지, 나쁜 상상인지도 말이다.

암튼 그 고딕 성의 주인인 시골 영주를 마을 사람들은 '푸른 수염'으로 불렀단다. 수염의 빛깔이 워낙 칠흑같이 검어서 '푸른 빛'이 돌 정도였기에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염을 제외하고 몬테규 씨의 체격은 통통한데다 키가 크고 어깨도 넓고 혈색 좋은 호남형이었다고 전한다. 수려한 외모와는 달리 그는 몹시 '수줍음'이 많았는데, 이게 여자와 사귀기 힘든 결정적인 단점이었다. 푸른 수염은 파티 때마다 귀부인들을 사랑했고, 호감도 많이 받았지만, 여성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죽기보다 힘들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서, 심할 때는 여성에게 말을 거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수줍음이 그에게 결정적인 불행을 안겨 준 것이다. 얌전하고 정숙한 여성과 인연을 맺기 힘들게 만들었고, 오히려 뻔뻔스럽고 게걸스런 여성들에게만 유혹을 당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도 귀족이었기에 결혼을 해야만 했다. 첫 번째 아내는 '꼬레트 파싸쥬'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곰'을 재주넘게 하여 돈을 벌던 여성이었는데, 얌전한 성격의 드 몬테규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단다. 하지만 성향이 다르면 그것 또한 매력이라고 했던가. 드 몬테규(이하 '푸른 수염')는 첫 번째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워낙 활달한 성격의 아내는 얌전한 성격의 푸른 수염과는 잘 맞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권태를 느낀 그녀는 그 '작은 방'에 떠돌이 시절에 키우던 '곰'을 가두어 두고서 같이 잠을 자기도 했는데, 어느 날 그 '작은 방'의 문이 열린 틈으로 곰이 달아나자 아내도 함께 달아나버렸다. 아내를 잃어버린 슬픔에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끝내 찾지를 못했단다.

도망 간 아내를 잊지 못한 '푸른 수염'은 우연히 꽁삐엔뉴 형사 재판관의 딸, 쟌느 드 라 끄로슈와 춤을 추게 되는데,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푸른 수염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청혼을 했더란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도 승낙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것 같았지만, 푸른 수염의 두 번째 아내는 '술고래'였다. 성안의 술이란 술을 몽땅 퍼마시고도 모자라서 더 많은 술을 사마시기 시작하자 '푸른 수염'도 더는 참지 못하고 아내의 음주벽을 고치려고 술에 '개박하'를 넣었는데, 술에 취한 아내는 독약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푸른 수염의 배를 칼로 찔러대기도 했단다. 그런 일이 있어도 꾹 참았던 푸른 수염은 아내를 그저 방치하고 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내가 '작은 방(한때 곰이 머물던 그 방)'에 들어가자 정신착란을 일으키고서는 "살인이다"라는 외침과 함께 작은 방을 뛰쳐나갔다가 호수에 빠져 죽었단다. 이를 계기로 '작은 방'에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 방의 벽면에는 알 수 없는 기괴한 그림이 걸려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게 되었다. 암튼 그 '작은 방'은 '공주들의 방'이란 명칭과 달리 귀여운 구석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두 명의 아내를 잃어버린 '푸른 수염'은 영지의 농부, 트레넬의 딸, 지곤느와 결혼을 한다. 신분 차이가 있었던 만큼 결혼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같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의 몸에선 양파 냄새가 났고, 사팔뜨기에 다리 마저 저는 불구였다. 그것만 빼고는 참한 색시이긴 했는데, 귀족 영주와 결혼을 한 것을 계기로 '사치'에 눈을 뜨고서는 끝없는 탐욕을 부리기 시작했단다. 푸른 수염은 귀족치고는 검소한 생활을 해왔던 터라 아내의 사치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었다. 그래도 푸른 수염은 아내가 만족할 만큼 풍족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도록 도와줬단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칠 줄 몰랐고, 급기야 '왕의 정부'가 되겠다면서 사교계에 진출하고, 궁정에까지 발을 들여놓으려 했으나 그곳이 어디라고 '사팔뜨기에 절름발이 시골 아낙'을 받아주겠는가. 결국 푸른 수염의 아내는 '왕의 정부'가 되지 못한 원한을 품고 병에 걸렸고, 그만 죽고 말았다.

'야성의 첫째 아내', '술고래인 둘째 아내', '사치스런 셋째 아내'까지 잃어버린 푸른 수염은 상심이 컸지만, 기병 사관의 딸, 블랑슈 드 지보메에게 딱 걸렸다. 그녀는 매우 재치있는 여성이었다는데, 그 재치가 '현모양처'로 이어지진 못했고, 푸른 수염을 '기만'하는데로 기똥차게 굴러갔던 모양이다. 그녀는 결혼한 뒤에 '푸른 수염의 영지' 인근에 있는 귀족이란 귀족은 모두 꾀어서 정을 통했단다. 한마디로 '불륜녀'인 셈인데 푸른 수염이 너무 어리숙한 것이 그녀의 불륜을 더욱 부추기는 축에 끼었다. 심지어 남편인 푸른 수염의 면전에서도 대놓고 바라을 피웠는데, 푸른 수염은 아는지 모르는지 내색조차 하지 않고서 아내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인데, 엉뚱하게도 남편에게 밟힌 것이 아니라 '다른 내연남'에게 걸리게 되었다. 네 번째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방이 그 '작은 방'이었는데, 어느 날에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다른 내연남이 발견하고서는 질투심에 불타올라 칼로 찔렀는데, 그만 푸른 수염의 아내가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네 번째 아내까지 비명에 죽자 푸른 수염은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다. 백약이 아무 소용이 없자 의사는 마지막 처방으로 '젊은 아내'를 맞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알려주고 떠난다. 사랑으로 얻은 병은 사랑으로 치료하라는 처방이었던 셈이다. 그때 마침 떠오른 여자가 사촌 누이인 '앙젤 드 라 가랑딘느'였다는데, 그녀가 마침 '어리석은 여자'라는 점이 푸른 수염에게 안심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어리석고 착한 여자였던 '라 가랑딘느'는 예쁜 외모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예쁜데 어리숙한 그녀를 온 마을의 방탕한 귀족남자들이 찝쩍거린 것이다. 그렇게 예쁘다고 칭찬하고서 성안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서, 입술을 훔치고, 가슴을 만지고, 엉덩이까지 빼앗겨 버린 이야기를 속도 없이 남편인 '푸른 수염'에게까지 털어놓는 순박함(?)이 푸른 수염을 더 마음 아프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푸른 수염은 어리숙하고 순진한 아내에게 '정신' 차리라고 뺨을 몇 차례 때린 것이 소문이 퍼져 푸른 수염이 아내를 폭행하는 잔인함을 드러냈다고 잘못 알려지게 되는 시초가 되었단다. 한편, 순진한 아내는 남편인 푸른 수염이 오리 사냥을 나간 동안 인형의 치마를 깁고 있었는데, 마침 성을 지나가던 수도사가 앙큼한 마음을 품고서 예쁘고 순진한 부인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영주님의 양말을 숲속에서 깁고 있다면서 부인에게 전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단다. 그렇게 아내를 꾀어낸 수도사는 그녀를 당나귀에 태우고 떠났는데, 그 뒤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어찌어찌 여섯 번째 아내는 '아리스 드 퐁딸셍'이란 이름의 고아 처녀였단다. 그녀는 욕심 많은 후견인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긴 채 수도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마을 친구들이 중매를 서서 '푸른 수염'과 결혼을 한 것이다. 얼떨결에 한 중매결혼이긴 했지만, 여섯 번째 부인은 꽤나 미인이었다고 한다. 푸른 수염은 다섯 아내를 상처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새로 맞이한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려 했지만, 아리스는 남편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작은 방(공주들의 방)'으로 들어가 몇 날 며칠을 홀로 지냈단다. 그래서 푸른 수염은 여섯 번째 아내와도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자신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그렇게 푸른 수염은 여섯 아내를 모두 잃어버렸다.

이제 그 유명한 <푸른 수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도니 드 레스프와스'란 미망인이 아들들을 데리고 푸른 수염의 영지(레기예트 성)에서 십 리쯤 떨어진 '라 모트 지롱' 관에 이사 왔다. 그녀는 호화스런 생활을 했으며 근처의 귀족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기도 했단다. 이 미망인에겐 두 명의 딸도 있었는데, 첫째는 혼기를 넘긴 교활한 여자, 안느였고, 둘째는 결혼적령기로 겉으론 순진해보이지만 속으론 조숙한 여자, 쟌느였다. 두 아들은 용기병과 근위기병이었는데, 풍채 좋고 미남자였지만, 성격은 개차반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용기병은 모두 '불량배'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근위기병도 검은 옷을 입은 '흑근위기병'이었는데 역시나 평판이 나빴다. 이런 평판은 당시 '기록'에도 남을 정도였기에 어느 정도 사실임을 입증할 것이다. 암튼 이 미망인 부인은 '푸른 수염'에게 눈독을 들였고, 그가 돈이 많다는 사실도 금새 알아챌 수 있었다. 미망인으로 '돈줄'이 궁한 형편이었고, 주위의 사채업자들의 압류 협박도 심심찮게 받았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런 부류에게 '푸른 수염'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이제 여섯 아내를 잃어버린 푸른 수염은 맹수들에게 둘러 싸인 형편이 되었다. 과연 벗어날 수 있었을까? 일단 '결혼'부터 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활한 언니가 성공했을까? 조숙한 동생이 성공했을까? 아무래도 검소하고 순박한 '푸른 수염'에겐 교활한 여성보다 조숙하지만 내숭을 보이는 여성에게 홀렸을 가능성이 높다. 뭐, 싱싱하고 어린 여성에게 더 끌렸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둘 중 어떤 여성을 아내로 맞이했더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두 딸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과연 푸른 수염의 재산이 탕진할 정도로 많은지 적은지 말이다. 그래서 요란한 잔치를 벌였다. 그렇게 8일 동안이나 물쓰듯 펑펑 재산을 써버렸는데도 푸른 수염은 끄떡이 없었다. 잔치를 벌이는 동안 난삽한 놀이까지 벌이니 푸른 수염과 쟌느 사이에는 어느새 썸을 넘어선 연인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래 뜸을 들이고서 푸른 수염은 청혼을 하니 쟌느는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내숭을 선보이며, 미망인은 둘이 서로 좋아서 죽으니 결혼승낙은 어쩔 수 없다면서 허락해준다.

결혼식이 끝나자 푸른 수염은 신부측에게 엄청난 선물을 했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푸른 수염도 한 달간은 아주 행복했으리라. 하지만 교활한 아내는 남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남편의 성안에 '내연남'인 젊은 귀족까지 끌여들였다. 푸른 수염에게는 그를 '젖형제'라고 소개하면서 말이다. 다시 말해, 어릴 적부터 같이 지낸 형제같은 남자 친구라고 소개한 것이다. 암튼 한 달이 지나자 푸른 수염은 중요한 사업차 긴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이때 고용한 사람이 다름 아닌 '샤를 페로'라고 한다. 푸른 수염은 사촌인 우따르드의 유산을 받기 위해 멀리 행차해야만 했던 것이다. 떠나기에 앞서 푸른 수염은 아내에게 "친한 동무들을 초대해서 마음껏 놀이를 하시오" 그리고 아내에게 집안의 열쇠를 건내주면서 "이 열쇠꾸러미는 당신이 이 집안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것이오. 다만, 이 작은 열쇠로 열 수 있는 '작은 방(공주들의 방)'만은 열지 마시오. 그곳은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나에게 큰 슬픔을 안겨준 방이기도 하오. 그러니 제발 그 방에 들어가선 안 되오.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오"라고 샤를 페로는 이야기하고 있다.

덧붙여 샤를 페로는 남편의 말을 어기고 '작은 방'에 들어갔던 아내가 '그 방'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고, 그 증거로 작은 열쇠에 묻은 핏자국이 그 증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실은 일곱 번째 아내가 '작은 방'에서 내연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샤를 페로는 푸른 수염을 악랄한 살인광으로 몰아갔지만, 샤를 페로 이외의 다른 '전기 작가'들은 푸른 수염에게 대해서 상반된 성향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른 수염은 예정보다 일찍 일정을 끝마치고 돌아왔고, 마침맞게 아내의 간통 현장을 목격했으며, 이를 계기로 아내와 아내의 가족들은 푸른 수염을 '악랄하고 미친 살인자'로 만들어서 살해 해버렸다. 그리고 이에 관여한 샤를 페로는 자신의 목격담으로 <푸른 수염>을 저술하고서 '일곱 번째 아내'의 기적의 생환과 정황 증거를 제공한 셈이다. 앞서 여섯 명의 아내가 그처럼 행했을 때에도 아무런 '살해'를 하지 않은 푸른 수염이 유독 '일곱 번째 아내'에게만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정황은 누가 보더라도 믿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푸른 수염>에게 이처럼 모욕적인 오명을 뒤집어 씌울 수 있었던 까닭은 이 마지막 살해가 '목격자'가 있었다는데 유효했다. 더구나 그 목격자가 아주 유명한 저술가인 '샤를 페로'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푸른 수염은 죽고, 그의 유산을 이어받을 상속자가 없었으므로, 그의 재산은 모두 그의 아내 '쟌느'의 몫이 되었다. 일부는 언니 안느의 결혼 지참금으로, 일부는 두 오빠의 장교의 지위를 얻는데로, 나머지는 쟌느의 내연남이었던 '슈발리에 드 라 메르류스'와 결혼하는데 사용했고, 그는 부자가 되자 아주 성실한 신사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는 것으로 아나톨 프랑스의 책은 마무리 된다.

이상은 '푸른 수염'에 대한 오류와 편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푸른 수염 이야기'에 대한 변주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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