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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ㅣ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평점 :
[My Review MCMLXIV / 열린책들 19번째 리뷰]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가 2004년이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옛날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무려 1985년에 선보였다는 것이다. 무려 40년 전에 나왔던 작품이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 읽어도 굉장히 놀라운 경험을 한다. 소설이 이렇게나 재밌다는 것이 첫 경험이고, 한 번 손에 들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다음이다. 이토록 '흡인력'이 높은 책은 정말 많이 없다. 더구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살인자'다. 그에겐 아주 독특한 재능이 하나 있는데 '세상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이 특출난 능력을 이용해서 '향수 제조'에 능숙해지고, '최상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아니 그 정도라면 '사람축'에 낄 수라도 있겠으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악마, 그 자체'다. 무려 스물다섯 명의 어린 소녀만 골라서 죽였다. 이런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이 소설은 재밌다.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그래서 의아한 것이다. 이게 왜 재밌냐면서 말이다.
사실,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은 18세기 프랑스다. 파리를 시작으로 '향수의 도시'라 불리는 그라스까지 곳곳을 누빈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아름다운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만 해도 아주 지독하고 구역질 나는 역겨운 냄새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수도 시설도 없었고, 화장실도 변변치 않아서 집집마다 항아리에 똥오줌을 누고 나면 창밖으로 내던지기 일쑤였다. 이런 지경이니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거리는 똥오줌이 넘쳐나는 강으로 변신하고, 쥐와 벌레가 들끓는 도시로 유명했다. 이런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기본적으로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손발을 씻거나 목욕 문화가 발달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은 '그리스도교'의 영향 아래 있었고, 목욕은 '이교도의 문화'였다. 그래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목욕이란 걸 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더러운 도시'가 바로 프랑스 파리다. 이렇게 파리는 도시도, 사람도 온통 더러운 악취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인구밀도'는 유럽에서 으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더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발달한 것이 '향수'이고 말이다. 더러운 냄새가 나면 그 냄새를 향수로 덮어버리고, 그 향기가 날라갈 때마다 향수를 뿌리고 또 뿌리고 우웩~
이런 프랑스 파리에서도 가장 더러운 세느강 항구에 위치한 어물전에서 어느 생선가게의 아낙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다. 그루누이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살인죄를 저지른 여인에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아'가 된다. 엄마는 살인죄로 복역하다 사형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아기로 태어나지만, 그나마 주변 사람들이 궁휼히 여기는 바람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며, 자비심 많은 판사의 배려로 버려진 아기를 적은 돈을 받고 길러주는 '보모'의 손에서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사랑받으며 자라지는 못한다. 갓난아기인데도 보모에게조차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존재'라고 거부 당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바로 '냄새'가 나지 않는 아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사람이라면 저마다 독특한 '채취'를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이 아기는 갓 태어났는데도 그런 냄새를 가지지 못했다. 보통의 아기라면 당연히 나야만 할 그 냄새가 없는 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눈도 채 뜨지 못한 그루누이는 코만 벌름거리며 주위의 모든 냄새를 빨아들이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그 모습이 마치 '눈도 뜨지 못한 괴물'처럼 느껴져서 그루누이는 보모에게서조차 버림을 받고 만다.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이사람 저사람에게 '떠넘겨지듯' 돌림을 당하는 바람에 그루누이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고 만다. 그렇게 일을 할만한 나이가 되자 돈벌이에 나서게 되는데, 하필 일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인 '무두장이의 도제'가 된다. 무두장이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드는 일을 하는데, '양잿물'을 이용하는 등 아주 위험한 일이기에 종종 죽어나가는 도제가 있을 정도로 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루누이는 군말없이 해낸다. 성실해서가 아니다. 그는 태생부터 '악마'이기에 그 험한 일도 이겨낸 것이다. 스스로 그 악마적인 재능을 능히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참고 이겨낼 뿐이다. 실제로 그루누이는 '무두장이'만이 걸리는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기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도 기적같이 살아났다. 아주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천대를 받으면서 그루누이는 자신의 재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며 버티고 또 버틴다. 온세상의 냄새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 말이다.
그러다 때가 왔다. 그루누이의 코는 이제 냄새를 잘 맡는 것을 뛰어넘어 '냄새의 성분'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으로까지 발현된 것이다. 그러면서 '욕망'이 생겼다. '냄새를 붙잡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바로 '향수 제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두장이의 도제'에서 '향수제조자의 도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회를 포착한다. 세느강 다리 위에서 향수제조를 오랫동안 해오던 '지제프 발디니'라는 향수제조사를 만난 것이다. 그루누이는 그의 도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루누이는 발디니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향기를 가두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어려운 일은 더 많은 냄새를 가둘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발디니의 '침수법'만으로는 냄새를 가둘 수 있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냄새를 거두어들일 '또 다른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그라스'라는 향수 도시를 알아낸다. 그루누이는 미련없이 발디니 곁을 떠난다. 발디니를 파멸로 이끌면서 말이다. 사실 그루누이를 악마로 지칭한 까닭은 그의 주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사고사를 하기 때문이다. 엄마도 죽고, 보모도 죽고, 판사도 죽고, 그루누이를 어릴 적에 심하게 매질하던 이도 죽고, 무두장이도 죽고, 그리고 발디디도 죽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도 다 죽고 만다. 물론 그루누이가 '살인'을 저질러서 죽은 것은 아니다. 모두 '사고사'다. 그루누이가 직접 살해한 이들은 모두 '한창 꽃처럼 예쁜 소녀들'뿐이었다.
그렇게나 예쁜 소녀들을 죽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루누이가 유일하게 '사랑'을 느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스런 소녀에게서만 나는 향기'를 사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를 모아서 최상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살인을 한 것이다. 그저 '향기'만 뽑아내기(?) 위해서라면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맞다. 그래서 그루누이도 처음엔 죽이지 않고 '살아있는 소녀'에게서 그 아름다운 향기를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봤다. 그러나 실패였다. 왜냐면 '향기'를 아주 뜨거운 돼지기름에서 얻은 '유지'를 골고루 바른 아마포를 맨살 위에 붙여두고 반나절 이상 가만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더구나 뜨거운 천을 온몸에 감싸고서 반나절을 꼼짝하지 않고 버틸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그나마 많은 돈을 주고서 '모델'처럼 꼼짝말고 있으라고도 해봤지만 뜨거운 천을 두루고 가만히 참기는 했지만, 끔찍한 고통을 견디면서 오만상을 찡그리고 몸부림을 치게 되면 '아름다웠던 향기'조차 고통에 의해 역한 냄새로 변하고 말아버려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루누이는 '가장 아름다운 그 찰나의 순간'에 몽둥이로 뒤통수를 쳐서 단숨에 생명을 앗아버리는 방법을 고안한다. 그때 소녀들의 표정은 한없이 청순하고 꽃같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체를 아마포로 둘둘 감아서 '향기'를 뽑아낸다. 그렇게 만든 향수는 진정 '최상의 향수'인 것이다. 그렇게 무려 스물다섯 병이나 만든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마지막에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포집하는 과정에서 '살인 증거'를 남기고 그루누이는 살인혐의로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사형대에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벌어지는 '광란의 도가니'는 이 소설의 백미이자 압권이다. 그루누이가 만든 '최상의 향수'를 맡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취해서 그루누이 발 아래 엎드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성을 잃고 본능에만 충실한 몸짓으로 가장 환희에 빠질 수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만다. 이게 그루누이가 만든 '최상의 향수'가 지닌 힘이다. 만약 이 향수를 뿌리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들어가면 프랑스 황제도 그루누이의 발등에 키스를 하며 충성을 받칠 것이며, 교황성하에게 보내는 편지에 향수를 한 방울 떨어뜨려서 보내면, 바로 황홀한 기분에 빠져서 '편지의 내용'대로 모든 일을 다 수락하게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향수를 그루누이의 몸에 뿌리고서 다니면 모든 사람들은 그 향기에 취해서 그루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받치려 들 것이다. 그야말로 그루누이는 '냄새의 신'이 되어 온세상 위에 군림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최고의 순간에 그루누이는 두려움을 느낀다. 자기가 만든 '최상의 향수'가 지닌 그 놀라운 위력을 가질 수 있음에도 '그 향기'를 맡은 그루누이 자신은 그 향기에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몸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것처럼 그루누이는 '최상의 향수'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고귀한 신분에서부터 미천한 신분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 향기'에 취해서 황홀해하는 표정을 짓기 바쁜데, 왜 '냄새의 신'인 자신은 그 향기를 맡을 수조차 없다는 말인가? 왜 자신도 그 향기에 취해서 황홀한 느낌을 즐길 수 없단 말인가? 그루누이는 최고의 정점에서 '고독'을 느낀다.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지독한 고독감을 맛보며 씁쓸해 한다. 그렇게 그루누이는 '사형수'에서 무죄를 이끌어내고, 심지어 마지막으로 죽인 소녀의 아버지에게 '양아들'이 되어 달라는 간청을 받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누리고서는 홀연히 떠나버리고 만다. 그렇게 홀로 떠나고서 다시 되돌아온 파리 인근에서 한 무리의 거렁뱅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루누이는 그들 앞에서 '최상의 향수'를 자신의 몸에 뿌린다. 향기에 취해버린 그들은 미치광이처럼 그루누이에게 달려들었고, 그루누이의 몸을 물어뜯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루누이는 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만다.
과연 그루누이는 만족했을까? 태어날 때부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에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일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루누이는 그들이 느끼는 '포만감'을 함께 느끼며 행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