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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My Review MCMLXI / 열린책들 18번째 리뷰] 어릴 적에 읽었던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은 이상한 동화였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말이다. '호기심' 때문에 죽다니...'호기심'이 뭐가 나쁘냔 말이다. 그래서 난 그런 이야기가 별로 재미 없는 것인줄 알았는데, 웬걸 '푸른 수염'과 연관된 제목의 소설들이 정말 많았다. 그 가운데 몇 권을 소개할까 한다. 먼저 아멜리 노통의 <푸른 수염>이다. 글쓴이의 이름의 마지막 'b의 발음'은 묵음처리하려고 한다. 프랑스어는 잘 모르지만, 짐작컨대 원어 발음조차 'Nothomb(노텀)'으로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다. 이게 국립국어원의 외국어발음 규칙에 따랐기 때문인 것 같은데, '조나단'을 조너선으로 발음하는 것도 별로다. 외국어에도 '표준어'와 '사투리'가 분명 있어서 지역마다 발음이 다를텐데, 왜 굳이 '표준(?)발음'을 고집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똑같은 이름이어도 'Henry'를 영미권에선 '헨리'로, 프랑스어권에선 '앙리'로 발음하지 않느냔 말이다. 'Angel'은 또 어떤가? 엔젤이라고 부르는 것이 '표준'이라고 우기겠지만, 에인절, 앙겔, 앙헬, 앵게르...수도 없이 많다. 그러니 더욱 '표준'을 삼아야 옳다고 주장하겠지만, 수없이 많은 발음 가운데 굳이 '미국식'을 고집하는 까닭은 또 무어란 말인가? 더구나 이 책의 작가는 벨기에 사람이지 않은가? 잡설이 길었다. 암튼 '표기'는 따르겠으나 나는 '노통'이 편하단 말이다. 그뿐이다.
어쨌든 '푸른 수염'에 관한 두 가지 버전을 알고 계실 것이다. 하나는 여섯 아내를 끔찍하게 도살한 미치광이 살인자이고, 다른 하나는 여섯 아내를 잃어버리고 비통함에 빠져버린 불운한 귀족남이다. 전혀 상반된 이미지이지만 이걸 알고서 노통의 <푸른 수염>을 읽고 있으면 더욱 생생해진다. 과연 노통이 그린 '푸른 수염'의 이미지는 어느 쪽인지 궁금증이 폭발하면서 이 책의 재미는 더욱 증폭되니까 말이다. 결말을 상상하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통의 책이 늘 그렇다. 등장인물 간의 '설전'을 방불케 하는 대화가 일품인 소설이기도 하다. 그동안 노통의 소설은 꽤나 즐겼다. <살인자의 건강법>을 시작으로 <적의 화장법>, <오후 네시>, <공격>, <로베르 인명사전>, <머큐리> 등등 꽤나 많이 출간되어 있기에 즐겨 읽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열린책들'과 '문학세계사' 출판사에서 양분하여 출간을 했던 터라 살짝 일관성을 잃어버린 감도 없지 않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을 잠식시켜버릴 정도로 '노통의 책들'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매번 책들의 결말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소설의 첫 부분은 대단히 '의외성'으로 시작되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지만, 다 읽고 나면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날 정도로 흡사한 결말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푸른 수염>은 좀 달랐다. 왜냐면 나름 '원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원작'과 무엇이 같고, 어떤 점에 다른지 서로 비교하면서 읽어나가는 재미가 새로 추가되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돈 많은 에스파냐 귀족이 호화로운 저택에 은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저택 일부를 세를 내놓는 광고를 낸다. <욕실 딸린 40제곱미터 크기의 방. 주방 기구 완비된 넓은 주방 자유롭게 사용 가> 월세는 겨우 500 유로다. 파리의 시세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월세다. 욕실도 없고 25제곱미터 크기의 지저분한 방마저 '월세 1000 유로'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비싼 가격인데도 없어서 못 구할 판이다. 더구나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는 규칙도 까다롭다. '영혼의 반쪽'을 구한단다. 다시 말해 '젊은 여성'만 세입자 후보가 될 수 있고, 심지어 예뻐야 한다. 아니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나 파격적인 조건인데도 망설여지는 이유가 있다. 이미 이전에 세입자로 들어간 8명의 여성이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들은 기꺼이 입후보자가 되기 위해 줄을 선다. 이유가 뭐든 여성들은 '경쟁률'이 높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줄부터 서는 버릇(?)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은 '지독한 편견'일까? 하지만 사실인 걸. 암튼,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젊고 냉소적인 벨기에 여자 사튀르닌이 당첨(?) 되었다.
그런데 집주인인 귀족 양반의 매력이 장난 아니다. 돈만 많은 음탕한 늙은 남자일 것으로 여겼는데, 은근 매력이 철철 넘친다. 자신의 집밖에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귀족답게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세련되고, 걸친 옷은 하나같이 명품 뺨칠 정도로 값비싸고 우아하며, 먹고 마시는 것들은 한결같이 값비싼 것투성이다. 심지어 요리 솜씨도 기깔났고 미식가로도 손색이 없어서 음식 하나하나가 예술적인 맛을 지닌 상태였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세입자 여성'에게도 아낌없이 베풀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방을 빌리는 것으로도 황송할 따름인데, 식사까지 고급스럽게 마련해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딱 한가지 흠이 있다면 '귀족적인 대화'가 너무 고풍(?)스럽다. 입만 열면 '여성의 매력에 찬사'를 늘어놓는 것도 처음에만 귀가 호강을 하지, 계속 듣고 있다보면 역겨울 지경이다.
그런데도 세입자는 완강히 저항한다. 사튀르닌은 결코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다. 보통의 여자라면 '돈 많은 남자' 앞에서 당당하기 힘들다. 날마다 명품 선물을 하고, 고급 음식을 대접 받고, 입만 열면 "난 당신 때문에 사랑에 빠졌소"라는 능글능글한 말을 던지는 남자를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런 돈 많은 귀족남의 추파를 용케 버티고 침실로 들어가면 '푹신한 침대'가 안락한 잠에 빠져들게 만드니 날이 가면 갈수록 세입자 여성은 집주인에게 젖어들듯이 사랑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튀르닌은 용케 버틴다. 집주인과 사랑에 빠진(?) 이전 여성 세입자 8명이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사투르닌은 결코 '아홉 번째 당사자'가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한 방에 경계심을 높이던 사튀르닌도 허물어지고 만다. 바로 집주인이 선물한 '황금빛 드레스'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 드레스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드러운 '안감'으로 마무리를 해서 사튀르닌의 몸을 착 감싸주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나 아름답고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집주인이 직접 바느질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주 뛰어난 재봉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튀르닌은 그 옷을 입은 뒤에 집주인과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도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게 둘은 사랑의 감정을 아주 '독특한 대화'에 녹여가며 밀담을 나누었다. 독특한 대화라고 지칭한 까닭은 '제3자'가 둘의 대화를 들었다면 사랑의 대화가 아닌 '신랄한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아멜리 노통이기에 그 대화는 아주 즐겁게 만든다. 바로 '독자'를 말이다.
자, 여기서 원작동화와 비교를 해보면, 이 집주인인 '돈 많은 에스파냐 귀족'이 등장하고 '8명의 여성'이 행방불명 된 것만 빼고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소재로 등장하는 '작은 방'에 해당하는 '암실'을 제외하고 말이다. 새로 세입자가 된 사튀르닌도 저택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닐 수 있지만 딱 한군데 '집주인의 암실'만은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는다. 문이 잠겨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사튀르닌은 '짐작'을 한다. 뭐 '추리'라고 하는게 더 적절하겠지만, 그리 어려운 추론도 아니기에 '짐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그 집작을 노골적으로 묻기까지 한다. 그 '암실'에 행방불명된 8명의 여성이 죽은 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집주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방에 '시체' 따위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럼 여성들을 죽인 뒤에 어쨌냐고 물으니, 집주인은 자신은 결코 그 여성들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지만 사튀르닌도 안다. 집주인은 결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8명의 여성은 어디로, 어떻게, 왜 사라진 것일까?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튀르닌은 짓꿎은 질문도 던진다. 자신이 '아홉 번째 실종자'가 되길 바라느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집주인은 머뭇거리지만 '자신이 바라는 건' 그게 아니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집주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분명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동시에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사튀르닌이 이토록 사랑에 빠진 것이 그 증거니까 말이다. 이야기는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지만 '독자'들은 점점 재미에 빠져들고 만다. 과연 이 책의 제목이 <푸른 수염>인 까닭은 무엇이고, 이 책의 결말은 '푸른 수염' 이야기의 어느 버전으로 끝 맺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게 아니면 완전 색다른 결말을 내놓았을까? 노통의 습관(?)대로라면 색다른 결말 쪽이 분명하긴 할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