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10 - 세계의 화약고 서남아시아 분쟁 벌거벗은 세계사 10
최호정 그림, 이현희 글, 박현도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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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 / 아울북 31번째 리뷰] 우리가 흔히 '중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유럽'을 기준으로 잡고서 부르는 지역명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치우친 '유럽국가'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광활한 아시아국가들을 구분하는데, '중동 아시아', '극동 아시아'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할까? 물론, 서구 유럽국가들이 이런 명칭을 아무런 편견 없이 쓰고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사실 '문명화'에 앞장선 서양에 비해서 '비문명화'된 동양 국가를 낮잡아 부르는데에서 기원한 명칭이기에 '같은 아시아국가'끼리 그런 저열한 명칭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에서처럼 '서남아시아'라고 고쳐서 부르는 것이 좀더 객관화된 지역명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나은 명칭으로 고쳐부를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워낙 이들 지역이 '분쟁'이 심했던 곳이기에 '편견'도 없고, '분쟁'도 없는, '평화'로운 지역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아랍어 인사말에서 '살람(평화)'이라는 말을 따와서 '살람 아시아'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을 중심국가로 소개하고 있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는 610년 메카의 상인이었던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전파했는데,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뭉친 부족들이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하고 오랫동안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1932년 '사우드 가문'이 아랍 부족을 통일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탄생했고, 38년에 대규모 유정이 발견되면서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자리잡았다. 한편, 이라크는 고대 4대문명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난 곳에 자리잡았다.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는 8세기부터 14세기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를 이끈 중심지였고, 16세기부터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차 세계대전 후 1932년에 독립했다. 그러다 1979년에 대통령이 된 사담 후세인이 석유를 차지해서 '서남아시아 패권'을 잡으려고 이란과 쿠웨이트를 연달아 침공했지만, 끝내 실패했고 2003년에 사담 후세인이 사망하면서 정권이 무너졌고, 이후 미국의 간섭과 이슬람 교파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현재까지 이라크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문명의 중심지로 1935년에 '아리안의 나라'라는 뜻의 이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나라를 다스렸으나 1930년대 '서구식 근대화 정책'을 펼쳐서 자유로운 나라로 꽃을 피웠으나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며 혼란이 가중되다가 1979년 이슬람교 성직자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혁명'이 일어나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현재까지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어 왔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을 들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패전을 하자 승전국이었던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가 1932년쯤에 '신생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이들 지역이 '승전국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까닭은 바로 '석유'라는 자원이 많이 매장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32년쯤에 그 유정이 동이 난듯 싶자 영국은 선심을 쓰듯 '독립국'으로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빼앗길 자원을 다 빼긴 상태로 독립을 이루는 것은 허울 뿐이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영토가 사막지형인 탓에 가난을 면치 못하다가 '미국의 도움'으로 새로운 유정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무기(?)'로 삼아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빠르게 '부유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바로 'OPEC(석유수출국기구) 설립'으로 말이다. 석유 생산량을 조절해서 '산유국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석유 수입국'들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석유에너지'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위치에서 아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기구를 통해서 가장 많은 부를 차지한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유정을 연달아 찾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의 급성장은 '미국'에게도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도 세계는 '대영제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이가 벌어졌을 때 미국이 치고 들어와 '밀월관계'를 형성하면서 석유를 거래할 때 반드시 '미국 달러'만으로 거래를 한다는 조건을 성사시키자 전세계는 빠르게 '미국 달러화'를 구하려 애를 썼고, 이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석유는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었고, 그 에너지를 사려면 '미국 달러'가 필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로써 미국은 자국 화폐를 '기축통화화'시켜서 좋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불안전한 국방력을 미국의 도움으로 안정화시키는 서로에게 '윈윈'인 관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 설립'을 해서 석유생산량을 통제하려 하자, 미국은 'IEA(국제에너지기구) 설립'으로 대응하며 석유수입국끼리 도움을 주고 받거나 '대체에너지'를 만드는데 협력을 이끌며 '산유국의 농간'을 견제하는 주도하는 역할을 맞게 된다. 이래저래 미국은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며 세계 초강대국 국가로 한층 성장하게 된다.

한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바로 '이스라엘 건국'에 관한 유대인들의 발빠른 행보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머나먼 고대 유대국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아주 오래전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수천 년동안 수많은 유목민들이 떠돌며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정한 거처를 마련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특성상 이곳에서는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지 못했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자 서서히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이다. 그 문제의 발단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게 있다. 영국은 전쟁의 승리를 선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아랍 고위 관료에 접근해서 아랍이 영국을 도우면 '팔레스타인 건국'을 도와주겠다는 '후세인 맥마흔 서한'을 교환한다. 하지만 아랍의 도움으로도 전황이 바뀌지 않자 1917년에 이스라엘과 접촉해서 똑같은 제안을 한다. 이를 '벨푸어 선언'이라고 한다. 그리고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에 아랍쪽과 이스라엘쪽이 동시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자 영국은 난감해진다. 왜냐면 영국은 이미 프랑스와도 조약을 맺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는 땅을 나눠갖기로 비밀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를 '사이크스 피코 협정'이라고 하는데, 일단 영국은 이 협정대로 프랑스는 '시리아'를,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이라크)'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그러자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에 누가 거주할 수 있도록 했을까? 바로 '돈 많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은 거액을 돈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사들였고, 유대인의 땅이 생겼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전세계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땅'으로 몰려든 것이다.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하고자 했으나 영국이 '사기(!)'를 친 셈이고, 푼돈에 눈이 먼 땅주인들은 '유대인의 돈'이 탐이 나서 마구마구 팔아재꼈던 것이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국에 항의를 했고 영국은 잠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줬지만, 이번에는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반발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곧 분쟁지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곧이어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분쟁보다 더 혹독한 전쟁이 치뤄지면서 엄청난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연합(UN)에 넘겨졌고, 국제연합은 '분할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건국'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집트는 아랍 연합국들을 주도하며 이스라엘과 전쟁에 돌입했는데, 이것이 '1차, 2차, 3차, 4차 중동전쟁(1948~1973)'이다. 총 4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를 하며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까지 점령하자, 이집트는 서둘러 이스라엘과 협정에 들어가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 조약'을 맺고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는다. 이 조약은 아랍국가들의 반발을 샀고, 이집트 국민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스라엘사람들의 염원(시온주의)이 워낙 강했고, 유대인들의 돈도 훨씬 많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은 당시 강대국들의 승인을 빠르게 받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더욱더 확고해져만 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사람'들도 가만 있진 않았다. 반이스라엘 항쟁을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조직 되어 '제1차 인티파다'를 이끌었다. 팔레스타인사람들도 자신들의 '국가건설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의 희생이 커지자 미국은 '오슬로 협정'을 맺어 중재를 하기로 했고, 팔레스타인은 '자치 정부'를 수립하는 쾌거를 얻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슬로 협정'을 무효화 선언을 하고 팔레스타인은 '제2차 인티파다'를 선보이며, 더 강력한 시위를 하는 '하마스'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강경 투쟁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분리 장벽'을 건설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분리'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팔레스타인 고립'을 형성했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가자 전쟁'을 치루며 절대 양보없는 전쟁을 서슴지 않고 있고,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은 인종청소(대학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시 앞서 '석유에너지'를 둘러싼 이권다툼을 되돌아가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탐욕으로 인한 '이란 이라크 전쟁(1980~1988)'이 발발한다. 미국이 주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대한 유정을 발굴한데 이어 '서남아시아' 각 지역에서 연달아 '석유 유정'이 발견되었고, 이를 통해서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양을 '이란'이 차지하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고, 이를 탐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더 큰 화근이었다. 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자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란의 침체된 경제와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혼란이 막 수습되려던 순간이었다. 이런 빈틈을 절호의 기회로 여긴 후세인은 '석유 에너지'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이란을 침공했고, 두 나라는 전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 7일만에 후세인은 원하던 지역을 차지하자 '종전 선언'을 했다. 그러나 이란은 이를 거부했고, 지리한 전쟁이 이어져 무려 8년간이나 대치를 했다. 여기에 미국은 대놓고 이라크를 편들어서 이라크가 차지하는 '석유 에너지'를 빼앗겠다는 계산을 하게 되는데, 전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자, 결국 후세인은 '평화 협정'을 맺고 전쟁을 종결한다. 하지만 두 나라는 '산유국'이란 지위를 이용해서 엄청난 무기를 사들여 '소모전'을 펼쳐기에 전쟁이 끝날 때즈음에는 두 나라 모두 경제 파탄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라크의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을 한다. 원래 쿠웨이트가 자신들의 땅이었다면서 쿠웨이트의 '유정' 가운데 상당수를 이라크 소유라고 우긴 것이다. 이에 반발한 쿠웨이트는 다른 나라들에게 도와달라 호소를 했고, 역시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발빠르게 '세계 경찰'이라는 이유를 들며 '다국적군'을 모아서 '제1차 걸프전쟁'을 시작한다. 이로써 이라크는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 싸워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전쟁은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의 손쉬운 승리였고, 이라크는 이 전쟁을 계기로 망신창이가 된다. 하지만 미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서남아시아 지역'의 석유 에너지를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 '제2차 걸프전쟁'을 일으키는데, 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 제거'였지만, 이라크 국민만 '제거(!)'했을 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다. 결국 이 전쟁은 미국의 더러운 욕심만 재확인하는 불명예스런 전쟁이었음이 밝혀졌다. 1차 걸프전은 '9·11 사태'라는 비극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2차 걸프전은 애초에 명분조차 없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서남아시아의 비극'은 석유에너지가 가져온 행운과 불행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을 지켜보면서 국제관계가 냉험한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지어 진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엄청난 석유에너지 자원을 확보하여 전세계를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었으나, 강력한 힘을 얻으면 그 주위에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이 견제를 하며 '끊임없이 힘을 고갈시키는 전략'을 펼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진짜 강대국은 이런 전략에서 결코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고 결국 '힘의 균형'을 이루어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약소국은 결국 자신이 가진 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러 저리 강대국들의 욕망대로 휘둘리다가 '자신의 힘'마저 빼앗기고 설움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해서 그 힘을 '폭력적'으로 활용하려고 들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세력들이 힘을 규합해서 쳐들어오고 그 힘조차 빼앗아버릴 '명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을 과시하려 들지 말고 적절히 휘둘러서 상대가 감히 덤빌 수 없게 만들어야 진짜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강대국'을 뛰어 넘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싸움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지위권을 확보하고, 그 새로운 규칙을 지지받을 수 있게 여러 '강대국'들과 연대하는 유연성도 갖고 있어야 한다.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이런 '규칙'을 그나마 활용할 수 있었던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 두 나라만이 서구의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나라가 온전한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위는 '석유에너지' 자원의 풍요로움으로 누리는 지위이고, 이를 대체할 에너지가 나타나는 순간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서남아시아 분쟁의 역사'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우리는 현재 '문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적인 한류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K-팝'을 시작으로 'K-드라마영화', 'K-음식', 'K-관광', 'K-문화' 등등 점점 그 폭과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세계 경제 10위권, 국방력 6위권에 랭커 되어 있어서 대한민국은 어느새 '약소국'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트너십 국가대열에 낑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강대국들이 만들 '규칙'에 어쩔 수 없이 따르던 지위에서, 강대국들만의 유리한 '규칙'을 새로 만들 수 있고, 이를 지지하게 만드는 연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단 말이다. 이는 한국에서 '해주지 않으면' 전세계 여러 나라가 곤란하고 곤혹스런 상황에 쳐하게 되는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경지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똑같은 것이라도 '한국이 만든 것'이면 더 좋고 더 재밌다는 나름의 공식이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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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만화 세계사 - 웃다 보면 세계 역사가 머릿속에 쏙! 3분 만화 세계사
사이레이 지음, 김정자 옮김 / 정민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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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IX / 정민미디어 2번째 리뷰] 우리가 세계사를 읽는 목적은 '서양의 우수성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류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전세계 국가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며 잘잘못을 따져 배울 점을 선별하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사를 읽을 때에는 '자국의 역사'를 따로 구분해서 '독단의 역사'로 가둬 두고 '타국의 역사'를 별도로 배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속에 '우리의 발자취'는 어떠했으며, '우리의 흐름'이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서로 살펴보는 방식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세계사를 읽는데에는 '흐름'을 잘 파악하는데 역점을 둔 역사책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런 방식의 읽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계사'는 읽기가 힘들다. 우선, 그 내용의 방대함이 주눅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만화' 형식을 빌어서 세계사로 들어가는 관문의 수위를 한껏 낮춘 세계사책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책 <3분 만화 세계사>도 그런 유형의 책으로 보면 딱이다.

그런데 이 책을 펴낸이가 '중국사람'이라는 것이 아쉽다. 세계사를 읽을 때 조심해야 하는 것 가운데 으뜸이 바로 '저자의 국적'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아무리 '객관성'을 띠려고 해도 '주관적인 해석'이 가미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렇기에 중국사람이 펴낸 세계사책은 다분히 '중국 중심의 해석'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걸러내고 읽을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면, '다른 나라의 국뽕 드립(자국중심사관)'까지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대로 흡수해서 '잘못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은 '만화' 형식을 빌어왔기 때문에 무척이나 쉽게 흡수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그런 '주관적인 해석'으로 인한 오해를 불러 일으킨 만한 '국뽕 드립'은 중세의 유럽인들이 목욕을 하기 싫어한 까닭이 '중세 유럽 의사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고, 그런 잘못된 관행 때문에 유럽의 페스트(흑사병)가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물론 저자는 중국인들도 목욕을 게을리하는 문화 때문에 '때놈'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고, 현재에는 목욕문화가 정착되어서 청결해졌는데, 서구 유럽인들도 그런 더러운 시절이 있었으니, 중국인만 부끄러워할 문제는 아니라는 '국뽕 드립'이 저변에 깔려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그저 우스개소리처럼 재밌는 소재로 삼아 '어린이 독자'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면 어쩌겠는가? 가뜩이나 중국사람들이 '자국의 문화'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넘어 '모든 인류의 문명'을 중국사람이 만들었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펴는 짤이 돌아다닐 지경인데, 이런 식의 '주관적 해석'을 우스개꺼리로 삼는 것 자체가 우려스럽다.

더 큰 문제는 이 책이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책'으로도 분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하더라도 '세계사'책은 반드시 어른이 먼저 읽고 자녀에게 '좋은책'을 골라주는 번거로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된 역사관'을 갖게 될 위험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만화' 형식의 책은 반드시 '학부모의 검열(!)' 과정을 거친 책만 골라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훌륭한 부모라면 꼭 '세계사'책 만이라도 '독서지도'를 해주시길 바란다. 아울어 이 책은 아이들이 심심풀이라도 그냥 읽게 하면 '편향된 세계사 가치관'을 형성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그러니 정 읽히고 싶다면 '부모님과 함께 읽기'를 권장한다.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과정된 드립'이다. 예를 들어,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독려하면서 수많은 백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은 맞지만, 그렇게 백성들을 죽인 까닭이 '오로지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함께 예를 들어주는 것이다. '만리장성 건축'이라는 혹독한 정책이 불러온 진시황의 폭정이 백성들에게 굉장히 많은 악영향을 끼쳤는데, 그 가운데 '한 부분'으로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기던 옛날 동양사람들(중국사람들만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긴 것도 아니라는 점)이 머리를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을 자를 순 없다며 저항을 했었다는 '일부 기록'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주어야 한단 말이다. 그런 지도가 없으면 어린 독자들은 '진시황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악취미 때문에 폭군이라 불렸다'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배울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는 '일부'만 부각시키는 바람에 '전체'를 잘못 이해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셈이다. 역사를 이런 식으로 공부하게 되면 큰일난다. 물론, '관심 폭발'이라는 점에서 아주 작은 긍정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지만, 이는 '역사 왜곡'을 통해서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며 역사 교육에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우려는 비단 이 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 '만화' 형식의 세계사책들이 똑같이 갖고 있는 걱정거리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먼나라 이웃나라>도 마찬가지 우려를 품고 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읽었던 '유럽의 역사'가 실제 유럽독자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거부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식의 국뽕 드립'에 취해서 즐겁게 읽은 역사책이 사실은 '다른 나라의 역사'를 왜곡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굉장한 '실례'를 범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을 매도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힌다. 우리는 '반면교사'라는 아주 고차원적인 학습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잘못된 부분'을 찾아서 '바르게 인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훌륭한 학습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직접적인 경험을 늘려나가는 것이 아주 훌륭한 '체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듯, '간접 체험'에 해당하는 독서를 통해서도 똑같은 경험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 그걸 완수해낼 때 비로소 '독서지도의 참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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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1 : 국내편 (무선 보급판) 퇴마록 (반타)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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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VIII / 반타 2번째 리뷰] 벌써 여러 차례 '퇴마록 리뷰'를 작성했지만, '애니메이션'까지 출시되었기 때문에 여러 모로 흥분된 상태라서 현재 이책 저책을 뒤적거리고 있다. 이 '신간'은 아직 출시 전(4월2일 출간예정)이긴 하지만, 현재 '밀리'에서 미리 읽을 수 있어서 읽어 보았다. 내용은 그닥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들녘'에서 '엘릭시르'로 출판사를 옮길 때 '개정판'을 내놓은 상태였고, 이번에 <뉴 퇴마록(퇴마록 후속편)>을 기획중이라서 출판사를 '반타'로 옮기게 되었다고 까닭을 밝혔다. 그럼에도 소소한 변화는 있다. 바로 '주석'에 관한 부분인데, 기존에 출간되었던 내용에서 좀더 간결하면서 명확한 방향으로 주석을 달았다는 점에서 '보완'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크게 바뀐 내용은 없으니 '기존의 독자들'이라면 '구판과 신판'의 차이점을 찾는 재미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주목해야 할 점은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 사이에 벌어질 간극이다. 마블코믹스의 '원작 만화'가 마블시네마틱에서 '어벤져스'로 연출되면서 상당 부분 '원작의 내용'과 달라진 모습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 만화를 즐기던 독자분들도 '기존의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영화에서 사뭇 달라진 캐릭터와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어 갈 수 있었다. <퇴마록>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애초에 '세기말 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퇴마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까닭은 '새천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대적 분위기도 한몫 단단히 했더랬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30여년이 지났기에 그런 '버프'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원작에서는 '핸드폰'도 변변히 없어서 승희의 텔레파시와 '세크메트의 눈(세계편에서 등장)'에 의존했지만, 현재는 '스마트폰'이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에서는 박신부도 '스마트폰'을 들고 나올 정도였다. 원작의 팬이었던 분들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DC코믹스'의 대표적 주인공 슈퍼맨도 1960년 당시의 원작만화에서는 '미국내 잠입한 소련 공산당'을 색출하는 내용도 있었으니, 어느 정도 '시대적 정황'을 반영해서 달라지는 모습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이제 막 '영화'로 나왔다. 돌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워낙 넓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어서인지 '관심도'는 꽤나 높은 편이다. 그리고 '퇴마록 세대'가 아닌 MZ세대에게는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원작으로 다가설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원작 소설'의 내용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도 꽤나 세세하게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영화'와 'TV방영'으로 나뉘어서 나올 가능성도 점쳐 본다. 그렇다면 '퇴마록 영화'는 4명의 퇴마사와 다른 능력자들이 '어셈블(집결)'한 내용으로 나올 것이고, 'TV방영'분은 퇴마사들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을 다룰 가능성이 꽤 높게 예상된다.

국내편 1권에서 '영화용 에피소드'는 <하늘이 불타던 날>, <측백산장>, <유혹의 검은 장미>,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생명의 나무>다. 그리고 'TV방영용 에피소드'는 <어머니의 자장가(이현암)>, <파문당한 신부(박신부)>,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박신부)>, <저주받은 소녀(장준후)>, <태극기공(이현암)>, <귀검 월향(이현암)>일 것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1편>에서 <파문당한 신부>, <태극기공>의 일부 내용을 함께 내보냈다. 박신부가 아우라 능력을 얻고서 파문 당한 까닭과 이현암이 무리하게 수련하던 도중에 '주화입마'에 빠져 죽게 된 상황에서 들끓는 기혈을 막아주고 70년 내공을 전수해준 장면과 그렇게 목숨을 걸고 무리한 수련을 하는 까닭이 '물귀신'에게 화를 당한 여동생 현아의 죽음 때문이라는 까닭도 함께 담아서 상영해버렸다. 심지어 '세계편'에서 블랙서클의 최종보스 마스터가 불러낸 악마 '아스타로트'와 '혼세편'에서 밝혀지는 승희의 몸속에 봉인된 '애염명왕'의 능력까지 <애니메이션 1편>에서 차용해 써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향후 '퇴마록씨네마틱유니버스(퇴씨유)'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사뭇 기대가 되는 점이다.

만약 <애니메이션 2편>도 '국내편'의 내용으로 보폭을 좁히게 된다면, 인도의 <베다>에 나오는 거대한 뱀 브리트라가 등장하는 <생명의 나무>가 주축이 된 스토리를 보여줄 것이다. 여기서 '남방신인'으로 예언된 현승희가 퇴마사에 합류하는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와 '북방도인' 이현암이 보여줄 '어검술(검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술수)'의 정수인 <귀검 월향>의 내용도 초반부에 다룰 것이다.

사실 <퇴마록>만큼 방대한 내용을 다룬 판타지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해리포터>는 초딩용으로 보이고, <반지의 제왕>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인데, 스케일면에서는 <퇴마록>이 훨씬 더 크다. '말세편'에 이르면 퇴마사들의 활약은 전세계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어찌 그리 큰 스케일을 연출했었던 것인지 지금 되돌이켜 생각해봐도 참 놀라운 연출력이다. 이제 '마블영화'도 시들해졌는데 '퇴마록 애니'가 매년 연례행사처럼 개봉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조만간 '국내편 2권'으로 못다한 이야기와 더 풍성한 이야기꺼리로 찾아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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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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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VII / 민음사 21번째 리뷰]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4대 비극은 이놈저놈 다 죽어서 난장판을 만들어놨기에 감동을 해야 할지, 애통해 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 없고, 그의 5대 희극은 웃으라고 만든 작품일텐데 당췌 어느 부분에서 웃음보를 터뜨려야 할지 어리둥절하게 만들어서 엉뚱했다. 그런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찌 됐든간에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그저 좋았다. 어릴 적부터 말이다.

그런데 50대에 다시 읽어보니 어릴 적의 감동과는 사뭇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의 4대 비극 못지 않게 이놈저놈 다 죽어나자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려 여섯 명이나 죽었다. 맨 먼저 '머큐쇼'가 죽은 것은 너무 유명할 것이다. 극에서는 대사 몇 마디 나눈 뒤에 로미오의 겨드랑이 사이를 뚫고 들어간 티볼트의 검이 머큐쇼의 급소를 찔러 대사 몇 마디 남기지 못하고 급사하고 말지만, <영화>에서는 머큐쇼가 검에 찔려 죽어가는 와중에도 '명대사'를 남기며 좌중을 웃기고 끝내는 울려버리는 '명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티볼트'의 죽음은 너무 싱겁기 그지 없다.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쇼의 죽음에 대한 '정당방위'이자 길거리에서 싸우지 말라는 군주의 명을 어긴 티볼트에게 내리는 '대리 심판'의 성격에 '로미오의 분노'까지 더해버리고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무한 죽음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4대 비극'에 낑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허무한 죽음은 그 뒤에 죽는 '파리스'도 마찬가지다. 가짜 죽음으로 '케풀릿 가문의 묘지'속에 들어간 줄리엣을 두고서 두 연인이 결투를 벌이다 일어난 사단인데, 굳이 '파리스'까지 죽음으로 엮은 까닭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파리스'도 '머큐쇼'와 같이 베로나 군주의 친척이기에 '죽음의 무게'만 따진다면 결코 가벼운 죽음은 아닐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인 주인공의 죽음이다. 가짜 죽음에 빠진 줄리엣을 보고서 준비한 독약은 머뭇거리지 않고 탈탈 털어넣은 '로미오'가 줄리엣의 품에 안고 죽는다. 마침맞게 깨어난 줄리엣은 자신이 살아있을 유일한 빛과 같은 존재인 로미오가 싸늘하게 죽은 것을 확인하고 뒤따라서 죽으려고 자신의 몸을 '칼집' 삼아 칼을 가슴에 꽂고 자결한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케풀릿과 몬터규는 자식의 죽음 앞에 당혹해하고 슬퍼하면서 '몬터규 부인' 또한 '로미오의 추방 소식'에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다고 전하는 비극적 연출을 한다. 이렇게 여섯 명이나 죽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여러 죽음을 목격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의 죽음만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이의 죽음은 여타의 '비극 작품'속에서 보여주는 애통함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만큼 '죽을 이유'가 타당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조차 그다지 애뜻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나 '옛날 말투'스러운 뒤침(번역)이 몰입감을 앗아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원문 그대로 뒤쳐냄(완역)'이기보다는 '문맥에 따라 뒤쳐냄(의역)'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다. 원문을 살리더라도 '익숙한 어투'로 자연스럽게 뒤쳐냈으면 좋았을텐데, 낯설고 어색한 두 연인의 대화를 읽고 있으면, 얘네들이 '사랑'하기는 했는지조차 의심할 정도다. 이는 로미오, 줄리엣의 두 연인의 대화만 어색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대화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초중고 어린이독자'들에게 그닥 권하고 싶지 않았다. 자칫 '고전에 대한 거부감'만 심어주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건 그렇고. 두 남녀의 사랑이 이토록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충분히 즐겼으면 한다. 원수 가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던 두 남녀가 처음 본 사이임에도 사르르 녹아버리고 말았다. 철천지 원수일지라도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서로 애정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냔 말이다. 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서로를 원망하고 죽기를 바라는 원수지간일지라도 '사랑'에 빠지면 그런 살벌한 감정조차 한순간에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을 '젊은 남녀 두 사람'이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냔 말이다. 만약 몬터규와 케풀릿 가문 사이에 '사돈지간'이 맺어져서 더 치고받고 싸우다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알콩달콩 살아가며 예쁜 손주가 탄생하면서 눈 녹듯 화해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면 더 아름답고 재미난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었을텐데라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것일까? 젊은 두 남녀가 서로의 아름다움에 '한 눈에 빠져버리는 사랑'을 이룬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첫 눈에 호감을 가졌더라도 더 많은 만남, 더 많은 대화, 더 많은 사건사고를 겪고 난 다음에 '결혼약속'을 했더라면 아주 바람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줄리엣의 아버지가 베로나 군주의 친척인 '파리스'와 정략결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몬터규 가문과 사건사고를 많이 치는 바람에 케풀릿은 자신의 출세에 지장을 겪고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한 방법으로 군주의 친척인 '파리스'와의 결혼을 서둘러 성사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촌인 티볼트가 죽어서 '하루'를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주에 줄리엣의 결혼을 확정지으려고 했다. 그만큼 케풀릿은 쪼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줄리엣을 더욱더 '사랑의 열병'에 빠져들도록 만든 패착이었다. 좀더 '비밀연애'를 즐기며 사랑을 맛보고,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면서 '이성의 끈'을 챙길 수 있는 여유만 있었더라도 줄리엣은 '가짜 죽음'으로 파리스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로미오와의 약속을 지키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운명의 장난'도 있었다. 줄리엣의 가짜 죽음을 계획한 것은 '로런스 신부'였다. 그는 가짜 죽음에 빠지는 약으로 두 사람의 비밀 결혼을 지키려 했고, 더 나아가 원수지간이던 두 가문이 '젊은 남녀의 사랑'을 계기로 화해하기를 기획했던 것이다. 일단 가짜 죽음으로 줄리엣을 무덤속에서 깨어나게 만들고, 이 사실을 로미오에게 미리 알려서 무덤속에서 어린 신부를 구출해내고 추방된 '만토바'에서 신방을 차리고 머물다가 시일이 지나 두 가문의 앞에 '두 사람의 결실'을 선보이면 해묵은 원한관계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역병'이 드는 바람에 로미오에게로 가던 '연락'이 제때 도착하지 못했고, 줄리엣의 죽음 소식만 전달되는 바람에 로미오는 너무 서둘러서 죽고 만다. 그리고 뒤늦게 깨어난 어린 신부는 새신랑의 주검 앞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뒤따라 죽고 만다. 이 어찌 비극적인 운명이란 말인가. 그 짖꿎은 운명은 줄리엣이 묻힌 무덤 앞에서 로미오와 파리스가 벌인 결투조차 오래 끌지 못하고 '순식간에' 끝맺어 버리는 장난질을 쳤다. 아무리 생사를 건 결투였을지라도 몇 번의 챙챙챙으로 시간을 벌었다면, 그 사이에 줄리엣이 '가짜 죽음'에서 깨어날 시간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꽃 같은 짧은 사랑'은 우리들 곁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가히 '불멸의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비록 '비극적 결말'로 끝맺기는 하지만 우리네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의 대명사로 길이길이 남았다. 너무 짧은 사랑이어서 '젊은이들의 철없는 불장난'이라는 비난도 함께 받는 작품이긴 하지만, 시작이 '불장난'이면 또 어떠랴?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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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텍스트T 7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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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VI / 위즈덤하우스 39번째 리뷰] 자신이 가진 재능을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남을 위해서' 써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선진국 중에서도 '남을 돕는데 매우 인색한 국가'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하위권도 아닌 밑에서 두 번째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불명예에 그리 수긍하는 편이 아니다. 왜냐면 우리 스스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명예로움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외국인 손님이 오면 매우 친절하게 대해서 전세계 여행객들에게 칭찬을 무지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조사결과를 불신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사실이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기는 '인색'하면서 베품을 받는 것에는 '익숙'하다 못해 당연한 것인데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화를 내곤 한다. 심지어 사소한 친절에 '감사 인사'를 할 줄도 모르고 친절한 분들에게 '갑질'을 하고, '꼴값'을 떨면서 제 스스로 품위 없음을 증빙이라도 하듯 남발하기 일쑤다.

아닌 것 같다고? 그럼 당신은 '심폐소생술'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는가? 안 배운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남자라면 '군대'에서나 '예비군/민방위 훈련'시에도 늘상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웬만한 직장에서는 2년에 한 번쯤 '심폐소생술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기에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 그러면 묻겠다. 지금 당신 앞에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환자의 생명을 구할 것인가? 이렇게 물으면 십중팔구 '하지 않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위의 조사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가족이나 지인이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당연히 해야 하고, 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붙잡고서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 것이다. 그런데도 '심폐소생술'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겠다는 한국인은 별로 없었단다. 부끄러운 일이다.

왜 그랬을까? 십중팔구는 '잘 할 줄 몰라서'라고 대답했단다. 몇몇 분은 '괜히 도와줬다가 잘못되었을 경우 덤터기 쓸까봐'라고 대답했고, 나머지는 '귀찮아서'라는 답변도 나왔단다.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의무사항'은 아니기에 그럴 수 있다. 사람 생명 구하는 일보다 '바쁜 일'이 정말 대한민국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괜시리 남을 돕다가 병원에 들락거리고, 경찰서에 불려다니고,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굳이 귀한 시간을 내서 '남의 생명을 구한다'는 위중한 일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아주 현명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당신도 심폐소생술을 받지 못해서 위급한 상황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119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단 5분동안'의 응급조치만 도와주어도 충분히 살아날 수 있는 생명인데도 말이다.

소설 <비스킷>은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소리'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남들이 들을 수도 없는 아주 작은 소리도 이 소년의 귀에서는 천둥이 치는 것처럼 크게 들리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볼펜 딸깍거리는 소리를 낸 학생의 '볼펜'을 몰래 빌려다가(?) 부셔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소심한 복수를 저지른 것이다. 먼저 그 녀석이 나의 '예민한 청각'을 괴롭혔기에 그에 상응하는 벌을 준 것 뿐이다. 다시 말해 '정당방위'란 말이다. 그런데 일이 꼬여서 그 싸가지가 나를 보더니 "내 볼펜 훔쳐간 게, 너라면서? 죽고 싶냐!"라고 말하며 싸움을 걸기에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이 그리 흘러흘러 '보다 큰 사건'으로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게 '주거침입죄'와 '공무원사칭죄'에 해당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말하는 중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곳이 '정신병원'이라는 점도 충분히 이상할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점,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는 점을 믿어주면 좋겠다. 굳이 또 믿지 못할 일도 아니라는 점만 인지하고 <비스킷>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아참, 그리고 하나 더 알고 있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비스킷'에 대해서다.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에게서 소외된 사람', 이런 사람들을 '비스킷'이라고 부른단다. 왜냐면 분명 사람이지만 비스킷처럼 쉽게 부서지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스킷'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비스킷'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단다. 그들은 그렇게 '소외'되다가 끝내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존재감'이 사라져버려서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속에서 서서히 생명마저 희미해져서 그대로 사라지고 만다. 이런 비스킷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소년은 그들이 내는 아주 작은 '소리'를 감지해 낼 수 있다. 미약한 숨소리, 힘없는 발소리, 가볍게 스치는 옷감의 소리를 듣고 그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소리의 '주인공'을 인식하는 순간, 비스킷은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게 된다. '소외감'이 사라지면서 '존재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려 하고, 그걸 의식하는 순간, 비스킷들의 미약한 존재감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소외시키지 않고, 알아주려고 의식해주기만 해도, '소외'는 사라지고 '존재'는 드러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 이 책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고 있으나 '소외' 당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다.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크고 작은 소동이 아니라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소외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졌다. 왕따로 인한 학폭이 심심찮게 뉴스를 장식하고 있고, 부모 자격도 없는 이들이 저지르는 '아동학대'로 인한 사건도 자주 일어나고, 먹고 살기 바쁜 현실속에서 '무한경쟁'만 강조하고, 이런 경쟁에서 뒤쳐지는 이들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해, 그대로 '소외자'가 되고 마는 비정하고 무정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딴에는 이해가 된다. 바쁘게 살아도 '나 하나'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누가 누굴 돕고 사는 일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릴 적 유치원때부터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돕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누가 누구를 평생을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잖은가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진짜 '돕고 싶은 마음'은 있기는 한 걸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서 말이다. 그저 남을 돕는 일이 좋아서 자신이 가진 '재능 한 스푼'을 나눠줬을 뿐인데, 그 도움을 받고 너무나 고마워하는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일이 정말 보람차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 웃음을 당신은 몇 번이나 보았나?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남을 도울 정도는 아니라고? 아무도 당신에게 '아이언맨'이 되어 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저 낯선 길에서 길을 물었을 뿐이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분들에게 당신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뭐, 굳이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니, 먼저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움 요청'을 하듯 당신에게 길을 묻고, 무거운 물건을 저쪽까지만 옮겨 달라고 한다면 어쩌겠는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이 책 <비스킷>의 소년 주인공이 그랬다. 예민한 청각 때문에 '거의 사라져가는 소외자'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비스킷'들의 존재를 드러나게끔 '관심'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였기에, 소년은 '비스킷'을 돕기 위해 범죄(?)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을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이제 누가 누구를 어떤 이유에서도 '소외'시키지 말자. 아니 '소외' 당하지 않도록 조금만 세심히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 주자. 그 조그만 관심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밝아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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