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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10 - 세계의 화약고 서남아시아 분쟁 ㅣ 벌거벗은 세계사 10
최호정 그림, 이현희 글, 박현도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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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 / 아울북 31번째 리뷰] 우리가 흔히 '중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유럽'을 기준으로 잡고서 부르는 지역명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치우친 '유럽국가'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광활한 아시아국가들을 구분하는데, '중동 아시아', '극동 아시아'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할까? 물론, 서구 유럽국가들이 이런 명칭을 아무런 편견 없이 쓰고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사실 '문명화'에 앞장선 서양에 비해서 '비문명화'된 동양 국가를 낮잡아 부르는데에서 기원한 명칭이기에 '같은 아시아국가'끼리 그런 저열한 명칭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에서처럼 '서남아시아'라고 고쳐서 부르는 것이 좀더 객관화된 지역명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나은 명칭으로 고쳐부를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워낙 이들 지역이 '분쟁'이 심했던 곳이기에 '편견'도 없고, '분쟁'도 없는, '평화'로운 지역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아랍어 인사말에서 '살람(평화)'이라는 말을 따와서 '살람 아시아'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을 중심국가로 소개하고 있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는 610년 메카의 상인이었던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전파했는데,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뭉친 부족들이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하고 오랫동안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1932년 '사우드 가문'이 아랍 부족을 통일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탄생했고, 38년에 대규모 유정이 발견되면서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자리잡았다. 한편, 이라크는 고대 4대문명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난 곳에 자리잡았다.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는 8세기부터 14세기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를 이끈 중심지였고, 16세기부터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차 세계대전 후 1932년에 독립했다. 그러다 1979년에 대통령이 된 사담 후세인이 석유를 차지해서 '서남아시아 패권'을 잡으려고 이란과 쿠웨이트를 연달아 침공했지만, 끝내 실패했고 2003년에 사담 후세인이 사망하면서 정권이 무너졌고, 이후 미국의 간섭과 이슬람 교파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현재까지 이라크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문명의 중심지로 1935년에 '아리안의 나라'라는 뜻의 이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나라를 다스렸으나 1930년대 '서구식 근대화 정책'을 펼쳐서 자유로운 나라로 꽃을 피웠으나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며 혼란이 가중되다가 1979년 이슬람교 성직자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혁명'이 일어나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현재까지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어 왔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을 들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패전을 하자 승전국이었던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가 1932년쯤에 '신생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이들 지역이 '승전국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까닭은 바로 '석유'라는 자원이 많이 매장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32년쯤에 그 유정이 동이 난듯 싶자 영국은 선심을 쓰듯 '독립국'으로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빼앗길 자원을 다 빼긴 상태로 독립을 이루는 것은 허울 뿐이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영토가 사막지형인 탓에 가난을 면치 못하다가 '미국의 도움'으로 새로운 유정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무기(?)'로 삼아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빠르게 '부유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바로 'OPEC(석유수출국기구) 설립'으로 말이다. 석유 생산량을 조절해서 '산유국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석유 수입국'들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석유에너지'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위치에서 아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기구를 통해서 가장 많은 부를 차지한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유정을 연달아 찾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의 급성장은 '미국'에게도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도 세계는 '대영제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이가 벌어졌을 때 미국이 치고 들어와 '밀월관계'를 형성하면서 석유를 거래할 때 반드시 '미국 달러'만으로 거래를 한다는 조건을 성사시키자 전세계는 빠르게 '미국 달러화'를 구하려 애를 썼고, 이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석유는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었고, 그 에너지를 사려면 '미국 달러'가 필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로써 미국은 자국 화폐를 '기축통화화'시켜서 좋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불안전한 국방력을 미국의 도움으로 안정화시키는 서로에게 '윈윈'인 관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 설립'을 해서 석유생산량을 통제하려 하자, 미국은 'IEA(국제에너지기구) 설립'으로 대응하며 석유수입국끼리 도움을 주고 받거나 '대체에너지'를 만드는데 협력을 이끌며 '산유국의 농간'을 견제하는 주도하는 역할을 맞게 된다. 이래저래 미국은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며 세계 초강대국 국가로 한층 성장하게 된다.
한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바로 '이스라엘 건국'에 관한 유대인들의 발빠른 행보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머나먼 고대 유대국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아주 오래전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수천 년동안 수많은 유목민들이 떠돌며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정한 거처를 마련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특성상 이곳에서는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지 못했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자 서서히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이다. 그 문제의 발단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게 있다. 영국은 전쟁의 승리를 선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아랍 고위 관료에 접근해서 아랍이 영국을 도우면 '팔레스타인 건국'을 도와주겠다는 '후세인 맥마흔 서한'을 교환한다. 하지만 아랍의 도움으로도 전황이 바뀌지 않자 1917년에 이스라엘과 접촉해서 똑같은 제안을 한다. 이를 '벨푸어 선언'이라고 한다. 그리고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에 아랍쪽과 이스라엘쪽이 동시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자 영국은 난감해진다. 왜냐면 영국은 이미 프랑스와도 조약을 맺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는 땅을 나눠갖기로 비밀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를 '사이크스 피코 협정'이라고 하는데, 일단 영국은 이 협정대로 프랑스는 '시리아'를,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이라크)'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그러자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에 누가 거주할 수 있도록 했을까? 바로 '돈 많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은 거액을 돈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사들였고, 유대인의 땅이 생겼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전세계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땅'으로 몰려든 것이다.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하고자 했으나 영국이 '사기(!)'를 친 셈이고, 푼돈에 눈이 먼 땅주인들은 '유대인의 돈'이 탐이 나서 마구마구 팔아재꼈던 것이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국에 항의를 했고 영국은 잠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줬지만, 이번에는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반발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곧 분쟁지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곧이어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분쟁보다 더 혹독한 전쟁이 치뤄지면서 엄청난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연합(UN)에 넘겨졌고, 국제연합은 '분할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건국'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집트는 아랍 연합국들을 주도하며 이스라엘과 전쟁에 돌입했는데, 이것이 '1차, 2차, 3차, 4차 중동전쟁(1948~1973)'이다. 총 4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를 하며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까지 점령하자, 이집트는 서둘러 이스라엘과 협정에 들어가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 조약'을 맺고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는다. 이 조약은 아랍국가들의 반발을 샀고, 이집트 국민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스라엘사람들의 염원(시온주의)이 워낙 강했고, 유대인들의 돈도 훨씬 많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은 당시 강대국들의 승인을 빠르게 받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더욱더 확고해져만 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사람'들도 가만 있진 않았다. 반이스라엘 항쟁을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조직 되어 '제1차 인티파다'를 이끌었다. 팔레스타인사람들도 자신들의 '국가건설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의 희생이 커지자 미국은 '오슬로 협정'을 맺어 중재를 하기로 했고, 팔레스타인은 '자치 정부'를 수립하는 쾌거를 얻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슬로 협정'을 무효화 선언을 하고 팔레스타인은 '제2차 인티파다'를 선보이며, 더 강력한 시위를 하는 '하마스'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강경 투쟁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분리 장벽'을 건설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분리'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팔레스타인 고립'을 형성했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가자 전쟁'을 치루며 절대 양보없는 전쟁을 서슴지 않고 있고,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은 인종청소(대학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시 앞서 '석유에너지'를 둘러싼 이권다툼을 되돌아가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탐욕으로 인한 '이란 이라크 전쟁(1980~1988)'이 발발한다. 미국이 주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대한 유정을 발굴한데 이어 '서남아시아' 각 지역에서 연달아 '석유 유정'이 발견되었고, 이를 통해서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양을 '이란'이 차지하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고, 이를 탐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더 큰 화근이었다. 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자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란의 침체된 경제와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혼란이 막 수습되려던 순간이었다. 이런 빈틈을 절호의 기회로 여긴 후세인은 '석유 에너지'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이란을 침공했고, 두 나라는 전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 7일만에 후세인은 원하던 지역을 차지하자 '종전 선언'을 했다. 그러나 이란은 이를 거부했고, 지리한 전쟁이 이어져 무려 8년간이나 대치를 했다. 여기에 미국은 대놓고 이라크를 편들어서 이라크가 차지하는 '석유 에너지'를 빼앗겠다는 계산을 하게 되는데, 전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자, 결국 후세인은 '평화 협정'을 맺고 전쟁을 종결한다. 하지만 두 나라는 '산유국'이란 지위를 이용해서 엄청난 무기를 사들여 '소모전'을 펼쳐기에 전쟁이 끝날 때즈음에는 두 나라 모두 경제 파탄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라크의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을 한다. 원래 쿠웨이트가 자신들의 땅이었다면서 쿠웨이트의 '유정' 가운데 상당수를 이라크 소유라고 우긴 것이다. 이에 반발한 쿠웨이트는 다른 나라들에게 도와달라 호소를 했고, 역시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발빠르게 '세계 경찰'이라는 이유를 들며 '다국적군'을 모아서 '제1차 걸프전쟁'을 시작한다. 이로써 이라크는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 싸워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전쟁은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의 손쉬운 승리였고, 이라크는 이 전쟁을 계기로 망신창이가 된다. 하지만 미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서남아시아 지역'의 석유 에너지를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 '제2차 걸프전쟁'을 일으키는데, 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 제거'였지만, 이라크 국민만 '제거(!)'했을 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다. 결국 이 전쟁은 미국의 더러운 욕심만 재확인하는 불명예스런 전쟁이었음이 밝혀졌다. 1차 걸프전은 '9·11 사태'라는 비극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2차 걸프전은 애초에 명분조차 없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서남아시아의 비극'은 석유에너지가 가져온 행운과 불행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을 지켜보면서 국제관계가 냉험한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지어 진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엄청난 석유에너지 자원을 확보하여 전세계를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었으나, 강력한 힘을 얻으면 그 주위에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이 견제를 하며 '끊임없이 힘을 고갈시키는 전략'을 펼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진짜 강대국은 이런 전략에서 결코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고 결국 '힘의 균형'을 이루어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약소국은 결국 자신이 가진 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러 저리 강대국들의 욕망대로 휘둘리다가 '자신의 힘'마저 빼앗기고 설움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해서 그 힘을 '폭력적'으로 활용하려고 들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세력들이 힘을 규합해서 쳐들어오고 그 힘조차 빼앗아버릴 '명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을 과시하려 들지 말고 적절히 휘둘러서 상대가 감히 덤빌 수 없게 만들어야 진짜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강대국'을 뛰어 넘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싸움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지위권을 확보하고, 그 새로운 규칙을 지지받을 수 있게 여러 '강대국'들과 연대하는 유연성도 갖고 있어야 한다.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이런 '규칙'을 그나마 활용할 수 있었던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 두 나라만이 서구의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나라가 온전한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위는 '석유에너지' 자원의 풍요로움으로 누리는 지위이고, 이를 대체할 에너지가 나타나는 순간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서남아시아 분쟁의 역사'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우리는 현재 '문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적인 한류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K-팝'을 시작으로 'K-드라마영화', 'K-음식', 'K-관광', 'K-문화' 등등 점점 그 폭과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세계 경제 10위권, 국방력 6위권에 랭커 되어 있어서 대한민국은 어느새 '약소국'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트너십 국가대열에 낑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강대국들이 만들 '규칙'에 어쩔 수 없이 따르던 지위에서, 강대국들만의 유리한 '규칙'을 새로 만들 수 있고, 이를 지지하게 만드는 연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단 말이다. 이는 한국에서 '해주지 않으면' 전세계 여러 나라가 곤란하고 곤혹스런 상황에 쳐하게 되는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경지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똑같은 것이라도 '한국이 만든 것'이면 더 좋고 더 재밌다는 나름의 공식이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