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y Review MCMLXVII / 민음사 21번째 리뷰]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4대 비극은 이놈저놈 다 죽어서 난장판을 만들어놨기에 감동을 해야 할지, 애통해 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 없고, 그의 5대 희극은 웃으라고 만든 작품일텐데 당췌 어느 부분에서 웃음보를 터뜨려야 할지 어리둥절하게 만들어서 엉뚱했다. 그런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찌 됐든간에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그저 좋았다. 어릴 적부터 말이다.

그런데 50대에 다시 읽어보니 어릴 적의 감동과는 사뭇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의 4대 비극 못지 않게 이놈저놈 다 죽어나자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려 여섯 명이나 죽었다. 맨 먼저 '머큐쇼'가 죽은 것은 너무 유명할 것이다. 극에서는 대사 몇 마디 나눈 뒤에 로미오의 겨드랑이 사이를 뚫고 들어간 티볼트의 검이 머큐쇼의 급소를 찔러 대사 몇 마디 남기지 못하고 급사하고 말지만, <영화>에서는 머큐쇼가 검에 찔려 죽어가는 와중에도 '명대사'를 남기며 좌중을 웃기고 끝내는 울려버리는 '명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티볼트'의 죽음은 너무 싱겁기 그지 없다.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쇼의 죽음에 대한 '정당방위'이자 길거리에서 싸우지 말라는 군주의 명을 어긴 티볼트에게 내리는 '대리 심판'의 성격에 '로미오의 분노'까지 더해버리고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무한 죽음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4대 비극'에 낑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허무한 죽음은 그 뒤에 죽는 '파리스'도 마찬가지다. 가짜 죽음으로 '케풀릿 가문의 묘지'속에 들어간 줄리엣을 두고서 두 연인이 결투를 벌이다 일어난 사단인데, 굳이 '파리스'까지 죽음으로 엮은 까닭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파리스'도 '머큐쇼'와 같이 베로나 군주의 친척이기에 '죽음의 무게'만 따진다면 결코 가벼운 죽음은 아닐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인 주인공의 죽음이다. 가짜 죽음에 빠진 줄리엣을 보고서 준비한 독약은 머뭇거리지 않고 탈탈 털어넣은 '로미오'가 줄리엣의 품에 안고 죽는다. 마침맞게 깨어난 줄리엣은 자신이 살아있을 유일한 빛과 같은 존재인 로미오가 싸늘하게 죽은 것을 확인하고 뒤따라서 죽으려고 자신의 몸을 '칼집' 삼아 칼을 가슴에 꽂고 자결한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케풀릿과 몬터규는 자식의 죽음 앞에 당혹해하고 슬퍼하면서 '몬터규 부인' 또한 '로미오의 추방 소식'에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다고 전하는 비극적 연출을 한다. 이렇게 여섯 명이나 죽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여러 죽음을 목격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의 죽음만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이의 죽음은 여타의 '비극 작품'속에서 보여주는 애통함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만큼 '죽을 이유'가 타당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조차 그다지 애뜻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나 '옛날 말투'스러운 뒤침(번역)이 몰입감을 앗아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원문 그대로 뒤쳐냄(완역)'이기보다는 '문맥에 따라 뒤쳐냄(의역)'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다. 원문을 살리더라도 '익숙한 어투'로 자연스럽게 뒤쳐냈으면 좋았을텐데, 낯설고 어색한 두 연인의 대화를 읽고 있으면, 얘네들이 '사랑'하기는 했는지조차 의심할 정도다. 이는 로미오, 줄리엣의 두 연인의 대화만 어색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대화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초중고 어린이독자'들에게 그닥 권하고 싶지 않았다. 자칫 '고전에 대한 거부감'만 심어주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건 그렇고. 두 남녀의 사랑이 이토록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충분히 즐겼으면 한다. 원수 가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던 두 남녀가 처음 본 사이임에도 사르르 녹아버리고 말았다. 철천지 원수일지라도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서로 애정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냔 말이다. 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서로를 원망하고 죽기를 바라는 원수지간일지라도 '사랑'에 빠지면 그런 살벌한 감정조차 한순간에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을 '젊은 남녀 두 사람'이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냔 말이다. 만약 몬터규와 케풀릿 가문 사이에 '사돈지간'이 맺어져서 더 치고받고 싸우다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알콩달콩 살아가며 예쁜 손주가 탄생하면서 눈 녹듯 화해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면 더 아름답고 재미난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었을텐데라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것일까? 젊은 두 남녀가 서로의 아름다움에 '한 눈에 빠져버리는 사랑'을 이룬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첫 눈에 호감을 가졌더라도 더 많은 만남, 더 많은 대화, 더 많은 사건사고를 겪고 난 다음에 '결혼약속'을 했더라면 아주 바람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줄리엣의 아버지가 베로나 군주의 친척인 '파리스'와 정략결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몬터규 가문과 사건사고를 많이 치는 바람에 케풀릿은 자신의 출세에 지장을 겪고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한 방법으로 군주의 친척인 '파리스'와의 결혼을 서둘러 성사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촌인 티볼트가 죽어서 '하루'를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주에 줄리엣의 결혼을 확정지으려고 했다. 그만큼 케풀릿은 쪼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줄리엣을 더욱더 '사랑의 열병'에 빠져들도록 만든 패착이었다. 좀더 '비밀연애'를 즐기며 사랑을 맛보고,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면서 '이성의 끈'을 챙길 수 있는 여유만 있었더라도 줄리엣은 '가짜 죽음'으로 파리스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로미오와의 약속을 지키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운명의 장난'도 있었다. 줄리엣의 가짜 죽음을 계획한 것은 '로런스 신부'였다. 그는 가짜 죽음에 빠지는 약으로 두 사람의 비밀 결혼을 지키려 했고, 더 나아가 원수지간이던 두 가문이 '젊은 남녀의 사랑'을 계기로 화해하기를 기획했던 것이다. 일단 가짜 죽음으로 줄리엣을 무덤속에서 깨어나게 만들고, 이 사실을 로미오에게 미리 알려서 무덤속에서 어린 신부를 구출해내고 추방된 '만토바'에서 신방을 차리고 머물다가 시일이 지나 두 가문의 앞에 '두 사람의 결실'을 선보이면 해묵은 원한관계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역병'이 드는 바람에 로미오에게로 가던 '연락'이 제때 도착하지 못했고, 줄리엣의 죽음 소식만 전달되는 바람에 로미오는 너무 서둘러서 죽고 만다. 그리고 뒤늦게 깨어난 어린 신부는 새신랑의 주검 앞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뒤따라 죽고 만다. 이 어찌 비극적인 운명이란 말인가. 그 짖꿎은 운명은 줄리엣이 묻힌 무덤 앞에서 로미오와 파리스가 벌인 결투조차 오래 끌지 못하고 '순식간에' 끝맺어 버리는 장난질을 쳤다. 아무리 생사를 건 결투였을지라도 몇 번의 챙챙챙으로 시간을 벌었다면, 그 사이에 줄리엣이 '가짜 죽음'에서 깨어날 시간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꽃 같은 짧은 사랑'은 우리들 곁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가히 '불멸의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비록 '비극적 결말'로 끝맺기는 하지만 우리네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의 대명사로 길이길이 남았다. 너무 짧은 사랑이어서 '젊은이들의 철없는 불장난'이라는 비난도 함께 받는 작품이긴 하지만, 시작이 '불장난'이면 또 어떠랴?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