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빛날래!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 3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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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V / 그린애플 6번째 리뷰]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시리즈의 최종판이다. '순정동화'의 마지막답게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는데, 그건 바로 '프랑스 국왕 루이16세의 대관식'이었다. 물론 대관식이 열리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늘 그렇듯 엘리자베트 공주에게는 쾌활한 소동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스케일이 크다. 대관식에서 꼭 쓰이는 '성스런 보물들'을 훔쳐가려는 도둑 일당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도둑들이 훔쳐가려는 보물은 다름 아닌 '루이16세'가 대관식에서 왕위에 정식으로 등극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샤를마뉴의 왕관'이었다. 무려 4킬로그램에 해당하는 금은보화로 장식된 화려한 왕관이었는데, 역대 프랑스 국왕이라면 대관식에서 꼭 그 왕관을 써야만 인정받았단다.

샤를마뉴 대왕이라면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 같지만 '동일인물'이다.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가 '서유럽 전체'를 통일했을 때가 바로 '사를마뉴 대왕' 집권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베르됭 조약'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3개로 쪼개지면서 '서프랑크 왕국'은 프랑스로, '동프랑크 왕국'은 독일로 각각 역사 편입을 하면서 '프랑스 역사'에서는 샤를마뉴 대왕로, '독일 역사'에서는 카롤루스 대제로 부른다. 스펠링은 'Charlemagne'다. 흔히 서로마제국의 황제 '카롤루스 대제'라고도 많이 알려졌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이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문이라고 볼 정도로 수많은 게르만족들이 서로마제국의 영토를 나눠먹었으나, 현재의 프랑스 지역이 일부를 '프랑크족'이 차지하고, 그 지역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 '메로빙거 왕조'를 열고, 과거 서로마 지역의 대부분을 '카롤루스 대제'가 차지하게 되면서 '서로마제국의 황제'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샤를마뉴 대왕이 죽자 왕국은 셋으로 쪼개졌고,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기에 '서로마제국 황제'라는 명칭도 자연스레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독일 제국이 그 명칭을 이어받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로마제국의 황제다운 강력함은 찾기 힘들었다.

암튼, 프랑스 왕정국가는 이후 대관식에서 '왕홀'과 '정의의 손'이라는 권위와 신성함을 상징하는 장식물 이외에 '샤를마뉴의 검과 왕관'을 대관식에서 선보이며 더욱더 화려하고 웅장한 대관식을 연출했단다. 현재 '샤를마뉴의 검'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보관중이지만, '샤를마뉴의 왕관'은 도난을 당하거나 파괴되는 수모를 겪다가 루이16세의 대관식 이후 프랑스 혁명 때 잃어버리고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단다. 기록에 따르면 루비 16개, 루비를 떠받치는 사파이어 16개, 에메랄드 16개, 총 48개의 보석이 박혀 있고, 왕관 안쪽에는 진주를 덧댄 진홍색 벨벳 모자로 마감을 해서 무게만 해도 무려 4킬로그램에 달했다고 한다. 거의 금 10돈이 3750그램이니, 거의 금 11돈에 해당되는 무게이다. 그걸 반나절 동안이나 진행되는 대관식 내내 쓰고 있었다니 '왕관의 무게'가 정말 장난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물건이니 혁명의 시기에 혼란을 틈타서 사라져버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동화속에서 엘리자베트 공주는 이런 중요한 보물이 도난당하지 않도록 친구들과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도난의 위기'를 헤쳐나가고 무사히 친오빠 루이 오귀스트가 '루이16세'로 등극할 수 있게 힘을 모았다. 이를 두고, 동화속에서는 '연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서로의 힘을 모아 함께 책임을 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을 '연대'라고 말했다. 동화속에서는 '어린이'들이 연대를 해서 왕관을 훔쳐가려는 도둑들의 음모를 해결했고, 심지어 '외국인'들도 함께 참여해서 무사히 대관식을 치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위기는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이고, 이웃 나라가 고난을 당하면 그 주변 국가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남의 문제'로 치부하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기에 '연대'는 우리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인류가 함께 참여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연대를 하게 되면 못할 일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인 '연대'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건 꼭 전세계인들이 모두 '연대'를 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더구나 강대국이 벌이는 살육전쟁과 관세전쟁은 또한 어떤가? 연대는커녕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난 것마냥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만 있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핵찬반 논쟁'은 도를 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룩한 민주화이고, 어떤 희생을 치루고 피워낸 '민주주의'인데, 지금 그꼴이 어떤가? 이게 정녕 민주주의란 말인가? 서로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주는 기본 예절은 어디가고, 서로를 향한 막말과 욕설로도 모자라 '폭력과 위법'을 일삼느냔 말이다. 제발 부끄러운줄 알고 예의를 지키란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원수로 여기고 쌈박질하는 '남북갈등'에, 진보와 보수의 '남남갈등'까지 더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탄핵갈등'까지 덧붙여서 나라를 아주 망하게 만들려 작정했느냔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아서 이득을 보는 것은 딱 한 명이다. 그 한 명만이 '다 죽은 목숨'을 연장시키고, 국민 모두를 악의 구렁텅이로 내몰아서, 저 혼자 잘 살면 땡 잡은 거고, 못 잡아서 죽어도 '개죽음'이 아니라 '본전'이니 막나가는 것이다. 거기에 놀아난 '동조범'들도 마찬가지 속셈이고 말이다. 왜 우리가 이런 죽어 마땅한 한 놈 때문에 나라꼴을 이모양 이꼴로 만들어야만 한단 말인가. 제발 정신 차리고 '딱 한 놈' 잡아족치는 연대를 보여줄 때다. 이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우리 함께 빛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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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을 달릴래!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 2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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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II / 그린애플 5번째 리뷰]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시리즈 제5권에 해당하는 이번 책의 제목은 <나의 길을 달릴래!>다. 엘리자베트 공주는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 왕 루이16세의 친동생이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루이16세의 '무능함'만을 부각해서 보았지만, 그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속사정까지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시리즈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동화같은 이야기를 써놓아서, 여자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미나면서도, 동시에 '역사의 이면'도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루이16세'는 어린 여동생의 슬픔과 고통까지 걱정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오빠이며, 동시에 그런 따뜻한 마음씨로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프랑스 왕국의 백성들에게도 '자애로운 아버지'로 군림하고 싶었던 평범한 임금이고 싶어했을 거라는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격동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구체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던 무능한 임금의 모습도 루이16세의 한계점임은 분명하고 말이다. 만약, 루이16세가 평화로운 시대에 재임을 했더라면 그는 참 태평스런 시대를 누리게 했을 수도 있는 마음씨 따뜻한 임금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천방지축인 엘리자베트 공주를 보고 있으면 말이다.

이번에도 엘리자베트 공주는 사건사고를 몰고 다닌다. 단 하루도 얌전히 '공주 수업'을 받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번엔 스케일이 더 커졌다. 북아프리아에 위치한 국가, 리비아에서 평화사절단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앞서서 언급했던 '베르사유 동물원'에 사육하게 될 동물들을 우호를 약속하는 선물로 데리고서 아주 호화롭게 방문했다고 한다. 1775년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이다. 당시 리비아는 '해상무역'을 통해서 부를 쌓아 경제적 호황(?)을 맞이했더랬는데, 이게 종종 해적질로 변질되기도 했기 때문에 지중해를 항해하는 배들에겐 큰 위협이 되었단다. 이에 루이15세가 프랑스 함대를 출동시켜 리비아의 가장 큰 항구인 트리폴리 항구를 포위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리비아의 파샤(임금)는 프랑스 배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고, 프랑스는 함대를 철수 시켰다. 그리고 1년 뒤, 루이15세가 죽자, 리비아의 파샤는 루이16세와 다시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 것이다. 이때 사절단이 가지고 온 선물이 어마어마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사자, 표범, 낙타, 그리고 아랍의 말까지 프랑스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신기한 동물들을 엄청 가지고 왔다고 전한다. 특히, 아랍의 말은 유럽의 말보다 뛰어난 혈통을 갖고 있기에 프랑스 사육사들은 이를 '종마(씨말)'로 삼아 뛰어난 품종으로 개량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루이16세는 자신의 대관식에 '리비아 사절단'을 초청하는 것으로 답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엘리자베트가 벌인 소동이 무엇이었냐 하면, 바로 자신의 결혼 상대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결혼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서 아무도 몰래 친오빠인 '루이16세'를 알현하고, 결혼을 무효로 되돌리려고 대소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유럽의 왕실에서는 '정략결혼'이 일상이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을 이용했고, '결혼'을 통해서 전쟁 직전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약속하는 일을 계속 이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각국의 왕자와 공주는 살아생전에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듯 싶지만, 일상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영욕을 위해서' 누리는 것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싫은 것도 감수해야만 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런 인생을 즐기며(?)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이루는 인물도 있겠지만, 그런 '정해진 운명', '짜여진 각본'에 따라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해야만 하는 '연극무대'같은 삶을 저주하는 인물도 있기 마련이다. 엘리자베트 공주는 후자에 가깝고 말이다.

암튼, 엘리자베트가 이번에 결혼할 상대는 포르투갈 왕자다. 하지만 얼굴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혼을 해야만 하는 까닭은 당시 프랑스와 앙숙이었던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포르투갈을, 프랑스쪽으로 끌어들여 한편으로 삼고 영국을 고립무원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영국은 '신교(프로테스탄트)의 국가'이고, 포르투갈은 '구교(로마 가톨릭)의 국가'이지 않은가. 그렇게 같은 종교(로마 가톨릭)인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손을 잡게 되면 영국과의 경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번 '프랑스 공주'와 '포르투갈 왕자'의 결혼은 아주 중요한 결정을 담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는 국가적인 이익을 따지는 셈법이고, 엘리자베트 공주 '개인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결정인 셈법이다. 더구나 엘리자베트 공주는 이제 막 '열한 살'이 되었을 뿐이다. 아무리 결혼 날짜가 2년 뒤라고는 하지만, 이미 '정해진 운명'이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에서 슬프고 아픈 것이다. 왕실 가문에 태어난 운명이 그렇게 결정되어 있다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인륜지대사로 여기는 '결혼'인데,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왕실 가문의 사람들조차 '정해진 이익을 위해서' 강제로 짝을 맺게 하는 것은 마치...훌륭한 혈통을 얻기 위해서 억지로 '짝짓기(교배)'를 강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냔 말이다.

그래서 이번 책에서는 리비아 사절단이 데리고 온 '암말, 에클립스'가 등장한다. 바람처럼 달릴 때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절단이 에클립스를 데리고 온 목적이 억지로 교배를 시켜서 뛰어난 혈통의 말을 낳게 하는 것이 목적이란다. 그렇게 뛰어난 말들이 프랑스에 넘쳐나게 되면 프랑스와 리비아 사이의 평화도 오래도록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엘리자베트의 '정략결혼의 목적'과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물론 아주 좋은 목적이다. 분명 '이익이 되는 결정'이고 말이다. 그런데 에클립스의 행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단지 '가축'일 뿐이니 유용하게 써먹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폐기처분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왕실의 '가족'으로 온갖 보살핌을 살뜰하게 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주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희생(!)시켜 버리는 것으로 결정해버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냔 말이다.

여기에 프랑스 왕실의 교육을 담당한 '수석교사 마르상 부인'의 태도가 한 몫 한다. 그녀는 루이16세부터 엘리자베트까지 왕실 가족의 어린 시절에 아주 '철저한 교육'을 하는 것을 막중한 책임으로 맡고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 귀족 가문은 프랑스 역대 부르봉 왕조의 '왕실 담당 가정교사'로 책무를 맞고 있어서 죽을 때까지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을 '프랑스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엘리자베트 공주의 경우를 봐도 알겠지만, 너무너무 싫은 사람이다. 말끝마다 "프랑스 공주(왕자)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라면서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을 할 뿐이다. 각자의 성향이나 재능에 따라서 '유연한 학습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천편일률적'으로 왕실 가문에 걸맞는 교육이랍시고, '변함없이 엄격한 교육'만을 강요할 따름이다. 그러다 '국익에 우선하는 행사'가 발생하면 아낌없이 '왕실 가족'을 희생양 삼아 '정략결혼'을 밀어붙이고, 그렇게 성사된 결혼으로 얻은 '국익'을 자신의 교육적 커리어 덕분이라고 우쭐거리는 아주 밥맛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교사로서의 자격'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엘리자베트 공주는 사사건건 '마르상 수석 교사'와 대립을 하고 수업이 아니라 벌을 받길 자처한다. 물론, 이런 모습도 '학생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은 아닐테지만 말이다.

어떤가? 왕자와 공주의 삶이 그들이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들의 화려함만큼이나 부러움의 대상인가? 이렇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삶은 저 넓은 들판에서 맘껏 뛰어놀다가 적당한 때에 도살되어 식탁위에 맛난 요리로 오르는 '육우(고기소)의 삶'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에스파냐의 전통, '투우'가 어차피 도살될 소와 함께 펼칠 화려한 퍼포먼스로 육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처럼 '왕실 가문의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도 그런 투우의 화려함과 그닥 다르지 않아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엘리자베트가 벌인 소동의 결과가 자못 궁금해진다. 그녀는 어떤 소동을 벌였으며,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결정을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도 궁금해진다.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의 다음 소동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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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랑 춤출래!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 1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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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I / 그린애플 4번째 리뷰]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시리즈의 후속편으로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라는 시리즈로 다시 돌아왔다.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로 루이16세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벌어지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간 '순정동화'다. 어릴 적에 소녀들이 주로 읽던 만화를 '순정만화'라고 불렀는데, 이 동화책도 여자아이들이 딱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가득하기에 '순정동화'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 동화책에는 실존 인물인 '엘리자베트 공주'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30대에 짧은 생을 마감했는데, 결혼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 혁명'이 그녀의 인생을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동화책은 엘리자베트가 10대 어린 시절 베르사유 궁전에서 지내던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사건은 동화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진난만', '천방지축'인 말괄량이 공주가 벌이는 요절복통 대소동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지경으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다만,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하는 '수석 가정교사 마르상 부인' 때문에 불행하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번 '뮤직박스 사건'을 계기로 함께 공부하기로 한 친구 '앙젤리크'와 그녀의 어머니이자 엘리자베트의 새로운 가정교사 '마코 부인' 덕분에 공부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그래서 엘리자베트도 상당히 똑똑해졌고, 공주다운 예절도 제법 티 나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곧 이웃나라 왕자와 결혼 약속을 한 언니 '클로틸드 공주'가 무도회 때 출 '춤곡'을 연습하는데, 엘리자베트도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엘리자베트는 춤을 출 수는 없었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동화책은 이처럼 좀처럼 배우기 힘든 '궁중 예법'과 같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 역사'를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재미난 동화책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실'도 함께 익힐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번 책에서는 베르사유 궁전 안에 있던 '동물원'에 관한 이야기다. 이 동물원은 루이 14세가 손자며느리인 '마리 아델라이드'에게 선물로 주면서 만들어졌는데, 마리 아델라이드는 이 동물원에서 수많은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방문자에게 환영의 뜻으로 물벼락을 내리는 장난도 이때 생겼고 말이다. 하지만 루이 15세는 동물원에 관심이 없어 동물원 관리는 엉망이 되었지만, 그래도 새 동물들은 점점 불어났다고 한다. 부실관리를 하는데도 '동물원 식구'는 점점 늘어나자 동물원은 더욱더 망가지게 되었단다. 루이 16세 때는 엉망인 동물원을 '간소하게' 복원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동물원의 동물은 그대로 달아나거나 일부는 시민들이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 일을 겪고도 남아있던 동물은 '파리 식물원'으로 옮겨져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그 당시에 공개되었던 사자의 이름이 바로 '으와카'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자가 맞다. 그리고 그 사자와 함께 지내던 개가 있었는데, 그 개가 죽자 으와카도 활기를 잃고 병들었다고 한다. 현재 '베르사유 동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 이후 버려지고 파괴되어 철거되었다고 한다.

그럼 동물원과 궁중의 공통점이 있을까? 오늘날 몇 남지 않은 '왕실 사람들'이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사실을 아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막강하고 화려했던 '왕실 가문'은 현재는 대부분의 권력을 잃어버리고 명목상 '군주의 역할'만 수행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왕실 사람들도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직접 벌어서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국가의 세금으로 '왕실 사람들'이 쓰는 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왕자와 공주인데도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년 어마어마한 '국가 예산'을 축내던 것을 깎을 수도 없다. 적어도 '체면 유지'는 해야 하기에 엄청난 비용을 청구하고, 그보다 더한 비용을 사용해서 해마다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왕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왕실은 부족한 예산과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 '왕실의 일상'을 TV에 방송을 하며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단다. 엘리자베스 2세의 결단이었다는데, 그로 인해 영국 왕실이 전세계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결혼과 이혼 등의 사사로운 일상까지 다 공개되는 바람에 망신을 당하기 일쑤고, 심지어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사망하고 마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정말 '동물원'에 갇힌 동물 신세와 다를 바 없는 처량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행복한 걸까? 과거에는 '동물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을 보며 '견문'을 넓히는 유익함도 있었고,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을 전세계에서 잡아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나라의 '국력'을 과시하는 일이었기에 '동물원'을 운영하는 것이 곧 '왕권의 파워'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그럴까? 오히려 인간에게 주어진 '인권'이 소중한 만큼 동물에게도 '동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구나 원래 살던 환경과 아무리 비슷하게 꾸미고, 동물원 사육사가 훌륭하게 돌봐준다 하더라도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은 낯선 환경과 수많은 관람객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증세'를 보이는 동물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험한 야생환경에서 살다가 쾌적하고 편안한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안전하고 풍족하게 관리를 받는 것을 마냥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밀렵이나 사냥으로 희생을 당할 뻔한 동물을 구해다가 '동물원'에서 보살펴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겠냐는 주장도 있다. 허나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누군가 당신을 안락하고 쾌적한 '요양보호소'에 가둬놓고서 자유를 박탈해버린 것을 두고서 진정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캐어'가 필요한 분이 아니라면 건강하게 뛰놀 수 있는 '야생동물'을 강제로 잡아다가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어찌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겠냔 말이다.

심지어 '반려동물'을 키우면서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고, 인간들이 사는 공간에서는 반드시 '목줄'을 채워야 하고, '인공사료'만 평생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반려동물 또한, '행복'을 논할 수 있느냔 말이다. 물론 '동물권'을 보장하고 인간과 친숙하게 지내는 동물을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명칭을 바꿀 정도로 인식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요즘엔 집밖에서 기르지 않고 '집안'에서 기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정도로 '동물권'에 대한 인식도 많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물'이 인간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내용이다. '인간 위주'의 판단이 아닌 '인간과 동물의 공생'이 가능하고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말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한 생명'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사명감으로 길러야만 한다. 쉽게 구매했다가 쉬이 버려도 되는 '장난감'하고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정성으로 '동물원 관리'도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인간과 친숙한 몇몇 동물을 제외하곤 '야생동물'이 원래 있던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니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관람할 때에는 동물을 최대한 안심할 수 있도록 예절(?)을 지키며 차분히 관람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당신 집'을 구경하겠다고 찾아와서 시끄럽게 소리지르고 함부로 당신 집의 물건과 당신을 대한다고 생각해보란 말이다.

참, '순정동화'라고 소개를 하고서는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엘리자베트가 쿠키라는 이름의 '퍼그' 강아지를 선물로 받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의 시종인 '모리스 드 퐁텐' 귀족이 지난 번 옷장에 갇힌 사건에 대한 앙심을 품고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쪽지를 남기고 귀여운 강아지를 납치해서 동물원에 갇힌 사자우리에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엘리자베트는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지만 '공주 신분'답지 않은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마르상 부인'의 감시와 눈길을 피해서 귀여운 강아지 구출 작전이 펼쳐진다. 쾌걸 공주가 아름다운 궁전에서 벌이는 대소동의 결말은 어떻게 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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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 반달 그림책
김영경 지음 / 반달(킨더랜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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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 / 반달(킨더랜드) 2번째 리뷰] '그림책'을 읽을 땐 글자(텍스트) 위주가 아닌 '그림' 위주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텍스트'가 많은 그림책일지라도 글자를 쫓아가지 말고 그림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아주 작은 차이부터 살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이는 '줄글'로 된 이야기책에서 '행간'에 감춰진 참뜻을 찾아내는 훈련과 아주 흡사하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이라면 더욱더 '그림, 본연의 맛'에 심취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모든 그림책이 그렇진 않지만 '표지' 또한 그림책의 일부인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엔 '표지'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아이에게 앞표지를 먼저 보여주지 말고 뒷표지부터 찬찬히 뜸을 들이다가 문득 떠오른 것처럼 아이에게 질문을 던져 보아도 좋다. "앞표지에는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이런 질문을 '발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생각을 이끌어내는 질문'이란 뜻인데, '정답'은 없다. 그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생각을 '표현'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이의 표현력에 따라 엄청난 감동이 피어나기도 한다. 물론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림책만 뚫어져라 노려보는 아이도 있고 말이다. 정말 천차만별이니 '정답'을 강요하지는 않길 바란다. 자주 그런 '발문'을 던지다보면 아이는 어느새 '표현력의 왕'이 되어 주체할 수 없이 표현하게 될테니 절대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물론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내 경험으로는 '독서지도 1년동안' 수업중에 단 한마디로 하지 않던 아이가 2년째 접어드는 순간에 봇물 터지듯 쫑알거리는데, 그 순간의 감동이란 정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수업은 '방문수업'이라서 어머님이 거실에서 볼일을 보시다 종종 아이의 방을 몰래 훔쳐보곤 했는데, 아이가 쫑알쫑알 입을 여는 그 순간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엉엉 울어버리셨다. 내심 표현은 안 했지만, 내 수업방식에 의문을 가지기도 했고, 비싼 수업료를 냈는데 아이는 멀뚱멀뚱 눈만 깜빡거리다가 수업을 마치길 1년이니 얼마나 초조하고 답답했을까? 그렇게 오랜만에 입을 연 아이는 그 다음 수업부터 '청산유수'였다. 언제 그렇게 표현력 훈련을 한 것인지 그동안 내가 수업중에 했던 말투까지 흉내내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고, 말문이 터지니 글쓰기도 덩달아 실력 발휘를 하여 앉은 자리에서 두 바닥을 쓱쓱 써내려가곤 했다. 그러니 참을성을 가지고 '아이가 할 법한 대답'을 연상하며, '아이가 했으면 좋을 올바른 대답'을 떠올리며 '좋은 질문'을 꾸준히 던지면 결국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두 아이가 이끌어 간다. 한 아이는 자그마한 벽돌을 쌓아 '자기만의 성'을 쌓아나가고, 다른 한 아이는 그 성밖에서 '벽돌을 쌓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성을 쌓던 아이는 성벽이 올라갈수록 점점 덩치가 커진다. 성밖에 있던 아이는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아이를 비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두 아이 가운데 '성을 쌓고', '성장하는' 아이를 좋은 아이, 올바른 아이, 훌륭한 아이로 결론 내릴 것이다. 반면에 성밖에서 빈둥거리는 아이는 그 반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성벽을 높이 쌓던 훌륭한(?) 아이가 그만 성안에 갇혀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자신이 쌓은 성벽을 어쩌지 못하고 그만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갇힌 덩치 큰 아이는 지쳤는지 심심해선지 성벽에 기대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늘어뜨린 성안의 아이 손가락을 가만히 건드리는 성밖의 아이에 시선이 간다. 아주 강렬하게 말이다. 드디어 성밖의 아이가 주목받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성안에 갇힌 아이는 성밖에 있는 조그만 아이를 벽 너머로 바라본다. 그러자 성밖의 아이는 한 손에 든 '작은 꽃'을 번쩍 들어서 보여준다.

그 작은 꽃을 건내받은 성안의 아이는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성벽 안에는 '작은 꽃'이 머물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성안의 아이는 그 '작은 꽃'을 둘만한 장소를 물색하느라 이 벽돌, 저 벽돌을 들춰보지만 결국 찾지 못해 슬퍼진다. 왜냐면 작은 꽃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성안의 아이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작은 꽃'이 시들기 전에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성안의 아이는 '작은 꽃'을 살리기 위해서 성벽을 넘어 작은 꽃이 살만한 들판을 찾았고, 그곳은 성밖에 있던 아이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둘은 '작은 꽃'을 들판에 옮겨 심었다. 작은 꽃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고, 두 아이는 향긋한 꽃내음을 맡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옮겨 심은 '작은 꽃'은 어느새 자라서 커다란 해바라기꽃이 된다. 줄기와 잎이 무럭무럭 자라서 덩치 큰 아이만큼 자라자 덩치 큰 아이는 자기가 쌓아올린 성벽을 다시 돌아본다. 그 성벽은 이제 한 쪽 벽이 무너져서 망가져버렸다. '작은 꽃'을 살리기 위해 무리하게 벽을 넘다가 망가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덩치 큰 아이는 속상해하지 않고 무너진 벽돌을 허물어버리고 다시 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밖에서' 말이다. 그렇게 성밖에서 벽을 허무는 동안 덩치 큰 아이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성벽이 낮아지자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낮아진 성벽 위에 다시 벽돌을 쌓아올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두 아이가 힘을 합쳐서 함께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원래의 모양과는 달랐다. 처음에 쌓은 성벽은 '지붕'이 없는 형태였는데, 다시 쌓아올린 성은 '지붕'의 형태를 띄면서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다. 그리고 차이점은 또 있었다. 첫 번째로 쌓아올린 성벽은 굳게 '닫힌 문'었는데, 두 번째로 쌓아올린 성벽은 온전하게 '집 모양'을 띄면서 닫혔던 문이 점점 활짝 '열린 문'의 형태를 띤다. 그렇게 성을 완성하고나니 두 아이는 '크기'가 같아졌다. 그리고 성의 꼭대기에는 '작은 꽃'도 심어놓았다. 그렇게 두 아이는 지붕 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그림책은 끝을 맺는다.

그림책에서 '교훈'이 떠오르는가?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해졌는가? 사실 그림책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도 없다. 그래서 그림책은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아주 훌륭한 교재다. 그런데 섣부른 어른들은 '그림책'속에서 한 가지 교훈과 주제를 찾아내곤 '벽돌처럼' 굳게 닫아버린다. 이 그림책의 주제는 앞으로 '이것이다'라면서 뿌듯해 한다. 너무 독단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하긴 '텍스트'로 가득찬 책들에서도 '정답'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기 일쑤인데, '텍스트'가 없는 책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제부터라도 제발 그러지 말길 바란다. 하나의 그림책에서 열 개의 교훈을 얻으면 '10배의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고, 백 개의 주제를 찾아내면 '100배의 가치'를 얻은 셈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꼴랑 '1개의 가치'를 고집하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림책 100권을 읽어 봤자. 고작 100개의 '정답'밖에 찾지 못하는 바보들이다. 그림책 한 권에서 100개의 상상력을 얻어낸 아이들은 100권의 그림책을 읽으면서 '1만 가지의 교훈과 주제'를 찾아낸 천재들인 셈이다. 당신의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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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10 - 세계의 화약고 서남아시아 분쟁 벌거벗은 세계사 10
최호정 그림, 이현희 글, 박현도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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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 / 아울북 31번째 리뷰] 우리가 흔히 '중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유럽'을 기준으로 잡고서 부르는 지역명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치우친 '유럽국가'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광활한 아시아국가들을 구분하는데, '중동 아시아', '극동 아시아'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할까? 물론, 서구 유럽국가들이 이런 명칭을 아무런 편견 없이 쓰고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사실 '문명화'에 앞장선 서양에 비해서 '비문명화'된 동양 국가를 낮잡아 부르는데에서 기원한 명칭이기에 '같은 아시아국가'끼리 그런 저열한 명칭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에서처럼 '서남아시아'라고 고쳐서 부르는 것이 좀더 객관화된 지역명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나은 명칭으로 고쳐부를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워낙 이들 지역이 '분쟁'이 심했던 곳이기에 '편견'도 없고, '분쟁'도 없는, '평화'로운 지역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아랍어 인사말에서 '살람(평화)'이라는 말을 따와서 '살람 아시아'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을 중심국가로 소개하고 있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는 610년 메카의 상인이었던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전파했는데,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뭉친 부족들이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하고 오랫동안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1932년 '사우드 가문'이 아랍 부족을 통일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탄생했고, 38년에 대규모 유정이 발견되면서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자리잡았다. 한편, 이라크는 고대 4대문명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난 곳에 자리잡았다.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는 8세기부터 14세기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를 이끈 중심지였고, 16세기부터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차 세계대전 후 1932년에 독립했다. 그러다 1979년에 대통령이 된 사담 후세인이 석유를 차지해서 '서남아시아 패권'을 잡으려고 이란과 쿠웨이트를 연달아 침공했지만, 끝내 실패했고 2003년에 사담 후세인이 사망하면서 정권이 무너졌고, 이후 미국의 간섭과 이슬람 교파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현재까지 이라크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문명의 중심지로 1935년에 '아리안의 나라'라는 뜻의 이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나라를 다스렸으나 1930년대 '서구식 근대화 정책'을 펼쳐서 자유로운 나라로 꽃을 피웠으나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며 혼란이 가중되다가 1979년 이슬람교 성직자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혁명'이 일어나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현재까지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어 왔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을 들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패전을 하자 승전국이었던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가 1932년쯤에 '신생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이들 지역이 '승전국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까닭은 바로 '석유'라는 자원이 많이 매장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32년쯤에 그 유정이 동이 난듯 싶자 영국은 선심을 쓰듯 '독립국'으로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빼앗길 자원을 다 빼긴 상태로 독립을 이루는 것은 허울 뿐이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영토가 사막지형인 탓에 가난을 면치 못하다가 '미국의 도움'으로 새로운 유정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무기(?)'로 삼아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빠르게 '부유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바로 'OPEC(석유수출국기구) 설립'으로 말이다. 석유 생산량을 조절해서 '산유국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석유 수입국'들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석유에너지'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위치에서 아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기구를 통해서 가장 많은 부를 차지한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유정을 연달아 찾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의 급성장은 '미국'에게도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도 세계는 '대영제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이가 벌어졌을 때 미국이 치고 들어와 '밀월관계'를 형성하면서 석유를 거래할 때 반드시 '미국 달러'만으로 거래를 한다는 조건을 성사시키자 전세계는 빠르게 '미국 달러화'를 구하려 애를 썼고, 이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석유는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었고, 그 에너지를 사려면 '미국 달러'가 필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로써 미국은 자국 화폐를 '기축통화화'시켜서 좋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불안전한 국방력을 미국의 도움으로 안정화시키는 서로에게 '윈윈'인 관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 설립'을 해서 석유생산량을 통제하려 하자, 미국은 'IEA(국제에너지기구) 설립'으로 대응하며 석유수입국끼리 도움을 주고 받거나 '대체에너지'를 만드는데 협력을 이끌며 '산유국의 농간'을 견제하는 주도하는 역할을 맞게 된다. 이래저래 미국은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며 세계 초강대국 국가로 한층 성장하게 된다.

한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바로 '이스라엘 건국'에 관한 유대인들의 발빠른 행보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머나먼 고대 유대국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아주 오래전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수천 년동안 수많은 유목민들이 떠돌며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정한 거처를 마련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특성상 이곳에서는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지 못했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자 서서히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이다. 그 문제의 발단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게 있다. 영국은 전쟁의 승리를 선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아랍 고위 관료에 접근해서 아랍이 영국을 도우면 '팔레스타인 건국'을 도와주겠다는 '후세인 맥마흔 서한'을 교환한다. 하지만 아랍의 도움으로도 전황이 바뀌지 않자 1917년에 이스라엘과 접촉해서 똑같은 제안을 한다. 이를 '벨푸어 선언'이라고 한다. 그리고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에 아랍쪽과 이스라엘쪽이 동시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자 영국은 난감해진다. 왜냐면 영국은 이미 프랑스와도 조약을 맺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는 땅을 나눠갖기로 비밀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를 '사이크스 피코 협정'이라고 하는데, 일단 영국은 이 협정대로 프랑스는 '시리아'를,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이라크)'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그러자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에 누가 거주할 수 있도록 했을까? 바로 '돈 많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은 거액을 돈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사들였고, 유대인의 땅이 생겼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전세계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땅'으로 몰려든 것이다.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하고자 했으나 영국이 '사기(!)'를 친 셈이고, 푼돈에 눈이 먼 땅주인들은 '유대인의 돈'이 탐이 나서 마구마구 팔아재꼈던 것이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국에 항의를 했고 영국은 잠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줬지만, 이번에는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반발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곧 분쟁지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곧이어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분쟁보다 더 혹독한 전쟁이 치뤄지면서 엄청난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연합(UN)에 넘겨졌고, 국제연합은 '분할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건국'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집트는 아랍 연합국들을 주도하며 이스라엘과 전쟁에 돌입했는데, 이것이 '1차, 2차, 3차, 4차 중동전쟁(1948~1973)'이다. 총 4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를 하며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까지 점령하자, 이집트는 서둘러 이스라엘과 협정에 들어가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 조약'을 맺고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는다. 이 조약은 아랍국가들의 반발을 샀고, 이집트 국민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스라엘사람들의 염원(시온주의)이 워낙 강했고, 유대인들의 돈도 훨씬 많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은 당시 강대국들의 승인을 빠르게 받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더욱더 확고해져만 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사람'들도 가만 있진 않았다. 반이스라엘 항쟁을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조직 되어 '제1차 인티파다'를 이끌었다. 팔레스타인사람들도 자신들의 '국가건설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의 희생이 커지자 미국은 '오슬로 협정'을 맺어 중재를 하기로 했고, 팔레스타인은 '자치 정부'를 수립하는 쾌거를 얻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슬로 협정'을 무효화 선언을 하고 팔레스타인은 '제2차 인티파다'를 선보이며, 더 강력한 시위를 하는 '하마스'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강경 투쟁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분리 장벽'을 건설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분리'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팔레스타인 고립'을 형성했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가자 전쟁'을 치루며 절대 양보없는 전쟁을 서슴지 않고 있고,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은 인종청소(대학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시 앞서 '석유에너지'를 둘러싼 이권다툼을 되돌아가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탐욕으로 인한 '이란 이라크 전쟁(1980~1988)'이 발발한다. 미국이 주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대한 유정을 발굴한데 이어 '서남아시아' 각 지역에서 연달아 '석유 유정'이 발견되었고, 이를 통해서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양을 '이란'이 차지하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고, 이를 탐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더 큰 화근이었다. 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자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란의 침체된 경제와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혼란이 막 수습되려던 순간이었다. 이런 빈틈을 절호의 기회로 여긴 후세인은 '석유 에너지'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이란을 침공했고, 두 나라는 전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 7일만에 후세인은 원하던 지역을 차지하자 '종전 선언'을 했다. 그러나 이란은 이를 거부했고, 지리한 전쟁이 이어져 무려 8년간이나 대치를 했다. 여기에 미국은 대놓고 이라크를 편들어서 이라크가 차지하는 '석유 에너지'를 빼앗겠다는 계산을 하게 되는데, 전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자, 결국 후세인은 '평화 협정'을 맺고 전쟁을 종결한다. 하지만 두 나라는 '산유국'이란 지위를 이용해서 엄청난 무기를 사들여 '소모전'을 펼쳐기에 전쟁이 끝날 때즈음에는 두 나라 모두 경제 파탄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라크의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을 한다. 원래 쿠웨이트가 자신들의 땅이었다면서 쿠웨이트의 '유정' 가운데 상당수를 이라크 소유라고 우긴 것이다. 이에 반발한 쿠웨이트는 다른 나라들에게 도와달라 호소를 했고, 역시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발빠르게 '세계 경찰'이라는 이유를 들며 '다국적군'을 모아서 '제1차 걸프전쟁'을 시작한다. 이로써 이라크는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 싸워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전쟁은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의 손쉬운 승리였고, 이라크는 이 전쟁을 계기로 망신창이가 된다. 하지만 미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서남아시아 지역'의 석유 에너지를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 '제2차 걸프전쟁'을 일으키는데, 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 제거'였지만, 이라크 국민만 '제거(!)'했을 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다. 결국 이 전쟁은 미국의 더러운 욕심만 재확인하는 불명예스런 전쟁이었음이 밝혀졌다. 1차 걸프전은 '9·11 사태'라는 비극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2차 걸프전은 애초에 명분조차 없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서남아시아의 비극'은 석유에너지가 가져온 행운과 불행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을 지켜보면서 국제관계가 냉험한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지어 진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엄청난 석유에너지 자원을 확보하여 전세계를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었으나, 강력한 힘을 얻으면 그 주위에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이 견제를 하며 '끊임없이 힘을 고갈시키는 전략'을 펼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진짜 강대국은 이런 전략에서 결코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고 결국 '힘의 균형'을 이루어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약소국은 결국 자신이 가진 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러 저리 강대국들의 욕망대로 휘둘리다가 '자신의 힘'마저 빼앗기고 설움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해서 그 힘을 '폭력적'으로 활용하려고 들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세력들이 힘을 규합해서 쳐들어오고 그 힘조차 빼앗아버릴 '명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을 과시하려 들지 말고 적절히 휘둘러서 상대가 감히 덤빌 수 없게 만들어야 진짜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강대국'을 뛰어 넘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싸움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지위권을 확보하고, 그 새로운 규칙을 지지받을 수 있게 여러 '강대국'들과 연대하는 유연성도 갖고 있어야 한다.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이런 '규칙'을 그나마 활용할 수 있었던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 두 나라만이 서구의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나라가 온전한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위는 '석유에너지' 자원의 풍요로움으로 누리는 지위이고, 이를 대체할 에너지가 나타나는 순간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서남아시아 분쟁의 역사'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우리는 현재 '문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적인 한류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K-팝'을 시작으로 'K-드라마영화', 'K-음식', 'K-관광', 'K-문화' 등등 점점 그 폭과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세계 경제 10위권, 국방력 6위권에 랭커 되어 있어서 대한민국은 어느새 '약소국'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트너십 국가대열에 낑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강대국들이 만들 '규칙'에 어쩔 수 없이 따르던 지위에서, 강대국들만의 유리한 '규칙'을 새로 만들 수 있고, 이를 지지하게 만드는 연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단 말이다. 이는 한국에서 '해주지 않으면' 전세계 여러 나라가 곤란하고 곤혹스런 상황에 쳐하게 되는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경지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똑같은 것이라도 '한국이 만든 것'이면 더 좋고 더 재밌다는 나름의 공식이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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