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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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IV / 이봄 12번째 리뷰] 초고령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 이제 '베이비부머'의 끝자락 세대인 74년생이 만 50세를 넘겨서 중장년층의 절반 이상이 '고령 인구'로 편입되고 말았다. 이제 '인구 절벽'을 맞아서 5000만 명이던 인구는 급감을 하고, 늦어도 2050년이 되면 '한국인 멸종' 사태를 맞게 될 거라는 걱정어린 전망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를 맞이했던 일본이었는데, 한국보다 2배가 많았기에 그 속도는 우리보다 한층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런 관점으로 이 책 <평균 연령 60대 사와무라 씨 댁> 시리즈를 읽다보면 생각할 거리가 참 많아지게 된다.

각자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맞이한 '노년의 삶'이란 주제가 퍽 절박하게 와닿는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따라주지 않고, 젊어서는 힘들고 아파도 금세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기운차게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노인'이 되니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놀려고 해도 놀 거리가 없다. 그렇다고 젊었을 때처럼 하려니,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정년퇴임을 하고 이제 '고희(70살)'를 맞이한 사와무라 씨가 딱 그렇다. 그래도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연금'이 부족하게 나오는 편은 아니지만, 노인으로 살다보면 그게 또 넉넉하지만은 않다. 앞으로 '벌 수 있는 돈'보다 '써야할 돈'이 늘 많은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렸다간 '질병'을 얻는 것보다 더 무서운 '빈곤'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건강부터 챙겨야겠다고 집근처의 '헬스장(일본에선 '짐'이라고 한다. 헬스장이란 명칭은 '성행위를 하는 장소'라는 좀 야한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을 찾아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 '짐코치(헬스 트레이너)'가 인바디 검사결과를 보고서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는 말을 듣고서는 베시시 웃고 말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코치가 다른 회원에게 가서도 똑같은 멘트를 하는 것을 엿듣고는 씁쓸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와무라 부인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에 '전업주부'로 쭉 살았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늘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몸에 베어서 남편이 통 크게 한턱 쏜다는 말을 해도 정말 먹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알뜰하게 생활하는 것이 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소소한 행복'을 위해서 질러야 할 땐 질러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 먹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절약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살아야 하는 걸까? 젊어서는 젊기 때문에 '고생'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늙어서는 늙었기 때문에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평생을 '고생'과 함께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고생'과는 이별하지 못하고, 또 참고 참으며 남은 생마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만족'스러울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과감히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런 부모와 평생을 '한 집'에서 살아가는 히토미 씨는 어떨까?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마흔 살'이지만, 연애할 상대가 나타나면 언제든 화끈한(?) 연애를 할 거라고 매년 다짐한다. 하지만 새해가 지나면 또 어김없이 '솔로'다. 한 회사에서 18년 동안 일을 한 베테랑 직원이지만 '일의 성취욕'은 그닥 없다. 그저 평범한 '오피스레이디'일 뿐이고, 결혼과 동시에 미련없이 그만 둘 수도 있는 그저그런 직장일 뿐이다. 이렇게 솔로로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고(?) 있는 여성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히토미 씨에게 '변화'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할 뿐, '딴 데'로 새거나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 이렇게 변화가 없는 걸까? 비단 '딸, 히토미 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와무라 씨 댁의 가족 전부가 '변화'가 매우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것에만 막연히 두려움을 가진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탈출하기 위해서 '변화'가 절실하지만 딱히 '변화'할 만한 껀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변화'가 지금 누리고 있는 '안정된 삶'조차 무너뜨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불안감은 더욱 커질 뿐이다. 젊다면 '맨땅을 맨손으로도' 바꿀 용의가 있지만, 현재의 늙음이 그럴 용의조차 들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와무라 씨 댁의 문제는 '일본 전체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90년대부터 시작한 '잃어버린 30년 체제'가 일본사람들 모두에게 활기를 빼앗아버렸다.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은데, 그조차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를 지나보내고나니 남은 것은 '노년'이라는 나이만 남았다. 물론 부족한 것은 없다. 그러나 넉넉한 것도 없다. 이제라도 뭔가를 해보고 싶지만 딱히 해볼 것도 마땅히 없다. 일본 사회 전체가 그렇게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물론 '일본의 방식'을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던 시절의 관행은 난 정말 싫다. 일본은 일본이고, 한국은 한국이지. 왜 우리가 '일본의 문제'까지 고대로 답습할 것이라고 전망한단 말인가? 그런데 '초고령사회의 문제'만큼은 전세계가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인구 절벽'을 경험한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사와무라 가족의 문제점'은 우리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느냐? 그건 또 아니다. '문제제기'는 있지만 그에 대한 '대안제시'는 딱히 없기 때문이다. 마스다 미리 작품 거의가 대부분 이렇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나쁜 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정답'을 확신하는 책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초고령사회의 해법은 무엇일까? 좀 더 읽고 난 뒤에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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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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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III / 이봄 11번째 리뷰] 마스다 미리의 책은 '순서'를 잘 모르겠다. 애초에 '순번'이 없이 나와 있으니 무턱대고 손이 가는대로 읽긴 하는데, 읽다보면 뭔가 '차례'가 있는 듯한 감이 오고 '나중'에서야 그 차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마니악'적인 우월감(?)을 뽐내는 듯해서 기분 나쁘다. 진정한 팬이라면 '숫자'가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애초에 '진입장벽'을 없애면 그런 불편조차 없지 않겠는가. 뭔가 기분 나쁘다... 시작부터 '불평'을 쏟아내고 말았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 대개 '이런 식의 서술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조금 흉내를 내보았다. 뭔가 '디테일'이나 '엣지'가 느껴지는 불평이지만, 그렇다고 머리 위에 '전구'가 번쩍이거나 '무릎'을 탁하고 치는 그런 날카로운 맛은 없다. 그저그런 밍밍한 불평투성이다. 그런데 그게 또 '마스다 미리'만의 맛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뭐 이런 맛이 있지 싶다가도 자꾸 먹다보면 그 '이런 맛'에 길들여져서, '뭐, 나름대로 이런 맛도 나쁘지 않네'라고 하게 되는 그런 맛이다.

'평균연령 60세'라는 표제가 지닌 뜻은 '한 가족'에 '세 식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버지 70세, 어머니 69세, 그리고 딸 40세, 그래서 평균으로 약 60세인 세 사람이 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게 뭐 그리 이상한 걸까? 연로한 부모를 '독신녀(흔히 말하는 '노처녀')'가 부양하고 있는 '평범한 가정'인데 말이다. 아닌가? 노총각이면 자연스러운데, 노처녀가 부모를 부양하면서 살아가는 것..노부부에게는 '연금'이 나오고 있으니, '완전한 부양'도 아니지만, 암튼 다 큰 딸이 '출가'도 하지 않고, '독립'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비치는 모습이 딴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마스다 미리의 작품에서 그닥 새롭지가 않다. '독신여성'이 주인공인 것이 전부이다. 처음 접했던 <내 누나>에서는 30대 독신녀, <수짱시리즈>에서는 30대에서 40대까지 꾸준히 독신녀, 그리고 <주말은 숲에서>에서도 40대 독신여성이 주인공이었다. 혹시 작가도 '노처녀'인가? 69년생이니 한창 시리즈를 연재할 때에 3,40대가 맞긴 하다. 그렇다고해서 작품속 주인공들이 딱히 '독신'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들의 수다내용은 대개 '결혼'이거나 '연애할 멋진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딱히 결혼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 그저 '멋진 남성'이 없기 때문에 할 생각도 없다는...아니면 이미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겨버렸기에 '경쟁에서 패배한 개'마냥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전부다.

이를 두고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썼다. 연애나 결혼 상대자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요행히 '가슴 설레는 이성'을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착각하기 쉬운 것은 '매력적인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지, 그런 사람만 발견한다면 '사랑의 감정'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롬은 이러한 생각을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기보다 그릴 대상만 발견하면 그림은 '저절로' 그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사랑은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만나고 부딪히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스다 미리'의 작품속 독신여성들은 애초에 '사랑의 기술' 따위는 전무하다. 그저 우연히 그루터기에 머리를 박고서 손쉽게 얻을 토끼를 기다리는 사냥꾼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자신을 '경쟁에 패배한 개'로 비유하는가? 30대면 늦었고, 40대면 연애나 결혼은 아예 불가능한가? 물론 생물학적 나이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서 불리한 조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그런 불리한 조건을 초월하곤 한다. 그런 사랑을 위해서, 아니 그런 사랑을 원한다면 과감히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런 점에서 마스다 미리의 '자조 섞인 주인공들의 푸념'이 살짝 귀에 거슬리곤 한다.

물론, 그러한 삶도 있다. 사와무라 히토미처럼 '1인 생활' 경험은 전무하고, '입사 18년차'에 베테랑 경력사원이지만 뭔가에 치이듯 무력감을 느끼고, 뭔가에 쫓기듯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3인조와의 수다'뿐이다. 3인조라 함은 히토미처럼 독신여성인 친한 친구들을 말한다. 그녀들도 그녀 주변의 온갖 것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고 함께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해방감'을 만끽하곤 한다.

여기까지라면 <수짱 시리즈>를 비롯한 여타 작품들과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 히토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알콩달콩 투닥토닥이 가미되면서 '차별화'를 꾀한다. 그런데 이 둘의 대화는 또 <내 누나>에서 보여줬던 '누나'와 '남동생'의 대화 방식과 또 유사하다. 그들 대화의 '노령 버전'이라고 하면 딱일 듯 싶다. 거기에 '황혼이혼'의 이슈가 컸던 일본이기에 살짝 위태위태(?)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물론 '황혼이혼'을 꺼낼 정도로 둘 사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의 '긴장감'을 엿볼 수는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식이는 나빠요' 버전의 우스개소리가 유행한 것처럼 일본사회에서도 '정년퇴임'한 남편의 식사를 어디까지 챙겨줘야 하는지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논쟁을 벌이는 유사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 결론은 회사에 다닐 때처럼 아침, 저녁은 챙겨주더라도(이식이), 주부인 본인들도 다 늙었는데 '점심'까지 챙겨주는 '삼식이'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아침만 챙겨주고 저녁은 외식으로 간단히 떼우는 '일식이'면 더 좋고, 차라리 직접 요리를 해서 아내에게 대접하는 '영식이'라면 대환영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도 어느새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남자와 그런 뒷모습(또는 비주얼이 된다면 '앞모습'도 좋고)을 그윽히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성의 모습을 아주 빈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플렉스 #성공적 #로맨틱 이라는 '해시태그'로 SNS에 올리면 좋아요와 구독을 꾹꾹 눌러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남성들도 이런 장면에서 '앞치마 코스프레'를 한 여성과 므흣하게...쿨럭쿨럭

어쩌다 보니, 중구난방 '여행이야기'는 하나도 꺼내지 않았는데, 책속을 들여다봐도 '여행이야기'는 그닥 많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평범한 일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굳이 먼 여행을 떠나서 남의 집 담장 밑에 있는 화분속 꽃사진을 찍는 것이 대단히 유별나다고 느낀다면 굉장히 싱숭생숭할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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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7 -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다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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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II / 위즈덤 7번째 리뷰] 다른 책 리뷰가 급했던 관계로 뒤늦게 '만화 삼국지' 리뷰를 올리게 되었다. 뭐, 돈 받고 하는 리뷰도 아니니 사명감으로 올리고 있지도 않고 있다. 요근래 오른팔 '회전근개골'이 아파서 조금 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리뷰는 죽을 때까지 올릴 생각이니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언젠가는 꼭 쓰니까 말이다. 답글은 없어도 '좋아요'는 눌러주시고 계시니 그저 믿고 쓸 뿐이다.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둔 손권은 계산기를 눌러보지만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에 분통을 터뜨린다. 조조는 살아서 돌아갔고, 유비는 '형주땅'에 눌러 앉았다. 허나 손권은 얻은 땅도 없고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말았다. 이에 노숙에게 일러 유비에게 서둘러 형주땅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유비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뿐 속시원히 돌려주겠다는 답변이 없다. 이에 손권과 주유는 열이 올라서 유비를 볼모로 잡아 형주땅과 맞바꿀 계책을 꾸민다. 바로 '미인계'다.

손권에겐 여동생이 있는데 바로 '손상향'이다. 미녀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평소 '영웅이 아니면 베필로 삼지 않겠다'며 집안의 시녀들에게도 갑옷을 입혀 무술을 단련케 했으니 제대로 시집가긴 애초에 글러먹은(?) 천방지축이었다. 허나 여동생은 손권의 어머니 오국태 부인이 애지중지 키우는 막내딸이기에 50대에 접어든 유비와 아직 10대인 여동생을 진짜 결혼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여동생을 '미끼' 삼아 대어를 잡겠다는 생각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갈량은 이를 오나라와 동맹관계를 유지할 좋은 기회로 삼고 유비에게 장가 들라고 권했다. 유비는 장가 들러 갔다가 졸지에 객사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제갈량은 조운에게 세 개의 주머니를 건내주며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씩 꺼내서 써먹으라고 지시한다. 그 첫 번째 주머니에서는 바로 '대교와 소교의 아버지, 교국로'를 찾아가 혼인 주선을 서달라는 계책이었다. 교국로는 유비에게서 영웅의 풍모를 보았고, 손권의 어머니 오국태에게 먼저 소개시켜줘버린다. 그 사이 조운은 '혼인 예물'을 준비한다며 오나라 시장의 '큰손'으로 행세하며 국혼(유비와 손상향)의 소문을 퍼뜨린다. 그렇게 안팎으로 국혼을 진행시키니 손권과 주유가 준비했던 '미인계'는 써보지도 못하고 실패를 했으며, 더구나 오국태가 유비를 한 눈에 맘에 들어했으니 손권은 졸지에 유비와 '처남매제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여동생의 패기(?)를 믿고 실패한 계책 대신에 새신랑을 망신이라도 주려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성난 황소처럼 굴던 여동생이 유비와 한 방에서 알콩달콩 신접살림을 꾸리고 만다. 이래저래 속이 상한 손권에게 주유는 '또 하나의 계책'을 꾸미는데, 그건 바로 '유비'에게 부귀영화를 선사해서 온세상의 환락을 다 누리게 한 뒤에 향락에 쩌든 늙은 몸뚱이로 만들고 난 뒤에 '형주땅'을 빼앗자는 것이다. 이 계략은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

유비는 누상촌에서 돗자리와 짚신을 짜다가 천하를 떠돌며 온갖 고초를 맛본 터라 날마다 '산해진미'가 넘쳐나고 밤에는 달콤한 술과 색시가 유혹을 하니, 점점 영웅의 기개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런 주군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건 호위무사를 자처한 조운이었다. 어느 날, 조운은 제갈량이 건내준 '주머니'를 떠올렸고, 두 번째 주머니를 열었다. 거기엔 '조조가 적벽에서의 한을 풀고자 50만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쳐들어오고 있으니 주군은 한시바삐 형주로 돌아와 주십사하고 군사께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조운은 적힌 그대로 유비에게 보이니 향락에 쩌든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났다. 허나 날름 몸만 빼내어 도망칠 수는 없었다. 부인 손상향의 처지도 생각해주어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부인 곁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도리어 부인이 화를 내며 일갈하길, '아녀자가 지아비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손상향은 유비와 함께 오나라를 떠날 것을 약속한다. 그렇게 둘은 오국태에게 신년 하례를 올리며 '조상 제사' 이야기를 꺼냈고, 오국태의 흔쾌한 허락까지 받고서 둘이 떠나게 된다. 뒤늦게 유비의 탈출 소식을 접한 손권은 자신의 칼까지 건내며 두 사람의 목을 베어오라 명령하지만, 이미 조운은 세 번째 주머니를 열고서 '마중 나온 제갈량과 합류하라'고 지시된 장소로 내달려 유유히 탈출에 성공한다. 이로써 손권과 주유의 '미인계'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이야기는 꽤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물론 '영웅호색'이라 하여 숱한 영웅호걸이 등장하는 이 책에도 심심찮은 '여자주인공' 등장하긴 하지만, 대개는 비극적으로 끝을 맺거나 '불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조조'가 여색을 밝혀서 장수 토벌을 나섰다가 '장수의 형수, 추씨'를 꼬셨다가 전위가 목숨을 바쳐서 겨우 살아나는 일화처럼 말이다. 그나마 '여포와 초선의 이야기'가 초반에 등장해서 관심을 끌지만, '초선'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허나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은 실존인물이고, 실제 역사서에서도 유비와 백년가약을 맺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역사서에는 유비와 손상향이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록이 전무하다. 그런데 나관중이 이를 호화로운 '국혼 이야기'로 꾸며내어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짤막한 '역사의 진실'을 이토록 무궁무진하게 꾸며낸 까닭은 무엇일까? 뒤이어 이어지는 '서천(유장의 영지, 서촉땅)공략'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유비가 달아난 뒤에 주유는 분을 참지 못하고 급사하고 만다. 미인계를 써서도 성공치 못하자 주유는 '정공법'으로 서천공략을 유비 대신 해줄테니, 유비는 오나라 군사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만약, 곧이 곧대로 길을 길려준다면 주유는 군대를 무혈입성한 뒤에 형주땅을 빼앗으려 했고, 빌려주지 않더라도 총공세를 펼쳐서 형주땅을 강제로 빼앗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공법'조차 제갈량에게 간파를 당해 실패로 끝나고 말자 주유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하늘도 무심하지시. 이 세상에 주유를 내었으면서 어찌하여 또 제갈량을 내었단 말인가"라는 말을 남기고 돌연 쓰러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오나라는 큰 인재를 잃고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손권은 주유의 뒤를 이어 노숙에게 군권을 맡겼고, 적극적인 공세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편, 서북지방 서량 땅에는 마등이 있었다. 그는 일찍이 황제의 밀조를 받들어 동승, 유비와 함께 역적 조조를 치기로 언약한 충신이었으나, 조조를 처단하러 허도에 간 사이에 비밀이 탄로가 나서, 도리어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마등의 아들 마초는 분기탱천했고 조조와 한판 대결을 나선다. 초반의 대승을 거둬서 조조는 수염까지 스스로 자르며 달아나기에 바빴지만 '호랑이 무사, 허저'의 도움으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번 틈에 '성안'에 틀어박혀서 마초의 공격을 방어만 하다가 그만 마초는 조조의 계략에 빠져서 '같은 편'인 한수(마등의 의형제)까지 의심하게 되자, 한수는 그만 조조에 투항하고 마초는 잔여병력으로 맞서 싸우다 조조에게 공략을 당해 지리멸렬하게 된다. 겨우 목숨만 건진 마초는 '장로'에게 몸을 의탁하며 '한중땅'에서 때를 기다린다. 그때는 바로 '유비와의 만남'일 것이다.

또 한편, 제갈량은 주유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한바탕 곡을 하고서 오나라를 떠나려 한다. 오나라의 군사들은 '주도독의 원수'인 제갈량이 오나라에 오는 즉시 갈갈이 찢어죽이려 으르렁거렸지만, 제갈량이 주유의 빈소 앞에서 추도문을 낭송하고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자 차마 죽이지 못하고 함께 슬피 울고 만다. 그리고서 오나라를 떠나려는데 제갈량을 붙잡으며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나는 속이지 못한다"고 소리치는 사람과 만난다. 애써 감춘 의중이 들통나자 깜짝 놀란 제갈량이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방통'이 서있었다. 간담이 서늘했지만 한시름 놓은 제갈량은 방통에게 거취를 물었고, 오나라에서 벼슬 할 생각이 아니면 유비에게도 오라면서 추천서 한 통을 건낸다. 하지만 방통은 유비 앞에서 '제갈량의 추천서'를 보여주지 않았다. 당시 방통의 품속에는 '노숙의 추천서'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역시 보여주지 않았다. 유비는 방통을 한 차례 쳐다보고서는 '작은 고을, 뇌양현'의 현령으로 보낸다. 방통 역시 두 말 않고서 뇌양현으로 떠난다. 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한 달이 넘자 작은 고을의 '송사'는 넘쳐났고, 이 소식을 접한 장비가 방통을 벌 주러 직접 발을 옮긴다. 허나 방통은 태평할 뿐이다. 그깟 송사 나부랭이는 '반 나절'이면 후딱 처치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이에 장비는 말을 지키지 못하면 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방통의 일처리는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반나절도 안 되어 일을 처리해버리자 도리어 놀란 것은 장비였다. 와룡과 봉추라는 명성이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장비는 그 길로 유비에게 방통의 실력을 전하였고, 때마침 돌아온 제갈량도 '방통은 작은 고을에 가둬둘 인재가 아니다'라며 유비에게 천거를 하기에 이른다. 이에 유비도 흔쾌히 '부군사' 직을 맡기게 된다.

그럼 방통은 어째서 유비에게로 왔을까? 방통의 실력이 제갈량 못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알아주고 있다. 그런데도 방통은 조조에게는 가지 않았다. 하나는 '역적'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이미 인재풀이 넘쳐나'고 있는 조조에게 가봤자 중용될 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방통은 손권에게 찾아가 '연환계'를 내놓으며 '적벽대전'에서 크게 활약까지 했다. 그런데도 손권은 방통을 중용하지 않았다. 생긴 게 밥맛이라서 그랬다는 후문이다. 정말 그랬을까? 만약 그랬다면 '오나라의 군신들'은 하나같이 미남자였을 것이다. 뭐, 손권도 잘생겼고, 주유도 미남이라는 기록이 있으니, 아주 근거 없는 추론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방통도 딱히 손권에게 마음이 없었던 모양이다. 왜냐면 경쟁자(?)인 제갈량도 유비에게 '삼고초려'라는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군사'라는 최고직에 올랐는데, 자신은 실력을 먼저 보여주었는데도 '삼고초려'는 고사하고 모셔가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에 안타까움을 표할 길이 없던 노숙이 손권에게 직접 천거를 하지만, 손권은 방통을 마뜩찮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노숙은 방통에게 차라리 유비에게 가보라며 '추천서'를 써줬던 것이다. 그런데 방통은 유비에게조차도 환대를 받지 못했다. 단 한 명의 인재라도 아쉬울 유비가 왜 그랬을까? 정말 못 생겨서 호감이 생기질 않아서일까? 평상시의 유비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제갈량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제갈량의 추천서까지 있었다하더라도 유비는 '제갈량'이 직접 부탁하지 않으면 방통을 곧바로 취임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아직 유비에게는 마땅한 '영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에서 '군사의 위치'를 흔들 수도 있는 막강한 실력을 갖춘 인재를 중요하게 된다면, 자칫 불안정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관우와 제갈량 사이도 그리 좋지 않은 마당에 '새식구'까지 챙겨주기는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이런 사실을 방통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비에게 맨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방통의 입지'가 방통의 수명을 짧게 만들고 말았다. 왜냐면 유비에게 빨리 '형주땅' 이외에 '새 영지'를 찾아주지 않으면 '자신의 몫'도 챙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통은 유비에게 '서천공략'을 서둘렀고,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낙봉파에서 매복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방통의 실력'이 아니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서둘러 공을 세우겠다는 '공명심'이 봉추의 눈을 가리고 만 것이다. 만약 그가 살아서 '서촉'을 차지했더라면, 방통은 '서촉'을, 제갈량은 '형주'를 지키면서 조조를 견제할 수 있었고, 관우의 죽음부터, 장비, 황충, 유비까지 연달아서 찾아온 비극도 없었을 것이기에 더욱더 안타까운 죽음이 되겠다.

암튼, 유비는 장송의 길안내와 법정, 엄안의 도움을 받아 유장의 땅, 서촉을 차지하게 된다. 뒤이어 '한중땅'까지 차지하며 오랫동안 떠돌이 유랑생활을 하던 유비가 드디어 편히 정착할 수 있는 근거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비에게 어떤 비극을 초래하게 될 것인가? 다음 편을 기대해주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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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 카이사르에서 콘스탄티누스까지, 제국의 운명을 바꾼 리더들 서가명강 시리즈 20
김덕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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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I / 21세기북스 35번째 리뷰] 서양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고들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로마사'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할 것이다. 왜냐면 로마사에는 '정치'를 비롯해서, '경제', '종교', '철학', 그리고 '전쟁사'까지 서양 문화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은 통틀어서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로마사에서 '리더(황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였다. 단 한 명의 통치자일 뿐이지만, 단 한 명의 통치자로 인해서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로마사'를 통해서 너무나도 잘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이 책에선 네 명의 황제를 주축으로 다루고 있다. 순서대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디오틀레티아누스',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누스'다.

아시다시피 로마는 '공화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즉, 다수의 '원로원'이 두 명의 '집정관(임기 1년)'의 통치행위를 쥐락펴락하면서 로마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데 주력한 덕분이다. 나중에 '호민관'이 더해지면서 '평민들의 요구'도 통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로마'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바르게 제시하는데 역점을 두어 점점 강대해지는 모습을 갖춰나갔다. 물론 '독재관'이 등장해서 로마가 뒤흔들리는 때도 있었다. '포에니 전쟁' 때에는 한니발의 공격에 의해 로마의 '동맹시'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며 최대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한때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으로 위기를 맞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로마는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으며, 오히려 그런 위기를 계기로 삼아서 더욱더 나은 제도를 보완하는 기회로 삼을 정도로 건전했다.

허나, 로마의 영토가 점점 커지게 되자 '임기 1년'의 짧은 집정관 제도만으로는 팽배해진 로마를 제대로 통치할 수 없었다. 로마에게 가장 먼 지역인 '히스페니아(오늘날 스페인(에스파냐)) 영지'로 왕복은 고사하고 편도로만 가는데에도 1년이 소요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먼 지역에 반란이 일어나 '집정관'이 직접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도착하자마자 승리하고 돌아올 즈음에는 로마에서는 '새로운 집정관'이 임기를 시작하고 있고, '옛 집정관'은 승전보를 알리기도 전에 퇴임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더는 짧은 임기를 가진 '공화정 체제'로는 거대해진 로마를 통치하기에 힘에 부쳤던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권력욕'을 뿜뿜했던 인물이 바로 '카이사르'다. 그도 '갈리아 평정'을 하고 되돌아오는 과정에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오래 전장을 누비도 로마로 되돌아가면 그저 '승리한 장군'에 불과할 뿐, 로마는 원로원을 차지한 의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던 실정이다. 고생은 자기가 했는데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원로원 의원들었던 것이다. 이에 참지 못한 '카이사르'는 그 유명한 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을 하며 자신과 동거동락한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향했다. 원로원 의원들은 깜짝 놀랐지만 누구도 카이사르와 대놓고 대적할 이는 없었다. 이에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꼬드겨서 '삼두정치'를 시작했고, 원로원을 단숨에 제압하고 로마를 '분할통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곧 '1인 체제'를 구축하며 '종신독재관'에 취임하게 된다. 크라수스는 동방으로 전쟁을 나섰다가 전사했고,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와 권력다툼에서 밀려나서 이집트까지 쫓겨난 뒤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남아 '로마의 공화정'을 대신해 '황제정의 서막'을 열려고 했으나 '공화정파의 암살 실행'에 의해서 카이사르는 그만 죽고 만다. 카이사르가 '왕'에 오를 것을 우려한 '공화정파'가 카이사르를 죽이고 로마 공화정을 유지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살을 시행했고, 성공했지만 로마는 '공화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미 로마시민들은 '강력한 통치자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로마시민은 '강력한 통치자'를 잃은 슬픔을 원로원과 공화정파에게 쏟아부었고, 이를 통해서 카이사르의 측근이었던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 그리고 카이사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제2차 삼두정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1차가 그러했듯 2차 삼두정치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카이사르가 남긴 유서가 공개되면서 '10대 소년'에 불과했던 옥타비아누스가 '정식 후계자'로 인정받았고,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카이사르의 부하 안토니우스는 자신을 따르는 군단을 이끌고 옥타비아누스와 대결을 벌인다. 허나 이집트 왕조의 클레오파트라까지 동원한 안토니우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를 하면서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최종승리를 거두었다. 실력 차이도 있긴 했으나 '외국군(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 군대)'까지 끌여들여 '로마군단'과 맞서 싸우는 것에서 명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옥타비아누스는 대승을 거두고 로마로 개선을 하였고, 정식으로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고 '첫 번째 황제(프린켑스)'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 로마의 황제는 '아우구스투스'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이 아우구스투스가 집권을 하던 시기가 '로마에 의한 평화(팍스 로마나)'가 이루어지던 시기다. 그만큼 제국은 평온했고, 영토확장을 위해 싸우는 족족 승전을 거두는 등 로마는 거칠 것이 없을 정도였다. 허나 '최고의 정점'을 찍었을 때 내리막을 타는 것은 진리다. 팍스 로마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유지되었지만, 제국 곳곳에서 삐거덕거리는 일이 비일비재로 터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실패는 '안정적인 제국'을 물려줄 만한 뛰어난 자질을 갖춘 휴계자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10대 어린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등극한 옥타비아누스는 77살까지 살며 장수했지만, 정작 '아들'을 낳지는 못했다. 그래서 '양자'를 들이게 되는데, 하필 그 양자들마저 요절하더니, 결국 가장 망나니여서 절대로 '황위'를 넘겨주지 않겠다고 내쳤던 티베리우스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이렇게 '카이사르의 후계'는 네로 황제를 마지막으로 끝나고, 그 뒤에는 '속주(이탈리아 반도 밖) 출신'의 황제들이 뒤를 잇게 된다. 그나마 속주 출신이더라도 능력과 자질이 뛰어난 '오현제 시대'에는 팍스 로마나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현제 가운데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겐 콤모두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릴 때에는 로마군단의 귀염을 한 몸에 받았던 모양이지만, 커가면서 애물단지로 변했고,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로마를 '개판 5분전'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제국 통치는 나몰라라하고 '암살' 당할 뻔한 위기 뒤에 아주 그냥 미쳐버려서 온갖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다 근위대장에게 암살 당하고 만다. 이를 영화화한 것이 <글래디에이터>다.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도 '검투사'를 즐기다가 죽임을 당하는 줄거리인데, 실제 삶도 꼭 그랬다고 한다.

그 뒤로 50년간의 군인황제 시대가 펼쳐지면서 제국은 더욱더 엉망이 된다. 무려 18명의 황제가 바뀌었고, 임기가 2년도 안 되는 황제로 여럿이었다. 제국은 늘 '군인들의 쿠데타'의 연속이었고, 막강한 군대의 개입으로 정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여기에 북쪽에선 게르만족이, 동쪽에서는 페르시아인들의 '이민족 침입'이 잦아지니 제국은 더욱더 약해지게 되었다. 이런 시기에 하층민 출신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태어났다. 그는 어릴 시절 '군인들이 실력을 키워 황제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그 자신도 '군인'이 되길 희망했다. 그러다 283년, 40살이 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많은 전공을 세워 '콘술(공화정 시대의 최고 정무관)'에 오른다. 그리고 이듬해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는데, 근위기병대장 시절부터 병사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인기를 모은 탓에 전폭적인 지지로 황제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동방의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서방의 황제, 카리누스'와 내전을 일으켰고, 끝내 최종적으로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강력한 황제권을 휘두르며 로마제국의 정치적 안정을 꾀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도미나투스(내가 너희들의 주인이다), 전제정'를 창시하며, 자신을 신격화하고 원로원을 무시하며 '절대적 전제군주의 통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군대를 키워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켰고, 정부의 행정기구도 마찬가지로 강화시켜 '황제권 체제'를 유지시켰다. 그러나 로마제국은 '1인 통치'를 하기에 너무 광대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4제 통치체제'다. 먼저 막시미아누스를 양자 겸 '부황제'로 임명해 서방 황제로 임명하고, 자신은 동방 황제를 자처했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두 황제 밑에 '부황제'를 한 명씩 두기로 한다. 그렇게 황제는 '아우구스투스', 부황제는 '카이사르'로 칭하며, 동로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와 '갈레리우스 카이사르'가 통치했고, 서로마는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와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가 통치했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버지다. 암튼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의 '구원투수'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의 통치기간 동안만큼은 국정이 안정되는 모양새를 취하긴 했다.

그러나 '경제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의 치세 동안 '군사력'은 강력했고, 그로 인해 '정치력'도 막강해서 제국은 안정화시켰지만, 그의 통치시기에 물가가 급속도로 올라가면서(인플레이션) 경제위기가 심각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별의별 수를 다 써보지만 효과가 미미하자 '그리스도교 탄압'을 자행하는데, 이로 인해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가들의 빌미를 제공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강력한 황제권을 구사하기 위해서 자신을 '신성화(최고신 유피테르(주피터)의 현신)'시켰는데, 제국내에 10%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가 문제였다. 경제를 부양시키고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황제가 직접 제사를 주관하는데 '그리스도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이유로 참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황제는 그리스도교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는데, 이 당시에 순교한 이들도 많았지만 '배교'한 이들도 상당수 있을 정도로 잔혹하게 박해를 가했다.

그렇게 20년간 통치를 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서 '퇴임 선언'을 한다. 4제 통치의 원칙에 따라 '아우구스투스'가 퇴임을 하면, 그 자리를 '카이사르(부황제)'가 이어받는다고 했으니, 동로마는 '갈레리우스 아우구스투스'가 서로마는 '콘스탄티우스 아우구스투스'가 이어받는다. 그런데 콘스탄티우스의 아들 '콘스탄티누스'는 동로마 황제의 볼모로 붙잡혀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서로마의 반란을 막기 위해서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아버지 콘스탄티우스가 서로마 황제로 등극하자 '군사훈련'을 빌미로 아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순순히 응한 갈레리우스 아우구스투스는 33살의 콘스탄티누스를 서로마로 보내줬고, 1년 뒤에 콘스탄티우스가 갑작스럽게 전사하자, 콘스탄티누스가 군대를 발판 삼아 빈 자리를 계승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했을리 없다. 군대의 힘으로 서로마 황제(아우구스투스)의 자리에 오른 콘스탄티누스는 억울하게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난 막시미아누스의 아들 막센티우스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왜냐면 막센티우스의 아버지 막시미아누스는 '서로마 황제'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어서 내려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퇴임 선언'으로 강제로 퇴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콘스탄티우스의 죽음으로 빈 황제자리를 콘스탄티누스가 날름 차지하는 것에 심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은 로마 북쪽 '밀비우스 다리'에서 충돌했고, 콘스탄티누스 군대가 승리했다. 이 전투는 '그리스도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기도 하는데, 이 전투에서 열세였던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군대에 '십자가를 그리라'는 계시를 받고 전투에 임했더니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콘스탄티누스의 승리는 '하느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논리를 설파하기 위해서다. 암튼, 이를 계기로 콘스탄티누스는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고, 이는 그리스도교가 성장하는데 중요한 기점이 된다. 이후에 '밀리노 칙령'과 '니케아 공의회'로 삼위일체론 이외의 모든 교파는 '이단'으로 삼고, 로마의 국교는 명실상부하게 '그리스도교'로 공인 된다.

그렇지만 이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에는 '그리스도교 박해'가 심했고, 이 과정에서 '순교'하길 거부하고 '배교(교리를 배신함, 즉, 오직 단 한 분만이 유일한 신임을 부정하고 그리스로마의 신들께 올리는 제사에 참석하여 목숨을 구한 사람들)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처럼 제국의 안정이 찾아왔는데, 이를 한순간에 허물어뜨릴 수 있는 숙청을 콘스탄티누스 1세는 하지 않고서 '관용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그리스도교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하지만 1천년 가까이 '황제'가 신격화되었고, 그런 신들을 모셔왔던 로마시민들이 하루 아침에 모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한동안 콘스탄티누스는 '살아있는 신'으로 존재하기도 했으며, 로마는 '종교의 자유화'를 누리며 더이상의 '그리스도교 박해'는 없었던 것이다.

자, 여기까지 카이사르부터 콘스탄티누스까지의 로마사를 간추렸다. 그리고 어떤 '리더'가 로마라는 '대제국'을 흥하게 하고, 또 망하게 하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또 흥하게 하기 위해서 '정치의 힘', '군대의 힘', '종교의 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모습을 엿볼 수도 있었고, 공통적으로 '경제의 힘'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아무리 막강한 제국일지라도 한순간에 파멸로 귀결할 수 있음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모습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이 '경제 무능력'을 보이는 순간,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결국엔 '정국 불안정'이 되자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강대한 로마제국도 한순간에 망가지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경제위기는 왜 찾아오는가? 이걸 잘 짐작하면 얼마든지 해결방법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역사공부를 하는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만 눈여겨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속에서 '오늘날에도 써먹을 수 있는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배우고 또 익히는 것이다.

이 책에선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건 '그리스도교의 승리'라는 좁은 시선에서 바라본 결과여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넓혀서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고심하면 '단 한 명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리더를 잘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더가 엉망진창일 때 바로 대체할 수 있는 건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점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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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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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 / 이봄 10번째 리뷰] 수짱 시리즈의 마지막편이다. 하지만 마스다 미리의 여러 작품속에서 '수짱'은 간헐적으로 등장하곤 하니 앞으로도 꾸준히 등장할 것이 틀림없다. 수짱의 팬이라면 여전히 기뻐할 일이 틀림없다. 1편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이다. 제목대로 '삼십대 독신여성'으로 접어든 수짱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는 2편에 해당하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가 먼저 출간되면서 열혈독자들을 빠르게 끌어모았다고 한다. '삼십대 여성들의 모든 고민'을 담았기에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3편인 <아무래도 싫은 사람>에서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함께 일하는 동료 때문에 하게되는 걱정과 분노, 아니면 그 사이의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만나는 수짱의 고민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4편 <수짱의 연애>에서는 뒤늦게 만난 것 같은 '운명적인 사랑'에 설레이는 수짱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뭔가가 아쉽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빈곳을 채우는 것 같은 '꽉 찬 느낌'을 느끼고 싶지만, 그게 맘처럼 잘 안 되는 수짱이 일상을 이제 5편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에서 만날 수 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직장을 가진 여성으로서 '일과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완벽함일까? 아니면 흔히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달성해서 남 부러울 것 없이 풍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그걸 완수할 수 있는 나이는 서른 살일까? 마흔 살일까? 혹시 마흔다섯 살에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만족스럽고 '나답게'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쉽지 않다. 어느 것 하나 맘에 쏙 드는 '정답'이 없으니 말이다.

수짱도 그렇다. 마흔 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어린이집 급식담당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서른 살에 시작한 '결혼', '연애', '임신' 같은 것은 10년이 지나도록 점점 더 '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갔다. 카페 점장으로 승진했을 땐 살짝 기쁘기도 했고, 일에 대한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지만, 카페 주인의 딸 '무카이'와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사직서'를 내고 다른 직장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짱이 좋아하는 '요리'를 더욱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요리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오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전화위복'을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연애는 가물가물하고, 결혼은 점점 가능성을 잃어간다.

여자의 일생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분명 남자의 일생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남녀의 차이를 '차별적 요소'로 보려는 사회구조적인 면에서 찾게 된다. 우리가 속해서 살아가는 '사회'가 그런 차이점을 악용해서, 여자에게 불리하고 남자에겐 유리하게끔 '운영체제'를 마련해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다시 말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공평한 경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치사하게 편파적인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니 치사해서 '아이'를 더는 낳아주지 않고, '섹스'도 해주지 않는 방법 따위로 '남자에게만 유리한 사회'를 만드는 운영체제에 빅엿을 먹이려 하지만, 더 괘씸한 것은 그런 못된 남자들이 '기득권'을 이용해서 수천 년 전서부터 '전통이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여자들을 농락하고, 서로 이간질하게 만들어서 '저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고서 마음 약한 여자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자의 행복'을 운운하며 남성들이 구축해놓은 시스템으로 쌓아놓은 엄청난 부를 이용해서 '여자들의 속물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여자의 삶'을 이용해먹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여자들은 팔자 고치는 쉬운(?) 방법으로 '돈 많은 남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만다. 값비싼 사치품으로 온몸을 두르게 하고, 의식주를 부티나게 꾸밀 수 있게 풍족하고 여유 있는 삶으로 도취시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속아넘어간 여자들은 날마다 백화점 쇼핑을 하고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서 '만족'을 외치게 하고, 다음날에 또 부족해진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서 남자들이 벌어오는 돈을 펑펑 쓸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여자의 행복'은 없다. 그저 남들의 '부러움'만 사고 있을 뿐, 정작 자신의 가슴을 충만하게 채워줄 행복감은 백화점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수짱은 어떻게 해서 '나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수짱은 그렇게 돈다발을 들고서 백화점을 털러 갈 여유도, 남자도 없는데 말이다.

진실한 행복은 '부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부자로 살면 매우 편리하긴 하다.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볼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 힘들이지도 않고 '내것'으로 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쉽게 얻어진 것으로는 찐하고 오래가는 '참행복'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쉽게 얻었으니 쉽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부자들은 대개 '싸가지'가 없다. 3편에서 만난 '주인의 딸, 무카이'가 딱 그런 경우다. 도쿄 시내에만 몇 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무카이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대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뭐든 다 쉽다. 그리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기 일쑤다. 힘들게 일해서 '카페 점장'에 오른 수짱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운데 반해, 어느날 갑자기 덜컥 '정직원'으로 들어온 무카이는 전혀 조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짤릴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일을 잘하라는 목적에서라도 '듣기 싫고, 하기 싫은' 것들은 조금도 참지 않는다. 그렇게 자기멋대로 일을 하다간 '사업'을 말아먹기 딱 좋지만, 그래도 짤릴 리가 없다. 아니 짤려도 '주인의 딸'이라는 위치는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절대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무카이에게 '행복'은 찾아가게 될까? 남한테 피해나 주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반면에 수짱은 '남들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인생이다. 왜냐면 전혀 '부러워 할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예쁘지도 않고, 번듯한 직장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쪼들리고, 결혼도 못했고, 연애도 하지 않고, 결국엔 그렇게 살다가 홀로 늙어서 '빈곤한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수짱은 '나답게 산다'고 말한다. 남들 기준으로 봤을 때 '부러워할 것'이 전혀 없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맛있다'며 먹어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맛있는 요리를 남편과 자신의 아이들에게 먹여주는 기쁨이 더해진다면 더욱더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짱은 그런 과분한 기쁨을 맛볼 수 없다. 그럴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짱은 행복할 수 있다. 수짱답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필요한 게 있을까? 이미 행복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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