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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2월
평점 :
[My Review MCMLXXXIV / 이봄 12번째 리뷰] 초고령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 이제 '베이비부머'의 끝자락 세대인 74년생이 만 50세를 넘겨서 중장년층의 절반 이상이 '고령 인구'로 편입되고 말았다. 이제 '인구 절벽'을 맞아서 5000만 명이던 인구는 급감을 하고, 늦어도 2050년이 되면 '한국인 멸종' 사태를 맞게 될 거라는 걱정어린 전망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를 맞이했던 일본이었는데, 한국보다 2배가 많았기에 그 속도는 우리보다 한층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런 관점으로 이 책 <평균 연령 60대 사와무라 씨 댁> 시리즈를 읽다보면 생각할 거리가 참 많아지게 된다.
각자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맞이한 '노년의 삶'이란 주제가 퍽 절박하게 와닿는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따라주지 않고, 젊어서는 힘들고 아파도 금세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기운차게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노인'이 되니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놀려고 해도 놀 거리가 없다. 그렇다고 젊었을 때처럼 하려니,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정년퇴임을 하고 이제 '고희(70살)'를 맞이한 사와무라 씨가 딱 그렇다. 그래도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연금'이 부족하게 나오는 편은 아니지만, 노인으로 살다보면 그게 또 넉넉하지만은 않다. 앞으로 '벌 수 있는 돈'보다 '써야할 돈'이 늘 많은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렸다간 '질병'을 얻는 것보다 더 무서운 '빈곤'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건강부터 챙겨야겠다고 집근처의 '헬스장(일본에선 '짐'이라고 한다. 헬스장이란 명칭은 '성행위를 하는 장소'라는 좀 야한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을 찾아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 '짐코치(헬스 트레이너)'가 인바디 검사결과를 보고서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는 말을 듣고서는 베시시 웃고 말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코치가 다른 회원에게 가서도 똑같은 멘트를 하는 것을 엿듣고는 씁쓸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와무라 부인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에 '전업주부'로 쭉 살았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늘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몸에 베어서 남편이 통 크게 한턱 쏜다는 말을 해도 정말 먹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알뜰하게 생활하는 것이 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소소한 행복'을 위해서 질러야 할 땐 질러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 먹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절약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살아야 하는 걸까? 젊어서는 젊기 때문에 '고생'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늙어서는 늙었기 때문에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평생을 '고생'과 함께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고생'과는 이별하지 못하고, 또 참고 참으며 남은 생마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만족'스러울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과감히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런 부모와 평생을 '한 집'에서 살아가는 히토미 씨는 어떨까?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마흔 살'이지만, 연애할 상대가 나타나면 언제든 화끈한(?) 연애를 할 거라고 매년 다짐한다. 하지만 새해가 지나면 또 어김없이 '솔로'다. 한 회사에서 18년 동안 일을 한 베테랑 직원이지만 '일의 성취욕'은 그닥 없다. 그저 평범한 '오피스레이디'일 뿐이고, 결혼과 동시에 미련없이 그만 둘 수도 있는 그저그런 직장일 뿐이다. 이렇게 솔로로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고(?) 있는 여성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히토미 씨에게 '변화'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할 뿐, '딴 데'로 새거나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 이렇게 변화가 없는 걸까? 비단 '딸, 히토미 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와무라 씨 댁의 가족 전부가 '변화'가 매우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것에만 막연히 두려움을 가진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탈출하기 위해서 '변화'가 절실하지만 딱히 '변화'할 만한 껀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변화'가 지금 누리고 있는 '안정된 삶'조차 무너뜨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불안감은 더욱 커질 뿐이다. 젊다면 '맨땅을 맨손으로도' 바꿀 용의가 있지만, 현재의 늙음이 그럴 용의조차 들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와무라 씨 댁의 문제는 '일본 전체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90년대부터 시작한 '잃어버린 30년 체제'가 일본사람들 모두에게 활기를 빼앗아버렸다.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은데, 그조차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를 지나보내고나니 남은 것은 '노년'이라는 나이만 남았다. 물론 부족한 것은 없다. 그러나 넉넉한 것도 없다. 이제라도 뭔가를 해보고 싶지만 딱히 해볼 것도 마땅히 없다. 일본 사회 전체가 그렇게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물론 '일본의 방식'을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던 시절의 관행은 난 정말 싫다. 일본은 일본이고, 한국은 한국이지. 왜 우리가 '일본의 문제'까지 고대로 답습할 것이라고 전망한단 말인가? 그런데 '초고령사회의 문제'만큼은 전세계가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인구 절벽'을 경험한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사와무라 가족의 문제점'은 우리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느냐? 그건 또 아니다. '문제제기'는 있지만 그에 대한 '대안제시'는 딱히 없기 때문이다. 마스다 미리 작품 거의가 대부분 이렇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나쁜 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정답'을 확신하는 책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초고령사회의 해법은 무엇일까? 좀 더 읽고 난 뒤에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