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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평점 :
[My Review MCMLXXX / 이봄 10번째 리뷰] 수짱 시리즈의 마지막편이다. 하지만 마스다 미리의 여러 작품속에서 '수짱'은 간헐적으로 등장하곤 하니 앞으로도 꾸준히 등장할 것이 틀림없다. 수짱의 팬이라면 여전히 기뻐할 일이 틀림없다. 1편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이다. 제목대로 '삼십대 독신여성'으로 접어든 수짱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는 2편에 해당하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가 먼저 출간되면서 열혈독자들을 빠르게 끌어모았다고 한다. '삼십대 여성들의 모든 고민'을 담았기에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3편인 <아무래도 싫은 사람>에서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함께 일하는 동료 때문에 하게되는 걱정과 분노, 아니면 그 사이의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만나는 수짱의 고민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4편 <수짱의 연애>에서는 뒤늦게 만난 것 같은 '운명적인 사랑'에 설레이는 수짱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뭔가가 아쉽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빈곳을 채우는 것 같은 '꽉 찬 느낌'을 느끼고 싶지만, 그게 맘처럼 잘 안 되는 수짱이 일상을 이제 5편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에서 만날 수 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직장을 가진 여성으로서 '일과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완벽함일까? 아니면 흔히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달성해서 남 부러울 것 없이 풍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그걸 완수할 수 있는 나이는 서른 살일까? 마흔 살일까? 혹시 마흔다섯 살에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만족스럽고 '나답게'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쉽지 않다. 어느 것 하나 맘에 쏙 드는 '정답'이 없으니 말이다.
수짱도 그렇다. 마흔 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어린이집 급식담당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서른 살에 시작한 '결혼', '연애', '임신' 같은 것은 10년이 지나도록 점점 더 '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갔다. 카페 점장으로 승진했을 땐 살짝 기쁘기도 했고, 일에 대한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지만, 카페 주인의 딸 '무카이'와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사직서'를 내고 다른 직장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짱이 좋아하는 '요리'를 더욱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요리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오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전화위복'을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연애는 가물가물하고, 결혼은 점점 가능성을 잃어간다.
여자의 일생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분명 남자의 일생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남녀의 차이를 '차별적 요소'로 보려는 사회구조적인 면에서 찾게 된다. 우리가 속해서 살아가는 '사회'가 그런 차이점을 악용해서, 여자에게 불리하고 남자에겐 유리하게끔 '운영체제'를 마련해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다시 말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공평한 경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치사하게 편파적인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니 치사해서 '아이'를 더는 낳아주지 않고, '섹스'도 해주지 않는 방법 따위로 '남자에게만 유리한 사회'를 만드는 운영체제에 빅엿을 먹이려 하지만, 더 괘씸한 것은 그런 못된 남자들이 '기득권'을 이용해서 수천 년 전서부터 '전통이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여자들을 농락하고, 서로 이간질하게 만들어서 '저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고서 마음 약한 여자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자의 행복'을 운운하며 남성들이 구축해놓은 시스템으로 쌓아놓은 엄청난 부를 이용해서 '여자들의 속물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여자의 삶'을 이용해먹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여자들은 팔자 고치는 쉬운(?) 방법으로 '돈 많은 남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만다. 값비싼 사치품으로 온몸을 두르게 하고, 의식주를 부티나게 꾸밀 수 있게 풍족하고 여유 있는 삶으로 도취시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속아넘어간 여자들은 날마다 백화점 쇼핑을 하고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서 '만족'을 외치게 하고, 다음날에 또 부족해진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서 남자들이 벌어오는 돈을 펑펑 쓸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여자의 행복'은 없다. 그저 남들의 '부러움'만 사고 있을 뿐, 정작 자신의 가슴을 충만하게 채워줄 행복감은 백화점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수짱은 어떻게 해서 '나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수짱은 그렇게 돈다발을 들고서 백화점을 털러 갈 여유도, 남자도 없는데 말이다.
진실한 행복은 '부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부자로 살면 매우 편리하긴 하다.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볼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 힘들이지도 않고 '내것'으로 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쉽게 얻어진 것으로는 찐하고 오래가는 '참행복'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쉽게 얻었으니 쉽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부자들은 대개 '싸가지'가 없다. 3편에서 만난 '주인의 딸, 무카이'가 딱 그런 경우다. 도쿄 시내에만 몇 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무카이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대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뭐든 다 쉽다. 그리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기 일쑤다. 힘들게 일해서 '카페 점장'에 오른 수짱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운데 반해, 어느날 갑자기 덜컥 '정직원'으로 들어온 무카이는 전혀 조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짤릴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일을 잘하라는 목적에서라도 '듣기 싫고, 하기 싫은' 것들은 조금도 참지 않는다. 그렇게 자기멋대로 일을 하다간 '사업'을 말아먹기 딱 좋지만, 그래도 짤릴 리가 없다. 아니 짤려도 '주인의 딸'이라는 위치는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절대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무카이에게 '행복'은 찾아가게 될까? 남한테 피해나 주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반면에 수짱은 '남들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인생이다. 왜냐면 전혀 '부러워 할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예쁘지도 않고, 번듯한 직장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쪼들리고, 결혼도 못했고, 연애도 하지 않고, 결국엔 그렇게 살다가 홀로 늙어서 '빈곤한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수짱은 '나답게 산다'고 말한다. 남들 기준으로 봤을 때 '부러워할 것'이 전혀 없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맛있다'며 먹어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맛있는 요리를 남편과 자신의 아이들에게 먹여주는 기쁨이 더해진다면 더욱더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짱은 그런 과분한 기쁨을 맛볼 수 없다. 그럴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짱은 행복할 수 있다. 수짱답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필요한 게 있을까? 이미 행복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