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CMLXXXIII / 이봄 11번째 리뷰] 마스다 미리의 책은 '순서'를 잘 모르겠다. 애초에 '순번'이 없이 나와 있으니 무턱대고 손이 가는대로 읽긴 하는데, 읽다보면 뭔가 '차례'가 있는 듯한 감이 오고 '나중'에서야 그 차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마니악'적인 우월감(?)을 뽐내는 듯해서 기분 나쁘다. 진정한 팬이라면 '숫자'가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애초에 '진입장벽'을 없애면 그런 불편조차 없지 않겠는가. 뭔가 기분 나쁘다... 시작부터 '불평'을 쏟아내고 말았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 대개 '이런 식의 서술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조금 흉내를 내보았다. 뭔가 '디테일'이나 '엣지'가 느껴지는 불평이지만, 그렇다고 머리 위에 '전구'가 번쩍이거나 '무릎'을 탁하고 치는 그런 날카로운 맛은 없다. 그저그런 밍밍한 불평투성이다. 그런데 그게 또 '마스다 미리'만의 맛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뭐 이런 맛이 있지 싶다가도 자꾸 먹다보면 그 '이런 맛'에 길들여져서, '뭐, 나름대로 이런 맛도 나쁘지 않네'라고 하게 되는 그런 맛이다.
'평균연령 60세'라는 표제가 지닌 뜻은 '한 가족'에 '세 식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버지 70세, 어머니 69세, 그리고 딸 40세, 그래서 평균으로 약 60세인 세 사람이 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게 뭐 그리 이상한 걸까? 연로한 부모를 '독신녀(흔히 말하는 '노처녀')'가 부양하고 있는 '평범한 가정'인데 말이다. 아닌가? 노총각이면 자연스러운데, 노처녀가 부모를 부양하면서 살아가는 것..노부부에게는 '연금'이 나오고 있으니, '완전한 부양'도 아니지만, 암튼 다 큰 딸이 '출가'도 하지 않고, '독립'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비치는 모습이 딴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마스다 미리의 작품에서 그닥 새롭지가 않다. '독신여성'이 주인공인 것이 전부이다. 처음 접했던 <내 누나>에서는 30대 독신녀, <수짱시리즈>에서는 30대에서 40대까지 꾸준히 독신녀, 그리고 <주말은 숲에서>에서도 40대 독신여성이 주인공이었다. 혹시 작가도 '노처녀'인가? 69년생이니 한창 시리즈를 연재할 때에 3,40대가 맞긴 하다. 그렇다고해서 작품속 주인공들이 딱히 '독신'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들의 수다내용은 대개 '결혼'이거나 '연애할 멋진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딱히 결혼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 그저 '멋진 남성'이 없기 때문에 할 생각도 없다는...아니면 이미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겨버렸기에 '경쟁에서 패배한 개'마냥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전부다.
이를 두고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썼다. 연애나 결혼 상대자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요행히 '가슴 설레는 이성'을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착각하기 쉬운 것은 '매력적인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지, 그런 사람만 발견한다면 '사랑의 감정'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롬은 이러한 생각을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기보다 그릴 대상만 발견하면 그림은 '저절로' 그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사랑은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만나고 부딪히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스다 미리'의 작품속 독신여성들은 애초에 '사랑의 기술' 따위는 전무하다. 그저 우연히 그루터기에 머리를 박고서 손쉽게 얻을 토끼를 기다리는 사냥꾼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자신을 '경쟁에 패배한 개'로 비유하는가? 30대면 늦었고, 40대면 연애나 결혼은 아예 불가능한가? 물론 생물학적 나이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서 불리한 조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그런 불리한 조건을 초월하곤 한다. 그런 사랑을 위해서, 아니 그런 사랑을 원한다면 과감히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런 점에서 마스다 미리의 '자조 섞인 주인공들의 푸념'이 살짝 귀에 거슬리곤 한다.
물론, 그러한 삶도 있다. 사와무라 히토미처럼 '1인 생활' 경험은 전무하고, '입사 18년차'에 베테랑 경력사원이지만 뭔가에 치이듯 무력감을 느끼고, 뭔가에 쫓기듯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3인조와의 수다'뿐이다. 3인조라 함은 히토미처럼 독신여성인 친한 친구들을 말한다. 그녀들도 그녀 주변의 온갖 것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고 함께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해방감'을 만끽하곤 한다.
여기까지라면 <수짱 시리즈>를 비롯한 여타 작품들과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 히토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알콩달콩 투닥토닥이 가미되면서 '차별화'를 꾀한다. 그런데 이 둘의 대화는 또 <내 누나>에서 보여줬던 '누나'와 '남동생'의 대화 방식과 또 유사하다. 그들 대화의 '노령 버전'이라고 하면 딱일 듯 싶다. 거기에 '황혼이혼'의 이슈가 컸던 일본이기에 살짝 위태위태(?)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물론 '황혼이혼'을 꺼낼 정도로 둘 사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의 '긴장감'을 엿볼 수는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식이는 나빠요' 버전의 우스개소리가 유행한 것처럼 일본사회에서도 '정년퇴임'한 남편의 식사를 어디까지 챙겨줘야 하는지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논쟁을 벌이는 유사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 결론은 회사에 다닐 때처럼 아침, 저녁은 챙겨주더라도(이식이), 주부인 본인들도 다 늙었는데 '점심'까지 챙겨주는 '삼식이'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아침만 챙겨주고 저녁은 외식으로 간단히 떼우는 '일식이'면 더 좋고, 차라리 직접 요리를 해서 아내에게 대접하는 '영식이'라면 대환영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도 어느새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남자와 그런 뒷모습(또는 비주얼이 된다면 '앞모습'도 좋고)을 그윽히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성의 모습을 아주 빈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플렉스 #성공적 #로맨틱 이라는 '해시태그'로 SNS에 올리면 좋아요와 구독을 꾹꾹 눌러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남성들도 이런 장면에서 '앞치마 코스프레'를 한 여성과 므흣하게...쿨럭쿨럭
어쩌다 보니, 중구난방 '여행이야기'는 하나도 꺼내지 않았는데, 책속을 들여다봐도 '여행이야기'는 그닥 많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평범한 일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굳이 먼 여행을 떠나서 남의 집 담장 밑에 있는 화분속 꽃사진을 찍는 것이 대단히 유별나다고 느낀다면 굉장히 싱숭생숭할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