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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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L / 이봄 4번째 리뷰] 역시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수짱 시리즈'부터 읽어야 했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마스다만의 필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수짱의 입을 통해서 '30대 여성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그 솔직함이 너무 과해서 때로는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여자의 일생'을 대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여성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면서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기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또 '문제화'가 되어 여러 사람들을 골치아프게 만드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하여 머뭇거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성숙하지 못하다'는 반증인 것 같아 아쉽게 한다.

이 책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주로 '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문제제기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여성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이 문제들이 '일본사회'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비슷한 경제상황을 겪고 있는 수많은 '선진국 여성들'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유교적 여성관'을 지닌 동아시아여성만의 독특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수짱이 던지는 질문들은 이들 모두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한국여성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마스다 미리의 책들이 수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얻은 것 같다. 그럼 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30대 여성은 충분히 젊은가? 라는 질문부터 던져보자. 최근에는 여성의 평균수명이 80살에서 90살을 넘보고 있으니, 30대라면 상당히 젊은 편에 속한다. 앞으로 50~60년을 더 살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30대 여성이라도 요즘에는 상당히 '예쁘다'고 할 수 있고, 심지어 '젊어 보이는 나이'라는 점에선 논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30대 여성들은 충분히 예쁜 나이이고, 젊은 나이인데도, 주위에서 '예쁘다', '젊어 보인다'는 얘기에 민감하다. 20대 때만해도 당연하게 듣는 소리였는데, 왜 '서른살'이 넘으면 그런 얘기가 칭찬으로 들리고, 그런 얘기를 더욱더 갈구하게 되는 걸까? 아직 40대가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나이'로 판단을 해보면, 30대 여성은 꽤나 늙은 나이에 속한다. 왜냐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나이로는 꽤나 늙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1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를 '가임기간'으로 봤을 때, 여자 나이 30살은 '여자일 수 있는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심리적 불안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나이다. 이는 '결혼연령'을 따지게 만드는 스트레스(압박감)를 동반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대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임신과 출산'이 의무사항(?)은 아닐지라도, 사회적으로 '여성의 능력'인 것만은 틀림없기에 웬지 '그 능력'을 과시할 수 있다가 슬슬 자신감이 떨어지는 시기이기에 '30대'라는 나이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 작동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거기다 20대에 비하면 '피부탄력'이나 '신체건강', 심지어 '화장발'조차 잘 먹히지 않은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리 전날 혹사를 했더라도 다음날 아침이면 개운하게 일과를 시작하던 20대와는 달리 30대로 접어들면 왠지 찌뿌둥한 것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라는 짜증이 밀려오는 것에서 기인한 불안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여성나이 30대는 여러 모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나이인 것이다.

그런데 수짱의 엄마와 고모가 모두 '30대 일본여성'이라는 것이 이 만화의 핵심사항이다. 수짱의 엄마는 '기혼'이고, 수짱의 고모는 '미혼'이다. 이렇게 '결혼유무'에 관한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이 이 책의 백미인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혼인 여성도, 미혼인 여성도 모두 '불만족스런 30대'에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기혼 30대 여성은 직장도 없이 경제적인 능력을 모두 남편에게 의지하고 '가사노동'을 하는 것만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아내'이자 '엄마'이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왜냐면 '같은 나이'인데도 어떤 친구는 '이혼'을 하고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자기가 번 돈으로 '외국여행'도 다니며,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섹스(?)도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날개가 꺾여버려 자유를 잃은 불쌍한 존재'로 여겨지는 탓이다. 그래서 자신도 '직장'을 구하면 어떨까?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또 '남편의 경제력'이 무능력한 탓으로 비춰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고서 흔쾌히 허락(?)까지 받아놓았지만, 이 또한 '주인(일본에선 '남편'을 '주인(主人)'이라고도 부른다)'에게 허락받는 것처럼 느껴저서 서글퍼진다. 왜 노예도 아닌데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미혼 30대 여성도 고민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수짱의 고모는 '자발적 백수'인 상태다. 직장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그냥 쉬고 있다. 물론 '집'도 있다. 그러니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냥 현재 느끼는 '자유'를 만끽하여 여유롭고 느긋하게 있을 뿐이다. 근데 자기 또래의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기르고, '가정'을 꾸리며 바쁘게 살아가는데 자신은 여유롭다는 것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휩싸여온다. 이대로 영영 결혼도 못하는 건 아닐까? 잃어버린 30년인데 영영 회사로 복귀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대로 늙어버려서 여성적인 매력까지 잃어버리고 그대로 늙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러면서 두 여성은 동시에 물음을 던진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하고 말이다. 21세기 일본에서 살아가는 30대 여성은 도대체 정말로 무엇을 가장 바라고 있는 걸까? 이걸 가지면 저것도 갖고 싶고, 고로케 살다보면 요로케 살아가야 바람직한 것이 아닐지 의구심이 밀려온다. 물론 이런 고민들은 '30대 남성들'도 똑같이 하곤 한다. 그러나 여성들과 비교하면 좀 단순(?)한 고민들이다. 왜냐면 남성들은 '생물학적 고민'도 40대 이후이고, '경제적인 고민'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서 풀어버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성들의 고민은 '경제적인 능력'에 함몰되어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남성들이 꽉 쥐고 있는 경제주도권으로 어느 정도 해결해버리곤 한다. 왜냐면 사회적으로 남성들의 취업은 꽤나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으레 '취직'을 해야 사람구실한다고 여겨서 취업을 할 의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다니던 직장에서 격려를 해주며, '자녀'가 생기면 더 많은 격려를 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남성들의 고민은 꽤나 단순한 편이다. 여성이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 육아를 할 때마다 '직장상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꽤나 소극적이다. 수짱의 엄마가 자신도 '직장'을 구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주인'이라 부르지 않고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결말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직장을 구하고서 '현실적인 문제해결'에 나선 것이 아니라 그저 '열린 결말'로 앞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여지만 남겨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2012년쯤의 일본사회에서는 큰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일본에선 아직도 '여성인권'적인 면에서 낙후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전세계적으로 큰 붐을 일었던 '미투사건'도 유독 일본사회에선 그 영향력이 미미했다. 그리고 아직도 일본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퇴사'를 하고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는 사회현상이 여전하다. 맞벌이를 하면 '남편의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랑하는 꼴이라면서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현실에서 수짱이 던지는 질문들은 여성독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선진국 여성들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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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읽다, 마음을 읽다 - 뇌과학과 정신의학으로 치유하는 고장 난 마음의 문제들 서가명강 시리즈 21
권준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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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XXIX / 21세기북스 32번째 리뷰] 뇌과학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수준이다. 그간 '뇌가 하는 역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내긴 했지만 '결과론'적인 결과일 뿐, 우리가 뇌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과학의 미래는 밝다. 해온 것보다 할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과학은 '윤리적인 면'을 경계해야 한다. 연구를 빙자해서 비윤리적인 '선'을 넘어버리면, 그건 '과학'이란 이름으로 연구가 아닌 폭력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가 하는 역할'을 속속들이 파악한 '뇌 지도'를 완벽하게 완성하게 되면 우려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인간의 뇌를 조종하는 게 가능해지면 '인간'을 조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을 조종해서 벌어질 일도 걱정이지만, 딱 한 사람만 조종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한 나라의 최고통치자'라면 두려운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뇌과학은 어디까지나 '질병치료'를 최우선 목적으로 두고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용되도록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 비단 뇌과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과학 연구분야는 충분히 감시감독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 '정신의학'에서는 어떨까? 우리는 오래전에 '정신질환'을 마음의 병으로 오해하고서 정신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뇌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모든 정신질환은 마음이 아닌 '뇌의 문제'임을 파악했다. 그래서 우리는 뇌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뇌의 특정영역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파악하는데 주력을 해왔고,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정신질환을 치료하는데 '호르몬'을 투여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법까지 알아내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과거에는 '불치병'으로 여기기도 했고, 엄청난 폭력적(?)인 방법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끔찍한 일도 저지르기도 했으나, 근래에는 그런 끔찍한 짓까지는 하지 않고 '뇌의 작용'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과 같은 정신질환을 완치에 가까운 효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왜 우울증이나 조현병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으로 잘못 오인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언론이 성급하게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한 탓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기도 하다. 주변에 감기 기운이 있는 환자가 있으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거나 '약처방'을 받아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유하는 것처럼 '정신질환'으로 인식되는 환자가 있다면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약처방을 받아 적극적으로 치유를 하도록 권하면 되는데, '정신질환자=범죄자'라는 등식을 먼저 떠올리고 외면하고 따가운 시선을 던질 뿐이니,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고,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를 통해서 '증상'을 완화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쉬쉬하며 감추다가 결국엔 더 큰 피해를 낳게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방차원'에서 정신병원에 갖다온 사실이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범죄자 딱지'를 붙여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사회적 문제가 끝내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질환이 부정적인 결과만 낳는 것이 아니라 '천재적 영감'을 떠오르게 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이미테이션 게임>, <아마데우스> 같은 것을 봐도 그렇다. 천재적 수학자, 과학자, 예술가 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떠올려 온 인류에게 위대한 축복을 안겨주기도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런 역사적 천재들도 살짝 비틀어서 바라보면 모두 '정신질환자'였을 뿐이다. 그러니 모든 정신질환이 다 악영향을 끼치는 나쁜 사람이라는 오해는 하지 않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통제 가능한 과학적 범주 안'으로 정신질환자들을 끌어들이고 품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이제 미래사회는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그때를 2045년쯤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아직은 실현불가능하지만 '뇌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을 결합시키는 일을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럼 인간은 '유한한 육체'를 버리고 '인간의 정신'만 따로 옮겼다가 '무한한 육체, 또는 기계'로 바꿔서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물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짓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에서만 말이다. 딴에는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이 서로 대결하는 양상으로 우리의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두운 미래가 아닌 밝은 미래를 전망할 수도 있다. 인간에겐 어렵고 복잡한 '단순반복적인 작업'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에겐 좀더 수월하지만 인공지능은 결코 할 수 없는 '창의적인 영역'을 도맡아서 서로 협업을 하는 미래사회를 말이다. 결국 뇌과학이 풀어낼 숙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니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적용하는데 '적극적 참여'를 할 수 있도록 뇌과학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해하기 힘들다면 최소한 관심이라도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과학은 윤리적인 틀 아래에서 밝고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뇌과학'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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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1 - 뮤직박스의 암호를 찾다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1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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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XXVIII / 그린애플 1번째 리뷰] 본격적인 '추리소설 탐독'을 준비하던 와중에 독특한 '탐정 소설'을 하나 발견했다. 무려 '프랑스 100만 부 판매 실적'을 선보인 베스트셀러다. 어린이책 치고는 대단한 실적이긴 한데 우리 나라보다 책 판매가 활발한 프랑스에서 '100만 부'가 대박인 것인지, 중박인 것인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이럴 때 '아는 지인'이라도 좀 있었으면 디테일한 궁금증을 해갈하면 좋으련만, 그조차도 없이 오로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것이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재미난 책을 찾아내서 스스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중이다.

이 책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는 '추리소설'이라기엔 많이 부족하다. 추리의 요소보다는 '프랑스 궁정'에 대한 배경묘사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 무척 재밌다. 실제 '역사적인 배경'을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공주 '엘리자베트(1764~1794)'로 실존 인물이다. 프랑스의 국왕 루이 15세의 손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엘리자베트의 오빠가 바로 '루이 16세'이고, 올케가 '마리 앙투아네트'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며 '베르사유 궁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왕실 가문의 사람들'이 펼치는 '궁정 이야기'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역사소설'인 것도 아니다. 실존 인물이 등장인물로 나오긴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지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몰입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톡톡히 보인 듯 싶다. 더구나 '공주'가 등장을 하니, 소녀 독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책일 것이다.

그럼 '탐정'은 언제 나오냐고? 글쎄, 이 책에서 '추리적 요소'를 찾기는 힘들다. 굳이 추리할 수 있는 내용이란 '암호 코드의 비밀'을 풀어서 '암호문'을 해독하는 장면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럼 '공주 탐정'이 하는 일은 무엇이냐고? 음...탐정 역할을 공주가 맡기는 한데, 실상은 그 '탐정 놀이'를 통해서 엘리자베트가 '수학 공부'를 대신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공주가 워낙 말괄냥이에 공부하고는 담을 쌓아서 간단한 덧셈과 구구단도 외우길 싫어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궁정 최고의 '가정교사(실은 '귀족 출신')'가 엘리자베트를 전담하여 교육을 실시했지만, 번번이 공부하기 싫다고 퇴짜를 놓기 일쑤인 엘리자베트 앞에서 두손 두발을 들고 '교육 포기 선언'을 국왕 앞에서 하는 것으로 소설의 이야기가 시작할 정도다. 하지만 새로운 온 '가정교사(역시 귀족 출신)'는 이런 엘리자베트에게 딱 맞는 교육을 실시하였고, 그 교육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탐정 놀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트가 '공주 탐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바로 하프시코드 연주를 하는 '뮤직박스'에서 아주 비밀스런 문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추리'가 시작되는데, 무려 3부작에 걸쳐서 세 가지 '뮤직박스'를 찾아내어 차례차례 암호문을 풀어내어 마침내 엄청난 보물을 찾아내는 것이 책내용의 골자다. 그렇지만 그 추리적 요소가 너무나도 간략하고 간단하게 서술되고 있어서 '추리소설'이라고 불리기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 책을 소개할 땐 '추리소설'이 아닌 소녀들이 좋아할 '어린이책'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적당할 듯 싶다.

여기서 '뮤직박스'라고 소개한 소재가 흔히 '오르골'이라고 불러주면 느낌이 좀 달라질 듯 싶다. 원래는 '뮤직박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는 '일본식 표현'인 오르골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 '뮤직박스'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우연히 발견된다. '하프시코드(피아노처럼 생겼지만, 그보다는 좀 작은 건반악기. 피아노의 전신으로도 불린다)를 연주하는 뮤직박스'가 아름다운 연주를 자동으로 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아름다운 연주에 맞춰서 '인형 연주자'가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 뮤직박스를 엘리자베트 공주가 실수로 망가뜨렸다가 다시 고치는 과정에서 그 속에 '비민암호문'이 적힌 쪽지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암호문의 내용은 '두 번째 뮤직박스'를 찾는 단서가 된다.

사건은 비록 매우 단순하지만, 그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공부하기 싫어하는 엘리자베트 공주는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도 배우게 되고, 평생을 함께 한 소중한 친구도 얻게 된다. 그리고 엘리자베트 공주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새삼 깨닫게 되는데, 과연 부러울 것도 없고 부족할 것도 없을 '아름다운 공주'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이 책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뮤직박스'에 담겨 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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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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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XXVII / 창비 9번째 리뷰]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한강의 소설들'을 뒤늦게 탐독하고 있다. 하지만 리뷰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노벨문학상의 무게감 때문이 아니라 '한강의 주제의식'으로 파고들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를 읽었는데 하나같이 다 어렵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그것에 대한 '감'을 잡고 싶다.

이 책의 말미에 한강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고통 3부작]으로 소개하였다. 물론 작가 본인이 이 작품들을 쏟아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니, 수긍이 가는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독자'인 내가 느끼기로는 이 세 작품은 [불편 3부작]이었다. 첫 번째에는 '채식'이 불편했고, 두 번째에는 '불륜'이 불편했으며, 세 번째에는 '정신병'이 불편했다. 세 가지 모두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고 포용하기에 너무도 불편한 것들이니 말이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따져볼 것이다.

'채식'이 불편한 까닭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유별나기 때문이다. 가리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닌 탓에 함께 식사할 때마다 '별도'로 챙겨주어야 하는 수고를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려 차원'에서 그런 정도의 수고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채식주의'가 나쁜 짓도 아니기 때문에 채식하는 사람을 차별할 근거는 전혀 없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채식주의자들에게 배려를 할 정도로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나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전통음식이 '육식'이 그리 많지 않지만, 철저하게 '비건'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한식'은 동물들의 절규가 한없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고기육수'가 그렇고, 각종 '젓갈'은 또 어떤가? '해물탕'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뚜껑을 열고 올려지는 '낙지 한마리'는 화룡점정일 것이다. 한 겨울 얼음위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또 어떤가? 그야말로 '살육의 현장'이고 '학살자들의 환호성'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덩치가 큰 '고래사냥'과 같은 것만 끔찍한 것이 아니다. '비건'을 선언한 이들은 그러한 모든 '살풍경'을 멈춰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채식주의자'들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은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불륜'의 경우는 좀 다를 것이다. 이건 '불편'을 넘어 부도덕하고 반인륜적인 범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과 전쟁>에서 보여줬던 '흔한(?) 일상'일지라도, 형부와 처제가 상간을 벌이는 일을 아름다운 예술로 포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몽고반점>을 읽다보면 그것이 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왜냐면 '예술의 세계'에서는 그게 또 말이 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위해서 '옷을 벗고 알몸이 되는 일'은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술이라 하더라도 '민감한 주제'일 수밖에는 없다. 더구나 예술을 빙자한 '외설'이 너무도 판을 치는 속물적이고 저급한 예술쟁이들이 허다하지 않은가. 이들은 외설인 '포르노그라피'를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부던히도 애를 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예술가든, 일반인이든 '예술'과 '포르노'를 구분하는 것은 너무 쉽기 때문이다. 그건 아름다움이 주는 '황홀감'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낯뜨거움'을 구분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그런데 형부는 처제의 '몸'을 예술적 도구로 삼아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꽃피우려 했으나 결국은 '상간'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냥 '범죄'다. <사랑과 전쟁>에서 보여지는 일상적인 불륜과 다를 바가 없다. 그나마 이것을 '예술'로 포장하려 했다면 아무도 모르게 '둘만의 예술'로 한정했어야 했을 것이다. 평생 비밀로 하고, 두 번 다시 시도되지 않았어야 '최소한의 예술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공개'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이었기로소니 '그 작품(몽고반점2)'을 어디에 내놓을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평생 비밀로 간직하고, 결국엔 '소멸'시켰어야 할 아름다움이었다. 지독하게 불편한 예술품이란 제목으로 말이다.

마지막 '정신병'은 앞의 두 작품의 불편마저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최종적 불편함'이었다. 정신병동에 입원할 지경이 된 영혜가 정말로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혜가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에서 보여준 행동들이 '나무 불꽃'에서 그 이유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영혜가 나무가 되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혜는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을 선택했으며, 겉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는 것이 편했고, 형부가 영혜의 몸에 직접 그려준 '꽃'을 보고 즐거워 했으며,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에 '물구나무'를 서고 다리를 벌리는 자세로 꼼짝 않고 있었으며, 동물이 먹는 '먹이'를 거부하고, 식물이 되기 위해 '햇빛'과 '물'만을 찾았고, '뿌리'를 내릴 자리를 찾아다녔다. 이런 행위 모두가 일반사람들에겐 그저 '미친짓'으로 보일 뿐이지만, 영혜 자신에겐 실로 중차대한 '순서'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지켜보는 독자는 '불편, 그 자체'다. 왜 그녀는 '채식주의자'로 멈추지 못하고, 끝끝내 '인간'이길 포기한 것일까? 과연 무엇이 영혜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나? 영혜, 스스로가 말하기로는 모든 것은 '꿈' 때문이라고 했다. 꿈에 나온 '얼굴'이 두렵고 무서워서 이 모든 '불편함'을 선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로 불편한 것은 '영혜의 미친짓'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폭력'이 미치도록 불편했던 것이다.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 옹색하고 옹졸한 것일까? 왜 한 사람의 '아픈 환자'를 이처럼 모질게 대하느냔 말이다. '유별난 사람'을 포용할 줄 모르는 사회는 끔찍하다. 모두가 정상인데 '비정상'인 것이 섞여 있으면 아름답지 못하고,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개성 넘치는 사회'가 주는 활력을 감안한다면, 넘치는 재능과 끼를 주체하지 못해 '색다른 개성'을 뽐내는 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영혜'가 보여주는 '유별남'을 그의 남편이 보듬어주고, 처댁 식구들이 감싸주고, 이웃들이 배려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영혜는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영혜가 뿜어내는 '불편함'도 더는 불편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각박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부던히도 애를 쓰고 살고 있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받고, 그것이 '손해'로 이어지면 참지 못하고 분노를 뿜어낸다. 그리고 그런 분노를 '폭력의 근거'로 삼아 정당방위라고 애써 포장한다. 자신의 속좁음, 옹졸함 따위는 무던히도 감추면서 말이다. 그래서 난 영혜가 보여주는 불편은 감당하려 한다. 지금까지는 나도 옹졸하기 짝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불편을 남에게 끼치게 되면 일단 주변사람들이 먼저 고통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런 고통도 우리가 함께 나누면 어떨까 싶다. 우리는 할 수 있을 듯 싶어서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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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토끼
김지윤 지음 / 반달(킨더랜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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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XXVI / 반달(킨더랜드) 1번째 리뷰] 사실 '유아'와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에 대한 정의는 굉장히 모호하다. 몇 살, 몇 개월부터 정확하게 어린이와 청소년을 구분할 것인지, 그 구분을 '나이'로 할 것인지, '지능수준'으로 할 것인지, '인지발달'이나 '정서발달'로 정할 것인지, 그 어떤 것도 우리 사회는 정한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미성년에 속하는 아이들을 유아, 어린이, 아동, 소아, 청소년, 미성년 등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으며, 여기에 무슨 기준을 따른 것인지 명확하게 밝힌 적도 없다. 그저 '학령'을 기준으로 만6세부터 초등학교 학생으로 부르고, 6년 동안의 초등교육을 2년 단위로 나눠서 '저학년(초등1,2학년)', '중학년(초등3,4학년)', 그리고 '고학년(초등5,6학년)'으로 부르는 것을 가장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 전을 '유아'로 부르고,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 '청소년'이라고 부르길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구분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학년에 따른 '교과편성'을 달리 했을 뿐, 정작 이를 받아들이고 배우는 '학생들의 수준편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6세 아이들인데도 어떤 아이들은 이미 초등3학년 수준의 학업능력을 갖추고 있는 반면에, 어떤 아이들은 '한글'과 '셈'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 이상한 현상이 공존하게 되고, 실제로 1학년 학생들의 수업내용은 '한글'도 떼지 못한 학생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그 내용의 '수준'도 어른이 겨우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고난도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학교는 아이가 들어갔는데 공부나 숙제는 학부모가 도맡아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담임선생도 학습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겐 '별도의 학원(공부방) 수업'을 듣고 학교에 보내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도대체 학교선생들은 뭘 가르치는...쿨럭쿨럭

각설하고, '그림책'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만 읽는 책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서 서론이 길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초등3학년'까지는 그림책을 부모님과 함께 읽으며 '배경지식'과 더불어서 '감성지능'까지 함께 익히는 것이 바람직할 정도다. 특히 '침대맡에서 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정서안정'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니 '그림책'은 어린 시절에 절대적으로 많이 읽어주는 것이 아주 유용하다. 그렇다고해서 '다양한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도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 서너 권을 반복적으로 읽어줘도 무방하다. 오히려 '익숙한 이야기'가 아이들을 안심시켜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이야기를 읽어주어야할 부담감을 덜게 되어 부모님의 얇아진 지갑 걱정도 날려 버릴 수 있다.

그럼, 아주 어릴 때는 부모가 대신 읽어주는게 맞겠지만, 한글을 떼고, 스스로 책을 읽을 나이가 충분히 되었다면 '그만' 읽어줘도 무방한 것은 아닐까? 정답은 '반반'이다. 물론 아이가 스스로 읽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리해도 좋다. 하지만 부모님께 읽어달라고 조르는 아이라면 계속 읽어주는 것이 더 낫다. 이때 부모가 사정이 있어서 읽어줄 수 없다면, 아이에게 '지금은 읽어줄 수 없는 사정'을 충분히 설명해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네 나이가 몇 살이데, 아직까지 응석을 부리는 거야", "이젠 너도 컸으니 스스로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해"라는 이유를 들면서, 억지로 떼어내려고 한다면, 아이가 '독서'를 싫어하는 계기로 작동할 수도 있으며, 아이의 정서에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그러니 젖을 떼고, 이유식으로 넘어가는 시기처럼 윽박지르며 반강제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으려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와 함께 책을 읽으며 즐기는 시간을 오래 끌고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학부모가 '그림책'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주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그림책'은 글보다 '그림'이 우선인 책이다. 그러니 '글자'만 읽어주는 단순한 독서법이 아닌 '그림'을 읽어주는 고난도의 독서법을 부모가 먼저 선행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그림'에서 스토리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흔히 '스토리텔링'이라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학부모는 '독서전문가'가 아니기에 한 권의 그림책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뽑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단한 비법'만 알아도 웬만한 전문가 뺨 칠 정도로 잘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먼저, 등장인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림책속에서 '주인공'을 찾아내는 것인데, 몇 번만 하면 아이들도 '주연'과 '조연'을 구분할 수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숨은그림찾기'하듯 그림책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다. 이 그림책 <복숭아 토끼>는 '제목'에서부터 주인공이 누구인지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 찾기가 굉장히 쉽지만, 다행히 책의 그림속에 주인공인 '토끼'가 제법 잘 숨어 있다. 더구나 우리 '민화' 형식의 그림체가 아주 형형색색 알록달록하게 강렬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색채 감각'을 익히기에도 아주 효과적인 그림책이다. 그렇게 '주인공 찾기'를 하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기'를 하는 것이다. 그럼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는 것'이 아닌 '주인공 찾기 놀이'로 이해하게 된다. 즉, 책을 읽는 '부담감'이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독서교육이 힘든 까닭은 아이들이 책을 '놀이'가 아닌 '학습'으로 인식해서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니 독서는 곧 '놀이'라는 공식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주어야 한다.

자,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을 해줘도 된다. 만약 아이가 아직도 책을 읽을 준비가 덜 되었다면, 아까의 놀이 단계를 계속적으로 반복해도 좋다. 물론 놀이책을 다양하게 바꾸면서 해도 좋고, 같은 책으로 놀이를 계속하게 될 때는 아주 조금씩 '주인공 토끼'가 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대강의 줄거리를 살짝살짝 가미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글자 강박'에 들려서 글자부터 읽으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직 아이가 '한글떼기 전'이라면 글자부터 읽을 게 아니라 '말'부터 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차피 '한글'을 떼기 전이라면 '아는 글자', '익숙한 글자'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전체를 리딩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가 '알고 있는 글자', '이해하고 있는 글자'부터 유혹을 하면서 차근차근 천천히 학습하길 바란다. 그리고서 '그림'만으로 대강의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이때, 될 수 있으면 '전문성우'의 흉내를 내면 좋다. 최대한 등장인물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연출하면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말이다. 또한 '상황'에 맞는 목소리로 리딩을 하면 아이들은 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고, 부모가 가리키는 '그림'에 주목을 하면서 이야기에 따라서 '그림'이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환상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연상법 훈련'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능력을 타고 났으니 특별히 가르치려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학부모는 아이와 함께 즐거운 책읽기에만 열중하면 된다. 억지로 읽어주는 건 생각도 하지 말고 말이다. 물론 아이의 상상력에 뒤쳐져서 학부모가 미처 쫓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테지만, 그럴 때에는 아이에게 '스토리텔링'을 맡겨도 좋을 것이다.

그럴 땐 학부모가 적절히 '발문(질문)'을 던지면서 아이가 더욱더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주의할 점은 '간단한 질문'이 아닌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대답을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 반대로 '간단한 질문'을 하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게 되면 아이는 '짧은 표현력'으로 대답할 말을 잊어버리고 답을 하는 부담감에 입을 꼭 다물 수도 있다. 그러니 최대한 질문은 구체적으로 길게 하고, 아이는 답을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어 '말문'부터 틔일 수 있도록 해주면 좋다. 여기서 명심하면 좋은 것이 바로 '칭찬'이다. 아이가 무슨 답을 하든 모두 정답처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과할 정도로 칭찬을 퍼부어주어라. 그래야 아이의 말문을 빨리 틔우고, 독서가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습득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당연지사다. 칭찬을 해서 춤을 추는 건 고래만이 아닌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서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니면 '즐거운 독서'를 함께 하고서, "또 읽어줘"라는 무한 되돌이표에 빠져들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시간을 '타이머'로 맞춰놓고 하는 방법도 있고, '횟수'로 맞춰 놓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는 '밥이 다 될 때까지',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라면서 '상황'으로 독서 종료를 맞춰 놓을 수도 있고, '특별한 글자'가 책 속에서 나오면 '그 글자'가 나올 때까지만 읽어주겠다고 정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특별한 그림'이 나오면, "오늘은 여기까지다"라면서 끝맺기를 해도 좋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약속정하기'다. 새끼손가락 꼭꼭 걸고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거, 알고 있지?"라면서 생활규칙을 지키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려주어야 한다. 이때 돌발상황으로 아이가 울면서 떼를 쓴다면, 무작정 달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엄마도 규칙 때문에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내일 다시 엄마랑, 또는 아빠랑 함께 다시 읽어줄게. 자, 약속!"이라면서 '새로운 약속'을 지켜야 바람직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면 좋을 것이다.

끝으로 이 그림책 <복숭아 토끼>는 우리 민화를 그림으로 선보여주고, 등장인물도 '민화'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물로 가득 채웠다. 그런데 우리 민화속의 동물들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토끼는 '다산'과 '장수'를 상징하고, 복숭아도 '장수', 봉황은 '왕'을 상징하며, 물고기는 '번성'과 '출세'를 의미하고, 호랑이는 '액막이'와 '산신령', 포도는 '다산'과 '풍요', 수탉은 '벼슬', 그리고 흑룡은 '수호신'이자 '비'를 내리는 영험한 동물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게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문양만 보고도 그 그림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으니, '예술적 교양'을 함양하는데에도 아주 탁월한 그림책이다. 더구나 우리 만화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색감'을 훈련시키는데에도 아주 훌륭할 것이다. 그림책이 비싼 이유도 바로 이렇게 '활용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왕 책을 구매하셨다면 뽕을 뽑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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