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1 만화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1
김수지 그림, 권용찬 글, 보도 섀퍼 원작 / 아울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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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My Review MCMI / 아울북 23번째 리뷰] 소설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가 나온 게 2001년이었다. 마땅한 '경제동화'가 전무했던 시절이라 이 책은 나오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무려 어린이책으로 150만 부 판매고를 올린 대박책이었다. 그래서 이듬해 '만화' 버전이 나왔고, 모두 9권의 키라 시리즈가 연이어 히트를 치는 등 대단했다. 하지만 25년 현재는 모든 책들이 '판권 소멸'로 인해서 절판된 상태다. 중고거래를 통하거나 가까운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다. 왜냐면 무려 20여년 전의 경제 트랜드를 따르고 있어서 '요즘 경제 트랜드'에 비해서 살짝 뒤쳐진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을 가치도 덩달아서 뒤쳐졌을까? 그건 아니다. 트랜드가 낡았다고해서 '경제의 기초', '돈 버는 방법의 기초'가 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제의 기본개념은 '옛날 방식'이 더 탄탄했기 때문에 지금 읽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본다.

작가인 '보도 섀퍼'는 독일의 경제문학가로 유명하다.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에 이어 속편인 <열세 살 키라>를 써서 '돈 부자'가 된 키라가 '마음 부자'까지 된다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는 이미 <이기는 습관>, <돈>, <멘탈의 연금술> 등으로 밀리언셀러가 된 작가로도 유명하다. 지금 나이 서른이 넘은 분들은 이 작가가 꽤나 익숙할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가 어떤 책인지 살펴보자.

이 책은 '열두 살 소녀'가 경제에 눈을 뜨게 되고 바라던 소망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고 마는 성장 동화이다. 그 원작동화를 '학습만화'로 옮겨 놓았을 뿐이다. 줄거리는 키라가 '말하는 개, 머니'와 만나면서 시작한다. 키라의 부모님은 넉넉하진 않지만 알뜰살뜰 열심히 사는 맞벌이 부부다. 그런데 키라에겐 꿈이 생겼다. 그런데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족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 '용돈절약'부터 시작했는데, 그런 식으로는 무려 30년 뒤에나 이룰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때 '말하는 개, 머니'가 키라에게 부자가 되는 비결을 하나씩 알려주게 된다. 그 비결의 첫 번째는 '계획세우기'이고, 두 번째는 바로 '실천하기'다. 그렇게 키라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머니의 조언에 따라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곧장 '실천'하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것이 바로 '개 산책시키기 사업'이다. 1권의 내용은 여기까지이고 다음 단계에서 본격적인 '사업키우기' 비결이 소개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대히트를 치면서 우리 나라에도 히트작이 나왔었다. 바로 <예담이는 열두 살에 1000만 원을 모았어요>(명진출판, 2003)이다. 줄거리는 예담이라는 어린이가 7살부터 12살까지 집안일을 도우며 용돈을 모아 1000만 원을 모았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열두 살 키라'와 비교해보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소녀 키라는 '개 산책'이라는 사업을 통해서 수익을 냈지만, 한국 소녀 예담이는 '집안일'을 도우며 용돈을 모아 몫돈을 마련했다. 이는 2000년대 당시 독일어린이와 한국어린이의 실제 경제모델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참고로 <13살의 경제학, 돈은 이렇게 버는 거야>(보물창고, 2009)에서 나오는 미국어린이는 '잔디깎기'와 주식투자로 엄청난 돈을 번다. 이렇게 2000년대 이후로 '어린이경제책'은 엄청난 이슈몰이를 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어린이들이 실제 사업을 하고,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까? 예담이의 예를 들어보자. 7살부터 12살까지는 5년 남짓이다. 그동안 용돈을 모아서 1000만 원을 만들었다면, 한달 용돈 약 17만 원씩 모은 셈이다. 지금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7살 어린이에게 17만 원의 용돈을 줄 수 있다손치더라도 20년 전의 어린이는 언감생심 10만 원 이상의 용돈을 받는 어린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예담이가 집안일을 도왔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집안일을 했다고 10만 원이 넘는 용돈을 추가로 줄 수 있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경제교육을 위한 책이라도 '실현가능성'이 있는 얘기를 해야지, 100만 원도 아니고 1000만 원을 모았다는 거짓말을 하면 어떡하냐면서 말이다. 다시 키라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과연 '개 산책시키기 사업'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은 어느 정도일까? 책속에서는 '시간당 3만 원'을 예로 든다. 물론 전문가에게 맡겼을 때 금액이다. 그래서 키라에게는 '시간당 2만 원'선에서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개 산책을 시키면 하루 4만 원의 일당을 받게 된다. 한 달이면 120만 원이다. 1년 내내 했다면 1440만 원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열두 살 어린이가 벌 수 있는 금액일까?

하지만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는 예담이처럼 비판을 받지 않았다. 왜냐면 돈의 액수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사업 마인드'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용돈벌기에 그치지 않고, 이를 '정식 사업'으로 키워서 올바른 경제개념을 배울 수 있는 학습의 장으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담이의 집안일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결국 '집안일=부모의 경제사정'이 한계인데, 자녀에게 1000만 원 이상의 용돈도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던 대다수의 대한민국 가정에선 '예담이의 성공비결'이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개산책=동네 어른들의 경제여유'로 한계가 확장되었기에 얼마든지 1440만 원이라는 돈을 벌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독일과 달리 한국에서는 '개 산책'을 어린이에게 맡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달랐지만,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읽고 꿈을 키운 젊은이들이 '반려동물 파크/호텔' 같은 사업을 창업해서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더구나 '사업적 계획'을 키우면 키라 혼자서 '개 산책'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원'을 고용해서 수익의 일부를 나누어 주고, 키라 자신은 '사업 확장' 등 전문 경영자로 활약하며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본격적인 사업을 실시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면 키라는 '개 산책'을 직접 시키는 일에 대한 부담 없이 '수익'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예를 들어, 키라가 직접 개 산책을 시킬 때는 많아야 2~3마리지만, 직원을 고용하면 한 명을 고용할 때마다 2마리씩 더 산책을 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므로 10명의 직원을 고용하면 개를 무려 20마리나 '동시'에 산책 시킬 수가 있게 된다. 그럼 수익은 4만 원 X 2~3마리 = 8만~12만 원이지만, 4만 원 X 20마리 = 80만 원이 된다. 여기서 직원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2만원/마리당'을 제하면 40만 원이 된다. 둘의 수익 차이가 무려 대략 30만 원이나 나게 된다. 이게 바로 사업을 통한 '경제개념'인 것이다.

자, 제대로 된 '경제개념'을 이해하면 돈을 버는 양과 돈을 모으는 속도는 확연하게 달라지게 된다. 열두 살 어린이가 실현하기에는 너무 과한 설정이라는 비판은 할 수 있지만, 어릴 적에 익힌 올바른 '경제개념'은 성인이 되었을 때 창업의 벽을 허무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은 고작 '개 산책시키기'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는 그 아이디어는 더 크고 더 넓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요즘 조기경제교육의 트랜드는 '주식투자'이지만, 주식투자도 결국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창업을 하는 사업가가 없다면 '투자'할 회사도 없기 때문에 주식투자로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이 온다. 그러니 경제교육의 첫걸음은 언제나 '창업'이어야 한다. 비록 고전적 어린이경제교육 도서라 할지라도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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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에스프레소 요즘 금융 - 21가지 키워드로 풀어낸 흥미로운 돈의 진화
김종승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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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 / 한빛비즈 163번째 리뷰] 요즘 금융경제는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고 교묘(?)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나같은 '경제 문외한'은 따라잡기가 정말 힘들다. 요컨대 '이걸' 알면 '저것'도 알아야 하고, '저것'을 이해하려면 '그것'도 함께 알고 있어야 하는 식이라서 알면 알수록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래도 '최소한의 금융정보'를 알고 있어야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활용해서 '황금알(돈이 알아서 스스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얻을 수 있기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래야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0원이 되었을 때, 내가 보유한 자산으로 편안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노후 준비'가 아니어도 비교적 젊은 시절부터 '자산운용'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 방법 역시 '요즘 금융정보'에 민감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보물창고이기 때문에 늘 '최신 금융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발빠르게 투자하는 금융습관을 들이는 것만이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요즘엔 '조기 금융교육'은 필수이고, '경제학 상식'을 늘리는 것은 옵션이다. 따라서 금융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한다. 심지어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조차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상속세 등등 이리저리 다 떼이고 물려줄 것은 쥐꼬리만도 못할 테니, 죽기 전에 미리 '양도'하고 '분배'해서 손실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슬기로운 금융경제 생활의 기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 경제공부를 해야 하는데 '무엇'으로 해야만 하는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만큼 '이 책'으로 공부하면 '이 책'이 옳고, '저 책'으로 공부하면 '저 책'이 옳을 것 같은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섣불리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투자원금조차 홀랑 말아먹고, '보험상품'에 들었다가 엉터리 계약조건을 확인하지 못하고 원금손실을 당하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웬만큼 철저하게 공부하지 않고서는 가진 돈을 다 떼이고 난 뒤에야 빠삭해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가 일쑤다. 그렇기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하도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나는 분야가 '금융경제'이니 말이다. 그럼 이에 대한 적당한 답은 없는 것일까? 정답이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금융정보에 대한 장단점'을 모두 설명하고 있는 이 책 <경제 에스프레소> 시리즈가 적당할 듯 싶다. 이 책은 그 두 번째 책으로 <요즘 금융>의 최신 정보와 함께 이제까지 있었던 '경제 관련 소식'과 '금융정보의 장단점'을 함께 싣고 있어서 꽤나 유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경제 초보'인 나에게는 이 책조차 살짝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원금손실'이 무서워서 거의 모든 자산을 '저축예금'으로 묶어놓고 있고, 그나마 원금보장이 되는 '안정적인 투자상품'으로만 조금씩 자산을 불려나가고 있는 성향이라 이 책에서 말하는 '적극적인 투자상품'에 대한 지식은 사실 무서울 정도다. 이제 나이 50대에 접어드니 원금손실이 적더라도 '안정적인 운용'으로 착실한 수익을 내는 상품이 더 솔깃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인투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금융상품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두려움의 원인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원금손실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보다는 그런 '고위험상품'의 경제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투자상품도 그 원리를 알면 '리스크'는 줄이고 '수익률'은 높이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의 접근법을 잘 모르고, 정보의 진위나 가치도 판별할 자신이 없으니, 애초에 그런 고위험상품에 대해서는 발끝조차 담그니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런 금융경제정보를 10년이나 20년 전부터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면, 지금쯤이면 그런 금융정보를 알만큼 알게 되었을테니, 리스크가 아무리 크더라도 '여윳돈'을 굴려서 수익률을 높이는 성과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내가 향후 10년이나 20년 더 '경제활동'으로 월급을 벌 수 있다면 '소액투자'라도 굴려볼 수 있는 기회가 남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금융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실전연습'을 해본다면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금융공부'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이 정석이다. 꼭 고위험상품 가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속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금융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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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를 위한 초간단 습관
지미 모하메드 지음, 이연주 옮김 / 한빛비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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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CIX / 한빛비즈 162번째 리뷰]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새겨 들었어야 한다. 그 소중한 건강을 나이가 든 지금 잃고 나니 건강했을 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던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지금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젊었을 때는 몰랐으니까 말이다. 나의 20대는 정녕 '팔팔함, 그 자체'였다. 사흘 밤낮을 지칠 줄도 모르고 놀기 바빴고, 술에 쩔어도 취할 줄 몰랐으니 말이다. 30대까지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1년 중 설날과 추석 당일 이틀만 쉬고 363일을 '야근'과 함께 쉬없이 일만 해댔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덜컥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래도 일주일만에 훌훌 털고 일어나 또 쉼없이 몸을 혹사시켰다. 왜냐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다 40대가 되니 '내 몸의 노화'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걸음도 느려졌고, 뛰면 후달렸고, 계단을 오르면 심장이 아팠으며, 혈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으며, 혈당은 서서히..하지만 확실히 올랐다. 그렇게 50대를 맞이하니 내 몸의 건강은 '빨간불'이 켜지고 말았다. 각종 성인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단다. 일단 복용해야 할 약부터 4~5가지로 확 늘었다. 거기에 영양보충제까지 먹으니 먹는 약값만 해도 솔찮히 늘어났다. 젊어서 벌어둔 돈은 그렇게 탈탈 털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 결심을 했다. '체중 감량'부터 하자고 말이다. 의사 말이 그랬다. 체중을 '확' 줄이면 건강도 '확' 좋아질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얼마나 줄이면 좋겠냐고 물으니 20킬로그램 정도 빼란다. 작년의 내 체중은 홀딱 벗고 88킬로그램이었다. 키가 170센티미터 남짓이니 '고도비만'이 확실하다고 늘 그랬기에 20킬로그램을 빼는 것은 각종 건강지표에도 나와 있는 '표준체중'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88 - 20 = 68킬로그램이라는 것. 내 몸무게가 68킬로그램이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무려 35년 전의 몸무게로 되돌아가라는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체중감량에 돌입했다. 그리고 의사의 권고 이전에도 이미 살을 빼기 위해 노력중이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체중감량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지만 살은 빠지지 않고 '근육통'과 '관절통'만 심해졌다. 그리고 몸이 지치니 먹는 양이 늘어나 체중은 늘 그자리였다. 그래서 과감한 '식단조절'을 감행했다. 마침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출근시간이 오전 7시, 퇴근시간이 오후 4시로 바뀌었다. 근무연장이나 주말근무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첫 번째 시작이었다. 아침식사는 오전 4시30분, 점심식사는 오전 11시, 저녁식사는 오후 5시에 하기로 했다. 그리고 취침시간은 늦어도 밤 10시에, 기상시간은 아침 4시에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식단'은 탄수화물을 최소량으로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특히 '밀가루'는 완전 절식했다. 그동안 라면 2봉에 떡사리, 만두사리, 햄사리를 추가하고, 남은 국물에는 밥 1~2공기를 뚝딱하는 것이 한끼 식사였는데, 그걸 포기한 것이다. 그렇게 '면 요리'는 안녕을 고했다. 또 '빵'도 끊었다. 간식으로 즐겨 먹던 달달한 빵들은 그날 이후로 빠빠이했다. 그리고 '탄산음료'를 비롯한 각종 가공식품을 일절 먹지 않았다. 그렇게 1달이 지나자 5킬로그램이 빠졌다.

놀라운 변화였다. 주변에서 잘생겨졌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2달간 지속하니, 허리는 38인치에서 34인치로 확 줄었다. 3달간 지속했을 땐 무려 11킬로그램이 빠졌다. 작년 8월, 9월의 무더위속에서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나던 시기였던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별다른 운동을 하지도 않고 '식단'만 바꾸었을 뿐인데 10킬로그램 이상이 빠진 것이다. 당연히 혈당수치는 현저히 떨어졌고, 혈압도 확 줄었다. 그렇게 '식단조절'은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며, 6개월이 지난 현재 체중은 홀딱벗고 73킬로그램이 되었다. 무려 15킬로그램이나 빠진 것이다. 30년 전 군대 복무시절의 몸무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내가 경험한 '건강정보'가 고스란히 이 책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식단조절'이 가장 현명한 노화극복 습관이었구나 싶었다. 이 책에 나열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나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실천하며 '현명하고 건강한 습관'을 쌓고 있었다는 위안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습관을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만 이 책에서 언급한 건강정보 가운데 유일하게 실천하지 못한 것이 있다.

1.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기르기. (그게 힘들면 '일정한 시간'에 자고 깨는 습관)

2. 많이 걷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 기르기. (절대로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습관)

3. 소식을 하고, 낮잠을 즐기는 습관 기르기. (과식과 야근은 질병을 부르는 습관)

4. 당장 아프다고해서 무조건 약을 복용하거나 시술, 수술을 서두르지 말기. (자연치유의 힘을 믿는 습관)

5.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맹신하지 말고, 먹더라도 소량만 섭취하는 습관. (많이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됨)

이렇게나 좋은 습관을 현재 가지고 있고,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데, 내가 실천하지 못하는 유일한 건강습관이 있었다. 바로 '스킨십'과 '섹스'다. 이것만 갖추면 완전 행복한 습관을 갖출 수 있을텐데, 아쉽게도 현재는 '솔로'다. 손만 잡아도 좋으련만 그 손을 잡아줄 나의 엔돌핀, 테스토스테론, 세로토닌, 옥시토신, 각종 비타민이 되어줄 연인이 없다. 내 곁에 말이다. 이 책에서도 그렇게나 좋다고 강조했는데 말이다.

뭐, 어쩔 수 없다. 더 건강해지고 더 잘생겨지는 수밖에 없을 듯 싶다. 살이 빠지니 여기저기 '주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살이 쪘을 땐 피부가 팽팽해서 몰랐는데, 살이 빠지니 피부의 탄력이 줄어들고 주름이 지고 있다. 평소에 바르지도 않던 스킨로션을 꾸준히 발라봐야겠다. 겨우 건강해졌는데 확 늙어보이면 안 되니까 말이다. 이 책에 나온 건강정보를 일상 습관으로 기르기만 해도 정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참에 내게 부족한 '스킨십'과 '피부관리'도 챙겨서 더 건강한 생활 습관을 실천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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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내는 아이들의 생생 경제 교실 2 세금 내는 아이들의 생생 경제 교실 2
최재훈 지음, 안병현 그림, 옥효진 감수 / 샌드박스스토리 키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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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CVIII / 샌드박스스토리키즈 2번째 리뷰] 이 책은 옥효진 작가가 쓴 <세금 내는 아이들>의 '2차 저작물(학습만화)'에 해당한다. <세금 내는 아이들>도 어린이를 위한 책인데, 또 하나의 어린이책이 나와서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읽으니 '직업'은 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고, 필요의 유무에 따라서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새로 생기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직업선택'에 있어 좀더 유연한 생각을 지녀야 한다는 깨달음을 하루라도 빨리 각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면 아직도 대한민국의 뜨거운 교육열이 '한정된 직업군'에 몰려 있어 모든 아이들을 '대학졸업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인 걸까?

그렇다. 대학졸업자가 너무 많은 것도 분명 대한민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다. 물론 대학졸업을 하면 '좋은 직장', '월급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구하는데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대한민국 사회가 그 수많은 대졸자를 다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많은 직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오히려 상당수의 대졸자는 굳이 '학사 학위'가 없어도 취업을 할 수 있는 직업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직업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단순노무직'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리 선호하는 직업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대기업' 취업에 실패한 학사 이상의 학위소지자들이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중소기업'에 입사하거나, '9급 공무원직'에 취업해서 스팩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단 돈이 필요하니까 뭐라도 하다가 '대기업'에 빈자리가 생기면 언제라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면 그만큼의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이라고 나쁜 직장일까? 대기업 못지 않은 탄탄한 중소기업도 많으며, 실제로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소규모 기업이 참신하고 탁월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서서히 성장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런 성장기업들이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아쉽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현상을 '누가' 만들었느냔 말이다. 바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만든 '척박한 기업환경'이다. 인재를 기르는 학교가 아니라 '시험 잘치는 기계'를 만들어서 유명대학에 집어 넣는 것에만 골머리를 썩히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인 것이다. 말로는 '전인교육'에, '적성을 살리는 살아있는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면서, 기승전 '명문대'로 끝나고 마는 수많은 교육정책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과연 이런 교육풍토에서 세상을 놀라게 만들 '인재'가 나올 수 있겠는가?

애초에 '학사 이상의 학위'가 필요한 직업군은 한정되어 있다. 선진국에서도 그 수가 전체 국민의 4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90%가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도 50%의 대졸자는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이나, '하급관리직', 심지어 '비정규직'에 취업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럴 바에야 애초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졸 이후 '전문학교'에 진학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자격'을 갖추고서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것, 다시 말해, '창업의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국가로서 더 나은 현상이지 않겠느냔 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북유럽의 선진국들'이 바로 이런 식의 사회분위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실업자'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도 증명되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보다 '돈'을 벌어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던 시절에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사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면 당시에는 대한민국의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던 시절이었던 탓에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 수 있었고, 착실한 살림을 한다면 누구나 몫돈을 모아 '하고 싶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이 된 지금에는 '경제성장'은 둔화되기 시작했다. 성장동력이었던 '기업'들은 성장이 둔화되면서 새로운 일에 투자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사업, 확실한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되니 '새로운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자 대한민국 2030세대들은 직업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말았다. 그들의 학업스팩이 '단국 이래 최고의 스팩'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어떤 경제교육을 가르쳐야 어린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경제교육이 되겠느냔 말이다.

무엇보다 '실업자'를 줄이는 경제정책이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국민이 늘어나면 사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소소한 금액이라도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제공해주는 것이 꼭 필요한 까닭이다. 그래서 국가가 직업을 구해줄 수 없다면 '실업금여'라도 지급해주면서 국민들이 경제활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여기에 '전국민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을 함께 한다면 정신 똑바로 차린 국민들은 그 돈을 '밑천'으로 삼아 끝없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안정적인 경제생활 자금으로 활용해서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몫돈'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최소한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는 국민들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다가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도 실업자가 양산되어 늘어나는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에도 '기본소득'과 같은 것들이 국민들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단점이 우려된다면, 방법은 딱 하나만 남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직업'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이 넘치는 경제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만든 세상의 '직업'은 어차피 한계가 있다. 거기다 돈 많이 버는 알짜 직업은 더욱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래의 2030세대들은 '한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피말리는 경쟁만 해야 할까? 아니면 그 '한정된 직장'에서 시선을 돌려 전세계를 자기 무대로 삼고 '각자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교육의 장을 마련해야 할까? 십중팔구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명문대를 졸업해서 피 말리는 경쟁을 통과해서 소수의 몇몇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 게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살리고, '적성'을 살려,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방법만이 남아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이 책 <세금 내는 아이들의 생생 경제 교실>을 보라. 이미 <세금 내는 아이들>로 유명해진 책을 '원재료'로 삼아서 '2차 가공'을 한 뒤에 아주 유익한 '학습만화'로 재탄생했다. 원작의 훌륭함에 재미를 더해 독자들로 하여금 즐거움과 유익함을 전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더구나 '원작자'에게 저작권법에 의한 '저작권료'까지 지급을 하게 되니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늘어나게 된 셈이다. 2권에 해당하는 이 책의 내용에도 바로 이런 경제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아이들이 실제로 '월급'을 탈 수 있는 직업을 골라 학급생활을 하게 되고, 그 월급으로 '저축'도 하고, '투자'도 하면서 돈을 불릴 수 있는 경제지식도 쌓으며, 아이들이 직접 '선택한 직업'을 통해서 차곡차곡 수익을 내거나 손실을 보면서 '생생한 경제 활동'을 체험해볼 수도 있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국무위원이라는 '직업'도 경험해보면서 국가의 경제운용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경제상황을 익힐 수도 있다. 그리고 수익이 있는 곳에 '세금'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걷은 세금으로 '학급'에 필요한 경비를 스스로 충당하고, 생생 경제 교실에서 직장을 잃어버려 '실업자'가 된 학생들에게는 '실업급여'를 지급하며, 다시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는 경험까지 겪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실업자들이 '구직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창업'을 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도 격게 된다. 없던 직업을 '필요'에 의해서 새로 '창업'할 수 있다는 경험은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참지식이 될 것이다.

경제교육은 중요성은 이제 어린이들이 먼저 알아나가는 추세다. 그래서 어린이들도 직접 '저축예금'과 '주식투자'를 활용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원리를 실천하는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황금알(이자수익)'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황금알만으로 놀고 먹을 수 있는 안락한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도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업의 선택'에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근로의 의무'를 먼저 실천한 다음에 '이자수익'을 챙기면서 여유를 누리는 삶을 설계해야지, 자칫 하다가는 '투자'가 아닌 '투기'에 빠져 일확천금을 노리다 쪽박을 차기 일쑤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그런 투기와 같은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허투루 보지 않았으면 한다. 똑똑한 어린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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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3 : 말세편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My Review MDCCCXCVII / 엘릭시르 15번째 리뷰] <퇴마록 말세편>을 다시 읽고 리뷰하는 도중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비상계엄'이라니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20세기의 유물인 '냉전의 찌꺼기'인 이념대립을 아직까지 입에 올리며 '종북좌파'가 국회를 장악했다느니, '반국가단체'가 기승을 부려서 국정운영에 심각한 안보불안이 의심되고, 공정해야할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조작했으니 대한민국 통수권자로서 어쩔 수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 아닌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술 더 떠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적법한 절차를 거쳐 '비상계엄 해제'를 지시했고, 그간 실질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자신이 탄핵 당할 이유도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을 내놓고도 있다. 검사, 검찰총장 등 오랫동안 법조인으로 지낸 당사자이기 때문에 '법을 몰라서' 저런 말도 안되는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늘어놓을 '변명꺼리'도 없는 '빼박 내란범'이란 심판결론이 자기 머릿속에서도 이미 나왔기 때문에, 그저 시간만 질질 끌면서 '그 사이'에 뭔가 다른 급변사태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는 걸게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말세'는 신의 분노, 저주, 심판, 또는 '예정된 운명'이기 때문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락하고 부정한 짓을 저지르면 말세는 당연한 귀결로 우리 곁에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말세'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최종적 파멸인 셈이다. 인간이 만든 세상이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말세는 다른 양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른바 '종말론'이라 불리는 어마어마한 재앙, 피할 수 없는 천벌 따위로 말이다. '세기말 현상'이라고도 불렀던 종말론은 정말 다양했다. 종교적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예수의 재림',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 인간이 사는 세상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변해 모든 육신은 '정화의 불꽃'에 의해 태워져 한줌 재로 변할 것이고, 오직 독실한 믿음을 가진 몇몇 만이 '신의 선택'을 받아 영원한 구원, 영혼의 안식을 얻어 천국에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과학적 원인이 궁금했던 이들은 '태양계 행성들의 그랜드 크로스'가 이루어짐으로써 어마무시한 그래비티(중력)에 의해 그 크로스의 중심에 있는 지구가 한순간에 궤멸될 것이라는 예측도 했고, 공룡도 한순간에 멸종에 이르게 했던 '소행성 충돌'을 예언(?)하기도 했으며, 기후변화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때여서 '빙하기'가 찾아오거나 '지구결빙현상'으로 인해 모든 생물종이 멸종하게 되는 '여섯번째 대멸종'을 가설로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정 종교의 '종말론'은 다른 종교에선 '종말의 징조'가 없다는 이유로 반박 당했고, 온갖 과학적 예측도 번번히 빗나가면서 인류의 종말은 일종의 헤프닝으로 인식되며 사라지는 듯 싶었다.

그런데 2000년이 다가오면서 'Y2K'라는 새로운 종말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른바 옛날 컴퓨터가 '메모리 용량 한계'로 인해 1999년 다음 해를 2000년이 아니라 1900년으로 인식하여 오류가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전세계 주요 시설물들이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불안감을 조성한 것이다. 이를 테면, '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 제어 장치의 오류로 인해 발전소 폭발이나 그로 인한 엄청난 '방사능 유출'이 새해를 맞이하는 순서대로 일어날 것이라 우려를 나타냈고,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등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컴퓨터도 마찬가지 오작동이 일어나서 '핵전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가상시나리오가 퍼지면서 전세계는 또 한 번 '종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운영체제'로 바꾸고, '메모리 용량'을 늘리는 간단한 조치로 위험요소를 제거하여 해결해버렸다. 한마디로 '핵전쟁'은 없었다. 그 뒤로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 예언, 신흥 사이비종교의 등장 등등 종말론을 말하는 레퍼토리는 매번 반복적이라서 금새 식상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말세'는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말세의 도래'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더 강력해져서 찾아왔다. 첫째는 바로 '좀비의 역습'이었다. 좀비는 부두교 주술사의 저주와 약물로 인해 의식을 제어하고 오직 주술사의 명령에만 따르게 만든다. 일종의 '가수면 상태'에 빠진 것처럼 살아있지만 정상적인 생체반응은 거의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시체', '걸어다니는 시체'라는 뜻의 '언데드'와는 사뭇 다른 존재인데, 공포영화에서 이런 이미지를 따와서 '좀비'를 새로운 공포캐릭터로 만들어 퍼뜨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좀비는 마치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다가 '감염'을 일으키고, 감염된 사람이 '바이러스'를 퍼뜨려서 새로운 감염자를 만들어내는 양상과 비슷하면서, 실제 우리 일상속에서 엄청난 공포를 몰고 오게 되었다. 그 시작은 '사스 바이러스'였고, 그 뒤에는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팬데믹까지 이르게 만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왔다. 이밖에도 자연재해는 완전히 '재앙'의 수준으로 격상하여 인류가 살고 있는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바로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킨 인간의 활동이 그 원인이었다. 지구의 평균기온을 1.5도 올리면 '지구온난화'가 지속되고, 이렇게 따뜻해진 지구는 극지방의 빙하를 급속히 녹여 '해수면 상승'을 불러 일으키고, 올라간 해수면으로 '해안가 도시'는 바닷속으로 침몰할 수밖에 없고, 늘어난 해수량과 온난한 기후로 인해 엄청난 '수증기'를 품게 된 대기는 '물폭탄'을 떨어뜨리게 된단다. 한편 뜨거워진 대기는 식기 위해서 엄청나게 강력한 이동을 시작하고, 그런 어마어마한 대기의 이동은 강력한 태풍으로 바뀌어 전세계를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단다. 또 다른 곳에서는 뜨거워진 대기가 공기중의 수증기를 말려버려 '고온 건조'한 사막화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뜨거워진 대기를 빠르게 식히기 위해서 극지방의 찬공기가 저위도 지역까지 내려와 '강력한 한파'를 겪게 할 수도 있단다. 이쯤 되면 '말세'가 찾아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종말론'이나 '자연재해'는 인간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축에 속한다. 정말로 말세가 찾아오는 것은 바로 '정치불안'과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에서 온다. 지금 전 세계를 보라. 제정신을 가진 지도자가 없다. 그간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나라들에서 '정치적 불안요소'가 부각되면서 집권층이 안정적인 정치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태가 벌어져서 전세계 곳곳에서 '폭력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거기다 '경제적 불확실'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불만이 심화되고, 노인들은 연금을 안정적으로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타개해보겠다고 러시아와 이스라엘에서는 '전쟁'도 불사했다. 이에 호시탐탐 중국도 '대만침공'을 노리고 있고,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서 북한주민들을 러시아-우크라 전쟁에 총알받이로 수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모든 것이 정치불안과 경제위기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미국에서는 '트럼프 2기'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미국 경제도 나락에 빠지니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트럼프를 재집권하게 만들긴 했는데, 그가 가져올 정책들의 후폭풍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점이다. 유럽 각국도 '러시아의 행보'에 자극을 받아 재래식 무기를 서둘러 도입하는 양상이다. 2차세계대전의 종전 이후로 '군비감축'에 앞장 섰던 나라들이 다시 국방비를 늘리고, '무기 생산'에 열을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전쟁위협'이 실제로 다가왔다는 것이고, 그 위협의 강도만큼 정치불안과 경제위기는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정치불안'과 '경제위기'에서 안정적인가? 코로나 팬데믹 시기만해도 대한민국은 끄떡 없었다. 다른 나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실정일 때, 대한민국만이 유일한 안전국가로 인정 받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로 인한 '대외이미지 상승'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은 엄청 높아졌다. 그런데 '엔데믹'을 맞이할 즈음에는 '정치불안'과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부동산, 주식, 코인 투기열풍이 불면서 '경제위기'를 조장하더니, 급기야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정치불신'까지 이어지면서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정치적 불신을 종식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을 속이고, 여론을 갈라치기하며 정치판을 막장으로 몰고 갔다. 더구나 북한과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고, 대미와 대일 외교는 굴욕적인 자세로 일관하다가 끝내 대중국, 대러시아 외교는 끝장을 내는 멍청한 짓을 하고 만다. 그리고 연이은 부정부패비리 사건이 터지는데도 '야당탄압'을 더욱 심화시키고, 야당의 요구를 경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야당 대표'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 대표'를 범죄자로 내몰아 수감시킬 목적으로 수사를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야말로 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이 되고 말았다. 이에 국민들의 선택은 '거대 야당 만들기'였다. 국회의 190석 이상을 야당에게 몰표하는 식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윤석열'은 비상계엄이라는 내란을 저지르고 만다.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한 사전준비를 거쳐서 조직적으로 저지른 중대범죄라는 것이 '생중계'와 '언론뉴스'로 온국민들이 낱낱이 지켜보았다.

자, 그럼 '말세'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겠는가? 인간이 인간답지 못할 때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싸움은 끝나지 않으며 깊어진 갈등의 골이 결코 메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면, 결국 '말세'가 도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깊어진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끝장'을 보자는 대결양상으로 가게 된다면 말세는 바로 지금 이순간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본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교과서인 '평화적인 집회, 시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내 뜻과 '다를 지'라도 결과에 승복하고, 결코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대한민국은 '말세'를 멀리 할 수 있다. 물론 위험요소는 아직도 남아 있다.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달게 받지 않고 버티는 '내란수괴 윤석열'과 내란동조범들이 이미 끝장난 자신들의 운명을 달리 해보겠다고 대한민국을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비린내나는 유혈사태만큼은 피하는 우리의 모습을 전세계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말세의 도래'를 막는 방법인 것이다. 그처럼 첨예한 갈등을 보이면서도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퇴마록>의 밑바탕이 바로 이것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결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퇴마사들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저력'과 닮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말세편'으로 오면서 퇴마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단지 스케일이 커지는 것뿐 아니라 퇴마사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세력의 힘도 정말 어마어마하다. 1권, 2권, 3권까지 이어지면서 퇴마사들과 일행들은 몇 번의 죽음을 맞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기를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들의 목숨을 내버릴지언정 '악당의 목숨'을 구하고, 심지어 '악마의 소멸'마저 막아내려 온갖 애를 쓴다. 그렇게 클라이막스가 지나면 퇴마사들은 악당들과 손을 잡고, 악마들의 패배를 받아내며 아직 이 세상은 '말세'가 찾아오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는 아름다운 결론으로 마무리하곤 한다. 물론 스토리의 '연결'을 위해서 이런 퇴마사들의 '희생적인 선행'을 악당과 악마와 결탁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사서 '또 다른 집단'과의 대혈투가 벌어지는 식이지만 말이다.

심지어 3권에서는 '종말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세계 곳곳에서는 말세가 머지않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퇴마사들의 행보를 막아서는 '악역'을 자처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퇴마사들은 '말세'가 찾아오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막아서는데, 거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하고 있으니 상처난데 소금 뿌리는 격이 되고 있다. 이렇게 오해에, 오해를 부르는 상황전개가 살짝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주기도 하지만, 매 위기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퇴마사들에게 박수를 아낄 수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성경>의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예수를 모욕한 '아하스 페르츠'라는 인물이 등장한 점이다. 이때 예수가 아하스 페르츠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으라는 저주를 내렸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한 듯, 20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설정을 하며 '악인 중의 악인'으로 등장시켰다. 아니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지녔으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것이 아닌가? 그런데 <걸리버여행기>에서도 언급했듯이 나프타 사람들 가운데 '죽지 않는 사람'을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불리는 까닭과 같다. 나프타 사람들 가운데 죽지 않는 사람은 늙고 병들고 치매에 걸렸는데도 결코 죽을 수 없기에 불행한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퇴마록>에서는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의 저주를 받았던 '그때의 젊음'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허나 자신은 수천 년을 살 수 있지만, 자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 죽어버리는 현실이 '저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죽지 않는 사람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죽이려 들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의 권능'이 담긴 저주였기에 아하스 페르츠는 결코 죽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되려 아하스 페르츠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되려 죽음을 당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아하스 페르츠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처음에는 좋았다고 한다. 불로불사의 몸을 가졌으니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고, 시간도 무한으로 넉넉하니 서두를 일도 없었다. 그렇게 100년, 200년, ...1000년, 1500년, 2000년을 산다고 해보자.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고작 수백 년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고도 남을 시간을 살아가니, 점점 삶은 고통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기다릴 것이다. 허나 죽을 수도 없었다. 급기야 아하스 페르츠는 '주술의 힘'을 빌어 자신에게 씌워진 저주를 풀거나 혹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세상은 원망하고 망하게 만드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아하스 페르츠는 '말세'를 앞당길 방법을 찾다가 퇴마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연 퇴마사들은 아하스 페르츠를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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