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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3 : 말세편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My Review MDCCCXCVII / 엘릭시르 15번째 리뷰] <퇴마록 말세편>을 다시 읽고 리뷰하는 도중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비상계엄'이라니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20세기의 유물인 '냉전의 찌꺼기'인 이념대립을 아직까지 입에 올리며 '종북좌파'가 국회를 장악했다느니, '반국가단체'가 기승을 부려서 국정운영에 심각한 안보불안이 의심되고, 공정해야할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조작했으니 대한민국 통수권자로서 어쩔 수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 아닌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술 더 떠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적법한 절차를 거쳐 '비상계엄 해제'를 지시했고, 그간 실질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자신이 탄핵 당할 이유도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을 내놓고도 있다. 검사, 검찰총장 등 오랫동안 법조인으로 지낸 당사자이기 때문에 '법을 몰라서' 저런 말도 안되는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늘어놓을 '변명꺼리'도 없는 '빼박 내란범'이란 심판결론이 자기 머릿속에서도 이미 나왔기 때문에, 그저 시간만 질질 끌면서 '그 사이'에 뭔가 다른 급변사태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는 걸게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말세'는 신의 분노, 저주, 심판, 또는 '예정된 운명'이기 때문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락하고 부정한 짓을 저지르면 말세는 당연한 귀결로 우리 곁에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말세'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최종적 파멸인 셈이다. 인간이 만든 세상이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말세는 다른 양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른바 '종말론'이라 불리는 어마어마한 재앙, 피할 수 없는 천벌 따위로 말이다. '세기말 현상'이라고도 불렀던 종말론은 정말 다양했다. 종교적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예수의 재림',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 인간이 사는 세상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변해 모든 육신은 '정화의 불꽃'에 의해 태워져 한줌 재로 변할 것이고, 오직 독실한 믿음을 가진 몇몇 만이 '신의 선택'을 받아 영원한 구원, 영혼의 안식을 얻어 천국에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과학적 원인이 궁금했던 이들은 '태양계 행성들의 그랜드 크로스'가 이루어짐으로써 어마무시한 그래비티(중력)에 의해 그 크로스의 중심에 있는 지구가 한순간에 궤멸될 것이라는 예측도 했고, 공룡도 한순간에 멸종에 이르게 했던 '소행성 충돌'을 예언(?)하기도 했으며, 기후변화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때여서 '빙하기'가 찾아오거나 '지구결빙현상'으로 인해 모든 생물종이 멸종하게 되는 '여섯번째 대멸종'을 가설로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정 종교의 '종말론'은 다른 종교에선 '종말의 징조'가 없다는 이유로 반박 당했고, 온갖 과학적 예측도 번번히 빗나가면서 인류의 종말은 일종의 헤프닝으로 인식되며 사라지는 듯 싶었다.
그런데 2000년이 다가오면서 'Y2K'라는 새로운 종말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른바 옛날 컴퓨터가 '메모리 용량 한계'로 인해 1999년 다음 해를 2000년이 아니라 1900년으로 인식하여 오류가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전세계 주요 시설물들이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불안감을 조성한 것이다. 이를 테면, '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 제어 장치의 오류로 인해 발전소 폭발이나 그로 인한 엄청난 '방사능 유출'이 새해를 맞이하는 순서대로 일어날 것이라 우려를 나타냈고,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등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컴퓨터도 마찬가지 오작동이 일어나서 '핵전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가상시나리오가 퍼지면서 전세계는 또 한 번 '종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운영체제'로 바꾸고, '메모리 용량'을 늘리는 간단한 조치로 위험요소를 제거하여 해결해버렸다. 한마디로 '핵전쟁'은 없었다. 그 뒤로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 예언, 신흥 사이비종교의 등장 등등 종말론을 말하는 레퍼토리는 매번 반복적이라서 금새 식상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말세'는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말세의 도래'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더 강력해져서 찾아왔다. 첫째는 바로 '좀비의 역습'이었다. 좀비는 부두교 주술사의 저주와 약물로 인해 의식을 제어하고 오직 주술사의 명령에만 따르게 만든다. 일종의 '가수면 상태'에 빠진 것처럼 살아있지만 정상적인 생체반응은 거의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시체', '걸어다니는 시체'라는 뜻의 '언데드'와는 사뭇 다른 존재인데, 공포영화에서 이런 이미지를 따와서 '좀비'를 새로운 공포캐릭터로 만들어 퍼뜨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좀비는 마치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다가 '감염'을 일으키고, 감염된 사람이 '바이러스'를 퍼뜨려서 새로운 감염자를 만들어내는 양상과 비슷하면서, 실제 우리 일상속에서 엄청난 공포를 몰고 오게 되었다. 그 시작은 '사스 바이러스'였고, 그 뒤에는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팬데믹까지 이르게 만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왔다. 이밖에도 자연재해는 완전히 '재앙'의 수준으로 격상하여 인류가 살고 있는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바로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킨 인간의 활동이 그 원인이었다. 지구의 평균기온을 1.5도 올리면 '지구온난화'가 지속되고, 이렇게 따뜻해진 지구는 극지방의 빙하를 급속히 녹여 '해수면 상승'을 불러 일으키고, 올라간 해수면으로 '해안가 도시'는 바닷속으로 침몰할 수밖에 없고, 늘어난 해수량과 온난한 기후로 인해 엄청난 '수증기'를 품게 된 대기는 '물폭탄'을 떨어뜨리게 된단다. 한편 뜨거워진 대기는 식기 위해서 엄청나게 강력한 이동을 시작하고, 그런 어마어마한 대기의 이동은 강력한 태풍으로 바뀌어 전세계를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단다. 또 다른 곳에서는 뜨거워진 대기가 공기중의 수증기를 말려버려 '고온 건조'한 사막화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뜨거워진 대기를 빠르게 식히기 위해서 극지방의 찬공기가 저위도 지역까지 내려와 '강력한 한파'를 겪게 할 수도 있단다. 이쯤 되면 '말세'가 찾아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종말론'이나 '자연재해'는 인간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축에 속한다. 정말로 말세가 찾아오는 것은 바로 '정치불안'과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에서 온다. 지금 전 세계를 보라. 제정신을 가진 지도자가 없다. 그간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나라들에서 '정치적 불안요소'가 부각되면서 집권층이 안정적인 정치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태가 벌어져서 전세계 곳곳에서 '폭력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거기다 '경제적 불확실'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불만이 심화되고, 노인들은 연금을 안정적으로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타개해보겠다고 러시아와 이스라엘에서는 '전쟁'도 불사했다. 이에 호시탐탐 중국도 '대만침공'을 노리고 있고,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서 북한주민들을 러시아-우크라 전쟁에 총알받이로 수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모든 것이 정치불안과 경제위기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미국에서는 '트럼프 2기'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미국 경제도 나락에 빠지니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트럼프를 재집권하게 만들긴 했는데, 그가 가져올 정책들의 후폭풍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점이다. 유럽 각국도 '러시아의 행보'에 자극을 받아 재래식 무기를 서둘러 도입하는 양상이다. 2차세계대전의 종전 이후로 '군비감축'에 앞장 섰던 나라들이 다시 국방비를 늘리고, '무기 생산'에 열을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전쟁위협'이 실제로 다가왔다는 것이고, 그 위협의 강도만큼 정치불안과 경제위기는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정치불안'과 '경제위기'에서 안정적인가? 코로나 팬데믹 시기만해도 대한민국은 끄떡 없었다. 다른 나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실정일 때, 대한민국만이 유일한 안전국가로 인정 받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로 인한 '대외이미지 상승'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은 엄청 높아졌다. 그런데 '엔데믹'을 맞이할 즈음에는 '정치불안'과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부동산, 주식, 코인 투기열풍이 불면서 '경제위기'를 조장하더니, 급기야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정치불신'까지 이어지면서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정치적 불신을 종식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을 속이고, 여론을 갈라치기하며 정치판을 막장으로 몰고 갔다. 더구나 북한과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고, 대미와 대일 외교는 굴욕적인 자세로 일관하다가 끝내 대중국, 대러시아 외교는 끝장을 내는 멍청한 짓을 하고 만다. 그리고 연이은 부정부패비리 사건이 터지는데도 '야당탄압'을 더욱 심화시키고, 야당의 요구를 경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야당 대표'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 대표'를 범죄자로 내몰아 수감시킬 목적으로 수사를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야말로 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이 되고 말았다. 이에 국민들의 선택은 '거대 야당 만들기'였다. 국회의 190석 이상을 야당에게 몰표하는 식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윤석열'은 비상계엄이라는 내란을 저지르고 만다.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한 사전준비를 거쳐서 조직적으로 저지른 중대범죄라는 것이 '생중계'와 '언론뉴스'로 온국민들이 낱낱이 지켜보았다.
자, 그럼 '말세'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겠는가? 인간이 인간답지 못할 때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싸움은 끝나지 않으며 깊어진 갈등의 골이 결코 메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면, 결국 '말세'가 도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깊어진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끝장'을 보자는 대결양상으로 가게 된다면 말세는 바로 지금 이순간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본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교과서인 '평화적인 집회, 시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내 뜻과 '다를 지'라도 결과에 승복하고, 결코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대한민국은 '말세'를 멀리 할 수 있다. 물론 위험요소는 아직도 남아 있다.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달게 받지 않고 버티는 '내란수괴 윤석열'과 내란동조범들이 이미 끝장난 자신들의 운명을 달리 해보겠다고 대한민국을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비린내나는 유혈사태만큼은 피하는 우리의 모습을 전세계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말세의 도래'를 막는 방법인 것이다. 그처럼 첨예한 갈등을 보이면서도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퇴마록>의 밑바탕이 바로 이것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결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퇴마사들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저력'과 닮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말세편'으로 오면서 퇴마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단지 스케일이 커지는 것뿐 아니라 퇴마사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세력의 힘도 정말 어마어마하다. 1권, 2권, 3권까지 이어지면서 퇴마사들과 일행들은 몇 번의 죽음을 맞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기를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들의 목숨을 내버릴지언정 '악당의 목숨'을 구하고, 심지어 '악마의 소멸'마저 막아내려 온갖 애를 쓴다. 그렇게 클라이막스가 지나면 퇴마사들은 악당들과 손을 잡고, 악마들의 패배를 받아내며 아직 이 세상은 '말세'가 찾아오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는 아름다운 결론으로 마무리하곤 한다. 물론 스토리의 '연결'을 위해서 이런 퇴마사들의 '희생적인 선행'을 악당과 악마와 결탁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사서 '또 다른 집단'과의 대혈투가 벌어지는 식이지만 말이다.
심지어 3권에서는 '종말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세계 곳곳에서는 말세가 머지않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퇴마사들의 행보를 막아서는 '악역'을 자처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퇴마사들은 '말세'가 찾아오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막아서는데, 거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하고 있으니 상처난데 소금 뿌리는 격이 되고 있다. 이렇게 오해에, 오해를 부르는 상황전개가 살짝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주기도 하지만, 매 위기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퇴마사들에게 박수를 아낄 수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성경>의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예수를 모욕한 '아하스 페르츠'라는 인물이 등장한 점이다. 이때 예수가 아하스 페르츠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으라는 저주를 내렸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한 듯, 20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설정을 하며 '악인 중의 악인'으로 등장시켰다. 아니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지녔으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것이 아닌가? 그런데 <걸리버여행기>에서도 언급했듯이 나프타 사람들 가운데 '죽지 않는 사람'을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불리는 까닭과 같다. 나프타 사람들 가운데 죽지 않는 사람은 늙고 병들고 치매에 걸렸는데도 결코 죽을 수 없기에 불행한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퇴마록>에서는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의 저주를 받았던 '그때의 젊음'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허나 자신은 수천 년을 살 수 있지만, 자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 죽어버리는 현실이 '저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죽지 않는 사람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죽이려 들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의 권능'이 담긴 저주였기에 아하스 페르츠는 결코 죽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되려 아하스 페르츠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되려 죽음을 당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아하스 페르츠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처음에는 좋았다고 한다. 불로불사의 몸을 가졌으니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고, 시간도 무한으로 넉넉하니 서두를 일도 없었다. 그렇게 100년, 200년, ...1000년, 1500년, 2000년을 산다고 해보자.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고작 수백 년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고도 남을 시간을 살아가니, 점점 삶은 고통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기다릴 것이다. 허나 죽을 수도 없었다. 급기야 아하스 페르츠는 '주술의 힘'을 빌어 자신에게 씌워진 저주를 풀거나 혹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세상은 원망하고 망하게 만드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아하스 페르츠는 '말세'를 앞당길 방법을 찾다가 퇴마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연 퇴마사들은 아하스 페르츠를 어떻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