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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3 - 군웅할거 시대에 천하를 다투다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평점 :
[My Review MCMXII / 위즈덤(Wisdom) 3번째 리뷰] 지난 2권에서 조조의 손에 붙잡힌 여포는 끝내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인재경영'으로 천하를 제패하려 했던 조조가 왜 여포와 같은 천하무적의 무장을 포기하려 했을까? 여포를 죽음으로 내몬 결정적인 역할은 바로 '유비의 한마디'였다. 여포는 조조에게 붙들리자 걸출한 영웅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조조 앞에서 목숨을 구걸한다. 그리고 조조의 충직한 부하가 되겠으니 자신을 무장으로 써달라고 간청한다. 이에 '비장(飛將: 전장에서 날아다닐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장수)'으로 활약한 여포의 실력을 아끼는 마음에서 살려주려는 의도를 보이자, 유비가 조조 앞에 나서며 조언을 한다. "여포에겐 세 명의 아버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정원, 두 번째는 동탁, 세 번째는 왕윤이었다. 그리고 모두 여포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제 조조, 당신이 여포의 네 번째 아비가 되려는가? 나라면 그러지 않겠다"라고 말이다. 이 말은 들은 조조는 여포를 참수해버린다.
사실 정사(正史)에서 여포는 '몽골족 출신'으로 정통 한족은 아니다. 그래서 한족 출신인 조조나 원소와 같은 인물에 비해서 그렇게 뛰어난 인물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포의 실력이 너무도 출중한 까닭에 '이민족 출신'인데도 여포에 대한 묘사는 '비장'으로 표현할 정도다. 싸움에 있어서 당할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반동탁 연합군'이 출정했을 때에도 여포, 단 한 명의 장수 때문에 18개의 연합군이 '사수관'에서 꼼짝도 못하고 나아가질 못할 정도였다. 그런 여포를 '유관장 삼형제'가 싸워서 물러나게 했다고 묘사했으나, 이는 '정사'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더구나 한 명의 무장을 상대로 '세 명'이 나서서 겨우 도망가게 했다는 것이 전부였다는 묘사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싸움에 적수가 없던 여포가 끝내 조조에게 붙잡혀서 죽임을 당한 원인은 '조조 진영'에 뛰어난 장수와 책사 등의 인재가 차고도 넘쳤다는 사실로 볼 수도 있었지만, '인해전술'로 인한 '중과부적'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이를 '한족의 입장'에서 여포는 무력에서는 당할 자가 없지만 지력은 한참 부족해서 '진궁'과 같은 뛰어난 책사와 '장요' 같은 훌륭한 무장을 부하로 두고서도 조조에게 사로잡히고 마는 어리석은 '이민족'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여포의 죽음'으로 유비는 자기 진영을 잃어버리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조조가 모시고 있는 '헌제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유비는 헌제로부터 '황숙'이라는 칭호와 몰래 '혈서'를 받아들고 '역적 조조'를 처단하는 명분을 얻게 된다. 여기에 조조가 천자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무엄한 행동이 점점 도를 지나치자 '동승'을 비롯한 충신들이 조조를 역적으로 삼고 '처단'하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여기에 유비도 합류하지만, 유비는 오히려 동탁의 폭정을 상기시키며 '때를 기다리라'고 지금은 자중해야 하는 의견을 내놓고, 모두의 동의를 얻는다. 하지만 이런 모의 사실이 '동승의 노비'에게 발각이 되어 조조에게 밀고를 해버리니 '헌제의 혈서'는 쓰여지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고, 헌제의 자식을 임신하고 있던 '동승의 딸, 동 귀비'를 내전에서 목 매달아 죽이고, 동승을 비롯한 반란모의 가담자 700여 명을 모두 처형하니, 그 끔찍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이런 참극을 피한 사람은 '마등'과 '유비'였다. 마등은 서량에 머물고 있어서 화를 피했고, 유비는 마침맞게 조조에게 군사 5만을 빌려 '원술토벌'에 나섰다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조는 유비도 반란가담자라는 사실을 알고 유비를 처단하러 군사를 이끌고 나선다.
이에 유비는 서주성에서 조조와 맞서며 원소와 손을 잡기로 하고, 조조가 '허도'를 비운 사이에 원소가 조조의 빈집을 털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로써 조조를 양쪽에서 협공하며 우세를 점치려 했으나 원소는 출정날이 다가왔는데도 미적거리더니 끝내 '막내아들의 질환'을 핑계 삼아 출병하지 않는다. 원소의 우유부단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고, 훗날 '관도대전'에서 조조보다 10배가 더 많은 병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결국 패배하는 원인으로 삼고 있다. 암튼 유비는 원소만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이에 장비를 선봉으로 세우고 유비도 중간에 매복을 하려 했지만, 조조의 뛰어난 용병술에 막혀 병력의 대부분을 잃고 도망 가버리고, 관우만이 홀로 '하비성'에 남아 조조군의 포위망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렇지만 조조는 '관우'라는 인재를 탐냈기에 관우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고 항복을 받아낸다. 관우도 유비의 아내들을 지켜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었기에 유비 형님의 살아 있음이 확인되면 지체 없이 달려가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조조에게 투항을 한다. 이렇게 조조는 1차적으로 자신의 집권을 안정시킨다. 이제 남은 건 화북 지역의 제패를 위한 '원소 토벌'이 남았다. 바로 '관도대전의 시작'이다.
한편, 조조가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서 내세웠던 '인재경영'은 어찌하여 성공했는지 이야기 해보자. 사실 정통성으로 본다면 '한 황실의 후예'인 유황숙에게 인재가 집중되어야 마땅하고, 실력으로 본다면 '4대 삼공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의 원소가 권력을 잡아야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조조진영에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것일까? 물론 조조도 어릴 적에 '원소'와 친분관계를 쌓았을 정도로 나름 높은 가문의 집안이었다. 하지만 그의 조부는 '환관 출신'이었고, 조조는 어릴 적에 환관의 아들(?)이었던 조숭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그래서 조조의 원래 성씨는 '하후씨'다. 조조가 '하후돈', '하후연'과 친척관계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조조 진영에는 이런 '친척관계'를 이루고 있는 인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순욱, 정욱, 곽가, 가후, 전위, 허저, 서황, 장료, 만총, 우금 등등 엄청난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일찌감치 조조의 품안으로 합류했다. 심지어 적대적인 관계였던 '가후'와 '장료'도 기꺼이 조조의 편이 되어 충성을 받치는 모습을 보면 조조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궁금해진다. 반면에 유비와 원소 진영에는 '인재의 빈곤함'이 느껴질 정도로 허술해 보일 정도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이는 조조의 '인재경영전략'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원소는 자신의 높은 가문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높은 신분의 인물'이 아니면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원소가 놓친 인재가 바로 '조자룡'이다. 그는 상산 출신이지만 한미한 가문이었던 탓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는데도 원소는 그를 잡지 않았다. 반면에 유비는 '의리'로만 똘똘 뭉친 집단이다. 이런 집단의 특징은 '조폭'과 같은 무리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래서 실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의리'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먼 옛날이었으니 이런 '의리'를 지키는 집단에 대한 매력도 굉장히 뛰어났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유비진영에는 결정적으로 '의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베풀어줄 '물질적인 것'이 태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의리를 지켜도 줄 수 있는 게 '의리(?)'밖에 없었다. 이렇게 목숨 받쳐 유비에게 충성을 다해도 얻는 것이라곤 '의리'밖에 없는 집단에 뛰어난 인재가 구름처럼 몰려들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조조진영은 달랐다. 무엇보다 조조가 '인재'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으며, 조조의 눈에 쏙 들어온 인재라면 조조는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선택한 인재'가 공을 세우면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푸짐한 보상을 주곤 했다. 왜냐면 조조는 '헌제'를 볼모로 삼고 '헌제의 것'을 제것처럼 마음대로 퍼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헌제를 볼모로 삼기 이전에도 조조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보상'으로 내놓으면서 인재를 거침없이 등용했으며, 인재들이 실력을 뽐내면 어김없이 '칭찬'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지 않은가? 조조진영의 인재들은 그 '칭찬, 한마디'를 듣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장에서 공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이러니 조조진영은 늘 활력이 샘 솟았다. 이것이 바로 조조가 빠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조조도 '인재등용'에 실패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관우'와 '예형'이다. 둘 다 비범한 실력을 갖춘 인재인데 조조는 왜 이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것일까? 관우는 '의리'를 지키는 고지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예형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강한 성품의 선비였기 때문이다. 이는 조조에게 없는 것들이었기에 결국 관우와 예형은 조조의 품에 안기질 않았다. 조조의 의리 없음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니, 둘째치고, 조조도 한 지식을 자랑하는 '지략가'인데, 어찌하여 예형 같은 불세출의 책사를 얻지 못한 것일까? 그건 조조나 예형이 서로 지고 싶지 않을만큼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조조는 '승상'이라는 지위에도 뻣뻣하게 구는 예형의 콧대를 한 번 꺾고 싶었고, 예형도 선비답게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꼿꼿한 자세로 버텼으니, 둘은 애초에 MBTI(?)가 맞지 않는 상극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끝내 관우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고, 예형은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조조와 원소의 한판 대결인 '관도대전'을 이야기할 차례다. 이는 4권에서 다루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