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5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5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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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III / 넥서스Friends 5번째 리뷰] 5권에서는 '요괴와 인간의 결혼식'이 펼쳐진다. 지난 권에서 '화사족의 공주님, 하쓰네'가 야스케가 머무는 다이코 공동주택 집주인의 아들인 '교조'와 연애를 하더니, 결국 결혼까지 성공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 아주 험난한 과정이 펼쳐진 것이 뻔하다. 왜냐면 '같은 종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종족'이 아니면 곤란한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 첫 번째로 일단 두 종족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인간의 수명은 고작해야 '60살'이다. 이 책의 배경이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시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략 17세기 정도일 것이다. 그 시절에 100살을 사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개 '환갑'을 맞이하면 정말 장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인간 종족인 '규조'가 부잣집에 살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며 건강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기대 수명'은 고작 60살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요괴 종족은 '불멸의 존재'는 아닐지라도 기대 수명이 '수백 년'이 훌쩍 넘을 것이 분명하다. '천 년 묵은 여우'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으니 오래 살면 1000년도 넘게 살아가는 것이 '요괴의 수명'이다. 그런데 그 둘이 사랑을 하고 짝을 이룬다면 인간은 100년도 못 되어서 죽고, 요괴는 사랑하는 짝을 잃은 채 900년 이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울리지 않는 짝이다.

두 번째로 일어날 곤란한 상황은 둘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규조는 부잣집 도련님답게 '방탕한 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반면에 하쓰네는 '화사족의 공주님'답게(?) 세상물정 모르고 곱게 자랐다. 이런 둘이 어우러져 짝을 이루면 어떤 부부생활이 연상되는가? 닳고 닳은 남자와 순진무구한 여자가 짝이 되면 남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가 답답할 것이고, 여자는 너무 많이 아는 남자에게 휘둘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맘고생을 하던가? 아니면 삐뚫어지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두 사람이 부부생활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하쓰네와 규조'가 우연히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하며, 연애를 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운명의 짝으로 굳게 믿고 '결혼'까지 결심을 하는데...마지막 걸림돌인 '하쓰네의 유모 요괴, 하기노'가 등장해서 이 둘을 갈라놓으려 한다. 바로 '사랑의 훼방꾼' 등장이다. 사실 '연애소설'에서 이 훼방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 역할이 연인을 갈라서게 만드는 것인데도, 결국엔 훼방꾼 덕분에 연인의 사랑은 이루어지고 마니까 말이다. 너무 뻔한 스토리지만, 그래도 훼방꾼이 없으면 '러브스토리'는 밋밋해질 뿐이다. 그래서 유모 하기노는 규조에게 '세 가지 시련'을 주고서 아가씨를 사랑한다면 '증명'을 해야 하고, 그 증명은 '시련 극복'이라고 단언한다. 하쓰네의 부모도 아니고 유모 주제에 무슨 권한으로 이러는 것인가 싶지만, '화사족 요괴'의 부모는 원래 '사랑없이 결혼하기'로 유명한 요괴라서 하쓰네의 부모도 하쓰네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키웠다. 그렇게 버림받은 아기와 다를 바 없는 하쓰네를 '친어머니'처럼 걷어서 키운 정 때문에 '유모 하기노'는 아가씨의 짝이 될 '규조'에게 죽음의 고통보다 더 한 끔찍한 시련을 마련한 것이다. 그것도 세 가지나 말이다.

규조가 겪어야 할 시련은 '야스케'처럼 '요괴 돌보미'가 되어 요괴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물론 야스케의 도움을 받아선 안 된다. 오직 규조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아니, 요괴의 아이들을 돌봐야만 한다. 그리고 요괴들의 만족도 조사에서 아주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시련의 극복 여부를 판가름하겠다고 한다. 그럼 규조를 찾아간 첫 번째 요괴 아이는 누구였을까? 그건 바로 '가난뱅이 신, 신보'였다. 완전 상거지 꼴로 나타난 신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두침친하고 음산할 뿐만 아니라 냄새까지 지독해서 집으로 들이는 것조차 꺼릴 정도의 아이였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두 번째 요괴 아이는 '거미 야차의 딸, 쓰야'였다. 규조는 이 요괴 아이를 딱 삼일동안만 잘 데리고 있으면 되는데, 조건은 '쓰야의 몸무게'가 절대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쓰야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곤란한 것이었다. 인간인 규조에게는 더욱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요괴 아이는 '그림자 요괴'였다. 하지만 규조는 그 요괴를 만남과 동시에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데...

이 책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으로 유명한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이다. 하지만 '전천당'보다는 이 소설이 훨씬 더 낫다고 본다. '전천당'은 너무 황당한 이야기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개연성'이라도 있어야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겠구나하고 예상이라도 될텐데, 생뚱맞게도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괴상망측한 설교(교훈)'로 끝맺음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는 그런 엉뚱한 '개연성'은 없다. 그리고 요괴일지라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해치거나 하지 않고, 반드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밝혀진 이유가 공감이 가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들었던 셈이다. 물론 요괴들의 행동들이 '전천당의 과자'만큼이나 해괴망측하게 일어나곤 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 '해괴망측함'이 레이코 소설의 매력이 아닐런지 싶다.

우연한 만남으로 인간아이와 대요괴가 함께 살게 되지만, 그 둘의 인연으로 인해 '인간 아이가 요괴 아이를 돌보는 일'이 펼쳐진다. 이를 '메타포(은유)적인 해석'으로 풀이해보자면, 레이코가 그려낸 '요괴'는 일본인들의 마음속에서 그려진 '외국인들의 모습'은 아닐런지...섬나라에 살다보면 '외국문물'과 조우하는 일이 극히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연찮은 계기로 '외국인'과 만나게 되었을 때, 일본인들은 그들을 '외계인'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따위의 양갈래의 감정이 '요괴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렇게 분석을 하고 보면 히로시마 레이코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 21세기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마땅한 이유가 없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일본인들에게 친근한(?) 요괴를 보여주면서, "요괴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이 어찌 하여 '외국인'은 요괴보다 덜 이상할텐데, 더 극렬한 반감을 내보이는 건가요? '외국인'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을 거두어 들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도 '일본인'과 그렇게 다를 것이 없답니다. 마치 '요괴'와 '인간'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라고 말이다.

암튼, 요괴와 결혼을 하게 된 '규조'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6권에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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