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불꼬불나라의 기후이야기 에듀텔링 8
서해경 지음, 김용길 그림 / 풀빛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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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온난화 등 '과학자의 경고'가 담긴 <기후변화 이야기>와는 달리 사회교과 가운데 '지리'에 해당하는 <기후 이야기>는 살짝 지루한 맛이 강렬하기 십상이다. 이 책도 지루한 '지리 교과서'를 답습했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지리'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 과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음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말을 아끼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꼬불꼬불나라 시리즈> 가운데 <지리이야기>'와 <기후이야기>가 살짝 아쉽다. 그래서 '지리책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리의 힘>이라는 책이 요즘에 굉장히 핫하다. 다른 '지리책'과는 달리 술술 읽히는 재미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리의 힘>은 왜 재밌게 읽을 수 있는가? 그건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각 나라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나라와 나라 사이에 관한 이야기를 '지정학'이라는 관점으로 술술 풀어내니 '지리'라는 학문에 대한 매력도 느낄 수 있으면서 현재에 놓인 '국제정세'까지 철저히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기획된 책이라서 '지리과목'의 한 갈래인 '기후'를 이야기하며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낼 만한 꺼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저 일반적인 '지리교과적 서술'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녹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딱딱한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꼬불꼬불나라'에 그대로 옮겨적는 답습을 해버린 셈이라서 책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주제를 다룰 때는 '사고뭉치 수염왕'이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하면서 '정치', '경제', '인권', '언론', '환경', '원자력', '동물권리'까지 흥미진진한 사건사고를 펼치며 재미나게 풀어냈는데, '지리'만큼은 사건사고의 재미에 '지리'라는 주제를 인상적으로 담아낼 방도가 마땅치 않으니 다른 시리즈에 비해서 재미가 덜한 것이다.

 

  그럼에도 '적도'에서는 '물빠짐 장치 실험'을 보여주며 적도에서는 '무회전', 북반구에서는 '반시계방향', 남반구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물이 빠지는 에피소드를 담았고, 열대 우림 기후에서는 덥고 축축한 아마존 일대의 환경을, 한대 기후에서는 북극곰이 무너지는 빙벽을 아슬아슬하게 넘는 장면을, 건조 기후에서는 낙타가 침을 뱉고 사막의 모래 바람을 견디며 오아시스의 소중함을, 열대 사바나 기후에서는 세렝게티 초원의 동물이 점점 살 곳을 잃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고산 기후에서는 히말라야 정상을 도전하며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급격히 달라지는 기후를, 냉대 기후에서는 짧은 여름이라도 보장이 된다면 나무가 식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온화한 기후를 갖추고 있는 온대 기후에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수염왕'이 직접 경험을 한다.

 

  이처럼 '모험가 수염왕'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는데도, '지리'의 지루함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다른 '초등 지리책'에 비해서는 신선했다는 점수를 주고 싶다. 역시 '수염왕'의 매력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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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쫌 아는 10대 - 물질 씨, 어떻게 세상을 이루었나요? 과학 쫌 아는 십대 2
장홍제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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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을 시작할 때는 '개념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어렵고 하기 싫은 공부가 '개념 공부'라는 사실은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수많은 '개념 어휘'가 당신을 괴롭힐 준비를 마친 것마냥 읽는 것조차 따분하기 그지 없는 <개념 개론서>는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었다.

 

  사실 어떤 공부든 '기초'를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노벨상의 계절'이 되었는데도 우리 나라 수상자 소식은 올해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럴 때마다 비교하는 것이 '중국인 몇 명', '일본인 몇 명' 하는 식의 '숫자 비교'인데, 그것보다 '기초 과학(순수학문)'을 전공하는 학생수를 비교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나라에서 '기초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노벨상 따위는 받지 않아도 좋다. 우리 나라 학문의 기초를 탄탄히 마련해줄 수만 있다면 그깟 상이 없더라도 우리 나라의 미래를 밝혀줄 테니 말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화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한 개론서다. 그런 까닭에 10대가 읽고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렵고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다른 '개론서'에 비해서는 꽤나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는 노력이 엿보여서 흡족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버거울 것이 틀림없고 중고등학생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에 '청소년 추천도서'로 꼽고 싶다. 특히, '과학고'를 지망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고, 일반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하더라도 '과학'을 좀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겠다. 그만큼 아주 훌륭한 '개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화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이 책만큼 제대로 된 '설명'을 늘어놓지 못한다. 그만큼 '개론'이라는 것이 쉽고도 어렵다. 거기다 대개의 학생들이 자신은 이해했으면서도 남을 이해시켜주지 못하는 실력을 갖고 있기 일쑤다. 그게 바로 '개론'이다. 그래서 훌륭한 <개론서>가 있으면 서로 추천하며 읽기를 권하기 마련인데, 딱 이 책이다. 그래서 참 훌륭한 책인데, 모든 <개론서>가 그렇듯이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끝까지 읽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끝까지 읽었다면 '기초'가 탄탄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책일수록 '개념 이해'가 쏙쏙 되기 마련이다. 또한 훌륭한 설명에는 '비유적인 표현'을 남발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확한 개념을 설명하는 '정의'를 서술하는 방식이 최고다. 그러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중요한 법이다. 이를 테면, 물질의 상태를 나타낼 때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태를 나열하고 난 뒤에 '졸', '젤'을 설명하곤 하는데, 졸은 '액체속에 고체가 흐르는 상태'이고, 젤은 그 반대인 '고체속에 액체가 흐르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닥 별다를 것이 없는 설명이지만, 대단히 군더더기가 없는 설명이다. 경험담을 소개하자면, 고교시절 은사님께서는 이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시면서, 달걀을 '졸(반숙)'로 먹을래, '젤(완숙)'로 먹을래..라고 설명하셨다. 그 바람에 난 '졸'은 말랑한 상태, '젤'은 단단한 상태로 이해하였고, 꽤나 고생했던 적이 경험이 있다. 예를 들면, 푸딩이나 젤리는 모두 '젤' 상태인데, 푸딩은 말랑하니까 졸, 젤리는 단단하니까 젤..이라고 오랫동안 착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졸 상태를 페인트로 예를 들었다. 액체속에 작지만 단단한 고체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딱 되지 않은가. 미숫가루도 이를테면 '졸 상태'로 마시는 셈이다. 이렇게 '개념'을 제대로 잡으면 절대 헷갈리지 않고 응용력도 쑥쑥 커진다.

 

  이처럼 '기초'를 공부하다 보면, 잘 이해되는 것도 있지만 아리송한 '개념'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워낙 기초다보니 어디 누구에게 물어보면 좋을지 마땅한 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교수나 선생님에게 물어보기도 창피하고, 동료 친구에게 묻기에는 존심이 상하고, 선배도 딱히 잘 모르는 것 같고..그럴 땐 <개론서>를 읽는 방법밖에는 없다. 읽고 또 읽으며 기초를 다지다보면 어느새 탄탄해지는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간만에 훌륭한 개론서를 읽으며 옛추억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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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성범죄자 - 당신의 안전을 위한 성범죄 대처 매뉴얼
안병헌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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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13일, 성범죄자 조두순이 출소를 한다.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 감금한 상태에서 끔찍한 성폭행을 저질렀던 성범죄자가 다시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다. 물론 '전자발찌'도 하게 될 것이고, 경찰당국도 면밀하게 보호감찰을 지속하겠다고 했지만 '은밀하게' 벌어지는 성범죄를 물샐 틈 없이 막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웃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까지 더불어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신상공개'도 했다. 하지만 파렴치한 성범죄자들의 신상이 공개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범죄가 막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성범죄자'들의 1차적인 특성이 바로 '재범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성추행과 성폭행을 저지르면서도 '피해자 탓'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자'로 판명이 나도 반성을 할 줄 모른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위법하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좀처럼 갖지 못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법정은 이들의 범죄에 '솜방망이 처벌'과 '말랑카우 형벌'만을 내릴 뿐이다. 대한민국이 적어도 '성범죄'로부터 조금이나마 안전해지기 위해서라도 반성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두 번 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없도록 최하 '70년 형'을 언도해야만 할 것이다. 감옥에 '격리'되었다가 '영원히' 격리되면 더욱 좋고 말이다.

 

  성범죄가 끔찍한 까닭은 '피해자'에게 1차 가해 뿐 아니라 2차, 3차, ... n차 폭력이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당할 만 했네", "당해도 싸지", "혹시..꽃뱀 아냐?", "너도 즐겼잖아"...따위로 '피해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는커녕 오히려 '가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들에게 2차, 3차의 '또 다른 피해'를 아무 생각도 없이 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해서 신고를 하면, "그깟 일로 상사를 고발을 해? 그러고도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라면서 도리어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인다. 더 심각한 것은 '성희롱'을 한 직장 상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업무에 복귀해서 원상태로 되돌아가 '한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체육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코치나 감독이 '선수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시스템 속에서 어린 학생들은 순순히 감당해내야 할 관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제자를 성추행하고 성폭행하는 일이 정말 많다. 마찬가지로 고발을 해도 다시 코치와 감독으로 복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종교계에서는 '신의 대리인' 행세를 하면서 여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기도 한단다. 종교라는 성격상 '교주와 신도' 사이에는 신뢰라는 것이 거의 세뇌 당하듯이 생겨나서 '신고'되는 일조차 드물다고 한다. 간혹 신고가 되어 수사에 들어가더라도 "신의 뜻이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수사를 방해하고, 다른 신도들을 앞세워 '종교탄압'을 하지 말라는 시위까지 조직적으로 벌이곤 한다. 또한 '피해자'인 신도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기 일쑤기 때문에 더욱 근절하기 힘들다고 한다.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흔히 말하는 '그루밍 성범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곤 하는데, 성추행이나 성폭행이라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길들이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머리를 쓰다듬거나 볼을 꼬집는 등 '가벼운 접촉'으로 시작하여 교사가 가지고 있는 '성적욕망'을 그대로 투영하여 각양각색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뻔뻔스럽게 발뺌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더구나 아이들은 성에 대한 인지가 형성되기도 전이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듣는 '칭찬'이 너무도 달콤하기 때문에 자신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일례로 한 여학생은 엄마에게 "선생님과 사귀고 있다"는 말을 했다가, 엄마의 의심으로 자세히 조사한 결과, 선생님으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경악스럽게 만든 사건도 있었단다. 아이의 카톡에는 '연인 사이'로 의심이 될 정도의 노골적인 성적표현과 고가의 선물까지 서슴없이 공세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세간을 놀라게 했었단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데이트폭력'이라고 불리는 성범죄는 더욱 끔찍하다. 알콩달콩한 연인사이에서 '성범죄'로 이어지는 데이프폭력은 두 남녀가 '은밀한 장소'에서 벌이기 때문에 단속조차 하기 힘들다. 더 심각한 것은 헤어진 뒤에도 '스토킹'을 벌이거나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는 등 반이성적인 행위를 일삼기 때문에 2차, 3차, ...그 이상의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성범죄의 전형적인 양상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데이트폭력'이 아니어도 여성이 밤늦은 시각에 '안전'하게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닌 나라가 되어 버린 점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해야 하며, 대한민국이 비교적 '치안'이 잘 되고 있는 나라라는 평가와는 별개로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왜냐면 성범죄자의 특징이 '평범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성범죄자들의 공개된 신상을 들여다보면 그냥 '평범한 이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래서 '평범한 이웃'을 애꿎게 성범죄자 취급을 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대다수의 피해자인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도무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낯선 이웃'을 두려워하곤 하지만, 성범죄는 의외로 '면식 범죄'가 더욱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경악하게 된다. 가족간이나 친족간에 벌어지는 '성범죄'는 그동안 신고 자체가 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수면 위'로 심심찮게 올라와 뉴스를 장식하곤 한다. 더구나 '우발적인 성범죄'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성욕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성범죄가 일어나면 '남자'에겐 관대하고, '여자'에겐 수치스런 일이라고 여기는 생각이 문제란 말이다. '성욕구'를 올바르게 해소하지 못한 남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들이, 반대로 여자에게는 죽일 듯이 몰아붙이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인식 속에서 자라난 어린 남녀가 커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는 뻔하다.

 

  그래서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하다. 오빠가 여동생을, 아빠가 딸을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턱대고 '여성의 옷차림'이나 '여성의 행동거지'에만 주의를 주는 교육은 올바른 성교육이 아니다. 또한 '포르노영상'이나 '낙태영상'을 보여주며 하는 충격적인 성교육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남녀간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인지 알려주어야 한다. 또한, '성적인 농담'은 금물이다. 아직 '성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정력이 좋다", "색기가 있다(섹시하다)"와 같은 표현을 하면 올바른 성 인식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섹스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 대회에 나간 듯한 '기록갱신형 성교육'은 절대 금물이다. 남녀간 서로의 '다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성범죄자'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함을 버려야 할 때다. 비정상적인 성욕구를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것만큼 불쾌한 일도 없고, 피해자를 괴롭게 하는 일도 없다. 더구나 '가해자'로 분류되고 난 뒤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복수하겠다'거나 '앙심'을 품는 일이 빈번할 뿐만 아니라 '우발적인 성범죄'를 또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맘 같아선 '꼬추'를 잘라버리는 형벌을 내리자고 주장하고 싶지만, '성범죄'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님도 함께 명심했으면 한다. 비정상적인 성욕구 표출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의 '성범죄자를 다루는 인식'이 절실하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일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리고, '피해자'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상식적으로 펼쳐져야 한다.

 

  또한 '성범죄자들의 평범성'으로 인해 완벽한 예방이 힘든 범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범죄자들의 특성을 널리널리 알리고, 이들의 범행에 '대비'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국가가 구축해나감과 동시에 개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정책이 '여성안심귀가' 서비스다. 여성이 불안을 느낀다면 가까운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손쉽게 신청하고 보호받도록 하고 있단다. 또, 범죄사각지대가 없도록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도 더욱 많이 늘려나가고 있단다. 그리고 여성 스스로도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할 것이다. 특히, 홀로 사는 여성들이 범죄대상이라고 하니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현관문 비밀번호 노출이 되지 않도록 하고, 택배나 배달 서비스를 받을 때에는 직접 받기보다는 간접적인 방법이나 문앞에 놓아두도록 하며, 경찰이나 가스검침원 등을 사칭하는 이들도 있으니, 철저한 '신분확인'과 더불어 혼자 있을 때는 '재방문'을 요청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나저나 조두순과 같은 성범죄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냅두지 않는 근본적인 해법이 나왔으면 싶다. 범죄자의 인권에만 '행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피해자의 인권'을 먼저 챙기는 국가권력이 발휘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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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나라의 원자력이야기 에듀텔링 6
서해경 지음, 김용길 그림 / 풀빛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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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력발전소 건립을 두고 지금도 설왕설래를 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으며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사건을 두고서 더욱 팽팽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경오염을 줄이고 깨끗한 청정에너지를 쓰자'에서 '에너지 공급을 얼마나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느냐?'로 변질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대두된 것이 '신재생에너지', 이른바 '대체에너지' 개발인데, 이것이 효율적인 면에서 '원자력에너지'를 대신할 수 있지 않다는 점에 새롭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원자력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 한 번의 사고만으로도 너무 많다는 점이다. 만약에 이 땅에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어느 나라보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화석에너지'는 환경오염을 시키지 않고 지구가 급변할 수도 있는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를 막기...아니 늦추기 위해서라도 획기적으로 사용을 줄여야만 한다. 지금 지구는 단 1℃만 기온이 올라도 심각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경고했음에도 인류는 끝내 '지구온난화'를 막지 못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과감히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심각한 정도의 '기후 변화'도 겪게 될 것이다. 극지의 빙하가 모두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 이미 때는 늦었다. 지구는 뜨거워진 대기를 식히기 위해 각종 '천재지변'을 일으킬 것이고, 뜨거워진 바다는 더 많은 태풍과 더 강력한 태풍을 몰고 와서 덮칠 것이다. 과연 그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온실가스'를 줄이니 마니 논쟁을 벌일 셈인가? 인간이 식량으로 삼고 있는 곡식이 물에 잠기거나 햇볕에 타들어가거나 눈밭에 깔려 더는 먹을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화석에너지'를 대신해서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에너지원이 무엇이 있을까? 다행히 '원자력에너지'가 있다. 한때는 '청정에너지'로 불릴 정도로 '온실가스 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한껏 부각되기도 했다. 물론 핵연료인 '우라늄 1g'이 '석탄 3000t'과 맞먹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해서 프랑스, 러시아, 일본, 그 다음으로 한국이 가장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짓게 되었다. 비록 발전소 건립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적은 량으로도 엄청난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결코 '마이너스'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원자력발전소'에서 핵분열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 방사성물질은 '다량의 방사능'을 내뿜기 때문에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보호장구'를 갖춰야 하며, 발전소 인근 지역에 오염을 막기 위해 최소 '다섯 겹'의 보호막을 설치해야만 했다. 그리고 더욱 안전하게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핵분열 과정'을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핵분열의 속도'를 늦추는 방식을 이용하며, 그 과정중에 연료봉의 온도가 375℃이하로 유지될 수 있도록 철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등 대단히 조심스런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는 것도 골칫거리 중 하나다. 왜냐면 '방사성폐기물'도 방사능을 계속 누출하기 때문이다. 방사능을 직접 쬐면 피부가 타들어가고 세포를 변형시키는 등 대단히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마련된 장소에 차곡차곡 '방사능'이 자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보관해야만 하는데, 그 '보관기간'이 길게는 몇 백년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방폐장 건립'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적도 있다.

 

  문제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심심찮게 '사고'를 일으켜 지금도 방사능을 누출하고 있다는 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스리마일 발전소' 폭발 사고, 구소련의 '체르노빌 대폭발 사건', 러시아 '핵잠수함 침몰 사건',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로 인해 지금도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으며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고 '인근지역'은 지금도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뭐, 일본은 올림픽을 핑계로 안전하다는 뻥을 치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발생한 '체르노빌'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는 방사능이 '후쿠시마'에서만 안전하다고 주장을 하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냔 말이다. 더구나 과거에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자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격렬하게 '반응'했던 것이 바로 일본이었다. 그 생난리를 치며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서는 '자국'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에 대해서는 그처럼 관대한 까닭이 뭐란 말인가.

 

  그래서 '화석에너지'도 불안하고, '원자력에너지'도 안전을 장담하지 못하니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는 '신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쓰자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라도 빨리 '대체에너지'를 마련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청정에너지'가 되어야만 한다. 원자력보다 강력하고 화석연료보다 깨끗한 에너지를 만들게 되면 인류는 깨끗한 환경에서 편리한 세상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헌데 아직 '대안'이 나오질 않았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절약'만이 살 길이다. 에너지를 아끼고 절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집집마다 자가용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거리를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냉난방도 자연적인 환기와 옷 껴입기로 해결할 수 있다. 도시에서 자동차가 덜 다니게 되면 일단 공기가 가장 먼저 깨끗해진다. 그러면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켜도 미세먼지 유입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쓰지 않는 가전기기는 플러그를 빼놓는 습관도 좋다. 무엇보다 가전기기를 불필요하게 많이 쓸 필요가 없게 만드는 환경이 중요하다. 온가족이 책읽는 습관을 기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불가능한 일일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우리 나라는 '가정'에서 쓰는 전기량을 최대한 줄이는데 성공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공장'에서 쓰는 전력량이 좀처럼 줄지 않는 점이다. 또한 '사무실'이나 '상가'에서 소비하는 전력이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왜일까? 내 집에 있는 에어콘은 '절감'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사무실이나 상가에서는 조금이라도 더우면 참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일단 '공공의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저 '공짜'라고 여기고 보는 생각이 있는 듯 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에너지'만큼은 내것 네것을 따지지 않고 일단 아껴야 할 것이다. 익히 아실 테지만,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단 한 번이라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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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 내세에서 현세로, 궁극의 구원을 향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19
박상진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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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내게 아쉬운 느낌이 조금 드는 까닭을 먼저 말하자면, 책의 서술이 '기행문 형식'이라는 점이다. 한 인물에 대한 '자서전'이나 '연대기' 같은 책인데도 '태어난 곳'과 '묻힌 곳', 그리고 '살아생전에 머물렀던 곳'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서술해나가는 방식이 내게는 감흥은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술자의 여정'이 두각을 일으키면서 내가 읽고자 했던 '인물'이 아니라 '서술자'가 등장해서 '화자의 감흥'까지 함께 읽어내야 하는 점이..가끔은 내가 '단테'를 읽는 것인지 '박상진'을 읽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딴에는 신선한 느낌을 주는 서술방식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가끔은 '주인공'보당 '주연'이 더 돋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먹혀 들어갈 때도 있었다. 내가 잘 '모르는' 인물을 다룰 때에는 서술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책을 읽는 내내 덜 어색하게 만들어주는 작용을 하기도 했다. 허나 이런 방식은 내가 진짜로 '몰입'하고 싶어하는 인물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는 '중매쟁이'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뺨 석 대를 맞기 싫으면 낄끼빠빠를 잘 할 줄 알아야 할텐데 말이다.

 

  내가 '단테'에 몰입하고 싶었던 까닭은 <신곡>을 완독하기 위함이었다. 오래 전에 사놓은 <신곡>을 여지껏 읽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책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탓이다. 그렇다고 딱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주변에서 하도 책의 내용이 "어려운데 재미도 없다"는 반응이 심심찮았기 때문이다. 워낙 '다른 이의 입방정'보다는 '내가 직접 경험'하는 편을 좋아하는 성격인데, 유독 <신곡>만큼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완독하고 난 지금은 그런 편견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조만간 <신곡>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리뷰로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르네상스인'이다. '신' 중심의 중세를 너머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을 꿈꾼 혁명가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피렌체인'으로 살면서 '왕정' 중심이 아니라 '공화정'을 꿈꾼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의 말년은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 망명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비운의 '공무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망명중에 탄생한 대작이 <신곡>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신곡>에는 분명 고향땅 피렌체를 그리는 대목도 대단히 많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추방하는데 한몫했던 정적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통쾌한 장면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정말 기대가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단테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연인 베아트리체'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한 동네에서 살았던 둘은 '집안'끼리 왕래가 있었던 사이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수차례 만났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딱 세 번 만났다고 뻥을 친다. 왜 그랬을까? 남자에게 있어서 '첫사랑'은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판에 박힌 공식을 나열한 것일까? 단테는 그녀를 9살에 한 번, 18살에 두 번, 그리고 천국에서 세 번째 만났노라고 그리고 있다. 현실에서는 '젬마'를 아내로 두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참, 여기서 밝혀야 할 사안이 하나 있다. 지금에야 단테가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 되었지만, 살아생전에는 그저 '공무원'일 뿐이었다. 더구나 '피렌체 공화국'이라는 약소국의 관료였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고위직 공무원이었기에 '행적'이 조금 남아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추방' 당하면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단테는 죽어서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책들은 '금서'로 대부분 불태워지고 말이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도 <신곡>과 같은 대작들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정말 천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을 테고 말이다. 그 때문에 그의 아내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단테의 친구들(보카치오 등등)이 전하는 말로는 '내조'를 잘하는 현모양처라고 한다. 그래서 단테가 추방 당했을 때도 늘 함께 였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세의 베아트리체'와 '현세의 젬마'를 비교하는 것도 나름 의미있을 것이다. 기왕에 단테가 그토록 사랑하는 '연인'을 노래했다면, 분명 '아내'를 노래한 것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테가 그토록 대놓고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책을 썼는데 '남편'을 가만 냅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이는 '불륜'에 해당한다. 더구나 젬마와 사이에서 낳은 딸 가운데 한 명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단다. 아내가 순순히 허락할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런 것은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는 단테의 또 다른 책 <향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름 솔깃한 대목이었다. 더구나 <향연>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란다. 아내인 젬마의 교양 수준이 대단히 높았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대목이다. 혹시 입방정 떨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찾아와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의심하는 이들이 찾아와 젬마에게 늘어놓을 때, 젬마는 조용히 <향연>이라는 책을 건내주지 않았을까? 단테가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만큼 '아내'에 대한 철학적 대담을 늘어놓는 단테를 보여줌으로써 하릴없는 입방정을 떨지 못하게 만드는 현명한 아내는 아니었을까? 하긴, 단테의 저작물들은 대다수 '추방' 당한 시기에 써놓은 것이니 한가하게 '사랑타령'을 늘어놓을 처지도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단테는 <신곡>의 '천국편'을 마무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천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젬마가 바가지를 긁었다고 하더라도 얼마 긁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단테는 '망명'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신곡>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곳곳에는 단테와 '관련된 이야기'가 남겨진 곳이 참 많다고 한다. 하긴 여행지로 유명한 곳에서는 '장사'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떠벌리기 마련이니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단테가 <신곡>을 쓰며 다루었던 '인물', '지명', 그리고 '역사적 사건' 등이 모두 이탈리아와 관련이 된 것들이라 '부정적인 내용'만 아니라면 지역의 명물이나 자랑이 되곤 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단테의 유명세는 <신곡>이 사랑받는 것과 비례했을 것이다. 더구나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이다보니 더욱 수지 맞았을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식민치하에서 절망을 노래하던 조선의 청년작가들도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자신들의 서글픈 처지를 위로했다고 한다.

 

  남의 빵이 얼마나 짠지,

  남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너는 알게 될 것이다.         - <천국> 17곡 58~60행

 

  삼일운동의 성공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서고, 일제의 통치도 '문화통치'로 바뀌는 등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희망이 보이기도 했지만, 일제의 교묘한 탄압과 회유로 점점 변절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얼마나 더 많은 설움을 견뎌야 하는 것인지 낙담하는 이들도 참 많았을 것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구절이었을 것이다. 변절자들에게 일갈하며 '남의 빵'을 먹고, '남의 계단'을 오르며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내심 '변절자'에게 죽음이라는 쓰디쓴 결말을 안겨주겠다는 독한 마음도 품었을 테고 말이다. 아마 단테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단테가 이 구절을 쓸 당시에 망명을 설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내용은 단테가 '종교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정치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이었다. 그간 '르네상스인'으로 살았던 단테가 왜 '신을 노래하는 작품'을 쓴 것인지 의아해했는데, 실상은 <신곡>이라는 이름의 '정치적 비판'을 담은 책이었던 셈이다. 하긴 르네상스인이라고 해도 지난 1000년 간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을 한 순간에 싹 바꾸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문에 '종교적인 색채'를 가득 담아놓은 것 같게 써놓고서 자신을 추방한 '정적들'을 치밀하게 까대는 책이 <신곡>이라는 설명이 타당할 게다. 이렇게 쓰고 보니 <신곡>이 상당히 재미난 책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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