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 내세에서 현세로, 궁극의 구원을 향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19
박상진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많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내게 아쉬운 느낌이 조금 드는 까닭을 먼저 말하자면, 책의 서술이 '기행문 형식'이라는 점이다. 한 인물에 대한 '자서전'이나 '연대기' 같은 책인데도 '태어난 곳'과 '묻힌 곳', 그리고 '살아생전에 머물렀던 곳'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서술해나가는 방식이 내게는 감흥은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술자의 여정'이 두각을 일으키면서 내가 읽고자 했던 '인물'이 아니라 '서술자'가 등장해서 '화자의 감흥'까지 함께 읽어내야 하는 점이..가끔은 내가 '단테'를 읽는 것인지 '박상진'을 읽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딴에는 신선한 느낌을 주는 서술방식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가끔은 '주인공'보당 '주연'이 더 돋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먹혀 들어갈 때도 있었다. 내가 잘 '모르는' 인물을 다룰 때에는 서술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책을 읽는 내내 덜 어색하게 만들어주는 작용을 하기도 했다. 허나 이런 방식은 내가 진짜로 '몰입'하고 싶어하는 인물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는 '중매쟁이'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뺨 석 대를 맞기 싫으면 낄끼빠빠를 잘 할 줄 알아야 할텐데 말이다.

 

  내가 '단테'에 몰입하고 싶었던 까닭은 <신곡>을 완독하기 위함이었다. 오래 전에 사놓은 <신곡>을 여지껏 읽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책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탓이다. 그렇다고 딱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주변에서 하도 책의 내용이 "어려운데 재미도 없다"는 반응이 심심찮았기 때문이다. 워낙 '다른 이의 입방정'보다는 '내가 직접 경험'하는 편을 좋아하는 성격인데, 유독 <신곡>만큼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완독하고 난 지금은 그런 편견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조만간 <신곡>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리뷰로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르네상스인'이다. '신' 중심의 중세를 너머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을 꿈꾼 혁명가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피렌체인'으로 살면서 '왕정' 중심이 아니라 '공화정'을 꿈꾼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의 말년은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 망명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비운의 '공무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망명중에 탄생한 대작이 <신곡>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신곡>에는 분명 고향땅 피렌체를 그리는 대목도 대단히 많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추방하는데 한몫했던 정적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통쾌한 장면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정말 기대가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단테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연인 베아트리체'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한 동네에서 살았던 둘은 '집안'끼리 왕래가 있었던 사이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수차례 만났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딱 세 번 만났다고 뻥을 친다. 왜 그랬을까? 남자에게 있어서 '첫사랑'은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판에 박힌 공식을 나열한 것일까? 단테는 그녀를 9살에 한 번, 18살에 두 번, 그리고 천국에서 세 번째 만났노라고 그리고 있다. 현실에서는 '젬마'를 아내로 두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참, 여기서 밝혀야 할 사안이 하나 있다. 지금에야 단테가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 되었지만, 살아생전에는 그저 '공무원'일 뿐이었다. 더구나 '피렌체 공화국'이라는 약소국의 관료였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고위직 공무원이었기에 '행적'이 조금 남아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추방' 당하면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단테는 죽어서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책들은 '금서'로 대부분 불태워지고 말이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도 <신곡>과 같은 대작들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정말 천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을 테고 말이다. 그 때문에 그의 아내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단테의 친구들(보카치오 등등)이 전하는 말로는 '내조'를 잘하는 현모양처라고 한다. 그래서 단테가 추방 당했을 때도 늘 함께 였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세의 베아트리체'와 '현세의 젬마'를 비교하는 것도 나름 의미있을 것이다. 기왕에 단테가 그토록 사랑하는 '연인'을 노래했다면, 분명 '아내'를 노래한 것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테가 그토록 대놓고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책을 썼는데 '남편'을 가만 냅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이는 '불륜'에 해당한다. 더구나 젬마와 사이에서 낳은 딸 가운데 한 명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단다. 아내가 순순히 허락할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런 것은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는 단테의 또 다른 책 <향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름 솔깃한 대목이었다. 더구나 <향연>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란다. 아내인 젬마의 교양 수준이 대단히 높았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대목이다. 혹시 입방정 떨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찾아와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의심하는 이들이 찾아와 젬마에게 늘어놓을 때, 젬마는 조용히 <향연>이라는 책을 건내주지 않았을까? 단테가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만큼 '아내'에 대한 철학적 대담을 늘어놓는 단테를 보여줌으로써 하릴없는 입방정을 떨지 못하게 만드는 현명한 아내는 아니었을까? 하긴, 단테의 저작물들은 대다수 '추방' 당한 시기에 써놓은 것이니 한가하게 '사랑타령'을 늘어놓을 처지도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단테는 <신곡>의 '천국편'을 마무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천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젬마가 바가지를 긁었다고 하더라도 얼마 긁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단테는 '망명'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신곡>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곳곳에는 단테와 '관련된 이야기'가 남겨진 곳이 참 많다고 한다. 하긴 여행지로 유명한 곳에서는 '장사'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떠벌리기 마련이니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단테가 <신곡>을 쓰며 다루었던 '인물', '지명', 그리고 '역사적 사건' 등이 모두 이탈리아와 관련이 된 것들이라 '부정적인 내용'만 아니라면 지역의 명물이나 자랑이 되곤 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단테의 유명세는 <신곡>이 사랑받는 것과 비례했을 것이다. 더구나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이다보니 더욱 수지 맞았을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식민치하에서 절망을 노래하던 조선의 청년작가들도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자신들의 서글픈 처지를 위로했다고 한다.

 

  남의 빵이 얼마나 짠지,

  남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너는 알게 될 것이다.         - <천국> 17곡 58~60행

 

  삼일운동의 성공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서고, 일제의 통치도 '문화통치'로 바뀌는 등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희망이 보이기도 했지만, 일제의 교묘한 탄압과 회유로 점점 변절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얼마나 더 많은 설움을 견뎌야 하는 것인지 낙담하는 이들도 참 많았을 것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구절이었을 것이다. 변절자들에게 일갈하며 '남의 빵'을 먹고, '남의 계단'을 오르며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내심 '변절자'에게 죽음이라는 쓰디쓴 결말을 안겨주겠다는 독한 마음도 품었을 테고 말이다. 아마 단테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단테가 이 구절을 쓸 당시에 망명을 설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내용은 단테가 '종교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정치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이었다. 그간 '르네상스인'으로 살았던 단테가 왜 '신을 노래하는 작품'을 쓴 것인지 의아해했는데, 실상은 <신곡>이라는 이름의 '정치적 비판'을 담은 책이었던 셈이다. 하긴 르네상스인이라고 해도 지난 1000년 간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을 한 순간에 싹 바꾸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문에 '종교적인 색채'를 가득 담아놓은 것 같게 써놓고서 자신을 추방한 '정적들'을 치밀하게 까대는 책이 <신곡>이라는 설명이 타당할 게다. 이렇게 쓰고 보니 <신곡>이 상당히 재미난 책 같은 느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