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 습관 - 당신의 삶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스마트한 습관법
스티븐 기즈 지음, 김정희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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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한 얘기지만, 난 <자기개발서> 같은 책을 정말 안 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개발서>는 어떤 책이든 딱 1권만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읽는 책부터는 '대동소이'할 뿐이다. 그리고 <자기개발서>에서 말하는 딱 한 가지는 바로 '좋은 습관을 기르라'는 메시지다. 그것 이외에 다른 내용은 전부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는 것들이다.

 

  <자기개발서>의 처음 부분은 언제나 '좋은 습관'을 기르지 못하는 이유나 저자의 불우했던 경험담 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 부분에서는 '좋은 습관'을 기르면 좋은 점을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장황한 편이었지만 요즘에는 간략하게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하나마다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이 나쁜 경우는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습관'의 장점만 늘어놓고 있는데, 이건 웬만한 독자라면 다 아는 이야기다. <자기개발서>의 하일라이트는 마지막 부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좋은 습관'을 기를 수 있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하우'들은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방법이며,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독창적인 프로그램이고, 착실히 따라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한다는 내용으로 쓰여져 있다. 다른 예외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개발서>라고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방법'이란 바로, <탄력적 습관>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내용을 봐도 유추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강조한다. "당신이 좋은 습관을 기르지 못한 까닭은 좋은 습관을 유연하게 기르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밀어붙이다 실패한 탓이다"라고 말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옳은 말이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칸트'처럼 실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칸트는 마치 '기계'처럼 습관을 반복했다. 인간이 기계와 같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습관을 반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습관'을 들이기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늘상 '슬럼프'를 만나 허우적거리기를 반복하기 일쑤다.

 

  허나, 이런 실패는 '현대인의 일상'일 뿐이다. 직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부터 '기계처럼' 일상을 반복하는 지겨운 일인데, '좋은 습관'마저 기계처럼 일률적으로 반복하라는 얘기는 결국 실패하고 매너리즘에 빠져버리라고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도 '탄력적으로' 실천하는 센스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 '좋은 습관'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 바로 '단계적 실천'과 '31일 활용법'이다. '단계적 실천'이란 '미니 / 플러스 / 엘리트'로 3가지 단계를 설정하고, 이를 테면, 건강을 위해 '팔굽혀펴기'를 하겠다고 결심했으면, 단계별로 '5회 / 15회 / 30회'로 설정하고서, 자신에게 맞는 단계로 꾸준히 실천하라는 방법이다. 물론, 성과가 좋으면 단계를 상향해서 '15회 / 30회 / 40회'로 실천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단계를 '플러스'로 시작했다가 다음날에는 '미니', 또는 '엘리트'로 조절하며 실천하면 된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31일 활용법'이란 1년에 7번 있는 '31일'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날'로 정해서 묵혔던 스트레스를 확 푸는 날로 활용하라는 팁이다. 이는 다이어트를 하다가도 '요요현상'이 일어나며 큰 고비를 겪어본 분들이라면 크게 공감할 것이다. 배고픔을 날마다 참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폭식을 하게 되는 경험은 다들 있으실 것이다. 현대인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스트레스'다. 아무리 탄력이 좋은 고무줄이라도 계속 팽팽한 상태로 놓아두면 '탄력'을 잃고 끊어져 버리기 일쑤다. 그러니 중간중간에 '휴식'을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휴식'이 너무 잦으면 애초에 '좋은 습관'을 들이겠다는 의지도 사라지게 되니, '31일'을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설득력이 꽤 높지 않은가.

 

  이처럼 <탄력적 습관>이란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밖에 세부적인 팁들은 책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 싶다. 허나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 같지는 않은가? 이 책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해봤음직한 내용이라는 느낌은 결코 '당신만의 착각'이 아님을 보증한다. 그렇다. 내가 <자기개발서>를 꽤나 많이 읽어봤지만, 이제는 그닥 찾아 읽지 않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절대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이 책의 내용이 식상하다거나 쓸모 없는 내용, 그리고 남의 책을 베꼈다는 오해 말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탄력적 습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실천 프로그램'은 매우 독창적이며 다른 책에 비해 매우 유용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도 식상하다느니, 어디선가 들어봤다느니..이런 말을 늘어놓은 까닭은 내가 바로 '좋은 습관'을 길들여서 '매달 25편 이상의 리뷰'를 실천하고 있는 리뷰어이기 때문이다.

 

 

  올해 월 평균 리뷰가 26권을 돌파했다. 이제 두 달이 남았으니 목표치는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이렇게 달성하기까지 꽤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그만큼 책도 많이 읽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1년에 100권 읽기'로 도전했고, 그렇게 10년 간 실천한 뒤에야 겨우 '1년에 100편 리뷰쓰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슬럼프를 겪으며 꼴랑 6편만 썼던 해도 있었지만, 결국 이겨내고 지금의 '목표치'를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자기개발서>를 읽었겠는가. 이제는 지긋지긋할 정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딱 1권의 개발서'가 주는 깊은 주제에 공감하고 믿어 의심치 말길 바란다. 두 번째부터는 주제는 달라진 것이 없이 '대동소이'하며, 자기만의 '실천방법'을 찾는 지난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딱 맞는 실천방법이나 '도전 프로그램'을 찾았을 때 크나큰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좋은 습관을 멈출 멍충이도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당신의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 좋은 습관과 함께 하는 삶은 멋지고 또 멋질 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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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건축이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1
서윤영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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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건축'이나 '건축가'에 대한 책은 낯선 책이었다. 얼마 전에 관심을 갖게 된 <르코르지뷔에>라는 책을 통해서 오늘날의 아파트가 그의 '설계'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또한, 포항 지진 때 큰 피해를 보았던 건축구조물 가운데 '필로티 기법'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지진에 부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이슈가 되었는데, 이 건축기법도 '르코르지뷔에'의 작품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잠시 설명을 보태자면, '르코르비지에'는 공간의 효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래서 1층 공간을 정원이나 주차장으로 확보하고 2층부터 사람이 살 수 있는 주거 형태로 만들었고, 주거 공간조차 불필요한 부분을 싹 빼고 꼭 필요한 부분만 넣어서 '공간의 활용도'를 최고로 높여서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고안한 집이 바로 '아파르트멍'이라고 불렸던 셈이다. 우리가 '아파트먼트'를 줄여서 '아파트'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아파트의 어원'은 프랑스말이었단 것도 처음 알았다.

 

  이처럼 집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이해하고 우리 주위의 건축물들을 바라보게 되면 '놀라운 사실들'을 건축물이 말해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를 테면, '한옥의 특징'을 꼽으라면 '온돌'과 '대청마루'일 것이다. 이는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헌데, 우리의 주거형태가 추운 북쪽지방과 더운 남쪽지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함경도와 같이 매서운 추위와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 지역에서는 한옥이 'ㅁ'자 형태를 띠며 '공간'의 여유를 두지 않아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겹겹이' 지은 '겹집'을 만든다. 그리고 구들장을 놓아서 방안의 온도를 높이는 '온돌'을 깔았다. 반면에 남쪽지방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가옥구조가 'ㅡ'자 형태를 띠며 바람이 솔솔 지나갈 수 있도록 가옥의 한가운데에 '대청마루'를 놓았다. 그리고 마당에는 나무 한그루 심지 않아서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어도 '대청마루'에는 하루종일 시원한 바람이 불게 만든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마당의 뜨거운 열기가 위로 올리가면 그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 뒷동산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우리 전통가옥의 구조가 '배산임수'인 것을 감안하면 바람 한 점 없는 더운 여름에도 늘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 있는 '대청마루'가 에어콘보다 더 뛰어난 효과를 냈을 것이다. 이쯤되면 중부지방에서 'ㄷ'자나 'ㄱ'자 형태로 집을 지은 까닭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한편, 고대 건축물이 하나같이 거대한 까닭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우리 나라에 3만 기나 되는 '고인돌'이 있고,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있고, 메소포타미아에 '지구라트(바벨탑 등등)'가 있다. 특히, '고인돌'의 경우에는 우리 나라에만 전 세계 고인돌 수의 절반이 있는데, 이렇게나 많은 수의 고인돌을 세우기 위해서 '노예'를 많이 부려야 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운 사람도 '노예'가 아니라 농사 짓던 '평민'들이었다는 사실을 속속 밝혀냈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근처에 평민들이 살던 가옥을 대규모로 발굴해낸 덕분이다. 만일 '노예'들이었다면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금시설이 대규모로 있었어야 할텐데, 피라미드 근처에 3~4인이 살 수 있는 주거형태가 대규모로 발견이 되었다면 이는 '일반 평민'이 피라미드 근처에서 살았고, 이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한 주역이라는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임금을 신으로 모시기 위해서 세우는 건물인데, 정성껏 짓기 위해서라도 노예를 부리지 않았을 것이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피라미드를 세워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고대 건축물을 '일반 평민'이 '일정한 금액'을 지급 받으며 정성껏 쌓아올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바벨탑과 같은 지구라트 신전은 물론이고,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판테온이나 콜로세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고인돌'은 어땠을까? 외국에서는 드문드문 발굴되는 유적인 탓에 '족장의 무덤'일 것으로 보였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평민들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대량의 건축사업을 벌인 것으로 해석해야 옳지 않을까? 물론 '개인적인 견해'다.

 

  한편, 집은 인간만이 짓는 것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동물이 만드는 집을 보고 인간이 따라서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동물들이 짓는 집을 보면 대단히 잘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집을 잘 짓는 동물은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새'다. 우리 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까치둥지'나 '제비둥지'만 보아도 재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새들의 둥지는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 없다. 그리고 둥지 안의 온도는 바깥날씨와는 상관없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도 대단히 놀랍니다. 또한 비버가 강둑에 짓는 집이나 개미, 벌과 같은 곤충이 지은 집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과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쓴 책이긴 하지만, 일반독자들이 교양을 쌓기 위해서 읽어도 좋을 책이다. 근래에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만든 책들이 꽤나 유익하게 만들어져서 웬만한 '인문학책'보다 훨씬 좋은 책들이 정말 많다. 이 시리즈도 <어린이 책도둑>이란 이름으로 기획된 '인문/사회책'으로 벌써 11권이 출간되었다. 기회가 되면 이 책의 시리즈도 계속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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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북클럽 자본 시리즈 9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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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번째 책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과연 제대로인지 검증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은 여러 가지 교묘한 꼼수를 써가며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고 있는 현장을 급습하는 듯 까발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교묘한 수법은 오늘날에도 '정당한 방법'인냥 많은 이들의 '상식'처럼 깔려 있어서 노동자 스스로는 자신들의 몫이 착취 당하는지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착취의 현장'을 마르크스는 오래 전에 '고발'했으며, 노골적으로 자본가들의 편에 선 '정치경제학자'들도 싸잡아서 비난하곤 했다.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자본론>을 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마르크스는 정말 대단하다.

 

  마르크스는 '존 스튜어트 밀'을 비판했다. 왜냐면 '노동자도 일종의 자본가다'라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밀이 말하길, "이윤은 생계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노동의 신비한 생산력에서 나온다"고 했고, "교환이 없어도 노동을 하면 이윤이 생겨난다"고도 말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필요 이상의 '잉여생산'을 해냈으므로 노동자는 스스로 부를 쌓아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고, 이렇게 남아돌도록 생산을 해냈으니 '교환'을 하지 않아도 노동자는 '이윤'을 챙긴 셈이니, 노동자는 노동을 할수록 부유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 셈이다. 또한 "노동자가 노동을 한 뒤에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을 한 뒤에 대가를 챙긴 것이니 일종의 '투자'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라고도 말을 한 밀을 마르크스는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부를 쌓은 적이 없는데도 밀은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학자의 양심에 앞서서 그도 '자본가 계급'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이 속한 계급에 유리한 해석을 내놓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에도 그러지 않느냔 말이다. 허나 마르크스의 눈에는 '대학자의 지성이 이토록 저렴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경제학자라면서 '노동의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처사라면서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동의 형태'와 '임금 지급'에 관한 분석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또 강조한 것이 바로 '형태'의 차이점을 유심히 바라보라고 했다. '형태'만 달라져도 자본가는 앉아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시간급제'에서 '성과급제'로 임금 지급 형태를 바꾸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시간급제'에서는 노동을 한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든, 농땡이를 부리며 일하든 '일정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물론 농땡이를 피우면 감독관에게 걸려 해고를 당할 것이다. 허나 '성과급제'로 바꾸기만 했는데, 노동자 스스로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다. 주어진 노동시간 동안 누가 더 많은 양을 만들어냈느냐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주기만 해도 노동자들을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건 사실이다. 허나 자본가가 챙기는 '잉여생산량만큼의 이윤'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에 결코 자본가가 손해볼 일은 없다.

 

  또한 '성과급제'에서는 호황이든 불황이든 상관없이 자본가는 이윤을 챙길 수 있다. 호황은 말할 것도 없고 불황일 때는 '생산량'을 일방적으로 줄여버리기 때문에 더 적은 임금을 주어도 노동자들이 할 말이 없다. 도리어 쫓겨나지나 않을까 적은 임금을 받고도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기 일쑤다. 또 '성과급제' 아래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감시를 하기 때문에 별도의 감독이 필요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이윤'을 챙길 수 있다. 단지 '생산량'이 얼마큼인지 결과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에 더욱 편리하게 '착취'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처럼 '형태'를 유심히 관찰하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마르크스는 역설한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유능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착취를 잘 당하는 것'과 통한다. 재주가 뛰어나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자본가에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전락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자칫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속담과 딱 들어맞는 경우다. 이를 테면, 빵 공장에서 1시간에 평균 100개를 만드는데 비해, 같은 시간에 200개를 만드는 노동자가 있다면 자본가는 노동자를 칭찬하는 약간의 수고만으로도 엄청난 이윤을 챙기기 때문이다. 물론 '보너스'와 같은 단맛을 느끼게 해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보다 더 많은 이윤을 자본가가 고스란히 챙긴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훌륭한 작가란 좋은 글귀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아니라 더 많은 책을 팔아 돈을 더 많이 벌게 해주는 작가라는 점도 자본가가 파놓은 '함정'이다.

 

  어찌보면 '훌륭한 리뷰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꽁짜책을 받고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리뷰어가 직접 책을 사서 읽고 일정한 독서시간을 할애한 뒤에 정성껏 리뷰를 남기게 된다. 대부분은 리뷰를 쓰고서 '돈 한 푼' 받지 못한다. 물론 작가를 지망하거나 취미생활의 일환이라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아도 보람을 느끼며 뿌듯해 하지만, 정작 '온라인 서점'에서는 그런 리뷰어들 덕분에 '공짜 책홍보'로 이득을 챙기며, 출판사들도 덩달아 판매고를 올리는 이득을 챙긴다. 그렇게 수고한 '리뷰어'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온라인 서점'과 '출판사'가 얼마나 있을까? 리뷰어가 '노동자'라면 당장에 조합을 꾸리고 소송을 벌여야 마땅할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다.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더 많은 착취를 당하기 때문이다. 또 그만큼 '노동의 가치'도 저평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유능한 재주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인정받은 만큼 '댓가'도 정당하게 받아야만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본가의 꼼수'에 걸려들어서 노동자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빼앗기지 말자는 것이다. '월급명세서'만 봐도 상당히 복잡하다. 내가 받아야할 '기본수당'에 '추가수당'을 더해서 한 달치 월급이 딱 이 정도다..라고 쓰여진 명세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받아야 할 '기본수당'은 깎고, '추가수당'을 항목별로 세분화해서 이름도 요상한 명목의 명세서를 받기 일쑤다. 그 결과 '내가 받아야 할 액수'는 얼추 맞는 것 같은데, 회사로서는 '내야할 세금'을 깎을 수 있는 꼼수를 부린 셈이다. 그렇게 기업이 내야 할 세금이 줄어들면 '유리지갑'을 갖고 있는 월급쟁이들이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상대적으로 세금을 더 많이 낸 '월급쟁이'에게 유리한 정책보다는 '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놓곤 한다. 그래도 '월급쟁이'는 아쉬운 소리를 내지 못한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아름다울 수 없는 진실'을 알고서도 불평 한마디 내뱉을 수 없는 노동자의 처지를 말이다. 마르크스가 100여 년전에 이미 지적한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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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 우린 모두 사회가 준 유산의 상속인 사회 쫌 아는 십대 6
오준호 지음, 신병근 그림 / 풀빛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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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말했다. "한 달에 500만 원씩 수입이 생긴다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겠다"고 말이다. 이는 '마음의 소리'로 해석하면, 한 달에 500만 원의 소득이 생긴다면 아무런 걱정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500만 원을 벌게 되어도 일을 쉬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이 벌어도 더 벌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 탓이다.

 

  그런데 진짜로 매달 500만 원씩 따박따박 내 통장에 임급이 된다면 어떨까?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던져버리고 씀씀이를 조금 줄이더라도 평소에 '하고 싶은 일'인데도 일에 쫓겨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즐겁게 살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것이다. 난 지금 한 달에 100만 원도 제대로 못 벌고 있기 때문에 500만 원이 아니라 200만 원만 줘도 알뜰살뜰 아껴쓰며 살아가고 싶다. 이처럼 걱정을 떨쳐내고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실제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실현'될 가능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물론 첫 시행부터 500만 원을 줄 수는 없고, 적게는 매달 20~30만 원부터 많게는 200만 원까지 챙겨주는 시범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꽤 많다. 우리 나라도 경기도 성남시에서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성남시에 거주하는 만24세 청년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1년간 100만 원씩 지급한 일이 있었다. 시행한 결과는 매우 만족한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였으며, 곧이어 '경기도 전역'으로 시행범위를 넓혀 시행했고, 서울시에서도 만 19세 ~ 34세 미취업청년을 대상으로 6개월간 50만 원씩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체로 '꽁돈'이 생긴다며 반기는 의견이 많았지만, 대상자가 아닌 분들의 목소리에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왔다.

 

  물론 '기본소득'은 '선별적복지'와 달리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사업은 엄연한 의미에서 '기본소득'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지급대상자'를 상대로 이렇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으로 인해 세금이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괜찮겠습니까? 라는 질문에도 과반 이상이 찬성이라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답변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본소득으로 받은 돈을 꽤나 유용하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 몇 달은 허투루 썼더라도 다음달에 또 같은 액수가 지급될 것이기 때문에 '소득이 불안정한 젊은이들'에게는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아파서 알바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기본소득'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쉬면서 일을 처리하고 몸을 회복하면서 안정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업을 시작하다가 실패를 하더라도 '기본소득'이 있기 때문에 일단 먹고 살 걱정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기본소득'을 받는 주민들은 이런 장점을 이야기하곤 한단다. 미국의 알래스카 주민들이 매년 '배당금'을 기본소득처럼 받고 있는데, 알래스카에서 채굴하는 유전으로 생긴 이득을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배당금이 지급되고부터 알래스카 주민들의 '행복의 질'이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적게는 180만 원에서 많게는 230만 원까지 지급받고 있다는데, 알래스카 주민이라면 아무 조건없이 매달 지급받는 '기본 소득'이다.

 

  이렇게 좋은 정책인데 왜 전세계적으로 시행을 하지 않는 걸까? 그건 '재정부담'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그보다는 부자들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기 때문이라는게 정설이다. 왜냐면 온 국민이 '기본소득'을 지급받기 위해선 정부가 세금을 걷어야 하는데, 상위 1%의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자들도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부자들만 [기본소득 < 세금]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먼저 시행한다고 하면 부자들의 이민 발생률이 급격히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해도 기꺼이 내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부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부자들의 '조세저항'은 일반서민들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시행하기에 앞서 '선별적 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다시 말해,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소득의 일정부분을 보장해주어 생계에 보탬이 되도록 말이다. 허나 '선별적 복지'에는 엄청난 함정이 숨겨져 있다. 지금 우리 나라도 시행하고 있는 '선별적 복지'는 가장 가난한 '최극빈계층'에게만 복지혜택을 받게 하고 있다. 그래서 당장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면 '차상위계층'이 되어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최극빈계층'이나 '차상위계층'이나 우리 사회에서 도움이 절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둘 사이를 가르는 기준을 '월 50만 원 수입'이라고 정했다면, 월 49만 원 버는 이는 복지혜택을 받아 '월 50만 원씩' 지급받아 총 수입이 월 100만 원이 되지만, 일을 구해서 월 51만 원의 수입을 스스로 벌 수 있게 되면 한 푼도 혜택을 받지 못해 '최극빈계층'보다 더 못사는 '차상위계층'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점은 또 있다.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보편적 시행 vs 선별적 시행'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만약 '무상급식'을 선별적으로 시행했을 때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가난'을 직접 증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난 라이센스'를 발급받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매번 증명해야만 한다. 이럴 때 얼마나 자괴감에 빠지게 될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일 것이다. '우리 아빠엄마 세금으로 밥 빌어 먹고 사는 찌질이'로 낙인을 찍게 될 것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는 허울 좋은 도덕심으로는 왕따를 결코 이겨낼 수 없다.

 

  이렇게 '선별적 복지'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헌데 '보편적 복지'를 하게 된다면 어떨까? 자신의 가난을 증명할 일도 없다. 또, 기본적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주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난'을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생계형 범죄' 같은 일은 확연히 줄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그래도 부정적인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일 할 의욕'을 사라지게 만들어서 게을러진다고 말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실현된 세상에서는 '노동'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는 세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동이 사라진 세상에서 '게으름'을 평가할 기준은 무엇으로 정할 수 있겠냔 말이다. 온 세계 사람들이 '지금의 기준'으로 게을러질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노동의 종말'을 고하게 되고, 인간은 놀고 먹는 일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기본소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 굻어죽고 말 것이다. 날마다 폭동이 일어나 불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본소득'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시행될 가능성은 없다. 인간의 노동이 소멸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앞선 시대에 차츰차츰 시행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혹시나 조금 이른 시기에 시행되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보편적 복지'를 실행하며 앞서나가면 어떨까? 분명 '기본소득'은 꽤나 장점이 많고 불편함보다는 유용함이 더 많게 될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기본소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한 번 더 고려해보고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면 '기본소득 정책'은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고, 뒤로 후퇴했을 때에는 엄청난 반감이 생길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기본소득' 논술 수업을 진행해보니, '꽁돈'이 생기는 건 좋지만, '세금'을 더 내야하는 건 싫다는 의견이 많았다. 재벌도 아닌 아이들인데, 의무보다 혜택을 더 누릴 아이들인데도 "세금 내는 건, 싫어요. 차라리 안 받을래요"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 물론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이해가 부족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마키아벨리가 지적했듯이 "받는 것보다 빼앗긴 것에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는 심리는 진리라는 걸 새삼 느꼈다. 뭐, 아이들에게는 마키아벨리즘을 설명하는 것보다 '조삼모사'를 설명하는 것이 더 빠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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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공정무역, 왜 필요할까?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1
아드리안 쿠퍼 지음, 전국사회교사모임 옮김, 박창순 감수 / 내인생의책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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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재팬'의 열풍은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일본불매는 하겠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일본제품' 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를 향해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으라고 외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일본은 지난 잘못에 대한 사죄는커녕 사과나 반성도 없다. 그저 버틸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버팀'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행여 '오래' 가면 갈수록 더욱 불리한 것은 일본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은 바로 '소비자의 힘' 덕분이다. '공정무역'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소비자의 힘'이 없다면 시작도 할 수 없다. 그럼 공정무역이란 무엇일까?

 

  무역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상품을 사고 파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공정하다'는 뜻을 달았으니 '무역'을 공정하게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누구에게 공정하다는 것일까? '공정함의 대상'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노동자(생산자)'를 향한다. 노동자가 땀 흘려 열심히 생산한 물품을 '정당한 대가'를 주고서 사오자는 운동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역'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커피농장에서 커피를 따는 어린 노동자에게 하루동안 일하고 버는 돈이 고작 우리 돈으로 100~200원에 불과하단다. 축구공을 한 개 만들기 위해서 수백 번의 바느질을 거쳐야만 한단다. 그런데 이를 기계화된 공장에서 만들지 않고 어린 소녀의 손끝을 수없이 찌른 뒤에야 만든단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계를 들여서 만드는 것보다 소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 소녀가 축구공 하나를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 한 개를 만들 때마다 받는 임금은 고작 1000원에 불과하단다. 이 고급 축구공을 선진국의 소비자가 사려면 10만 원이 넘게 드는데 말이다.

 

  바로 여기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 상품이 전해지면서 가격의 차이가 너무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축구공을 살 때는 10만 원인데, 소녀의 손에 쥐어진 돈은 고작 1천 원이다. 나머지 차액은 누가 갖게 되는가? 바로 '중간 상인(기업)'의 몫이다. 물론 기업들이나 중간 상인들도 억울한 소리를 하게 마련이다. 상품이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게 되면 '운송비'가 들게 되고, 상품이 수출상인과 수입상인을 거칠 때마다 '이득'이 붙게 마련이라 '노동착취'와 같은 비난이라도 할라치면 억울할 법 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린 노동자들이 '노동착취'를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왜냐면 너무나 적은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건 소비자들이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대형마트'에서 더 싼 상품을 소비하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기업이나 중간상인들도 더 싼 상품을 찾게 되고, 그렇게 싼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어린 노동자들의 몫을 줄이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의 욕구'가 어린 노동자들을 '착취'하게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비싼 상품을 소비해야 할까? 그렇더라도 어린 노동자들의 몫이 커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중간에 거치는 단계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때에는 '중간상인들'만 큰 이득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한 소비'가 노동자들의 삶까지 윤택하게 만들 수 있도록 '공정무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시하고 지켜보는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가 착한 소비를 한 것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정무역 마크'를 보면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허나 '공정무역'에도 문제점은 있다. 일부 기업들이 '공정무역 마크'를 다는 것을 홍보마케팅으로 이용하며 그 홍보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도 한 사례도 있고, 애초에 소비자를 속이고 거짓으로 마크를 도용해서 착한 소비자를 우롱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수많은 무역상품을 일일이 검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적지 않게 적발하고 있음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힘'은 세다. 단 한 차례라도 신용을 잃는 행위를 하거나 갑질횡포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꺼내들며 기업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음을 기업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설령 기업이 아닌 '하청업체', '도급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도 원래의 기업에게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왜냐면 커다란 기업이 흔들리면 밑에 있는 중소기업들도 자연스레 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비자는 기업을 믿고 소비를 하되 '공정무역'을 속이거나 하면 본때를 보여주면 된다.

 

  허나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관건이 되었다. 세계 경기가 들쭉날쭉 할수록 기업들은 '공정무역'을 부담으로 느끼고 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소비자'들이 줄어든 소득만큼 소비를 줄인 탓이다. 하지만 '착한 소비'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고용이 된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노동자들을 외면하면 노동자들은 설자리가 없게 된다. 비록 머나먼 곳이라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내가 '소비하는 상품'을 만드는 또 다른 노동자의 노고를 생각해서 '합리적인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착한 소비를 멈추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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