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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 우린 모두 사회가 준 유산의 상속인 ㅣ 사회 쫌 아는 십대 6
오준호 지음, 신병근 그림 / 풀빛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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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말했다. "한 달에 500만 원씩 수입이 생긴다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겠다"고 말이다. 이는 '마음의 소리'로 해석하면, 한 달에 500만 원의 소득이 생긴다면 아무런 걱정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500만 원을 벌게 되어도 일을 쉬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이 벌어도 더 벌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 탓이다.
그런데 진짜로 매달 500만 원씩 따박따박 내 통장에 임급이 된다면 어떨까?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던져버리고 씀씀이를 조금 줄이더라도 평소에 '하고 싶은 일'인데도 일에 쫓겨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즐겁게 살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것이다. 난 지금 한 달에 100만 원도 제대로 못 벌고 있기 때문에 500만 원이 아니라 200만 원만 줘도 알뜰살뜰 아껴쓰며 살아가고 싶다. 이처럼 걱정을 떨쳐내고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실제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실현'될 가능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물론 첫 시행부터 500만 원을 줄 수는 없고, 적게는 매달 20~30만 원부터 많게는 200만 원까지 챙겨주는 시범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꽤 많다. 우리 나라도 경기도 성남시에서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성남시에 거주하는 만24세 청년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1년간 100만 원씩 지급한 일이 있었다. 시행한 결과는 매우 만족한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였으며, 곧이어 '경기도 전역'으로 시행범위를 넓혀 시행했고, 서울시에서도 만 19세 ~ 34세 미취업청년을 대상으로 6개월간 50만 원씩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체로 '꽁돈'이 생긴다며 반기는 의견이 많았지만, 대상자가 아닌 분들의 목소리에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왔다.
물론 '기본소득'은 '선별적복지'와 달리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사업은 엄연한 의미에서 '기본소득'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지급대상자'를 상대로 이렇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으로 인해 세금이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괜찮겠습니까? 라는 질문에도 과반 이상이 찬성이라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답변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본소득으로 받은 돈을 꽤나 유용하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 몇 달은 허투루 썼더라도 다음달에 또 같은 액수가 지급될 것이기 때문에 '소득이 불안정한 젊은이들'에게는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아파서 알바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기본소득'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쉬면서 일을 처리하고 몸을 회복하면서 안정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업을 시작하다가 실패를 하더라도 '기본소득'이 있기 때문에 일단 먹고 살 걱정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기본소득'을 받는 주민들은 이런 장점을 이야기하곤 한단다. 미국의 알래스카 주민들이 매년 '배당금'을 기본소득처럼 받고 있는데, 알래스카에서 채굴하는 유전으로 생긴 이득을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배당금이 지급되고부터 알래스카 주민들의 '행복의 질'이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적게는 180만 원에서 많게는 230만 원까지 지급받고 있다는데, 알래스카 주민이라면 아무 조건없이 매달 지급받는 '기본 소득'이다.
이렇게 좋은 정책인데 왜 전세계적으로 시행을 하지 않는 걸까? 그건 '재정부담'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그보다는 부자들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기 때문이라는게 정설이다. 왜냐면 온 국민이 '기본소득'을 지급받기 위해선 정부가 세금을 걷어야 하는데, 상위 1%의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자들도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부자들만 [기본소득 < 세금]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먼저 시행한다고 하면 부자들의 이민 발생률이 급격히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해도 기꺼이 내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부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부자들의 '조세저항'은 일반서민들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시행하기에 앞서 '선별적 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다시 말해,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소득의 일정부분을 보장해주어 생계에 보탬이 되도록 말이다. 허나 '선별적 복지'에는 엄청난 함정이 숨겨져 있다. 지금 우리 나라도 시행하고 있는 '선별적 복지'는 가장 가난한 '최극빈계층'에게만 복지혜택을 받게 하고 있다. 그래서 당장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면 '차상위계층'이 되어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최극빈계층'이나 '차상위계층'이나 우리 사회에서 도움이 절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둘 사이를 가르는 기준을 '월 50만 원 수입'이라고 정했다면, 월 49만 원 버는 이는 복지혜택을 받아 '월 50만 원씩' 지급받아 총 수입이 월 100만 원이 되지만, 일을 구해서 월 51만 원의 수입을 스스로 벌 수 있게 되면 한 푼도 혜택을 받지 못해 '최극빈계층'보다 더 못사는 '차상위계층'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점은 또 있다.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보편적 시행 vs 선별적 시행'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만약 '무상급식'을 선별적으로 시행했을 때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가난'을 직접 증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난 라이센스'를 발급받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매번 증명해야만 한다. 이럴 때 얼마나 자괴감에 빠지게 될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일 것이다. '우리 아빠엄마 세금으로 밥 빌어 먹고 사는 찌질이'로 낙인을 찍게 될 것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는 허울 좋은 도덕심으로는 왕따를 결코 이겨낼 수 없다.
이렇게 '선별적 복지'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헌데 '보편적 복지'를 하게 된다면 어떨까? 자신의 가난을 증명할 일도 없다. 또, 기본적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주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난'을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생계형 범죄' 같은 일은 확연히 줄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그래도 부정적인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일 할 의욕'을 사라지게 만들어서 게을러진다고 말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실현된 세상에서는 '노동'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는 세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동이 사라진 세상에서 '게으름'을 평가할 기준은 무엇으로 정할 수 있겠냔 말이다. 온 세계 사람들이 '지금의 기준'으로 게을러질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노동의 종말'을 고하게 되고, 인간은 놀고 먹는 일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기본소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 굻어죽고 말 것이다. 날마다 폭동이 일어나 불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본소득'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시행될 가능성은 없다. 인간의 노동이 소멸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앞선 시대에 차츰차츰 시행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혹시나 조금 이른 시기에 시행되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보편적 복지'를 실행하며 앞서나가면 어떨까? 분명 '기본소득'은 꽤나 장점이 많고 불편함보다는 유용함이 더 많게 될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기본소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한 번 더 고려해보고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면 '기본소득 정책'은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고, 뒤로 후퇴했을 때에는 엄청난 반감이 생길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기본소득' 논술 수업을 진행해보니, '꽁돈'이 생기는 건 좋지만, '세금'을 더 내야하는 건 싫다는 의견이 많았다. 재벌도 아닌 아이들인데, 의무보다 혜택을 더 누릴 아이들인데도 "세금 내는 건, 싫어요. 차라리 안 받을래요"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 물론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이해가 부족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마키아벨리가 지적했듯이 "받는 것보다 빼앗긴 것에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는 심리는 진리라는 걸 새삼 느꼈다. 뭐, 아이들에게는 마키아벨리즘을 설명하는 것보다 '조삼모사'를 설명하는 것이 더 빠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