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쩌미 세계로 쩜프! 2 : 차오 이탈리아 민쩌미 세계로 쩜프! 2
툰쟁이 그림, 한바리 글, 샌드박스 네트워크 감수, 민쩌미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y Review MDCCCLXXVIII / 위즈덤하우스 36번째 리뷰] 세계문화 체험을 하는 두 번째 책이다. 이번엔 '축제의 나라,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는 과거엔 '로마제국'이라는 강력하고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운 나라이지만, 로마제국이 무너진 중세 이후에는 이웃나라의 간섭을 받아 근대 이후 '통일 이탈리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꽤나 혼란스런 시기를 보낸 나라다. 하지만 지중해를 '앞 마당'처럼 주름 잡던 로마제국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는 지중해로 나가는 아주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더 일찍 '중동의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암흑의 중세 시대'를 보낼 무렵에 선진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며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 탓에 이탈리아에는 다양한 축제 문화가 화려하게 꽃 피울 수 있었다. 지금도 이탈리아 곳곳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벌어지며, 특히 1268년에 시작한 베네치아 카니발(매년 1월 말~2월)은 이탈리아 최대 축제로 불리고 있다. '가면무도회', '비엔날레', 시에나 팔리오 '경마 대회' 등이 열리며, 그밖에도 최초의 국제 영화제인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볼로냐 국제 도서전 등도 있답니다.

그럼 이탈리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갖고 있어야 할 '사전 지식'은 또 무엇이 있을까? 무엇보다 로마제국 시절에 지어진 '건축물'에 대해서 알아두면 좋을 듯 싶다. 검투사들이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던 '콜로세움', 모든 신들이 잠들어 있는 '판테온',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폼페이 유적지' 등등 구경거리가 넘쳐난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절에 꽃 피운 화려한 문화를 맛보고 싶다면 '피렌체'와 '피사', '밀라노', '나폴리', 그리고 '베네치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로마'와 '르네상스'에 대한 정보만 빠삭하게 알고 있어도 이탈리아는 볼 거리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나라일 것이다.

그럼 이 책 <민쩌미 세계로 쩜프!>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민쩌미 유튜브 채널 구독과 민쩌미 캐릭터에 대한 '정보'도 아울러 알아두면 좋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민쩌미 유튜브는 몇 번 시청해본 적이 있지만, 어른인 내가 보기에는 <유머1번지>에서나 봤을 법한 콩트나 <개그콘서트>에서 봤음직한 개그코미디가 주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저도 한두 편을 보고 내린 결론이기에 '취향'에 맞지 않다면 굳이 구독시청까지 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그닥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멀티버스' 여행자인 메오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서 '다중 우주'에 대한 천문학적 지식을 별도로 쌓는 것이 더 나은 듯 싶다. 아직 초등독자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일 수 있지만 마블 히어로인 '닥터 스트레인지 2'가 바로 멀티버스의 개념을 '시각화'한 영화에 속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시작으로 '다중 우주'에 대한 입문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암튼 이 책에서는 '멀티버스 여행자'인 메오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여행에 꼭 필요한 '스파티'를 지구 곳곳에서 잃어버린 탓에 민쩌미와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스파티'란 에너지를 회수하고 있는 것이 주된 줄거리라는 점만 기억하면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쩌미 세계로 쩜프! 1 : 봉주르 프랑스 민쩌미 세계로 쩜프! 1
툰쟁이 그림, 한바리 글, 샌드박스 네트워크 감수, 민쩌미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y Review MDCCCLXXVII / 위즈덤하우스 35번째 리뷰] 위즈덤하우스에서 '학습만화'까지 나오는 줄은 몰랐다. 요즘은 어린이책 분야가 워낙 출판사 간에 경쟁이 불타고 있는 상황이라 어색한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너무 과열되는 분위기라서 조금은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까닭인즉슨,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많은 학습만화가 쏟아져나오는 통에 '비슷비슷한 내용'의 어린이책이 '캐릭터'만 바뀐 채 출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하고 다채로운 책'이 양적으로 풍부해진 것은 독자로서 분명 환영하는 바이지만, '차이점'과 '특별성'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 낮은 책들이 '양적'으로만 팽창하는 것은 그닥 독자들에게 환영할만 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독자는 더 다양한 '어린이책'을 읽고 싶다는 점을 충분히 반영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 <민쩌미 세계로 쩜프!>는 세계 각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프랑스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책속의 각 나라 문화를 소개하는 주인공은 인기 유튜버이자 크리에이터로 활약하는 '민쩌미'다. 그녀의 유튜브는 '1인 다역'이 특색이며, 소재는 대부분 '상황별 코미디'를 전달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게 인기 유튜버가 '캐릭터'로 분하여서 세계 여행을 다니며 여러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소개하는 내용의 어린이책이라고 소개하면 딱일 것이다.

하지만 유튜버의 구독자가 아무리 많아도 '유튜브 시청'과 '도서 읽기'를 동시에 즐기는 애독자가 많을 지는 미지수라고 본다. 그리고 구독자 가운데 '어린이책'을 선호할 사람이 얼마나 많을 지도 의문이고 말이다. 물론 '어린이책의 특성'상 책 수요가 서서히 증가하다가 시리즈가 궤도에 오를 때쯤에 꾸준히 팔려나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리 큰 수요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민쩌미'라는 캐릭터가 계속 안정적인 인기를 끌고 간다면 대반전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어린이책 시장의 특수성'이다. <마법천자문>, <그리스로마신화>, 그리고 <Why?> 시리즈는 '학습만화시장'에서는 전설로 불리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니까 말이다.

암튼, 프랑스에서 체험해 볼 수 있는 문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부분의 문화체험이 '단기 여행코스'라는 점은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되도록 문화체험은 오래 머물면서 공을 들여 다양하게 체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게 '시간'과 '돈(비용)'은 비례하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짤막하게 스쳐지나가듯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여행(체험)을 떠나기에 앞서 '사전 정보'를 많이 비축해놓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이 책 <민쩌미 세계로 쩜프!>에서도 그런 '단기 여행코스'처럼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는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너무 깊고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하기보다는 '꼭 알아야 할 주요 문화체험' 방식으로 편집하여 프랑스 문화의 대략적이고 전반적인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독자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다시 한 번 '프랑스'를 방문하였을 때는 더 깊이 있는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인 동시에 '계기'로 삼으려는 목적을 분명히 보여준 듯 싶다.

아무래도 '학습만화'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다소 '교과서적인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삼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민쩌미' 캐릭터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책의 내용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여 '지식습득'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좋아하는 아이돌(연예인)이 "사회공부 잘하는 어린이가 너무 멋져보여요"라는 멘트를 보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뭐, 대한민국 학부모들도 자녀에게 공부쪽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경향이 강한 편이니, 이런 전략은 정말 잘 먹힐게 뻔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성비'는 어느 정도일까? 좋아하는 감정을 정확한 '수치'로 매기기 힘든 것을 감안한다면, 평소에 '민쩌미' 캐릭터를 좋아하는 어린이에겐 10점 만점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어린이독자라면 책이 담고 있는 '지식내용과 수준'이 다소 부족하고 보통 이하의 '쉬운 내용'만 담고 있다는 지적을 할 수 있겠다. 또한 전체적인 '줄거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에는 분량이 너무 짧은 면이 있고, 1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프랑스 문화'를 보여주려다보니 '적은 지면'에 그 모두를 담기에도 벅찬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용면으로 봤을 땐 '초등 1~3학년'을 주요 대상으로 삼은 듯 싶은데, 다루고 있는 '문화 체험'의 내용은 '초등 4~6학년'의 고학년에서 다루는 내용이 아닌지 살짝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평소에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어린이라면 이 책으로 '프랑스'의 다양한 문화의 맛을 보고, 더 깊이 있는 책을 통해서 더 많은 문화를 이해하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퇴근길 인문학 수업 : 연결 - 오늘의 지식을 내일의 변화로 이어가기 퇴근길 인문학 수업
이종관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 한빛비즈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y Review MDCCCLXXVI / 한빛비즈 160번째 리뷰] <퇴근길 인문학 수업> 다섯 번째 책 '연결'편이다. 시즌 1에 해당하는 '멈춤, 전환, 전진'에서는 인문학의 '방향성'을 집중 조명해보았다면, 시즌 2에서는 '관계, 연결, 뉴노멀'로 인문학이 우리 삶에 어떻게 연관짓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 가운데 '연결'편에서 다뤄볼 내용은 5강 <세종의 원칙>(인문학자 박영규)과 8강 <인물로 이해하는 춘추전국시대>(역사인류학자 공원국)이다.

미치광이의 폭거로 시작된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국민불안감은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중'이고, 이번주 토요일 5시에 '대통령 탄핵소추 안건'이 국회에서 표결에 붙여질 예정이다. 하야를 해도 모자라고 급박한 시국에 몇 명 남지도 않은 극소수의 지지자를 '선동'시켜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보려 애를 쓰고 있지만, 국민들이 바보는 아니다. 미치광이는 국민들이 폭동이라도 일으켜서 '내란의 혼란'속에서 영구집권을 노리는 망동을 선택한 모양이지만, 그런 얕은 수작에 넘어갈 국민은 없다는 사실만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만에 하나 지금 이 시점에 '폭동'을 주장하는 시민이 있다면, 그가 바로 '내란수괴의 동조범'이 확실하다. 폭력시위는 미치광이가 최후의 발악을 할 때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차분히 '미치광이'를 헌법절차에 맞게 탄핵시키고, 그에 따른 죗값을 달게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이제와서 다시 '세종'인가?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대한민국에 '왕조시대'의 성군이 바람직한 리더일리도 없는데 말이다. 더구나 '제왕적인 군주'처럼 굴던 대통령은 하나 같이 비극적인 결말로 임기를 마친 대한민국의 슬픈 정치역사에서 세종의 리더십을 다시 목소리 높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인문학자 박영규'는 세종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걸맞는 '무위(無爲)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한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은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그런 권한을 세종에게 물려주었다. 어떻게 물려준 '왕권'이란 말인가? 제 형제들을 제 손으로 죽이고 충신을 자처하는 신하들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쟁취한 왕권이다. 그런 왕권을 세종은 가볍게 내려놓았다. 그건 취임하자마자 신하들에게 토론을 제안한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과인과 함께 국사에 대하 논하자. 그대들의 의견을 듣겠다"라는 대목이다. 아버지 태종과는 사뭇 다른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발언이었다. 더구나 겸손하기까지 하다. 초짜 임금이니 업무에 서투를 수밖에 없고, 아는 것도 많지 않은 젊은 군주이니 '당신들의 지혜'를 빌려달라는 취지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상호 협의를 내세운 임금 앞에서 신하들은 반신반의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세종의 아버지, 태종 때에는 신하들이 '소신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세종은 진심이었다.

그런 임금의 진심은 오래가지 않아 '진실'로 증명되었다. 토론 과정에서 나온 발언을 두고 세종은 누구의 발언이든, 어떤 내용이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실리와 효용'만을 따져서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파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 검증'만으로 관직을 내리니 허조, 황희, 김종서, 박연, 장영실 같은 큰 인물이 세종의 주변에서 제대로 실력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위의 리더십'은 조선 초기 강성한 국력을 마련하는데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우게 만들었다. 뭔가 감이 오지 않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절실하고, 국민들이 가장 바라마지 않는 '리더의 덕목'일 것이다.

왜 윤석열은 이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던가? 애초에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감이었다는 지적이 가장 적절한 근거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 보수는 '박근혜 탄핵'을 맞아 괴멸 수준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보수 진영에서 내세운 '새로운 대표'가 바로 윤석열 카드였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내며 진보 진영과 대립각을 세웠던 선두주자였던 것이 얼떨결에 '대선출마'까지 하게 되었고, 보수 진영에서는 마땅히 내세울 대표가 없자 문재인과 싸웠던(?) 투사, 윤석열을 '대타'로 내보내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맞는 듯 싶었다. 일단은 '정권 재창출'을 해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윤석열'을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봤지만, 보수 지지자들에겐 '구원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은 그런 보수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윤석열은 '집권'을 하자마자 독자적인 행보를 했다. 그것도 아주 이상하게 말이다. 상식적으론 할 수 없는 일조차 윤석열은 '할 수 있는 일'처럼 밀어붙였다. 대통령 후보시절에 손바닥에 '王'이란 글자를 새겼을 때부터 이미 징조는 보였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설마설마 싶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그런 국민의 열망마저 무참히 짓밟았다. 자신의 의지와 결단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 법치주의를 내세우며 '위법자'로 내몰았다. 국민들은 민생경제가 파탄나며 생계를 걱정하며 대책마련을 호소했지만, 윤석열은 그런 소리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단결된 목소리를 내고자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불법'을 말하며 파업에 나선 이들을 향해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다. 이에 비판적인 언론의 목소리가 나오자 '언론장악'에 나서서 비판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제 식구들을 요직에 앉혀놓고 '여론조작'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런 대통령이 2024년에 다시 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다시 조명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 한 명의 미치광이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는지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세종의 리더십을 지닌 '대통령'이 다시 나오길 바라는 것은 비단 한국인 뿐만 아니다. 온 세계가 대한민국에 기대하는 바가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그간 대한민국의 위상은 그저 '선진국'이라는 수식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바로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운 유일한 나라였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간 '한강의 기적'으로 대한민국의 빠른 경제성장에만 주목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민주주의의 완성형'을 전 세계가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을 두고 깜짝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춘추전국시대'를 다시 주목해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춘추전국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한 역사인류학자 공원국은 '인문학에서 다루는 통치권은 다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백가쟁명의 시대인 춘추전국을 관통하는 '통치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정당한 통치권 행사'에 대한 고찰을 이야기한다. 먼저 인문학은 '강자에 의한 약자 지배'를 강자의 우월성으로 읽지 않고, 비정상적 통치'로 읽는단다. 이에 따르면 윤석열은 인문학에 털 끝만큼도 아는 것이 없는 무식쟁이가 틀림없다. 또한 인문학에서는 바람직한 통치권의 척도는 '인류 전체의 복지'라고 지적했다. 이 척도에 의하면 윤석열은 '자기만의 천국'을 지향했으므로 복지 또한 알지 못하는 상또라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윤석열이 내세우는 카드는 '대한민국 제1호 세일즈맨'이라면서 나름 경제학적 리더십에서만큼은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듯 싶다. 그러나 '물질적 복지'를 내세우거나 '어떤 집단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것으로 인문학적으로 바람직한 통치를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중산층' 이하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의 경제가 파탄 직전으로 내몰리지 않았느냔 말이다. 도대체 대통령의 자리에 있으면서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미치광이의 '대화법'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

자, 긴 말 할 것도 없이 예를 들어보자. 책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을 소개하겠다. 한밤중 골목길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패거리가 동급생으로 보이는 한 명의 학생에게 집단 폭행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당장 달려들어 주먹을 날리는 방법이 있다. '묵가의 사상가'가 할 법한 행동이다. 묵가의 첫 번째 원칙은 '비공(非攻)'이기 때문이다. 힘 있는 다수가 힘 없는 이를 먼저 공격한다면 이를 막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지켜보며 주판알을 튕기거나, 혹시나 폭행 당하고 있는 학생이 먼저 잘못한 것은 아닌가 따위를 생각하며 머뭇거리다 그 학생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경찰에게 전화를 거는 방법도 있다. '법가의 사상가'일 가능성이 높다. 만인에게 적용되는 공정한 법이 바로 '사적으로 구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법치주의에 입각한 행동준칙들은 궁극적으로 '지배계급'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저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한 이들에게 처벌을 할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찰 신고'를 한 뒤에 별도의 조치가 있어야 바람직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달고 싶다. 한편, 달려가 맞고 있는 학생을 온몸으로 감싼다면 '도가나 유가 사상가'일 가능성이 크다. 도가에서는 '비폭력주의'가 몸에 벤 탓일게고, 유가에서는 '측은지심'이 발현하여 그런 행동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여기거나, '내 힘으론 어쩔 수 없어'라고 포기하는 사람은 정당한 통치권을 포기한 사람이고, 사상이 없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리더가 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럼 윤석열은 어떤 사상에 입각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었을까? 윤석열이라면 당장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을까? 꽤나 그럴 법한 상상이 되긴 하지만, 결코 매 맞고 있는 학생을 구하기 위해서 '정의의 주먹'을 날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과 한 편을 먹고 짓밟지나 않으면 다행일테고 말이다. 법조인 출신이니 '경찰'에 전화를 걸었을 것이란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진상조사를 밝히거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힘의 과시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어마어마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이다. 애초에 폭력사건이 일어난 까닭이나 배경, 피해자를 위한 초동조치..이따위는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저 '엄정한 수사', 그로 인해 '내릴 수 있는 법적조치'가 얼마나 거창할지에만 관심을 둔 상또라이일테니 말이다. 달려가서 매맞는 학생을 온몸으로 감싸는 일 따위는 할 리도 없다. 또하 '내 힘'이 얼마나 센데 어쩔 수 없다니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정답은 '그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여길 것이다. 조무래기들이 벌이는 폭력사건 따위를 대통령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며 그냥 스쳐지나 가며 애초에 '못 본 척'할 것이 틀림없다. 인문학적으로 절대 '리더'가 되어선 안 될 사람인게다.

우리는 역사속에서 수많은 통치자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리더가 우리를 이끌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통치자가 누구였는지 따지기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때마다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간 우리는 이런 기본적인 행동조차 소홀히 했다.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기도 하고, 내가 찍는 한 표가 '어떤' 정치인에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되는대로 '아무나' 찍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름 소신을 갖고 한 표를 행사한다는 이들도 '보수냐, 진보냐'라는 진영논리만을 따질 뿐, 내가 행사한 한 표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짙게 드러난다. 모두 바람직한 투표는 아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투표란 무엇인가? 물론 '모범답안'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찍은 후보'의 통치행위에 책임을 통감하는 무게감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 행여 내가 찍은 후보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면 심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국정운영을 엉망진창으로 하고 있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따끔한 질책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행사한 소중한 한 표'가 아깝지 않게 된다. 아닌데, 내가 보기에 '간첩' 때려잡기 위한 최고의 조치였고,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야당'을 견제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술책이었으며,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윤석열이 잘 했다고 지지하고 있다면, 당신도 '사상이 없는 사람'에 해당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윤석열처럼 행동하면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인 것이고, 제 욕심만 가득한 미치광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천만에 하나, 만만에 하나라도 행여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제발 철학공부 좀 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y Review MDCCCLXXV / FIKA(피카) 1번째 리뷰] 많은 학생들이 '철학과'를 졸업해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다. 딱히 '철학의 쓰임새'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답을 대신해서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다'고 말해주었지만, 그래도 알쏭달쏭하기만 한 모양이다. 하긴 나도 '철학전공자'가 아닌 까닭에 철학과를 졸업하면 어떤 매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까막눈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철학의 쓸모'에 대해서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오래도록 갈고 닦아 왔기에 썰을 풀어낼 자신은 있다. 그럼 나의 개똥철학을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 책은 <모든 삶은 흐른다>의 저자인 로랑스 드빌레르가 썼단다. "삶은 그저 흘러가며 살아지는 것이다"라는 명쾌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그 책, 맞다. 그 저자가 이번에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면 철학하라"는 명제를 내세운 <철학의 쓸모>를 출간했단다. 그가 말하는 '철학의 쓸모'란 두 가지란다. 하나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는 우리에게 진단과 소견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강하다고 믿는 우리에게 실제로는 병에 걸린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란다. 한마디로 철학은 '병도 알려 주고 약도 지어 준다'를 거꾸로 말한 '약을 지어주면서 병도 알려준다'는 묘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풀어서 말하자면, 현대인이 겪고 있는 '마음의 병'은 그 원인을 알기 힘들다. 그러나 철학은 그 병의 원인을 알고 있으니 얼마든지 '약'을 지어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 뿐만 아니라. 현대인이 '마음의 병'에 걸린 원인이 무엇인지 '철학'을 통해서 얼마든지 알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철학의 쓸모'를 밝히고 있는데,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굳이 '아픈 이유'까지 알아서 치유할 수 없음을 깨닫거나, 치유하기 힘듦을 깨닫고서 도리어 절망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에 접근하기 머뭇거리는 것이다. 몰라도 되는 것을 알아버리고서 겪는 고통이 얼마나 아플 것인지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속담도 있다. 장을 잘 담그면 몇 해 동안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유용한 일이다. 그런데 장을 담궜다 구더기가 쓸어버리기라도 하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면 장 담그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마치 병원에 가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어딘가 몸이 아픈 것 같아서 병원에 가고 싶은 마음인데도 막상 병원에서 '큰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을까 두려워서 병원가기를 꺼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알기를 두려워하는 편인가? 두렵더라도 알고자 하는 편인가? 여기서 알고자 하는 행위가 바로 '철학'이다.

우리는 철학을 매우 심오한 학문이라고 여기곤 하는데, 그런 철학도 있지만, 좀 편하게 떠올리고 싶다면 '자기주장', 또는 '논리적 사고력', '합리적 사고력'..뭐 이런걸 떠올려도 좋다. 그런 모든 생각이 '철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훌륭한 철학자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분들께는 송구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만의 '개똥철학'인데 뭐 어떠랴? 틀린 부분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고 날카롭게 비판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과정도 '담론'의 일부분이 아니겠는가.

암튼, 지금 우리 시대에 철학이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미친 대통령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갑자기? 그렇다. 왜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무지'였던 탓에 정부여당이 하는 일마다 '무능'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권을 창출한 정부와 여당이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을 '이렇게' 이끌어서 국민들의 행복과 안녕을 도모하겠다는 청사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고서는 저들의 욕망만 채우기 위해서 대한민국 시스템 전부를 하나하나 다 망쳐버리고 말았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망춰놔서 도대체 뭐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다. 이래 놓고도 뭘 잘 한 게 있다고 대통령은 직무는 하지 않겠다면서 '하야'는 안 한다고 하고, 정부여당은 대통령 직무는 정지시켜야 한다면서 '탄핵'은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런 행동을 일삼고 있으니 '무지'하고 '무능'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한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자리에 오르면 온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나름의 철학을 발동시켜야 한다. 그래 윤석열 씨는 검사 출신이고, 법무부 장관도 지냈던 분이다. 그럼 굳이 윤석열 씨의 철학은 '법치주의'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치주의의 장점을 따와 '상과 벌'을 명확히 하여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렇게' 하면 상을 받고, '저렇게' 하는 벌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여 국정동력으로 삼았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씨가 집권한 뒤에 도대체 국민들이 뭘 해야 상을 받고, 뭘 하면 벌을 받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래도 벌 받고, 저래도 벌을 받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임기 초반에는 실망을 하지 않았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잘못한 것들(?)이 많았기에 윤석열 씨의 스타일로 바로 잡는 과정이겠거니 싶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사사건건 윤석열 씨가 잘못한 게 분명한 것조차 '지난 정권 탓'을 하기 시작하더니 아예 폭주를 해버렸다.

이에 국민들은 '투표'로 심판을 했다. 두 번의 재·보궐 선거에서는 절반의 심판을,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야당의 압승으로 심판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달라진 게 있긴 했다. 그게 '비상계엄선포'를 위한 사전준비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북한 평양에 '무인기'를 보낸 것도 북한을 자극해서 전쟁을 도발시키고, 전쟁을 빌미로 '계엄'을 선포한 뒤 '정적'을 제거하고서 영구집권을 노렸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게 도대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냔 말이다.

기본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상대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 나와 아무리 적대적인 위치에 있다하더라도 '대화'의 상대로 삼지, 상종하지 못할 사람으로 치부하고서 선빵을 날려 처단해버리는 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 윤석열 같은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철학 공부를 시켜야하는 까닭이다. 바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를 배운고, 상대를 '존중'하는 예절을 몸에 익힌다는 것이 철학의 쓸모다. 윤석열 씨가 아주 기초적인 철학의 개념만 익혔더라도 결코 '처단'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딴에는 윤석열 씨도 '사랑하는 마음씨'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바로 아내 김건희 여사(이하 '김여사')에 대한 지극한 감싸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특히 김여사 관련 '특검'을 국회가 통과시키면 윤석열 씨는 대통령의 권한을 발동시켜 수 차례 거부를 밝혔다. 이를 두고 '로맨티스트'라고 치켜세우는 언론도 있긴 하더라만, 법과 정의를 수호한다던 검사 출신 대통령이 제 아내를 향한 검찰 수사는 왜 흐지부지 막느냔 말이다. 철학은 하나가 맞다면 나머지도 맞는 것이고, 틀리면 틀린 것이다. 똑같은 잣대여야만 할 법이 국민을 향해선 인정사정 봐주지 않으면서 제 아내를 향할 땐 솜사탕마냥 달콤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러면서 정적 이재명을 법적살해라도 하려는냥 수 년동안 탈탈 털어서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묻지마 고발'을 하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그러고도 아직 감옥에 쳐넣지 못한 것을 보면, 이재명의 죄가 가벼운 것인가? 윤석열의 능력이 무능한 것인가? 심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시국이 그러한지라. <철학의 쓸모>에 대한 엉뚱한 소회만 풀어내고 말았다. 애초에 기대한 내용이 원래 이런 것이었다고 변명이라도 늘어놓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살짝 공감이 가지 않았더랬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병 주고 약 준다'는 설정이 철학의 쓸모를 위해서라니, 그로 인해 많은 현대인들이 질병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순 있겠지만, 내 딴에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반감도 살짝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질병인줄 모르고 잘 살았는데, 왜 질병인 걸 깨닫고 고통을 겪어야만 하느냔 말이다. 아무리 그렇게 밝혀진 질병에 딱맞는 '약처방'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이미 아픔을 느꼈고, 질병이란 걸 각성했으니 더욱더 불안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그런 의미에서 '철학'이 쓸모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난 철학의 필요하고 유용하고 쓸모가 많다는 것에 깊이 동의한다. 이 책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온 국민이 '철학적 담론'을 즐긴다면 대한민국에 미치광이 몇 명쯤 있다고해서 걱정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비상사태를 맞이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를 저지했고, 이제 헌법절차에 따라 순리대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면 된다. 그 위급한 순간에도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사당을 달려가 '비상계엄 무효'을 통과시켰고, 국민들은 무장한 군인과 장갑차를 막아서서 대한민국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막았다. 그리고 계엄군도 '민주시민의식'을 발휘하여 단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고서 철수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국민들을 향해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이 모든 국민들이 훌륭한 철학자들이었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건강한 철학정신이 깃들어 있던 바람에 대한민국은 희망적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철학시민들이 '대통령탄핵'을 외친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깃들어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촛불을 들고서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철학이 매우 쓸모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웃집 구틈틈 씨의 매일 - 틈틈이 그리고 쓰고 키우며 발견한 오늘의 행복
구틈틈 지음 / 청림Life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y Review MDCCCLXXIV / 청림Life 1번째 리뷰] 내가 가장 즐겨읽는 책을 꼽는다면 인문철학이나 과학, 역사, 사회과학, 고전문학 따위가 있겠고, 제자들과 함께 읽는 '어린이책'을 가장 많이 읽고 있지만,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잔잔한 '낭만소설'이다. 그래서 한 번 손에 든 '로맨스소설'은 책을 다 덮을 때까지 쉼 없이 읽고, '로맨틱한 영화'는 보고 또 보는 타입이다. 참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다. 그런 까닭에 작품의 배경으로 '사랑'이란 주제를 밑바탕에 깔아놓은 모든 것들을 심하게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밀당'은 싫어한다. 그건 '사랑의 설레임'을 각성시켜 콩닥콩닥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지만, 사랑은 '설레임'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믿음직한 사랑에 더 끌린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저 좋고, 옆에 있어도 좋지만, 곁에 없는 '바쁜 일상'을 보내더라도 늘 옆에 있는 것처럼 든든한 사랑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변함 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난 '사랑이 넘치는 가족'의 모습을 늘 상상하곤 한다.

물론 현실속의 찐 가족은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상상속의 가족을 떠올리곤 한다. 현실은 '낭만'을 허락치 않지만 상상속에서는 '낭만' 가득한 가족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상을 표현화한 이 책이 한 눈에 맘에 들었다. 두 아이와 치루는 전쟁 같은 육아현장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상상속 나래'를 통해서 나는 그 무엇보다 먼저 '사랑'을 떠올렸다. 그리고 전쟁보다 더한 '육아'에 지쳐버린 엄마아빠들에게 이 책은 색다른 '비타민'을 선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래그래~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이 시대의 엄마아빠 독자들이 많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을 착 보면 모든 정황이 다 떠오른다. 직장동료였던 두 남녀가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에 골인한 다음 '두 아이'의 엄마아빠가 되면서 아빠는 '돈 벌어오는 기계'를 자처했을 것이고, 엄마는 '육아전쟁 총사령관'에 강제 임명되어 다른 직업을 겸할 수 없는 '독박육아'를 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후에 벌어질 '경력단절', '부족한 생활비', '대책없는 노후대책 마련' 따위의 고민을 하기도 전에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실감하며 무리를 해서라도 '맞벌이'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고 있다는 '현재'라는 것이 한 눈에 파악된다. 그래서 '구연진 씨'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을 웹툰 형식으로 그려서 올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름을 '구틈틈'이라고 쓴 까닭도 웹툰에 매진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육아전쟁을 치루는 '틈틈이' 연재를 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리 밝혔고 말이다. 웹툰의 소재가 고갈될 까닭은 없으리라 '사랑스런 아이들'이 웹툰에 올릴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줄테니 말이다. 오히려 엄마인 자신이 육아에 지쳐서, 시간이 없어서, 때로는 정신이 없어서 웹툰을 올리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에 '최대한 간단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기도 하다. 채색을 포기하고 '연필'로만 그린 듯한 형식도 그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그냥 읽고만 있어도 그런 점들이 다 보인다.

웹툰 연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가 고갈되지 않는 것'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동(의미) 전달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일테다. 몇 컷 되지 않는 짧은 웹툰의 핵심은 바로 후자다. 요즘 같은 '저출생 시대'에 육아전쟁을 벌이고 있는 독자들이 얼마나 된다고...실제로 '저출생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는 모습은 점점 줄어드는 학교내 '학급 수', 유치원과 어린이집 수, 마트 안에 '육아용품 판매대' 규모의 축소 따위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동네 공원을 산책할 때에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오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유모차(유아차)'를 끌고 나오는 사람은 많아졌는데, 정작 그 안에 타고 있는 건 '아기'가 아니라 '반려견'인 경우가 더 많아졌다. 심지어 반려견을 품에 안고 '우리 애기'라고 칭하는 이들도 많아져서 헷갈릴 지경이다. 그러니 육아전쟁 같은 소재를 찾는 독자들도 덩달아서 점점 더 줄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니 육아를 하지 않는 독자들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여야 한다. 그런 보편적인 소재는 바로 '사랑'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랑은 정말 아름답고 감동스러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틈틈 씨의 매일'은 정답이다. 사랑으로 가득한...한마디로 '꿀 떨어지는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찐사랑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육아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단박에 알 수 있지 않느냔 말이다. 더구나 남편이 경제적 독박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가 '독박육아'을 하고 있다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하루하루가 전쟁 같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스런 아이들일지라도 말이다. 구틈틈 씨는 이런 육아전쟁을 치루고 있으면서도 '행복하다'는 말을 연발한다. 두 아이가 방을 어지럽혀서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방청소 할 필요 없는 '천장'을 바라보며 현실도피를 하라는 에피소드를 올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잠시잠깐의 '현실도피'를 할 수 있을지언정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지럽힌 방안을 알아서 뒷정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은 도로 '지옥같은 현실'로 되돌아와 방청소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다 청소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또 다른 방'을 어지르고 있을 것이다. 잠이 들 때까지 말이다.

이런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남편이 늦은 귀가를 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남편도 힘든 직장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쉬고 싶은 맘'만 가득하다. 더구나 지랄같은 상사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쏟아내기라도 했다면 더욱더 피로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쉴 곳이 필요했던 남편의 기대와 달리 '집 안이 이미 지옥'이 되어 버렸다면 아내에게 "청소도 안 하고 뭐하고 있었어? 됐고! 밥이나 차려, 배고프니까. 난 씻고 나올게"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 다음은 '부부싸움'이다. 그런 부부의 모습을 보고서 아이들은 두려움과 무서움에 벌벌 떨며 '불안 증세'를 보이게 될 것이고, 가정은 화목하거나 행복한 곳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이웃집 구틈틈 씨의 매일>에는 그런 대목이 전혀 없다. 이 부부에게는 '싸움'이나 '갈등' 자체가 아예 없어서 그런 것일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세상에 그런 부부는 없다. 그래서 이 책에 '남편 노경록'에 관한 에피소드가 몇 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왜냐면 남편과 사이가 좋았다면 분명 더 많았을테니 말이다. 물론 이 책에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 둘 사이에 '애정전선은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주말 같은 날에 벌어지는 에피소드에 '남편의 분량'이 있을텐데, 그런 에피소드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물론 남편 노경록 씨가 '건축현장'이라는 주말이 따로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두 아이와 아빠와의 관계가 극히 행복해보이고 있다는 점도 그런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전쟁 같은 육아'를 하면서 '부부싸움'이 없는 것이 더 어색하다. 웬만큼 서로에게 무신경하지 않을 바에야 말이다.

하긴, '보여주지 않아야 할 것'은 애초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더 나은 작품을 쓰는데 좋은 결정일 수도 있겠다. 아무리 요즘 트랜드가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고민까지 하고 난 뒤에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니 더욱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완벽한 사랑'을 찾다가 그만 노총각이 되어버린 나 자신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싶어졌다.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했느냐고 말이다. 진즉에 꾸렸다면 잘 했을텐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필요충분조건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아직 그런 '사랑'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결혼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노라고 말이다. 비겁한 변명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직도 노총각인 나는 '이 책'이 너무 부럽다. 사랑이 고파지기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