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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9 : 출사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My Review MDCCCLXXXII / 코너스톤 10번째 리뷰] 나는 시절이 하수상할 때마다 <삼국지>를 읽는다. 물론 수상하지 않을 때도 읽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하수상할 때 읽어야 제맛인 책이라 여겨서, 또다시 '탄핵정국'이 되어 버린 이 시점에 다시 <삼국지>를 꺼내 읽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만큼 그 수를 헤아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테지만 말이다. 그 가운데 이 책 <삼국지 원전 완역판>을 다시 꺼내 읽은 까닭은 이 책의 리뷰를 쓰다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꺼내 읽은 까닭이 '너무 좋은 책'이라서가 아님을 밝혀두는 바다.
이 책이 '그리 좋은책'이 아니라는 까닭은 저자가 일본 작가이고, 펴낸 시기도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1940년)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본제국주의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만주를 넘어 대륙 깊숙이 침략에 성공해 아시아 전체를 주름잡는 '대동아공영권'을 실현시켜 일본 중심의 패권국가 완성에 방점을 찍으려던 야욕을 분수에 넘치도록 뿜어낼 때가 아니더냔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요시카와 에이지가 이 책을 통해서 '제국주의의 팽창'을 완수하려는 야심을 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인의 우월감'에 쐐기를 박기 위해 역사적 자신감에 뿌리를 깊이 박자는 의도(?)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란 느낌적인 느낌을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책이 오늘날까지 한국독자들에게 회자되는 까닭이 무엇일까? 해방 이후에 우리 나라 <삼국지>의 '정본' 역할을 한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친일파로 거론되는 정비석의 <삼국지>가 해방 직후부터 90년대까지 널리 읽혔고,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도 요시카와 에이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정도로 한국독자들에게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책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에야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 황석영의 <정역 삼국지>가 나와 '한국판 <삼국지>'를 읽을 수 있었으니, 많이 늦은 감이 깊다. 허나 그런 의미에서 '비교분석'을 할 수 있으니 '한중일 <삼국지>'를 서로 비교하며 읽는 맛도 나름 솔솔할 것이다. 꽤나 확연한 차이가 있으니 쉽게 분별할 수도 있고 말이다.
암튼,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솔솔한 맛을 몇 자 적어보기로 하고, 일단 <삼국지 원전 완역판 9 : 출사>의 내용은 '관우의 죽음'부터 '제갈량의 출사표'까지다. <삼국지>에 익숙한 분들은 대충 어느 지점인지 가늠이 되실 것인데, 잠시 설명을 덧붙이자면, 후한의 황제 '헌제'가 위나라 조비에 의해 폐위되고 '위황제'로 등극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이로써 천하는 '위, 촉, 오' 삼국으로 확고해졌고, 새로워진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삼국이 각축전을 벌이게 되는 것이 주된 스토리다. 여기서 이문열은 자신이 쓴 <평역 삼국지>에서 전반과 후반을 나누는 기준으로 삼을 만 하다고 했는데, 그 까닭은 <삼국지>의 초기 주역들이 이즈음에 대거 사망하고, '새로운 세대'의 뉴페이스들이 등장해서 대결을 이어나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초기의 주역들이 모두 죽고 난 다음에는 사실상 <삼국지>를 읽는 맛이 현저히 줄어드는 현상도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 이문열의 평은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솔직히 '유관장 세 주인공'이 사라지고 난 뒤에 벌어지는 '후삼국지' 이야기는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제갈량의 출사표가 발표되고 대대적인 공방전이 펼쳐지는데도 읽는 재미는 훅 떨어지는 현상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묘하게도 요시카와 에이지는 이렇게 '후반의 줄거리'를 대폭 줄여 제갈량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급 마무리해버린다. 그래서 이 '일본판 <삼국지>'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만 쏙 골라서 추려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이 '역사적 고증'에서는 가장 빈약한 <삼국지>로 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재밌는 부분만 골라서 '짜깁기'를 한 대가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만 읽고서 <삼국지>를 다 읽었다고 말한다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왜냐면 <삼국지>의 진정한 승리는 위촉오 삼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마 씨'가 세운 '진(晉)나라'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우는 '위진 남북조 시대'의 바로 그 진나라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을 간략하게 써내려갔고, 그마저도 왜곡한 부분이 많아서 읽을 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만 그 진위파악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9권에서는 매우 많은 인물들이 사라져 간다. 형주 탈환을 두고서 '관우 vs 여몽'이 한판 대결을 펼치는데, 관우도 죽고 여몽도 죽고 만다. 그렇게 촉과 오에 모두 상처만 남기고 끝나나 싶은 싸움은 유비의 복수를 시작으로 다시 재점화된다. 이 과정에서 '장비'도 어처구니 없이 죽어버리고, '유비'는 이릉전투에서 오나라 신예 '육손'에게 대패를 하면서 서거하게 된다. 이 전투 직전에 노익장을 자랑하던 '황충'도 죽는다. 마초는 더 이른 시기에 요절하고 말았으니, 촉나라를 대표하는 '오호대장군' 가운데 조운을 제외하고 모두 죽고 만다. 한편, 위나라에서도 조조가 오랜 지병으로 죽고 만다. 조조의 지병을 마지막으로 치료하려 했던 '화타'도 그만 죽고 말고, 조조의 아들들도 왕위를 두고 갈등을 벌이다 막내 조웅은 자결하고, 셋째 조식도 조비의 미움을 사서 얼마 살지 못한다. 그리고 장료, 하후연, 하후돈 등도 모두 늙어서 죽고 만다. 삼국 가운데 오나라는 '세대교체'가 비교적 빨리 되는 바람에 손견, 손책, 주유, 노숙 등이 이미 죽어버렸지만, 관우의 죽음 이후에 오나라도 적지 않은 인물들이 교체되어 버리고 만다.
자, 이렇게 '세대교체'가 된 이후의 위촉오 삼국은 누가 대결을 하게 될까? 아쉽게도 오나라는 '촉오동맹'을 이루고 난 뒤에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고 만다. 왜냐면 '제갈량 vs 사마의'의 대결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 대결은 10권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므로 잠시 미루고, 먼저 유비 사후에 촉나라의 재건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제갈량이 '남만 정벌'을 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왜냐면 위나라의 사마의가 촉나라를 공략할 때 '남만의 맹획'을 이용해 촉의 후방을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촉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지는 않았으나 이를 어떡하든 해결하지 않고서는 '출사표'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기에 제갈량은 머나먼 원정을 기획하게 된다. 그리고 '칠종칠금'이라는 믿지 못할 전공을 세운다.
<삼국지>에서 묘사하는 '남만'은 오늘날의 미얀마 일부로 볼 수 있단다. 중국 남부의 운남성 일대를 일컫는다지만 그 당시의 기술로 밀림이 울창한 지역을 대군을 이끌고 공략했다고 보기에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삼국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공략을 하였다면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 갖다 붙였다. '정사'에서도 이 부분은 그렇게 심도 깊게 다루지 않는 관계로 그냥 그런 갑다하고 읽어도 무방한 분량이다. 하지만 막상 읽고 있으면 흥미진진한 면이 없지 않다. 흡사 '중국 무협지'를 읽는 기분도 나니 지루할 틈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부분이 중요한 까닭은 '제갈량의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게 두드러지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에 '천운'까지 따르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 남만정벌 이후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이 바로 신의 한수로 보이기 때문이다.
딴에 '정사 삼국지'에서는 '제갈량 vs 사마의'의 대결에서 촉나라의 연전연패를 볼 수 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출사표의 진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기 위해서 '남만정벌'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서 '중국 <삼국지>'에서는 촉한정통론을 내세워서 그런 것이라는 평을 내리기도 하는데, 역사의 진심인 한국 독자들에겐 매우 낯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낯섬'을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이미 이렇게나 '낯선 <삼국지>'의 내용을 거의 '정본'처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매우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대목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그럼 이런 '탄핵정국'을 맞은 우리가 이 책에서 되짚어보아야 할 대목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헌제의 폐위' 과정이다. 한(後漢)나라의 정통은 누가 뭐래도 '헌제'에 있다. 그런데 이를 조조가 볼모로 삼아 국정을 오랫동안 운영해온 탓에 한 나라의 정통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고, 그의 아들이 조비가 아예 '찬탈(선양을 가장한)'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무도한 짓을 어찌 감행하려 했을까? 바로 힘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있다하더라도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법이다. 동양사상에서 임금이 무능하면 '역성혁명'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널리 인정받는 바다. 그러나 임금이 무능하지도 않은데 '힘'으로 빼앗으면 역적으로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공한다'면 영웅이 되는 걸까? 중국내에서 현재까지도 '촉한정통론'이 우세한 까닭이 말해준다. 조조가 세운 위나라에 정통성 따윈 없다고 말이다.
윤석열 씨는 아마도 가장 존경하는 이가 '전두환'일 것이다. 전국민의 밉상으로 낙인 찍힌 '전두환'의 영웅신화는 바로 '성공한 쿠데타'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집권한 제5공화국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의 파라다이스였을 것이다. 그래서 '비상계엄령'을 과감히 선포했다. 성공하면 영웅이 될 수 있고, 독재도 할 수 있다는 셈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두환이 과연 성공했나?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 목숨이었고, 어찌어찌 목숨만 살아서 연명하는 삶을 살다 죽었다. 온국민의 욕받이가 되어서 말이다. 물론 그의 일생은 '호화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독재시절에 쌓아놓은 부와 권력의 후광이 그를 오래도록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했을지 몰라도 그는 대한민국에서 철저히 배척받는 처지였다. 과연 이런 전두환을 롤모델로 삼아 멋대로 굴다가 '탄핵정국'을 맞이했다. 아직 '탄핵심판'까지 기일이 남아 있긴 하지만, 설령 심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하더라도 그는 이제 끝장났다. 아무리 '극우세력'이 끝까지 저들을 비호한다해도 '국민의 심판'을 결코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읽으면 그 시대의 명암이 고스란히 보인다. 누가 잘나고 못났는지도 명확해지고 말이다. 오랫동안 회자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자기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즐거움도 선사하니 필독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