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 1910 망국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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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 1910 망국> 굽시니스트 / 위즈덤하우스 (2025)

[My Review MMCCCLV / 위즈덤하우스 4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네 번째 리뷰는 그동안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치우친 세계사에서 벗어나 대한민국과 그 주변국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풀어낸 <본격 한중일 세계사 20>이다. 무려 8년 동안의 대장정이었다. 1839년 아편전쟁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합까지 70여 년간의 한중일 동아시아사를 중심으로 동시대 서구열강의 속내까지 모두 20권에 오롯이 담았다. 솔직히 이 책으로 '동아시아사'만 따로 빼내어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가깝고 먼 주변국들의 역사를 바라본 관점은 참으로 신선했다. 그래서 모두 30만 원이 넘는 작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시리즈가 출간할 때마다 매 번 구매를 해서 이처럼 완독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앞부분의 내용은 읽고 또 읽기도 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완간'하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만큼 '읽는 맛'이 최고인 역사만화였다. 그래서 굽시니스트를 '검색'하고 다른 작품도 병행해서 읽기도 했지만 이 책을 제외하고는 죄다 '병맛'이라...쿨럭쿨럭. 암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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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관점 포인트 : 20권의 시작은 러일전쟁의 중반을 넘어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일전쟁이 종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일제의 만행과 고종의 무능력함, 그리고 나라를 팔아먹는 길을 '애국'이라, 아니 '시대조류'라 철떡같이 믿은 친일파와 그런 세력을 처단하고 나라 잃은 망국의 설움을 '결기'로 보여준 의병의 활약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역사만화는 언제나 '한정된 분량'이라는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하기에 어떡해서든지 20권으로 마무리하려는 '억지'가 보여 아쉽긴 하지만, 1권 더 추가해서 '구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적당히 마무리해주셔서 작가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 까닭은 어찌 되었든 '망국'이라는 새드엔딩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새드엔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방을 넘어, 전쟁을 넘어, 독재를 넘어, 그리고 외환위기와 월드컵4강신화, 세 번의 대통령탄핵이라는 큰 산봉우리를 넘어 지금의 미란전쟁까지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선진국과 강대국을 넘어 진정한 선도국가가 되기까지 지난한 현대사를 모두 설파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21권이 아니라 100권이라는 '역사만화의 금자탑'을 새로 쓰게 되었을 것이다. 20권 쓰는데 8년이 걸렸으니 100권을 넘기려면 40년을 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굽시니스트라는 작가가 죽기에 앞서 독자인 내가 먼저...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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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권의 내용은 역사를 조금 공부한 이들이라면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라 특별할 것은 없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피의 일요일'을 기점으로 점차 나락행 열차를 탄 것도 너무 유명한 일화이고, 일본군은 되도 않는 작전으로 만주벌판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을 쌩으로 갈아버린 것도 너무 잘 알려진 뻘짓이었으며, 미국의 중재로 가까스로 러일전쟁을 마무리한 일본이 '포츠머스 조약'에서 얻은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 국민들의 여론이 추락하고, 이를 기점으로 일본제국은 '조선침탈'을 본격화하고 그 결과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드는 결말로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듯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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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궁금한 것은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 되었고, 서구열강 각국이 조선을 도와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종'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인지다. 물론 '헤이그 특사 파견'을 하긴 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긴 상황에서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갔다고 한들 달라질 것이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차라리 그럴 힘이 남았다면 군대가 해산되고, 경찰이 해산되기에 앞서서 조금이라도 '저항'이라는 것을 해보던가. '의병'과 손을 잡고 망국의 길로 순순히 따라가는 길만큼은 막으려 했어야 하지 않은가 싶다. 그런데 고종은 애써 한 것이라고는 '을사늑약'이라는 종이쪼가리에 옥쇄를 날인하지 않은 공로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종이쪼가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라는 빼앗길지언정 조선황실의 안녕을 보존해주겠다는 대목에서 '진정성'이 의심이 들기도 한다. 과연 헤이그특사를 보내서 일제의 만행을 만국에 알리고, '을사늑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함이 통했을 거라고 보는 것인가? 아무리 좋게 본다고 한들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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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계란으로 바위치기'도 약자가 강자에게 개망신을 주고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기에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도덕과 윤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국내상황'에서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냉험한 기류가 대세로 작동하는 '국제관계'에서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이 망국을 코 앞에 맞이한 군주가 할 일인가 말이다. 또한, 고종이 꿈틀해서 온 백성에게 몸이 부서질지언정 일제와 맞서싸우라고 명을 내려 일제와 전쟁을 독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이미 동학농민전쟁 때 '우금치 전투'에서 일제의 압도적인 무기 앞에서 산산조각이 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고종의 무력함을 변호할 수도 있겠다. 실력차이를 인정하고 쿨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스스로 '망국의 군주'가 된다한들 백성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에서 '애민정신'...쿨럭쿨럭..을 찾을 수 있겠냔 말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기한'이라도 정하고 그 기한내에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기를 방법을 제시하든가. 자신을 '구국의 구심점'이 되어 고종 자신부터 온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했다면, 그에 대한 평가가 어렵고 복잡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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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어쨌든 우리 민족은 고종의 무력함을 넘어 새 나라를 건설한다면 '민주공화국'을 세우겠다는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중에는 '근왕병'을 이끌고 일제와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공화국'의 새 나라를 꿈꾸며 스러진 왕조를 되살리는 것이 아닌 온 백성이 '주인'되는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된다. 그 계기가 1919년 3월 1일 고종황제의 인산일 이틀 전이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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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는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황태자와 사랑을 꽃 피우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지금도 입헌군주국을 표방하는 나라들이 엄청난 세금을 낭비하며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대한제국이 '고종의 무력함'으로 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물론 딱 한가지 '사상적 분열'로 인해 해방 이후 남북이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끝내 분열되고 만 안타까운 현대사를 '황제'라는 구심점으로 냉혹한 냉전도 극복하고 남북갈등을 사그라들게 만들고 '통일한국'으로 해방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분단이란 아픔을 겪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의 나래는 펼쳐본다. 하지만 그런 상상조차 '세종대왕'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충만한 임금일 때라야 가능했을 것이다. 또는 '정조대왕'처럼 과거의 아픔은 묻어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탕평책'을 실현시키는 진취적인 군주였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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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지난 역사에 태클을 거는 것은 별로 소득이 없는 뻘짓일 것이다. 망상에서 얻을 것은 '시간낭비'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역사에 태클을 거는 것은 하릴 없을지 몰라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전세계를 보면 답은 명확하다. '역사교육의 부재'가 지금처럼 전세계가 '극우세력'에게 정권을 내주고 나라가 폭망하는 꼴을 보여주고 있으며, '역사왜곡'의 결말은 현재의 중국과 일본처럼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결말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역사는 '바로 보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국에게 부끄러운 역사라고 감추고 조금만 바꾸면 멋져 보일 거라고 왜곡을 일삼으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균형 있는 감각으로 당당히 마주 설 수 있을때 비로소 올바른 역사교육의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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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배운 서양인들이 처한 꼬락서니를 보란 말이다. 그들이 지금 열광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중심에 선 진실된 역사'다. 인류역사 반만년 동안 제대로 된 '정복의 역사'를 가져본 적이 없는 한국이지만, 숱한 침략을 받고도 막아내고 견디고 지켜낸 '불굴의 역사'를 보여줬고, 약소국을 침략해서 식민지 경영을 하지 않았는데도, 좁은 국토에 변변한 지하자원도 갖고 있지 않은데도 '기술강국'으로 발돋움하여, 마침내 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지금 전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앞으로 인류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답도 바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찾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속의 한국사'에서 '한국 중심의 세계사'로 관점을 전환해서 역사공부를 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전 인류의 미래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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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2 - 황건적 토벌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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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2 : 황건적 토벌>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

[My Review MMCCCLIV / 대현출판사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세 번째 리뷰는 '만화 삼국지'의 원조이자 일본 만화계의 거성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15년에 걸쳐 완성한 불후의 걸작 <전략 삼국지 2>다. 수식어가 거창하지만 2026년 지금의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걸러야 할 것이 많은 문제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1971년으로 이때만해도 '일본의 부흥기'였고, '일본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선진국답다고 널리 알려진 시기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일본 만화는 '일본색'이 너무 강해서 문제였다.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의 자랑이던 시절이었기에 장면마다 '사람을 난도질'했고, 불필요한 사실적 묘사를 남발해서 '잔혹한 장면'도 거침없이 드러내곤 했다. 그래서 이러한 '일본색'은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척하는 비굴함을 '약육강식'이라는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하여, 자신들(일본인)은 강한 편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뭉게버리는 식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문제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날 일본의 세계적 위상이 하락하면서 생겨났다. 과거의 일본이나 현재의 일본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 과거에는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했던 문제가 오늘에 와서는 날선 비판을 넘어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을 향해서 '후진적인 행태'라며 비난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도 되는 책인지 살펴보려 한다. 1권에서도 강조했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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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2> 관점 포인트 : 먼저 줄거리를 말하자면, 1권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뜻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그런 뒤에 첫 출전을 하게 되었다. 크게 활약했고 초라한 겉모습에 비해서 실력이 뛰어난 의병군이라는 소식이 퍼져 나갔다. 그 가운데 유독 돋보이는 이는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비다. 그는 중산정황의 후손으로 황족 출신인 탓에 어딜 가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엄'을 보이고 다녔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의병들을 변변한 갑옷과 무기도 없이 초라한 복색을 하고 있어 '거지 군대'라고 놀림을 받더라도, 이들을 이끄는 유비의 당당한 모습에 처음엔 놀리던 사람이라도 유비를 모습을 보기만 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위엄을 엿볼 수 있었다. 유비의 뒤를 따르는 관우와 장비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그래서 유비의 의병군은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황건적 토벌에 참전할 때면 늘 선봉을 맡아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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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청주성으로 가서 옛 스승인 노식을 구했고, 달아나던 황건적 잔당을 화공지계로 퇴치하면서 붉은 갑옷을 입고 등장한 조조와도 대면했다. 유비와 조조는 서로를 '영웅'으로 인지하고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며 헤어진 뒤에 유비는 다시 주준 장군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당시 주준은 '철문협'이란 곳에서 '지공장군 장보'와 대치하고 있었는데, 철문협이란 이름에 걸맞게 좁고 가파른 협곡을 지나야 황건적이 숨어 있는 소굴로 들어갈 수 있기에 주준이 이끄는 관군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때 마침맞게 유비의 의병군이 다시 돌아오자 주준은 유비를 앞세워 관군의 희생을 줄이려 공략을 맡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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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유비는 돌아오자마자 군대를 정비할 틈도 없이 또 다시 전투에 나서지만, 이번엔 장보가 펼치는 요술 때문에 첫 전투는 보기 좋게 패배를 하고 만다. 하지만 유비는 협곡이란 지형 때문에 강하게 불어오는 맞바람이 패배의 원인이었지, 그 바람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적들이 뿌려대는 종이와 돌멩이 사이로 화살이 날아오는 탓에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유비는 닭과 개, 양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동물의 피'를 잔뜩 준비해놓고 제례의식 비슷한 것을 치룬 다음에 "이로써 장보의 술법은 파괴되었다. 이제 더는 요술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라면서 의병과 관군의 사기를 진작 시킨 뒤에 장비로 하여금 협곡의 정반대에 위치한 절벽을 기어올라 적들의 방비가 약한 틈을 공략해 기습공격을 감행하게 했다. 장비가 가파른 절벽을 올라 기습에 성공하자 때를 맞춰 유비와 관우는 군대를 이끌고 정공법을 택하자 황건적은 패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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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사투 끝에 승리를 거두자 이번에는 주준이 몸이 달았다. 장각을 공략하던 황보숭 군대가 장각을 죽이는 성과를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번에 유비가 장보까지 죽였으니 황건적 토벌은 거의 마무리가 된 셈이다. 그런데도 주준은 자신의 손으로 공을 세우지 못하고, 유비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승전을 했으니, 한편으로는 유비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큰 공을 세운 유비에게 시기와 질투심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준은 유비를 곤경에 빠뜨릴 작정을 하는데...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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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전략 삼국지>의 전체 줄거리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를 고대로 답습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인 작가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요시카와가 소설을 집필한 것은 1940년대이고, 요코야마가 만화를 그린 것은 1970년대다. 약 30년의 차이가 있었는데도 <삼국지연의>의 원작에 해당하는 '모종강본'을 따르지 않고 '요시카와본'을 따른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의 자긍심이 작동해서 애써 '중국의 고전'을 깎아내리려는 처사로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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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소설 삼국지'도 꽤나 수작이고, 재밌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만화를 그리면서 '황건적의 난'이라는 혼란스런 정경을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낼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후한말의 혼란한 상황은 말그대로 아무런 힘도 없는 무고한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은 '참혹한 내전'이었다. 정규 관군과 의병 군벌과 핍박받던 백성들의 무리인 '황건적'이 한데 어우러져서 피를 튀기며 싸운 전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황건적은 새로운 왕조를 세울 꿈까지 꾸었으니 '반란군'이자 '역적'이었다. 그러니 싸움의 성격은 더욱 끔찍하고 잔혹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곳곳에서 공략해오는 '관군과 의병들'을 상대로 대충 싸울 수는 없는 셈이다. 그래서 거의 발악에 가까울 정도로 극렬하게 전쟁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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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관군과 의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정규군이고 의롭게 일어선 '명분'은 드높을지 몰라도 황건적에 비해 '수적 열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1명 vs 10명'의 싸움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관군도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황건적 토벌은 고대의 전쟁 답게 '장수와 장수'가 일대일로 맞붙어서 싸우다가 한 쪽이 승리하면 그대로 패배를 인정하고 패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낭만적인 전투는 없었다. 수적인 압도를 이용해서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개싸움이 펼쳐졌고 관군을 이끄는 장수가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사람에게 밟혀 죽는 처참한 꼴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장수들은 갑옷을 단단히 여미고 적들이 쏘는 화살과 웬만한 창칼의 공격은 튕겨낼 수 있고, 단단하고 긴 창을 주로 사용하면서 말 위에서 아래에 위치한 적 보병의 얼굴을 썰어버리는 방식으로 적들의 가장 앞과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어서 일기당천하는 용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적들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사기를 떨어뜨려 흩어지게 만드는 작전이 주로 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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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전투의 양상이 얼마나 처참했겠는가? 그래서 '소설 삼국지'에서는 짤막한 전투양상을 묘사하고 어떤 장수가 크게 활약해서 적진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뒀다는 식으로 전투장면을 서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쯤해도 충분히 끔찍하고 살벌한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만화는 칼과 창으로 사람의 목을 베고 썰어버리는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의 몸뚱이가 썰리면서 피가 튀기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낱낱이 묘사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집필된 '고우영 삼국지'에서도 충분히 끔찍한 장면묘사가 담기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끔찍한 장면일수록 풍자와 해학을 담아 적다히 포장(?)할 줄 알았고, 너무 끔찍한 대목에서는 '단 한 컷'으로 압축해서 참혹했었다는 느낌만 강조할 뿐이었다. 한편 중국의 만화가 천웨이동의 <중국정통 만화 삼국지>에서는 잡졸들끼리의 개싸움은 개미처럼 작게 묘사했고, 주로 장수들간의 일대일 전투로 화려하고 장엄한 <삼국지> 속 전투 명장면을 아름답게 포장했다. 그런데 요코야마의 <전략 삼국지>는 불필요할 정도로 강한 장수가 약한 병졸을 베어내는 장면을 여러 컷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묘사하며 피 튀기는 살벌함까지 낱낱이 그려냈다. 역시나 '강자'가 '약자' 앞에서 냉혈한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말 그대로 '약육강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본색'이 너무 진하게 작동했다. 왜 일본 만화는 굳이 이렇게 '약자가 강자에게 살육당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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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런 참혹함을 '고전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어린이와 청소년 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할텐데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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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세이 #전략삼국지 #만화삼국지 #요코야마미츠테루 #황건적의난 #일본색이짙어서문제 #책이있는구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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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1반 꿈 도둑 ㅣ 5학년 도둑 시리즈
김연희 지음, 이경석 그림 / 지구별아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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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아이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5학년 1반 꿈 도둑> 김연희 / 지구별아이 (2026)

[My Review MMCCCLIII / 지구별아이 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두 번째 리뷰는 어린이들에게 꿈에 관한 자기계발을 스스로 형성하는데 도와주는 <5학년 1반 꿈 도둑>이다.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자주 묻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다. 그럴 때 어린이들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때부터 심장이 터질 듯이 방망이질을 쳤고 뭐라고 대답을 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몰라서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한참만에 어렵사리 말문을 연 것은 '그럴싸한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왜냐면 그런 첫 질문을 들었을 때 내 기억속의 첫 대답은 "노란 택시운전사요"였는데, 주위에 있던 어른들에게 엄청 비웃음을 당했고 아버지에게도 두고두고 혼꾸녕이 났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의 난 '장난감 자동차'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 뒤로 당겼다 놓으면 쏜살같이 달려가는 값비싼 자동차를 갖고 있었는데, 없는 살림에 부모님도 장만하기 힘든 비싼 장난감이었고, 그 덕분에 내 평생 유일한 장난감이었는데, 그 자동차의 색깔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그 때는 서울 택시의 색깔이 노란색이기도 했다. 그래서 온가족이 택시를 타고 외식을 나갔는데 택시운전수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길래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답했던 것인데,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근데 '택시운전수', 아니 '택시기사'가 되는 것에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을 할테지만 정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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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1반 꿈 도둑> 관점 포인트 : 이 책은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에서 뽑은 어린이 분야 으뜸책 시리즈 가운데 세 번째 책이다. 쉽게 말해 어린이를 위한 자기계발서다. 그리고 이번에는 '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밤에 잠을 자며 꾸는 꿈이 아닌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하고픈 것'을 말할 때의 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잘못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참 많다. 흔히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는데, 이렇게 물으면 많은 어린이들이 잘못된 대답을 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묻는 '어른들의 의도'가 헷갈리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하고픈 것(꿈)'과 '하고 있는 일(직업)'이 동일한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꿈=직업'이라는 공식을 정해놓고 어린이들에게도 그런 의도를 품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또는 어린이들에게 나중에 '훌륭한 일을 하는 어른이 되렴'이라고 가르쳐놓고서는 '훌륭한 일'을 돈 많이 버는 일,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 따위로 '한정'하는 선입견 가득한 의도를 갖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어린이들은 그에 딱맞게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대통령이나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유명 연예인(아이돌), 심지어 그냥 뭉뚱그려서 부자라거나 콕 집어서 건물주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말하곤 한다. 과연 자기 자식이 이런 대답을 하면 뿌듯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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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래의 꿈에 대해 이런 대답을 듣고 있으면 뭔가 '속물스런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면서 기왕 꿈을 꾸려면 '일찍' 꿔야 한다는 둥,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둥, 그래야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성공의 지름길'을 갈 수 있다면서, 예를 들더라도 꼭 돈 많은 부자인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이재용 따위를 열거하기 시작한다. 그게 아니면 성공(?)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저렇게 성공하려면 어릴 적부터 꿈을 키워야 한다"고 닦달하고 들들 볶기 일쑤다. 물론 그런 꿈도 꿈이 맞긴 하다.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은 특별한 꿈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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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잘 알기에 어른들은 '플랜 B'를 마련해서 적당히 둘러댄다.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고 말이다. 그렇게 큰 꿈에 도전을 해야 실패하더라도 적당히 덜 큰 꿈에 얻어 걸리는 법이라면서 애초에 '중도포기'할 것을 예언이라도 하듯 조언한다. 딴에는 그럴 듯 하게 들린다. 애초에 1등을 목표로 달려야 5등이라도 하게 되고, 처음부터 5등을 목표로 달리면 10등도 겨우 턱걸이한다면서 말이다. 이를 공식까지 써가며 돈을 쓸어담은 책이 있는데 바로 <꿈꾸는 다락방>(이지성, 차이정원)이란 자기계발서다.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꿈꾸는 능력이다'라는 명언도 남겼는데 10년이나 지난 유행어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잘못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꿈'이라는 말 대신 '성공'이란 말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꿈=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려면 '꿈이란 성공의 다른 말이다'를 뒤집어도 성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성공이란 꿈의 다른 말이다'은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좀 어색하지 않은가? 그건 '꿈'이라는 말에 담긴 뜻이 '성공'이란 뜻을 초월해서 훨씬 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꿈'을 펼치기에 앞서 '성공'이란 잣대로 꿈의 크기를 조절하고 간섭하려 들어도 되겠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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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어린이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할 때는 '정답'을 정해놓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지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한 '최종 목적'이 될 수 없고 '유용한 수단(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갖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면 '진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상당히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돈이면 다 되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속에 살면서 '많은 돈'과 그 돈을 융통하기 쉬운 '높은 지위'는 참으로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계적인 위인 가운데 '부자'보다 '덜 부자'가 훨씬 더 많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인류 공영을 위한 개혁의 선두주자가 되어 '위대한 혁명가'가 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평범한 영웅들'을 더 쉽게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환상의 꿈'만을 어린이들에게 계속 꾸게 강요할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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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평범한 영웅들을 만나기에 앞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최근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느껴지지 않은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기술력으로도 대한민국은 손으로 꼽을 만큼 상위 클래스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이 궁금해서 세계 강대국들이 대한민국을 분석한 뉴스가 속속 들어오고 있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왜 그럴까? 우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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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과 100년 전만해도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였고, 해방 뒤에 이어진 전쟁으로 온 국토가 황폐했던 나라가 불과 70여 년만에 세계적으로 우뚝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던 것이고, 과거 총칼로 위협하며 '자국의 위대한 문화'를 세계 여러 나라에 심어주고자 했는데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데, 대한민국의 문화는 그런 위협도 없고, 정부 정책으로 밀어붙인 적도 없는데, 세계 여러 나라가 앞다퉈서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현상에 놀라워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한국은 무엇이 다르기에 전 세계가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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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린이들은 자국의 히라가나보다 '한글'이 더 편하다며 '한자'를 버리고 '한글과 일본어'를 섞어쓰는 '한본어'가 대유행하고 있다. 요즘 미국의 어린이들은 'K-POP 데몬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세대가 '한국의 음악'을 비롯해서 '한국의 음식', '한국의 전통', '한국의 의복' 등등 전반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이와 더불어서 이웃으로 '한국인'이 이사를 오면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반기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문화대국이란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유럽 각국에서는 아침식단으로 '빵과 우유'를 먹지 않고 '밥과 국'을 먹기 위해 새벽부터 한식당 앞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 대한민국이 강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저 한글을 편리하게 쓰는 'K-드라마'를 만들어서 보여줬을 뿐이며, 귀에 쏙쏙 들어오는 'K-POP', 'K-푸드', 'K-컬쳐', 'K-패션' 등등도 같이 보여줬을 뿐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보니 그게 좋아보여서 따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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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지만 여기서 강대국들이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문화'가 자국의 문화를 밀어내고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비결 때문인지 강대국들은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높은 교육열'이었다. 초중고 12년동안 대한민국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과외까지 배우는 높은 교육수준 덕분에 한국사람들은 '의무교육'만 받아도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월등히 똑똑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세계적인 일류 기업은 죄다 '다른 나라'에 있다. 왜 그럴까? 그건 그들 나라가 대한민국보다 '인구'도 많고, 대한민국보다 잘 살던 기간이 훨씬 더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이제 겨우 5천만이고 선진국으로 올라선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강대국들은 인구가 1억 이상이며, 선진국이었던 기간도 100년이 훌쩍 넘는 나라들이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그들이 세계를 석권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떨까? 대한민국은 서구열강들이 압도적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그 발전력이 가진 힘은 다른 강대국들이 감히 뒤따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렇기에 기존의 강대국들이 대한민국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발전 정도를 가늠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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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의 압도하고 있는 것들이 '자국에는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음악', '전통', '문화', '음식', '패션' 등등 다 가지고 있고 오래도록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것인데, 현재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압도 당하며 크게 위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찌감치 '산업혁명'을 이룩하며 앞선 '기술력'을 자랑했는데, 그렇게 자부하던 기술력마저 한국에 뒤쳐지고 있는 것이 더 놀라운 것이다. 그것도 인구가 1억도 안 되는 조그만 나라인 대한민국에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찾아온 관광객들은 한국의 첫 인상에 놀라고 해마다 계속 찾아오고 있다. 너무 살기 좋고 편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라고 침이 마를 새 없이 칭찬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자국은 너무 불편하고, 더럽고, 위험한 나라라면서 '한국 배우기'에 앞장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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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평범한 영웅들을 소개 해야겠다. 너무너무 살기 좋고 편리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든 주역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늦은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점포를 열고, 대중교통을 담당하고, 거리의 청소를 도맡아 하고, 치안을 담당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다들 잠자는 시간에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이 수고를 해주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위대한 분'들은 아니고 그저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인데, 그분들이 고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에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고 편리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분들을 위대하다고 하지 않다면 누굴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이런 분들이 없기 때문에 그런 편한 일상을 보낼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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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바로 '합리성'과 '효율성'에 지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합리적'이거나 '비효율적'인 일이 일어나면 절대로 참지를 않는다. 이런 것들도 모두 '교육'을 통해서 다 배웠다. 그래서 국가가 정책을 추진할 때에도 국가발전을 위해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온 국민이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조금이라도 합리적이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을 그토록 빠르게 발전시킨 원동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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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시 돌아와서 꿈 이야기를 해보자. 나 어릴 적에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지금은 비록 대한민국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약소국'에 불과하지만,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분명 '강대국'이 되고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때의 어른들이 말씀하신 꿈 이야기를 그분들께서는 분명 실행에 옮겼고 결국 해내셨다. 지금의 대한민국 어린이들은 그때의 가난과 설움을 전혀 겪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강대국들마저 부러워할 정도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그 때 어른들이었던 분들은 과연 무슨 '일'을 하셨을까? 돈 많이 버는 '직업'과 남들이 부러운 '직업'을 가진 분들의 꿈이 실현된 걸까?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충실했을 뿐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셨을 뿐이다. 그런 꿈들이 모여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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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떤 '꿈'을 가지라고 말해줘야 할까? 지금껏 위에 열거한 이야기 중에 '정답'이 보이던가? 맞다. 꿈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꿈꿀 뿐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꿈을 꾼다고해서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꿈을 꿨다가 저런 꿈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다만 '꿈을 꾸는 것'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왜냐면 어른들도 꿈을 꾸기 때문이다. 어릴 적 꿈을 이뤘다고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꿈'을 꾸면서 삶의 의욕을 불태우고 꿈을 실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 '꿈 도둑'이 나타났다. 어른들의 잘못된 편견으로 가득한 '엉터리 꿈'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 '좋은 꿈'과 '나쁜 꿈'이 있는 게 아니다. '꿈을 꾸는 사람'과 '그 꿈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함부로 남의 꿈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고, 자기 멋대로의 기준으로 남의 꿈을 비웃는 사람이 바로 '방해자'다. 세계 여러 나라가 대한민국을 부러워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꿈꾸는 사람들'이 많고, '꿈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고, 무엇보다 '꿈을 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건강한 사회를 든든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희망찬 까닭도 바로 그런 '꿈꾸는 어린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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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가르칩니다 - 한국어 선생님이 말하는 K라는 멋진 신세계
서민선 지음 / 헤르츠나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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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츠나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K를 가르칩니다 : 한국어 선생님이 말하는 k라는 멋진 신세계> 서민선 / 헤르츠나인 (2026)

[My Review MMCCCLII / 헤르츠나인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한 번째 리뷰는 전세계인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한국어, 그리고 그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의 속사정이 담긴 <K를 가르칩니다>다. 요즘 대한민국은 정말 강대국이 되었다. 딴에는 우리가 일취월장해서 강대국이 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강대국들이 쪼그라들어서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이 강대국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진단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 있다. 왜 하필 이때에 '한글'에 유독 관심이 많고, '한국어'만을 배우려 하는가 말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 안달이 난 까닭은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를 구해줬던 인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미국이란 나라가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전세계인이 강요도 하지 않았고 배우고 숙달시킨다고 딱히 매리트도 없는 상황인데도 '한국문화'에 푹 빠져서 한국어를 배우려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바로 대한민국이 진짜 강대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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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가르칩니다> 관점 포인트 : 이 책은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서민선 작가가 썼다. 서민선 작가의 꿈은 '나이가 들어도 읽고 쓰는 노인이 되는 것'이란다. 정말 대단한 꿈이다. 이게 왜 대단한 꿈이냐면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기 때문이다. 나도 젊었을 땐 '늙는다'는 것이 이토록 불편한 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젊어서 쉽게 하던 '동작'이 늙으니 결코 쉬운 동작이 아니었고, 젊어서는 하나도 힘이 들지 않던 '일'이 늙으니 쉬운 일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나이가 벌써 쉰 살이 넘은 50대가 되니 늙는다는 것이 이토록 '불편'한 것인줄 처음 알았던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불편한 것은 바로 '시력 감퇴'다. 어릴 적엔 맨 눈으로 별을 관측하고 동 틀 때에는 '인공위성'도 찾아내던 나다. 그래서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어도 불편함이 없었고 마흔 살이 넘어서도 늘 그러고 지냈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점점 시력이 감퇴 되기 시작하더니 이젠 '작은 글자'로 인쇄된 책은 돋보기의 도움이 없으면 읽기가 불편해졌다. 그렇게 종이책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해서 '전자책'을 즐겨 읽었는데, 전자책이라 '글자크기'를 맘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편하기는 했는데, 온종일 전자책만 보고 있으려니 시력은 더욱 감퇴 되어서 이젠 정말 안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불편해지고 말았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도 읽고 쓰는 노인'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냔 말인가.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오니 책읽기도 시들해지고 글쓰기는 더욱 감감 무소식이 되고 말았는데 말이다. 암튼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 책 <K를 가르칩니다>는 한국어교육을 하는 선생님의 희노애락애오욕이 다 담겨 있는 수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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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한국어 수강생'들이 정말 많아졌다고 한다. 오직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서 한국을 찾는 학생과 젊은이들이 많아졌고, 언어와 더불어서 '한국문화'까지 마스터하려는 열정을 가득 품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아오길 갈망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관광'까지 겸사겸사 계획을 짜고 도장깨기하듯 실천에 옮기다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코스로 방문을 했다가 결국 수 년째 눌러 앉아버린 외국의 젊은이들도 꽤나 많다고 한다. 이러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로 선정 되는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실제로 그런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단다. 영어를 잘 할 줄 모르는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소통'을 위해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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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저러나 25년, 26년에 이런 '한국어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이유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애니메이션 <K-POP 데몬헌터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 애니가 넷플릭스를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수많은 사람들이 'K-POP'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했던 캐릭터나 소품, 배경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게 되면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궁금증으로 폭발적인 영향력을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열풍' 아닐까 한다. 줄여서 '국중박'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 박물관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것도,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부는 것도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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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궁금증이 일지 않는가? '한국어 교육원'에서 외국인 학생들(교사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많다고 한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배우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에는 바로 그런 풍경과 일상이 활짝 펼쳐져 있다. 일단 기본적인 교육 코스는 '급수'를 따면 윗 단계로 오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단다. 초급인 1급부터 고급인 6급까지 '6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한 학기는 3개월 코스이며, 1년에 4학기를 운영하고 있단다. 윗 단계로 급수를 올리기 위해선 '자격 시험'에 통과해야 하며, 우수한 성적을 따지 못하면 '유급 판정'을 받고 재수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인(네이티브 스피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의사소통도 가능한 6단계까지 통과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물론 요즘에는 수강생이 많이 늘었다고 하니 최종 졸업까지 성공한 학생 수도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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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배우러 '교육원'이나 '어학당'을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국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온 '대학생 이상의 나이'인 탓에 대부분 성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들도 미성년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반말'로 가르칠 수는 없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운다고 한다. 더구나 한국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확연하기 때문에 선생님으로서는 다 큰 성인이기도 하고 품위 있는 한국어를 '기본'으로 삼아 가르치려고 노력하는데, 간혹 아주 초보가 아니라 어느 정도 '한국말'을 배워서 찾아온 학생들도 있는데, 하필 '반말'로 배워서 선생님에게조차 "응", "알겠어" 등으로 대답을 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더 힘들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암튼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 재밌는 사연도 많고, 가슴 따뜻해지기도 하고, 때론 미어지도록 가슴 아픈 사연이 소개될 때는 함께 눈물 흘리는 대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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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느꼈던 점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이었다. 흔히 말하는 '국뽕'은 아니지만, '국뽕'이라고 불러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들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이웃나라들인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언어'를 전세계에 보급하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였냔 말이다. 심지어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공하면 중국과 일본에서 장학금을 전액 지원해주는 곳도 많고, '어학연수'를 위해서 지원금을 보조해주는 것에서부터 '취업 알선(?)'까지 풀코스로 해주고 있단다. 그런데도 그 오랜 세월동안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공하는 학생의 숫자는 적정 수준 그 이상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무런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역대 정부에서 지원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지원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대학에서 강의를 개설하지 못해 청원과 항의까지 봇물이 터진 상황이란다. 급기야 각 대학에서 한국에 '한국어 강사'를 초빙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어찌 '국뽕'으로 보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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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이 자조적인 논조로 '자국의 문화'가 한국에 비해 뒤쳐졌고, '한국의 문화'를 알면 알수록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좀 얼떨떨할 정도다. 미국의 어느 중년은 '한국 문화'가 미국 사회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면서 걱정을 늘어놓기도 했는데, 그 중년의 마지막 멘트가 히트였다. "그래도 '한식'은 너무 맛있어서 끊을 수가 없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식은 너무 '건강식'이라면서 한식을 모르고 살 때에 자신은 '쓰레기(정크푸드)'를 사랑하며 즐겨 먹었다는 사실에 너무 부끄러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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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럽의 젊은이들은 '아침 식사 풍경'이 빵과 수프에서 밥과 국으로 바뀌었다면서 이젠 아침을 '(한식으로)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하루를 버틸 수가 없다며 '한식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식후에 디저트조차 '붕어싸만코', '메로나', '월드콘'이 아니면 먹은 것 같지 않다면서 비싼 가격은 둘째치고 '마트 매대'에 재고가 쌓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동이 나는 일상이 반복되어, 이젠 '한 사람당 몇 개'만 살 수 있게 정책을 바꿀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마트에는 '한식'이 들어오는 시간에 자동적으로 긴 줄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는 유럽 사람들의 자존심을 와장창 무너뜨리게 만든 것이란다. 그들은 명품 매장 앞에서 '동양인'들이 루비비통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을 혐오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자긍심 쩌는 유럽인들이 '한식 코너'와 '한식당' 앞에서 자신들이 긴 줄을 만들어 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든 분들은 긴 줄을 서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면서 일장 훈계를 하면서도 자기 차례가 되어 '김밥'이 든 포장을 소중히 들고서 계산대로 빠르게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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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더 깊숙이 이해하고 젖어들고 싶어서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한다. 처음에 '한글'을 배울 땐 쉽지만 '한국어'를 익힐 땐 멘탈이 붕괴되는 일을 겪으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한국어 공부'를 포기할 만도 한데, 그 어려움이 또 묘한 승부욕을 불러 일으켜서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고, 그렇게 열심히 배운 '한국어'로 더 깊고 넓은 '한국 문화'를 탐구하다보니 이토록 찬란하고 숭고하며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도 없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100여 년간 나라가 망하고 제국열강에게 식민지를 경험하고 전쟁으로 온 국토가 황폐했던 바로 그 나라가 해방한 지 80년이 지나서 세계 10위 권으로 우뚝 서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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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미국과 유럽은 자신들이 식민경영을 해본 경험이 있는데, '식민지'였던 한국은 여느 식민지 국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언어'를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문화'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남김 없이 빼앗긴 '무'의 상태에서 '기술 강국'으로 '유'를 창조한 유일한 나라였던 것이다. 더 기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대한민국의 '언어'를 배우러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들고, 대한민국의 '문화'를 만끽하며 감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기술'이 없으면 세계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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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교육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의 풍경과 일상을 읽으면서 '국뽕'에 빠져 있었다. 언젠가 '한국어'로 세계가 소통하는 그 날을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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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2 - 육맥신검
김용 지음, 이정원 옮김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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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2 : 육맥신검> 김용 / 이정원 / 김영사 (2020)

[My Review MMCCCLI / 김영사 3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 번째 리뷰는 아버지가 뿌린 씨앗(?)을 열심히 거두는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천룡팔부 2>다. 소개가 너무 거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뿌린 씨앗'이라는 게 결국 '불륜'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도 모자라서 그의 아들인 '단예'가 사랑하는 여인들이 죄다 단예와 애정 관계로 맺어졌고, 그 가운데 한 여인과는 '혼인'을 약속했고, 또 다른 한 여인과는 피치 못할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아버지가 사랑했던 '과거의 여자들'이 딸을 낳았으니 모두 '그의 친딸'이었다. 그럼 단예와는 무슨 사이가 되는 걸까? 이래도 괜찮은 걸까?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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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2> 관점 포인트 : <천룡팔부 2>의 부제는 '육맥신검'이다. 대리국 황제 단씨의 '가전무공'으로 심후한 내공으로 점혈권법을 발휘할 수 있는 '일양지'를 응용해서 손끝에 내공을 주입해서 검기를 서리게 만들어 검술을 부릴 수 있는 독특한 무공이다. 그렇다고 열 손가락 모두 검기를 서리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른손 다섯 개와 왼손 소지(새끼손가락) 한 개를 더해 모두 여섯 개의 검기로 검술을 부릴 수 있는 무공이다. 기왕이면 열 손가락 다 검기를 서리게 하면 될터인데 왜 여섯 개일까? 그건 손끝에 검기를 서리게 하기 위해서 순전히 심후한 내공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공수련을 오래 했다고 하더라도 10년 수련에 손가락 한 개꼴로 검기를 서리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6개의 검기를 서리게 만들려면 적어도 60년 동안 수련을 해야 하니, 사람의 수명이 더 길고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더 많은 검기를 서리게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칠맥신검'이나 '팔맥신검'이 아닌 '육맥신검'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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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한 개의 검을 수련하는 것도 심혈을 기울여 집중을 해야 수련할 수 있을 터인데, 한 손에 하나의 검을 들고 모두 2개의 검술을 수련하는 검술도 있지만, 그 이상의 수를 사용하는 검술을 수련한 이들은 '현존'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거에도 들은 바가 없다. 그나마 중국 경극에 등장하는 '연개소문 역할'을 하는 배우가 항상 등 뒤에 5개의 검을 달고 연기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당태종과 연개소문이 전쟁을 벌였을 때 당나라가 패배한 까닭이 연개소문이 너무 뛰어난 전략을 사용했고, 심지어 연개소문의 무공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에 천하의 당태종이라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래되었으며, 이때 연개소문이 당태종과 싸울 때 칼을 다섯 자루가 들고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선보였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단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에도 '경극 무대'에서 연개소문과 당태종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연개소문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는 등 뒤에 칼을 5자루나 꽂은 채 등장한다고 한다. 이는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에 해당한다. 경극에서도 당태종은 연개소문에게 패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당태종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바로 '칼 5자루'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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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맥신검'은 무려 여섯 개의 검을 한 사람이 사용하는 검술 무공인 셈이다. 가장 검을 잘 다뤘다는 연개소문보다 1개 더 많게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여섯 개의 검술을 시연할 수 있는 것일까? 무협소설에서는 손가락을 단련하여 무공을 펼치는 무술이 여럿 등장하지만, 그나마 강시처럼 손톱을 길게 길러서 쓰는 정도다. 그러나 육맥신검은 무려 '검기'를 부리는 무공이다. 손 끝에서 나온 검기가 아무리 짧아도 '은장도'보다는 길 것이다. 보통의 은장도 길이가 '젓가락 길이' 정도이니 대략 '한 뼘 정도의 길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손 끝에 젓가락을 달아놓고 다섯 개를 이리저리 휘둘러 보면 정말 힘들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손가락에서 나온 검기가 내력을 조절하여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오른손 검기 하나, 왼손 검기 하나를 이용해서 마치 '이도류 검술'을 펼치고, 오른손에서는 다섯 손가락에서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검기가 출수할테니 그야말로 기묘하고 예측이 힘든 검술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묘한 검술을 무술도 하나 할 줄 모르는 '단예'가 배우지 않고도 배우게 되었다. 이는 단예가 본격적으로 강호로 나서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이고, 또한 단예와 의형제를 맺는 교봉과 허죽을 만나기 위한 설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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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협소설'다운 스토리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김용의 소설에서는 여기에 '애정소설'이 더해진다. 그래서 김용 소설을 즐겨 읽는 여성독자들도 많다고 한다. 남녀 주인공들이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허나 무협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애정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낭만적인 느낌은 덜 하다. 그저 '일일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파극 느낌'마저 들기 때문에 그냥 '20세기 사랑공식'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듯 하다. 분명 더 오래전 '시간적 배경'을 갖고 있는 소설인데 '현대적 사랑공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대적 배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송나라가 건재하던 10~11세기 시대 배경을 바탕에 깔아두고 있다. 그나마 송나라 때가 '유교 전통'이 강요되었기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연애'가 아니라 '중매'다. 그래서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부모의 허락이나 중매쟁이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던 답답한 시대였다. 그나마 이런 전통에 얽매이는 것은 '중원'으로 한정하고, 중원에서 벗어난 곳에서는 조금 허용을 해주며, 여기에 '강호'라는 프리미엄이 더 붙어서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름 교양을 갖춘 사대주 집안이라면 응당 '격식'을 따르는 것이 사람된 도리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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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예의 아버지 단정순은 젊은 날 진홍면과 사랑을 나눠 목완청을 낳았고, 뒤이어 감보보와 사랑에 빠져서 종영을 낳았다. 나중에 더 밝혀지지만 단정순이 뿌린 씨앗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런데 문제는 단정순이 낳은 유일한 아들인 '단예'가 무술을 배우라고 강요하는 아버지가 싫어서 가출한 김에 강호 유람을 떠났다가 아리따운 아가씨들과 첫눈에 반하고, 여러 위기를 함께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젊은 남녀 사이의 애정이 싹트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급기야 피치 못할 강박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혼인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랑이 결실을 맺어 단예와 목완청은 부모님 앞에서 혼인을 허락 받고 약속을 지켜질 찰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들을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게 만들고 말았다. 아니 더욱 친숙한 사이가 되게 만들었다. 왜냐면 단예와 목완청은 '친남매' 사이로 확인 되었기 때문이다.

​

사실 단정순은 아직 황위에 오르진 않았지만 형님인 보정제가 슬하에 자식이 없어 대리국의 황위를 동생인 단정순에게 넘기기로 약속을 했다. 근데 그 약속이 맺어지지 전에 단정순은 황위에 오를 자격이 없는 황자였으니 궁궐 안에 있기보다 강호를 떠돌며 유람을 즐겼던 것이다. 단정순은 무술 실력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미남자'였기에 가는 곳마다 염문을 뿌렸고 그때마다 찐한 사랑을 나눴다. 그렇게 여러 미인과 사귀게 되었는데 '정력'도 타고났던 모양인지 그렇게 미인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자식을 쑴풍쑴풍 잘도 낳았다. 하지만 단정순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왜냐면 임신을 하고 자식을 낳을 때까지 미인과 함께 했던 것이 아니라 오래 사귀지 못하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보정제와의 약속을 맺고 지키기 위해서다. 황제가 될 수 없었던 황자였는데, 이제는 황제가 되어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황제에 걸맞게 '정실부인(왕비)'을 맞이해 정식 혼인도 해야만 했다. 그게 바로 단예의 엄마 '도백봉'이었다. 이렇게 해서 단정순은 사랑보다 황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예전에 사귀었던 미인들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

그런데 의아할 것이다. 황제에게는 후손을 번창시킬 '의무(?)'도 있었기에 정식부인 말고도 첩에 해당하는 '후궁'을 여럿 들이는 방법도 있었을테니, 이전에 사랑을 나눴던 미인들을 모두 황궁으로 불러 들여 후궁이나 귀인으로 삼으면 될 것인데, 왜 도백봉 한 명만을 부인으로 두고, 과거의 연인은 모두 내치고 말았을까? 그 비밀은 단정순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미인들'에게 있다. 바로 여인들끼리 서로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다는 '전형적인 설정'을 짠 것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이 아닌 '근대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띠어 일부일처를 고집하고, '다첩제'를 결사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송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람직한 여성상은 가문의 후손을 생산하여 번성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인데, 어찌 하늘같은 지아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자 여인들끼리 시기, 질투, 복수까지 일삼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김용의 소설이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적 여성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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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허나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20세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21세기에는 말할 가치도 없는 '진부한 사랑이야기'로 보일 뿐이다. 더구나 여인들이 향하는 사랑은 '한 곳'만을 바라볼 뿐인데, 남자들이 사랑하는 방식은 '사방팔방'이다. 이런 사랑공식이 요즘에도 통할 듯 싶은가? 여성독자들도 외면할 뿐만 아니라 남성독자들도 이런 사랑을 원치 않는다. 왜냐고? 요즘 젊은 남자들 경제적으로 '자립'은커녕 '자족'하기에도 빠듯한데 언제 연애하고 데이트하고 사랑 나누고 결혼해서 애낳고 돈까지 모아 차사고 집사겠냔 말이다. 이렇게 한 명의 여자를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인데, 바람피우고 불륜 저지르고 다닐 수나 있겠는가. 그러니 이런 '문어발식 연애'는 남자들도 노땡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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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용의 소설에는 이런 '애정소설'에 관한 내용이 참 많다. <사조영웅문>의 곽정, <신조협려>의 양과, <의천도룡기>의 장무기, <소오강호>의 영호충, <녹정기>의 위소보 등 한 명의 남자 주인공에 여자 주인공이 여럿 등장하고 매칭시키는 방식이 김용 스타일이기도 하다. 반면에 김용과 동시대를 살았던 <백발마녀전>의 양우생 작가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펴냈다. 그의 작품 <명황성> 3부작에서는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두 '제 짝'을 만나 일편단심으로 끝까지 인연을 맺는 사랑공식을 펴내서 비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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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80~90년대에 김용의 소설을 읽었을 때와 지금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 시절에는 단예, 교봉, 허죽 의형제 가운데 '단예'가 많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거고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아련하고 가장 하고 싶은 사랑은 단연코 '교봉과 아주의 사랑'이다. 교봉은 훗날 친부를 찾고 '소봉'이라 이름을 고치지만, 이름을 고치게 된 사연보다 아주와 인연을 맺고 사랑을 확인하는 그 장면이 너무도 애뜻했기 때문이다. 벌써 30년도 더 넘었는데 지금도 그 대목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이제 곧 그 장면을 만나게 될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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