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9권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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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9권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X / 인물과사상사 3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아홉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9>이다. 일제시대 36년간 거시적인 관점에서 '망국의 한'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라 잃은 슬픔이 이토록 사무치고 기댈 곳 없는 설움이 그토록 서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민족은 그 슬픔과 설움의 현장에서 살을 에이는 고통을 견디며 삶을 이어갔다. 그 어둠속에서도 빛을 내는 존재도 있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시대를 겪으며 그간 주목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일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고 손기정 선수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제시대를 큰 그림에서 처절하고 불우한 시절이었다고 평가내릴 수 있겠으나, 세세한 부분 부분들을 살펴보면서 낱낱이 평가해볼 필요는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일제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운 인생을 찾았다고 '일제시대 전체'를 백점 만점 주는 어리석은 짓은 제발 안 했으면 싶다. 손기정 선수가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른 뒤에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승리를 만끽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건 '개인의 영광'은 더할나위 없이 기뻤겠지만 '나라 잃은 슬픔'과 함께 기뻐해줄 동포의 아픔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개인적인 성취에 들떠서 환희를 만끽하고, 제 동포가 죽거나 다친 건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직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민족의 배반자들'은 일제시대가 아주 좋아 죽을 것처럼 좋았을 것이다. 천지개벽하여 새세상이 열린 것만 좋아라 하고 세상이 뒤집혀져서 피해를 보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해줄 줄 모르는 철면피들에게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9> 관점 포인트 : 9권에서는 특히 1930년대 풍속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책내용을 처음 접하다보면 '신세계'가 펼쳐진 듯 싶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일제시대의 암울한 정서와는 사뭇 다르게 1930년대 조선인들은 생동감 넘치게 각 분야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선을 멀리하고 바라보면 조선인들의 활기찬 모습은 사라지고 암울한 이미지만 가득하다. 이런 기현상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허나 분명한 것은 일제의 철저한 억압과 수탈, 그리고 차별은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조선인을 위한 식민통치'는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일제는 아주 교묘하게 방향을 틀어서 조선인들이 가지게 될 불만을 '다른 곳'으로 풀어내도록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 어리숙한 군중들은 일제가 '허용'한 것들에 취해서 제 몸과 정신이 다 망가지고 생채기가 나는 줄도 모르고 활기 넘쳤고, 결국 진이 다 빠진 뒤에 제 손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허무함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의 교묘한 방법이란 그런 허무감조차 '일제의 탓'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저 못난 것'만 탓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조선놈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근거불명의 명제를 들이밀면서 일단 불평불만이 많은 조선인(불령선인)들은 때리고 보는 식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일제시대에 강요된 근대화를 겪으며 '자의식'을 키웠다. 이는 일본인들과 명백히 다른 점이다. 일본인들은 '저항'을 할 줄 모른다. 아무리 불평불만이 생겨도 '위에서 억누르면' 곧 잠잠해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문화는 '칼(사무라이)의 문화'라면서 명령에 불복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는 경험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한국인들은 극렬한 저항을 한다. 부당한 것에 참지 않고 공정하지 못한 것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짓밟히면 더욱더 일어나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제뜻을 관철하려 든다. 이런 우리 민족의 드센 성정을 총칼로 다스리려 했으니 '무단통치'시기에 결국 사단이 나고 끝내 1919년 3·1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뒤에 일제는 겉으로 '문화통치'를 내세우면서 한편으론 달래고, 다른 편으로는 얼르며 우리 민족을 '이간질'시키려 들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 내부의 문제'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으며 독립운동에도 난항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부분열과 갈등도 뚜렷한 '자의식'이 없다면 아예 발생하지도 않는다. 갈등의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상'과 '신념'은 굳건해지기 마련인데, 이때 일제를 통하거나 국외유학을 경험하고 돌아온 이들이 전파한 '서양사상'과 '서양문화'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신문물을 수용함에 있어서 한 가지 기준점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 좋은 것들을 자유로운 조국에서 아무런 간섭과 차별을 받지 않은 독립된 나라에서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준 말이다. 일제는 앞선 신문물을 조선의 청년들에게 선보이면서 '이것이 압도적인 일본의 문명이다. 그러니 저항하지 말고 누리고 즐겨라. 2등 국민으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이런 의도로 자랑을 했겠지만, '자의식'을 깨우친 조선인들에게 그런 헛소리는 먹혀들지 않았다. 차라리 조선인 차별을 하지 않고 그들의 말대로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대우하고, 출세의 기회도 똑같이 마련해줬다면 저들의 의도대로 일제에 순응하는 '착한 조선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별이란 차별은 다하고, 수탈할 것도 몽땅 다하고서 굶주려 죽게 만들고서는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았으니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1930년대 '여성문화', '대중문화', '소비문화', '생활문화' '중독문화' 등등 다양한 문화를 선보이며 눈이 팽팽 돌아가게 만들었지만, 일제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가는 이들이 많을지언정 그렇게 속아서 산 세월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부당했는지는 경험해보면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문화적인 것들조차 조선인은 일본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꾀했으며, 조선인들이 일본인보다 잘나면 잘났지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나 능력에서조차 뒤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를 테면 '자유연애'가 소개되자 '맹목적 연애'가 진짜 연애라면서 연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로 심취해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인 '정조'를 우위에 놓던 것을 하루 아침에 추락시켜버리고 '연애'가 주는 낭만에 푹 빠져서 불륜조차 당당하게(?) 하며 수많은 대중들이 이를 유행처럼 따라하는 일이 벌어졌단다. 심지어 조강지처가 있는데도 바람 피운 것이 들통나자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 '저승'에서 이루겠다며 내연녀가 투신 자살을 하자 불륜남도 똑같은 자리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것이 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였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라디오에 심취해서 라디오 청취를 넘어 '참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커피 '소비'는 마약에 중독된 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사교댄스에 빠져서 '춤바람'을 일으켰다. 거기에 전화, 기차, 자동차, 심지어 기독교라는 종교까지 빠져들고, 마음껏 휘저으며, 결국 '우리식'으로 풀어내고 우리만의 문화로 거듭냈다. 일제시대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현재 전세계에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 우연은 아닌 셈이다. 서양의 것, 일제의 것일지라도 일단 우리 민족의 손과 얼을 거치고 나면 결국 '한국문화'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우리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우리 것을 다시 역수출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열광한다. 낯설지 않은데 무척 낯설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만의 흥 문화'가 오롯이 담긴 덕분이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일제시대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흥'으로 최악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 것'으로 재포장해서 다른 나라를 감동하게 만드는 저력이 말이다.

나가는 글 : 딴에는 무척 기묘하다. 이 책이 출간된 2008년에는 이런 감흥으로 이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차별받고 핍박받은 어두운 그늘속을 걷는 것처럼 침울하게, 때론 씁쓸하게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2026년이 된 오늘 다시 읽으니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 100년 전의 우리 조상님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일제의 강요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근대화를 이끌었다면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정말로 만약이지만,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낼 수만 있었더라면, 저들의 제국주의적 야만조차 자중하고 길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양은 저들의 힘에 도취되고 한껏 부풀어서 저 잘난 맛에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 '쟁탈전'을 벌였지만, 그 가운데 우뚝 선 나라 하나가 있어서 저들의 앞선 문물을 보여줬음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저들의 것보다 훨씬 더 좋게 만들어내는 나라의 존재 앞에서 어찌 함부로 경거망동했겠냐는 말이다. 더구나 그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저들의 문물을 '재생산'해서 '역수출' 당하는 모습에 기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이 너무 과하다고? 현재의 대한민국의 위상 앞에서 쩔쩔매는 저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라. 현재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우리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 10위권 안에서 놀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통적인 강대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보면 정말 대단한 위엄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런 강대국들이 '제국주의'를 앞세워서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떨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자 '가해 당사국'이었던 것에 반해서,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채 빼앗겨버린 '피해국'이었는데 불과 100년만에 그 위상이 뒤바뀐 것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지언정 침략을 한 적이 거의 없는 나라인데, 현재는 '군사대국'으로 성장해서 그 어떤 나라도 함부로 건들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 흔한(?) 핵무기가 없는데도 말이다. 재래식 무기만으로 주변국을 넘어 전세계에 압도적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한류열풍을 넘어 '한국문화', '한국제품'은 일단 믿고 본다는 인식이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어 버린 현재다. 도대체 이런 신뢰를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준 국가나 문화가 역사상 몇 개나 있었을까? 이게 가장 놀라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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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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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IX / 인물과사상사 3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여덟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8>이다. 강준만 교수의 역사책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를 재조명해보려 다시 읽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이승만', '박정희' 때가 좋았다는 타령을 하고, 심지어 '일제시대'가 100점 만점이라는 역사평가를 댓글로 다는 분들이 계시다. 뭐, 그럴 수 있다. 각자의 역사관으로 사료를 분석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는데, 뭐라 하겠는가. 이제는 화를 내기에도, 일일이 반박하기에도, 귀찮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도 100점 만점을 줄까 말까인데, 이승만 100점, 박정희 100점, 일제시대 100점을 주겠다는 사람을 어찌 할 수 있을까? 그냥 냅두는 것이 정답이다. 세상에 '나만 옳고, 남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알만 해지면 정신을 차릴 테니 말이다. 지금 윤석열이 그러고 있지 않은가. 저만 옳아서 '비상계엄'을 했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니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고대로 돌려주면 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얼마든지 '비상계엄'을 내릴 수 있고, 그것이 '계몽령'이라고 정당화 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찌 됐든 현직 대통령인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그럴 권한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정상'으로 말이다. '절대 권력'을 그런 식으로 쓰는 것을 '계몽령'이란 허울로 포장하는 꼼수는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뭐, 그게 누구인지는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수 있지만 말이다.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8> 관점 포인트 :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의 지위를 차지한 일제는 내친김에 중국 침략을 본격화 한다. 대만을 찝쩍거리고서는 자신감을 얻은 일제는 '조선'을 손아귀에 넣었고, 식민경영을 발판 삼아 '만주와 몽골'을 영향권 아래 놓더니, 이제 중국 본토를 장악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으려 한다. 그 시작이 바로 '만주사변'이다. 얼토당토 않은 '모략질'로 침략을 시작한 일제는 삽시간에 '중일전쟁'으로 치달았고, 너무 욕심을 부려 중국을 한 입에 베어 먹으려 드는 바람에 결국 오래 가지 않아 역풍을 맞게 된다. 천하의 나폴레옹도 러시아를 공략하다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일제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데도 일제는 무대포로 밀어붙이다 '패망의 길'을 앞당겼을 뿐이다. 하지만 1930년대에는 아직 일제의 운이 다하지 않은 모양이다.

일제가 중국본토 침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920년대까지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이어오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30년대 들어서 대단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제는 교묘하게 '문화통치'를 하면서 우리 민족을 '갈라치기'하려 들었고, 실제로 이 방식은 잘 먹혀 들었다. 무단통치 시기에는 무도할 정도로 '무단통치'를 하며 차별이 심했지만, 문화통치 시기에 접어들자 조선인들에게 표면적으로나마 '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취업의 길'도 열어주었으며, '성공을 꿈꿀 수 있는 희망'까지 심어주었다. 허나 이런 것들이 일종의 '기만행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일제는 '조선인 차별'을 결코 멈춘 적이 없으며 날이 갈수록 더 심화시켰고, 표면적으로는 지식인들을 '우대'하는 척하며 회유했고, 결과적으로 회유 당하든, 저항을 하든, 공평하게 '차별'을 당연하게 행했다.

그러면서 그런 '차별'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폈는데, 그것이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과 만나면서 더욱 노골적이 되었다. 우생학은 애초에 '우열의 차이'가 결정되어 있으니, 우등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회진화론'을 앞세워 그럴 듯한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일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조선민중들을 상대로 '박람회' 같은 것을 구경시키면서 관람료를 강제로 수탈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세뇌시켰다. 이를 두고 '식민지사학'이니 '황국신민화운동'이니 말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 정말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해방된 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왜곡된 사관'에 빠져들어서 헤어나질 못하고, 그런 못된 짓을 배워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갈라치기하려 드는 정치집단이 여전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생각에 빠져든 이들은 저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로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애꿎은 민주시민들을 해코지하고, 민주주의 근간을 뿌리째 뽑아들려고 무던한 행동들을 일삼고 있다. 정말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그럼 1930년대 우리 민족은 어떤 일을 했는가? 한인애국단인 이봉창과 윤봉길이 '폭탄 의거'를 행하며 우리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쳤고, 일제의 철저한 감시속에서 활동이 위축된 독립운동가들은 '좌우합작'을 하며 수단과 방법의 차이는 차치하고, 우선 '독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신간회'를 조작해서 거대한 단결을 보여주려 했었다. 허나 어처구니 없게도 일제는 '묻지마 감금'이라는 방법으로 아무 근거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조선인'을 구속하고 감금하고 고문과 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신간회의 존재'를 밝혀내고 만다. 이른바 '105인 사건'을 시작으로 비밀조직이었던 '신간회'가 들통이 났고, 일제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에 의해 '신간회'는 결국 해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간회'의 한쪽 날개를 맡았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세력들이 '우리의 독립 의지와 열망'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소련의 '코민테른'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어리석음을 보여줌으로서 끝내 '신간회'가 해체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조선인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을 멍청하다고 매도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과 '공산주의 국가 건설'이 너무도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마르크스 사상에 입각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소련의 위업을 누가 쉽게 흠을 잡을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그런 성공한 세력이 주축이 된 '코민테른'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어련히 알아서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철썩 같이 믿었던 조선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을 순진하다고 매도하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너무 그쪽 편이었다. 어쨌든 '소련의 지시'를 받는 코민테른의 명령은 당시 일제치하에 놓여 있던 '조선 독립운동가'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었고, 이를 '이상적인 방법'으로 오판한 사회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신간회 활동'보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 지나고 나니 '코민테른의 지시'가 허울만 좋은 이상이었을 뿐, 현실의 녹록치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간파하지 못했었다고 알 수 있지, 당시를 살던 사람들은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가는 글 : 그렇다면 '신간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비록 신간회 활동은 독립이라는 결실도 얻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일제의 철저하고 교묘한 방해공작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 힘을 모으고 독립을 하겠다는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었기에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사상적으로 '다른 조직'이 '한 몸'으로 행동하기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종파'가 다른 종교인들을 한데 묶어놓고 '한 목소리'를 내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간회'는 좌우합작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리고 실패하긴 했지만, 그건 우리 내부의 분열 때문이 아니었다. 일제의 감시망조차 피해 활발히 활동했었는데,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었던 것이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 격이었고,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친 어망에 잠수함이 걸린 꼴이 었다.

그럼, 만약 '신간회'가 발각되지 않고 애초에 계획했던대로 활동을 이어나갔다면 우리 민족의 역량만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을까? 아쉽지만 그건 아니다. 그건 앞서 언급한 '소련 코민테른의 무지' 때문이었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에게 '코민테른의 결정'은 지상명령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당시 소련은 일제를 지지했고, 조선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었다는데 아주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의 '외교역량'이 제대로 발휘되는 상황이었다면 진행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긴 채 망해버린 나라이기에 다른 강대국의 관심도, 지지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다. 이봉창은 비록 실패했지만, 폭탄을 일왕을 향해 던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인들을 기겁하게 만들었고, 윤봉길은 상해에서 거사를 성공시킴으로써 중국의 장개석을 '우리 편'으로 돌리게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외교적 역량이 발휘되면서 '조선의 독립'을 전세계에 천명하고,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독립시키자는 카이로회담과 얄타회담의 결실을 갖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이 중국군에 편입이 되어 일제와 싸울 수 있었고, 비록 '조선독립군'이란 명칭으로 당당히 일제와 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지만, 일제와 싸울 수만 있다면 '중국군'이든 '소련군'이든 가리지 않고 참전하여 실력행사를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인'이 되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조선인은 중국에서도, 소련에서도 결코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비극이었다. 그리고 일제는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수탈과 차별을 심화했고, 급기야 '병참기지화'와 '민족말살'이라는 끔찍한 만행을 우리 민족에게 가했다. 심지어 친일을 행하던 민족배신자들도 일제에 차별받고 고통받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런데도 벨도 없이 일제시대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현존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게 그저 '해석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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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4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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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4>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XXVIII / 문학동네 3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일곱 번째 리뷰는 <고우영 삼국지 4>다. 여러 <삼국지>를 읽어도 최고를 꼽으라면 '해석'이 독특하고 이야기가 풍부한 소설을 꼽는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해마다 달라지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만화 삼국지'를 꼽으려 한다. 올해는 유독 '만화 삼국지'를 많이 읽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고우영 삼국지'는 섬세한 디테일이 단연 최고다. 굵직한 스토리를 따르고 있지만, 그 가운데 꽂히는 '핵심 이야기'에 아주 세세한 디테일을 잘 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고우영 삼국지 4> 관점 포인트 :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11장 기인 예형, 12장 관우, 13장 도사 우길, 14장 제갈량이다. 삼국지를 잘 아시는 분들은 머릿속에 대략적인 서사 흐름이 보일 것이다. 조조가 연주에 확고한 터를 잡고 헌제까지 볼모로 삼고서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남은 적은 형주의 유표, 그리고 유표의 품으로 달아난 유비 삼형제다. 조조는 유비도 잡고 유표도 잡기 위해서 '형주'를 치려 하는데, 마땅히 보내야 할 사신이 없다. 왜냐면 허도에서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조조 암살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복황후가 헌제를 대신해서 조조를 암살하려 했으나 사전에 모의한 내용이 발각이 되면서 모의에 참여했던 의원 길평이 조조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죽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조조에게 충성을 바칠 뜻 있는 신하들이 나설 턱이 있겠는가. 그런 와중에 '예형'이 천거되어 유표에게 항복을 권하러 가라고 시켰으나, 예형은 선비에 대한 예우도 모르고, 조조를 불의한 집단이라며 한껏 비웃어주니 조조는 예형을 '남의 칼'을 빌려 죽이려 든다. 이런 스토리를 고우영은 아주 섬세한 필치로 오롯이 담아냈다. 소설에서 아주 짧게 다뤘던 길평과 예형의 일화를 아주 중심으로 잡고 메인스토리로 흘려버린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이런 일화는 '13장 도사 우길'에서도 펼쳐진다.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죽어버린 손견과 마찬가지로 아들인 손책도 그렇게 죽게 된 스토리를 아예 '우길'이라는 에피소드를 앞세우며 장엄한 장송곡으로 연주를 해버린 것이다. 이는 '14장 제갈량'도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삼고초려'를 보여주기 위해 앞뒤 중간 다 잘라먹고 오직 '제갈량' 세 글자만 내세웠다. 거기다 <고우영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여성성을 부여해서 남정네들이 펼치는 어마어마한 전장터에서 섬세한 독심술로 상대의 모든 전략을 간파하는 지략을, 마치 '여성이 펼치는 육감의 놀라운 적중률'인 것마냥 풀어냈다. 그래서 이후에 벌어질 <고우영 삼국지>의 이야기를 '제갈량'이 이끌어 간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더구나 제갈량은 유비를 '천하의 주인'이 될 사람으로 치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애초에 '출사'조차 하지 않고 천하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일체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제갈량이 유비의 손을 잡고 '천하'를 경영하러 나간 까닭은 무엇일까? 심지어 '고우영'은 제갈량을 폐병쟁이로 설정해서 제갈량의 꿈이 실현되지 못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단 제갈량이 등장하고 나니 유비는 날개를 단 듯 훨훨 날아가게 된다. 물론 그건 이후의 이야기일 것이다.

나가는 글 : 흥미진진하다. 원래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천하삼분지계를 실행하려 나서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꽉 막힌 속이 풀리듯 술술 흘러가긴 하지만, <고우영 삼국지>는 또 다른 색채로 술술 풀려나간다. 이는 <고우영 초한지>에서 '한신'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우영은 거기서도 '한신'은 여성화하였다. 유방이 한신을 얻고 천하를 얻은 것처럼 유비도 제갈량을 얻도 천하를 꿈꾸게 된 것을 고우영은 '현모양처'를 얻어 내조를 받는 남자가 출세길이 활짝 열리듯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그래서 <고우영 삼국지>에서 대부분의 여성캐릭터가 '에로티시즘'에 충실한 반면에 오직 '제갈량'만은 그런 에로티시즘과는 거리를 두고, 오직 '내조하는 마누라'로 설정하고, 그 자신의 꿈을 '남편 캐릭터(유방과 유비)'의 출세길을 활짝 열어주는 설정을 한 것이다.

1980년대의 '시대적 한계'가 엿보이는 해석이긴 하지만, '만화 삼국지'가 아니었다면 결코 펼쳐내지 못했을 독특한 해석이다. 분명 남자캐릭터인데 여성적인 면모를 듬뿍 자아내는 묘사가 독자로 하여금 다른 의미에서 '애간장'을 녹이고 있는 것이다. 허나 21세기 독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분석' 되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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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3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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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3>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XXVII / 문학동네 3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여섯 번째 리뷰는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3>이다. 일정이 어그러지는 바람에 무려 한 달만에 리뷰를 이어가게 되었다. 뭐, 어그러졌다고해도 '다른 삼국지'를 읽고 또 리뷰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고우영 삼국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면 자꾸 '비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년 읽던 <삼국지>와는 다르게 이책 저책을 비교하며 읽다보니 '견문'은 더욱더 넓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넓어진 견문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고우영 삼국지 3> 관점 포인트 : 3권의 줄거리를 먼저 이야기 해야겠다. 요즘 이책 저책을 읽다보니 '줄거리'가 자꾸 엉키고 있다. 똑같은 '삼국지'를 읽고 있는데도 책마다 써내려가는 줄거리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암튼 3권의 줄거리는 '7장 이각과 곽사', '8장 장비와 여포', '9장 조조와 과부', '10장 여포와 유비'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여포의 동탁 암살'부터 '조조의 서주대학살'까지다. 핵심포인트는 조조가 '헌제'를 볼모로 잡고 허창에 안주하기까지의 과정을 눈여겨 봐야 하고, 그 와중에 여포가 몰락하고, 유비가 서주에 정착하기까지의 서사에 주목하면 된다. 이 부분은 일반적인 <삼국지>에서도 여러 군웅들이 중구난방으로 할거하는 대목으로 그리고 있다. 그 어떤 영웅도 확고한 세력을 다지지 못하고 이곳저곳에서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각지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흥하는 영웅이 있는 반면, 일순간에 갖고 있던 영지를 빼앗기고 불귀의 객이 되어버리는 '난세'가 펼쳐지고 있던 셈이다.

그나마 조조에게 '헌제'가 제발로 찾아는 일이 발생하면서, 조조가 새롭게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반면에 유비는 아직도 변변한 영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가 조조의 서주대학살 이후 도겸의 영지였던 '서주'를 차지하면서 조조와 맞서 싸우는 형국을 보인다. 그 와중에 끈 떨어진 여포가 유비를 찾아오니 유비는 이를 기회로 삼아 조조와 맞서 싸울 카드로 '여포'를 활용할 생각에 미치게 된다. 허나 여포가 어디 쉬이 다룰 수 있는 카드던가. 정말 최강의 힘을 가진 카드였으나,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카드였던 것이다. 허나 천자까지 등에 업은 조조의 막강한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병력조차 변변히 갖지 못한 유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유비는 여포를 정중히(?) 모시는 척하며 받아들인다.

그 와중에 조조는 완성에 남아 있는 '역적 잔당'을 헤치우려다 아리따운 과부와 운우지정을 나누다 골로 갈뻔 했다. 대신 조조를 지키던 호위무사 전위가 조조 대신 목숨을 잃는다. 한편, 유비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원술을 치러 원정을 가고, 그 빈틈을 노리고 여포는 장비가 지키고 있는 서주를 차지하는데, 그럼에도 유비는 여포를 포용하고 순순히 소패로 내려가 조조와의 대결을 도모한다. 그 덕분에 원술이 유비를 침략했을 때 여포가 나서서 도움을 주게 된다.

나가는 글 : 여기까지가 3권의 줄거리다. 그럼 <고우영 삼국지>만의 특색은 뭘까? 앞서도 말했지만, 에로틱한 해석과 서민적인 주인공의 대활약이다. 7장 이각과 곽사에서는 '예쁜 점쟁이'가 등장해서 둘 사이를 갈라놓고, 9장 조조와 과부에서는 '예쁜 과부'가 등장해서 조조를 망신살 뻗치게 만든다. 그것도 아주 에로틱하게 말이다. 이는 실상 '신문연재' 당시에 매출을 늘리려는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무작정 '야한 것'만은 아니었다. 고우영 특유의 위트와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진짜 주인공 '장비'가 다시 활약을 했다. <고우영 삼국지>에서 유독 주목해야 할 등장인물이 있다면 단연 '장비'다. 독자들은 '장비'를 통해서 <고우영 삼국지>의 진짜 주제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웅으로 불리는 조조와 유비를 통해서 찾을 수 없는 '서민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조조는 간웅이다. 실패를 해도 간사한 잔꾀를 내어서 성공 못지 않은 이득을 챙긴다. 그래서 우리는 조조를 통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 비결'을 배울 수 있다. 유비는 어진 영웅이다. 비록 실패를 할지라도 비열하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만회하려 들지 않는다. 험한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살면 늘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허나 이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는 느리지만 거대하고 당장은 손해를 보지만 멀게 보면 더 큰 이익을 노리는 대인배임을 알 수 있다. 허나 장비는 어떤가? 조조처럼 이득을 위해 비열한 행동을 할 줄 모른다. 그렇다고 유비처럼 대인배처럼 행동하며 거창한 꿈을 꾸지 못한다. 그저 '오늘'을 살 뿐이며 불행한 과거를 잊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소인배처럼 행동할 뿐이다. 대개는 이런 장비를 두고 순박하지만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이런 순박하고 어리석은 주인공을 내세웠다. 왜일까?

우리네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중국 후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그 시절에도 못 먹고 못 살던 가난한 백성들이 있었다. 그들이 황건적이 되어 난을 일으켰다. 20세기 대한민국에도 못 먹고 못 살던 서민들이 있었다. 그들이 민주화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장비는 황건적을 토벌하였지만, 나쁜 짓을 하는 황건적만을 벌주었다. 또 장비는 관리들을 혼쭐내주었다. 이는 민주사회를 해하는 암적인 존재들을 혼쭐 내줄 인물로 장비를 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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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4 - 폭풍전야, 제2회 스토리킹 수상작 후속작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4
천효정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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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4 : 폭풍전야> 천효정 / 비룡소 (2016)

[My Review MMCCXXVI / 비룡소 1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다섯 번째 리뷰는 점점 팽창되는 세계관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4>다. 이번에는 더 많은 무술인들이 등장한다. 바로 '무중협'과 '무지협'의 등장한 것이데, 이들은 비록 주인공도 아닌 엑스트라에 불과하지만, 앞으로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너무도 소중한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모든 소설에서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들'의 활약은 대단히 중요하다. 영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악랄한 악당이 등장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4> 관점 포인트 : 건방이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요즘 초등학생은 어른 못지 않게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한다(부러운 것들). 그런데 건방이의 짝은 누구일까? 오방도사의 연인이 꽃님소저였듯 건방이의 짝지로는 백초아가 딱이다. 물론 백초아도 건방이를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문제는 건방이가 사랑 따위는 전혀 모르는 천방지축이라는 사실이다. 초아가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는데도 눈치도 없이 '초아의 연정'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방이는 초아에게 번번히 구박을 받는데, 이런 무심한 건방이를 열렬히 사모하는 여성이 등장해서 화제다. 도대체 누구일까?

어느 날, '현상수배'가 학교 전체에 도배가 되었다. 사람을 찾는다는데, 찾는 사람이 다름 아닌 소문이 자자한 '머니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니맨을 당당하게 수배(?)한 여성은 놀랍게도 학교 전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오아영이라는 여자 친구다. 청초하고 어여쁜 외모의 소유자라서 팬클럽까지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학교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구름떼를 몰고 다니는 인기녀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머니맨을 찾겠다고 '현상수배'를 내린 것이다. 이유인 즉슨, 오아영이 머니맨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만나서 사랑고백을 하겠다는 작정이라는데, 정작 문제는 '무술인'이 일반인에게 정체가 들통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머니맨'이 '이건방'이라고 아는 사람은 있지만, 다들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 생겼다. 하지만 오아영은 다르다. 오아영이 '머니맨'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건방이가 오방도사의 제자인 무술인이라는 사실, 또 그동안 '머니맨'으로 활약했다는 사실까지 삽시간에 소문이 날 것이다. 물론 오아영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그런 사실이 알려진다한들 자신이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머니맨'을 찾으려 열심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달이 났다. 바로 '무지협'이 이런 약점(?)을 잡고서 건방이와 스승인 오방도사에게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무술인은 절대 일반인에게 정체를 밝혀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어겼기에 '무지협의 협박'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이 문제가 건방이의 일방적인 실수도 아니고 사연을 들어보면 '정상참작'이 될 수도 있는 일인데, 이를 문제 삼아 '오방도사'를 곤란에 빠뜨려서 이익을 챙기려는 나쁜 심보를 가진 '무지협'이 더 큰 문제다. 사실 '무지협'의 이런 류의 협박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래서 알만한 사람들은 이런 무지협의 횡포에 비난을 하고 '무중협'에게 고발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증거'는 감쪽 같이 사라지거나 '증인'도 찾을 수 없기 일쑤고, 고발했던 '무중협'에서도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그래서 무지협의 횡포는 더더욱 심해졌고, 결국 건방이와 오방도사에게 이 사달이 나게 된 것이다. 과연 건방이는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나가는 글 : <무협소설>에도 종종 러브라인을 타기 마련이다. 남주와 여주가 등장하는데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남성작가'인 탓에 이런 러브라인이 종종 '국가대사'를 만나 충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거나, 남자들끼리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시켜버리고 마는 무심한 남성작가들에 의해 '사랑이야기'가 바사삭 부서지고 만다. <사조영웅전>에서 곽정과 황용의 사랑이 그렇다. 더구나 정략혼인이긴 했지만 곽정과 화쟁공주는 또 어땠는가 말이다.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소용녀, 그리고 양과와 곽양의 사랑도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의천도룡기>에서 장무기는 수많은 여자와 만나지만 하나같이 엉크러지고 만다. 결국 '무심한 남주' 때문이긴 하지만, 그런 남주를 누가 만들었겠는가? 바로 '남성작가'가 저지른 만행이었다.

헌데 천효정 작가는 '여성작가'다. 여성작가가 써낸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에서는 사랑이야기는 아주 생생하다. 여성 캐릭터의 세심한 감정까지 살려내면서 무정한 남정네의 심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 '읽는 맛'이 참으로 솔솔하다. 그리고 이런 섬세한 감정 묘사가 '무협소설'에도 아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게 '시즌2'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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