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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평점 :
<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IX / 인물과사상사 3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여덟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8>이다. 강준만 교수의 역사책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를 재조명해보려 다시 읽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이승만', '박정희' 때가 좋았다는 타령을 하고, 심지어 '일제시대'가 100점 만점이라는 역사평가를 댓글로 다는 분들이 계시다. 뭐, 그럴 수 있다. 각자의 역사관으로 사료를 분석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는데, 뭐라 하겠는가. 이제는 화를 내기에도, 일일이 반박하기에도, 귀찮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도 100점 만점을 줄까 말까인데, 이승만 100점, 박정희 100점, 일제시대 100점을 주겠다는 사람을 어찌 할 수 있을까? 그냥 냅두는 것이 정답이다. 세상에 '나만 옳고, 남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알만 해지면 정신을 차릴 테니 말이다. 지금 윤석열이 그러고 있지 않은가. 저만 옳아서 '비상계엄'을 했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니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고대로 돌려주면 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얼마든지 '비상계엄'을 내릴 수 있고, 그것이 '계몽령'이라고 정당화 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찌 됐든 현직 대통령인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그럴 권한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정상'으로 말이다. '절대 권력'을 그런 식으로 쓰는 것을 '계몽령'이란 허울로 포장하는 꼼수는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뭐, 그게 누구인지는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수 있지만 말이다.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8> 관점 포인트 :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의 지위를 차지한 일제는 내친김에 중국 침략을 본격화 한다. 대만을 찝쩍거리고서는 자신감을 얻은 일제는 '조선'을 손아귀에 넣었고, 식민경영을 발판 삼아 '만주와 몽골'을 영향권 아래 놓더니, 이제 중국 본토를 장악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으려 한다. 그 시작이 바로 '만주사변'이다. 얼토당토 않은 '모략질'로 침략을 시작한 일제는 삽시간에 '중일전쟁'으로 치달았고, 너무 욕심을 부려 중국을 한 입에 베어 먹으려 드는 바람에 결국 오래 가지 않아 역풍을 맞게 된다. 천하의 나폴레옹도 러시아를 공략하다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일제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데도 일제는 무대포로 밀어붙이다 '패망의 길'을 앞당겼을 뿐이다. 하지만 1930년대에는 아직 일제의 운이 다하지 않은 모양이다.
일제가 중국본토 침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920년대까지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이어오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30년대 들어서 대단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제는 교묘하게 '문화통치'를 하면서 우리 민족을 '갈라치기'하려 들었고, 실제로 이 방식은 잘 먹혀 들었다. 무단통치 시기에는 무도할 정도로 '무단통치'를 하며 차별이 심했지만, 문화통치 시기에 접어들자 조선인들에게 표면적으로나마 '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취업의 길'도 열어주었으며, '성공을 꿈꿀 수 있는 희망'까지 심어주었다. 허나 이런 것들이 일종의 '기만행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일제는 '조선인 차별'을 결코 멈춘 적이 없으며 날이 갈수록 더 심화시켰고, 표면적으로는 지식인들을 '우대'하는 척하며 회유했고, 결과적으로 회유 당하든, 저항을 하든, 공평하게 '차별'을 당연하게 행했다.
그러면서 그런 '차별'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폈는데, 그것이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과 만나면서 더욱 노골적이 되었다. 우생학은 애초에 '우열의 차이'가 결정되어 있으니, 우등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회진화론'을 앞세워 그럴 듯한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일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조선민중들을 상대로 '박람회' 같은 것을 구경시키면서 관람료를 강제로 수탈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세뇌시켰다. 이를 두고 '식민지사학'이니 '황국신민화운동'이니 말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 정말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해방된 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왜곡된 사관'에 빠져들어서 헤어나질 못하고, 그런 못된 짓을 배워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갈라치기하려 드는 정치집단이 여전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생각에 빠져든 이들은 저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로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애꿎은 민주시민들을 해코지하고, 민주주의 근간을 뿌리째 뽑아들려고 무던한 행동들을 일삼고 있다. 정말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그럼 1930년대 우리 민족은 어떤 일을 했는가? 한인애국단인 이봉창과 윤봉길이 '폭탄 의거'를 행하며 우리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쳤고, 일제의 철저한 감시속에서 활동이 위축된 독립운동가들은 '좌우합작'을 하며 수단과 방법의 차이는 차치하고, 우선 '독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신간회'를 조작해서 거대한 단결을 보여주려 했었다. 허나 어처구니 없게도 일제는 '묻지마 감금'이라는 방법으로 아무 근거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조선인'을 구속하고 감금하고 고문과 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신간회의 존재'를 밝혀내고 만다. 이른바 '105인 사건'을 시작으로 비밀조직이었던 '신간회'가 들통이 났고, 일제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에 의해 '신간회'는 결국 해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간회'의 한쪽 날개를 맡았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세력들이 '우리의 독립 의지와 열망'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소련의 '코민테른'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어리석음을 보여줌으로서 끝내 '신간회'가 해체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조선인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을 멍청하다고 매도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과 '공산주의 국가 건설'이 너무도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마르크스 사상에 입각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소련의 위업을 누가 쉽게 흠을 잡을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그런 성공한 세력이 주축이 된 '코민테른'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어련히 알아서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철썩 같이 믿었던 조선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을 순진하다고 매도하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너무 그쪽 편이었다. 어쨌든 '소련의 지시'를 받는 코민테른의 명령은 당시 일제치하에 놓여 있던 '조선 독립운동가'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었고, 이를 '이상적인 방법'으로 오판한 사회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신간회 활동'보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 지나고 나니 '코민테른의 지시'가 허울만 좋은 이상이었을 뿐, 현실의 녹록치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간파하지 못했었다고 알 수 있지, 당시를 살던 사람들은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가는 글 : 그렇다면 '신간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비록 신간회 활동은 독립이라는 결실도 얻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일제의 철저하고 교묘한 방해공작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 힘을 모으고 독립을 하겠다는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었기에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사상적으로 '다른 조직'이 '한 몸'으로 행동하기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종파'가 다른 종교인들을 한데 묶어놓고 '한 목소리'를 내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간회'는 좌우합작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리고 실패하긴 했지만, 그건 우리 내부의 분열 때문이 아니었다. 일제의 감시망조차 피해 활발히 활동했었는데,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었던 것이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 격이었고,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친 어망에 잠수함이 걸린 꼴이 었다.
그럼, 만약 '신간회'가 발각되지 않고 애초에 계획했던대로 활동을 이어나갔다면 우리 민족의 역량만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을까? 아쉽지만 그건 아니다. 그건 앞서 언급한 '소련 코민테른의 무지' 때문이었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에게 '코민테른의 결정'은 지상명령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당시 소련은 일제를 지지했고, 조선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었다는데 아주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의 '외교역량'이 제대로 발휘되는 상황이었다면 진행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긴 채 망해버린 나라이기에 다른 강대국의 관심도, 지지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다. 이봉창은 비록 실패했지만, 폭탄을 일왕을 향해 던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인들을 기겁하게 만들었고, 윤봉길은 상해에서 거사를 성공시킴으로써 중국의 장개석을 '우리 편'으로 돌리게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외교적 역량이 발휘되면서 '조선의 독립'을 전세계에 천명하고,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독립시키자는 카이로회담과 얄타회담의 결실을 갖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이 중국군에 편입이 되어 일제와 싸울 수 있었고, 비록 '조선독립군'이란 명칭으로 당당히 일제와 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지만, 일제와 싸울 수만 있다면 '중국군'이든 '소련군'이든 가리지 않고 참전하여 실력행사를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인'이 되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조선인은 중국에서도, 소련에서도 결코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비극이었다. 그리고 일제는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수탈과 차별을 심화했고, 급기야 '병참기지화'와 '민족말살'이라는 끔찍한 만행을 우리 민족에게 가했다. 심지어 친일을 행하던 민족배신자들도 일제에 차별받고 고통받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런데도 벨도 없이 일제시대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현존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게 그저 '해석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