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백설 공주 The 그림책 1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 김시아 옮김 / 한솔수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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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백설공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 김시아 / 한솔수북 (2024)

[My Review MMCCCXXXI / 한솔수북 2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 번째 리뷰는 그림형제의 원작동화를 넘어 그 속내까지 파헤친 <아듀, 백설공주>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면 책등이 없는 '누드 사철'과 상상 이상의 '크기'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놀람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 '백설공주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고 그림부터 기괴하고 등장인물들의 속내는 추악한 동화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백설처럼 희고 하얀 아리따운 공주가 등장하지 않는 그림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아듀, 백설공주> 관점 포인트 :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예술을 감상하는데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이는 '기존의 예술'을 뛰어 넘어 '새로운 예술'로 다가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방법이라도 기존에 '아름답게' 보던 것을 굳이 '추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아주 좋은 그림책이 바로 <아듀, 백설공주>다.

우리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통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꿈과 환상을 키워 왔다. 어릴 적에 누구나 읽어보거나 들어본 이야기에서 백설공주는 눈처럼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처럼 아리따운 공주에게 시련이 찾아왔으니 친엄마의 사랑을 받지도 못한 채 '못된 계모'에게 시기와 질투, 미움을 받으며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지만 끝내 계모의 차갑고 어두운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이웃나라 왕자에게 '키스'를 받고 되살아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그냥 들으면 '예쁜 여자아이가 고생 끝에 행복을 찾았다'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일 뿐이다. 그런데 곰곰이 이야기를 따져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속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계모가 의붓딸을 살해하는 이야기이고, 늙은 여자가 어린 여자의 미모를 샘내는 이야기며, 예쁜 여자는 착하지만 멍청하거나 더 예쁜 여자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린아이가 읽는 '동화책'인데 말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부도덕한 이야기를 우리의 사랑스런 어린이들에게 읽혀줘도 괜찮은 것일까?

오늘날 '올바른 여성상'을 따져가며 <백설공주>를 읽으면 더욱 기괴하다. 훌륭한 여성상이 되려면 '모성애'가 가득해야 하고, 더 나아가 만물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미모'로 세상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먼저 돕고 나서서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기꺼이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텐데,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계모는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젤 예쁘니?"라고 묻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거울이 답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은 왕비님이십니다"라고 답하면 온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감을 만끽하는 낙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왕도 죽고 백설공주만 남게 되자 왕국을 차지한 새왕비는 왕국을 잘 다스린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거울에게 묻고 '정해진 답'을 듣는 낙으로만 살아간다. 그러다 백설공주가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게 되자 새왕비에게는 둘도 없는 '경쟁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새왕비가 '경쟁'에서 패배를 선언받자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자신의 미모를 뛰어넘은 '경쟁자'를 제거하려 든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처음엔 사냥꾼, 다음엔 허리띠, 머리빗,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사과'를 사용해서 죽여버린다.

예쁜 공주가 받게 되는 '살해 시도'는 일곱난쟁이들과 이웃나라 왕자에 의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백설공주는 시련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아름다운 결말로 끝을 맺지만, 이게 정말 '해피엔딩'이 맞을까?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또 하나 감춰져 있다. 백설공주는 예쁘기만 할 뿐, 정말 '멍청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아름다운 여자는 똑똑하면 안 된다'는 사회통념이 팽배했었다. '백치미'라는 말이 예쁜 여자에게 듣기 좋은 말로 꼽힐 정도였단 말이다. 반대로 예쁜 여자가 '박사 학위'를 따고,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출세'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끼리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백설공주'는 여러 공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멍청한 공주였다. 이런 문제의식이 가득한 '백설공주'인데도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백설공주처럼 아름답다"는 말은 욕이 아니라 칭찬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나가는 글 : 이 책의 저자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백설공주> 이야기는 끔찍한 동화책이라고 문제의식을 최고조로 까발렸다. 그런 의미로 작가는 <아듀, 백설공주>를 그렸다. 읽어보면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이 책 속에서 아름다운 '새왕비'도 찾아볼 수 없고, 아리따운 '백설공주'도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추악한 속내'가 그대로 외모에 투영된 새왕비가 등장하고, 자신을 쫓아다니는 '문제의식'을 전혀 깨닫지 못한 백설공주 또한 곱게 그려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백설공주>를 읽고 '잘못된 꿈''왜곡된 환상'을 애초부터 갖지 못하게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비록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로 읽히지만, 작가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여기에 아름다운 여성을 더는 '멍청하고', '수동적'이며, '순종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바다. 더불어서 아름답지만 '자기 욕망'에만 충실하고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주지 못한 새왕비에게도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 그 끔찍한 처형식을 백설공주에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이 무엇이고, 반대로 '해야만 할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의도가 작품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비록 기괴하고 어둡고 추한 그림으로 가득한 그림책이지만,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렇게 좋은 의도를 굳이 '그로테스크(기괴한) 기법'으로 전해야만 했을까? 정말 아름답고 화려한 이미지로 가득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추악한 속내'가 밝혀진 새왕비를 참혹한 형벌로 처형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도 같은 의도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른바 '충격 요법'이라면 시종일관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보다는 처음엔 아름답다가 끝에는 참혹한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극적 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씨~게 맞은 것처럼 말이다. 물론 백설공주도 아름다움 속에 '멍청하게 휘둘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아놓으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완성도'는 걸작 수준이다. 예술성에서도 '수준급'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를 '몇 살의 여자아이'에게 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독서교육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하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19금 딱지'를 붙여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폭력성'이 너무 강렬하다. 절대 10대 이하의 여자어린이에게 보여주면 안 될 그림책 같기도 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소녀에게도 조금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독서교육 필독서로 사용할 경우라면 '능력 있는 독서지도사'의 교수법을 거쳐서 '성숙한 양성평등 의식을 갖자' 등등의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아무 생각 없는 '사춘기 소년'을 대상으로 충격 요법에 가까운 '성평등 수업'을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고 말이다. 여러 모로 '초등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들이 '바라는 여성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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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강의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만난다!
이중텐 지음, 양휘웅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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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강의> 이중톈(易中天) / 김성배, 양휘웅 / 김영사 (2007)

[My Review MMCCCXXX / 김영사 3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아홉 번째 리뷰는 중국 국영방송의 교양인문학 강의를 통으로 씹어 먹은 이중톈 문학박사가 쓴 <삼국지 강의>다. 무려 20년 전에 했던 강의지만 지금 읽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강의다. 올해 <삼국지>를 본격적으로 다시 읽으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책이기에 여기 몇 자 적어 볼까 한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 강의> 관점 포인트 : 이중톈은 '문학' 박사지만 '역사 고전 해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분이기도 하다. 이 분의 손을 거치면 '썩은 물'도 수백 미터 암반에서 뽑아올린 '청정수'가 된다고 할 정도로 '고전'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런 까닭에 이중톈이 <삼국지연의>를 강의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되었고, 실제로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가 방영된 이후에 기존의 '삼국지 해설'은 싹 씹어먹을 정도의 파급력을 보여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는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비교분석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한서>, <자치통감>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서'를 비롯해서 <배송지본>, <모종강본> 등의 '삼국지연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에도 수많은 학자의 역사서와 해설서, 소설 등등 전방위적인 '1차, 2차 사료' 및 수많은 '이본(異本)'까지 들이밀며 자기 주장의 '객관성'을 선점하며 강의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와 이해가 술술 되는 명강의를 보여줬다. 이 책 <삼국지 강의>는 바로 그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어렵지 않게 '고전'에 대한 교양을 쌓을 수 있으며 <삼국지>를 10번 이상 읽은 초고수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까지 속시원히 긁어주는 훌륭한 책이다. 그런 관계로 <소설 삼국지>를 좀더 깊이 읽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필독서로 꼭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400쪽이 훌쩍 넘는 책이라 솔직히 부담이 되는 분량이긴 하다. 더구나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두꺼운 2권이 남아 있다. 그래서 거의 10권 분량의 소설책을 읽는 것 같은 부담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걱정하지 않고 읽기 시작하면 결코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깊은 몰입감과 깨알같은 재미를 보장하는 책이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해준다. 다들 '정사'에서는 조조가 주인공이고, '소설'에서는 유비가 주인공인 것을 알지만, 그 둘 중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속시원히 까닭을 밝히며 말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 다 천하통일을 이룩하지는 못했지만,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조조를 주인공으로 꼽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설에서는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고 조조를 '악인(조연)'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조조가 결국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유비가 주인공인 소설 속에서도 분량적인 면에서 '조조'가 압도적으로 많이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인공 유비가 나올 때에도 조조와 얽힌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으로 나올 정도다. 이쯤 되면 <삼국지>는 '조조'를 배놓고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그렇기에 조조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중톈이 이 책에서 "조조가 주인공이다"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조차 '조조의 분량'이 절반을 넘는다. 결국 조조가 주인공이라는 얘기를 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는 역사의 승자이며, 동시에 '기록'의 주체다. 그러므로 정사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조차 '조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진행하고 플롯을 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조가 동탁 암살을 하려고 '첫 등장'을 할 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며, 조조의 세력 확장 과정을 살펴야 <삼국지>의 줄거리가 착착 어긋남이 없이 진행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설 삼국지>에서는 이를 무리하게 틀어버려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른바 '촉한정통론'이다. 그러다보니 조조를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취급하고, 심지어 '악인'으로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중톈은 이런 조조에 대한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삼국지 강의> 첫 머리를 슬며시 열여재낀다. 그렇게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오명부터 풀어간다. 조조가 그토록 '간사한 영웅'이었는지 말이다. 겉으로 보았을 때 조조는 한나라 황실을 옥죄어 황제를 볼모로 삼고 스스로 '승상'이란 최고의 자리에 올라 전국의 제후들을 황제 대신 호령한 인물이다. 나중에 '위왕'에 책봉되고, 감히 '황제의 자리'까지 넘봤다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조조는 살아생전에 황위를 찬탈하지 않았다. 헌제에게 선양을 강요하고 끝내 폐위시킨 인물은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한 일이다. 자식이 한 죄를 아비에게 물어야 한다면 조조는 '역적'이 맞겠지만, 그조차 조조가 죽고 난 뒤의 일이다. 유언으로 조비에게 황위를 찬탈하라는 유언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간웅이란 말인가?

물론, 조조가 황제의 밀서(의대조 사건)로 '역적의 반열'에 오른 것이 이유로 충분할 수 있지만, 당시 헌제는 조조 한 명 암살에 성공한다고 '권력'을 온전히 되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을 견고히 하지 못했다. 궁궐 전체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조조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조가 죽어도 '조씨 천국'에서 헌제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조조에 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웅'이 홀연히 헌제에게 찾아와 구출해주고 '조조의 압제'에서 유유히 빠져 나와 조조 세력을 짓누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헌제에게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지고지순한 충신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대 그런 영웅이 '조조' 말고 또 있었을까? 또한, 조조를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헌제에게 충성을 다할 영웅이 있기는 했을까? 그런 점에서 조조는 헌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셈이다. 다시 말해, 조조는 '헌제'를 보살펴주고 '한 황실'을 건재하게 보존했으며 '한나라'의 명맥을 잇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영웅'이었다. 이는 진수가 쓴 <삼국지>를 비롯해서 <후한서>, <자치통감> 등 여러 역사서에도 비슷한 논조로 적혀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사실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도 나관중은 <삼국지연의>를 서술하면서 조조를 철저하게 '악인'으로 묘사했다. 왜냐면 역사서에서는 조조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백성들에게는 조조가 큰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이란 게 그렇다. 좋은 정책을 펼치고 국가를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가혹한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난세가 아닌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등 피치 못할 일이 많이 생긴다. 그렇다보니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나랏님'을 향해 욕하기 마련이다. 헌데 당시 황제였던 '헌제'는 힘 없는 존재였다. 모든 '실권'은 조조가 틀어쥐고 있다. 그리고 조조를 둘러싼 군웅들은 호시탐탐 조조를 노린다. 여포가 그랬고, 원소가 그랬고, 유비가 그랬고, 유표가 그랬고, 손권이 그랬고, 마등이 그랬고, 마초가 그랬다. 조조는 늘 전쟁을 치뤄야 했다. 아무리 '둔전제'를 시행하고 전쟁의 효율성을 높였다고는 하나, 전쟁은 아주 극단적인 '국력 소모'를 전제하기 마련이다. 승리를 해도 잘 해야 본전치기인데, 패전을 하게 되면 손실은 눈덩이가 된다. 이런 시기를 겪었던 백성들은 조조가 살아있을 때도 욕했지만, 조조가 죽은 뒤에도 욕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민간에서조차 조조는 인기가 없었던 군주였다. 그런데 나관중이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큰 인기를 끌었고, 역사가 아닌 소설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소설의 이미지'를 역사에 투영하며 의식을 굳혀 갔다. 그래서 조조는 억울하다. 실제로는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정책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민간에서 널리 인식하기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 <삼국지 강의>는 조조에게 얽힌 '진실과 거짓'을 낱낱히 밝히며 역사와 소설의 차이점을 분명히 밝혀준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런 점에서 속시원한 면모를 느끼게 될 것이다. 비단 조조 뿐만 아니라 손권과 유비를 비롯해서 수많은 군웅들의 면모를 일일이 '사료''소설'을 번갈아 보여주며 속사정을 까발린다.

나가는 글 : 그렇게 까발린 속사정 가운데 '삼고초려''적벽대전'을 이야기해보자. 과연 유비는 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간 것이 사실일까? 그러기엔 당시 유비는 이미 '영웅'이었고 공명은 '무명'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일 가능성인 매우 적다고 밝혔다. 지금으로치면 대기업 회장직에서 밀려난 총수가 어느 촌구석에 숨어 있다는 현자를 직접 찾아가서 '세상물정'을 물어본 뒤에 그를 '대기업 비서실장 겸 CEO'로 발탁한 것과 맞먹는 일이다.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실제 역사서에서도 유비가 '삼고초려'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하지만 유비가 공명이 머물고 있는 '융중'을 찾아가 '천하삼분지계'를 조언 받은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단다. 세 번이나 직접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한 번 정도는 찾아갔을 것이고, 만남이 이루어진 그 자리에서 '천하삼분지계'를 이야기 나누고, 공명을 책사로 받아들인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긴 하단다.

한편, '적벽대전'의 진실도 조조가 남하해서 유종에게 항복을 받고 형주를 차지한 것은 맞지만,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한 까닭이 애초부터 '손권'을 쳐서 정벌하겠다는 야욕을 벌이다 '제갈량이 손권 진영을 입방아'로 휘몰고, '주유와 제갈량이 지략대결'을 벌이고, '지푸라기배로 화살 10만 개'를 낚아채고, '동남풍을 빌리는' 따위의 이야기는 소설에서나 나오는 허풍에 가깝다고 말한다. 왜냐면 조조는 애초에 손권이 목적이 아니라 유비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조군이 적벽에서 패전한 까닭은 첫째, 전염병에 돌았기 때문이고, 둘째, 100만 대군이 아니라 20만 정도였으며, 셋째, 그마저도 수전에는 취약한 보병과 서둘러 남하하느라 지쳐버린 기병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남풍이 부는 계절에 화공을 당해서 조조 진영이 배는 물론 육지까지 화염에 휩싸이는 '불운'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 결론은 적벽대전의 진실은 조조의 '작전 실패'였던 것이다. 애초부터 자랑이던 기병과 보병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남하를 했더라면 유비는 물론이고 손권까지 다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을, 어찌하여 무리하게 '강행'을 서두르고, '수전'을 고집해서 자신의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는지가 미스테리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적벽대전의 승리를 '조조의 불운'으로만 정리할 수는 없다. 분명 제갈량과 주유, 그리고 노숙의 공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 방통의 연환계는 아예 기록에 없는 내용이다. 먼저 제갈량의 공은 형주가 조조에게 홀랑 넘어간 뒤에 강하에 남아 있던 '유기의 1만 군사''관우가 이끌던 1만 수군'을 밑천 삼아서 손권을 전쟁에 끌어들이고 '주유가 데리고 온 3만 군사'와 합해서 조조의 20만 대군과 맞서 싸우게 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20만 vs 5만의 대결이다. 결코 쉽지 않은 대결인데, 자신이 모시는 유비를 위해서 '조조 vs 유비'의 전쟁을 '조조 vs 유비, 손권'의 전쟁으로 만든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주유의 공은 단연 '수적 열세'에 놓인 전투를 앞에 두고 '황개의 화공작전'을 받아들여 조조의 약점인 수군을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게 만든 점이다. 말이 20만 vs 5만이지 무려 4배의 차이가 나는 전쟁이었다. 자신이 2미터의 장신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4배나 큰 8미터의 거인과 맞서 싸우는 셈이었다. 그런데도 용감히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주유는 대단한 장수였던 셈이다. 한편 노숙은 제갈량 못지 않은 책사인데, 소설에서 너무 무능하게 묘사되어 안타까울 지경이다. 제갈량이 유비를 위해서 '천하삼분지계'를 꺼냈다면, 노숙은 주유와 함께 손권을 위해서 '천하이분지계'를 내놓은 지략가였다. 더구나 적벽대전에서 유비, 손권의 승리를 거두는데 노숙의 지략도 톡톡히 해냈다.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에 유비 세력을 형주에 묶어두고 손권에게 이득이 돌아가도록 판을 짠 것도 모두 노숙의 공로다. 헌데 소설에서는 능글맞은 유비와 제갈량에게 손쉽게 속아넘어가는 바보로 만들었으니 노숙이 <삼국지연의>를 직접 읽었다면 분통을 터뜨렸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는 '정사'와 '소설'을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맛으로 읽어도 존맛이다. 거기에 <삼국지>에 담긴 지혜와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고 말이다. 특히 <삼국지연의>를 두번, 세번 탐독한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소설만 읽어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 책을 통해서 얻게 되어 한층 안목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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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질리언 크로스 지음, 닐 패커 그림, 윤영 옮김, 호메로스 원작, 장은수 해설 / 더숲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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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숲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일리아스 :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호메로스 / 질리언 크로스 / 장은수 / 윤영 / 더숲 (2026)

[My Review MMCCCXXIX / 더숲 1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여덟 번째 리뷰는 서양 문학의 첫걸음 <일리아스>다. 서양 고전문학을 시작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호메로스가 쓴 두 책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서양의 어린이들은 이 책을 정말 두고 두고 읽고 공부하게 된다. 자신들의 '정신'을 떠받치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인 '헬레니즘'의 원류인 그리스문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고전 카테고리이지만, 이걸 우리가 '그대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의 '정서'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리아스>의 주요 내용이 '트로이아 전쟁'이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근본을 '전쟁'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쟁이긴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는 전쟁은 '부정적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그렇다고 서양인들이 전쟁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평화'를 사랑한다면서도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결코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피지배'적인 위치에 놓이면 안정적이어도 못마땅해 한다. 이를 뭉뚱그려서 '명예'라고 말한다. 이 책 <일리아스>에는 바로 서양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쟁''명예'가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일리아스 :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관점 포인트 : 호메로스가 쓴 원전 <일리아스>를 읽고자 하면 어려운 점이 두 가지다. 첫째는 벽돌책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분량'이고, 둘째는 고대의 언어를 '현대어'로 옮기는 것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나 고대 그리스어로 '색채''풍경'을 묘사한 대목은 현대인들이 언뜻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꽤나 많다. 심지어 바다를 묘사할 때도 '와인빛'이라고 하는데, 이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으려면 '깊이가 깊어서 짙푸른 바다'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전한다. 그래서 단순한 정경묘사인데도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군과 트로이아군이 바다에서 치열하게 싸워서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거나 태양빛이 작렬한 오후가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데,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바닷빛깔을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표현했다고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기준이 바로 '번역'이다. 기본적으로 '서양문화'에 이해가 깊지 않은 이가 번역을 하게 되면 이런 평범한 정경조차 아주 심각한 '오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의 기본적인 줄거리조차 엉망으로 이어나갈 위험이 한가득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원전 번역'한 질리언 크로스라는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0년 넘게 아동 및 청소년 도서를 집필한 영국 대표 작가이면서, 옥스퍼드와 서식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세련된 문체로 호메로스를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아주 잘 간추린 작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이 책은 아동과 청소년에게 읽힐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리아스>다. 하지만 질리언 크로스의 책을 '우리말'로 다시 한 번 '번역의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굳이 '아동용'이나 '청소년용'으로 한정하고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겐 애초에 '서양의 고전'이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부제가 딱 맞다. 성인 독자라하더라도 호메로스를 처음 듣는 이가 대다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리아스>의 원전을 빠삭하게 다 읽은 독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처음 접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먼저 일독한 뒤에 '원전'을 즐기거나,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딧세이>를 감상하길 권한다. 그러면 서양 고전이라는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양 문학의 원류를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본다.

사실 <일리아스>의 주요 내용은 아가멤논에게 브리세이아를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해서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레스를 죽인 트로이아의 명장 헥토르를 죽이고, 헥토르의 시신을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에게 전달하고 헥토르의 장례식을 엄숙히 치루는 것까지다. 허나 널리 알려진 줄거리는 '황금사과'의 주인을 가르는 파리스의 선택으로 시작해서 '트로이 목마'가 등장해서 그리스연합군이 대승을 거두는 장면까지 다루는 내용으로 요약해 놓은 줄거리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트로이아 전쟁'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까닭은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대서사시를 호메로스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작가가 전체 내용의 일부분씩 나눠서 '연작'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온전하게 남겨진 두 작품이 바로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전체 줄거리가 온전히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 남겨져 전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 일부분마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껴넣어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일리아스>의 주제는 '전쟁''명예'라고 말했다. 전쟁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미녀 헬레네가 젊고 건장한 미소년 파리스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보답'으로 둘은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파리스가 살고 있는 트로이아로 헬레네가 따라갔기 때문에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을 말한다. 아니 두 남녀의 사랑이 왜 전쟁으로 촉발되었단 말인가? 그건 헬레네가 '유부녀'였기 때문이고, 그것도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헬레네를 '납치(?)'해간 파리스는 트로이아 왕국의 둘째 왕자였기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었던 것이다. 무슨 전쟁이 장난도 아니고 '여자 한 명'이 발발원인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건 다름 아니라 '명예'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변심한 여자를 다시 빼앗아오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자기 아내를 빼앗긴 '치욕'을 만회하기 위해서 벌인 전쟁이란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국가간의 전쟁이 고작 그런 이유로 벌어질까 싶지만,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도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해서 당당하게(?) 빼앗은 전리품인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 브리세이아'를 총사령관인 아가멤놈이 가로챈 것에 '분노'하고 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서양 문학의 근원이라 일컫는 <일리아스>의 골자가 바로 '명예'이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고작 '자기 몫'을 정당히 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거나, 심지어 빼앗기면 무시무시한 '분노'를 뿜어내고, 그로 인해 '전쟁'까지 불사하는 것이 주제인 셈이다. 우리네 관점으로 살펴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님이라도 날 버리고 떠나는 것까지는 막지 않고, 그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나 나라고 원망하는 것이 고작인 우리에게 '전쟁'이 그렇게 쉽게 벌어지는 것이 이해될 리 없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명예'가 손상되면 죽음을 건 '결투'를 벌이는 것이 일상이고, 명예를 잃는 것을 '사는 것'보다 더 높은 순위로 삼고 있다. 어찌 하나 뿐인 생명을 두고,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놓을 수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 삶은 '명예,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서양인들은 생각보다 뒤늦게 발전했다. 중세까지 그들의 삶은 정말 보잘 것이 없었고, 르네상스 이후에 '인본주의'에 눈을 뜨면서 자신들의 고대문화가 현재의 삶보다 더 찬란했음을 눈 떴던 것이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서구 사회가 점점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점차 유럽을 넘어 세계로 힘의 영향력을 떨치게 되었다. 이른바 '근대화'를 이룩한 것이다. 이렇게 되찾은 '과거의 영광'을 증명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역사'라는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서양 문명이 세계의 근원임을 찾기에 혈안이 된다. 그리고 결국 찾게 된다. 바로 헤로도토스와 호메로스를 비롯한 '역사''서사'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과거에 얼마나 찬란한 문명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온갖 이론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오늘날 '서양중심사상' 이른바 '백인우월주의'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기존의 역사와 서사를 더 크고 화려하게 부풀리기를 시작한다. 바로 '죽음의 미학'이다. 다름 아닌, 죽음마저 아름답게 만드는 서사, '명예'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웅에 이런 서사를 덧입히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트로이아 전쟁'은 무려 10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그리스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지중해 전역에 방대한 '폴리스(도시국가)'를 구축하고, 폴리스를 거점으로 강력한 해상무역을 실시해 성장해 나간다. 그런데 '트로이아'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해서 지금의 튀르키에 서쪽을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일대를 장악하고 성장해나갔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리스는 해상무역으로 독차지했던 이점을 새로운 경쟁국에게 모두 빼앗길 판이다. 그러던 참에 그리스인들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는 것을 빌미로 트로이아로 몰려 갔고, 그 전쟁이 무려 10년이나 이어졌다는 것이다. 말이 10년이지 수백 척의 배를 몰고 가서 '트로이아 해변'을 애워싸고 장장 10년 동안 농성을 한 것이다. 트로이아는 거대한 성벽으로 보호 받고 있었기 때문에 무려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고, 전쟁을 벌인 쪽이나 막은 쪽이나 정말이지 독종(?)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야기는 다시 소설속으로 돌아간다. 아킬레우스가 분노한 것은 바로 전쟁이 9년째에 접어들면서다. 9년동안 싸웠던 기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전황이 이어졌는지 잘 모른다. 암튼 두 나라는 서로 결정적인 치명타를 받지 않고 '대치중'이었으며, 9년째에 접어들면서 무적을 자랑하는 아킬레우스가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앞서 얘기한 명예를 실추당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리스연합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한다. 이를 틈타 트로이아군의 명장 헥토르는 그리스연합군의 맹장들을 하나하나씩 꺾으면서 '기선제압'에 성공했고, 급기야 그리스연합군이 머물고 있는 해안가까지 내몰리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참전'을 요구하지만, 여전히 명예를 되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직접 공격받지 않는 한 참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파트로클레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와 뮈르미돈 전사들을 빌려 '대신' 참전하기로 한다. 그러다 파트로클레스는 헥토르에게 일격을 당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아킬레우스를 또다시 '분노'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그 분노의 방향이 아가멤논이 아니라 헥토르였다. 하나는 '전리품'을 빼앗긴 분노였지만, 다른 하나는 평생를 함께한 '우정'을 잃은 분노였다. 다른 관점에서는 '사랑'을 빼앗긴 분노였다. 자신이 9년동안 원치 않은 전쟁에 끌려온 보상으로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 브리세이아를 향한 사랑이었지만, '동성애'가 일상이었던 그리스 사회에서 어릴 적부터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제자'였던 파트로클레스를 향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예도 잃고 사랑도 잃은 아킬레우스는 하늘이 떠나가라 '노여움'을 뿜어낸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화답한 신들도 아킬레우스의 승리를 노래하며 응원하게 된다. 그 결과 트로이아를 단단히 지키던 단 하나의 명장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앞에 죽음을 맞이한다. 장장 9년동안 이어진 전쟁이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다. 이 뒷이야기는 헥토르의 죽음 이후 나가서 싸울 힘을 잃은 트로이아는 단단한 성벽에 의지해 1년간 더 버티지만, 꾀주머니 오디세우스에 의해 '트로이 목마'를 남겨두고 그리스연합군이 물러가자 승리한 줄로 착각한 트로이아인들은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가고, 밤새 축제를 벌이지만 목마 안에 감춰있던 그리스군이 성벽의 문을 활짝 열자 그리스군이 성안으로 물밀듯이 몰려들어 성을 함락하고 그리스연합군이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나가는 글 : 결국 <일리아스>는 '침략전쟁'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고전 문학의 원류'라는 반열에 올려두고 숭배(?)할 까닭이 있을까? 아무리 실제 역사를 기록한 '인류 최초의 대서사시'라는 타이틀을 걸어둔다고 해도 결국 '침략'하고 '파괴'했다는 기록일 뿐인데 말이다. 어렵고 힘든 전쟁에서 끝내 승리를 거뒀기에 더 영광스럽게 여길 사람들은 결국 '그리스인'이고, '유럽인'이며, 넓게 봐도 '서양인(백인)'만의 영광이다. 이걸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반열에 올려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말한다. <일리아스>에서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지만 '헥토르'도 함께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아킬레우스는 '반신반인의 존재'로 불사의 몸을 가졌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슨 절대 질 수 없는 '무적'이며,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에 반해 헥토르는 '필사의 몸'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전투를 벌이면서도 '최전선'에서 앞장서서 싸우지 않고, 몸을 사리며 뒤로 물러서는 비겁한(?) 모습도 보인다. 신들마저 헥토르에게 당부할 정도다. 전투에서 승리할 '운명'이지만 필사의 몸으로 헥토르가 앞장서서 싸운다면 죽을 수도 있으니 몸을 사리라고 말이다. 이렇게 헥토르는 너무도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렇게 <일리아스>는 필사와 불사의 대결을 보여준다. 결국 불사가 승리할 수밖에 없지만 필사도 불사 못지 않게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피할 수 없는 '신의 분노'와 같다. 그런데도 그런 신들의 분노에 맞서 '인간의 몸', 다시 말해 '필사의 몸'으로 당당히 맞서 싸우는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건 서양인들이 말한 '서구우월주의'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애초에 <일리아스>에 그런 '우월주의'따윈 없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의 위대한 서사시'가 펼쳐진 것이다. 승리의 영광은 '신의 몫'일지라도 승리보다 더 값진 '명예'를 건진 것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헥토르'였던 것이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바로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으러 간 프리아모스 왕의 간절한 요청이었다. 헥토르를 비롯해서 수많은 아들을 죽인 '살인자의 손'에 입을 맞추며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아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모습에서 인간이 신(운명)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침략자'의 야만적인 행위 앞에서 '문명''교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문명국을 침략한 '야만적인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신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을 멈추고 이제 인간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자는 '반전의 대서사시'인 셈이다. 신들 앞에 인간은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인간은 '신의 분노' 앞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며 끝까지 '명예'를 지키고, '인간답게' 살고자, 다시 말해 '필사의 존재답게' 살고자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일리아스>의 진짜 주인공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헥토르다. 명예롭게 죽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불사의 존재들에게 명예란 그저 '손해'를 따지고 '자존심'을 되찾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필사의 존재에게 명예란 감히 '하나 뿐인 목숨'과도 맞바꿔서 지켜야 할 '불굴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승리 따위는 신들에게 양보하더라도 패배한 인간이 치욕스런 삶을 구차하게 연명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너희가 진정한 승리자라면 패배자에게도 능욕을 안겨주지 않고 '명예'를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 당당한 요구인 셈이다. 프리아모스 왕의 이런 모습은 아킬레우스에게 무한한 감명을 주게 된다. 그래서 헥토르의 시신을 정중히 되돌려주고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룰 수 있도록 안배해준 것이다. 자신이 치졸하게 명예를 따지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바람에 잃은 것이 무엇인지 상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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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7 - 서촉을 정벌하라 이희재 삼국지 7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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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7 : 서촉을 정벌하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II / 휴머니스트 5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일곱 번째 리뷰는 유비가 방통의 도움을 받아 입촉에 성공하는 <이희재 삼국지 7>이다. 주유의 죽음에 이어, 이번에는 '방통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주유가 제갈량을 시기하다가 죽음을 재촉했다면 방통은 제갈량을 질투하다가 죽음을 앞당겼다고 소설 <삼국지>에서는 전하고 있다. 바로 방통이 입촉을 하는 와중에 '유비가 타던 말(적로)'로 바꿔 타는 바람에 유장군의 매복 작전 때 방통이 유비 대신 '저격'을 받아 죽었고, 마침맞게 그 장소가 '낙봉파'였던 탓에 봉추(봉황의 새끼)라 불리던 방통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이번에 해보려 한다. 자, '책사편' 방통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희재 삼국지 7> 관점 포인트 : 7권의 시작은 조조 vs 마초의 전투로 시작한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마초와 한수가 조조를 장안까지 밀어붙이지만, 아직 조조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초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초반에 조조군은 당황하지만, 흙담에 물을 부어 '얼음 성벽'을 하룻밤만에 쌓아올리며 마초의 기병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조조는 '가후의 꾀'를 수락하며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 시키는 계략을 꾸미게 된다. 천하무적의 기량을 뽐내던 마초였지만 아직 젊고 혈기만 넘쳤던 탓에 '한수와의 동맹'을 헌신짝처럼 갖다 버리고 끝내 조조의 반격을 받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가후는 책사 가운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계략에 정말 능통했다.

한편 조조가 서량까지 세력을 넓히니 '한중'에 머물고 있던 장로는 언제 조조가 공격해올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다고 조조에게 순순히 항복할 수는 없어 스스로 '한녕왕'을 자처하며 서촉의 유장을 공격해서 영토 확장을 꾀한다. 이 소식을 접한 유장은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하려 했고 '장송'을 보내 장로를 제압해줄 것을 부탁하려 했다. 허나 장송은 유장이 너무 무능한 탓에 서촉의 백성들이 한낱 장로 따위에게 벌벌 떨면서 살고 있다고 한탄하며, 이 참에 '나라의 주인'을 바꾸려는 마음을 품었다. 허나 장송은 못 생겼고 말투도 싸가지가 없다며 조조에게 냉대를 받고 몽둥이 찜질까지 당하고 쫓겨난다. 그렇게 쫓겨난 장송은 유비에게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고서 유비에게 '서촉땅'을 갖다 바치려 한다.

어릴 적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장송이란 인물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나라가 약소국이고, 주인이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다른이에게 홀랑 넘겨버리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 온당치 못한 짓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매국노'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유장과 유비가 '한 집안'이고, 조조와도 '한족'으로 동포라 할지라도 엄연히 '나라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다. 장송의 공식 직함조차 '유장의 신하'가 아니겠는가. 물론 유장이 '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장송이 충성을 받치던 '주인'이었고, 주인이 싫었으면 장송이 배반을 하고 떠나면 그뿐이지, '서촉의 백성'을 위해서 유장을 내쫓고 다른 지배자에게 영토를 내어주려 한다는 것은 쉬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송이 맨 처음 찾아간 이는 '조조'였다. 조조에게 서촉을 넘겼더라면 그야말로 '역적'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격이었다. 그런데도 나관중은 이를 그대로 소설 <삼국지>에 차용했다. 나중에는 '정통' 유비에게 넘겨준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어릴 적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터라 '장송'이 더욱 밉보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장송은 달가운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사 <삼국지>에서조차 장송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유비에게 호의적이었다가 유장에게 들통이 나자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사실을 두고 안타까워할 정도다. 아무리 유장이 무능했다지만 이런 평가가 온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도 5, 60년대 진짜 못 살던 시절에 '대통령이 무능한 탓'을 들어 이웃나라 지도자에게 나라를 홀랑 넘겨 버리는 꼴을 보고도 괜찮다고 평가할 것인가? 그런 식이라면 이완용도 '매국노'가 아니게 될 것이다.

암튼 이런 논란조차 '유비의 입촉'을 열망하는 독자팬들에게는 그닥 무의미할 것이다. 이때 유비의 책사로 활약한 인물이 바로 봉추 방통이다. 일찍이 수경선생 사마휘가 유비에게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한 명만 곁에 둘 수 있다면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고 얘기한 바로 그 봉추란 말이다. 한 명만으로도 천하를 얻을 지경인데, 유비는 복룡과 봉추 둘을 모두 얻었다. 그런데도 왜 유비는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을까?

나가는 글 : 솔직히 제갈량도 그렇지만 방통도 너무 후한 평가를 받은 편이다. 천하를 경영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인재라는 평가에는 제갈량과 방통이 아직 '20대 젊은이'였기 때문에 미래에 펼치게 될 역량까지 미리 끌어다 평가를 한 경향이 강하다. 두 사람이 유비의 품에서 내놓은 계책이란 것이 고작해서 '천하삼분지계'라는 아직 이루지 못한 청사진 한 장이었고, 적벽대전에서 주유의 계책을 돕는 '연환계'를 내놓고 유비에게 형주를 차지할 수 있는 유리한 판을 짠 것이 실적의 전부였다. 학창시절에 아무리 '영재''천재'니 소리를 들으며 우수한 학업성적을 달성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실전경험 미숙한 학생'일 뿐이다. 냉험한 프로의 세계에서는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방통은 이제 막 유비의 '부군사' 직책을 받았기에 실적을 올리려고 부던히도 애를 쓰던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유비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제갈량'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방통으로 하여금 '고용불안정'을 실감하게 했을 것이다. 속된 말로 "너, 실적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 짜를 거야!"라는 말을 듣는 처지였단 말이다.

그런데 방통은 제갈량과 달리 '유비와 궁합'이 너무 맞지 않았다. 제갈량도 삼고초려 끝에 유비를 모시는 신하가 되었지만, 초기엔 뭐 하나 제갈량 '뜻대로' 유비가 따르는 것이 없었다. 천하삼분지계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방책을 눈 앞에 두고도 마다하는 유비를 제갈량은 답답해 했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또 다른 방책'을 내어 유비의 취향에 딱 맞는 방책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비는 이게 맘에 들었던 것이다. 헌데 방통은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고 미적거리는 유비를 한심해 했다.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렵고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느냐면서 말이다. 그래서 유비가 고를 수 있게 '상책, 중책, 하책'을 내놓고 유비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제갈량하고는 다른 방식이었다. 제갈량은 자신의 실력을 굳이 뽐내지 않고, 이 방법은 어떠냐? 저 방법은 어떠냐? 그런 요런 방법도 있다면서 유비의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방법을 무한정(?) 제시하다가도 정말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에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유비로 하여금 "무조건 이 방법대로 따르십시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라며 밀어붙이는 강단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방통은 자기 실력을 뽐내는데 주력을 하면서 먼저 "방통이 추려낸 방책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선 고르기만 하십쇼"라면서 유비에게 다른 방법은 없으니 셋 중 하나를 고르라는 '강요'를 했던 것이다. 물론 방통이 선보인 방법들은 하나 같이 명쾌하고, 어느 방법을 골라도 반드시 '결과'를 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방통의 재주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이 뛰어난 것은 알지만 '유비의 마음'에 흡족한 것이 하나도 없을 때가 문제였던 것이다. 유비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한 방법을 선호하는 욕심쟁이(?)였는데, 방통은 이런 난세에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해야 하는 욕심을 부리다니 과욕이 너무 심하다며 간접적이나마 유비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비는 유비는 유장과 전쟁을 치뤄야 하는 상황에서 '난감한 상황'에 빠질 때마다 방통이 옆에 있는데도 제갈량을 찾곤 했다.

방통은 이런 유비에게 '고용불안정'을 느끼고 조급하게 성도의 관문인 '낙성 공략'을 밀어붙인다. 그러다 끝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1년 동안 길어진 낙성 공략 도중 '빗나간 화살'에 맞고 죽고 만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낙봉파'에서 장임의 기습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방통이 죽은 곳은 낙봉파가 아니었다. 방통은 가진 실력에 채 펴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만약 방통의 목숨이 더 길어 '형주'는 제갈량이 막고, '서촉'은 방통이 경영했더라면, 조조는 한중을 넘지 못했을 것이고, 손권은 형주를 영원히 갖지 못해 '천하삼분지계'는 더욱 완벽하게 자리 매김 했을 것이고, 비교적 젊은 무장이었던 장비와 조운, 그리고 마초, 위연 등이 강한 군사를 키워내서 조조와 손권의 영토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방식을 썼더라면 '촉한'에게도 천하통일의 기회는 충분히 주어줬을 것이니 어찌 '방통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지 않겠는가.

결국 촉한이 빨리 망한 까닭은 '인재 부족' 때문이었다. 서촉이 험준한 지형으로 '방어'에는 유리했지만, 교류나 교역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지리 조건'을 갖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보니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결과를 낳았고, '형주'처럼 뛰어난 인재가 많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형주라고 '중원'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제갈량이나 방통, 서서 같은 인물이 형주에 몰려 있었던 까닭은 하북지역에 '서주대학살', '관도대전' 등 전쟁같은 나날이 연이어 벌어져서 수많은 인재들이 난리통에서 벗어나 비교적 평안한 형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최종 승자가 되어 '중원 일대'가 평온해지니 형주조차 인재가 모여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유비는 서촉을 차지했지만, '방통의 죽음'으로 인재 부족을 느꼈고, 유장의 신하들 가운데 법정, 맹달 등 쓸만한 인재를 몇몇 챙기고 나니 더는 인재가 모여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사망하고, 복수를 다짐한 장비와 유비도 뒤를 이어 사라지고, 늙은 장수들이었던 황충과 엄안마저 차례차례 사망하고, 제갈량조차 '출사표'를 던지고 1차 북벌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마속의 결정적 실수로 인해 가정을 배앗기고 북벌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다시 힘을 모아 북벌을 도모하지만, 조운과 마초마저 하나둘 운명을 달리하니, 촉한에는 '구인난'에 시달리다 명장을 다 잃고 끝내 '강유'만 남아 싸우다 멸망하고 만 셈이다. 만약 방통이 죽지 않고 '입촉'에 성공했다면, 유비의 대성공 소식을 듣고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방통의 죽음 이후에 제갈량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다 '과로사'를 하고 말았고, 유비마저 죽고 나니 아무리 위기 상황에 처해도 좀처럼 '배신자'가 없이 탄탄하던 유비진영이었는데, 곳곳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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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6 - 적벽대전, 전략 대 계략 이희재 삼국지 6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이희재 삼국지 6>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I / 휴머니스트 5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여섯 번째 리뷰는 적벽대전의 승리와 맞바꾼 주유의 운명을 담은 <이희재 삼국지 6>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제갈량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 전투는 '조조군 vs 손권군'이 거의 다한다. 그런데도 적벽대전이 조조의 대참패로 끝나고 난 뒤에 기억에 남는 것은 딱 하나 뿐이다. '제갈량의 동남풍'이다. 사실상 조조의 100만 대군을 손권의 10만 군사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전략은 '화공'인 것이 맞지만, 그 화공으로 조조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동남풍'이었다는 걸 너무나도 강조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손권군을 이끄는 대도독 주유는 입만 열면 "제갈량을 죽여야 한다"고 되뇌인다. 같은 편인데도 그런 까닭은 너무나도 똑똑하고, 기상이변(?)까지 마음대로 만들 재주를 가진 자가 '내 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나도 치졸하고 유치찬란하다. 어린아이의 투정 같지 않느냔 말이다. 천하의 주유를 이런 식으로 묘사한 까닭은 앞서 장비와 마찬가지로 '촉한정통론' 탓이 크다. 오직 유비를 정통으로 꿰어 맞추려다보니 상대적으로 손권측의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깍아내린 것이다. 그럼 좀 더 주유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보자.

<이희재 삼국지 6> 관점 포인트 :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의 갭은 1000년이 훌쩍 넘는다. 후한 말의 역사를 진나라의 진수가 저술하고, 송나라의 배송지가 주석을 달고, 명나라 초기에 나관중이 소설로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관중이 참고한 것은 단순히 정사 <삼국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인물은 '캐릭터'가 생생해야 했기 때문에 선악의 구도를 극명하게 구성해야 했고, 오랑캐에게 오랫동안 핍박을 받은 '한족의 설움'을 달래고 '한족의 위대함'을 재정립하기 위해 '한족의 영웅'을 되살려야 했고, 그렇게 영웅으로 되살아난 인물이 바로 '한고조 유방'이었다. 그렇게 유방을 꼭 빼닮은 '유비'를 정통으로 삼고 영웅으로 만들 필요가 생기니 자연스레 '조조'는 악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조조도 '한족'이며 역사속에선 '진짜 승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소설속에서도 조조가 기틀을 마련한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위상을 드러낸다. 하지만 조씨 황제가 무너뜨린 것은 '촉한'뿐이었고, '동오'에는 여전히 손씨 황제가 건재했다. 결국 동오를 멸망시킨 것은 사마씨가 세운 '진나라'였다. 그만큼 동오도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었고, 솔직히 촉한보다는 훨씬 강했다. 그런데 유비를 정통으로 세운 '촉한정통론'을 강조하려다보니 '악인 조조' 일당이 천하통일을 빙자해서 온갖 역적질을 다해야 했고, '무능 손권' 일당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도 없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조조 vs 손권의 대결은 팽팽하게 묘사된다. 그게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촉한과 싸울 때만 이상하리만치 '너프(성능 하향)'를 당하게 된다. 이게 소설 <삼국지>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자, '촉한정통론의 실체'다.

주유는 '정사'의 기록에도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야사'에는 "하늘은 주유를 낳고 어찌하여 또 공명을 낳았는가"라는 한탄을 남기고 35세의 젋은 나이에 비명횡사했다고 전해진다. 주유의 집안은 원술의 휘하에서 직책을 얻어 지냈는데, 손견이 원술 밑에서 활약을 하자 손견의 아들 손책과 주유가 '같은 나이'라 두 집안이 뜻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손견이 죽고 손책이 원술 밑에서 개고생을 하다 '전국옥새'를 담보로 강동땅을 휘젓고 다닐 때 손책군에 합류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손책이 '소패왕'으로 불리며 강하지역 여강땅을 점령할 때에 주유도 함께 했는데, 이때 대교, 소교와 인연을 맺어 함께 혼인을 하며 '주랑'이라 불렸다고 한다. 손책이 일찍 죽고 손권이 새로운 주군이 되자 주유는 충성을 맹세하는데, 손권은 그런 주유를 형님으로 깎듯이 모셨다고 한다. 그 뒤에 '적벽대전'이 발발하자 주유는 대도독에 임명되어 유비군과 동맹을 맺고 조조의 100만 대군과 맞짱을 뜨게 된다.

사실 적벽대전에서 유비군의 활약은 거의 없다. 실제 전투도 조조군과 손권군이 도맡아서 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사에 유비의 군사도 주유와 힘을 합쳐 조조군을 무찌르는데 한 몫 했다고 적혀 있지만, 뚜렷한 전공은 없고, 다만 주유가 3만 군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유비가 "너무 적다"며 핀잔을 주자 주유는 "잘 보기나 하라"며 조조의 수군과 맞서 싸워 크게 승리하는 대목이 전할 뿐이다. 결국 유비손권연합군은 그냥 '손권군'이라고 불러도 틀릴 것이 없을 정도로 유비군의 형세가 미약할 뿐이다. 더구나 결정타를 먹인 '화공 작전'도 황개가 짠 것이며, 때마침 '동남풍'이 휘몰아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다고 전하지만, 실상 전투에서 조조군이 패배한 결정타는 '전염병(풍토병)'이 돌아 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사 기록에도 '조조군 진영에 전염병이 돌았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보면 유비군은 전염병과 화공에 크게 일격을 당하고 패퇴하는 조조군의 뒤를 쫓은 것이 전부다. 제갈량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할 정도다. 그런데도 소설 <삼국지>는 노숙의 초청을 받아 제갈량이 '조조의 100만 대군'에 쫄아서 항복을 하려는 손권과 오나라 신하들에게 부끄럼을 주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을 지경으로 '쪽팔리게' 만들고, 손권조차 미적지근하게 전쟁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제갈량의 '따끔한 훈계' 한 방으로 오나라는 조조와 맞서 싸우게 만들었다고 서술했다. 여기서 제갈량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수많은 닭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 화려하게 돋보이는 '고고한 두루미'였다. 제갈량의 트레이드 마크가 '순백의 학창의'였던 것이 역사적 고증이었을까? 아니다. 소설 <삼국지>가 창조해낸 '캐릭터'가 십중팔구 틀림 없을 것이다. 더구나 '10만 개의 화살'을 하루아침에 만드는 것이나 '주유의 속사정'을 일일이 간파하고 꿰뚫어보는 대목들, 그리고 대망의 하일라이트는 '동남풍'을 불게 만드는 명장면 등등 모두 소설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갈량이 아무 재주도 없는 인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가 쓴 '출사표'가 제갈량의 시작이자 끝일 정도로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인치고 '출사표'를 읽고, 그의 우국충정을 의심하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섯 차례의 원정은 모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함이었다. 그런데도 제갈량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적벽대전'이라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나가는 글 : 주유가 미치고 팔짝 뛸 내용은 적벽대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난 뒤에 벌어진 '남군(강릉) 공방전'이다. 여기서 주유는 '형주땅'을 하나도 얻지 못하고, 모조리 유비에게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주유는 유비와 함께 조조군의 잔당(조인)을 물리치고 형주땅을 사이좋게(?) 노나 먹는다. 근데 유비측이 손권에게 부탁을 해서 '4개의 군'을 마저 빌리고 그대로 눌러 앉아버렸기 때문이다. 되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유비가 형주 빌리듯 하다'라는 말이다. 돌려 줄 듯 하지만 끝내 돌려 받지 못할 때 쓰는 말이지만, 애초에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못된 놈'에게 더 많이 쓰이는 말이다. 유비가 딱 그랬다. 이런 괘씸한(?) 유비를 혼쭐 내려 주유는 군사까지 동원하기도 하고, 동오로 꼬여와서 달아나지 못하게 만들려 획책까지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주유가 연이은 실수를 한 것 가운데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휘하에 머물던 '방통'을 유비에게 내어준 것이다. 이는 유비에게 서촉땅을 갖게 해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만 늘어놓지만, 이보다 앞서서 주유의 '천하이분지계'가 있었다. 주유만의 독창적인 '청사진'은 아니었고, 노숙도 이와 같은 제안을 손권에게 내놓고, 손권이 승낙한 바 있다. 암튼 주유도 '형주땅'을 발판 삼아 조조가 차지한 '장강 이북'은 내어주고 '장강 이남'과 더불어서 천혜의 자연방어벽과 풍족한 곡창지대를 품고 있는 '서촉땅'을 복속하여 천하를 조조와 둘로 나눠 갖고 용쟁호투의 대결을 벌이자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래서 주유는 '형주 공방전'을 고집하며 유비를 압박했건만 끝내 목표달성을 하지 못하고 요절하고 만 것이다. 이걸 달성하지 못한 이유도 '방통'을 품지 못한 주유의 고집불통이 단단히 한 몫 한 셈이고 말이다. 방통을 끝내 내친 까닭도 '못생겼다'는 이유 뿐이었다. 물론 방통도 오나라 땅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터라 내심 유비에게 가려고 작정한 탓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아쉬운 것은 주유 뿐이다. 하지만 주유가 말했다는 "하늘은 주유를 낳고 어찌하여 또 공명을 낳았는가"라는 말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유가 감히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주유와 공명은 '지혜 대결'을 나눌 만한 일면식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형주 공방전'에서 '책사 대결'을 벌이긴 했지만, 겨우 한 번 진 것 때문에 이렇게 통탄스런 말을 늘어놓을 까닭이 있었을까? 이런 말을 늘어놓을 정도면 평생을 두고 경쟁을 한 '라이벌' 사이에서만 어울리는 말이고,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분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패배로 이런 말을 할 징도면 대단히 억울한 상황이었어야 할테고 말이다. 이래저래 주유는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주유가 정말 실력이 없었을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주랑이 젊었을 때 보여준 활약이 너무 크다. 35세에 사망했기 때문에 평생을 젊은이로 살았지만, 적어도 '적벽대전'까지는 주유는 대활약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인 주유의 활약상은 좀 치졸해 보인다. '천하이분지계'라는 거창한 국가비젼까지 보여준 것에 비하면 실제로 벌인 작전이 큰 그릇에 걸맞지 않은 '속임수'로 점철되었고,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해서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것 같은 쓸쓸한 뒤안길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주유는 운발을 초년에 다 썼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희재 삼국지> 후반은 '책사편'으로 리뷰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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